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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수에즈운하에서 이스라엘 아스케론으로
2010년 3월12일 수에즈 운하에 도착하였다. 한국에서 2009년 10월 11일에
출발하여 5개월 만에 첫 관문과도 같은 수에즈운하에 도착한 것이다. 지난 항해를
돌이켜 보건데 그렇게 어려운 점도 없었고 아주 위험한 바다도 없었다. 다만 혼자라서
느껴야 했던 쓸쓸함이랄까 뭐 그런 객창감 같은 것들이 언제나 나를 괴롭혔을 뿐이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까짓 걸 뭐 그렇게 외로움을 탓나 싶을 정도로 담담하다.
이집트 수에즈에 도착하여 운하입국에 있는 요트클럽에 배를 정박시켰다.
이곳 마리나는 정박료가 하루에 21달러였다. 그리고 비자25달러, 세관과 출입국,
검역이 각각 40달러씩이고 항만사용료로 있었다. 수에즈운하 통과료로 200달러와
함께 약 400달러에 돈을 지불했다. 정박료는 별도이다. 이집트는 기름 값이 아주
싼 나라인데 밖에서 살수 없기 때문에 에이전트를 통해 리터당 85센트에 경유를
구입해야 했다.
내가 보는 이집트인들은 다들 친절하고 순해보였다. 그러나 뭔가 공짜로 받기를
바라는 박시시(팁과 비슷 : 팁과 차이점은 아무것도 안하고 요구하는 것)문화는
확실한 나라였다.
20일간 머물면서 그동안 쌓여있던 배의 잔 고장을 수리했고 기상 시스템도
재점검하였다. 며칠 동안은 모래폭풍이 불어 배전에 온통 모래로 뒤 덮히기도
하였다. 배도 지치고 사람도 지쳐 잠시 항해를 쉬었다 계속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 마음은 무척이나 나를 힘들게 했다. 특히 자금문제에
있어서는 대책이 없어 보이기도 하였다. 결국 항해를 쉬고 돈벌이를 할 수 있는
기간에 한국에서 자금을 모아서 돌아오기로 결심하고 짐을 꾸렸다. 하지만
요트 문을 닫아걸고 떠나려는 순간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발길을 돌릴려고 해도 떼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털석 주저앉았다.
‘이렇게 발길을 돌릴수는 없다!’
물론 항해를 그만두는 것은 아니지만 쉬었다가 다시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그동안 혹시 마음은 변하지 않을까? 여러 가지 상념에 갇힌 나는 배위에서 그렇게
고민에 잠겼다.
‘무슨 뾰족한 수가 없을까?’
이렇게 고민하던 나는 출발부터 아무런 조건 없이 항해자금을 조금씩 도와주던
부산 협성종합건설(주)의 사장님 얼굴을 떠 올렸다. 단지 젊었을 때 태평양을
건너고 싶었다는 그 이유하나로 나를 밀어주고 있는 분이었다.
‘그래 어쨌거나 이분에게 마지막으로 도움을 청하자! 그래도 안 되면 할 수
없는 거 아이가? 집으로 가는 기다!’
사실 친한 지인과 가족에게는 항해를 잠시 쉬겠다는 통보를 해 둔 상태였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사장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이렇해 해서 자금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 깨춤을 추고 돌아다닐 정도는
아니지만 아껴서고 절약하면 집에 손을 벌리지 않게 되었다. 제일 나를 압박했던 것은
항해자금이다. 한정되어있는 자금 때문에 나는 1년 안에 세계 일주를 마쳐야 했고
그것은 곧 무리한 항해로 이어지기 때문에 늘 가슴을 짓누르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것이 없어지고 나니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유 없이 웃음이 나왔고
기뻐서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요트장에 이집트사람들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수에즈운하를 앞에 두고 오래있더니 저 사람이 기어이 미쳤구나!’
누가 뭐라든 기분이 좋았다. 특히 이제는 여유 있는 항해 계획을 세울 수가 있다.
최소한 삼 사개월동안 요트문화의 발상지인 유럽을 돌아볼 수 있고 타이밍이 맞아
떨어진다면 대서양을 건너 브라질 연안과 케리비안 지역을 좀 더 항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날로부터 나는 새로운 항해계획을 짜느라 살짝 미쳐 있었다.
