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서 일어나는 일
봄부터 가을까지 쉼 없이 끝없는 변화가 들판에서 일어납니다.
조물조물 새싹이 나고 싹이 돋아 잎이 나고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우고 나비와 벌이 다가오고 씨앗을 퍼뜨리고 그 씨앗 덕분에 또 사람이 살고, 이러저러한 변화가 그 밭에서 끝없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생명창고인 들, 들판은 한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합니다.
들에서 온 종일 농부도 일하지만 그곳에는 농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땅 속 많은 생물도 일을 하면서 도와주고 땅 위 모든 자연물이 도와주어야 농작물이 자랍니다. 심지어 별빛, 달빛, 먼 행성의 기운까지 미쳐 우주의 조화가 들판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저 씨앗을 심어 절로 자라 농부의 힘만으로 알곡을 수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만약 햇빛이 없으면, 물이 없으면, 바람이 없으면, 공기가 없으면, 밤이 없으면, 별빛이 없으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땅 속 미생물의 도움이 없으면 거둘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들에는 참 많은 것들이 자랍니다. 사람이 먹는 것의 가짓수도 엄청 많습니다. 사람을 위해 이렇듯 수백 가지 농작물을 심어놓은 곳이 바로 들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생명창고가 들이라고 하지요.
셀 수 없는 농작물이 들판에서 자랍니다. 씨앗 하나가 흙 속에 들어가 물과 공기와 햇빛의 도움을 받아 싹을 틔워 양분을 빨아먹으며 자랍니다. 그리고 씨앗 하나의 수십 배, 수백 배, 수천 배로 늘어나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꽃을, 잎을, 씨앗을 사람이 먹는 것이지요. 언 땅이 녹고 봄이 되면 농부들은 어김없이 밭으로 나갑니다. 밭이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겨우내 긴 휴식을 한 들판도 고른 숨을 내쉬며 새로운 생명을 품을 준비를 합니다.
농부들이 밭을 가는 작업은 엄숙합니다. 소로 갈든, 경운기나 트랙터로 갈든 이 작업은 농사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첫삽을 대는 것입니다. 잠에서 깬 지렁이, 두더지, 땅강아지들도 밭을 갑니다. 이쪽저쪽 먹이를 찾아 땅 속을 헤치며 다니면 기계로 밭을 간 것보다 더 정교하고 땅심도 살아납니다. 이랑을 만들고 씨앗을 심고 빈들이 하나하나 농작물로 채워나갈 땐 꼭 색실로 수를 한뜸한뜸 놓은 것 같습니다. 예술적인 등고선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납니다.
이때쯤에는 새들과 한판 전쟁도 치릅니다. 새싹을 좋아하는 새들이 한 잎만 먹고 가지 않고 밭 전체를 모조리 해치우는 놈도 있습니다. 동트기 전부터 들에 나가 새를 쫒는 농부, 적당히 나눠먹자고 새들에게 매일 호소하지만 잘 통하지 않습니다. 빈 밭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고 온통 들이 빼곡히 채워지면 이젠 약동하는 들이 됩니다. 생명의 풀무질을 쉼없이 하게 되지요. 이땐 온통 땅속, 땅위 생물들이 고동을 치며 달려듭니다.
작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들판은 빠르게 변화합니다. 산도 푸르고 들판도 푸르고 이때만큼 역동적인 시간은 없습니다. 온갖 벌과 나비가 찾아와 수정을 시키고, 가지를 벌고 열매와 꽃을 답니다. 농부의 근심도 많아집니다. 비가 때맞춰 오는지 일기를 살피고 벌레와 병은 없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이윽고 수확기를 맞아 들판은 또 부산해집니다. 농부의 손길도 바빠지고 어린이의 손까지도 빌려야 합니다. 알곡만 거두고 나머지는 다시 밭으로 돌려줍니다. 이제 내년엔 또 다른 작물이 이 밭에 심겨질 것입니다. 농부들 중에는 한 땅에 계속 같은 작물을 심지 않고 돌려가면서 심는 윤작을 하는 농부도 있습니다. 땅을 살리기 위해서지요.
수확이 끝난 들은 좀 황량합니다. 역시 들판은 생명의 약동소리가 마구 들려야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수확이 끝난 들판은 다시 땅이 얼고 눈, 비 맞고 풀리고 하면서 재충전을 하고 내년 농사를 기약하며 긴 휴식에 들어갑니다. 농부도, 들판의 수많은 일꾼들도 긴 겨울잠에 들어갑니다.
내년에도 농부들은 계속 이 들판에 나와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요? 농사지어 먹고 살 수 없으니 농부들은 들을 떠나고 빈들은 늘어가고 있는데 변함없이 넘치게 먹을거리 먹을 수 있을까요? 저 빈들은 알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