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옛 등걸 같은 아름다운 독종 - 서정춘 시인
주말 늦은 저녁 인사동 시인학교에서 서정춘(60) 선생님을 뵈었다. 나는 버릇없이 선생님께 등단 28년만에야 첫 시집을 내셨던 연유를 여쭈었다. 선생님께서 물끄러미 내
눈을 바라보신다. 아무래도 큰 실수를 한 것 같다.
"내 살아생전에 아직까지 그렇게 물어오는 놈이 없었는데 니놈이 느닷없이 내 혀끝을
깨무는 질문을 하는구나. 이놈아 말해주랴? 배가 고파서 못썼다. 시가 다가 아니더라.
신경림 시인이 십 년을 쉬었듯이 나도 십 년을 안 썼다. 배가 고파서, 기아 공포증에
시달려 광주 사태 때도 못 내려갔다. 머릿속으로만 십년을 썼다. 광주가 죽고 있다고
신음 섞인 헛소리만 했다 이놈아."
말씀을 마친 선생님께서 지긋이 웃으신다. 그 웃음 속에 오랜 세월 어렵게 살아오신
삶의 이력들이 아프게 묻어 나온다. 삶과 시, 삶 살기와 시 쓰기의 치열함, 대체 그것들은 무엇일까.
[사진]함민복 시인과 서정춘 시인 (왼쪽), 노래하는 서정춘 시인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정동용 시인이 하얀 종이부채를 들고 와서 선생님의 작품
「눈물부처」를 적어달란다.
비 내리네 이 저녁을
빈 깡통 두드리며
우리집 단칸방에 깡통 거지 앉아 있네
빗물소리 한없이 받아주는
눈물거지 앉아 있네
- 「눈물부처」전문
시라고 씌어진 한 편의 글에서 '말' 을 모두 빼고 남는 것이 있을 때 그 남아있는 것이
시라는 오규원 시인의 말씀이 생각난다. 서정춘 선생님의 두 권의 시집에 들어 있는
70여 편의 시가 모두 그렇듯이 이「눈물부처」에서도 더이상 뺄 말이 없다. 온전히 절절한 詩뿐이다.
나는 아버지가 이끄는 말구루마 앞자리에 쭈글쳐 타고 앉
아 아버지만큼 젊은 조랑말이 말꼬리를 쳐들고 내놓은 푸른
말똥에서 확 풍겨오는 볏집 삭은 냄새가 좀 좋았다고 말똥
이 춥고 배고픈 나에게는 따뜻한 풀빵 같았다고 1951년 하
필이면 어린 나의 생일날 일기장에 침발린 연필 글씨로 씌
어 있었다
오늘 그 푸른 말똥이 그립다.
- 「오늘 그 푸른 말똥이 그립다」전문
시를 즐기는 독자들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시인(?)들은 우후죽순 생겨나고, 그렇게 생겨난 시인들이 써 갈겨대는 시(?)들은 책(?) 속에 처박혀 글 쓰레기가 된다. 절절한 삶의 체험이 뒷받침되지 않은 시들, 간교한 기교로만 말쑥하게 빚어진, 글자만 번드르르한 시들, 역겨운 공해다. 그뿐인가 10대들의 여린 감성을 겨냥한 졸렬한 출판사들의
얄팍한 상술, 그 쓰레기 같은 상술이 없어지지 않는 한 이 땅에, 이 천박한 땅에 노벨문학상은 없다. 문학도 없다.
너는 가난뱅이 울아비의 작은 딸
나의 배고팠던 누님이 아이보개 떠나면서 보고 보고 울던 꽃
석양처럼 남아서 울던 꽃 울던 꽃
- 「봉선화 - 1950년대」전문
시, 함부로 써 갈기지 말일이다. 공장에서 생산해내는 공산품처럼 시가 작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근래의 제품 같은 시들, 시집들, 별 볼일 없다. 서정춘 선생님의 시들을 읽으면서 예술가가 오랜 고통 속에서 태어나야 하듯이 시 또한 참혹하게 씌어져야 한다는
것을 가슴에 깊이깊이 새겨볼 일이다.
알고보면 매화 옛 등걸 같은 아름다운 독종은 세상에 다시 없다.
나는 그런 독종의 묘목만도 훨씬 못하다.
그러면, 조계산 선암사 뒤뜰에서 헐벗은 몸짓으로 아직 수백년을 살고 있는 매화 보러
가야한다.
꽃 피운 매화 옛 등걸의 입시울쏘리라도 받아 적으러 나 오늘 선암사 가야 한다.
- 시집 『봄, 파르티잔』의 「시인의 말」중에서
『竹篇』과 『봄, 파르티잔』에 들어있는 깔끔한 시들을 읽는 것도 즐겁지만 선생님의 깊은 뱃심으로 불러주는 절절한 노랫소리를 듣는 것 또한 더없이 즐거운 일이다.
서정춘 시인
1941년 전남 순천 출생
순천 매산 고등학교 졸업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잠자리 날다]가 당선되어 등단
이후, 생활고로 10년 동안 절필함
1996년 등단 28년 만에 첫 시집 『竹篇』간행 (수록 시 : 35편)
2001년 두 번째 시집 『봄 파르티잔』간행 (수록 시 : 33편)
임희구 im99@bcl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