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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
50년대 하동의 걸박수 정수!.
초가삼간, 자갈길 신장로, 소달구지, 석양의 기러기, 황포돛대 하동포구,
하동풍경에 한 폭의 그림자 같은 영상으로 옛 추억을 더듬어 볼 때 나는 항상 두 사람이 생각난다.
잘난 유명인사? 어디 한 두 사람 이겠나만 유독 질박한 인생길에 처한 이 두 사람이 나의 뇌리에 잊혀 지지 않고 이들 인생의 처음과 마지막이 궁금하기도 하여 안개 속 같은 기억을 회고하고 생각나는 되로 몇 자 적어 본다.
한사람은 거지 중에 산거지인 걸박수 ‘정수’이고, 또 한사람은 항상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면서 거리를 조용하게 배회하는 잘 차려입은 부유한 집안의 정신이상자 강씨이다.
50년대를 살아온 하동사람이면 이 두 사람을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필자도 유년시절에 이 두 사람이 한길에서 마주치는 장면을 몇 번이고 본 적이 있으며 행색이 정 반대인 두 사람의 교차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두 사람 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이목구비는 나무랄 데 없는 걸출한 하동사람이다.
후자의 정신이상자는 공부를 너무하다 머리가 돌아서 저렇게 손가락으로 허공에다 글만 쓰고 다닌다고 들었으며 우리친구 아무개의 삼춘이라고 기억 하고 있다.
연전에 그 친구를 만나 그 후의 삼촌이야기를 한번 들어 봤으면 했는데 혹시나 오해가 될까봐서 얼른 말을 주어 담았었다.
50년대만 하더라도 인권이나 민주주의나 도덕과 관습까지도 혼란스러웠던 격동기의 시대라서 이 두 사람의 인생사를 채 쓸듯이 추려 보면 모진 시대상을 소설같이 조명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박경리의 ‘토지’도 이러한 발단에서 불혹의 대작이 탄생 됐으리라....
여기서 친구의 삼촌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논하기로 하고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 할 하동의 남한 최고의 걸박수 ‘정수’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기술해 보기로 한다.
‘정수’는 순박하고 정직한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만약 그가 성질이 고약하고 악한 사람이었다면 아무리 정신이 돌아도 그의 행동에서 사악한 기동이 보였을 것이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모난 행동 없이, 밥 구걸 하는 거 마냥 걷기만 하는 거 양지바른 곳에 몸을 쉬게 하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다.
그가 하는 말이라곤 “밥 좀 주이소” 외에는 들어 본 적이 없으며 그 말도 나중에는 말없이 가만히 있기만 하였고 사람들은 으레 알아서 밥을 퍼 주었다. 그의 나쁜 행동이라면 밥 도적질 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과오였다.
옛 우리 집은 방문을 열면 바로 부엌이고 부엌과 현관 입구가 같았는데 한밤중 인기척에 방문을 열어 보니 부엌 선반 앞에 시커먼 그림자가 귀신같이 서 있었고 우리 어머이가 놀라서 혼절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정수가 바구니에 있는 볼쌀을 훔쳐 먹고 있던 장면이었다.
그때는 원한에 사무친 귀신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나도 정수귀신을 보고 바들바들 떨었다.
멀쩡한 사람도 사흘 굶으면 도적질 한다는데 밥 도독 거지를 탓 할 수 있으랴. 어찌 생사람 욕하듯 할 수 있겠나.
그는 아침 밥 때면 어김없이 밥 동냥을 하는데 어떤 날은 새벽같이 들어오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이놈아” “아직 볼쌀도 안 안쳤다” 하고 호통을 받고 쫏겨 나기도 했습니다.
