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인들을 만나다 1> 3회 2017. 3. 22. 한국문학신문
쿠바의 헤밍웨이 ③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실제 모델
30년 친구 그레골리오 푸엔테스
신 길 우 (본명 신경철)
수필가, 국어학자, 문학박사
『노인과 바다』의 실제 주인공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명작소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주인공인 노인 어부 산티아고(Santiago)는 누구일까? 작가가 상상으로 만든 작품 속의 가상의 인물일까? 아니면 실제 모델이 있었을까? 있었다면 누구일까?
멕시코만의 넓은 바다에서 작은 배를 타고 혼자서 낚시로 고기를 잡으며 사는 노인, 40일 동안 한 마리도 잡지 못하자 노인의 고기잡이는 끝났다며 다른 배를 탈 것을 부모가 강요하여 함께하던 풋내기 조수 마놀린(Manolin) 소년마저 떠나버리고, 그래도 혼자서 계속 나가 84일이나 되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은 늙은 어부,
85일째 되던 날 오후, 마침내 아주 큰 청새치를 잡게 된다. 그러나 워낙 크고 힘이 세어서 청새치를 배 위로 끌어올리기는커녕 오히려 청새치에게 끌려 다니다시피 한다. 밤낮 3일 동안 청새치와 죽기 살기로 싸우다가 간신히 청새치를 보트에 매달고는, 시장에서의 높은 가격에 팔릴 것을 기대하며 항구로 향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동안, 청새치의 피가 상어들을 유인하게 되어 상어 떼에게 물어 뜯겨서 잡아놓은 청새치는 뼈만 앙상하게 남고 만다. 아침 해가 뜨기 전 심신이 다 지친 노인 어부 산티아고는 그의 집에 도착하고, 곧바로 침대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진다.
노인의 고기잡이 생활은 끝났다며 외면하는 사람들, 그래도 끝까지 잡으러 나가는 노인 산티아고, 마침내 가장 큰 청새치를 사투 끝에 잡아매었으나 살은 상어 떼한테 다 먹히고 뼈만 남긴 채 기진맥진 돌아오는 노인 어부.
인생이란 결과보다 살아가는 과정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 그는 누구일까?
얼른 생각하면 작자인 헤밍웨이 자신일 것이라고 여겨진다. 헤밍웨이는 낚시를 매우 좋아해서 쿠바에서 살 때에는 멕시코만으로 낚시를 하러 자주 나갔었고, 『노인과 바다』는 그 경험을 토대로 쓴 자전적 소설로 보면 그렇게 생각된다.
실제로 헤밍웨이는 낚싯배를 구입해서 낚시를 하러 자주 다녔다. 그가 만년에 살던 쿠바의 크고 넓은 저택 <핀카 비히아(Finca Vigia)>의 정원 수영장에는 그가 낚싯배로 사용했던 40피트 길이의 배 ‘필라(Pilar)’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저택의 벽면에 걸어놓은 사진 중에는 필라를 타고 커다란 청새치를 낚아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의 헤밍웨이 사진도 있다.
그레고리오 푸엔테스와 헤밍웨이
그런데,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샌디에고는 실제 모델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헤밍웨이의 오랜 낚시 친구요 조수였던 그레고리오 푸엔테스(Gregorio Fuentes)이다. 작가가 밝힌 바는 없지만, 많은 이들이 『노인과 바다』는 푸엔테스로부터 영감을 받고, 그의 삶을 바탕으로 하여 쓴 것으로 말하고 있다.
푸엔테스(1897∼2002)는 1897년 카나리아 군도의 란사로테에서 출생했다. 선원인 아버지와 함께 쿠바로 여행하는 도중에 부친이 죽었다. 갑자기 6살의 고아가 된 그는 카나리아 군도의 쿠바 이주민들이 돌봐주어 코히마르에서 살았다.
