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엊그제 밤, 티비 무슨 푸로에 가수 임재범씨가 나왔습니다.
토크쇼 였는데, 어렵게 친부 임택근 전 아나운서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알다시피 가수 임재범과 탈랜트 손지창의 친 아버지인 임택근씨는 당대 최고의 아나운서로 이름을 날렸지만 혼외로 낳은 두 아들을 어릴 때 부터 버린 비정의 아버지였습니다.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가수 임재범씨가 그러더군요.
" 아버지가 씻을 수 없는 잘못을 했지만 그렇다고 용서를 못 할 정도는 아니다." ...
오늘 아침 날씨도 싸늘한데 아침에 훈훈한 얘기가 맘을 참 따뜻하게 합니다.
부산 덕천성모안과 이재혁 원장님이 올리신 글을 읽고 가수 임재범씨와 그의 아버지 임택근 아나운서가 오버랩 되는군요.
(펌)
거제도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겪었던 일입니다.
뇌사자에 대한 기존의 제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은 계기가 된, 잊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거제대우병원 중환자실에 뇌출혈로 수술을 받으셨으나 식물인간이 되신 분이 계셨습니다.
뇌출혈이 발생했으나 적기에 치료받지 못하셔서 안타깝지만 뇌사가 되고 마신 거지요.
뇌사가 되신 분들은 눈꺼풀이 완전히 감기지 않기 때문에 노출성 각막염이 생깁니다.
그래서 안과과장이었던 저한테까지 연락이 온 것이구요.
뇌사가 되어 노출성 각막염이 되신 분들께는 솔직히 제가 해 드릴 게 없습니다.
안과의사로서 가장 큰 의무는 잘 볼 수 있게 해 드리는 겁니다.
뇌사가 되셨더라도 눈을 깜박일 수도 있고, 어딘가 응시를 할 순 있지만
사고할 수 있는 뇌기능이 없어졌으므로 보고 있어도 인지하지는 못하시거든요.
결국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눈을 감지못해 아래쪽 각막이 말라서 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막아드
릴 뿐입니다.
각막이 마르지 않게 눈물 연고 처방해드리고
혹시 건조해져서 각막이 말라 염증 생기면 항생제 연고 처방해드리는 게 다입니다.
2주에 한 번씩 신경외과 과장님께서 협의진료 요청을 하셔서
2주에 한 번씩 집중치료실에 방문해서 증상이 더 심해지시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연고 처방만 해 드렸더랬습니다.
어느 날 점심 시간,
우연히 신경외과 과장님과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식사 하시다 말고 갑자기 제게 말씀을 던지셨습니다.
"집중치료실에 뇌사자 환자분은 괜찮나?"
"아... 예. 제가 2주마다 한 번씩 들려서 진료봐드리는데 염증 안 생기고 괜찮으십니다."
"그 환자 잘 봐 줘야해. 막내 아들이 아주 효자야."
"아...네 특별히 신경써서 봐 드리겠습니다."
말씀은 잘 봐드리겠다고 했지만 안과 환자분이 아니셨기 때문에 솔직히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주 뒤에 다시 집중치료실에서 협의진료 요청이 왔습니다.
...아 그 때 신경외과 과장님께서 특별히 잘 봐달라고 하셨지.
여느 때처럼 오전 진료를 마치고
뇌사자 환자분을 보기 위해 집중치료실에 들렸습니다.
전에 진료보러 갈 때는 항상 환자분만 계셨는데
오늘따라 왠 젊은이가 옆에서 그 환자분 몸을 꼼꼼히 닦아드리고 있더군요.
아주 건장하고 인상좋은 20대 초반의 청년이었습니다.
"안과진료 보러 왔습니다."
"아... 네. 씻질 못하셔서 몸을 닦아드리고 있었거든요. 이제 됐습니다. 진료 봐 주세요."
건장한 청년은 환자분 몸을 닦아드리는 걸 중단하고는
환자분을 자신의 건장한 팔로 들어 조심스럽게 똑바로 다시 눕혀드리더군요.
환자분은 2주 전과 똑같이 더 심해지시지도, 더 나아지시지도 않은 그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괜찮으시네요. 전처럼 계속 눈물 연고와 항생제 연고 점안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뇌사자 환자분을 간호한다는 건 엄청난 인내심이 요구됩니다.