그후 우리 집에는 ‘와크’라는 성질이 제법 고약한 잡견을 한 마리 키웠는데 이놈은 정수만 보면 무섭게 째려보고 한번은 정수 궁둥이를 물려고 했으니 정수의 발걸음이 엄청 빨랐고 그렇게 민첩하게 움직이는 정수를 처음 딱 한번 보았다. 그 일로 자주 찾던 정수의 방문이 뜸 해 졌고 한동안 보지 못했는데 어느 날 대문 밖에서 전진, 후진을 계속하면서 서성거리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았고 지금도 눈에 선 하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와크’는 목줄을 달아 묶어 놓았는데도 그래도 정수를 째려보는 눈빛이 더더욱 예사롭지가 않았다. 정수는 마당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고 우리가 대문까지 나가서 밥을 주곤 하였다.
그는 늘 배가 고팠나 보다. 그 당시는 한사람 입을 줄이려고 장성하면 머슴으로 식모로 집을 나가는 일 허다했으니 거지 입에 배부를 일이 만구에 있을 수 있겠나!. 먹어도 먹어도 배 골은 시절이었으니 정수인들 다르랴...
배를 채우기 위한 그의 행보는 몽유병자 같았고 하동읍내에서 그리 멀리 벋어나지 않았다.
정수가 점심때만 되면 즐겨 찾는 곳이 중국집 ‘회영루’이다.
점심때, ‘회영루’주방에서 풍기는 짬뽕냄새, 점심손님을 맞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주방요리 냄새, 정수는 일찌감치 회영루 큰 길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처음에는 먼 거리에서 앞으로 전진 뒤로 돌고 또 앞으로를 계속하다 그 반경이 회영루 천 가리개 앞에서 머뭇거리게 될 쯤이면 손님들도 하나 둘 회영루에 들르고 입구 앞에 있는 정수가 방해가 되었다.
참다못한 짱개 아저씨의 어눌한 한국말이 뛰어 나온다.
“정수야, 제발 가줘해, 아직 마시도 안했다 해”
정수는 가는 듯 했지만 이내 되돌아 왔으며 깡통에 짬뽕국물이 한 사발 받고서야 어디론가 발길을 옮긴다.
회영루 바로 앞에 금조김상 포목점이 있었고 금조김상 아들인 충인이가 점방을 보면서 정수의 앞으로 가 뒤로 가를 주판알로 세고 있었으니 그도 정수에 대한 회상이 남다를 것이다.
정수는 그의 전 재산을 무겁게 지니고 다닌다. 가온 데를 새끼로 묶은 가방과 이불 같은 것을 말아 묶은 짐 꾸러미와 밥동냥 캉통이 그의 전 재산이었고 그것을 거의 끌다시피 하고 지니고 다녔다.
언젠가는 개초뱅이 아이들이 정수 보따리를 훔치는 시늉 발로 차는 시늉을 하면 안절부절 못하고 흥분하는 것을 보고 아이들은 그것이 재미있는지 그런 장난을 계속하면서 정수를 괴롭혔다. 지나가든 아지매가 보다 못해 애들을 나무란다.
“야 이놈의 새끼들아, 말 못하는 짐승을 왜 그리 쌋 노, 새빠저 죽을 새끼들 집에 가서 공부나 해라”
정수는 회영루 짬뽕향기 보다도 더 기찬 냄새를 알고 있으니 그것은 신삼우 도가의 고두밥 냄새였다. 고두밥 냄새는 회영루 짬뽕 냄새와는 격이 달랐다. 한 달에 한 두어번 밥을 쪄서 멍석에 널어놓고 말릴 때 사방팔방으로 풍기는 고스레한 고두밥 냄새, 그때는 도가 총무가 항시 지킨다. 총무는 멍석의 고두밥을 다시 담을 때까지 한시도 그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그래도 동네사람은 총무와 인사 주고받으면서 한오꼼 입맛보고 아이들은 총무 뒷짐 질 때 잽싸게 한오꼼 잽싸게 입을 다시곤 하였다. 나도 그렇게 하여 고두밥 맛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보더랍고 고소한 맛이냐말로 올갯쌀은 저만가라 할 정도였다. 또 먹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 기회를 보곤 하였다.
