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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문화속의 오름
신영대 교수(제주관광대)
<제목차례>
1. 머리말 1
ⅰ) 주제발표에 앞서 1
2. 한라산과 오름 3
1) 자상한 어머니의 품 한라산 3
2) 한라산의 山勢(산세) 6
3) 일반적인 오름의 정의 7
4) 오름이 안고 있는 상징성 8
5) 오름과 五行(오행)의 山形(산형) 10
6) 오름에 대한 옛 제주인의 시각 12
7) 古地圖(고지도)와 오름의 지맥 12
3 .제주오름과 風水(풍수)의 地名(지명) 14
1) 지명과 풍수 14
2) 풍수적 物形(물형)에 관련된 지명들의 예 15
3) 風水(풍수)(산도山圖)에 나타난 오름의 陰宅穴(음택혈) 物形(물형) 16
4) 오름속에 내재하는 제주민들의 풍수관 17
ⅰ) 오름과 제주민의 地母觀(지모관) 17
ⅱ) 地母觀(지모관)에서 발전한 풍수의 개념 19
4. 제주오름과 地母觀(지모관) 21
1) 설문대할망과 오름에 얽힌 설화 21
2) 胡宗旦(호종단)의 地壓說(지압설) 22
3) 제주의 12대 명혈(6대 음택지와 6대 양택지) 22
5. 제주문화 속의 풍수관 24
1) 裨補(비보)·壓勝(압승)의 풍수관 24
2) 방사탑과 돌담 24
3) 오름은 마을의 鎭山(진산) 24
4) 오름의 설화에 나타나는 인격화 26
5) 제주의 산담(墓墻)에 드러나는 ‘生死一如觀(생사일여관)’- 27
6) 오름의 품에 돌아가려는 歸巢觀(귀소관) 27
7) 體(인체)의 개념으로 본 오름의 生命觀(생명관) 28
6. 오름과 牧畜(목축) 30
ⅰ) 所(소)로 나뉜 목장구역내의 명혈들 30
7. 오름과 문학 31
8. 오름의 형상화 - 제주의 草家(초가)와 돌 문화 32
9. 제언 -오름의 보전과 관리 32
1) 무엇보다 자연환경에 대한 도민의 의식이 앞서야 - 32
2) 가장 제주다운 것이 최고의 관광상품이다 - 37
10. 맺음말 37
˚主要 引用資料 및 參考文獻 39
1. 머리말
늘 오름을 오를 때면 생각한다. 오름의 실체를 모르면 오름은 그져 오름일 뿐이라고. 그러나 그 오름의 실체를 알 때 오름은 최고의 생명력으로 다가온다고. 그렇다. 오름은 제주민의 생활 근거지였고 신앙의 터전이었으며 항쟁의 정신이 살아 숨쉬었던 곳이다. 그 오름의 자락마다 얽혀 있는 숱한 역사의 질곡 속에서 피어난 제주민의 삶과 숨결이 깊게 배어 있음을 본다.
‘오름에 나서 오름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제주인 은 한라산의 품, 한라산의 자락에서 태어나 오름을 기대어 살다가 오름으로 돌아가 오름의 자락에 묻힌다. 이러한 순환의 삶의 형태, 태고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제주민의 삶 그 자체다. 제주의 선조들은 영험한 기운이 서린 한라산의 山麓(산록)을 “따비”로 일구며 산천의 정기가 용출하는 곳곳에 삶의 터전을 가꾸며 촌락을 형성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1만 8천이나 되는‘신들의 고향’368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가 곳곳에 솟아 있는‘오름의 왕국’60여개의 골짜기와 사방으로 실핏줄처럼 퍼져 감아 도는 하천을 안고 생태환경의 섬 제주도는 태고로부터 쉬임없이 생명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이 신령한 한라산의 정기를 머금고 품안에 있는 오름들은 제주인의 삶과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 것일까? 또한 오름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오름의 자락에서 살아온 제주인 은 그 속에서 무엇을 꿈꾸었는지, 앞으로 오름은 제주의 땅에서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오름과 관련하여 맺어지는 제주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과 정신관, 생활관 등 모든 삶의 구석구석까지 오름을 빼어 놓고 생각한다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제주문화 속에 자리한 오름은 제주민의 삶과 의식 속에 어떤 존재로 여겨져 왔으며, 그 오름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 의미와 실제로 제주문화 속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삶의 터전이 되어 온 오름은 어떠한 모습으로 제주정신을 이루는 모태의 하나가 되었는지를 생각하고, 특히 제주의 문화 속에 제주민의 오름에 대한 지배적인 低流(저류)는 무엇인지 피상적인 견해를 덧붙여 주제의 근간을 형성하고자 한다. 더불어 제주의 정신이 면면히 살아 숨쉬고 제주문화의 깊은 맥이 흐르는 오름에 대한 역할을 재조명하고, 그 오름에 대한 가치의 재정립과 오름의 보존과 관리방안을 생각하고 오늘날 오름은 우리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철학적인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려 한다.
