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건(葛巾); 갈색 머릿수건
'갈색'이란 갈(葛), 즉 칡의 색을 말합니다.
칡의 섬유로 베를 짠 것이 갈포(葛布)이고
그 천으로 만든 머릿띠가 바로 갈건입니다.
카페지기는 다소 생뚱하지만 강화화승총 동호인회와
갈색 머릿수건에 얽힌 '의미심장한' 이야기 한 꼭지를
회원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노잼이더라도,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돳.

▲ 칡(Pueraria lobata Ohwi; 사진왼쪽)은 콩과에 속하는 다년생 만초(蔓草; 덩굴풀)로
우리나라 산속 어디건 지천으로 널린 '토종 식물'입니다. 칡넝쿨 길이는 약 10m,
줄기가 주변의 나무 등을 칭칭 감고 올라가서 어울렁더울렁 어울려 살아갑니다.
칡뿌리(葛根; 사진 오른쪽)는 2~3m로 자라고 지름이 20~30㎝나 되기도 합니다.
'칡'이란 말은 우리의 역사와 참 친근한 토속 낱말입니다.
쌀이 귀했던 시절, 가뭄이 들면 온 들판의 곡식이 타들어 갔지만...
산 속에만 가면 그 어디서건 칡넝쿨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더랬습니다.
칡 뿌리는, 아쉬운대로 훌륭한 구휼(救恤)식량이었지요.
배고팠던 시절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칡뿌리를 질겅질겅 씹었고
칡뿌리를 갈아서 앙금을 앉힌 가루로 떡을 해 먹곤 했습니다.
그래서 '칡이란 친구'는 우리 역사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고려 말, 나라의 명운이 풍전등화 같을 때 요동정벌을 보낸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역성혁명(쿠데타)을 일으켜 고려 왕을
쫒아내고 새나라 '조선'을 세웠드랬지요...
그때 태조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충직한 고려신하 정몽주에게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라며
쿠데타에 동조하여 편히 살아 갈 것을 넌즈시 떠 봤지만 - 정몽주는
"이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도... 안 돼!" 단호히 거절합니다.
ㅎㅎㅎ
카페지기의 소설 '총의 울음'에도 칡뿌리가 등장합니다.
만주 마적에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소년 정복길(鄭福吉)이,
양아버지 강계포수를 따라 첩첩산중 통나무집으로 향할 때...
칡뿌리를 캐어 '갈증을 달래는' 장면이 바로 그것입니다.
백두산 범포수 정복길은 동해안 영일만의 어촌마을 오천(烏川)이
고향으로, 고려 충신 정몽주 선생의 후손으로 설정되었드랬지요.
(약간은 억지스러울 수도 있겠지요만 ㅋㅋ
'총의 울음'과 백두산 범포수, 우리 동호인회와
강화화승총을 이어주는 질긴 인연의 끈이 바로
칡일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입지욧.)

▲ 갈색 생칡즙. 허약한 속을 다스리는 한약제로 쓰입니다.
현대인의 다이어트 건강식으로도 각광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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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포(葛布). 칡넝쿨과 뿌리의 섬유질을 씨줄, 날줄 삼아
베를 짰습니다. 갈포는 천연 고급벽지로도 많이 쓰이며
'건강'을 중시하는 현대인들이 옷을 지을 때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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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늦봄, 강화화승총 복원의
최종 조립과정을 마치면서
집행부는 제1차 발화시험(화약장전 점화테스트)을
본격 논의하게 됐습니다.
날짜(6.6)와 장소(인천근교 S포구)가
정해졌고... 카페지기는 그 준비의 하나로
1회분 화약을 수납하는 죽관통(竹管筒) 탄띠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천을 떠다가 일일이 바느질로 복원해야 하는 작업이어서
카페지기는 유사랑 운영위원과 함께 동인천역 뒷쪽 포목주단
상가를 뒤져 적당한 '갈색천' 을 찾았고 예닐곱 마를 떴습니다.
(ㅎㅎ 색깔만 '갈포'였지, 칡 섬유로 짠 천은 물론 아니었죠.)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카페지기의 머리를 스쳤습니다.
"지금부터는 우리 동호인 회원들이 복원된 강화화승총으로
사격을 할 기회가 많을 텐데... 우리의 정체성을 표현할 어떤
증표(證票)나 표시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불현듯 '머리를 짜내' 생각해낸 것이 갈건(葛巾)이었고
우선은 집행부 몇사람이 동여 맬 머릿수건 만이라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 짜잔 - 강화화승총 동호인회의 상징 갈건(葛巾)! 이거 완전 멋지지 않습니까?
흉악한 도적떼 홍건적(紅巾賊)은 붉은 머릿띠를 매었고요,
갈색 머릿수건 갈건(葛巾)을 맸던 사람은 참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입신양명의 벼슬길을 사양하고 고향 땅에 정착, 주경야독하며 묵묵히
가족을 부양한 은사(隱士)나 처사(處士)가 바로 그들이지요.
갈건을 머리에 동여 맨 남정네는
자신이 건사하는 아내와 자식을 누구보다 사랑했으며,
나라 지키는 일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리와 승냥이 같은 외적이 이 땅을 침노할 때면,
갈건의 남정네들이 맨 먼저 '의병'으로 떨치고 나서서
"한 목숨 기꺼이, 이 나라에 바쳤다"고 합니다.
이제부터 - 동호인회가 나서서
우리가 복원한 강화화승총을 발포해야 한다면,
우리의 상징 '갈건'도 언제나 함께 할 것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

▲ 6월6일 발화시험. ▲ 7월23일 영점사격.
갈건을 처음 맨 호국 동호인회원 갈건을 맨 동호인회 회장

▲ 7월23일 영점사격
유사랑 운영위원(왼쪽)
손상익 간사(오른쪽)
- 카페지기.
첫댓글 ㅋㅋㅋ 멋집니다.
일본에서도 구휼작물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