오직 밥 동냥이 생업인 정수는 얼마나 먹고 싶었겠나!. 그러나 정수는 주위를 왔다 갔다 할 뿐이다. 저만치 가다가 다시 돌아오고 스쳐 지나 가는듯하다 다시 돌아오고 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정수는 동냥을 해도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정수가 고두밥을 집어 먹으면 금방 발각이 나고 개 쫒기 듯이 쫒겨 나게 될 것이다.
그는 한나절 내내 앞으로 가 뒤로가 만 반복했지 고두밥 맛을 본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그러던 어느날 깊은 밤, 도가에서 벌어진 일이였다는데 입에서 입으로 여담으로 전하여진 이야기 인즉, 도가 안에 고두밥을 훔쳐 먹는 시커먼 그림자가 있었으니 바로 정수였다.
고스레한 고두밥 냄새에 정신이 나가 고두밥 도둑이 된 것이다.
그기가 어디라고, 탄로 난 정수는 빗자루 몽둥이로 사정없이 맞고 깜박 제정신이 돌아 온 정수가 “너는 나를 그러면 안돼” 하면서 도망쳤다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러면 안 되는 그와 정수는 어떠한 내력이 있었단 말인가.
풍문에 정수가 한때 쌀 배급쟁이를 하였다 한다. 한치도 그슬음 없는 꼼꼼함과 정직성이 오히려 욕을 먹는 일이 되었고 사람들이 욕하기를 “비러먹을 새끼”, “비러먹을 새끼” 하고 욕을 해서 저렇게 비러 먹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가 머리가 돌아 상거지가 되었다면 일제시대에 쌀배급 부역으로 사람들의 원성을 살만도 하지 않나 하는 추리도 가능하다 하겠다.
또 정수가 욕을 얻어먹는 성 추행사건이 있어 욕만 먹은 것만 아니고 빨래방망이로 도리질 까지 당한 사건이 있었다.
생기멀큰새미에서 여자 손목 잡아 그 여자가 기겁하였다는 소문이 퍼지고 사람들은 “저놈이 여자 손목을 잡았데” “저넘이” “저넘이” 하고 손가락질 하였다. 그것이 사실일리 없지만 그렇다면 방망이 도리질을 당하더라도 정수가 잠시나마 제정신으로 온 것이 확실하니 정수도 인간이다 하고 외쳐보고 싶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한동안 정수가 보이지 않았다. 잔치집이나 초상집의 귀퉁이에 으레 정수가 있어야 하는데 정수는 보이지 않았다. 정수의 모습이 있어야 할 자리에 그가 없다면 죽었다는 거나 다름이 없다. 대관절 정수는 죽었나 살았나.
그때 정수는 구례에 있었다. 정수한테 구례는 천리 타향이다. 제 정신이라면 얼마나 고향이 그리웠겠나!. 허나 얼마 안 있어 정수를 들먹일 쯤 정수는 고향으로 돌아 왔다.
하동 유지(?)들이 장난 끼 같은 모의를 하여 냄새나는 물건 하나 얼른 치워 버리듯이 곡물이 풍족한 구례로 도락꾸에 실어 몰래 버리고 온 것이다.
영리한 구례사람이 어찌 이 주도를 모르랴. 구례에도 정수를 아는 사람이 많았다.
“옴매 정수가 여기까지 왠일이여”
“오라 알지로, 하동의 옹졸한 촌놈들이 지 백성을 이래 산송장으로 망그라 놓고 죽은 개 버리듯이 갖다 버리는 구먼 이”, “문둥이 새끼들”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들도 정수를 하동 가는 도라꾸에 실어 정중히 고향으로 보낸 것이다.
두 고을에 아무 감정 상하는 일 없이 흘러갔고 정수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고향으로 돌아 온 것이다.
