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에서 2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하늘빛의 만밖으로 불쑥 솟아있는 작고 아름다운 섬 카프리는 나폴리를 찾아온 모든 여행객들에게 특별한 유혹으로 다가온다. 따사롭고 온화한 카프리의 기후는 나폴리에서 일몰시의 한기를 느끼는 것과는 달리 급격한 기온의 변화없이 한결같다. 여름에는 당일 여행객으로 붐비니 조용한 카프리섬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 이들은 봄이나 가을에 카프리를 방문하도록 하자.
'카프리'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 "Kapro"에서 나온 것으로 멧돼지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카프리 섬의 화석에서 발견되는 것이 이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BC29년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카프리를 방문한 후 그 아름다움에 반해 카프리보다 훨씬 큰 규모의 이웃섬을 포기하면서까지 나폴리로부터 사들였다고 한다. 그 다음 왕위 계승자였던 티베리우스 황제가 올림푸스의 12신에게 바친 12개의 저택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카프리에는 850여종의 다양한 꽃과 식물, 나무가 자라고 있어, 섬 어느 곳을 둘러봐도 아름다운 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많은 해양생물의 보고이기도 하고, 많은 종류의 텃새들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카프리의 풍경은 아름다운 자연과 예쁜 집들이 어우러져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언덕, 절벽, 올리브 농장, 포도원과 정원의 테라스 앞에는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지중해 바다가 펼쳐져 있다. 저멀리로 나폴리와 베수비오산이 어렴풋이 보이고 페리와 고속정이 만에서 지그재그로 움직이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도보로 교회, 역사적인 별장이나 대저택, 유적 등이 자리하고 있는 카프리 곳곳을 돌아볼 수 있으니 활동적으로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여행객들에게는 정말로 멋진 곳이다.
섬 동쪽에는 카프리섬에서 가장 큰 마을 카프리 타운(Capri Town)이 있는데, 페리와 고속정이 도착하는 마리나 그랑데 항구에서 타운 중심부까지 오르막으로 되어 있다. 아주 좁은 절벽길을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올라가면 해발 299m로 가파른 언덕인 아나카프리(Anacapri) 정상에 올라가기 위한 리프트를 타는 곳이 있다. 리프트는 1인용으로 10여분정도 올라가는데 그동안에 아름다운 바다와 동화같은 집이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카프리섬은 너비가 1.6km, 길이가 2km로 도보로 여행이 가능하며 거주지와 관광명소를 연결하는 미니버스를 이용해도 그리 비싸지 않다. 페리를 타면 소렌토에서 40분, 나폴리에서 8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나폴리에서 고속정을 탈 경우에는 50분만에 도착할 수도 있다.
단아한 주택가와 교회가 있는 아나 카프리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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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그랑데(Marina Grande)가 있는 섬 동쪽편에 카프리 타운이 형성되어 있다면 섬 서쪽편 솔라로산 경사진 아래편에 그리스의 선박 대부호였던 오나시스가 사랑했다는 마을 '아나 카프리(Ana capri)'가 있다.
이탈리아어로 '아나(Ana)'는 '두번째'라는 의미다. 그러니 첫번째 마을인 카프리에 이어 두번째 마을이 바로 아나 카프리인 것이다. 즉, 카프리 섬에는 단 두개의 마을이 있는 것이니 그만큼 작은 섬이라는 말도 된다.
아나 카프리는 조용하면서도 심플하고 단아한 곳으로 주택가를 형성하고 있으며, 골목길로 접어들면 1719년에 만들어진 멋진 산 미켈레 교회가 있다.
신비로운 푸른빛, 푸른 동굴(Grotta Azzurra) |
비단 카프리 섬에서 뿐 아니라 이탈리아에서도 신비하고 놀라운 볼거리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길이 54미터, 높이 30미터, 넓이 15미터의 동굴안은 푸른 동굴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중해 바다물에 빛이 들어와 온통 푸른빛에 감싸여 있다. 동굴 어디에서 요정이 나올법한 그런 분위기이다. 동굴안으로는 작은 보트를 타고 들어가는데, 뱃사공이 푸른 빛이 들어오는 고요한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1826년 8월 푸른동굴의 입구가 재발견된 후 이곳은 카프리 섬 아니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그 이전까지 인근 마을 사람들은 동굴안에는 마녀와 괴물이 산다고 믿었기 때문에 접근하지 않았었다. 푸른동굴을 둘러보는 보트는 마리나 그란데와 마리나 피콜라 항구에서 출발한다.
