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의 성명 기념일
1.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의 성명’ 축일: Dulce Nombre de María*
*스페인어로는 달콤한, 감미로운, 자상한 이라는 뜻의 Dulce를 사용한다.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의 성명’에 대한 신심이 수도회 안에서 퍼져 나간 것은 시몬 데 로하스 성인의 공로가 크다. 성인은 ‘그레고리오 15세’ 교황을 통하여 카스티야 지역 공동체를 시작으로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의 성명’ 축일을 지냈으며 이후 스페인의 관구 전역에서 전례를 지내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개혁 삼위일체 수도회’에는 1640년에 전례를 본격적으로 지내게 되었다. 1683년 당시 삼위일체 수도회의 3회원(Terciario)이었던 ‘인노첸시오 11세 교황’의 공포(公表)함으로 보편교회의 기본 전례에 속하여 모든 교회 안에서 ‘마리아의 감미로운 성명’ 축일을 지내게 되었다.
2.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의 성명’에 관한 ‘클레보르의 성 베르나르 아빠스’의 강론에서
‘성 베르나르 아빠스’의 강론에서는 성모님의 이름 마리아의 의미가 ‘바다의 별’이라고 언급을 한다. 마리아는 순수한 별 그 자체이시며 그 빛을 품은 깨끗한 동정을 유지한 채로 성자 예수님을 낳은 분이다. 마리아의 별빛은 모든 세상을 비추며 심지어 깊은 어둠 속의 심연까지 비춰주는 그런 별빛이다. 지상을 비추는 별빛으로 인간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별빛이요 악의 집합체라 상징하는 바다를 비춰주는 별이라 부른다. 그렇기에 성인은 성모 마리아의 이름을 쉼 없이 외치고 찾아야 함을 강조하신다. 성모님께서는 절대로 낮은 자들과 핍박받는 이들 그리고 불쌍하고 가여운 이들의 울부짖는 목소리를 저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의 가여운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는 분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성인은 반복적으로 성모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찾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3. '시몬 데 로하스' (San Simón de Rojas) 성인의 성모 신심
시몬 성인의 성모 신심은 가족의 영향을 받아 성장하게 되었다. 특히, 가족을 통해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어린 시몬이 겨우 14개월 됐을 당시 처음으로 스스로 뱉은 말이 ‘아베 마리아’라고 할 정도로 성모 신심이 대단하였다. 그렇게, 가족의 돌봄 속에서 언제나 가톨릭 교회에서 성모님의 축일을 지낼 때면 빠짐없이 참석을 하여서 성모 신심 예절에 참석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모 찬가를 외워서 틈만 나면 찬가를 읊었다고 한다. 성인이 생전에 취미이자 자신의 삶의 낙은 성모 성지를 방문하고 그 곳에 머물러서 기도와 찬미를 드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성인이 신학 공부를 하고 지식의 깊이가 깊어질 즈음 성모님께서 구원 역사와 가톨릭 교회 안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복음 권고인 가난 순결 순명을 성모님의 모범에 따라서 살아가려 노력하며 성모님께서 모든 것을 예수님을 위해서 내맡기신 것처럼 시몬 성인도 그렇게 온전히 내 맡길 수 있도록 주님께 청하였다고 한다. 이런 극진한 성모 신심으로 다져진 성인의 삶은 ‘마리아의 감미로운 성명의 시종 신심 단체 ’ (La Congregación de Esclavos de Dulcícsmo nombre de María)[1]를 창립하여 삼위일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동정 마리아께 찬양을 드리며, 가난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성인에게 있어서 성모님의 착실한 시종이 된다는 것은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응답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Totus tuus”
시몬 성인은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다양하게 표현하였다. 그중 하나가 언제나 어디서나 당신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아베 마리아”이다. 그렇다 보니 성인을 칭하는 호칭 역시 “아베 마리아 신부님”이라고 불렸다. 그 뿐만 아니라 “아베 마리아”라는 문구가 기록된 성모님 상본을 만들어 많은 곳에 배부하였다고 하며, 72개의 알을 흰 끈에 엮어 만든 묵주를 만들기도 하였다. 여기서 72라는 숫자는 시몬 성인의 시대에 성모님께서 72세까지 사셨다는 전승이 전해 내려져 왔기에 이 숫자는 성모님의 ‘승천’과 ‘무죄잉태’를 상징한다고 한다. 성인의 지극한 성모 신심에 따라 1622년 6월 5일 사도좌의 인가를 받아 공식적으로 ‘마리아의 감미로운 성명’(Dulce Nombre de María)을 전례 안에서 지내게 되었다.
성인께서는 9월 29일에 돌아가셨다. 하지만, 성인이 걸어온 삶의 여정을 알고서 많은 이들이 성인의 성덕과 수도자로서 살아온 덕행들을 기리기 위해서 12일 동안 마드리드의 유명 인사들이 방문하여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특히 교황 대사 역시 성인이 걸어온 성덕의 삶에 감명을 받아 일찍이 성인품에 오를 절차를 준비하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클레멘테 13세 교황을 통하여 1766년 5월 19일에 복자 품에 올랐으며, 1988년 7월 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를 통하여 성인품에 오르게 되었다.
참고) 스페인의 유명한 극작자인 로페 데 베가스 (Lope de Vegas / 1562-1635)는 성모 신심을 전파하고 발전시킨 성 베르나르 데 클레르보 성인과 톨레도의 일데폰소 성인과 같은 공적의 인물로서 묘사를 한다.
[1] Congregación이라 적혀 있지만 복음권고를 서원하고 살아가는 실제적인 축성생활이 아니라 평신도들이 모여 활동하는 단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