정수는 원래 태생이 어디일까. 어떤 연유로 하동땅에 살게 된 것일까.
정수라는 이름이 처음부터 불리어 진 것을 보면 본명임이 틀림이 없다 싶은데 성은 무엇일까. 김씨일까 박씨일까 이씨일까.......
그는 어찌하여 정신이 나갔으며 거지 중에 상거지가 되어 하동땅에 살게 되었는지, 정수에 대해 무엇이든 몇 자 적어 주셔요 하고 카페에 문자를 보냈더니 8회 선배이신 이진원형님이 화답이 있었고 형님의 사이트에 방문하여 정수에 대한 수필을 읽은 적이 있었다.
선배님의 정수에 대한 성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그의 사이트에 등재 되어 있는 광대한 집필에 또한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 하동고을에 정수라는 거지가 있었는데 홀연히 종적을 감추고 그의 행적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후 그는 신선이 되었다고들 하였다. -
정말 선배님의 말대로 정수가 신선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으며 살아생전 짐승같이 보낸 인생역정에 대한 더 큰 보상을 누렸으면 하는 심정이다.
정수의 집은 섬진다리 밑이다. 길과 언덕을 이루는 다리 아랫부분인데 굴이 있지 안할까 생각했는데 불을 피운 흔적이 있고 넓기는 하였지만 어둡고 침침하였다. 소시적에 다리 밑을 딱 한번 가 본적이 있다.
하동땅에는 비가 많이 오는 곳이라 장마철에는 다리 언덕 밑이 최고의 피신처임에 분명했다. 정수가 사는 곳이 아니라면 한여름 동내사람 피서처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비록 어둡고 침침하기는 하여도 강길 따라 부는 바람은 하시도 그칠 줄 모르고 너무너무 시원했다. 이른 봄부터 초가을까지 지내기는 그저 그만이나 한겨울 있을만한 곳이 못되는 곳이다.
정수는 이곳이 아무리 좋아도 여기에 오래 머물 수가 없다. 읍내로 가야만이 구걸할 수 있고 주린 배를 채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 다리 밑에서 지낸다면 굶거나 얼어 죽기 십상이다. 사계절 거의 정수는 집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리 밑에는 늘 비워 있지만 다리 밑이 정수의 집이라는 것을 하동사람이면 다 안다.
2일과 7일은 하동에 장이 선다. 하동장은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큰 장이 다. 하동장날이면 진주, 순천, 구례로 통하는 신장로가 전부 하동으로 향하고 남해 섬 주민들이 섬진강 뱃길을 따라 해산물을 한거석 싣고 구름같이 모여들고 곡물과 채소와 가축들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모인다.
장터는 발 디딜 틈이 없고 사람들이 서로 떠밀려 다녔다. 전국에 각설이까지 하동장으로 몰리고 철이 좀 들었다 하는 머시마 가시나들도 돈 될 만한 쌀이나 참깨나 들기름 참기름을 식구들 몰래 싸가지고 와 팔아 경돈으로 꼬불시고 하였다.
하동사람들은 일이 있으나 없으나 모두 하동장으로 모인다. 이래서 촌놈 가는 날이 장날이란 말이 하동사람들이 말끝마다 쓰는 말이 되었다.
하동장날 각설이패들이 가게를 한 바퀴씩 돌면서 흥을 돋우는 각설이 타령은 정말 흥미 있는 구경거리였다. 장사하는 주인이야 갈설이패가 오자마자 바로 백환 얼른 내어주거나 물건하나 타령이 나기 무섭게 쥐어 주고 바로 지나 갈 것을 손사랫짓 한다.
어얼 시구 시구 들어간다. 저얼 시구 시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품바 품바 들어간다.
