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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지 '더 무브' 2013년 1월호에서 <철스뮤직>을 소개했습니다.
소시민의 삶과 서정을 위로하는 뮤직 바 Chul’s Music(철스뮤직)
유서 깊은 모든 대학의 거리처럼 서울대 앞 녹두거리는 변했다. 주점 벽지에 가득했던 뜻 모를 낙서와
종착지를 알 수 없는 사랑 고백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고,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던 손이 큰 이모는 어디론
가 떠났다. 자본이 휩쓸고 간 자리엔 운명처럼 프랜차이즈 간판이 들어선다.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은 서
울 올림픽이 치러진 해 문을 열었던 인문사회과학전문서점 ‘그날이 오면’. 2006년에 문을 닫는다는 소문
이 다시 들리자 이 서점만은 그대로 남아있길 바라는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후원회를 결성했고 그들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뮤직 바 ‘철스뮤직’과 ‘그날이 오면’은 둘 다 대학동 238번지에 있다. 걸어서 고작 일 분 거리만큼 떨어
져있는 아날로그의 두 상징 사이에는 수려한 장식을 갖춘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섰다. 또 ‘철스뮤직’ 위
에는 붉은 바탕에 큼지막한 흰색 아크릴 판으로 ‘항상 빨리 일년 내내’ 라는 구호를 내건 중국음식점이
있다. 이율배반이다. 속도와 시간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 곳과 세월의 흐름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과거
의 음악이 재현되는 곳이 사이 좋게 건물의 위 아래를 성립한 것이다. 윗집의 숨가쁜 하루가 끝날 무렵
비로소 철스뮤직에 따스한 귤색 조명이 켜진다. 그 조명을 신호탄으로 밤의 깊고 유장한 어둠이 녹두거
리를 삼킨다.
이 터널처럼 좁고 길쭉한 공간의 문을 열고 불쑥 들이닥치는 인간들은 실로 다양하다. 초로의 신사부터
대학 신입생처럼 보이는 커플,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혼자 온 키 큰 남자, 등산복을 입고 온 중년들, 그리
고 뭔가 사연을 나누기 위해 온 듯한 지친 표정의 직장 여성들……. 사장과 아는 척하는 손님이 꽤 많다.
형이라 부르며 친근히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있고, 일찍이 어디선가 한 잔 꺾고 세계 평화를 이룬 듯한
표정으로 나 왔어 하며 자리를 잡는 사람도 있다. 그러고 보니 사장의 얼굴이 젊다. 저 나이의 뮤직 바 사
장을 만나기란 몹시 드문 일이다.
그의 어깨 너머로 레코드판이 돌아간다. 진공관 앰프는 아직 켜지지 않았다. 흐르는 음악은 모두 가요
다. 아바의 ‘댄싱 퀸’이 딱 한 번 흐르긴 했지만 몇 시간 동안 들리는 것은 가요다. 숱한 세로의 금을 그으
며 빽빽이 꽂힌 레코드판 앞에 ‘가요 중심입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아이돌 음악은 신청을 지양해
달라는 부연 안내도 있다. 오래된 우리 노래만 틀겠다는 고집이다. 만약 이 시대에 가장 고집스런 책이
있다면 무엇일까? 턴테이블 왼쪽에 수많은 시집이 꽂혀있다. 김수영, 강은교, 김남조, 천상병, 김소월,
박노해, 고정희, 기형도……. 레코드판을 꺼내는 젊은 사장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미련하고 고집스럽
게 상처의 시어를 고르는 시인들의 여윈 어깨가 떠오른다.
김광석의 노래가 흐르자 입구 쪽에 자리잡은 중년의 남녀들이 하나둘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어딘가에
서 여자의 낮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묻어둔 사연이라도 있는 것일까? 제일 구석진 바에 앉아 이미
맥주를 열 병쯤 쌓아 올린 야구모자가 노래 부르기에 가세하자 이제는 어엿한 합창이 된다. 이쯤 되면 이
심야의 뮤직 바에 모인 낯선 이들이 마치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낸 친구 같다. 심야의 합창은 그 뒤로도 수
시로 재연되었다. 전인권의 절규 같은 노래도, 이문세의 부드러운 가을 노래도 낯선 이들은 함께 노래 부
르고 또 각자 잔을 비워갔다.
단골인 듯한 초로의 신사가 동행했던 여성을 아내라며 사장에게 인사를 시킨다. 무슨 얘기인가 끝에 그
녀는 ‘가슴이 아파 미치겠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뮤직 바의 문을 나섰다. 초면의 젊은 사장에게 그 여성
은 어떤 함의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녀의 서늘한 눈빛이 가슴에 오랫동안 머문다.
이 곳에 있는 동안 사람들의 표정이 점차 밝아지는 것을 보았다.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함께 노래를 듣
고 이따금 따라 부르면서 아련한 시간 속에 동화되어 간다. 이 곳에서 사람들은 음악으로나마 그렇게 위
로 받고 다시 한번 작은 용기를 내어 각자가 처한 세계를 향해 문을 열고 나서는 것이리라.
