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Invictus” 를 보고….
영화에 관한 나의 생각은 이것이다. “때론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가, 책 100권을 읽는 것보다 더욱 큰 감동과 교훈을 줄 수 있다.” 이런 나의 생각에 큰 힘을 실어 주었던 영화를 요즘 만나게 되었다. 내가 영화를 좋아 하는 이유는, 영화를 제작한 감독의 의중을 꿰뚫어 보는 재미와 아울러 감독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에게 다가오는 메시지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는 영화는 다름아닌 “Invictus” 이다. 이 영화를 통해 내가 얻을 수 있었던 교훈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l “진정한 리더는 모범을 보이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l “과거의 유산처럼 남아 있는 슬픈 감정이나 아픈 상처를 가진 사람은 새로운 일을 할 준비가 안 된 사람이다.”
l “포용은 용서가 주는 선물이다.”
l “평범한 사람은 오늘을 바라보지만, 위대한 사람은 내일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Invictus” 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이었던 만델라 이야기다. 그는 인권 운동가이며 정치가 였으며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사람이었다. 1918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출생하였고, 1942년에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2년 뒤 아프리카민족회의에 가입하였다. 그는 1956년 반 인종차별 활동으로 인해, 내란죄로 구속되었고, 1962년에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그는 27년간 중죄인 형무소인 “로벤아이랜드” 에서 복역하였고, 1990년 석방된 뒤 “다인종 남아프리카” 건설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1994년도 최초의 민주 선거에서 최초의 유색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1999년 까지 재임했다.
이 영화의 시작은 그가 재임하기 시작했던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처음 대통령으로 부임했을 때, 대부분의 남아프리카 백인들은 만델라의 피의 숙청을 내심 두려워 하고 있었다. 그 동안 백인들은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각 주요 요직에서 군림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흑인들의 인권과 삶의 가치를 철저히 말살하였기 때문이다. 만델라 역시 암울한 역사의 가장 큰 피해자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만델라가 대통령 궁에 입성하는 그 날, 요직에 있는 백인들은 서둘러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만델라는 불러 모아서 연설을 하였다.
“지금 당신들이 나가시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당신들의 권리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신중이 생각한 후에도 새 정부에서 일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지금 당장 떠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두려워서 짐을 싸고 있다면, 또는 여러분들의 서로 다른 언어들이나 피부 색깔이 신경이 쓰여서 그렇다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남겨진 것들은 남겨진 것 들 뿐입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이제는 미래를 내다 봅시다. 우리는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기꺼이 여기에 남아 준다면, 이 나라에 큰 봉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보여준 진정한 관용이었다. 자신을 핍박하고 억압했던 사람들 중, 단 한 사람도 그는 복수의 희생양으로 삼지 않았다. 다만 만델라는 그들의 자리를 그대로 보존 시켜 주는 대가로 최선을 다하여 새로운 정부에 봉사할 것을 당부하였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백인들에게 조차도 자신의 경호 업무를 기꺼이 맡겼다. 어찌 보면, 만델라가 가장 두려워 했던 적은 자신을 반대하는 백인들보다는 자신을 지지해 준 흑인들 이었을지 모른다. 역사상 처음으로 떨리는 손으로 투표권을 행사하여 만델라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흑인들이, 만델라가 자신들의 한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기대 였을지 모른다.
드디어 그 기대의 시작이 “스프링복스팀”을 해체 하자는 결의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프링복스팀”은 남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럭비 국가 대표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스프링복스팀”은 남아프리카의 모든 흑인들에게는 인종차별의 상징이었다. 이 럭비팀의 역사, 칼라, 로고, 문형 할 것 없이 흑인 들에게는 다만 부유한 백인들 만의 전유물로 인식되었다. 그 결과, 흑인들은 오로지 그 누구하고 경기를 하던 간에 자신의 조국 팀인 “스프링복스팀’이 게임에 패하기 만을 응원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스프링복스”는 하는 경기마다 패전에 연속이었다. “스프링폭스팀” 절대적인 지지자인 백인들조차도 그들이 이길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사실이 이러하다 보니, 만델라를 제외한 모든 지도층의 흑인들은, 백인들의 상징인 “스프링복스”을 완전히 해체하고, 흑인들만의 새로운 팀을 만들려고 시도하였다. 오직, 흑인들 중에 한 사람, 만델라 만이 그것을 반대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럭비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남아프리가 공화국에 있는 모든 백인들의 정신이요, 자존심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고 그들 역시 그 나라의 국민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그들에게 빼앗을 경우, 다 민족 국가인 남아프리카의 화합과 미래는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 다는 것을 그는 충분히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남아프리카는 그 어떤 획기적인 정책이나 투자로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것 보다, 서로 다른 민족과, 다양한 문화와, 다른 언어와 사회 계층의 화합을 일구어 내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과제였다. 오직 만델라 만이 그것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이 럭비였다.
