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국의 달마도〉
한 중 일 동양 삼국에서 가장 호쾌한 〈달마도〉를 남긴 김명국은 인조조(仁祖朝) 도화서(圖畵署)의 화원(畵員)으로 교수(敎授)를 지냈으며 호를 연담(蓮潭) 또는 취옹(醉翁)이라 하였다.
김명국은 사람 됨됨이가 그친 듯 호방하고 농담을 잘하였으며, 술을 좋아하여 한 번에 몇 말씩이나 마셨다고 하며 대취해야만 그림을 그리는 버릇이 있어서사람들은 그를 주광(酒狂)이라 불렀으며 그의 걸작 중에는 취홍이 도도해서그린 것이 많다고한다. 17세기에 활약했던 가장 대표적인 절파(浙派)화가로 알려진 김명국은 산수와 인물화에 능했으며거칠고 호방한 필치로이루어진 그의 도석인물화 가운데에는 뛰어난 걸작들이 많다.
김명국은 조선통신사 수행화원으로 두 차례 일본을 다녀왔는데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져 "김명국이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다다르니 온 나라가 물결일듯 떠들석 하여 (그의 그림이라면) 조그만 종이조각이라도 옥 같이 귀하게 여겼다"고 청죽화사에 적혀있다.
그가 남긴 30 여점의 유작 중 13점은 일본에 소장되어 있다.
국립박물관 소장의 달마도는 해학적인 취향의 일본 작품에 비하여 대단히 활달하고 호방한 감필(減筆)의 힘찬 묘법을 살려 가사(大衣)를 표현 하였으며, 이목구비가 뚜렸하고 시원스러운 달마의 용모와 수도자의 내면적 깊이를 극명하게 표현한 걸작이다.
김명국(金明國 1600~1662)
달마도(達磨圖)
紙本水墨 82.8×57.5cm
國立中央博物館 所藏
종진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