즐겁게 미쳐있었다.
2010년3월30일 수에즈 해군당국에서 요트항해를 잠시 제지하여 어제 출발을
하지 못했다. 오늘은 갈수 있을 지 확실히 모른다고 한다. 간밤에 꿈을 꾸었다. 친구
사무실에 전화를 했는데 왠 외국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친구 좀 바꿔달라고 했더니
누구냐고 묻는다. 간단하고 쉬운 영어였지만 술술 대답이 튀어나왔다. 잠이 깨고
나서 이제 영어회화가 몸에 붙으려는 모양이다 싶어 기뻤다.
하루 동안 더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그 만큼 남았다. 그래서 이번에 수리한
아마추어 햄 무전기를 수리하기로 했다. 수리소에서 무전기와 안테나사이에 새로운
케이블을 만들어 주어 테스트해본 결과 딱 한번 햄 스테이션과 연결이 되었다.
어쨌거나 연결이 되었다는 것은 가능성이 열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고민이
하나 생겼다. 안테나와 무전기사이에 새롭게 깔린 배선이 밖으로 모두 돌출 되어
있어 보기가 싫었다. 잠시 생각 끝에 기존에 깔려있던 배선을 이용하기로 했다.
새로운 선을 끊어내고 기존의 선을 그 대신에 연결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안테나와
튜너사이에 연결해야 할 안테나 선이 좀 짧았다. 그래서 그 사이를 새로운 선을
좀 끊어 사용해 연결하였다. 컨터롤 선도 짧았다. 그리고 새로운 선은 스텐레스 선이어서
납땜이 잘되는데 기존의 선은 동선이어서 납땜이 잘 되지 않았다. 힘들고 지루한
작업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연결하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였다. 무전기의 경우 정확한 수리 장비없이 배선 연결하듯 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를 어딘선가 들었던 것이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장치들을
고정시키기 전에 시험가동을 하였다. 다행히 잘 가동되었다. 튜너뚜껑을 덮고 무전기와
다른 주변기기들을 고정시켰다. 아침부터 시작한 작업은 오후 3시가 되어서 끝이 난 것이다.
‘자 이제 마지막 테스트다!’
모든 장비가 제자리에 설치되어있는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아마추어 햄 무전기를
테스트했다. 그런데 송신만 되고 수신은 되지 않았다.
‘.......................................................................................’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하던 일들을 모두 중단하고 선실가운데 침상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나중에 정말 지루할 때 다시 한 번 시도할 것이다. 그러고 작업을 하기
전에 필요한 장비를 먼저 구해야 할 것 같다.
3월31일
아침부터 부산하게 출발을 준비했다. 수에즈에 머무른 지도 20일이 되었다.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날 때도 되었다. 10시경 수에즈 운하의 첫 구간을 항해할 파이롯이
도착하였다. 그이 이름은 샤반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형님처럼 보였는데 나보다
10살이나 아래였다.
수에즈운하는 그 총 길이가 90마일인데 운하가운데 큰 호수(그레이트 비틀)와
작은 호수(티마샤)가 있다. 작은 호수 북쪽 해안에 이스마이리아 요트클럽이
있는데 그곳에 중간지점으로 오늘 우리가 항해해야할 첫 구간인 것이다.
직선거리로는 39마일이지만 휘어진 항로를 감안해보니 50마일 정도였다.
오늘 수에즈 요트클럽을 떠나는 배는 모두 7척이라고 하였다. 우리 배는 파일롯이
타자 곧 무어링 로프를 풀고 수에즈 운하로 진입하였다. 그 뒤를 이어 6척의 요트가
줄을 지어 운하로 들어왔다. 대형 상선들은 아침 일찍 떠났기 때문에 5노트속력으로
가는 우리를 추월하는 선박은 없었다. 11시경에 반대편 지중해 쪽에서 빠져나오는
선박들이 나타났다. 운하의 폭이 200미터였지만 실제로 항해할 수 있는 폭은
100미터정도가 전부였다. 거대선과 불과 몇 십 미터 간격을 두고 통과하였다. 운하의
제한속도는 7노트이기 때문에 큰 파도는 일지 않았지만 선저모양이 좋지 않은 배가
지나갈 때는 인트레피트의 선수가 거의 45도쯤 하늘로 향했다고 아래로 쳐 박혔다.
