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막걸리 빚는 배다리술박물관을 다녀와서
요즘 막걸리가 유행이다. 드라마나 영화, 음악 등의 대중문화의 한류 열풍에 늦게나마 올라타서 막걸리가 가까운 일본 같은 외국으로도 퍼지고 있다고 한다. 냄새가 날뿐만 아니라 다음 날 아침 고약한 숙취로 기피되던 게 엊그제 같은데(내가 처음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때만 해도 막걸리는 인기종목이 아니었다), 연일 드높아져만 가는 막걸리의 위용을 신문과 방송에서 내보내는 통에 사람들이 다시금 주목하게 되고, 그러면서 막걸리가 또 뜨게 되고 그런 식이다.
이번에 소개할 곳 역시 막걸리를 주제로 한 배다리술박물관이다. 박물관이 그렇게 크거나 대단하진 않지만 서울에서 그렇게 멀지만도 않아서 부담없이 한 번 쯤 바람쐬러 가볼만한 곳이다. 박물관의 관람 등은 모두 무료지만, 거기서 먹고 마시는 술이며 안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가자.
차를 직접 운전해서 가면 더 신나겠지만, 녹색성장에 보탬도 될 겸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어렵지 않다. 수도권 전철 3호선 원당역 6번출구에서 나온 방향 그대로 걸어가면 된다. 배다리술박물관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다.
앞서 말한대로, 원당역 6번 출구에서 그대로 걸어오다보면 이런저런 농원들을 지나서 배다리술박물관이 나온다. 윗 사진은 길에서 본 것이고, 아랫사진은 박물관에 좀 더 들어와서 찍은 사진. 박물관으로 꾸며놓았지만 결국 술집인 셈인데, 그래서 그런지 어딜 가나 술통이 보인다.
크고 작은 술통들.
소주고리. 맛이 변한 술이나 애초부터 마련한 술밑을 솥에 넣고 끓여서 증발해 오른 알콜 성분을 식혀서 흘러 내리게 하는 증류기이다. 여기서 술밑이란 쌀에 누룩을 섞어 버무린 지에밥을 말하는 것으로 술의 원료가 된다. 지에밥은 술밑으로 사용하기 위해 찹쌀이나 멥쌀을 물에 불려 시루에 찐 밥이다.
막걸리는 농주(農酒)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지금처럼 예전에도 막걸리는 서민들의 술이었는데, 농사일을 하다가 마시는 막걸리는 피로를 풀어주었을 것이다.
조금 어두운 조명의 다른 방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재현해 놓았다. 당시 서울시장이던 김현옥과 함께 골프를 치다가 오는 길에 막걸리를 한 잔 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막걸리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그 때 마신 막걸리가 괜찮았는지 항상 찾게 됐는데 그게 배다리막걸리였다. 사진에 잘 나타나진 않지만, 막걸리의 안주는 푸짐할 필요가 없다. 김치와 파전이면 족하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어정쩡하게 서있는 상(像) 옆에 펼쳐놓은 인근상회 재현. 배다리술도가의 시작이라고 한다. 인근상회에서 이런저런 잡화와 술을 함께 취급했었다. 1915년부터 이 곳에서 인근상회를 열었다는데 과연 지금은 보기 힘든 물건들이 많이 보인다.
고양시에 거주하는 장태수씨가 기증한 1929년 결혼식에 쓰인 술병과 술잔이다. 옛멋을 흉내낸 동네 술집에서도 봄직한 것들이지만, 술박물관에서 보니 더욱 그럴듯하다.
2층은 박물관이고 1층엔 술을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다.
1층에는 2008년 4월에 이곳에서 열렸던 한국전통주축제의 흔적이 남아있다. 당장 집 가까이 있는 가게에 파는 술부터해서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술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박물관을 둘러보는데 한 10분에서 20분이면 족하다. 술을 만드는 도구, 술을 마시는 모습, 이 술과 관련된 에피소드 등을 봤으면 직접 한 잔 해봐야 할 터. 1층에는 술을 마시도록 자리가 마련돼있다. 안주로는 막걸리에 잘 어울리는 파전이나 감자전 같은 이런저런 전들을 만나볼 수 있다.
막걸리의 다섯 가지 덕 - 허기를 면하게 해줍니다. - 취기가 심하지 않게 합니다. - 추위를 덜어줍니다. - 일하기 좋게 기운을 돋아줍니다. - 평소에 못하던 말을 하게 하여 의사를 소통시켜 줍니다.
제목에 '통일막걸리'라고 한 이유를 밝힐 때가 된 것 같다. '박 대통령은 막걸리를 좋아함'으로 오랫동안, 그리고 자주 비춰져서 그런지 북한에서도 박 대통령이 막걸리를 즐겨마시던 것을 알게 됐고, 자연히 박 대통령이 마시던 그 막걸리에도 관심이 갔나보다. 그래서 고 정주영 현대명예회장이 방북할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박 대통령이 마시던 막걸리를 부탁했다고 한다. 뭐... 그 때부터 통일막걸리라는 별명도 얻었다.
끝으로, 배다리술박물관 뜰에 있던 산수유.
감히 술에 대해 뭐라고 말할 만큼 탁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막걸리들과는 뭔가 다른 맛이 있다는 것을 대번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가게에서 사는 막걸리들은 이미 효모균들을 살균처리 한 것이라 맛이 좀 덜한데, 여기서 파는 배다리막걸리는 빚은지 얼마 되지 않은 것들만 판다. 판매기간은 길어야 15일이고, 빚은지 이틀, 사흘째가 맛이 가장 좋다고 한다. 여기서 직접 마시고 올 수도 있지만, 아쉽다면 막걸리를 사서 나올 수도 있다. 한 병에 1500원이면 된다. 특히 네 병을 사면 들고가기 편하게 상자에 넣어주기도 한다.
막걸리가 조금식 그 저변을 넓혀가고 우리나라를 넘어서 외국까지 나가고 있지만 아직 과제는 남아 있는 것 같다. 막걸리의 영어식 표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도 정해지지 않았고, 표준화된 막걸리도 없는 것으로 안다. 물론 집에서 누구나 빚을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막걸리를 다양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지만, 술도 엄연한 문화자산이 되는 시대엔 '표준'이라는 것의 가치를 전혀 무시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요즘은 다양한 입맛을 고려해서, 쓰지 않은 막걸리, 단 맛이 나는 막걸리, 과일막걸리 등 다양한 게(감히 막걸리의 이단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온다고 하는데, 단맛, 쓴맛, 신맛, 떫은 맛, 시원한 맛(?) 등 오감을 자극하는, 원래 맛 그대로의 레알 막걸리를 원한다면 배다리막걸리를 추천한다.
|
출처: 국민권익 원문보기 글쓴이: 국민권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