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풍수해로 피해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눈물 난듯한 처절한 피해는 2012년 태풍. 2017년 냉해피해 2019년폭우 등은 수확 70% 정도 피해를 안겨 주었다.
난 어떻게 시골에서 살아 나왔는가?
사과농사를 지으면서 가락동 경매시장으로 전매를 하였다.
그러다 상주의 김회장님이 말씀하시기를.. 공장이나 상인들은 내 물건 값을 내가 정하는데 농산물은 다른사람이 내 물건값을 불합리하게 정한다는 것이었다. - 바로 그거닷~~ㅋㅋ
여기에서 나는 직거래를 하기 시작하였다.
직거래에도 1-2 단계가 있는데...
1단계는 2005-7년이었다. 그 당시에는 다음카페를 통한 커뮤니티를 통한 나눔과 교제를 통해 검증받고 또 주문을 주고 받았다.
원래 오픈하는 성격이라 사람들과 교제를 좋아했던 성격인지라.. 잘 되었었다.
직거래를 시도한이후... 4년만에 가락동에 사과를 출하하지 않아도 될정도로 전량 직거래 되었다.
충주에서도 유명한 예슬이네 과수원이 되었다. 충주에서 거짓말 조금 보태서 예슬이네과수원하면 맛있고 싼 과수원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는~~
2단계는 기업 단체거래이다.
2011년 부터 카페 활동을 접게 되었다. 여러가지 이유는 있었지만.... 힘들었던것은..이전에 개인거래하던 사과농장이 극히 5%미만이었던 상황에서 부모님들의 며느리들이 카페에 접속해서 친정.시부모님들 농장 과일을 농부인척하면서 나는 혼자 농사에서 포장 택배까지 즉 A~Z 까지 하니 젊음의 아이디어도 일일이 친절마케팅해대는 그러한 젊은이들을 이길수 없었다.
지금은 모든 사과농장에서 많고 적고간에 100% 직거래를 한다. 정말 놀아운 큰 거래의 변화이며 혁신이다.
카페활동에 뒤쳐지게 되고... 다시 교회사역을 하면서 개인직거래의 심각한 어려움이 다가왔다.
새로운 접합점과 홍보책을 찾을수 없었고.. 판매책을 나에게서 집사람으로 넘기었다.
적극적인 내 성격과 소극적인 집사람은 다분히 판매에 엄청 큰 어려움이 다가왔다.
그후에 카페에 돌아오긴 싫었고 계속 밖으로 돌았다. 오프라인으로...
즉으란 법은 없나보다...
이후... 오프라인 신경을 쓰니... 충주시장님상도 두어번 받게 되고 또 체험협회장을 하게 되었고..충주의 가장큰 축제인 한마다축제 사무장을 2년간... 충주당뇨바이어이사등등 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6차 농업인인증도 받으면서 농협과 기타 전문점으로 사과와 사과즙이 입고 판매되기시작하였다.
또한 이후에 우린 년2-3회정도 코엑스와 킨텍스 또 부산에 벡스코 까지 직거래 홍보 비지니스장들을 다녔다.
초창기에 현장 판매는 매우 좋았다.
일50만원에서 많게는 200만원까지 한적도 있었으니.... 그럴때에는 한달 먹거리가 생겼던 것이다.
2012년은 현대 백화점에 사과 입점의 경험도 있었는데... 처음으로 매출의 최고치를 달성하였었다.
2010년경 개인거래 고객층의 분석이 개인90% 나머지가 기업이었으나 지금은 기업고객 70% 개인곡객30%의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매번 매번 초이스당해야 하는 상황이나 죽을때까지 안정적이라는 것은 없는것 같다.
매년 판매를 위해 고민하고 매년 농사때문에 신경을 쓰는 농업인이기도 하다.
지금껏 그래 왔던것 처럼 나자신의 삶의 자세와 농장을 노출시키면서 나아가는 것이 나의 홍보이고 하지 않을까? 한다.
요즘 신식언어로 "너 자신을 브랜딩하라"
시대는 엄청난 속도로 바뀐다. 동네 텃밭에서 고추농사짓고 콩농사 짓는것이 앞으로 짧으면 5년 이면 고령화로 인해 생산이 없어질것이다. 우리 농산물의 콩과 참깨. 들깨를 먹는 다는 것이 엄청난 호사이구나 시대가 더 도래할듯 하기도 하고....
바뀌어야 한다.
남들처럼 부동산도 없고 가진것도 없기에... 더 열심히 더 즐겁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첫댓글 약간 쑥쓰럽긴하네요.. 농사는 힘들지만. 농업인으로서 삶은 만족해요 ㅎ
열심히 달려온 길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노력하신 만큼 더 큰 성과가 있으실거라 믿습니다
앞으로는 온라인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될거라 부지런히 공부하는 1인입니다~^^
정말 열심히 달려오긴 했는데 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