파이롯 샤반과 나는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고 둘은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파이롯
샤반은 3,000톤까지 운항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했다.
‘샤반! 가족은 몇 명입니까?’
‘처와 아들3명 딸 한명이 있어요.’
‘이집트는 부인을 몇 명까지 둘 수 있습니까?’
‘4명까지 둘 수 있어요.’
‘샤반은 왜 한명 밖에 없나요?’
‘돈이 없어서요.’
‘그럼 돈만 있으면 4명까지 처를 둘 수 있는 거죠?’
‘물론입니다. 깝틴(나는 이름을 불렀고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불렀다.)’
‘야! 이집트 정말 좋은 나라다!’
한국 사람이 이 나라에 산다면 정말 부지런히 돈을 벌려고 할 것 같다.
운하로 진입하면서 시작되었던 순류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빨라져서 6.7노트가
되었고 잠시 후 7.5노트로 올라갔다. 뒤 따르든 요트들이 한척씩 우리 배를 앞질러
나갔다. 20일간 세워둔 뒤 배 밑바닥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아마도 따개비와 해초가
많이 있는 것 같았다. 인트레피드도 50마력 엔진이 장착되어 있어 그 힘이 다른 배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데 말이다. 남쪽 나라에서라면 벌써 물속에 들어가 해결 했을텐데
이곳은 북위30도 지점이다. 물의 온도가 아직 차갑다.
배는 다시 순류에 힘입어 8.5노트를 기록했다. 샤반이 기분이 좋아 입이 귀에
걸렸다. 빨리 집으로 돌아 갈수 있기 때문이다. 사막 한 복판에 뚫려있는 운하의
좌우편으로는 군부대가 배치되어있었다. 국경선을 지키듯 양쪽으로 군인들이
운하 쪽을 바라보며 경계를 서고 있었다. 운하 좌측과 우측 모두가 이집트 땅인데
이상하리 만큼 보초들이 많았다. 이집트에서 느낀 것인데 이 나라 고위층이 자신들의
입지를 굳건히 지키기 위해 일부러 분위기를 긴장상태로 유지시키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의 70년대 분위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았다. 옳은 소리하고 권리를
주장하거나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면 쥐도 새도 모르게 가는 것이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이집트는 아직 관료주의사회라고 들었다.
4척의 요트가 우리를 앞질러 갔고 뒤에 있는 2척의 요트는 보이지 않았다. 3시간쯤
지나 큰 호수인 그레이트 비트에 당도하였다. 이곳에는 잠시 쉬어가는 큰 상선들이
닻을 내리고 있었다. 그곳을 통과하여 다시 좁은 수로로 들어갔다. 그레이트비트쪽에서
북쪽으로는 3개의 수로가 뚫려있었다. 샤반은 가운데 수로로 배를 몰고 들어갔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곳부터 얼마간은 일방통행이라고 하였다. 점심으로 감자를 볶고
계란프라이를 하나씩 겾들여 먹었다. 우리의 목적지인 티마샤 호수에 다와 갈 무렵
제 2그룹으로 지중해 쪽에서 출발했던 배들이 줄을 이어 내려왔다. 우리 배는 수로
바같쪽으로 바짝 붙어서 올라가 티마샤 호수에 진입했다. 오후4시경이었다. 아담한
호수 같이 조용한 티마샤 호수는 주변경치가 보기 좋았다. 숲이 보이고 건물들도
단정하고 예뻐게 보였다. 호텔인듯한 큰 건물도 여러 개 보였다. 그중에 가장 큰 건물은
가장 좋은 자리에 남쪽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앞쪽으로 배를 정박할 수 있는 계류시설도
되어있었다. 정말 좋은 호텔이구나 생각했는데 샤반이 수에즈운하 사무소라고 하였다.