ⅰ) 주제발표에 앞서
‘오름의 왕국’이란 이름에 걸맞게 세계 최대의 기생화산 군락 지로써 제주민의 삶의 토대가 되어 온 368개의 형형색색 신비한 오름을 안은 신의 땅 제주,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제주를 한 마디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난 개발에 신음하는 가장 불행한 시대의 귀로에 서 있는 제주’라고 말이다. 신이 내려 준 크나큰 보배인 자연생태의 섬 제주, 그 순정한 색채는 점점 퇴색해져 가고 그 어느 시대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생태균형의 파괴와 난 개발의 정도가 위험의 수위를 넘어 이제는 제주의 대명사격인 ‘청정제주’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생태의 寶庫(보고) 제주는 생사를 넘나드는 최악의 몸살을 앓고 있다.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없는 풍부한 식생군락지로서 種多樣性(종다양성)의 다향한 생태적 체계를 갖춘 제주는 하늘과 땅이 안겨 준 엄청난 값진 보배의 땅이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이해타산과 이욕에 영합한 무리들의 알량한 명분과 계획아래 개발이란 명분으로 후손들이 길이 누려야 할 삶의 환경을 도륙질하며 스스로 최고의 가치를 무참히 내던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해안에서 중산간에서 높고 낮은 곳 할 것 없이 공간만 있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파헤치고 있다. 그렇다고 믿을 만한 환경평가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도처에 살가죽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의 소리로 들려 오는 포크레인 소리에 온통 제주가 시끄럽기만 하다. 해안이나 중산간 할 것 없이 제주의 정서와 분위기에 맞는 건물은 거의 볼 수 없고 더욱이 오랜 세월 섬땅에 깊게 묻혀 있는 제주다운 정겨운 모습과 소박한 모습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누가 말했던가? 가장 제주다운 모습이야말로 영원한 제주의 부가가치를 형성할 수 있다고. 순정한 모습을 잃지 않은 제주는 모든 이들이 고향처럼 찾는 그리운 곳이 될 것이라고. 그냥 걸어서 다녀도 모자란 작은 땅에 지금 이 순간에도 그것도 모자라 마을의 앞과 뒤로 좌로 우로 온갖 길 내기에 정신이 없다. 특히 연말이 되면 더더욱이 그렇다. 동서남북 四通八達(사통팔달)로 산허리를 자르고 산자락을 뭉겨가며 그토록 많은 도로가 뚫려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전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도로가 잘 되어 있는 곳이 제주라고 하니 말이다. 이 작은 땅에 조금 돌아가면 어떤가. 도로가 뚫리면 자연 상점이나 집들이 들어서게 되고 그렇게 되면 땅은 점점 오염되고 균형을 잃게 될 것이다. 전망의 조망권이 뛰어나고 지리의 이점을 얻어내며 최고의 부가가치를 안겨 줄 수 있는 소위 명당이라고 하는 곳은 다수를 위한 것이 아닌 공공건물 아니면 개인소유의 이상한 건물들로 다 점유되어 있으니 한심할 뿐이다. 부끄럽게도 후손들이 다시 없애야 될 일들을 가속도를 붙이며 지금 하고들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제의 푸른 녹지와 과수원 혹은 밭들이 하루가 다르게 지리적 미관을 무시한 채 우후죽순으로 주택단지가 들어서는가 하면 도로 옆에 보이던 푸른 숲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신설된 주요소 아니면 상점들이다. 온통 제주가 마치 한 세대만 살 것처럼 미래의 푸른 희망을 접은 채 죽음의 섬으로 변해 가고 있다. 