뮤직 바 인터뷰_철스뮤직 대표 변무철
우리 가요를 중심으로 음악을 튼다는 컨셉이 이색적이다. 보통 뮤직 바의 음악은 올드 록이 중심이고, 재즈를 트는 곳이 더러 있다.
-대학 시절부터 뮤직 바를 찾아 다녔는데 우리 음악이 천대 받고 있다고 느꼈다. 특히 7,8,90년대 가요가 외면당하는 것이 마음 아팠다. 몇몇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지만 한정적이라고 느꼈고 꼭 이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컨셉의 뮤직 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학생처럼 보이는 젊은 손님이 눈에 띈다. 서울대 앞이고 이곳이 고시촌이라는 것이 그 이유일까? 철스뮤직을 주로 찾는 손님은 어떤 사람들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가요 마니아들, 특히 7080 가요를 듣고 싶어하는 손님들로 형성되고 있다. 연령층은 30대 안팎에서 40대 초반이 가장 많고, 물론 20대와 50대도 있다. 서울대 학생들도 즐겨 찾는다.
손님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이나 에피소드가 있는가?
-혼자 오는 손님이 가끔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본다. 그럴 때 음악이야말로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 ‘힐링’의 도구로써 음악이 역할을 하고 있다.
뮤직 바를 직접 운영하시는 분치곤 나이가 젊은 편이다. 이렇게 빨리 뮤직 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그리고 왜 굳이 뮤직 바인가?
-어릴 적부터 음악, 특히 가요를 좋아했다. 그래서 라디오 PD를 지망했는데 애석하게도 그 길을 가지 못했다. 마침 하고 있던 일이 잘 풀리지 않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뮤직 바를 하기로 결심했다. 대학생 시절부터 자주 뮤직 바를 다닌 것이 이 일을 하게 된 동기가 된 것 같다.
당신에게 음악은 각별한 의미인 것 같다. 당신에서 있어서 음악이란 무엇인가?
-외롭고 힘들 때 내 곁을 지켜준 유일한 벗이다. 만약 음악이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힘들 때 찾아 듣게 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음악인가?
-『양희은 1991』,『양희은 1995』, 그룹 어떤날의 앨범들, 얼 클루의 앨범들이다.
내 일생의 앨범 다섯 장만 고른다면?
-가장 곤혹스런 질문이다. 그냥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대겠다. 김광석, 김민기, 양희은, 송창식, 고찬용, 낯선사람들, 손지연, 여행스케치, 장필순, 어떤날, 이병우, 언니네 이발관, 따로또같이, 장필순, 푸른하늘……. 아, 대려고 보니 끝이 없다. 막상 손님의 신청곡 위주로 음악을 틀다 보니 정작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기회가 적어져서 고민이다.
철스뮤직을 찾는 손님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가요 중에는 숨어있는 명곡도 많고 우리 아티스트 중에도 뛰어난 인재가 많다. 우리 포크 음악이 명맥을 이으려면 지금보다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곡을 신청할 때 다른 손님의 취향도 존중해 주면 좋겠다. 앞으로 보다 좋은 음악을 들려드리는 뮤직 바를 만들고 싶다.
철스뮤직 ∥서울시 관악구 대학동(신림동) 238-2, 전화 02-3285-5258
연속기획 ‘잠 못 이루는 밤의 뮤직 바를 찾아서’를 시작하며
더불어서 혼자서
신경림 시인이 스무 세 살 즈음 시골에 낙향하여 농사 짓고, 광산과 공사판을 전전하며 십 년을 살고서
술회한 대로 ‘사람은 남과 더불어 혼자 산다’. 사람은 저마다 고유한 개인이지만 결코 홀로 살아갈 수 없
다. 또 아웅다웅 더불어서 산다 한들 ‘나’라는 본질에서는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삶이다.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 시인은 세파에 많은 것을 흘려 보냈지만 젊은 날의 그 깨우침만은 변함없는 진실로 남
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 진실을 발견한 이후에 그의 시엔 혼자 골몰한 깊은 생각의 경지를 넘어 비로
소 더불어 사는 의미가 아로새겨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남과 더불어 살지만 결국 개별적인 존재. 군중에 속한 자도 외롭고, 외떨어져 홀로 가는 자 역시
외롭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리운 것’ 은 누군가 곁에 있지만 여전히 에고라 불리는 분리
된 의식 체계를 지니고 있는 ‘나’에서 해방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스마트폰, 고독을 위한 단말기
그 개인적인 삶에 천착해서 기술과 콘텐츠를 집적시킨 스마트폰. 더불어 있는 시간조차 자기만의 고독
을 지키는 데 가장 효율적인 용도를 발휘하는 단말기이다. 바야흐로 3천만 스마트폰 사용자 시대이다.
