|
|
C. 로마서 연구사
전통적으로 로마서 주제는 개인적인 구원(以信稱義)에만 그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그러나 로마서에 대한 이해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샌더스(E. P. Sanders)는 첫째, 바울 당시 유대인들이 율법에 순종하거나 선한 행위에 따라 구원을 얻게 된다고 믿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둘째, 구원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한 선택에 근거한다고 하였다. 셋째, 하나님께 선택받은 유대인들은 율법에 순종할 것을 약속한 것이라고 하였다. 넷째, 1세기 유대교 사상에 대하여 언약적 신율주의(Covenantal nomism)라 말하고 있다. 샌더스의 주장은 당시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는 그들도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구원을 얻었다는 말이다. 단지, 율법은 언약 안에서 택함을 입은 백성이 그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율법에 관한 이해는 복음과 율법 사이에서 모호한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율법에 대하여 크리스천이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그 율법의 역할과 그리스도 안에서 그 율법의 성격을 밝히려고 한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그 율법의 오용으로 그들이 지은 죄도 역시 함께 밝히고자 한다.
스탠달(Krister Stendahl)은 그가 ‘내관적 양심’(introspective conscience)이라고 칭하였던 것은 서구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단지 오늘날의 관심사를 로마서에 반영하는 해석의 오류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바울의 관심사는 두 민족 그룹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운 하나님의 역사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던(James D. G. Dunn)은 첫째, 유대인들(유대 크리스천)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에서 이방인들을 배제했기 때문에 바울이 ‘율법의 행위 문제’를 제기했다고 하였다. 둘째, 유대인들의 율법에 대한 헌신은 언약에 포함된 것이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는 별개의 것이었다고 하였다. 이것을 유대인들이 혼동을 일으켰다는 주장이다.
무(Douglas J. Moo)는 민족 그룹 간의 갈등, 즉 구원이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까지 확대되어야 한다는 견해와 개인적인 구원에 초점을 두었던 개혁주의 신학적 접근의 수정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그 수정이란 민족문제의 중요성을 간과한다는 점과 1세기 유대교를 형식주의 종교로 단정했던 것을 말한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전한 좋은 소식은 죄인을 용납하는 것과 바른 지위에 놓이게 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선물로서 믿음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지는 것, 즉 의롭게 하심을 입는 것이라고 하였다. 무(Douglas J. Moo)는 크리스천의 성화(聖化)보다는 칭의(稱義)를 강조한다. 무의 로마서 이해는 첫째, 개인 구원과 둘째, 새 하나님의 백성(유대인과 이방인)에 관한 것이었다.
슈라이너(Thomas R. Schreiner)의 특이한 관점은 곧 집이라는 소재를 비유로 사용하는 데 있다. 그 집의 기초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 집의 건축은 구원의 역사, 즉 크리스천의 성화(聖化)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집의 주제(자재; 資材)는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복음으로 설명하고 있다. 모든 만물은 주에게서 나왔고, 또한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만물을 구원하는 주체이며, 수단이며, 목표라고 말한다.
그는 크리스천의 성화(聖化)에 대하여 언급할 때, 첫째, 성화(聖化)의 주체는 크리스천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이라 하였다. 둘째는 성화(聖化)의 장소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현존을 의미하는 교회라고 했으며, 셋째는 성화(聖化)의 기간에 대해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순간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몸을 입기까지라고 하였다. 넷째, 성화(聖化)의 의미는 깨끗해지는 것, 거룩해지는 것, 의롭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다섯째, 성화(聖化)의 수단은 죄 씻음과 정화를 의미하는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바울의 윤리에 대해서는 성령 안에서 행하는 자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을 범하지 않고 도리어 이행하는 자의 삶으로 보았다. 슈라이너는 크리스천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그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하신다는 점에서 이 연구의 주장과 일치하고 있다.
지슬러(John Ziesler)는 성화(聖化)와 관련된 그의 진술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란, 곧 성령 안에서의 새로운 삶을 말하며, 이것은 또한, 토라(모세오경)를 지키는 것에 대한 다른 방법을 뜻하며,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에 순종하는 삶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의 특징은 자기 아들(τὸν ἑαυτοῦ υἱὸν)이란 낱말에 초점을 두고 구약에서 아브라함이 아끼지 않고 하나님께 드린 이삭과 관련짓고 있다. 로마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로마서에서 아들로 표현한 1장에는 3회, 5장에는 1회, 8장에는 3회이다. 또한, 육신과 성령을 서로 반대 개념으로 보았고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은 곧 소속(신분), 방향(분별력), 능력 부음(성령의 은사), 완전한 변화(크리스천의 궁극적 승리)라고 하였다. 지슬러 역시 성화(聖化)에 대한 율법의 역할이 슈라이너와 일치하고 있다.