지금 제주는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지속 가능한 근본적 가치를 외면하고 한계와 문제점이 확연히 드러나는 상대적 가치만 추구하는 오늘에 있어서 자못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공존하는 순리적인 삶의 형태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시간과 공간을 이어주며 우리가 살아가며 숨쉬는 땅, 그러한 맥락 속에서 특히 제주민의 삶의 문화가 시간 속에 축적되어 점철된 정신적 고향인 오름의 실체에 대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때다. 그 오름 마다 에는 선인들의 삶과 지혜, 지명과 설촌유래, 설화, 신화, 역사, 문학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생활문화가 자리하면서 제주민의 가치관과 삶의 향기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것의 의미를 오늘날 우리가 다시 복원하고 세워 가꾸는 일은 우리세대가 할 일이다. 우리들이 공동으로 누려야 할 영원한 재산인 오름의 산자락들이 제재의 방편 없이 소수의 이해타산과 관리의 부실로 빠른 속도로 훼손되어 가고 있다. 오름의 파괴가 가속화 될수록 그 속에 농축된 제주의 정신도 함께 황폐해 갈 것이다. 368개나 되는 각자의 오름을 하나의 생명체로 인식할 때 그 오름의 역할은 무한대의 비상을 할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맥락을 안고 본 토론회에서 ‘제주문화 속의 오름’이란 주제를 가지고 그 본령을 생각하고 밝히는 일은 중차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오름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제주민의 삶속에 오름이 오름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그 오름이 갖고 있는 생명의 실체를 파악할 때 오름은 최고의 가치로 다가올 것이라 확신한다.
2. 한라산과 오름
1) 자상한 어머니의 품 한라산
예로부터 瀛州山(영주산), 즉 한라산은 三神山(삼신산)으로 불리며 蓬萊山(봉래산), 方丈山(방장산)과 더불어 신령한 한민족의 3대 靈山(영산)으로 여겨 왔다. 천변만화하는 신비한 한라산에 대한 이야기와 모습, 수많은 설화와 전설은 물론 《고려서高麗史》,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이나 작자미상의 《영주지瀛州誌》, 金淨(김정)의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 金尙憲(김상헌)의 《남사록南 錄》, 李健(이건)의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 金錫翼(김석익)이 새로 편정한 《탐라기년耽羅紀年》, 李元鎭(이원진)의 《탐라지耽羅誌》, 李增(이증)의 《남사일록南 日錄》등 기타 역사적인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제주도는 육지에서 약 천여리를 사이에 두고 남쪽 바다에 돌기한 국내 최대의 섬이며 동서가 약 사백리, 남북이 약 이백 리로 지형이 둥그스름하고 길어서 마치 달걀의 형상과 같다. 한라산맥이 높고 낮고 일어나고 엎드린 듯한 高低起伏(고저기복)이 출중하여 풍경이 아름답고 기맥이 잘 발달된 곳이다. 한반도의 두 번째로 높은 1950미터의 화산폭발에 의해 이루어진 신비한 靈山(영산)이며, 山頂(산정)의 높고 빼어남이 푸른 하늘을 만지는 듯 하다. 漢拏(한라)라고 부르는 것은 은하銀河(은한銀漢)를 끌어당길 만한 높은 산이기에 붙여진 말이다. 혹은 높으면서 둥글어 圓山(원산)이라고도 하고, 봉우리마다 평평하여 頭無岳(두무악)이라고도 한다. 산 전체에 우거진 숲과 괴암괴석과 千形萬壑(천형만학)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瀛州山(영주산)이라고도 일컫는다. 이에 대한 기록은 《제주풍토록》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시대에 따라 한라산의 명칭은 釜岳(부악), 仙山(선산), 鎭山(진산), 女將軍(여장군), 單山(단산), 浮羅山(부라산), 圓嶠山(원교산), 無頭岳(무두악), 頭無山(두무산), 蓬萊山(봉래산), 穴望峰(혈망봉), 朝鮮富山(조선부산), 하늘산 등 무려 20여개에 달하는 이름이 있는데, 제주학의 선구자이자 낙비 박사로 잘 알려진 石宙明(석주명, 1908-1950)의 《제주도 수필》 등에서 위에서 언급한 명칭들이 대부분 소개되어 있다.