관료주의의 상징으로 느껴졌다. 이집트는 샤반을 비롯해서 보통사람들은 한 달 월급이
십만 원 정도라고 들었다. 땅만 파면 기름이 나고 가만히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 운하가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못 산다. 이집트에 비하면 대한민국은 정말 좋은 나라다. 물론
모두가 땀의 결실이지만 감탄스럽다. 한국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7시경 이스마이리아 마리나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수에즈요트클럽과는 달리
조수간만의 차가 50센티밖에 되지 않아 배들이 육지에 가까이에 정박할 수 있었다.
분위기도 비교적 조용하고 깨끗했다. 출발할 때 파이럿의 팁으로 10달러만 주면
된다고 들었는데 20달러를 요구했다. 박시시(중동지역에 어느 곳이나 있는 일종의 팁)다.
10달러밖에 줄 수 없다고 버텼더니 울상이었다. 결국 20달러와 한국담배 한 갑을
주었다. 그제서야 환하게 웃으면서 행복해했다. 추가로 선그라스나 모자, 티셔츠
같은 것을 요구하길래 달래서 내려 보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나 보니까
대부분 20달러를 주었고 추가로 뭔가를 받아갔다고 했다. 10달러만 준 요트도
있었는데 그 파이럿은 선그라스와 아이들 장난감등 제법 만은 선물을 받아갔다고 했다.
스웨덴요트에 방문했는데 이미 노르웨이 부부가 먼저 와 있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스칸디나반도에서 국경선을 마주하고 있는 이웃나라이어서 언어도
거의 비슷하다고 했다. 노르웨이는 남극을 정복한 ‘아문젠’의 나라이고 스웨덴은
내가 좋아하는 그룹 ‘아바’의 나라이다. 아바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바로 아바의
노래를 틀어주었다.
I have dream을 비롯해서 귀에 익은 수많은 히트곡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2시간
가량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가 너무 좋아하니까 CD도 한 장 주었다. 이제 영어도
조금씩 늘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단어를 별도로 더 외우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진토닉 4잔을 얻어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해서 스웨덴 배에서 내려왔다. 배로
돌아가는 길에 살라라부터 항해 동기인 독일 요트에 불려 올라갔다. 먼저와 있는
스페인 부부가 자는 아이들을 한명씩 안고 콕핏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취기가 있으니까 영어가 더 잘되었다. 이곳에서 다시 1시간가량 내 맘대로
콩글리쉬를 사용하다 지쳐 배로 돌아왔다. 즐거운 하루였다.
이곳에서 바로 떠나는 요트는 독일 요트나 인트레피드뿐이고 나머지 5척은 며칠동안
머물면서 주변을 여행하거나 피라밋을 구경하러 간다고 하였다. 독일요트가
이스라엘로 간다고 하였다. 나도 그 쪽으로 갔으면 했는데 잘 되었다. 아무래도
영어권이나 유럽요트들이 정보력이 좋다. 이스라엘에 최고로 저렴하고 편리한
곳을 안다고 하니 안 따라 갈수가 없다.
4월1일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하였다. 배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체력상태가 걱정이
된다. 운동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9경에 온다고 했던 파일럿은 10시가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바로 옆에 정박되어있었던 스웨덴요트 블루문은 프로펠라에
로프가 감기어서 다이버를 불러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직접하지
뭐하러 다이버를 부르느냐고 했더니 물이 너무 어둡고 아직 차가워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럼 프로펠라가 있는 부분을 로프를 내려 묶은뒤 그 줄을 잡고 내려가면 작업이
쉬울겁니다.’
‘힘들겠지만 좀 해줄 수 없어요. 부탁합니다.’
괜히 몇 마디 거들다가 코가 낀 것 같다. 가벼운 슈트를 입고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프로펠라에 감겨있는 가는 로프와 비닐등을 모두 제거하였다. 고맙다고
드라이진 한 병과 섞어서 마시는 음료를 주었다.
파일롯은 11시30분쯤 도착하였다. 할아버지 파일럿이었는데 영어를 거의 못해서
대화를 할 수 없었다. 갑갑하였다. 영어권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갑갑할 것인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꼈다. 항로에 들어서니 아침에 남쪽에서 출발한 상선들이 줄을
지어 지나가고 있다. 항로에 진입하여 항해를 시작했다. 항로주변에는 작은
낚시어선들이 많이 보였다. 오늘은 늦게 출발한 탓에 조류를 제대로 타지 못해
속도가 나지 않는다. 5노트를 넘지 못했다.