한 식탁에서 저녁을 먹고 둘러앉아 단말기를 들여다보는 데 여념이 없는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어렵지 않다. 딱히 이슈가 된 프로그램이 없다면 이제 티브이의 채널 선택권을 쥐고자 노력할 필요가 없
을지도 모른다. 함께 모였지만 그저 스마트폰으로 각자의 세계를 보면 평화롭다. 티브이는 말을 걸어주
지 않지만 스마트폰은 끊임없이 떠들썩한 저쪽 세계의 메시지를 전하며 말을 걸어온다. 스마트폰으로 우
리는 점점 ‘조용한 가족’이 되어간다. 하지만 이 조그만 기기 안에는 소통을 위한 온갖 다양한 메신저들
이 고안되어 있다. 어린 학생이 버스를 기다리며 외롭게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는가 보면 그 안에
는 끊임 없는 소통이 일어나고 있다. 어쩌면 스마트폰이란 이미 ‘더불어 혼자 사는 데’ 가장 유용한 도구
인지도 모른다.
그 것만이 내 세상
인간은 일생 동안 자기 세계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살다 보니 공간에 대한 집착이 생긴다. 사춘
기가 찾아오면 자기 만의 방을 갖길 원하고, 성인이 되어 가족을 이루면 집을 원한다. 또 중장년이 되면
서 가족들과 떨어져 자기 만의 오롯한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싶어한다. 남편은 아내가 사골 국을 끓여놓
기 전에 먼저 떠나고 싶지만 막상 갈 곳이 없다. 딱히 뚜렷한 목표도 없이 작업실이라는 걸 만들어 허세
를 떨어보기도 하고, 캠핑이라도 가서 텐트라도 치고 싶은 게 현대 남자들의 트렌드이자 로망이다. 의지
가 있는 사람들은 귀농과 전원생활을 꿈꾸기도 한다. 7백만 명이 넘는 베이비 부머의 절반이 넘는 수가
시골 생활을 꿈꾼다는 놀라운 설문 결과가 있다. 어딘가 갈 데가 필요하지 않은 영혼은 없다.
뮤직 바, 심야 산책자들이 머무는 곳
외롭고 불확실한 시대에 자기 세계와 공간을 찾고 싶어하는 현대인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도시를 부
유한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곧장 들어가자니 허무하고, 약속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도 뭔가 아쉽다.
이 때가 바로 ‘심야 산책’에 나설 시간이다. 영업 마감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혼자 오래 머물러도 구
박받지 않는 곳, 나의 취미를 당당히 천명하고 인정받을 수 있고 그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익명의 사람
들을 만날 수 있는 곳, 그 대표적인 장소가 ‘뮤직 바’이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라는 신
경림 시인이 40년 전에 쓴 시구는 현대 도시의 밤에도 여전히 공명을 일으킨다. 그곳에서 심야 산책자들
은 리퀘스트 용지에 신청곡을 쓰며 존재 증명에 나선다. 그곳에는 공식적인 의례를 집행하는 바텐더(사
장)가 있고, 내 아이덴티티를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레코드판과 음악이 있다.
뮤직 바의 세계는 의외로 넓고 깊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문화예술 종사자들의 성역이 된 곳도 있지만
마이너리티 취향의 컨셉으로 짧은 시간 동안 입지를 굳힌 곳도 있다. 소박하고 작은 동네 커피하우스와
자본이 투자되고 다양한 손님의 취향을 고르게 반영한 대형 카페가 있는 것처럼 뮤직 바도 주인장의 개
성이 그대로 얼굴이 된 서민적인 곳이 있는가 하면 음악 전문가가 고가의 음향 장비를 다루며 술과 음식
의 품질을 엄격히 관리하는 곳도 있다. 말하자면 뮤직 바는 오고 가며 마주치는 다양한 얼굴과도 같다.
이목구비가 달려 있다는 점은 같지만 엄연히 서로 다른 개성과 용모를 가지고 그에 걸맞은 사람들과 경
험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밤 하늘 아래 도시의 곳곳에서 등불을 밝히고 있는 미지의 뮤직 바를 찾아서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과 인간 군상을, 때로는 멀찌감치 떨어져, 때
로는 얼굴을 맞대어 근접해서 바라보고 묘사할 것이다. 별이 빛나는 창공 대신에, 도시의 어둠을 밝히는
뮤직 바의 네온사인을 길잡이 삼아서 오늘날 우리 삶의 사실적인 지형도를 그려본다. ∥
첫댓글 우와~ 액션가면님도 멋지고, 철스뮤직님도 멋지고!!!
지금도 자리맡기 힘든데, 앞으론 예약하고 가야할 판...?
아, 정말 반한 곳이에요!
그날, 다른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 할 곡에 낯선 카페분들이
동시에 환호를 보낼 때 넘 행복했어요.
소시민의 삶과 서정을 위로하는 뮤직 바! 캬~ 맞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철스뮤직 화이팅! / 낯선 멋쟁이~ 액션가면 화이팅!
와 진짜 최고최고!! 팬클럽 통해 너무너무 좋은 형님들 알게 돼서 완전 행복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