특히 육지의 風光과는 달리 독특한 천연미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제주도는 동경 126도 5,2분이며, 북위 32도 50초에 위치하여 어머니의 모태인 한라산을 중심으로 368개의 오름을 안은 영험한 기운이 깃든 섬으로 목포까지 약 88이요, 부산까지 약 170리 정도 떨어져 있는 絶海孤島(절해고도)의 恕圓形(타원형)의 섬으로 서쪽으로 중국의 上海까지 약 2백리 떨어져 있고, 동쪽으로 일본 長崎縣(장기현)의 五島(오도)까지 약 1백리 정도 떨어져서 동해 상에 있어서 지리적으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산세는 대체로 사방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바다로 들어가고, 부락은 주로 경작지대에 분포되어 있으며, 특히 해안지대에 많이 들어서 있다.
庶庵(충암) 金淨(김정)의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에 ‘한라산 절정에 올라 창망한 바다를 사면으로 둘러보며 ‘남극노인성’을 굽어보고(노인성의 크기는 샛별만 하고, 남극의 중심에 있으니 지상에 나오지 않으므로 만약 이 별을 보게되면 장수한다는 상서로운 별이니 다만 한라산과 중국의 남악에서만 이 별을 볼 수 있다) 월출·무등의 모든 산을 내다보며 기이함이 가슴을 후련하게 씻을 수 있다’라고 했다. 또한 李元鎭(이원진)의 《탐라지耽羅志》에 나타난 한라산 예찬시에는 權近(권근)의 〈응제시應製詩〉, 判官(판관) 金緻(김치)의 〈등절정登絶頂〉·〈영실시瀛室詩〉, 御使(어사) 李慶憶(이경억)의 〈영실우우瀛室遇雨〉등이 있다.
오름을 품에 안은 한라산은 어미닭과 같고, 한라산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분포해 있는 오름들은 새끼병아리에 비교한다면, 한라산과 오름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없는 것이다.
2) 한라산의 山勢(산세)
제주도 한라산은 태조산인 백두에서 發源(발원)하여 줄기차게 흘러 내려온 大脈(대맥)이다. 그 힘솟는 지맥이 宗山(종산)인 한라산에서 맺혀 제주의 생명력을 독창적으로 만들어 낸다. 제주도에 대해 李重煥(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 보면“ 마이산 서쪽과 북쪽에서 뻗은 두 지맥은 진잠과 만경에서 그치고, 그곳에서 가장 긴 것은 노령에서 세 가닥으로 갈라져 서북쪽 두 지맥이 부안·무안을 지난 다음에 흩어져서 서해 복판의 여러 섬이 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또 긴 것은 동쪽으로 가서 담양 추월산과 광주 무등산이 되었고, 추월산과 무등산맥이 다시 서쪽으로 내리 뻗어 영암의 월출산이 되었다. 월출산에서 다시 동쪽으로 흘러 광양 백운산에서 그쳤는데, 구불구불한 산맥이 之字(갈짓자) 모양과 같다. 월출산의 한 맥이 남쪽으로 흐르다가 해남현 관두리를 지난 후에, 남해 복판의 여러 섬이 되었고, 바닷길 천리를 건너 제주 한라산이 되었다. 혹은 한라산 맥이 바다를 건너 유구국이 되었다”라고 되어 있다. 이처럼 제주도 한라산은 태조산인 백두에서 深遠(심원)하여 줄기차게 흘러 내려온 大脈(대맥)이다. 그 힘솟는 지맥이 宗山(종산)인 한라산에서 맺혀 제주의 생명력을 독창적으로 만들어 내고 품에 안은 오름들을 중심으로 하여 기운의 경계를 짓는 대표적인 하천인 無愁川(무수천), 屛門川(병문천), 倉庫川(창고천), 錦城川(금성천), 漢川(한천), 新禮川(신례천), 壅浦川(옹포천), 淵外川(연외천), 江汀川(강정천), 孝敦川(효돈천), 川尾川(천미천) 등을 사이에 끼고 동쪽으로 서쪽으로 남쪽으로 북쪽으로 살아 꿈틀거리는 氣脈(기맥)을 형성한다.
제주도 지세에 대해 淸陰(청음) 金尙憲(김상헌)이 편저한 《남사록南 錄》에 ‘林子順(임자순)의 南溟小乘(남명소승)에 의하면 섬이 나라의 정남에 있어서 한라산이 그 가운데 있고, 좌우의 날개를 펴서 一字와 같이 가로 퍼져 있는데 제주 一鎭(일진)은 북쪽에 있어서 바다에 임하고 바로 두무악과 서로 대하였고 정의현은 좌익의 남쪽에 있고...’등이 언급되어 있다.