15시경 수에즈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아래를 통과하였다. 동 이집트와 서 이집트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서쪽 해안선을 따라 철도가 놓여있어 가끔 기차가 기적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다리를 지나고 나니 수로 좌우로 마을이 있었는데 야자수 열매사이사이로
집들이 있어 오아시스를 연상케 하였다. 해그름으로 접어들면서 기온이 뚝 떨어졌다.
수로의 끝 지점인 포트사이드를 두 시간 남겨두고 어둠이 깔렸다.
밤 8시경 정박되어있는 거대상선과 유람선에서 켜놓은 조명과 도시 불빛이 어울어져
한껏 들떠있는 포터사이드에 당도하였다. 파이롯을 태워갈 배가 접근하였다. 우리배가
계속가고 있는 상황에서 부드럽게 접근하더니 파이롯을 태워갔다. 그리고 또 우리배의
항해자금중 20달러가 줄어들었다. 박시시로 받아간 것이다. 파이롯 보트는
인트레피드와 몇 분가량 같은 속력으로 부딪칠 듯 달리면서 계속 뭔가 내놓으라고
소리쳤다. 위협적이었지만 굴복할 수 없었다.
포트사이드를 빠져나와 이스라엘까지 같이 가기로 한 독일 요트를 기다리기 위해
속도를 3노트정도로 낮추었다. 독일요트의 젊은 커플은 다른 요트에 비해서 좀
색달랐다. 남자는 몸에 문신을 넣는 사업을 하고 있었고 여자는 헤어 디지이너 라고
했다. 둘 다 오너이었는데 사업을 당분간 친구에게 맡기고 항해중이라고 하였다.
7년째 항해중인데 2011년에 독일에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그때쯤 모아둔 돈이 바닥날 거라고 한다.
독일요트가 따라왔다. 나침위 방위를 70도에 맞추고 이스라엘로 향했다. 가는 도중
이스라엘과 관계가 좋지 않은 가자지구가 있기 때문에 좀 더 육지에서 떨어져 항해하다
오른쪽으로 꺽어 들어가야 한다.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느라 긴장한 탓인지 몹시 피곤했다. 눈을 좀 붙여야겠는데
주변에 어선들이 너무 많아 레이더 항해가 되지 않았다. 지중해에 들어왔는데
너무 밋밋하다. 야간에 들어와서인지 꼭 몰래 잠입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지만
이곳은 지중해이다.
‘와! 지중해다!’
분위기를 띄워보지만 착 가라앉은 마음을 금새 바꿀 수 없다. 달이 참 밝았다.
계란 노란자 같은 달이었다. 바람이 약해서 엔진을 같이 사용해야했다. 그렇지만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꼬박 꼬박 졸면서 밤을 새웠다.
4월2일
옅은 안개 속에서 태양이 떠올랐다. 배는 간밤에 내렸던 이슬 때문에 갑판이 흠뻑
젖어 있었다. 밤에는 옷을 겹겹이 껴입고도 춥다고 느껴졌다. 빨리 싸늘한 날씨에
몸을 적응시켜야 한다. 이 지역은 북위31도로 한국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12시경 이스라엘 수역으로 들어왔다. 이스라엘 해군은 지금까지 어느나라보다
더 정확하게 배의 정보를 요구해왔다. 진땀을 흘리면서 적절한 단어를 짜내어서
대화하였다. 이집트에서 해안선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먼저 가자지구가 나오는데
그 가자지구를 멀리서 돌아가야 하고 또 경계선 쪽에 유전이 하나 설치되어있어
더 멀리 요트를 돌아가게 유도 했다. 독일요트는 총을 소유하고 있어 입항이
거절되었다. 그들은 터키로 갈 것이라고 하였다. 이삼일은 더 가야한다. 날씨가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다. 터키에서 부근에서 일년 정도 머무럴 예정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조만간 또 만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중해 쪽 해안선은 약 90마일이다. 그리고 홍해 쪽에도 5마일정도
숨통이 터여 있다. 나라의 모양이 석기시대 칼처럼 생겼는데 그 칼끝이 홍해로
향하고 있었다.
