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담바라로 유명해진 청계사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가 고려 충렬왕 10년(1284) 시중 조인규에 의해 중건된 청계사는 조선 숙종 15년
(1689)에 세운 청계사 사적기비(174cm×92cm×26cm)가 있고 조선후기의 건물로 보이는 극락보전이 있다.
극락보전 중앙에는 주존불인 아미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좌우에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이
협대하고 있다. 그리고 산신각, 봉향각, 요사, 삼성당, 감로지 등이 자리잡고 있다.
대웅전에 있는 부처님의 오른쪽 이마에 가지런하게 삼천만년에 한 번 피는 꽃인 우담바라 꽃이 피었다는
보도가 난 후부터 이 우담바라 꽃을 직접 보려는 불교 신도들로 연일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2000년 금오대선사의 손상좌인 종상스님이 주지소임을 맡고 가람의 제불사를 진행하던 중 10월 16일 이(已)시
기도를 올리던 대원각보살 이경순이 관음전의 관세음보살님의 상호에 피어난 21송이 우담바라를 관찰하였다.
이에 불교학자들과 스님들의 고증을 거친후 사부대중의 뜻을 받들어 2000년 10월 17일 우담바라개화 108일
무차정진대회를 봉행하니 이땅에 고승대덕들을 모셔 법문을 듣고 낮밤없는 목탁과 염불소리 도량을
장엄하고 법화의 향기세상에 두루하였다.
청계사< 淸溪寺 >동종< 銅鍾 > 국가보물 제11
종각에는 숙종 27년에 주종장(鑄鍾匠) 사인비구(思印比丘)이 만들어진 동종<銅鐘>이 있는데,
그가 남긴 작품 중 8개의 동종이 보물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종의 꼭대기에는 두 마리 용의 머리가 서로 연결되어 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한국 범종의 전통적인 양식에서 이러한 용뉴는 한 마리 용으로 된 장식과 음통으로 이루어져 있고,
쌍룡으로 장식된 것은 드물다. 또한 한국 범종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당좌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이 종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당좌 대신 종의 몸통 하부에는 명문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으며, 종이 만들어진
연대, 시주된 사찰, 종장 및 시주자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종을 서울 봉은사로 옮겨 잠시 감춰두었고, 1975년에 비로소 청계사로 돌아왔다.
종의 높이는 115cm, 입지름 71cm이며, 무게는 420kg이다. 보존을 위해 부처님 오신 날에만 한다.
종의 꼭대기는 수평으로 펑퍼짐하지 않고 약간 둥그스름하게 불러 있으며 그 한가운데에 서로 반대쪽을
향해 있으면서 몸이 엉켜있는 쌍용의 용누가 돌출해 있어 여기에 쇠리를 꿰어 종을 매달았다.
어깨부분에 돌려진 띠는 그 안에 연속으로 줄무늬를 새겨 장식하였고 맨 아래쪽 종구의 둘레를 장식한
띠에는 보상화문이 연속으로 새겨져 있다.
종의 어깨부위 둘레에는 정방향에 가까운 4개의 독립된 유곽을 마련하고 그 안에 각기 9 개씩의 유두(乳頭)를
새겼는데 유곽의 띠와 유두의 꽃무늬 자방(子房)만이 다소 도드라진 꼭지로 표현되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각기 한분씩의 보살입상을 새겨 넣었고 종의 중허리에는 종을 한바퀴 도는 두가닥의
평행선이 도드라져 있다. 평행선 바로 아래에는 「명문은 강희 40년(1701) 신미 4월에 주성(鑄成)하였고
광주 청계사에 보관 하였는데 대종의 무게는 7백근」이라 새겨있다. 있다.
<蒙山法語>』등이 있다.
지장전은 지옥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성불을 하지 않고 있는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입니다.
저승세계를 표현하는 명부전이라고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사찰의 경우 지장전이나 명부전에서는
극락보전 오른쪽에는 15m 길이의 2m 높이의 거대한 와불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