국민들의 대화합과 용서와 화해를 이끌어 내는 도구로 럭비를 사용한 것이다. 그가 원래부터 럭비라는 스포츠에 매료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럭비에 매료시켰다. 모든 국민들이 럭비를 통하여 인종간의 일치 단결의 중요성에 대해서 스스로 학습하기를 간절히 바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스프링옥스팀”의 경기결과 였다. 만델라의 바람은 그 다음해인 1995년에 럭비 월드컵이 열리는 시점에 맞추어서 학습의 효과를 기대하였는데, 불행하게도 그의 팀은 최악의 팀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는 럭비 국가대표팀의 주장 “프랑소와”를 개인적으로 대통령 궁에 초대하여, 리더쉽에 대한 철학이 무엇인지? 에 대한 그의 견해를 물어 본다. 프랑소와는 말하기를 “스스로 모범이 되어서 이끈다”고 하였다. 하지만 만델라는 “어떻게 팀원들을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잘 이끌 수 있겠는가?”라고 채근하여 물어 본다. 그리고 스스로 대답하기를 그것은 “고무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위대해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고무시킬 수 있겠는가?” 라고 다시 물어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스스로 고무시켰던 두 가지 경험담을 프랑소와에게 말해 준다.
하나는, 삶의 마지막 종착역 같았던 로벤아일랜드의 어두운 인생 길에서, “희망”이라는 단어는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느껴졌을 때, 만델라는 빅토리아 시대의 시에서 “고무시키다”라는 단어를 찾아 내어 인생의 새로운 희망의 불을 다시 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인종간의 분열과 계층간의 반목으로 남아프리카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울 때 그는 “아프리카의 축복” 이라는 노래로 자신이 새롭게 일어 설 수 있도록 고무 시켰다고 하였다.
프랑소아는 비로서 만델라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다음 해에 열리는 럭비 월드컵의 우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델라는 럭비 월드컵의 우승을 통하여 국민들을 고취시키기를 원하였고, 무너진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이었다. 결국 “고무 시킨다”는 의미는 “각자의 가능성을 뛰어 넘는다”는 것이었고, 그 과제가 “스프링옥스팀”에게 내려 졌던 것이다. 결국 남아프리카의 미래가 “스프링옥스팀” 의 올림픽 결과에 달려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대통령과의 만남을 통하여 프랑소아는 감동되었고 고무되었다. 결국 “스피링옥스팀”의 주장인 프랑소아의 변화의 시작이 그 무너져 가는 팀을 재건하는 틀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주장과 더불어 팀원들이 변하기 시작하니 훈련에 임하는 자세와 경기에 임하는 자세가 다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그것이 경기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고무시킨다”는 것은 이렇게 어떠한 훈련 프로그램이나 강도 높은 연습훈련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전염되는 것이다. 만델라로부터 주위의 측근들 그리고 럭비 팀 주장 프랑소와 팀원들이 고무 되면서, 그 열기가 전 국민들에게 전염되기 시작한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남아프리카가 럭비 월드컵에서 우승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감독의 영입이나 선수의 교체 없이, 만년 패배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그 팀원들로부터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일구어 냈다.
그리고 우승 보다 더욱 값진 것은, 남아프리카 국민들의 일치와 단결 그리고 화합의 가치가 얼마나 귀중한 지를 깨닫게 하고, 학습하게 한 것이다. 이렇게 ‘고무시킨다’는 것은 각자의 가능성을 뛰어 넘게 하는 것이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며, 분열로 시음하는 사람들에게 일치 단결의 아름다움을 배우게 하는 촉매제이다.
럭비 월드컵 마지막 날 프랑소아는 창 밖에 응시하며 깊은 고민에 잠긴다. 얼마 전에 그와 팀원들은 만델라가 27년간 갇혀 있었던 로벤섬을 방문하고 돌아 왔다. 그 때 프랑소아는 1평 남짓 한, 침대도 없이 매트만 깔린 방과 중노동에 시달리는 만델라를 환영을 보게 된다. 그는 그 환영을 도저히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독백하듯이 그의 여자 친구에게 말을 한다. “어떻게 그 작은 감방에서 30년이라는 세월을 견딜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자신을 집어 넣은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의 침대 위에는 만델라가 친필로 쓴 한 편의 시가 놓여 있었다.
“정복당하지 않는 내 영혼을 위해 내가 임하는 모든 신들에게 감사합니다. 나는 내 운명의 지배자요 내 영혼의 선장은…내 자신입니다”
– 윌리암 E 헨리의 시 “인빅터스”
아마도, 그날 밤 프랑소아는 그 시를 수 없이 되 뇌이면서, 마침내 만델라가 받았던 영감과 한 마음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그날 아침 그라운드에서 무엇을 위해 뛰어야 하는지, 왜 뛰어야 하는지, 어떻게 뛰는 것이 최선인지를 알고 그의 땀방울로 그라운드를 누볐던 것이다. 마침내, 그는 마지막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6만 3천명의 관중들의 힘이 없으면 우승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아나운서의 코멘트 대신에, “우리는 6만 3천명의 관중이 아니라, 4천 3백만 명의 온 국민들의 지지로 우승할 수 있었다” 라고 흥분된 멘트를 날린다. 결국 프랑소와는 만델라가 국민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그 한마디를 자신을 입으로 대신 할 수 있었다. 이 한 마디가 만델라가 보여준 관용에 대한 값진 열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