낮선 포구를 밤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속력을 내었지만 목적지인
아스케론마리나를 10마일쯤 남겨두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야간입항을 안된다고 했다. 밖에서 파도를 피할만한 곳도 없는 곳이어서
닻주기를 할만한 장소가 없었다. 다행히 8시까지 입항하는 조건으로 입항을
받아주어 겨우 마리나 안으로 들어올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첫 기착지여서 세관과 경찰, 보안요원등이 나와서 배를 수색하고
여러 가지 질문도 많이했다. 특히 주변 중동지역에 들렀다 온것에 대해서
좀더 세밀하게 케 물었다.
‘남북으로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이렇게 하지 않는데 보안검색이 아주
까다롭군요.’ 하고 물었더니
‘우리는 중동 전 나라들과 대치중입니다.’
그 말을 듣고나니 뉴스에서 자주 들었던 폭탄테러소식들이 생각나서
기분좋게 보안검색에 협조하였다. 30분정도 보안검색을 마치고 마리나
사무실가서 출입국 직원에게 입국 스템프를 받았다. 직원이 여권을
건네주며 이스라엘에 온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Tour! I like Israel' 했더니 여직원이 웃었다. 웃는 모습이 예뻤다.
이곳 아스케론 마리나는 출입국 체크인, 체크아웃이 가능한 마리나이다.
인트레피드의 경우 하루 계류비가 15달러정도이다. 월간 계류비는
300달러정도여서 유럽에서는 아주 싼 편에 속한다고 했다. 북 지중해지역의
마리나는 대개 하루 계류비가 100유로를 넘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하였다.
지금부터는 계류비가 싼 마리나와 무료로 정박할 수 있는 엥커 포인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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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드디어 개봉 되었군요.
축하 드립니다. 첫관문을 통과하셨네요
드디어... 오래 기다렸읍니다~!
따끈 따끈한 항해기를 보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고생도 많이 하셨네요, 계속 안전한 항해 기원합니다.
글 잘 읽고 대리만족 하고 갑니다. 안전항해 하세요? *^^*
이젠 여러나라 여행지의 정보를 공짜로 제공해주시는 윤선장님뿐 아니라 협성건설 사장님께도 고마워 해야 할것 같네요...ㅎㅎ
건강하게 항해하고있어서 다행입니다...도와주시는 분들의 마음이 ........ㅎㅎㅎ
드디어 수에즈 운하를 통과 하시는군요 계속되는 항해 건강에 유의하시고 승리의 그날까지 화이팅!!!!!
드디어 오랜 기다림끝에 개봉박두가 되었으니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윤선장을 따라 연필로 sailing을 하고 싶어집니다. 어려운 여건을 해결해주신 분께도 감사~~!
봄바람이 불어오듯 어디론가 배낭하나 짊어지고 떠나고 싶어지는 날입니다. 세계일주 항해의 고비 고비를 잘 넘기시고 지중해에 당도하셨네요^^ 윤선장님을 통해 대리만족 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끝까지 즐겁고 안전한 항해 하시길 기원합니다
지속적인 항해를 할 수 있게 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항해 자금 마련을 위하여 일시 귀국 결정을 하시기 까지의 고민을 어찌 삼자가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다행으로, 협성종합건설(주) 사장님 같은 분들이 계셔서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도 무한한 행복감을 느낍니다.
아무쪼록 건강하고 행복한 항해가 되시길 빌겠습니다. ^^^^
무척 기다리던 서식입니다. 무사히 지중해 입항 축하드립니다. 이공 개나리 벗꽃, 진달래가 피는 만연한 봄입니다. 좋은 날되십시요.
와~~~ 이스라엘 축하드립니다 윤선장님의 글을 보며 대리만족을하고있읍니다.. 건강하시고 세계일주 완주하세요..
세상이 어지러운 가운데 우리의 마음도 흉흉합니다. 협성 사장님 이하 이 사이트를 찾아서 격려해 주시는 회원님들 어려울 때 도와주시니 물질 뿐아니라 그마음의 응원이 세계일주를 완주할수 있는 원동력이 됨을 믿습니다. 여러분들의 세계일주임을 기억하십시요!!!감사합니다.^^
재미있게보고있습니다~!!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