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을도 경칩(驚蟄)치성 도훈
2013.3.5(음 2013.1.24)
산에 가보니까 이제는 눈이 다 녹았더라구요. 5일 전까지만 해도 응달에 눈이 남아있었는데, 오늘 가보니까 눈이 싹 녹았어요. 아 자연은 역시 위대하구나! 요새 세계 야구대회(WBC)하잖아요. 중앙방송인가 거기서 중계하지요. 세계대회는 기본적으로 전 세계로 송출이 되나봐요. 우리같은 경우는 세계대회잖아요. 우주의 태을궁의 모임이니까. 지난번에 몇 차례 얘기했는데, 신명들이 같이 보면서 수행을 할 것 아닙니까? 훔치훔치! 하면 신명들도 훔치훔치! 하고. 화엄경이나 불경을 읽어보면, 석가모니가 설법을 하면 신중(信衆)들이 모여서 듣는다고 되어있지요. 인간이 말하고 행동하고 걸음걷는 것을 그렇게 해서 본받는 거예요.
선천에서는 기본적으로 ‘성사재인(成事在人)’하는 표준을 어디다 두었냐 하면 요임금한테 두었어요. 가정에도 중심이 있듯이 나라에도 중심이 있어요. 그 나라의 중심이 임금인데 그 임금중에서도 가장 중심을 ‘성주(聖主)’라고 해요. 성인 성자 주인 주자. 성인의 최고가 누구냐? 요임금이라는 겁니다. 성사재인의 푯대, 옥황상제의 대행자, 말하자면 천자(天子)지, 천자의 효시(嚆矢)를 요임금한테 주었어요. 그래서 성인 중의 성인을 ‘성주’라고 해요. 그래서 유학자들이 마르고 닳도록 이렇게 가르쳐요. 성주유래(聖主由來), 성인 성자 주인 주자 말미암을 유자 올 래자. 성인의 주인을 모시는 시대가 열리는데, 그 성인의 주인이 누구냐? 첫 시작이 누구냐? 그것을 ‘법제요(法帝堯)라고 해요. 법이라는 것이 본뜬다는 것 아니예요? 뭘 본뜨냐? 제왕 제자 요임금 요자. 요임금을 본뜬다, 그래서 성사재인의 푯대로 요임금을 본떠서 성인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선천세상의 성사재인의 학문인 유학의 푯대예요. 그것을 누가 학문적으로 만들어 냈느냐? 그것을 공자가 했다는 거요.
공자가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문(文)을 받았다.” 공자는 도(道)라는 것과 하늘 천(天)자를 잘 얘기 안해요. 왜냐하면, 너무나 경외스럽기 때문에. 너무나 존경스럽고 너무나 경외스럽기 때문에 도(道)와 천(天)자는 얘기를 잘 안해요. 그래서 공자는 뭘 얘기했느냐? “문(文)을 받았다.” 문(文)을 받았다는 것이 무엇이냐면, 도를 받았다는 것예요. 그것은 하늘이 자기한테 내렸다는 것이거든. 여러분이 입도를 했다는 것이 뭐냐 하면, 하늘이 나한테 내렸다는 거요. 우리 하늘이 뭐냐? 바로 여기 계신 상제님하고 고수부님이예요. 천지부모님이 나한테 내렸다는 거예요. 내 마음속에 들어오셨다 이겁니다.