평화롭고 고요한 소렌토
"돌아오라 소렌토로(Come back to Sorrento)"와 "오! 솔레미오(O sole mio)"는 모두 세계에서 가장 친숙한 가곡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폴리만의 색조와 친숙한 소음, 그리고 오렌지 숲으로 쌓인 소렌토는 역사와 예술을 자랑하는 평화와 고요의 천국이다. 시인 토르쿠아토 타소(Torquato Tasso)가 여기서 태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소렌토(Sorrento)는 소렌타인 반도의 북서쪽에 위치한, 나폴리 근처의 도시이다. 예전부터 나폴리와 인접한 해안 휴양지로 명성이 높았다. 절벽 위에 지어진 이 작은 도시에서 맑은 빛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아름답고, 풍요로움을 갖춘 가구와 그림 그리고 도자기가 진열되어 있는 코레알 박물관도 가봄직한 곳이다.
소렌토의 수공예 목조품과 치즈, 올리브유, 리몬첼로(limoncello)라 불리는 지방 특산품을 제외하고 주요 산업은 관광업이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출렁이는 아름다운 마을 포지타노 |
소렌토에서 버스틀 타고 동쪽으로 50분 정도 이동하면 에메랄드빛 바다 해안가 산지 경사지에 빼곡히 가옥이 들어선 아름다운 마을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포지타노(Positano)다.
벼랑끝에 빽빽히 들어선 형형색색의 자기자기한 집들은 너무 예뻐서 이곳은 세계 유명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남부 지중해의 기후를 지니고 있는 이 마을의 주요 생산품은 바로 레몬. 그래서 레몬향수, 레몬비누, 레몬샴푸 등이 주요 쇼핑 품목이다. 통상적인 레몬 비누 하나 가격은 2유로 정도.
1997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변마을 아말피 마을 |
포지타노에서 아말피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더 이동하면 포지타노 만큼이나 아름다운 아말피 마을이 나타난다.
가파른 해안 절벽과 경사지에 빼곡히 들어찬 아기자기한 집과 교회들이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는 모습과 그를 밑배경으로 깔고 멀리 바라다보이는 에메랄드빛 지중해는 유럽 전역의 사람들을 이곳 아말피로 모여들게 한다.
아말피는 1999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50곳’ 중 지상낙원 첫번째로 뽑힌 곳이기도 하다. | |
화산폭발로 잊혀졌던 로마제국의 도시, 폼페이
서기 79년 8월 번영하던 로마제국의 도시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도시전체와 2만여명의 주민이 화산재에 파묻히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비운의 도시이다. 베수비오 화산은 폼페이가 완전히 화산속에 덮여버리는 폭발 이전에 몇차례 경고를 했었지만 폼페이 사람들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한 순간에 손써볼 겨를도 없이 고대 이집트에서 볼 수 있는 미라의 형상으로 화산재에 뒤덮혀 최후를 맞게 되었다.
베수비오 화산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폼페이를 삼켜버렸을 때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폼페이는 로마제국의 어떤 도시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위락시설로 로마 귀족들 사이에서 인기높은 리조트 도시였고 농업, 상업도 발달해 있었다.
BC 62년 대지진으로 파괴되어 시민들이 힘을 합쳐 주택과 사원들을 재건해 겨우 재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것도 잠시 BC 79년 신의 분노라고는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베스비오 화산의 폭발로 고스란히 화산재 속에 묻히고 말았다. 강진을 동반한 베수비오 화산폭발로 분철한 화산재가 무려 1m가까이나 쌓였었고, 나폴리의 하늘을 검게 뒤덮었다. 교외로 도망치는 사람, 집안에서 잠잠해지길 기다리며 피신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내린 비로 인해 분출한 화산재와 용암이 응결하면서 거리 전체가 마치 찌는 솥과 같은 형상이 되면서 도시전체가 그대로 매몰되었던 것이다. 그 후 잔디와 덩굴식물들이 자라 그 자리를 덮게 되면서 폼페이란 도시라는 이름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그리고 1500년 동안 역사의 저편에 사라져 있었다.
17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조심스러운 발굴작업은 아직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유적과 유물들로 당시의 폼페이인들의 문화와 예술, 건축수준을 짐작할 수 있기에 충분하다.
