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산의 땅,네팔에서 보름동안..
지난해(2008년) 11월 보름동안 네팔에서 지내다 왔다.안나푸르나 생츄어리트래킹코스와
포카라와 카트만두에서의 몇일간이었다.그런데,약사회회보에 올릴 글을 써달란다.난감하다.
할말이라고는 ‘직접 가서 보세요.좋습니다.’. 이게 다인데 말이다.그래도 어쩌겠나,까라면 까야지.글을 읽을분들께는 미안한맘 가득하지만,네팔을,안나푸르나를 교감하고 온 사람으로서 그 느낌을 조금이라도 전달하라는 신의 명령이라 생각하며 시작해보자.
“물처럼 생명평화학교 히말라야 영성순례”라는 이름의 이 여행을 떠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2008년 단오날 아직 젊은 형수가 갑자기 돌아가셨다.열흘간의 단식으로 내 나름, 형수를 보내는 아픔을 달래며 지내던차에 울산 친구놈의 전화-“내가 약국 봐줄터이니,한달정도 여행이나 하고온나.” 고마웠다.진짜로 떠나고 싶은 맘은 가득했다.“그래,니가 봐 준다면 안심하고 다녀오마.날짜 잡으면 연락할게.”말은 그리했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맘만 고맙게받았다고 생각했다.그런데,한달에 한번씩 모여 맘을 나누는 ‘물처럼 생명평화학교’의 如流 이병철선생님께서 히말라야로 순례를 떠난다고 단원을 모집하신단다.‘옳거니 이거야말로 내가 떠나야 할 순례로구나’바로 그 자리에서 결정을 해버렸다.사실 나는 창원에서 장유까지 넘어가는 약국-대암산-용지봉-집까지 걸어가는 4시간정도의 등산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라,네팔을 꿈꿔본적조차 없었지만,평소 존경하던 선생님께서 마련한 이번 순례는 나를 위한,나에게 베풀어주신 신의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꼭 가야만할 것 같아서 그렇게 결정했다.네팔에 대한 사전 지식도 전무하고,용품도 있을리없고,더우기 여권조차 없었던 나에게는 파격적인 결정이었다.죽음과 친구와 스승의 존재가 이끈 결정이라고해야겠다.
준비과정에서 제일 힘든건 역시 관리약사 구하는 거였다.친구가 봐 주겠다는 말이 없었다면 결단하지 못했으리라.그러나,울산에 있는 친구를 불러 내리기엔 내 자존심이 용납지 않앗다.내힘으로 관리약사를 구해서 친구에게 빚을 지지않으리라는 맘으로 관리약사를 구하였으나 두달여를 고생해서 겨우 친구약사를 찿아내었다.그래 이제야말로 확실히 떠나는 거로구나,이런 맘이 들었다.그리 시간을 보내다 갑자기 내일 떠난다생각하니,머리에 가득차는 염려들,옷은?음식은?언어는?집은?식구들은?출발하루전에 갑자기 짐을 풀었다 꾸렸다를 몇 번 하면서 불안해했다.
창원터미널에서 밤열한시에 출발한 인천공항행버스는 시간 맞춰도착했다.드디어 시작이군.공항로비에 모인 우리일행은 10대에서 60대까지 그야말로 모든 세대에서 모인 8명의 순례단이었다.5명은 생전처음보는 초면,걱정이 될 만도한 인원 구성이었지만,그런 생각은 털끝만큼도 들지않았다.오히려 연약해 보이는 순례단이 더 맘 편안했다고나할까. 10시쯤에 출발한 비행기는 카트만두에14시쯤 도착했다(7시간비행).현지에서 소풍이라는 식당을 운영하는 김홍성시인께서 마중나오셨다.선생님과는 형제처럼 지내시는 사이시란다.그런데 공항에서 팀닥터겸 회계담당이었던 나는,첫번째 실수를 저지른다.포카라로 이동할 대절버스비를 지불할 작정으로 공항에서 적지않은 돈을 환전했는데 아주 비싸게 사버린 것이다.이런 젠장..(공항에서는 환전을 하자마시라!)기념사진을 찍고 포카라로 출발.사실 여기서 하루 쉬는걸로 들었는데 바로 이동한다니,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여유롭게 움직이고 싶었기때문.그러나,지난뒤에 돌아보니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카트만두는 너무 번잡하고 시끄럽고 매연이 심했거던.6시간 정도 버스로 이동해 밤 9시쯤 도착했다.재미난건 버스가 중간 중간에 고장이 나서 섰는데,운전사1명과 2명의 보조가 큰 짱돌을 가져와 버스 중간을 열어 꽝꽝 때려주면 시동이 다시 걸려서가는게 아닌가?그렇게 도착한 우리는 보다 깨끗하고 싼 방을 얻기위해 몇곳과 흥정한후 숙소를 정하고 짐을 풀었다.