또한 제주도 풍수의 고전으로 익히 알려진 《과영주산세론過瀛州山勢論》에 ‘영주사 즉, 한라산은 마치 백학이나 푸른 푸른 매의 형국으로 주위 사방이 높고 마치 장군이 홀로 앉아 있는 듯 하다. 머리는 서쪽으로 향하고, 꼬리는 동쪽으로 내려 祖宗山(조종산)인 백두산을 돌아보는 형국이다. 동쪽의 지세는 미인의 눈썹 같아 벼슬하지 않아도 번성하고, 서쪽 산의 형세는 창고와 같아 농사에 관한 일을 하면 크게 이룬다 했다. 남쪽의 지세는 매의 형상과 같아 날아서 먹이를 얻지 않으면 앉아서 굶는다 했다. 북쪽의 지세는 호랑이의 머리 형국으로 천리에 있는 먹이를 얻는데 성공한다’라고 했다. 이 밖에도 瀛州翫形詩(영주완형시), 《제주도산록濟州島山錄》, 《탁옥정도식琢玉亭圖式》등에서 제주도의 산세를 논하고 있다. 이 밖에도 庶庵(충암)의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에 영실 존자암에 대한 지세를 언급하고 있으며, 淸陰의 《남사록》에서도 한라산의 산세에 대해 비교적 소상하게 수록하고 있다. 金緻(김치)의 《유한라산기遊漢拏山記》에서는 한라산의 이모저모와 영실의 尊者庵(존자암), 특히 修行窟(수행굴)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
3) 일반적인 오름의 정의
오름이란 제주화산도상에 산재해 있는 기생화산구를 말한다. 즉, 오름의 어원은 자그마한 산을 말하는 제주도 방언으로서 ‘오르다’의 명사형으로서 ‘자그마한 기생화산’이란 의미다. 오름의 표기에 대한 명확한 학술적 규명이 없기 때문에 곳에따라 ‘山(산)’, ‘岳(악)’, ‘峰(봉)’등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제주인이 생각하는 오름은 대체로 경사가 급하지 않고 봉우리가 둥글게 봉긋 솟아 있는 형태의 기생화산을 지칭하며, 산체의 산록 상에서 만들어진 낱낱의 분화구를 갖고 있는 소화산체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분화구를 갖고 있고 내용물이 화산쇄설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산구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金淨(김정)의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에서는 오름에 대해 ‘구릉이 있되 모두 외따로 떨어져 우뚝하나 머리가 없이 활처럼 휘었으며 (모두 고립되어 있고, 우뚝 솟진 않았고, 또한 머리가 벗겨졌다), 돌아 감싸안은 듯한 형세는 없고, 오로지 큰 봉우리가 하늘 가운데 우뚝 솟아 시야를 가릴 뿐이다.......또 산봉우리의 정상은 반드시 오목하여 오목한 가마솥과 같고 진흙물을 이루어 고여 있는데, 봉우리마다 그러하므로 머리 없는 頭無岳(두무악)이라 한다’라고 했다.
이처럼 오름의 독특한 이미지는 제주만의 특징이다. 풍수에서 ‘일척이라도 높으면 산이요, 일 척이라도 낮으면 물이다’라 했다. 물론 오름도 산이다. 그러나 제주 선인들이 궂이 산과 오름을 구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한 지형적 특성으로만 붙여진 이름일까. 생각해 볼 일이다.
4) 오름이 안고 있는 상징성
오름은 마을마다 鎭山(진산)의 역할을 하며 주민들의 삶 속에 뿌리한 정신의 맥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특히 오름들은 색채의 아름다움과 공간배치의 조화성, 음양오행의 형체론적 易(역)의 이치를 담고 있으며 조형미와 변화의 창출성이 빼어나고, 상호 보완성의 지맥을 안고 있다. 또한‘제주의 오름은 단순히 자연의 일부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 시대를 살아온 제주민들의 손길이 닿은 결과, 자연과 역사와 문화의 복합체로서 인식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이다.