들어오면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가? 수운 선생은 이를‘내유신령(內有神靈)하고 외유기화(外有氣化)’라 했어요. 안에 신령스러움이 나타난다는 거요. 왜냐하면 천지부모님은, 천주님은 신령스러운 분이니까. 신령스러우면 영원해요.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면 안 썩잖아요. 신령스러움이란 것은 소금과 같아요. 왜 우주가 영원불변하냐? 신령스러움이 있으니까. 천지부모님이 갖고 계신 그 신령스러움이 입도를 하면 나한테 내려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선천세상에서의 성사재인의 푯대를 지은 유학에서 ‘성주유래 법제요’라고 한 거예요. 그러니까 요임금의 신령스러움이 있으면 나라가 안 망한다는 거요. 나라가 영원히 마르고 닳도록 간다는 거요. 그래서 항상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하려면 요임금과 같은 임금이 나와야 된다. 요임금 같은 임금이 나와서 요임금을 모셨던 신하들과 같은 심법을 가지고 정사를 펼치면 국태민안 - 나라가 편안하고, 백성이 안정된다. 그래서 역대 임금들이 전부 원하는 것이 요임금을 닮아가는 거였어요. 그것을 공자가 육경(六經)으로 편찬했어요. 세종대왕 같은 분도 성군이 되고 싶어서, 임금으로서 요임금의 신령스러움을 갖고 싶어서, 세종대왕이 요임금의 신령스러움을 얻으면 나라가 신령스러운 나라가 되잖아요. 만세반석에 올라선 나라가 되지요. 그래서 사서삼경 천 독(千讀)을 목표로 했대요. 천 독을 하니까 요임금이 갖고 있는 신령스러움이 다가오는 거예요. 공자가 사서삼경에다가 요임금의 신령스러움을 밝혀놓았거든. 그래서 공자가 “내가 문(文)을 받았다”고 한 것이지요. 공자가 문왕(文王)이었거든요. 문왕이란 도왕(道王), 도를 받았다 이거예요. 도를 받았다는 것은 상제의 신령스러움을 자기가 받았다, 쉽게 말하면 상제의 마음이 임했다는 거예요.
공자가 인간적인 얘기만 해서 신령스러움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신령스러움이 넘쳐났던 분이예요. 그래서 위기에 처해도 당당하잖아요. 예수가 왜 당당하냐? 자기가 신령스러움을 갖고 있다 이거지. 하느님의 영이 내렸다는 거거든요. 공자도 하느님의 신령스러움이 내렸기 때문에 당당한 거요. 천명을 받은 거지요. 예수도 천명을 받고, 공자도 천명을 받고, 노자도 천명을 받고. 입도라는 것은 천명을 받은 거요. 신령스러움이 항상 가득하다는 거요. ‘성주유래 법제요’라. 선천에서는 그랬다는 거요.
그런 신령스러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역대 임금들이 애를 썼고, 역대 신하들이 애를 썼어요. 이순신 장군도 이름이 순신(舜臣)이라고. 자기 형제들 이름이 큰 형님은 희신(羲臣), 태호 복희(大昊伏羲)할 때 희자와 신하 신자, 태호 복희의 신하. 그 다음 형님은 요신(堯臣), 요임금의 신하. 그리고 자기는 순신이지, 순임금의 신하. 또 동생은 우신(禹臣), 우임금의 신하. 그러니까 성인이 다스리는 요임금이 다스리는 그런 태평치세를 자식들이 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늘의 신령스러움을 잃지 않고 영원무궁토록 만세반석을 올릴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기를, 그런 충신이 되기를 자식들한테 원했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의 부모님이 그렇게 이름을 지었어요. 그래서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잖아요. 이름 그대로 일이 돌아간다고. 학익진법(鶴翼陣法)도 꿈에 신령이 나타나 일러주었다는 거요.
