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슬렁 구로마을 답사 기록
구로마을 지형
구로는 남서쪽 국사봉에서 시작해 왼편 생금봉 줄기를 청룡등과 오른편 백호등에 감싸여 북동쪽 매봉을 바라보고 있는 항구마을이다. 북향이지만 왜구의 침략과 약탈을 생각할 때 바다에 노출되지 않는 위치다. 1936년 일제 때 마을앞 바다가 간척지가 되면서 반농반어 마을이 되었지만 1800년대까지는 조선시대 계량진으로 불렸던 큰 배가 드나들던 항구였다.
마을의 주산인 국사봉은 생금봉에 비해 낮지만 마을의 위치로 주산이 되었다. 강진만 건너편 해창에서 한양으로 떠나는 세곡선을 띄울 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해창과 국사봉을 경계로 일제 강점기 대대적으로 간척사업을 벌린 내해와 외해로 구분된다. 내해는 일제 강점기에 간척이 거의 진행되어 농경지화 됨으로써 광활한 모래톱이 사라져 이후 강진만의 조개와 채취는 구로를 경계로 외해를 중심으로 진행되게 된다.
구로마을 이름
구로의 이름은 밀물이 들 때 갈매기와 백로가 많이 몰려와 춤을 추어서 구로라 했다는 설과 강진에서 마량을 가던 옛길이라는 뜻에서 구로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옛길은 후대에 부여된 의미이고, 새와 관련된 유래가 가까울 듯하다. 실제로 다른 지명을 보면 구로를 별명으로 장치동이라 부르고, 국사봉에 이르는 완만한 비탈은 걸치기라 불러 수풀이 우거져 꿩이 숨고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앞 큰매봉산 작은매봉산에 매가 살아서 사냥을 했다고 한다. 실제 마을 주변의 생태환경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경계의 쓰레기
수문을 지나 선창 가는 길은 산자락과 해변에 쓰레기가 넘쳤다. 아무도 돌보지 않았다. 버려지고 날아오고 밀려오고 쌓여 만들어진 쓰레기더미들이 황폐한 경계를 떠올리게 한다. 제 살림의 경계 안쪽은 가꾸지만 밖은 관심에서 버려진 사각지대다. 공간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듯 권리를 박탈당한다. 인간의 능력이 강해질수록 인간은 자연과 공간에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농어촌의 경계는 황폐한 공간을 떠오르게 한다. 내부 식민지로서. 인간의 생활권이 상품에 갇히고 축소된 뒤로 소외와 방기는 더욱 강화되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한 공간에 대한 무시. 이것이 폭력적 존재 방식이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여러 가지 나물과 넝쿨들이 서식한다. 인상적이었다. 삼잎국화, 유럽전호는 귀화식물로 잘 자리 잡고 있었다. 흔한 찔레도 인동초도 변경의 서식지에서 저희들끼리 잘 살고 있었다. 귀화니 토종이니 인간의 오만한 인지폭력일 뿐이다.
만약 우리가 변경지대의 쓰레기까지 알뜰하게 청소하고 보살필 수 있다면 문명은 비로소 균형감각을 회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 그런 날이 올까?
미국쥐손이 군락
일행과 쑥채취를 위해 봐둔 묵정밭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밭이 쑥 대신 미국쥐손이 밭이었다. 내가 무엇에 홀렸단 말인가? 사람은 제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더니, 분명 사전답사를 하면서 나는 미국쥐손이밭을 지나며 참 쑥이 알맞게 소복하게 잘 자라있다고 생각했고 이곳에서 사람들과 쑥을 채취하리라 결심했다. 그런데 놀랍다. 보고 못 보다니. 결국 자기의 집착이 자기를 속였다.
계곡 무덤
그래서 찾아간 계곡 무덤 주변엔 엉겅퀴, 머위, 개망초, 둥굴레 등 다양한 나물류들이 있었다. 더구나 산자고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 약초인 삽주까지 있지 않은가? 이런 천하의 명당이 있다니. 식물들이 자신들의 서식지를 찾아 자리 잡고 살아가는 모습은 늘 경이롭다.
이곳은 숲 속의 생태교란지인 인간의 무덤이다. 숲을 밀고 무덤을 썼지만 주변의 대반과 울창한 숲 그늘에서 야생의 식물들이 침투해 새로운 서식지를 개척하고 있다. 숲의 교란이 누군가에게 기회다. 지금 전국에 번식 산불은 많은 인명피해를 일으킨 비극이지만, 우리가 인위적으로 조림을 하지 않는다면 변화한 기후에 새롭게 적응하는 종들의 각축장이나 터전이 되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좋은 것이 나쁜 것이고, 누군가에게 나쁜 것이 좋은 것이다. 오직 존중하며 최선을 다할 뿐이다.
사람이라고 왜 그렇지 않겠는가? 경쟁만이 살 길이 아니라 제가 맞는 길과 방식의 삶을 열어 살면 된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이 경쟁만으로 살지 않는다. 제게 맞는 환경을 찾아 가서 가족을 이루고 산다. 자연에는 우연의 법칙이 작용한다. 우리는 인지범위 안에서 필연의 세계에 살고 싶어하지만 우리의 인지범위를 넘어서는 더 큰 필연의 법칙 또한 우리에게 작용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우연의 법칙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생각한다. 동시성 원리처럼 마치 기다렸다는 듯 찾아온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 계곡 무덤의 풀밭이 그랬다.
그러나저러나 삽주의 마른 꽃밭침은 왜 이렇게 아름다운가?
들독
느티나무와 멀구슬 고목이 어우러진 마을 정자 유선각에는 아기만한 들독이 있다. 예전 농사짓던 시절엔 이 돌을 들어야 1:1 품앗이 일꾼으로 인정했다고 한다. 들독은 신석기 시대부터의 전통일 것이다. 마을 안에 있는 청동시시대의 유물인 입석과 더불어 남성의 신앙의 상징이자 노동 공동체의 입사식 수단이었을 것이다. 일행이 힘껏 들독을 들었지만 완전히 들어올리기는 어려웠다. 봄에는 만만했는데 막상 돌을 감아 안으면 그 무게가 쇳덩이 같았다. 이 돌을 안아넘기려면 그야말로 몸과 마음을 한껏 집중해 온 힘을 다 써야 했을 것이다. 순간이지만 자기를 극복하는 집중과 절박이 아니라면 어림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련을 과연 마을장정들은 다 넘어섰을까? 궁금했다. 그런 힘을 필요로했던 사회가 결코 호락호락한 사회는 아닐 것 같았다.
유선각 목침
유선각에는 목침 네 개와 양은 쟁반이 있다. 바닷바람이 시원한 언덕에 위치해 여름이면 사방이 확트인 데다가 바닷바람까지 시원해 최고의 피서처가 될 거 같다. 목침을 하나씩 차지하고 여기저기 누워 낮잠을 즐길 어르신들이 눈에 선하다. 쟁반엔 수박이나 막걸리 술판이 벌어지리라. 마을 공동체의 상징과 같은 장소다.
바람 많은 꽃샘추위 아침에 돌아다니다 돌아오니 피곤했다. 바람도 햇살도 피곤하지만 익숙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