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골 생태탐사를 마치고 ☯
초원을 달리며(하나)
방학을 맞아 공항은 여행자들로 혼잡하다. 나라 경제는 어렵다는데 공항에 와서 보니 그것은 남의 나라 일 같다. 나도 그 중의 한 무리에 동참하여 여행을 떠난다. 물론 이번 여행은 순수한 관광 목적이 아니고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몽골 식물탐사에 목적을 두고 있다.
우리가 탑승 할 몽골행 비행기는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수속 절차도 있고 해서 미리 출구에서 모여 상견례를 했다. 탐사 대원 중 몇 사람을 제외하곤 초면이나 왠지 오래 전에 만난 동지와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것은 우리가 같은 취미를 가진 까닭일까?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끼리 마음과 마음속에 사랑의 실 줄기가 흐르고 있음일 것이다.
인천을 출발한 비행기는 3시간 여 만에 몽골의 수도 울란바트로에 도착했다. 버스에 몸을 싣고 숙소를 가는 도중에 차창을 내다보니 신기한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시내를 질주하는 버스 차벽에 한남대학교 종로 수유리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것은 우리나라 중고차를 사가서 운행하고 있는 차량인데 자기들보다 잘사는 나라의 훌륭한 차량을 뽐내기 위해서라니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웠다.
첫 날은 별다른 행사 없이 지났고 다음날 국립공원 흡수골에 가기 위해 50인용 작은 비행기를 타고 하트갈로 향했다. 하트갈 공항은 활주로가 포장도 되지 않는 흙길이었고 공항에 내려 대합실에 가니 우리나라 마구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넓은 초원에는 말이 풀을 뜯고 날씨도 춥지 않는데 남루한 오버코트를 입고 서성거리는 몽골 인들을 보고서야 비로소 색다른 나라에 온 느낌을 받았다. 차량 한 대에 몇 명씩 짝을 지어 나누어 탔다. 나무가 보이고 길 옆에는 야생 꽃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산 중턱에서 잠시 휴식하기로 했다. 그 짧은 시간에도 카메라를 들이 데고 있는 대원들을 보니 역시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취미 활동은 그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닐까.
가끔 야경 사진이나 일출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작가들과 같이 다니다보면 정말 놀랜다. 그 어두운 밤길을 달려 비탈지고 험한 촬영지를 찾아 밤을 새며 같은 자리를 지킨다.
그 기다리는 인내로 가정이나 부모님에게 봉사한다면 좋은 남편으로서 또는 훌륭한 자식으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무엇을 창조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작품을 생성시키면 무한한 희열을 느낀다. 그러나 뒤의 것은 별로 표가 나지 않고 마음속의 감동을 느낄 수가 없다. 지난 달 이태리 여행 중 가이드 말이 떠올랐다. 이태리에서는 초등학교 다니는 학생은 수업을 마치면 부모님이 와서 데리고 간다고 한다. 초저녁이면 모든 상인들은 폐점을 하고 귀가를 해 가족끼리 식사도 하고 놀이도 하고 영화 감상도 한다는 말에 감동을 받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에 가서 뭘 하냐는 질문은 가족위주의 일상생활이 몸에 베어 있지 않는 사람들에게 응당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남성들은 가정에서 가사 일하는 부인들을 보고 ‘집에서 뭐하는 일이 있다고’라는 식으로 대한다. 요 근래에 우리들의 생활을 보면 여자들은 살 빼는 일에 온 시간을 할애하고 남자들은 취미 생활하는 일에 전심전력을 한다. 우리들은 너무 자기 하고 싶은 일에 심취해 있는 것 같다. 직장보다는 취미생활에 가족보다는 동호회 회원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풍조가 만연하여 가정이 부분적으로 파괴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랐다. 끝없이 펼쳐지는 넓은 호수 언저리에서 낚시하는 관광객, 말을 타고 파란 하늘 울창한 산림, 이 모든 것들이 황홀했다. 저녁은 몽골의 전통요리 ‘허르헉’이라는 양고기 요리를 먹었다. 별빛을 친구삼아 호숫가에서 동지들과 보드카를 마시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여행 오기 전 행여 술자리가 벌어지면 마시려고 약간의 안주를 준비했다. 각자 몇 가지씩 가져오기에 나도 숙소인 게르에 가서 가방을 열고 술안주를 꺼내보니 들어 있어야 할 안주는 없고 고춧가루 봉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도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혔다. 평소 건망증이 약간 있기는 하지만 해도 너무 한 것 같다. 지금 이 나이에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얼마 안가서 치매현상이 오지 않을까 싶다. 이놈의 고춧가루는 여행 내내 나의 신경을 건드리고 나를 불안하게 했다. 빈손으로 돌아온 나는 너무 겸연쩍어 노래를 한곡 불렀다.