*“도적잡는 자를 포교(捕校)라고 부르나니 교(敎)를 전할 때에 포교(布敎)라고 일컬으라. 우리 일은 세상의 모든 불의(不義)를 맑히려는 일이니, 그러므로 세상에서 영웅이란 칭호를 듣는 자는 다 잡히리라.”(강증산과 태을도, 300쪽)
*“너희들이 장차 세상에 포교하여 세상사람들이 성경신을 다해 나를 믿고 주문을 읽어 수련과 마음공부를 한다면 영웅심이 저절로 슬기로와지고, 악한 마음이 저절로 어질게 바뀌고, 젖먹이가 어머니 품속에 있는 거와 같아서, 어린이의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천지공정에 참여하게 되느니라.”(강증산과 태을도, 300쪽)
입도한다고 하는 것은 신령스러움을 받는 거요. 그런데 선천에서는 신령스러움의 푯대를 누구로 잡았냐면 요임금이란 말이요. 그런데 상제님께서는 후천의 신령스러움의 푯대로 누구를 잡았냐. 누구로 잡았겠어요? 선천은 요임금이고, 후천은 누구로 잡았겠어요? ... 단주(丹朱)로 잡았지요. 후천의 신령스러움을 받아내는 첫 출발이 누구냐? 단주예요. 이걸 선천에서는 왜곡을 했지요. 원래의 신령스러움은 단주가 갖고 있는데, 요임금한테 신령스러움이 있다고 해가지고. 유학이라는 학문으로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선천세상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거요. 너무나 착해도 복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잖아요. 상제님이 김형렬 성도한테 “너는 도선(徒善)이라”했지요. 무리 도자 착할 선자. 김형렬이란 분이 선으로 똘똘 뭉쳐있어서 상제님이 “너는 밥 벌어먹기가 어렵다.”고 하셨다고요. 선천세상은 상극지리이기 때문에 단주가 할래야 할 수가 없어요. 바둑판을 가지고 경위를 따졌던 양반이라, 이(利)끗이 많이 오고가는 선천세상이 용납이 안될 거잖아요. 어떻게 용납이 되겠어요? 그러니까 구조적으로 단주가 한을 쌓을 수밖에 없어요. 상생의 신령스러움을 단주가 가졌지만 선천세상에서는 어쩔 수 없이 요임금한테 갈 수밖에 없다는 거요. 그 한이 쌓이고 쌓여 내려와서 이제는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신령스러움이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그런데 신령스러움을 받아들여도 이걸 상극으로 이용하게 되면 패악질을 일삼아서 계급구분을 한다고요. 가진 자와 안가진 자, 남자와 여자, 하여튼 계급을 짓는 바람에 대동세계가 안돼요. 세계일가가 안된다는 거요.
단주한테는 세계일가를 이루려는 그런 신령스러움이 있어요. 그것을 상제님이 밝혀 주셨어요. 포교한다는 것은 결국은 신령스러움을 전하는 거요. 옥황상제 강증산의 신령스러움, 옥황후비 고수부님의 신령스러움, 정음정양의 천지부모님의 신령스러움을 전하는 것이 포교요. 선천에서는 요임금 세상을 만들려고 영웅호걸들이 자기 재주 자랑을 다 해 가지고 나라를 건설했단 말이예요. 그런데 영웅호걸들의 마음속에는 뭐가 있었느냐? 상극세상이기 때문에 독기와 살기가 있었다는 거요. 그렇게 행세를 했다는 거요. 상제님의 포교라는 것은 뭐냐 하면 상생의 신령스러움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그 독기와 살기를 빼내야지 상생의 신령스러움이 들어갈 게 아니요. 요임금의 마음을 거둬내고 단주의 마음을 집어넣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상생의 신령스러움이 성사재인될 거 아니예요? 그래서 영웅이라 칭하는 자는 다 잡힌다는 거지요.
사람이란 것은 양심이 있다고요. 천심이 있다고요. 천심과 양심이 있기 때문에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요. 아무리 악한이라도 자기 자식한테는 나쁜 짓 안 시키잖아요. 아무리 사기꾼이라도 양심이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식한테는 사기치라고 안 한다고요. 누구나 내유신령(內有神靈)하고 외유기화(外有氣化)하는 그런 신령스러움이 있다 이거요. 상극세상에서도 그런 신령스러움이 있었기 때문에 영웅호걸들이 자기의 이념에 맞는 주군을 모시고서 건방설도(建邦設道)하면서도 마음속에는 정말로 이렇게 칼로 목숨을 앗아가면서 건설하는 이런 세상이 아닌, 정말로 독기와 살기를 풀어가지고 떡으로써 건방설도하는 그런 도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했단 말이예요.
