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월요일입니다
아장걸음 아가로 시작되어 학생, 아가씨, 새댁, 아무개 엄마에서 할머니까지 나를 부르는 호칭이 많기도 했다.
때마다 생소한 세계를 맞이하면서 적응하고 마름질하느라 애썼다 싶어, 위안이라도 받고자 두리번거려 보지만 만만한 상대가 없다. 모두들 바삐 바삐 살아내느라 정신무인지경이니 스스로 다독이고 나름대로 포상하며 살아가는 것이 최상의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빨리 늙어라, 빨리 늙어라’를 주문처럼 중얼거리던 혼동의 시절은 진즉에 지나가고, 세상 맘에 드는 노년의 반열에 올라서니 소망이 이루어져 평온하다. 하지만 그 평온이 어디 복지 혜택처럼 무상지급 되겠나? 그에 걸맞은 조건이 따라붙어야 맛나게 유지될 테지.
누워서 먹는 떡도 값은 지불해야 하고, 낡아가는 속도를 줄이려면 머리도 녹슬지 않아야겠기에 적당한 일이 필요했다.
이런저런 이유를 둘러대며 개목줄 같았던 각자의 직업을, 아이들이 둥지를 떠나자마자 과감히 내던졌다. 그리고 곧바로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늘 함께 있을 수 있는 자영업을 마련했다.
막상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찰싹 붙어 있으려니, 같이 있어 보고 싶다던 바람은 잘못 품은 꿈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결론은 가성비가 좋았다고나 할까, 아무튼 실보다 득이 크다고 생각을 한껏 부풀렸다. 왜냐하면 그것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여유는, 손주들 용돈도 맘먹은 대로 폭폭 줄 수 있으며 명절이나 이름 있는 날, 내 좋은 이들에게로 푸짐한 떡바구니라도 보낼 수 있어 좋다. 그뿐인가, 비록 적은 도움이지만 어렵다, 힘들다, 애가 탄다는 곳으로 멈칫거리지 않고 보태줄 수 있기에 석양빛 비춰 든 나이에 축복이라 여기며 고단함을 덮는다.
받는 그들이 손사래 칠 때까지 직업인으로 남아있을 예정이다, 단 건강이 허락하여야겠지만 아직은 팔팔하다.
우리 영업장 특성으로 비교적 손님 발길이 뜸한 월요일을 휴무일도 잡았다.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은 절대 미루지 말고 실행하자는 언약을 둘이 철석같이 하고는 있지만 귀한 휴무일이 늘 정신없이 지나가는 것이 문제다.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다리보다 팔딱이는 가슴이 우성인지라 주중 내내 소문난 맛집이라든가 이름난 관광 명소, 음악회, 전시회 등을 꽁꽁 메모해 놓고 기다리다 보면 그 기다림은 기다림으로 끝나기가 일수다.
그날따라 비가 펑펑 쏟아진다거나 아이들 집에 크고 작은 일들이 발생하여 불려 간다거나 아니면 내과, 외과, 안과, 이비인후과, 비뇨기과 등을 순례하며 낡아가는 몸을 수선하느라 아까운 휴일을 놓치곤 한다.
그러다가도 어쩌다 딱 맞아떨어지는 날이 앞에 놓이면, 능숙한 솜씨로 나들이 가방을 챙겨 들고 서둘러 떠난다. 하루 25시간을 함께 하노라니 티격태격하는 날도 많지만, 그 방향으론 찰떡궁합이어서 1박에서 3박으로 일주일에서 한 달살이까지 앞날의 프로젝트는 야무지다.
썩 물러나지 않는 코로나가 아직도 원수 같아서, 간식거리와 따끈한 건강차까지 부지런히 준비하여 웬만하면 자동차 안에서 식사를 하곤 하는 덕에, 코로나 3년 차에 콧구멍에 면봉이 한 번도 안 다녀갔는지 모른다.
시쳇말로 사회성이 부족한 겐가?
Anyway
마음만 청춘이지 월요일을 휴무일로 정해 놓은지 일 년이 다 되어가건만, 때마다 코미디극을 펼치곤 하는 꼴이 너무 우스워 눈물이 다 난다.
“아니, 일요일에 웬 사람들이 식당에 이리 많을까?”
“오늘 월욜이거든요~”
“아, 그렇지!”
“휴일인데 학교에 아이들이 잔뜩 모여있네”
“오늘 월욜야”
“으, 참!”
“지금 시간에 마트 가면 사람들이 많겠지요?”
“없어요, 월요일 이라꼬”
“으악!”
자꾸 반복되니 ‘언제나 즐거운 내가’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핸드폰에다가 두 시간 간격으로 ‘딩동, 월요일입니다’를 다시 울림으로 저장해 놓았다. ‘뭘 그렇게까지..‘ 라면서 남편이 눈을 곱지 않게 뜨지만 ‘딩동, 월요일입니다’가 울릴 때마다 자지러지게 웃는다.
“아, 이 사람아 지우라니까.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아니긴, 방금도 공휴일 요금 내면서 수목원 입장권 달라고 해놓콩..’
웃는다, 너무 웃으니 눈물이 난다.
정말로 우스워서 그러는 건지 애매모호한 서글픔을 덮으려 그러는 겐지..
서로를 못 알아보는 날도 오지 않을까, 은근 염려증이 발동하기도 하고.
아무러면 어때?
이 나이에도 제철을 못 찾고, 온종일 ‘딩동, 월요일입니다’를 남편 코앞으로 울려대며, 그를 웃게 하다가 성질나게 하다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깔깔거리며 유쾌한 하루를 보낸다.
요일쯤이야 좀 헛갈리면 어뗘? 괜찮아.
유능한 비서 내 폰이 ‘딩동, 월요일입니다’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21세기에 살고 있음에 나는 세월 앞에 흔들리지 않으련다.
첫댓글 와우!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딩동! 월요일입니당!
즐겁게 사시는 모습에서 행복함이 풀풀 묻어납니다.
글이 잘 읽혀요. 아주 재밌어요. 두분 재밌게 사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