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1 - 22
포루트망의 짧은 망중한에서 깨어나
세 시간 정도의 버스를 타고 저녁 7시쯤 리스본Lisboa에 도착했다.
스페인 중부 알바라신 산맥에서 흘러내려 광대한 스페인 땅을 적시고
대서양에 이르기 전 강 하구의 리스본에 이른 테주강Tejo River(테구스강,타호강)을 건넌다.
조금씩 물들어가는 석양의 환대를 받으며
테주교 다리를 건너 포루투갈의 수도 리스본에 들어선다.
대항해시대를 주도하며 신대륙 식민지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영국 런던과 함께 황금기를 구가하던 800년 역사의 리스본은
1755년 11월 1일 리히터 8.7의 초대형 지진으로 한 순간에 무너졌다.
인근 대서양 해저에서 발생한 지진과 쓰나미로
40,000명이 사망하고 온 도시가 화재로 불탔다.
지중해 건너 모로코에서도 쓰나미로 10,000여명이 사망했다.
마침 가톨릭축제일을 맞아 성당에 모여있던 신자들이 가장 큰 참화를 입었고
왕궁 등 고건축과 대항해로 얻은 각종 지도와 지적자료, 물산 자료는 물론
도서관의 수만권의 장서, 루벤스, 카라바조 등의 그림들이 불탔다.
거대하고 화려했던 성당과 궁전, 부자들의 집이 무너져내리고,
성당에서 영롱하던 촛불들은 대화재의 발화점이었다.
종탑의 종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머리 위로 쏟아지고,
대화재를 피해 강가와 해변가로 달려간 사람들을 기다린 건 15m 높이의 쓰나미였다.
감옥이 무너지자 범죄자들이 쏟아져나와
약탈 강도 강간으로 도시를 더욱 처참하게 무너뜨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도시에서 쫒겨나 외곽 언덕에 자리잡은
창녀와 술꾼들의 집창촌만 화를 면했다.
막대한 피해를 입은 리스본은 수십년이 넘는 재건 과정에서 재정을 소비하고
포루투갈은 마침내 제국적 지위를 상실하였다
.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계획적인 도시설계, 내진건축 등
근대적이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도시건축의 노하우를 쌓았다.
유럽의 근대는 리스본에서 시작되었다고 평가될만큼 위대한 재건의 시간을 가졌다.
현실의 리스본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태주강변의 중세 16세기 성 빈센트 기념탑으로 세워진 벨렝탑은
'테주강의 귀부인'으로 불린다.
귀부인의 드레스 자락처럼 늘어진 모습이다.
1515년 바스쿠 다 가마의 원정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벨렝탑은
후일 세관 겸 요새 때론 감옥으로도 쓰였다.
서양 관굉객들이 한 시간씩 줄을 서서 입장하는 제르니무스 수도원,
너무 달아서 당뇨인에겐 위험한 에그타르트 등이 있지만,
가장 리스본다운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은 태주강변의 범선모양 기념탑이다.
대항해시대를 연 해양왕 엔리케왕자의 사후 500년을 기념해
1960년에 만든 이 기념탑은
포루투갈 출신 바스 쿠 다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떠났던 그 자리에 서 있다.
이로써 대항해의 시대가 시작되고
페드루 카브랄은 브라질을 발견하였으며
마젤란은 서쪽으로 나아가 남미 끝에서 태평양을 건너 필리핀에 닿았다.
이로써 포루투갈이 미증유의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황금기의 포루투갈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탑에는 이들 항해가들과 선교사 등 여러 인물상이 새겨져 있는데
맨 앞은 그 대항해시대를 주도했던 엔리케왕자가 서있다.
리스본 여행의 진짜 매력은 시내 골목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리스본의 속살을 맛보는 툭툭이 여행인 것 같다.
골목골목을 휘돌아 언덕 위 전망공원에 이르는 톡톡이 여행은 리스본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도시민의 삶은 어디나 비슷하다.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운 그들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시민들의 표정과 몸짓이다.
리스본의 10월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거리를 채운다.
시민의 숫자보다 더 많아 보이는 관광객들은 전망대에 올라 옛 영화의 흔적을 찾기도 하고
무리지어 다니며 맛집을 탐식하고 선물방을 기웃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