영웅들은 전부 꿈이 있다고요. 세계일가를 만들려는 꿈이 있어요. 대표적인 영웅호걸들이 상제님 말씀에 의하면 24장 28장이 아니겠어요? 시간과 공간의 경위의 열매가 인간이거든요. 동지, 소한, 대한, 입춘, 우수, 경칩하는 24절기 기운을 돌돌 말아서 징표가 된 장군이 24장이예요. 당태종을 도운 사람이 24장이거든. 그 다음에 각항저방심미기... 이 기운을 가지고 장수가 된 사람이 28장이라는 거요. 후한 광무제를 도운 28장. 그 영웅호걸들이 일구월심(日久月深)으로 원하는 것이 뭐냐 하면, 물론 24장은 당태종을 통해서 요임금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했고 28장은 후한 광무제를 통해 가지고 ‘건방설도’를 하려고 했지만, 그 마음 속에는 진정한 세계일가를 이루려는 꿈이 있었단 말이예요.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그 영웅호걸들한테 “너 칼 내려놓아라.”하신 거지요. 앞으로의 세상은 이치가 상생이기 때문에 신령스러움을 상생으로 풀어놓는 시대라, 그 칼잽이들에게 칼을 내려놓으라고 했단 말이요. 그러니까 24장 28장이 요임금한테 천명을 내렸던 하늘의 상제님이 단주를 통해서 ‘건방설도’하려는 상제님의 그 뜻을 알아서 24장 28장들이 흔쾌히 동의해 준거요. 왜냐하면 자기들이 정말로 원하는 세상이니까. 가능하면 칼로 안하고서 떡으로서 말로써 용서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쓰니,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해요.
상제님께서 “도적잡는 자를 포교(捕校)라고 부르나니, 세상에서 영웅이란 칭호를 듣는 자는 다 잡히리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 장수로서 대표적인 24장 28장들이 상제님한테 모두 잡혀왔단 말이지요. 그 장수들의 총대장이 박공우 성도예요. 그러니까 박공우 성도도 상제님한테 잡혀온 거지요. 본인이 또 원했고. 쉽게 말하자면 박공우 성도가 24장 28장을 지휘해서 포교를 하고 있단 말이요. 24장 28장이 영웅호걸 행세했던 사람이니 얼마나 잘하겠어요. 장군 하나가 통솔하는 일군(一軍)의 장수가 1만 2500명 정도 되니까. 해서, 24장 28장들이 포교하는 거요. 그러니까 신명들이 포교하러 다니는 거요. 단주를 모시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자. 이거는 무기도 필요없다. 이것은 전쟁터 나가서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무엇으로 하는가? 태을주로 한다. 태을도라 이거요. 태을도. 도를 전한다 이거요. 선천에서는 칼을 가지고 영토를 넓히고 백성을 교화시켰지만, 이제는 태을도를 전해서 ‘도제천하(道濟天下)’한다는 거요. 도로써 세상을 하나로 만든다는 거지. 그러니까 24장 28장들이 박공우 성도와 더불어 그렇게 포교하고 다니고 있는 거지요.
*“너희들이 장차 세상에 포교하여 세상사람들이 성경신을 다해 나를 믿고 주문을 읽어 수련과 마음공부를 한다면 영웅심이 저절로 슬기로와지고, 악한 마음이 저절로 어질게 바뀌고, 젖먹이가 어머니 품속에 있는 거와 같아서, 어린이의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천지공정에 참여하게 되느니라.”(강증산과 태을도, 300쪽)
상생의 신령스러움으로 후천세상을 여는 그런 천지공정에 참여해야 된다는 거요. 우리가 포교를 하려면 뭐를 해야겠어요? 우리가 독기와 살기를 가지고 영웅호걸들을 포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스스로의 독기와 살기가 빠져야지 그 사람들한테서 독기와 살기를 빼줄 것 아니예요. 독기와 살기가 남아있으면 요임금 세상을 만드는 거지. 어떻게 보면 요임금 세상의 연장이요. 독기와 살기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포교를 해서 뭘 한다면 결국은 요임금 세상의 연장을 도모하는 거요. 상제님께서 그 시대는 끝났다는 거요. 증산 종단에 여러 가지 교파가 있지만, 독기와 살기를 가지고 포교를 한다면 요임금 세상을 연장하는 거와 같다 이거요. 단주의 세상을 여는 것이 아니고 요임금 세상을 연다는 거요. 독기와 살기를 뺀 사람들한테 24장 28장이 온전하게 응기하고 박공우 성도가 온전하게 응기한단 말이예요.