로마서에는 율법에 대한 부정적인 진술(롬 3:20, 21, 28; 5:20; 6:14 이하)과 긍정적인 진술(롬 3:31; 7:12; 13:8~10)이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진술과 부정적인 진술은 갈라디아서에서 말하는 율법과 이해관계에 대한 해명이 요구된다. 법을 구약의 율법으로 생각하는 신학자들은 로제(E. Lohse), 오스텐-작켄(Osten-Sacken), 한(F. Hann)과 휩브너(H. Hubner) 등이다. 반면에 그 율법 자체가 아닌, 규칙, 규범, 규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신학자들은 케제만(E. Käsemann), 바울젠(H. Paulsen), 레이재넨(H. Raisanen), 젤러(D. Zeller)와 베버(R. Weber) 등이다. 또한, 대부분 학자의 법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면, 구원의 의미에서 모세의 율법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크리스천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법(새 계명)으로 주어졌다는 사실로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때에 정죄하던 그 율법(모세의 법)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는 새로운 계명(그리스도의 법, 요한이 증거하고 있는 새 계명)이라는 전제하에 연구하고자 한다.
던(James D. G. Dunn)은 바울이 율법을 두 가지 방식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살크스(σάρξ)에 의해 충족되는 율법인데 그것은 옛 기원에 사로잡혀서 파괴적이며, 남용적이라 주장하였다(롬 2:28~29). 롬 7:7~25에서 주된 피고는 율법이 아니라 죄(죄와 사망의 법)인 것과 같이 실제로 강조되는 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율법이 믿음에 적대적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워진다고 보고 있다(롬 3:31). 던의 율법에 대한 이해는 이 연구에서 성화(聖化), 즉 믿음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 안에서 크리스천이 그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것과는 일치하고 있다.
또 다른 논의는 텔로스(τέλος)에 대한 해석이다. 텔로스(τέλος)에 대해 ‘마침(끝)’으로 번역하느냐? 아니면 ‘목표’로 번역할 것인가? 하는 해석을 말한다. 오스텐-작켄(Osten-Sacken)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텔로스(τέλος)를 ‘완성’ 또는 ‘목표’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리츠만(H. Lietzmann), 불트만(R. Bultmann), 케제만(E. Käsemann), 미첼(O. Michel) 등은 롬 6:21~22; 롬 10:4의 문맥을 고려해 볼 때, 텔로스(τέλος)는 ‘마침’으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빌켄스(U. Wilckens)는 그것을 ‘목표’와 ‘마침’으로 해석하고 있다. 예수께서 성육신 하신 때에는 목표였으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그 율법의 성취를 의미하기 때문에 ‘마침’으로 보아야 한다. 단지, 크리스천에게는 ‘아직’ 부활의 몸을 입지 않았으므로 구속의 몸을 고대하는 소망, 또는 목표가 된다. 이것 역시 이미 그러나 아직(already and not yet)과 관련된 과제이다.
다른 한 가지가 더 논의되고 있는데 그것은 ‘나(ἐγώ)’에 대한 것이다. 위스트(kenneth S. Wuest)는 빈센트(Marvin R. Vinsent)의 주장대로 ‘율법이 선하다고 시인하고 있는 도덕적인 자의식’이라고 하였다. 데니(James Denney)가 주장하던 대로 ‘나(ἐγώ)’를 ‘인간 안에 있는 죄’라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했던(갈 2:20) 바울의 표현에 따른 것 같다. 지슬러(John Ziesler)는 ‘나’에 대하여 다양한 의미들을 나타내고 있다. 즉 자기 분열의 개념, 죄 아래 팔린 인간(롬 7:13, 15, 16, 20), 나의 지체(롬 7:23), 나의 육신 안에 있는 율법, 악을 미워하는 나(롬 7:15~16, 18~20), 나의 속사람(롬 7:22), 내 마음의 법(롬 7:23, 25), 하나님의 법(롬 7:25) 등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무(Douglas J. Moo)는 첫째, 바울 자신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는 최초에 자신의 죄를 깨달았던 경험에 근거한다고 하였다. 둘째는 아담이라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긴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아담이었기 때문이다. 셋째는 이스라엘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율법의 도래는 생명이 아니라, 죽음의 의미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던(James D. G. Dunn)은 두 세대 간의 중첩된 시기에 존재하는 ‘나(ἐγώ)’라고 했으며, 또한, 죄와 율법의 상호작용하는 육신에 속한 ‘나(ἐγώ)’라고 하였다.
수사학과 관련된 문헌의 연구에서는 서용원의 ‘생존의 수사학’이라는 그의 신학적 성찰에서 ‘생존(生存, existence)’이라는 모티프(motif)를 접하게 되었다. 특히, 서용원은 생존이란 생의 보존, 있음, 살핌이라고 말한다. 즉 자기보존, 자기 창조, 상생의 길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생존의 수사학’의 기본적인 출발점은 성서의 가치와 그 성서가 주는 유익에 두고 있다. 또한 생존의 의미에 대한 두 가지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직면한 위기의 현실 속에서 말 그대로 생명(목숨)을 유지하려는 몸부림, 혹은 공동체 유지를 위한 현실의 수용과 변형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둘째는 교회공동체가 직면한 현실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고, 예수를 따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곧 예수가 지셨던 십자가의 길임을 제시하고 있다. ‘예수를 따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란 그의 입장이 본 논문의 ‘크리스천의 성화’와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생존이란 현실에서 생존을 넘어서는 기독교적 생존의 가치를 제시하는 직․간접적인 묵시적 메타포(metaphor, 은유)를 지시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의 희망은 절망과 죽음을 넘어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메타포를 산출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용원의 ‘생존의 수사학’에서 그의 생존의 모티프(motif)와 기독교적 생존의 가치를 제시하는 직․간접적인 묵시적 메타포(metaphor, 은유)가 곧 성서의 가치와 유익에 두고 있는 맥락에서 이 연구의 방향과 일치하고 있다. 특히, 성화(聖化)에서 크리스천의 몸부림, 그리고 교회공동체의 성화(聖化) 확산을 통한 복음 전파의 결과로써 온 인류를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게 하는 일이 곧 기독교적 ‘생존의 가치’이다.