제주도의 오름은 저마다 크키와 형태가 다양하여 제주만의 독특한 자연미를 지니고 있으며, 특히 제주의 오름은 동양의 음양사상에서 五行(오행)의 특징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풍수학에서 말하는 오행의 성정을 표현한 五體(오체)의 형태별로 구분한다면 木形(목형), 火形(화형), 土形(토형), 金形(금형), 水形(수형)이다. 오름마다 오행의 형태로 조형미를 이루며, 색채의 상호배합과 미끈한 곡선미를 나타내므로 오름의 곡선은 제주미의 상징 중 하나이다. 또한 오름은 곳에 따라 신비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근현대까지 오름은 항쟁의 터전이 되었으며, 테우리들의 생활 근거지가 되었다. 제주의 오름에서나 볼 수 있는 牧歌的(목가적)인 풍경은 색감의 조화가 완연한 오름의 등성이에서 말이나 소, 양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이다. 또한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나타나는 오름은 변화를 간직한 또 하나의 아름다움이다.
오름은 신앙의 터전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오름마다 섬사람들의 아픔과 고난의 사연이 쌓여 있으며, 오름의 형태에 따라 전설이 담겨 있기도 하다. 특히 제주시 소재 삼양1동에 있는 元堂峰(원당봉)에서 천제를 올리고 元天子(원천자)를 낳았다 하여 원당오름이라 불리어졌다고 하며, 한림읍에 있는 당오름이나 조천읍에 있는 당오름은 옛날에 堂(당)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처럼 오름은 제주민의 삶 속에 깊이 뿌리내려 복합적인 문화를 형성한 요인이 되었다.
또한 오름은 제주 선조들의 생활근거지가 되었다. 오름마다 말과 소를 방목하였으며, 지역을 구분하는데 물길이나 오름이 이용되었다. 오름을 중심으로 제주민들의 뼈를 묻는 묘역이 형성되었고, 오름은 서북풍을 막아 주는 鎭山(진산)으로 삼아 대개 명당의 穴處(혈처)를 찾아 동쪽이나 남쪽에 좌향이 들어섰고 둔지봉이나 높은오름, 동거문이오름은 사방에 무덤들이 산재해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오름은 주요 생활수단인 마소를 키우는 목축지의 근거지였고, 부락이 형성되는 모태가 되었으며, 제주도에 산재한 오름마다 그들의 뼈를 묻으며 숱한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들의 삶의 숨결이 깊게 묻어 있는 오름의 자락들이 오늘날 골프장 건설이다 리조트 단지 형성이다 하면서 나름대로 개발의 명분을 내세우며 마구 파헤치고 있는 실정이다. 한라의 영험한 기운을 안고 오름을 濾過器(여과기)로 삼아 맑고 깨끗한 물을 자랑하는 생수가 날이 갈수록 부족해지고 있다. 한라산 자락의 골프장 건설,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과 중산간 일대의 난 개발은 점점 수질의 오염을 가져오고 있다. 오염은 원인은 자연의 산하가 개발에 의한 自淨能力(자정능력)을 잃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오름이 안고 있는 진정한 상징은 곡선미와 圓形(원형)이 가져다주는 원망성이다. 사각과 직선은 제주도의 지형에 부적합한 배합이 된다. 요즘 상징성과는 멀게 필요한 부분의 도로를 제외한 기타 지역에도 오로지 지형과 마을의 정서적 분위기를 무시한 채 딱딱한 직각의 형태나 직선의 도로들이 좌로 우로 관통되어지고 있으니 생각해 볼 일이다.
5) 오름과 五行(오행)의 山形(산형)
ⅰ) 木形山(목형산)
특별하게 섬세하거나 첨예하지는 않으나 봉우리가 하늘을 향해 힘있게 솟아올라 간 모습이다. 성격은 곧고 대체로 貴(귀)한 것을 주재한다. 이러한 산의 정기를 받은 사람은 문인, 학자 등 귀한 사람이 나오게 된다. 산의 성격은 곧고 불쑥 솟는 형국으로 힘이 따르며 산의 중간 아랫부분, 즉 배(腹)에 해당하는 부분에 가지 龍(용)이 많이 퍼지는 편이다. (서울의 북악산 경우)
ⅱ) 火形山(화형산)
산봉우리가 마치 불꽃처럼 뾰죽뾰죽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화형산이 淸明(청명)하면 자질 있는 화가나 예술가가 나온다. 대체로 화형산은 기운이 흩어져 있으므로 穴은 잘 이루어지지 않으며 외형은 화려하고 아름다우나 실속은 없다. 산의 성격은 건조하며 섬세하고 날카로운 면을 지닌다. ( 관악산이나 도봉산의 경우)
ⅲ) 土形山(토형산)
산의 윗부분이 지붕이나 평상처럼 평평한 모습을 하고 있고 토형산의 정기를 타고난 사람은 대체적으로 木·火·金·水의 네 가지 성격을 모두 포용하는 기질을 갖는다. 대체적으로 토형의 산은 기운이 충만하여 王侯將相(왕후장상)이 나오고 五福(오복)을 겸비한다. 또한 산의 형태가 마치 一字(일자)와 같기도 하여 一字文星(일자문성)이라고도 부르며 균형감각과 안정감을 지닌 산이다. 산의 성격은 厚重(후중)하다.