산보하다 보니, 서울하고 부천하고 산을 뚫어서고 터널을 만들더라고요. 작년부터 했던 것 같은데 거의 다 뚫렸어요. 이쪽은 서울 신정동이고 건너편은 부천 고강동인데, 이게 다 뚫렸어요. 터널이 뻥 뚫려 통하듯이, 상생세상으로 가려면 상극세상에서 남아있던 독기와 살기가, 내 마음속의 독기와 살기가 다 빠져나가야 저쪽으로 가는 통로가 열리는 거라. 인간들의 마음속에서는 다 상극세상을 마감하고 상생세상으로 가려고 하는 그런 의지가 있다는 거예요. 삶의 의지. 신령스럽다고 하는 것은 생생지도(生生之道)를 가지고 있다는 거거든. 신령스럽다는 것은 생생지도(生生之道)를 발현시킬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다는 거예요.
누구나 다 상생세상을 지향하려고 하는 그런 믿음, 삶의 본능이 있기 때문에 그런 세상으로 가려면, 터널을 뚫을 때 흙을 다 파내는 것처럼 내 마음속에 있는 독기와 살기를 다 파내야 돼요. 파내야지 저쪽 세상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걸어갈 것 아니예요. 24장 28장이 온전히 응기되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면, 내 속의 독기와 살기를 다 풀어내야 돼요. 태을주가 그런 주문이라는 거예요. 상생세상을 건설하는 주문. 그런데 이제까지는 독기와 살기 때문에 태을이 고갈되었다는 거요. 태을맥이 끊겼다는 거예요. 태을이 고갈되고 태을맥이 끊기면 다 죽어요. 명줄이고 혼줄이고 젖줄이고 밥줄이고 영생으로 향하는 생명줄이 태을주이고 태을이예요. 그래서 맥 떨어지면 죽는다 하니 연맥을 잘 바루라고 하잖아요. 태을맥을 잘 바뤄야지 저 영생불멸의 상생세상으로 간다는 거요. 선천에서는 독기와 살기 때문에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몰라요. 이제 후천 개벽시대가 되어 태을이 열매 맺을 때가 되니까 상제님이 태을도를 내고 태을주를 주셔서, 태을도를 열매맺겠다는 거요.
태을도를 전해서 태을주를 읽히고 독기와 살기를 잘 풀어서 태을도로 열매 맺게 하려면 첫째도 독기와 살기를 풀어야 되고, 둘째도 독기와 살기를 풀어야 된다는 거요. 그래야 단주세상이 된다는 거지요. 그래야 차별을 안 짓는다는 거요. 양반세상을 도모하는 그런 차별이요. 요임금은 양반세상을 만든 사람이고, 단주는 양반세상을 없애자는 사람이예요. 아버지하고 아들하고 도가 서로 달라요. 요임금은 양반의 도를 통해 신령스러운 세상을 열자는 것이지만, 단주는 ‘양반세상을 가지고 신령스러운 세상을 열면 신령스러움 자체가 없어진다. 신령스러움이 어떻게 양반세상을 통해서 보존이 되는가? 시간이 흐르면 신령스러움이 다 흩어진다’고 하는 것이지. 아버지하고 아들하고 도가 달랐어요. 가효국충(家孝國忠)하는 방법이 달랐다는 거지요. 요임금이 가효국충하는 법과 단주가 가효국충하는 법이 서로 달랐다는 거예요.
24장 28장은 주군을 모시고 요임금 세상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 24장 28장이 박공우 성도를 따라서 단주를 모시고 후천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거요. 세계일가 양반이 없는 세상, 차별이 없는 세상. 그러니까 상제님이 “참 좋은 세상이 오는데..”하고 얘기하잖아요. 그런 세상이 온다는 거예요. 이제 조만간 봄이 옵니다. 봄에는 만화방창(萬化方暢)하지요. 개나리 진달래가 피고, 얼마나 아름다워요. 그런 생명의 꽃이 활짝 핀다는 건데, 사람이 영적으로 신령스러운 꽃이 활짝 피우려면 우선 독기와 살기가 빠져야 된다는 거예요. 독기와 살기가 있는 만큼 인간꽃이 아름답지 않아요. 독기와 살기가 많으면 추하고 꺼멓다 이거요. 독기와 살기를 없애면 신령스러움이, 태을이 발현된다는 말이예요.