대답없는 메아리이기 때문이죠.
간병하는 사람은 벽을 보고 얘기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따뜻한 손길로 쓰다듬어 드려도 반응이 없습니다.
생명은 유지되고 있지만 기초적인 대사만 이뤄지고 있을 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특별히 부여하신 고차원적인 기능은 모두 상실한 상태.... 그게 뇌사이기 때문이죠.
환자분을 진료하고 점심 식사를 하러 원내 식당을 가니 마침 집중치료실 수간호사님이 식사하고 계시더군요.
"수간호사님, 왜 집중치료실에 2주마다 안과 협의진료 요청하는 뇌사자 환자분 있잖아요. 오늘은 진료하러 갔더니 아드님이신가? 몸을 닦아드리고 있데요."
"그 아가 진짜 효자 아입니까. 그런 아 없지예."
"안 그래도 신경외과 과장님도 그 환자분 아들 효자라고 잘 봐주라고 하시더라구요."
"그 환자가 참 기구합니더. 거제도에서 사람 좋고 사업 잘 하기로 유명했던 분이지예. 아들 둘에 딸
하나 놓고 주변에서 부러움도 많이 받았는데 사업 확장한다고 가족들은 거제도에 놔두고 혼자 강
원도에 올라갔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딴 살림을 차렸더구만요."
'.....'
"들리는 소문으론 강원도에서 혼자 살 때 밥 해주던 젊은 아주마이라고 하던데... 암튼 그 아주마
이랑 바람이 나가지고 딴 살림 차리는 바람에 거제도 식구들은 난리가 났지예. 그 때 큰 아가 고등
학생이었고, 중간 딸 아가 중학생, 막내 아가 초등학생이었는데 그 아 들 다 내삐린 거지예.... 그리
곤 사업까지 부도나서 거제도에 있던 아 엄마랑 아 들이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고생이 이만저만 아
니였어예."
"돈 없어서 아 들 다 학교 그만두고 생활전선으로 바로 뛰어들었다 아입니꺼. 그래도 아 들은 성실
해서 못 먹고 못 입어도 아르바이트로 돈 벌어서 지내들 버린 아버지 빚 진거 갚아나가고 아 엄마
우울증 생겨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거 치료비 대고... 오늘 과장님이 보신 분이 막내아들이지
예. 지금 차정비소에서 일하는데 친절하고 일 잘한다고 소문났어예."
"아... 그랬군요."
"하늘도 고약하다 생각했는지 아 들 내삐리고 바람펴서 딴 살림 차린 그 양반이 갑자기 뇌출혈로
강원도에서 쓰러진기라예. 딴 살림 차리고 한 번도 연락 없던 그 양반이 쓰러지고 나니 병원에서
가족들한테 연락이 온 거지예. 딴 살림 차린 우라질 년은 남자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병원에 맡겨뿌
고 어디론가 내삐리고... 그 양반이 지 가족한테 한 그대로 벌 받은기라예. 아 엄마는 절대 그 짐승
같은 인간 얼굴 안 볼끼라고 극구 반대했지만, 착한 막내 아가 그래도 지 아부지라고 강원도에서
수술받고 뇌사자가 된 걸 불쌍하다고 거제도로 모시고 온 거지예. 아 엄마랑, 큰 아랑 둘째 아는 한
번도 병원에 온 적 없어예. 막내 아만 3일에 한 번씩 와서 얼굴하고 몸 닦아준다 아입니까. 병원비
도 그 아가 다 부담하고 있어예."
자초지종을 다 들었지만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본인이 초등학생일 때 자식들과 조강지처 다 버리고 바람난 사람을
그래도 아버지라고 생각해서 간병하고 돌볼 수 있을까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뇌사자의 간병은 일반 환자의 몇 배는 더 힘듭니다.
일반 환자는 말귀는 알아듣고, 힘들게하는 간병에 고마워라도 하지 않습니까.
말귀도 못 알아듣고, 행동도 전혀 못 하고, 속된 말로 식충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뇌사자를
저리도 지극 정성으로 돌볼 수 있다니요.
따뜻한 집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공부만 하면 될 어린 나이에
난데없이 생활전선으로 내몰려
사회의 냉대 속에서 한 푼 두 푼 모은 귀한 돈을
얼굴도 가물가물한 비정한 아버지란 사람의 빚 갚는 데 쓰는 걸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눈만 뜨고 있지
죽은 것과 다름 없는 뇌사자의 병원비까지 대며
바쁜 와중에 병원으로 찾아와 내 몸처럼 닦아줄 수 있을까요.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더군요.