그는 1928년에 헤밍웨이를 처음 만났다. 낚싯배를 저어주고 요리도 해 주면서 거의 30년 동안 헤밍웨이의 시중을 들었다. 알게 된 초기인 1930년대에는 월 250달러에 헤밍웨이의 보트관리인으로 일하기도 했다. 헤밍웨이는 글을 모르는 그에게 자신의 소설을 큰소리로 읽어주곤 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점차 친구처럼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헤밍웨이는 1960년에 쿠바 혁명으로 추방되어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코히마르의 푸엔테스의 집에서 잠시 머물렀었다. 그때 헤밍웨이는 푸엔테스에게 자기의 저택 <핀카 비히아>와 낚싯배로 사용했던 배 <필라>를 증여하였다. 푸엔테스는 이 재산을 쿠바 정부에 헌납하며 헤밍웨이 박물관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였고, 결국 오늘날 헤밍웨이 기념관이 되었다.
푸엔테스는 2002년 1월 13일 104세의 나이로 죽었다.
소설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가 30년 친구로 산 푸엔테스를 주인공으로 삼아, 함께 살았던 코히마르(Cojimar) 어촌을 무대로 쓴 작품이라고 한다. 그것이 플리처상에 이어 노벨문학상까지 받는 명작이 되었다.
헤밍웨이는 쿠바를 떠나면서 자신이 쿠바에서 살던 저택은 30년 친구인 푸엔테스에게 물려주고, 푸엔테스는 그것을 국가에 바치며 헤밍웨이 박물관으로 만들게 하였다.
코히마르 사람들과 헤밍웨이
그리고 작품의 실제 무대였던 작은 어촌 코히마르 사람들은 자기네들과 자주 어울려 지낸 정과, 자기네 마을을 무대로 삼아 명작을 써낸 작가에 대한 존경과, <노인과 바다> 영화를 촬영할 때 엑스트라로 많이 출연시키고 여러 기자재나 도구들의 구입과 설치 등에 여러 가지로 도와준 감사의 마음, 이 모두를 담아서 자신들의 마을 바닷가에 기념공원을 만들고 그 중앙에 헤밍웨이의 흉상을 세워 그를 기렸다. 이곳의 헤밍웨이 흉상은 마을 사람들이 자기들 폐선의 스크류들을 모아 녹여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명작을 쓴 작가 헤밍웨이도, 그가 살던 저택을 기념관으로 만들게 한 친구 푸엔테스도, 그리고 기념공원과 헤밍웨이 흉상을 세운 마을 사람들, 작은 어촌이지만 쿠바 코히마르에 가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헤밍웨이가 코히마르에 살지 않았더라면, 푸엔테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노인과 바다』 같은 명작이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헤밍웨이가 코히마르를 무대로 명작을 쓰지 않았다면, 푸엔테스에게 유산을 넘겨주지 않았다면, 헤밍웨이 동상도 기념박물관도 서지 않았을 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삶과 작품
사람은 가도 작품은 남고, 작품은 또 그 무대와 주인공을 기억하게 한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는 명작이라서, 작자가 유명해서보다도; 비록 글자도 모르는 실제 주인공 그레골리오 푸엔테스의 선행과,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시골 어촌인 코히마르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들 때문에 더 관심을 갖게 한다. 오늘날에도 세계 각처에서 수백만 명이 쿠바의 헤밍웨이 기념관 찾고 코히마르 마을을 둘러보고 있는 사실은, 작품의 무대와 인물들의 삶 등도 많이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실제 무대인 쿠바의 코히마르 마을은 주민들의 아름다운 삶이 빛나고 온정이 서로 오고가는 곳으로, 실제 주인공인 푸엔테스의 미담과 더불어 헤밍웨이와 함께 오래 남을 것이다. ☺ (다음에 계속)
<코히마르의 헤밍웨이 공원>
<잡은 물고기를 매다는 헤밍웨이>
<헤밍웨이가 낚싯배로 드나들던 코히마르 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