‘성경신을 다해 나를 믿고 주문을 읽어 수련과 마음공부를 한다면 영웅심이 저절로 슬기로와지고’, 그러니까 독기와 살기가 없어진다는 거요. 선함을 주장한다는 거요. 위무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화락을 주장하고 웃음을 주장한다는 거요. ‘젖먹이가 어머니 품속에 있는 거와 같아서, 어린이의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천지공정에 참여하게 되느니라.’ 애가 얼마나 순진무구해요. 순결하잖아요. 진정한 용기는 순결에서 나와요. 순결한 만큼 용기가 나와요. 애가 무서워하지 않잖아요. 젖먹이한테 칼을 들고 위협해도 칼이 무엇인지 모르잖아요. 그렇게 된다는 거요. 어린이의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천지공정에 참여하게 됩니다. 상생의 신령스러움이 나온다는 거예요. 마음닦고 태을주를 읽어서 독기와 살기를 끊임없이 풀어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말하고 행동하는 틀이 바뀌어요. 말 끝에 독기와 살기가 사라지고 손끝에 독기와 살기가 사라져요. 독기와 살기가 사라지면 태을의 생명력이 나와요. 그래서 내가 태을맥을 이어줄 수 있어요. 내 마음자리만큼 통정하는 거요.
여기 계신 분들이 도반이 된 것은 여러분들이 벌써 상생의 신령스러움을 마음속에 그득 채웠기 때문에 여기 온 거예요. 마음은 자석과 같아서, 마음이 서로 기운이 통하면 만나고 기운이 어긋나면 서로 밀어내요. 자석이 기운이 안맞으면 밀어내잖아. 동기감응(同氣感應)이예요. 마음은 기운을 불러들이고, 기운은 신명을 불러들인다고요. 그럼 내 마음에 천지부모님과 같은 신령스러움이 있으면 누구를 닮겠어요? 상제님을 닮아가지 않겠어요? 씨앗은 상제님이니까. 천지부모님 중에서 씨앗은 강증산 상제님이잖아요. 그렇게 상제님 고수부님을 닮아가는 거예요. 여기 ○도우님이 상제님을 닮아가잖아요. 꽃이 활짝 폈잖아. 여기 ○도우도 닮아가잖아요.
하느님이 인간 땅에 오셨어요. 하느님이 오셨다니까요. 그래서 상제님이 김형렬 성도한테 “너 오동정 김경안한테 가서 예수교서를 하나 가지고 와라.” 쉽게 말하면 성경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김형렬 성도가 김경안한테서 예수교서를 하나 갖고 오니까 그것을 불살라 버린다고. 첫 번째 불사른 것이 성경을 불살랐어요. 그 다음에 불사른 것이 뭐냐? 불경을 불살랐다고. 천수경 불사르고, 한자 옥편 불사르고, 사요 불사르고, 강절관매법 불사르고, 해동명신록 불사르고, 그런 상극세상의 책을 불살랐어요. 쉽게 말하면 독기가 살기를 다 뺀 것이지. 이제는 상제님 말하는 것이 법이 된다는 것이요. 상제님이 움직이신 것이 법이 된다는 거요.