일 자나 한 장을 들고나 보니 일편단심 먹은 마음 죽으면 죽었지 못 잊겠네
둘에 이 자나 들고나 보니 수중 백로 백구 떼가 벌을 찾아서 날아든다
삼 자나 한 장을 들고나 보니 삼월이라 삼짇날에 제비 한 쌍이 날아든다
넷에 사 자나 들고나 보니 사월이라 초파일에 관등불도 밝혔구나
다섯에 오 자나 들고나 보니 오월이라 단옷날에 처녀 총각 한데 모아
추천 놀이가 좋을 씨고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여섯에 육 자나 들고나 보니 유월이라 유두날에 탁주 놀이가 좋을 씨고
칠 자나 한 장을 들고나 보니 칠월이라 칠석날에 견우 직녀가 좋을 씨고
여덟에 팔 자나 들고나 보니 팔월이라 한가위에 보름달이 좋을 씨고
구 자나 한 장을 들고나 보니 구월이라 구일 날에 국화주가 좋을 씨고
남았네 남았네 십자 한 장이 남았구나 십 리 백 리 가는 길에 정든 님을 만났구나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장사하는 사람은 성가시나 구경하는 사람은 재미가 그만이다.
애들은 삼삼오오 각설이 꽁무니에 붙어 다니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
또 한쪽에서는 등에 큰 북을 엎고 손에는 깽맹이로 혼자서 북치고 깽맹이 치면서 발로 스텝을 잡아가면서 놀아나는 품마는 키 작은 사람은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추석명절이 사흘 남은 하동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장날의 정수는 돌아다니면서 애써 구걸하지 않아도 먹거리가 많았다. 장터 후미진 곳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간혹 먹거리를 던져 주고 가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깡통 옆에는 과자니 빵이니 삶은 고구마니 대 꼬쟁이 사탕까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어떤 아저씨는 정수한테 농담도 던진다.
“아따, 정수 오늘 배 터지것네”.
하동사람이 아니라도 애들이고 어른이고 정수를 다 알아본다. 일년에 한번 올까 말까한 각설이들도 정수를 알아보고 말을 건넌다.
“정수, 잘 있었는가, 오랜 만이구먼 이”, “개똥밭에 딩구르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네”, “또 보세 이”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정수한테는 시련의 겨울이 성큼성큼 닥아 오고 있었다.
그가 이불 같은 보따리를 질질 끌면서도 끝까지 지니고 다닌 것은 모진 한겨울에 살아남기 위한 나름대로의 요령이었다. 찬바람을 막을 수 있는 장소와 애물단지 이 이불보따리 덕분으로 긴긴 겨울밤을 살아 날 수가 있었다. 그가 얼마나 애지중지 했던 재물이었는가를 알만하지 않은가.
하동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그날 얼마나 추우냐에 따라서 그날밤 그의 처소도 달랐다. 하룻밤에 두 서너번 처소도 옮기는 경우도 많았다. 시장 국밥집 가마솥 옆이나 담벼락에 붙은 굴뚝 옆이나 여관방 외부 연탄아궁이 옆이나 짚단 무더기에서 올해도 폭풍한설을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50년대 하동땅 겨울은 참말로 추웠었다. 지금은 난방과 보온 단열재 보급으로 추위를 느껴보지 못하며 더군다나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동지섣달에도 내의 하나 걸치지 않고 사는 세상이 됐지만 50년대 섬진강은 겨울이면 꽁꽁 얼었습니다. 소구루마가 조심할 것도 없이 쉽게 건너 다녔습니다. 몇일 참으면 되는 겨울이 아니었지만 그해 겨울도 정수는 살아남았습니다.
아! 누구 한사람 정수한테 따뜻한 온정을 배푼 사람 있으면 말해 주이소. 이미 반세기가 지났지만 내 그 사람을 하동군수 서장보다도 더 존경 하겠소. 짐승보다도 더 천한 인생을 인간으로 불쌍히 여겨 인정스럽게 대접한 사람이 있다면 말해 주셔요. 이 이야기 말미에 기록하여 소감이 되게 하겠습니다.