전 정말 부족할 것 없이 부모님한테 전적으로 받기만 했는데
솔직히 부모님께서 저리 되시면 저렇게까지 간호할 자신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그 뒤론 그 환자분의 진료를 하러 갈 때면
저도 모르게 더 잘 봐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앞서더군요.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이상적으로야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믿어왔던 제게
이제 20대 초반의 청년의 행동은 귀감을 넘어서 정말 큰 충격이었으니까요.
1달 쯤 지났을까.
여느 때처럼 또 진료를 보러 가니
이번에도 그 막내아들이 뇌사자인 아버지를 열심히 닦아드리고 있더군요.
지난 번에 한 번 본 안면이 있다고 저를 보자 웃으면서
'안과 진료 보러 오셨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라고 하더군요.
오히려 제가
'아닙니다. 먼저 마저 다 닦아드리세요. 전 조금 있다가 와도 됩니다. ' 라고 얘기하곤
한 10분 정도 진료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다시 집중치료실로 왔습니다.
다시 가서 보니 환자분 몸을 다 닦아드리곤
환자 침대 옆 의자에 앉아 환자분 손을 잡고 기도를 하고 있더군요.
아. 그 모습이 얼마나 감동이 되든지.
정말 그 순간 울컥해서 저도 모르게 계속 그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고 뒤돌아서 있어야했습니다.
기도가 끝나서 일어나는 청년의 눈은 촉촉히 젖어 있었습니다.
저 역시 젖어 있기는 마찬가지였구요.
'크리스챤이셨군요.'
'네.'
'정말 대단하세요.... 뇌사자 간호는 정말 어려운 일인데... 이렇게 성실하게 간호하시는 분 처음 뵈었습니다.'
'..... 아버지시니까요.'
청년은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그의 웃음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비록 자신을 버렸지만
자신은 그런 아버지를 용서했노라고 말입니다.
'아버지 눈은 괜찮으신가요?'
'아... 네... 괜찮으세요.'
그의 환한 웃음에 당황한 저는 말을 더듬고 말았습니다.
비정한 아버지를 성심으로 간호하고
눈물로 기도하고...
그 청년이 어찌나 큰 거인으로 보이던지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남편의 바람 사실을 알고 절망하셨던 환자분의 부인, 즉 청년의 어머니도 독실한 크리스챤이셨습니다.
남편이 자신과 자녀를 버렸을 땐 믿음 생활을 접으셨지만
자식들의 꾸준한 전도로 다시금 신앙을 회복하셔서 권사직분까지 받으셨더군요.
남편은 죽었다고 치부하고
신앙에 의지하여 사셨던 권사님께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져 강원도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은
아물었다고 생각했던 마음의 상처를 다시금 벌려놓았지요.
권사님은 뇌사자가 되어 돌아온 남편을 저주하셨답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남편 없이 한창 클 나이의 자식 셋을 여자 혼자서 얼마나 힘들게 키우셨겠습니까.
자식들은 내팽겨놓은채 젊은 아낙과 바람핀 남편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으셨겠습니까.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제가 권사님이었어도 저주했을 겁니다.
하지만 나이도 가장 어린 막내아들이
그런 아버지를 용서하고 간병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시면서
권사님 역시 결국에는 그 남편을 용서하셨습니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집중치료실에서 진료실로 전화가 오더군요.
집중치료실 당직 간호사였습니다.
다짜고짜 제게
'과장님, 뇌사자도 눈물 흘릴 수 있어요?' 라며 물어보길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얘기를 하는 거였습니다.
그렇게도 절대로 남편 얼굴은 안 보시겠다던 권사님이
아버지를 간병해오던 막내아들과 함께 저녁 늦게 문병을 오셨다더군요.
식물인간이 되어 돌아온 남편 얼굴을 보시곤
'내가 다시는 당신 얼굴 보지 않겠다 마음 먹었는데 자식 버린 아버지라도 아버지는 아버지라며 간
병하는 막내 땜에 내 왔어요. 내 당신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려했는데.... 그래, 아내 자식 버리고 바
람피니 좋습디까..... 이제 용서할테니 그만 편히 가세요....'