아까 얘기했잖아요. ‘성주유래는 법제요’라. 상제님 자체가 성주라. 성인의 주인. 그것을 단주를 통해서 성사재인해 간다는 것이요. 그러니까 상제님 고수부님 말씀을 통해 가지고 그 속에다가 정신을 담궈놨고, 기운을 담궈놨고, 신명을 응기시켜놨다는 거요. 세종대왕이 사서삼경을 천 번을 읽으니까, 요임금 시대부터 사서삼경 글을 통해 소위 말하는 영웅호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을 것 아니예요. 그 기운을 세종대왕이 다 모은 거지요. 그렇게 해서 성공했잖아요. 한글도 창제하고 과학기술도 발전시키고. 상제님께서 “너는 내 말을 믿으라. 들을 때 익히 들어두고 내어쓸 때 마음대로 내어쓰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상제님 말씀을 바탕으로 해서 후천이 열리니까, 그 글과 말에 후천의 마음, 후천의 기운, 후천의 신이 다 들어있다는 거예요. 세종대왕이 사서삼경을 천번 읽어 가지고 왕이 됐으면, 상제님 말씀을 듣고 상제님 글을 읽고 또 상제님 고수부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듣고 읽고, 듣고 쓰고.
필사(筆寫)라는 것이 있잖아요. 스님들이 금을 갈아가지고 불경을 필사한다고. 어떤 분은 성경을 쌀에다가 새기는 분도 있어요. 그렇게 필사를 하다보면 그 속에서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이 있거든. 우리 ○도인이 책을 읽고서 잘 올렸어요. 그렇게 읽고서 정리하다 보면 느껴지는 것이 있거든. 정리하다보면 느껴지는 것이 상제님 글 속에 있다는 거요, 말 속에도 있고. 그러니까 여기 와서 한 번이라도 더 참석을 하고 한 번이라도 더 듣고, 또 상제님 말씀을 한 번이라도 더 쓰고, 그렇게 하면 상제님 정신이 나한테 들어오는 거요. 그러면 행동이 바뀌게 돼요. 하느님을 만나서 내 행실이 바꿔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천지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서 내 행실이 바꿔져야 세상이 바뀐다고요. 그러니까 상제님이 신신당부하잖아요. “이 세상을 악한 세상이라 하지 말라. 너희들이 선한 즉 선한 세상이요. 너희들이 악한 즉 악한 세상이라.”는 거요. 너희들의 사회부터 개선하라 이거예요. 우리 태을도인이 모이는 이 사회가 올바른 모범을 보이면 세상은 따라한다니까요. 세상이 옳다 그르다 얘기할 필요 없어요. 우리는 신도에서 밝혀놓은 그 신로를 그대로 걸어가면 돼요. 용서하고 사랑하고 껴안고, 그렇게 하면 자연히 세상이 너희들 손에 들어온다는 거요. 상제님이 이렇게 말씀을 했잖아요.
*“한고조는 소하의 덕으로 세상을 얻었으나 너희들은 베풀 것이 없으니 언덕을 베풀라.”(강증산과 태을도, 300쪽)
오죽 가진 게 없으면 언덕을 베풀라고 했겠어요. 우리가 돈이 있나 빽이 있나, 뭐가 있어요? 아무 것도 없다는 거요. 그러나 상생의 신령스러움을 가지고, 천지 부모님의 마음을 가지고, 단주의 심법을 가지고 말을 하고 행동을 하면, 세상 사람들이 감동을 한다는 거요. 망량의 힘으로 세상을 복종시키지 말고, 진실의 힘으로 성신의 힘으로 감동시키면 그 사람들이 자연히 우리를 따라온다는 거요. 그런 세상이 온다니까요.
* “교를 전하는 방법이 먼저 육임(六任)을 정하고 태을주를 전해 받은 여섯 사람이 다시 다음의 여섯에게 교를 전하여 마침내 천하에 미치게 되나니, 이로써 연맥(緣脈)을 삼노라.”(강증산과 태을도, 301쪽)
태을 연맥을 이어가는 거예요. 태을이라는 것은 영원 무궁한 생명이예요. 영원 무궁한 생명이 되려면 마음도 영원 무궁한 마음을 가져야 되잖아요. 사람의 기본적인 표층의식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식(六識)이예요. ‘의(意)’부터가 마음이예요. 제 일식부터 제 오식인 ‘안이비설신’까지는 촉식, 감각으로 느끼는 거예요. ‘안이비설신’ 이것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은 동물이나 다를 것이 없어요. 안이비설신, 촉식이 모아진 이후에 제 육식인 의가 시작돼요.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잖아요. 그러니까 인간은 의,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본능이 아닌, 생각하는 것부터 인간다움이 시작된다 이거예요. 불교에서는 마음이 시작되는 의식 이외에도 칠식인 말나식(末那識, Manas識), 팔식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이 있어요. 마음의 중심이 이렇듯 내려가서 그 마음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거요. 그것을 불교에서는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라고 해요. 불교에서 예불할 때 ‘지심귀명례’ 하잖아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 목숨을 건다’는 거요. ‘내 마음을 바꾸는데 내 목숨을 걸겠소’ 하는 거예요. 육식, 칠식, 팔식인 의식, 말나식, 아뢰야식인 마음을 바꾸는 데 목숨을 건다는 거요.