♪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흐르는 내 인생에 애원이란다. 못 다한 내 인생 태산 같은데.♫♫ 몽골의 밤은 이렇게 호수에 가려 깊어만 간다.
초원을 달리며(둘)
다음 날은 비사산을 등정했다. 야생화도 관찰하고 흡수골의 호수도 내려다보면서 마음을 살 찌웠다. 작년 백두산 산정에서 본 분홍바늘꽃, 동근바위솔, 각시취, 두메양귀비, 산용담과 몽골에만 자생하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한데 섞여 아름다운 자태를 마음껏 뽐내고 있다. 산정에서 내려다 본 흡수골의 호수는 그 크기가 방대하고 호수의 물빛이 코발트색으로 아름다워 모두들 감탄사를 연발 토했다. 오후에는 현지인들과 승마트래킹 체험을 했다. 처음 타 보는 승마가 기분이 상쾌하고 강가를 달리면서 말잡이들이 들려주는 노래는 정말 묘한 감정이 우러나게 했다. 우리가 달리는 주변에는 염소와 양 그리고 말들이 풀을 뜯고 호수 저 멀리에는 저녁 석양이 빨갛게 물들어가는 모습은 영화에서나 보던 그림 그대로다.
여행 기간 동안 몽골의 자랑스러운 선조 징기스칸 시대부터 내려오던 축제 ‘나담’을 구경 할 수 있어 좋은 볼거리가 되었다. 7-8월에 주로 열리는 나담 축제는 이 기간 동안 많은 외국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운 좋게도 바얀고비를 가는 도중 이 축제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조금 늦게 도착하여 말 타기를 구경 할 수 없었지만 몽골씨름을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몽골씨름은 우리나라 씨름과 비슷했는데 최고 우승자에게 주는 상품이 금성제품의 텔레비전이라 가슴 한편에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얀고비 휴양지를 가는 도중에 몽골의 전통 목동의 집을 방문하는 기회를 가졌다. 전통 가옥인 게르 내부에는 할머니, 부모, 그리고 자식이 함께 살고 있었다. 실내에는 세 개의 침대와 화장대 그리고 나무난로와 주식인 마유즈와 아롱이 있었으며 우리들에게 한 잔씩 권했다. 입에 대어 보니 비위가 거슬려 먹지는 못했다. 마지막으로 가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작별을 했다. 우리가 차 안으로 들어 올 때까지 손을 흔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아롱거린다. 우리나라도 60-70년대에는 이렇게 아름답고 순수한 인정이 꽃 피었는데 지금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으니 아쉬운 생각이 든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바얀고비에서 오아시스까지 왕복 4시간 동안 승마트래킹이다. 말 타기가 서툰 어린이나 노약자와 부녀자는 말잡이가 같이 동행하고 나머지는 각자 트래킹에 나섰다. 겁이 나기도 했으나 다른 이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까 싶어 용기를 냈다. 시간이 지나니 전날 승마하다 궁둥이에 상처가 생긴 것이 더욱 깊어져 말을 바로 탈 수가 없었다. 머뭇거리는 사이 일행은 저만치 가 버렸다. 할 수 없이 채찍질을 하면서 ‘초이 초이’ 소리를 지르며 따라 붙었다.
드디어 오아시스에 도착했다. 보기 드물다는 철새들도 봤고 호수 주위에는 온갖 짐승들이 물을 먹으며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내가 교과서에서 본 오아시스와는 달랐다. 나는 오아시스를 보기 전에는 사막의 한 가운데 많은 나무와 계곡과 옹달샘이 고인 곳이라 생각했으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념촬영을 하고 새들과 말들에게 인사도 하고 돌아왔다. 올 때에는 갈 때와 다르게 일행들이 약간의 속력을 냈다. 나는 엉덩이도 아프고 해서 천천히 가려고 했으나 내가 탄 말은 자기 동지들과 떨어지기 싫은지 마구 달렸다. 엉덩이는 점점 아파오고 장딴지는 바지가 자꾸 걷어 올라가는 바람에 벌겋게 피멍이 들었다. 숙소 가까이에 다 달아 양치는 어린 목동을 만나 말을 몰고 가게 했다. 나는 아픈 다리와 엉덩이를 질질 끌고 숙소까지 왔다. 너무 피곤하여 오후 일정인 낙타 타기와 사막 행진은 빠져 버렸다.
차를 타고 태롤지 국립공원으로 가는 도중 차창 밖으로 내다봤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넓은 초원이며 맑은 하늘과 띄엄띄엄 가축의 무리들이 먹이를 먹으며 물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던 초원이 점점 사막화 되어 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가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면 싱그러운 풀들은 점점 사라져 가고 맨땅이 훤히 보이면서 초라한 잡초들이었다.