폼페이가 로마제국으로 편입됬을때 로마인들은 폼페이를 지리적,지형적 특성에 맞게 고쳐나갔다. 자갈로 포장된 도로에 하수로가 있었기 때문에 보행자 도로를 조금 높게 올렸고, 포룸과 원형극장에는 보행자들을 위한 특별 구역을 지정해 교통소통을 원할하게 통제했다. 폼페이는 9개의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폼페이 시로 들어가는 관문 근처에는 여관과 마굿과, 병원이 이었고, 시내 중심 거리에는 선술집과 현재의 패스트푸드점과 같은 카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카페들은 로마인들이 공중 목욕탕에서 목욕을 마친후 간단한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폼페이 유적 발굴을 통해 드러난 하수시설, 목욕탕, 시장, 극장, 원형 경기장, 음식점 등 각종 시설은 2000년이라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현대의 그것과 비교해 떨어진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폼페이주변에는 당시에 덮였던 휴양도시인 폼페이와 더불어 Ercolando라는 마을이 존재한다. 이 역시 화산에 덮였던 도시로 폼페이와 더불어 많은 여행객들이 찾고 있다. 이밖의 네로황제의 부인이었던 popaea Sabina의 집이었던 Oplotis가 있어 고대로마양식의 건축양식과 프레스코와 모자이크 등을 볼 수 있다.
원형 경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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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남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원형극장은 로마에 남아있는 콜롬세움과 비슷한 모습이다. 이것은 BC 80년에 지어진 것으로 로마인들이 가장 좋아했던 여흥거리였던 노예 검투사들의 대결장으로 사용되었다. 원형으로 생긴 이곳은 폼페이의 전주민의 숫자인 20,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였다. AD62년 대지진후 복구작업을 했는데, 그때 쌓아올린 2미터 높이의 흉벽이 지금도 남아있다. 그리고 그 흉벽에 그려놓았던 사냥터의 모습과 컴투사들의 격투 모습의 그림들도 남아있다. 현재 발굴된 타원형 원형 경기장의 규모는 133미터, 102미터이다. |
마리나 게이트(Marina Gate) |
폼페이로 들어가는 여러 관문 중의 하나이다. 마리나 게이트라는 이름은 이문을 통과하면 바다가 나오기 때문이다. 보행자들은 계단을 이용해 입구를 통과하고, 마차 등은 오른편의 비탈길을 이용하였다. |
바실리카(Basilic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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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카라는 이름은 고대 로마에서 재판소이자 집회 등을 열 때 이용한 큰 건물을 부르는 말로 폼페이의 바실리카의 목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폼페이 바실리카는 시장이 열리고 회합의 장소로 사용된 곳으로 폼페이에서 가장 오래되고 그리고 중요한 중요한 공공건물이다.
초기 시장이나 회합의 장소에서 바실리카는 법원으로 그 기능이 바뀌어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판사 자리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판사가 재판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란에서 떨어져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베티의 집(House of the Vetti) |
폼페이 유적 중에서 제일 유명한 곳으로 두명의 부유한 상인, 아울루스 베티우스 레스티투투스( Aulus Vettius Restitutus)와 아울레스 베티우스 콘비바(Aulus Vettius Conviva)이 거주했던 곳이다. 비교적 잘 재건된 저택과 잘 보존된 아름다운 프레스코 벽화들이 당시의 높은 예술수준을 잘 보여준다.