상제님이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마음 바꾸기가 죽기보다도 어렵다.” 죽기보다 어려운 ‘마음을 바꾸라’는 거요. 우리가 선천에서는 요임금 스타일로 살아왔어요. 요임금 스타일의 계급을 찾아내서 살아왔다니까요. 그것을 가지고 돈도 벌고 권력도 얻고 명예도 얻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후천은 요임금의 양반 방식이 아니고 단주의 쌍놈 방식으로 산다고 했어요. 그래서 쌍놈 도수를 지었다고 했잖아요. 쌍놈의 세상이 된다는 거요. 직업의 귀천도 없어지고, 다만 무엇으로 평가되냐.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자리, 그것을 도라고 하잖아요. 그것을 가지고 얼마나 덕을 쌓느냐. 그것을 가지고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평가된다는 거요.
오늘이 경칩이예요.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인데, 만물이 소생하는 때예요. 만물이 소생하는 경칩절에 세상사람들을 소생시켜야 되잖아요. 마음을 소생시켜야 되고, 태을을 소생시켜야 되잖아요. 태을을 소생시켜서 태을을 잘 키워야지 결실을 맺을 것 아니예요. 그러려면 첫째도 용서하고 둘째도 용서하고, 첫째도 독기를 풀고 둘째도 살기를 풀어야 된다고. 독기와 살기를 풀어야 사람 생명을 살릴 수가 있다니까요. 상제님이 어떻게 사람을 살렸느냐? 독기와 살기를 풀었기 때문에, 살기가 없으셨기 때문에 사람을 살리셨어요. 그래서 이 경칩절에 만물이 소생하듯이 우리도 이 마음속의 독기와 살기를 전부 다 풀어 없애서, 영웅으로 행세하는 요임금 시대를 다시 반복시키려고 하는 그런 영웅들을 우리가 전부 포교해서 그 사람들의 독기와 살기를 전부 빼내야 한다고. 내가 독기와 살기를 빼는 만큼 세상의 독기와 살기를 뺄 수 있어요. 내가 독기와 살기를 빼면 그만큼 세상의 독기와 살기가 줄어들 것 아니예요. 그러면 나도 살고 남도 살린다니까. 그러니, 매사에 ‘탓하지 말자’ 이거예요.
경칩절에 우리가 다시 한 번 다짐을 해서, 내 생명도 살아나고 다른 사람의 생명도 살아나는 그런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첫댓글 '너희들은 베풀 것이 없으니 언덕(言德)을 잘 베풀라' 아마도 베풀 게 언덕밖에 없도록 일부러 만들어놓으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덕을 가지려면 먼저 마음이 덕으로 채워져야 할 것이고, 세상사람들을 말로 감동시키려면 먼저 내 마음이 진실하고 성실해야 할 것이니, 결국은 내 마음이 갖고 있는 살기와 독기가 빠져야 가능한 것이지요.
매번 소중한 가르침 고맙게 받아갑니다.
정리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반복해 볼수록 새롭게 느끼는 바가 있고 한가닥으로 정리가 됩니다.
정리해 올려주셔 감사합니다. 말씀들을 때 몰랐던 것들이 글로 보니 알 것 같습니다.
한 번 들은 것을 다시 읽으니 더욱 선명해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