정수는 오랜만에 다리 밑 집으로 돌아왔다.
거처 가까운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조용히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한겨울 체력을 너무 소진해서 인지 수축하고 힘이 없었다.
지난겨울에도 소름이 끼치게 추웠고 움추린 사람들이 주고받는 인사말 말미에 “다리 밑에 정수 안얼어 죽었는지 모르것다”. 하였던 그 정수가 풀죽은 모습이긴하나 살아남은 것이다.
이제, 세월은 섬진강 강물처럼 도도하게 흘러가고 따뜻한 봄이 왔다. 엄동설한의 혹독한 시련을 당하였지 만은 곰이 겨울잠을 자고 기지개를 캐고 밖으로 출행하는 것 같이...
비록 곰보다도, 개보다도 못한 겨울잠이지만 그의 얼굴에는 조금도 원망의 기색이 없이 평온하다.
- 지리적으로 보면 하동이라는 곳은 바다와 강과 깊은 골짜기 험한 산세로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지만 가장 험난한 한반도 중심내륙으로 깊숙이 도달 할 수 있는 물길인 섬진강지류를 장악하기 위한 신라와 백제의 빼앗고 빼앗기고 하는 전투가 몇 번이고 반복되고 백제가 망하고 난 후에는 당나라가 신라를 넘보는 교두보였으니 이 고장이 전쟁터이고 하동사람이야말로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구의 노략질과 임진왜란에 그들의 만행은 뒤로하고 서라도 근세에 동학혁명 때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그때, 죽창을 들고 자식이 할아버지 아버지 뒤를 따르니 이놈아, 너는 살아서 씨를 보존해야 된다..... 또 육이오동란 때는 어떠했던가!.밤에는 빨갱이가 내려와 빼앗고 죽이고 낮에는 빨갱이한테 부역했다 하여 죽을 맛을 당하였다. 무슨 죄로 죽는지도 모르게 참담하게 죽어간 양민의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한 깊은 고장, 하동땅, 참말로 하동사람 모질게 살아났다. 그뿐인가 해년 해마다 크고 작은 홍수와 맞닥뜨려 자연 재해와 싸워 왔으니 하동사람이 어찌 모질고 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승패를 논할 때도 죽을지언정 항복 아니 하는 성미에다 호연지기의 호방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 하동사람이다. 아, 하동땅 하동사람 독하다고 욕하지 마소. 저 섬진강 굽이굽이 같이 잘 휘일 줄도 알고 섬진강 은빛 물결같이 한없이 맑고 부더러운 양반들입니다. -
정수도 비록 거지의 신분이지만 이렇게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억척스럽고 모질고 강짜인 하동사람의 기질이 그대로 몸에 시꺼멓게 베여 있었다.
운동장에서 송림에서 백사장에서 등에 총알 맞고 죽은 영혼이 원한에 사무치는 혼의고장 하동땅에서 마치 개똥밭에 딩굴며 살아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정수의 인생살이 그후 몇해 더 이어졌다.
그는 우리동네 동광동에 자주 오는 손님인데 서교동도 단골동네다. 서교동 사람은 인정스러움에, 동광동은 서장 군수가 사는 동네라 부식이 입에 맞았을 것이다.
한번은 또 군수집에서 바삐 도망치듯 하는 정수를 보았는데 그것은 군수집 누렁이 개를 보고 지레 겁먹고 도망 나오는 장면이다. 군수집 누렁이는 사람나이로 치면 백세하는 개이고 등치는 송아지만 하여도 고관집에서 호의호식하고 자라서 그런지 군수 닮아서 그런지 점잔코 풍채가 여염집 견공하고는 질이 달랐다.