도로에서 저택으로 들어오는 통로를 통해 들어가면 내부 정원처럼 꾸며진 아트리움이 나온다. 1층 건물에는 밖을 볼 수 있는 창문이 하나도 없는데 이것은 보행자들이 안을 들여다 보는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아트리움은 손님들을 맞이하는 회합과 어린이들의 놀이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아트리움에는 여러 용도로 사용되는 빗물을 모으는 수반(impluvium)이 있고, 창고와 침실, 서재 등이 아트리움을 둘러싸고 있다. 화덕과 집 밑으로 열기가 흐르는 관을 통한 과학적인 방법으로 난방을 했다. 수로는 도로의 수관과 몇몇 가옥은 설치되어 있는 관을 통해 물을 공급받았고, 하수 시설도 잘 되어 있었다. 정원에는 대부분의 집들이 그러하듯이 그림과 조상, 분수들로 꾸며져 있다. 저택 앞에 자리하고 있는 가옥은 점원들에게 임대해 주었을 거라 추측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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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미항 나폴리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See Naple and die)라고 누가 말하지 않았던가? 로마 테르미니 역에서 기차를 타고 차창 밖으로 이탈리아 남부의 전원 풍경을 느긋히 즐기면서 두시간을 달리면 평온하고 목가적인 도시 나폴리를 만난다. "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인 나폴리에서 그러한 마음이 든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폴리는 고대 그리스인이 이 땅에 온 이래 통치자는 몇번이나 바뀌었지만 남 이탈리아의 중심 대도시로 발전해 왔다. 각각의 시대의 소중한 유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부르봉가 시대의 산 카를로 극장(Teatro San Carlo), 이탈리아의 삼대 극장중의 하나로 17세기의 왕궁 Palazzo Reale을 시작으로 대성당인 두오모, 긴역사를 가진 도시의 거리 스파카 나폴리(Spacca Napoli), 안쥬가의 누오보성(Castel Nuovo), 카포디몬테국립미술관)Museo e Gallerie Nazionale di Capodimonte), 나폴리 국립고고학 박물관(useo Aecheologico Nazionale)등 유수의 관광지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또한 나폴리에는 2개의 섬이 있다. 카프리섬(Isola di Capri)과 이스치아섬(Isola d' Ischia)으로 나폴리만에서 페리로 1시간정도 걸리면 닿는 아름다운 섬이다 | |
국립 고고학 박물관(Museo Archeologio Nazionale) |
베네치아회화 최대의 콜랙션은 비잔틴에서 바로크에 이르는 5세기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14세기와 15세기의 베네치아파의 회화가 중심이 되는데 주요한 베니스의 작품들이 여기에 거의 소장되어있다.
이 박물관은 1,2층으로 나누어진 전시실에 폼페이, 에르콜라노 등지에서 발굴한 소중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폼페이에서 발굴한 "알렉산드와 다리우스의 싸움"이라는 모자이크화는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시청사의 정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585년에 건립되었다.
나폴리의 박물관에는 18세이하와 60세 이상에게는 입장료가 무료이다. 패스포트의 복사본을 소지하면 된다.
중앙역에서 지하철로 카부르 광장에서 내리거나 중앙역에서 42번 버스를 타면 된다. 월요일은 휴무이며, 09:00~14:00까지 개관을 한다. |
프랑스풍의 카스텔 누오보(Castel Nu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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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의 상징적인 존재로 '새로운 성'이란 뜻이다. 1282년 프랑스 앙주 가문의 샤를이 세운 4개의 탑을 가진 프랑스풍의 성이다.
15세기 때 스페인의 아라곤 왕국이 앙주가문을 격파하고 이 성을 개축하면서 오른쪽의 두 탑 사이에 개선문을 세웠다. 성 앞에는 파란 잔디가 깔려있어 나폴리 시민들의 편안 휴식처가 되어있다.
입구에 가까이에서 올려다보면 좁은 장식이 보이는데 이 것이 성의 중심부로 일부가 박물관이 되어 있다. 성의 내측에는 구형의 큰 대포의 탄알이 그대로 놓여져 있다. 큰 기둥와 이치형의 건물 모양이 아름답다. |
카스텔 델로보(Castel Dell' Ovo) |
항구의 안쪽을 따라 세워진 견고한 성으로 '달걀성'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12세기 때 노르만인에 의해 세워진 후 오랫동안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
세계 3대 미항, 산타루치아 항구(Porto di Santa Luc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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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의 민요 산타루치아로 유명한 항구. 원래는 한적한 어촌이었지만 지금은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이 즐비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황혼 무렵 항구를 바라보며 석양빛을 받아 붉게 물든 카스텔 델로보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서쪽으로 가면 해안선을 따라 시민광장(Villa Comunale)이 있다. |
나폴리의 음식점 |
Ciro a Santa Brigida 피자의 발상지인 나폴리의 피자 전문점으로 영업시간은 19:30에서 다음날 01:00까지 영업을 한다. 시전 Porto di Mergellina에 하자를 한다. 주소 : Via S. Brigida 71 Tel : 552-4072
Lombardi A. S. Chiara 서민적인 분위기의 피자 전문점. 산타키아라 교회 근처에 있다. 주소 : Via B. Croce 59 Tel : 552-0780
Lo Squalo 메르젤리나 항구 근처에 있는 생선요리 전문점이다. 주소 : Via Orazio 1 Tel : 681-1187
La Canitina di Triunfo 시민광장 근처에 있는 서민 음식점으로 스파게티 등 오리지널 나폴리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일요일은 휴무. 주소 : Riviera di Chiaia 64, Tel : 66810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