라고 말씀하시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자
뇌사자인 남편 눈에도 눈물이 나더랍니다.
그 모습에 막내아들도 울고 집중치료실의 당직 간호사들까지 모두 울었다고 하더군요.
그 얘길 듣곤 처음엔 믿지 않았습니다.
뇌사자는 인지기능이 없으므로 감정의 눈물을 흘릴 수 없으니까요.
잘못 본 거라고 제가 얘기를 해도 전화건 간호사가 진짜라며 노발대발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 2주 쯤 지났을까
진료를 마칠 저녁 무렵에
뇌사자의 막내아들이 음료수셋트를 들고 진료실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집중치료실 환자분 아드님 아니신가요?'
'네... 아버지 진료 열심히 해 주셔서 그간 감사했습니다. '
'뭘요... 당연히 제가 해야될 일인걸요.'
'실은 1주 전에 아버지께서 임종하셨습니다. '
'아... 그러셨군요.'
'다행히 아버지 임종하시기 전에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용서하셔서 제가 마음의 짐을 덜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집중치료실로 문병 오셨단 말씀은 간호사들한테 들었습니다.'
'네... 근데 선생님... 뇌사자도 눈물을 흘릴 수 있나요?'
'음... 저도 간호사들한테 그 얘긴 듣긴 했는데 현실적으론 뇌사하시게 되면 인지 능력이 없어진다고 보기 때문에 감정적인 눈물은 나올 수 없습니다. '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용서'하신다며 하염없이 우시는데 제가 아버지를 간병할 때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눈물을 아버지께서 흘리셔서... '
청년은 순간 북받친 감정 때문인지 말을 멈췄습니다.
'아버지는 교회 안수 집사님이셨죠. 무슨 연유로 아버지께서 유혹에 넘어가셔서 바람을 피시고 우
리들을 버리셨는지 알 수 없지만... 아버지께서 이리 되신건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치셨기 때문이라
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그런 범죄를 하신 걸 용납하시지 않으셨던거죠. 저도 처음에 난데
없이 아버지가 강원도 병원에 뇌사자로 입원해계신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왜 이제서야, 이런 꼴로
우리한테 나타나는 걸까 하며 원망했습니다. '그런 사람 모른다고 난 그 사람과 아무런 관계가 없
다'고 하려는 제게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
거든 너는 용서하라(누가복음 17:4)'란 말씀이 제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 겁니다. 할 수 없이 강원
도로 저 혼자 아버지를 보러 올라갔습니다. 병실에 혼자 덩그러니 누워계신 아버지를 보자 눈물부
터 쏟아지는 겁니다. 어린 시절 그리도 절 업어주시고 안아주셨던 아버지가 그렇게 혼자 쓸쓸히 누
워계신 걸 보니 눈물만 쏟아지는 겁니다... '
'제가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우릴 버리셨을 때 전 아버지를 찾으면 '도대체 우릴 왜 버린 거냐고,
이렇게 할 거면 왜 우릴 낳은 거냐고' 꼭 물어보겠다고 다짐을 했었습니다. 근데 아버지는 대답을
하실 수도 없는 상태로 제 앞에 나타나신 겁니다. 사실 아버지를 보기 전까진 만나면 아버지를 가
만두지 않겠다고 벼르고 별렀는데 그런 몰골의 아버지를 보니... '
'어머니게서 아버지를 용서하신다고 하신 뒤 아버지는 1주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뇌사자
라 아무 것도 알 수 없다고 하셨지만... 어머니께서 용서하신다는 말씀에 눈물을 흘리시고, 그런지
1주 만에 돌아가신 걸 보면... 어쩌면 아버지께서도 어머니께 용서를 구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눈을
감으실 수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청년의 이야길 듣고 함께 진료가 끝난 진료실에서 둘이 같이 무릎꿇고 기도드렸던 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뇌사자가 인지 기능이 없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고목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이
뇌사자에게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그 분이 보여주셨기에
뇌사자분에게 희망이 없다던 제 생각은 바뀌었습니다.
환자를 통해 또 큰 가르침을 주신거죠.
'용서'라는 책을 보면
진정한 '용서'는 남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용서' 라고 합니다.
귀중한 경험을 통해서 진정한 '용서' 가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아울러 '용서'도 중요하지만 '용서받을 일' 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