그런 군수집 누렁이를 보면 정수는 개보다도 못한 인생이었다. 언제 한번은 누렁이 개코같이 생긴 헌칠한 군수가 출근길에 정수를 골목길에서 마주쳤는데 군수는 정수를 보고 또 보고 또 뒤돌아 보고 하였는데 그는 정녕 모얼 생각했던 것일까?..
이제 정수의 넋두리를 종결하여야겠습니다. 세월은 가고 추운 겨울이 왔습니다. 정수한테는 겨울이냐 말로 염라대왕보다도 더 무서운 엄동설한 겨울입니다. 올 겨울은 여느 겨울과는 달랐습니다, 섬진강이 한발이나 얼어붙었고 산천초목이 원귀 곡소리 하듯 윙윙거리며 울어 됐습니다.
‘정수 얼어 죽것다’ ‘정수 얼어 죽것다’ 합창소리 들리듯 신음소리 들리듯 한 그날 밤 정수는 모진 하동땅에서 얼어서 동태같이 되어 외마디 신음소리를 내며 얼어 죽었습니다.
“엄~” “엄~” “엄~” 하면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외마디는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였습니다. 그가 죽은 장소는 목너머 정미소옆 강쪽 도랑가였습니다.
새벽까지 타고 있어야 할 정미소 고랑가 옆 굼불 아궁이 연탄이 꺼져 있었습니다. 정수가 등짝을 비벼서 온기를 훔치는 생명의 불씨가 그날따라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정수가 죽은 그 이튿날은 얼음이 녹을 정도로 따뜻하였습니다. 어제까지가 겨울이었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따뜻하였습니다.
‘폭풍이 지난 후에 잔잔함이 온다’ 라는 말이 있듯이 그야말로 한설폭한이 있은 후 따뜻함이 찾아 온 것입니다. 하동사람 모두 얼어 죽었다 다시 깨어났지만 정수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필자는 그날 정수의 시신이 멍석말이 되어 지개에 얹혀 가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 합니다.
정수에 대한 나름대로의 글을 적어 본 것도 지울 수 없는 그날의 회상 때문입니다.
이번 글을 초본으로 삼아 다음에는 이 글을 다시 보정하여 내가 본 정수의 마지막 화장 장면까지 적어 보려 합니다. 인생만사 귀하고 천한 것이 모두 부질없는 뜬구름 이라는 것을 하동의 걸박수 정수를 통해서 표출해 보고 싶습니다.
어쭙잖은 글귀를 함부로 표출하여 송구스럽습니다.
인생만사 귀하고 천한 것이 모두 부질없는 뜬구름 같음을 상여소리로 대신합니다.
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밖이 저승일세
북망산천 멀다더니 내집앞이 북망일세
나는가네 나는가네 북망산천 나는가네
이제가면 언제오나 기약없는 길이구나
이제가면 언제오나 오실날을 일러주오
잘있으오 살사시오 모두모두 잘있으오
사랑하는 내가족들 부디부디 잘이으오
천년만년 살자약속 부질없는 꿈이였네
살아생전 많은친구 어느누가 동무될까
일가친척 많다해도 어느누가 대신할까
극락세계 좋다지만 이승보다 좋을손가
어허여 어허여 어기여차 어어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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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잊은줄 알았더니.70년도 더 지난 고향의 기억 속에서, 사변직전,
더벅머리 키큰 정수가 시커먼 얼굴, 허수룩한 차림으로 읍내를 서서히 걸어다닙니다~
오늘은 이 동네 다음날엔 딴 동네서 밥을 빌어먹는다고 ..정수는 착한 거렁뱅이라고 두둔해주던
할머니말씀을 이제와 생각하면, 말없는 미소로 늘 닳아진 놋숟갈로 밥을 먹던 그 정수는 아마도
타고난, 잠재한 지혜로, 고을의 동네 곳곳을 유랑하듯 밥비렁짓을 했나 싶기도.
