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도심에서 압사 사고로 백 오십 명이 넘는 희생자가 생겼다. 대부분 단지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고 나왔던 젊은이들이었다. 토요일 밤에 일어난 사고 소식을 일요일 오전에 뒤늦게 들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동영상이며 사진이 끔찍하다는 말이 들렸다. 한 분은 희생자를 길에 눕혀 놓았다고, 전쟁터와 뭐가 다르냐고 말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위해 신문 기사만 몇 개 읽었다. 주말 내내 교육에 참여하느라 집중해야 할 일이 있지 않았다면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더 정신을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일요일 저녁,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지인 한 명에게 문자를 보냈다. 강남에 사는 지인의 주변에는 이태원에 놀러갈 나이대의 자녀가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는 사람들 중에 희생자가 없느냐고 물었는데 답이 없었다. 불안했다. 가까운 사람, 심지어 딸이 사고를 당한 건 아닐까?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확인된 사실이 하나도 없는데 생각이 앞서 달려나갔다. 문자를 보낸 걸 후회까지 했다. 다행히 몇 시간 후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무사한 것 같다는 답 문자가 왔다.
비극적 소식은 예상치 못한 데서 왔다. 그 문자를 받기 몇 분 전이었다. 대학 동기 카톡방에 안부를 묻는 톡이 서너 개 올라왔다. 얼마 후 한 후배의 장녀가 희생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바로 일주일 전 동기 모임 때 가장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후배였다. 전공도 살리면서 새로운 분야에서 일을 잘 한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바로 그 후배 가족이 이번 참사의 희생자였다. 그 후배 부부와 개인적인 교류가 많았던 동기 부부는 서로 부등켜안고 울었다고, 너무 힘들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세월호 사고 때가 떠올랐다. 아버지 장례를 치른 지 몇 달 후였다. 사고 소식을 접하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괴로운 뉴스가 끊임없이 나오는 텔레비전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자리를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반응이 좀 이해된다. 화면 속 사고 장면도 충격이었지만 그때 나는 수십 년 전의 충격에 다시 휩싸였던 것이 아닌가 싶다. 십대 후반이던 나는 익사 사고와 교통사고로 당시 이십 대이던 오빠와 언니를 연이어 잃었다. 대형 참사 현장을 눈으로 보면서 꾹꾹 눌러 놓았던 상실의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주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때와 비교하자면 이번에는 멍한 가운데서도 일상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몸과 마음이 지레 방어막을 펼치고 있는지 감각이 전반적으로 무디어지는 것도 같았다. 동영상이나 사진 자료는 거의 피하고 라디오로만 짧게 소식을 접했다. 그조차 어처구니없는 뉴스의 연속이었다.
두 달 전에 나는 내가 속한 상조 협동조합에서 애도 공부 모임을 진행했다. 함께 애도에 대해 공부하고 상실을 치유해보자는 취지였다. 그런 모임을 한다고 말하면 친구나 지인들은 “애도?”라고 되묻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에게 애도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한 듯했다. 그런데 이번 참사로 애도 단어가 온 국민의 귀에 울리고 있다. 이번 주가 국가 애도 기간이라고 한다. 사건의 진상도 밝히지 않고, 심지어 의혹이 증폭되는 가운데 애도부터 하라니 더 가슴이 막혔다. 근조 글씨가 없는 리본을 달고, 분향소에 영정 사진도 위폐도 없이 ‘사고 사망자’라고 쓰라는 지침이 있었다고 한다. 기괴한 분위기 속에서 애도가 가능한지 정말 의문이다.
아침 라디오 방송에 한 국어학자가 나왔다. 그는 ‘이태원 사고’라는 표현으로 이태원이 참혹한 사고가 일어난 곳으로 각인될 위험을 지적했다. 사고냐 참사냐 하는 구분을 떠나 ‘이태원’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우한 바이러스가 아니라 코로나 19이라 명명하고, 맨해튼 테러가 아니라 9.11 테러라고 부르듯이, 피해 지역을 사고 이름에 넣으면 안되니 날짜를 넣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그렇구나! 이름부터 제대로 붙이고 바라보자. 10.29 참사.
이름도 알려지지 못한 수많은 희생자와 부상자와 그 가족뿐만 아니라, 구조 현장에서 죽을 힘을 다하고도 더 많이 구하지 못한 걸 자책하는 경찰관과 시민들, 그리고 이태원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도 모두 참사를 경험하고 있다. 외국인 희생자도 있으니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살아남은 모두에게 마음속으로 되뇐다. 얼마나 힘드세요?
첫댓글 슬프고 아픕니다
애통합니다
함께 웁니다
애도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원통한 마음 때문에 사실 자체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건의 진상도 밝히지 않고, 심지어 의혹이 증폭되는 가운데 애도부터 하라니 더 가슴이 막혔다. 근조 글씨가 없는 리본을 달고, 분향소에 영정 사진도 위폐도 없이 ‘사고 사망자’라고 쓰라는 지침이 있었다고 한다. 기괴한 분위기 속에서 애도가 가능한지 정말 의문이다.'
너무 공감되요.. 더불어 생각난 글도 공유해보아요.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pfbid02FHctw8Fk5EYqdR66FPbogZGS3py1gJY5FR6YiJfJJBbunFomGYD68yirVYGbD4Wml&id=100001872249460
가슴이 먹먹하고 아픕니다. 현 정권에 대한 분노도 치밀어오릅니다. 스러져간 젊은 영혼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