초원을 달리며(셋)
몽골의 국토의 반은 북서쪽은 러시아와 접해 있다. 남동쪽은 중국과 접해 있으며 전국토가 해발고도 1,600m의 고원 국가이다. 국토의 대부분은 초원을 형성하고 있어 목축이 가능하다. 연중 맑은 날씨가 계속되나 가뭄이 심한 편이어서 식물이 생육하기에는 별로 좋은 환경은 아니다. 몽골의 자연환경은 초원이 대부분이었으나 근자에 와서 급속히 사막화 되었다. 인근의 중국도 산림감소, 표토유실, 모래이동 등으로 사막화되어 간단다. 거기에 비해 몽골은 전국토의 90%가 사막화되어 가고 있다니 정말 심각한 문제다.
하느님께서 몽골이라는 나라를 이 지구상에 내려 보낼 때 넓은 초원과 풍부한 광물자원을 부여했다. 후손들이 그것을 잘 보존 관리하지 못해 위기에 처해 있다. 몽골에서도 흡수골과 태롤지 같은 국립공원에서는 넓은 초원과 수풀, 아름다운 꽃과 호수 및 기이한 암석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그 외 대부분의 지역은 극심한 사막화 현상으로 도시로 이동하여 나라 전체가 큰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몽골의 식량작물과 수목 연구를 하고 있다. 아주 미미한 연구에 지나지 않고 있어 세계적인 관심과 지원이 요망되고 있는 실정이다. 몽골의 사막화 원인은 전문가의 연구 결과 있겠으나 내 나름대로 진단해 보면 첫째 비가 적어 매우 건조하며 숲과 나무와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좋지 못하다. 그로 인하여 식물도 적고 개체수도 적은 편이다. 둘째로 집이나 막사, 창고, 울타리 등으로 사용할 마땅할 재료가 없다. 산지에 조금 남아 있는 나무들을 남벌하기 때문에 산림의 황폐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산림이 황폐하다보니 계곡에 흐르는 물이 적고 초원에 식물의 개체수가 점점 줄어드는 원인 중의 하나가 된다.
그 넓은 초원에는 이제 가축들이 먹을 수 있는 초지는 점점 줄어가고 가축이 잘 먹지 못하는 흰 쑥과 일부 사초과 식물이 주류를 이룬다. 몽골의 먹이사슬은 메뚜기를 먹고 사는 들쥐가 주종이다. 그 외 곤충이나 야생동물이나 새들은 거의 볼 수가 없다. 물론 오아시스나 국립공원 호수 주변에는 다르다. 몽골의 식물종수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턱없이 적고 그 개체수도 점점 줄어가고 있다. 지구가 점점 황폐화되고 사막화 되어 가고 있는 이 시대, 몽골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과 노력이 뒤따라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옛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갖고 천하를 호령하던 호랑이가 이 모양 이 꼴로 변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교육부재와 인구 부족이라고 몽골가이드가 한 얘기를 듣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귀담아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몽골가이드가 남긴 말은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다. 태롤지 국립공원에 여행을 오면 유럽인들은 7박 8일 동안 말을 타고 자연과 유적지를 둘러보고 밤이면 별과 동침하며 얘기를 주고받는다. 일본인들은 4박 5일 말을 타고 자연을 만끽하며 휴식을 취하고 몸과 마음에 안정을 가져간다. 그에 비해 한국 사람들은 그 코스를 한 시간도 안 되어 다보고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닌다는 말을 듣고 가슴 한 구석에 무언과 ‘꽝’하고 와 닿았다.
여행이란 말 속에 담겨져 있는 그 묘한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매혹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그 단어가 관광으로 바뀌는 순간 매력적인 느낌은 사라지고 만다. 우리들이 떠나는 여행의 그 진정한 의미를 찾는다면 뒷사람의 그림자만 쳐다보며 가이드만 따라 다니는 관광 일변도의 여행이 아니다. 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며 자연을 벗 삼아 몸과 마음에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게 여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마음과 가슴과 온몸으로 몽골의 향기를 담고 오는 좋은 계기가 되어 흡족함을 느낀다.
몽골생태탐사를 주관한 동북아식물연구소 여러분과 현진오 박사님, 그리고 한국교사식물연구회 회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몽골생태탐사 요약>
☛날짜: 2004년 8/1-8/8(7박8일)
☛참가자: 동북아식물연구소 회원 16명
☛가이드: 동북아식물연구소장 현진오 박사
<몽골탐사 일정>
첫댓글 오늘은 한가히 여행기 탐독하고 있습니다. ㅎ
오늘 다시 읽어보니 흡사 제가 여행 갔다 온 듯합니다. ㅎㅎ 이러다 실제로 가 보지 않고 여행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