종말론적 전망에 의한 연구는 케제만(E. Käsemann)과 베커(J. C. Beker)의 입장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케제만(E. Käsemann)은 바울서신 안에서 바울의 묵시 사상의 영향을 받은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케제만(E. Käsemann)은 묵시 사상의 영향을 받은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곧 고전 15:20~28에서 바울이 진술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예를 들고 있는데 이것은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를 뜻한다. 또한, 바울의 묵시 사상의 특징을 ‘그리스도의 통치’라고 하였다. 다른 한편, 바울의 인간론에 대해서는 묵시 사상의 영향을 받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즉 바울이 천상, 혹은 지상의 세력들에게 사로잡힌 인간의 현실을 말할 때, 영, 육, 몸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곳에서 그 근거를 찾고 있다.
반면에 베커(J. C. Beker)는 묵시 사상적 세계관을 다루었던 신학자들 가운데, 빌하우어(Philipp Vilelhauer)와 코흐(Claus Koch)를 소개하고 있다. 먼저, 빌하우어(Philipp Vilelhauer)의 견해를 살펴보면, 바울이 묵시 사상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이 바울의 묵시 사상에 기초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바울이 전한 복음 역시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을 중심으로 한 묵시적 사상에 의해 구성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바울 사상의 기초 역시 유대 묵시 사상에 근거한다고 말했다. 코흐(Klaus Koch)의 묵시 사상적 세계관에 대해서는 여섯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베커(J. Christian Beker)는 코흐(Klaus Koch)의 해석이 더 정확하고 비판적이므로, 빌하우어(Philipp Vilelhauer)의 입장보다는 코흐(Klaus Koch)의 견해를 더 낫게 평가하고 있다. 베커(J. Christian Beker)는 바울의 일관된 중심사상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묵시 사상적인 해석에 있다고 보았고, 바울의 묵시 사상적인 배경에 대하여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바울의 묵시 사상을 그의 바리새적인 생애에서 찾고 있다. 여기에서 바리새적이란, 즉 조상의 유전에 열심이었던 것(갈 1:14)과 율법에 대한 그의 열정(빌 3:5)을 의미한다. 그의 율법에 대한 열정이 곧 교회를 박해했던 이유라고 말한다. 둘째, 바울의 묵시 사상은 그의 선교 열정과 헌신된 삶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베커는 바울의 묵시 사상에 대해 “옛 세대 안의 새 세대의 현존”이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바울의 묵시적 종말 사상의 특징을 “희망”으로 보고 있다(롬 5:2; 8:24~25; 살전 1:9~10; 고후 5:10). 특정한 내용을 지닌 실재로서 크리스천의 탄식과 함께 “기다림”과 “인내”가 동반된다고 하였다. 희망은 “열린 미래” 혹은 “항상 미래로부터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가능성일 뿐만 아니라 올 세대의 영광(롬 5:2; 8:18), 혹은 몸의 구속(롬 8:23), 그리스도의 재림(살전 1:10), 우주적인 평화(롬 5:1; 갈 5:5)라고 말한다. 바울이 사용했던 ‘이 세대’라는 전통적이고 묵시 사상적인 용어는 ‘오는 세대’라는 용어와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단지 ‘하나님의 왕국’ 혹은 ‘주의 날’이라는 용어만 사용한다고 말한다.
바울의 묵시 문학적인 특성은 곧 현세대에서 비록 크리스천이 환난을 당하게 되지만, 다음 세대에 약속된 구속의 몸을 입게 될 것을 고대하는 소망, 곧 그것의 희망이라고 표현했으며, 죄의 권세 아래, 법의 권세 아래, 죽음이 왕노릇하는 현세대에서 비록 크리스천들이 종노릇 하는 좌절을 맛보지만,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삶을 추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크리스천에게는 성령의 뜻에 순종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에서 바울의 묵시적 종말 사상은 베커의 주장을 따른다. 그리고 묵시적 종말 사상이 바울의 선교 열정과 헌신된 삶에 영향을 주었던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크리스천 역시 바울의 선교 열정을 갖기 위해 반드시 크리스천의 성화(聖化)가 요청된다. 과거에 정죄하던 죄와 사망의 법이었던 율법으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었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크리스천의 성화(聖化)를 위한 그리스도의 법으로 새롭게 주어진 계명이다(고전 9:21). 이제 로마서 구조에서 성화(聖化) 본문의 위치와 그 중요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