두 번째날은 안나푸르나 입산허가증을받으러 갔다.비용을 아끼기위해 개인여행으로 허가증을 받는데(가이드와 함께 단체로 받으면 비용이 더 비싸진다나..)제대로 알지 못한 나는 코스를 잘 못 표기해서 다시 불려나갔다.안나푸르나 남쪽 베이스캠프까지 갔다오는 안나푸르나 생츄어리를 체크해야하는데 두배나 더 긴코스인 안나푸르나 라운드코스를 체크했다고..(사실 라운드 코스를 돌았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이런 생각이 지금 든다.)고소에 적응하느라 하루를 여유롭게 보냈다.그사이 Mr Kajiman이라는 가이드와 4명의 포터(짐꾼)을 고용했다.포카라의 여유로움이 딱 내 스타일이다.호수에서보는 설산들도 장관이지만.
셋째날.드디어 산행시작이다.칸데(1770m)라는 곳을 통하여 안나푸르나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한국에서 준비해간 볼펜과 사탕.여기 산마을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한시반쯤 숙소에 도착했다.롯지라는 숙소에서의 첫날이다.준비해간 침낭을 깔고 누울 침상만 댕그라니 있는 숙소였지만 마치 특급호텔처럼 맘이 편안하다.멀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서는 10대로 보이는 애들이 모여 앰프를 틀고 춤추고 놀고 있다.네팔 사람들도 춤추고 노는 걸 좋아하나보다.깨끗한 하늘엔 낮달이 덩그렇고,시간이 지나 생긴 노을은 안나푸르나 봉우리들을 비추고... 황홀하다고 해야겠다.
넷째날.나의 아침은 4시나 5시사이에 시작된다.명상과 기도를 하고 있으면,선생님께서 아침미팅을 알리고,그러면 일행이 모여서 그날의 일정과 그날 집중적으로 생각해야할 과제를 받는다.짐꾸리기.그리고,가벼운 식사,걷기,점심식사,걷기 ,숙소도착,짐풀기,저녁식사,저녁미팅(느낌 나누기,명상),취침.나는 자기전에 독서나 명상,기도를 하다가 잔다.아주 단순한 일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존재가 더욱 풍요로와진 느낌을 받는다.평소에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생활의 모습이라고 할 수있다.이 날은 뉴브리지라는 곳에 숙소를 정했는데,이 마을 입구의 도로가 파손되어 트래커들에게 기부를 받는단다.그런데 그냥 돈만 받기 그러니까 같이 한판 춤추고 노래하고,기부하는 걸로이야기가 되었다.저녁식사후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작은북처럼 생긴 타악기로 장단을 맞추며 춤을 추고,노래를 부른다.현지 사람들이 꽃목걸이도 걸어주고 춤과 노래공연을 하는데,나의 카고백을 지고가던 라쥬라는 친구의 네팔춤이 환상이다.유도선수처럼 목없이 생긴 모습에 무뚝뚝하던 그에게 이런 엄청난 모습이 숨겨져 있었구나.대충 따라 흉내내보는 나도 무척 즐겁다.
다섯째날.촘롱을 거쳐 시누아,뱀부(2335m)에 도착.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힘든 구간이었지만,천천히 움직여서 힘들진 않았다.멀리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히말라야의 신성함을 보존하기위해 등반가가 정상 등반을 포기한뒤 등반허가가 나오지 않는다는 신성한 산이다.물고기 꼬리라는 뜻의 마차푸차레.
일곱째날.어제 데우랄리를 거쳐 드디어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3700m)에 도착했다.운해가 발아래서 노는게 아니라 저 멀리 아래서 썰물과 밀물처럼 왔다갔다하다가 어느새 내몸을 감싸안는다.마차푸차레를 배경으로 떠오르는 보름달은 차라리 말을 잃게한다.그 보름달아래에서 여류선생님께서는 종손의 의무를 다하고자 조상제사를 모신다.선생님께 많은 빚을 진 느낌이다.
여덟째날.우리를 위해 동행해 주시던 김홍성시인께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싶다고 홀로 내려가시고,우리는 드디어 우리가 오고자 했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에 도착이다.신의 영역을 침범한 탓인지 몸의 컨디션이 무척 좋지않다.어지럽고 춥고,기운없고,눕고 싶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물을 준비하고,제문을 적고,조촐하니 우리가 안나푸르나에 도착했음을 하늘에 고하는 제사를 올렸다.외국인들은 신기한 듯 사진을 찍고 쳐다본다.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여기까지 적겠다.행복을 느낄 틈도 없이 행복했다고 말 할 수 있겠다.누군가 내글에 feel 받아서 뜨고 싶은 생각이 조금이라도 든다면,염려일랑 던져 버리고 떠나시라 말하리라.모든 것은 이미 충분히 준비되어 있으니 말이다.산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노라면 신의 손이 우리의 몸과 맘을,우리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몽땅 다 고쳐놓으리라.아니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 놓으리라.
첫댓글 이승에서 놓친 꼭 한 번의 기회... 자네는 복되다.. 두손모음.
관중님의 기쁨이 전해 집니다.. 고맙습니다.
ggg,무슨 21세기에 무성영화를 털어 놓은것 처럼 어색하네요.ㅎㅎ 기쁨이 전해졌다면......감!사!,,,.....가서 보세여.....실은 부끄러워서 1년이나 지났지만,,,,,무릎쓰고,,,,ㅎㅎㅎ,맘같아서는 다 모시고 가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