6.25 직후 , 만지 배밭집에서 아사온 내 친구네 신(辛)도갓집~ 일꾼도 (인민군 포로시절 구타로 정신이상자)
달밝은 밤이면 못알아듣는 외국 노래를 곧 잘 흥얼거리던 부지런하고 키작은 張샌도 고향생각에..
해량촌 물귀신 할마시,
날이 어수룩해지면 오늘은 또 무슨 심보가 터졌는지
빠져봤자 배꼽 밖에 안 차는 섬진 강물속을 다 헤집으면서
'나 죽는다 이놈들아 나 죽는다' 고개 고래 악을 쓰고
몇 발자국 듭쳐 잡을 거리에서 며느리도 질쌔라
'그래, 죽으소 콱 죽으버리소' 하고 팔 도리질 한다.
어스름녘에 동네가 한바탕 소란이 일고
할마시, 무슨일이 있었냐 하듯이 치마를 털털 털고 물에서 나올 쯤이면
해령촌 사람들, 이구동성으로 '저 할마시 날궂이 하는걸 보면 내일 비 오것네''
다음날 여지없이 비가 퍼 부었다.
하동은 하동은 비단 걸박수 정수 얘기는 일편일 뿐
흑백사진과도 같은 고향의 서정이 아련합니다.
무궁무진한 고향의 흑백시절 사진같은 사정들을 많이 기억하고 계시니
오래 건강하시어 그 야담같은 에피소드들이 편집되시길 바랍니다
진학과 직장으로..부산 진주 서울등 타지를 전전하였기, 정수의 일생을 끝까지 알 지는 못했지만,
노숙자의 말로가 처참한 생애였음이 ..정수는 하동읍내인의 순박한 시대를 살던 애잔한 추억인데..
하동읍에서 4.24 공비 침탈 피해로 집이 불타고..중학교 마당에 시민, 학생들을 운집해놓고 송림뚝에 앉힌
지리산 생포 공비를 사살하던 현장을 목격하던 그 추운 겨울의 떨림은 지금도 생생한 처절한 공포의 기억..
영화 '피아골'촬영을 하던 백사장! 배우 '김진규, 노경희, 허장강'!을 본 이야기에 눈빛이 반짝이던 친구들.
모두 그리웁다...
읍내, 소방회관에 악극단 공연이 들어오는 날이면 확성기에서 울리는 변사조의 선전 소리가 고을을 울렸다
가수 박경애가 부르는 '곡예사의 첫사랑'을 들으면 요즘 가끔 그 힘든 전후시절에 위안이 되던
악극단 구경이 즐거운 추억이다, 유명가수 백년설, 심연옥, 박재란'의 노래를 직접듣는 좋은 행운의
기회였었다
박재란이 오면 친구네집인 동광여관에서 숙소를 정하였기에 팬이 되어 찾아가서 단팥죽도
찹쌀못지도 함께 대접해보았다.. 그 주인댁 안정애언니가 투숙한 배우들과 인연으로, 춤과
노래에 소질이 많아 ㅡ 배우들과 인연으로 후에 상경하여 '대전부루스'를 부른 가수가 된
계기이기도 한것 같다~~~
그 시절 유행한 애창곡 '석류의 계절' 가수 유성온천장 출신 문정선이 가수로 히트곡을 내던 일 처럼~
그 시절 우리누나가 나를 업고 회관극장으로 입장하는데 덩치가 크다고 꿀밤 한 대 얻어맞고 열 외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울었던지 측은하게 본 기두의 선심으로 활동영화 구경을 하게 되었는데 '유리시스'라는 외화 활동영화였습니다.
내용에, 유리시스가 바위에 꽂힌 검을 빼 내는데 변사가 "빠집니다 빠집니다 아~안 빠집니다아~' 하여 배꼽 터져라 하고 웃었는데
지금 헛웃음 나오는 그때로 다시 한 번 살아 봤으면...질박한 인생살이 꺼꾸로 한번 살아 봤으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