ⅳ) 金形山(금형산)
산봉우리가 둥글고 풍부하며 마치 종 또는 가마솥의 뚜껑 모양과 흡사하다. 철모나 바가지를 엎어놓은 것처럼 둥그스레하니 들판에 곡식을 많이 쌓아 둔 상이다. 다른 말로 富峰砂(부봉사)라고 하며 산에 청명한 기운이 감돌면 큰 사업가나 기업가, 충신, 부장 등이 나온다. 산의 성격은 둥글며 맑은 편이다. 주위가 정결하고 목형산처럼 산의 가지가 많이 퍼져 나가는 편이다.
ⅴ) 水形山(수형산)
산의 기세가 큰 굴곡이 없는 반면 마치 물 흐르듯 부드럽게 이어져 진행해 가는 모
습이며 산의 기운이 청명한 즉 선비나 학자 등이 나온다.
6) 오름에 대한 옛 제주인의 시각
제주민들은 오름의 형상을 가지고 자신들의 희망을 담아 상징화했다. 오름마다 오름의 형상에 대한 이야기가 생생하다. 그러한 오름은 어느덧 그들이 불어넣은 생명체가 되어 그들의 소망을 싣고 비상의 날개짓을 했다. 척박했던 곳에서 온갖 질곡의 한숨을 오름의 자락에 묻으며 아픔과 한을 달랬다. 오름은 시간의 역사 속에서 늘 안식과 위안을 제공해 주었다. 오름은 저마다의 사연을 담고 있다. 그 사연 속에 그들이 살아온 발자취가 역력히 배어 있다. 그 오름들은 어머니의 포근한 품처럼 고단한 삶을 풀어 주는 의지의 대상이었다. 오름에 얽힌 숱한 설화와 전설은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그들 자신의 피상의 존재이자 자화상이었다. 오름은 제주민들의 彼岸(피안)의 존재처럼 여겨졌으며, 오름은 영원한 그들의 고향이자 안식처로 여겼으리라 본다.
7) 古地圖(고지도)와 오름의 지맥
옛 지명 등 제주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는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중 ‘한라장촉’은 1702년 당시 이형상 제주목사가 제주도 전역을 순력하면서 畵工(화공)에 시켜 그린 것인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지형을 그림형태로 나타낸 도서로서 마을의 지명과 물 흐름 등의 표기가 비교적 정확하다. 이형상 목사의 저서로는 제주도 인문지리서인《남환박물南宦博物》등이 있고, 또한 제주에 관한 지도중 〈여지도與地圖〉중 6책속에 들어있는 〈제주도도濟州道圖〉는 주요 하천과 오름의 지맥들이 상세히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며, 1698∼1703년 제작된 것으로 가로29.2㎝×세로 19.2㎝이다. 그밖에 한라산과 주요 오름들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는 제주도 유형문화재 13호인 〈탐라지도병서耽羅地圖幷序〉,〈제주삼읍도총지도濟州三邑都摠地圖〉, 1428년(조선 성종 13년)에 梁誠之(양성지, 1415-1482))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제주삼읍전도濟州三邑全圖〉등이다. 제주도 지도의 시초에 관한 학자들의 견해는 1002년(고려 목종5년)에 제주도의 화산폭발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전공지의 작품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또한 18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는 조선강역총도의 〈제주지도濟州地圖〉, 1800년대에 제작된 〈광여도廣與圖〉,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청구도〉, 〈동여도〉등이 전해지고 있다. 특히 김정호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는 주요 하천과 오름의 지맥들이 상세히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며 오늘날 제주의 지맥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3 .제주오름과 風水(풍수)의 地名(지명)
1) 지명과 풍수
신라 말기에 승려 도선대사의 풍수지리설이 유행하였다. 고려·조선 시대에는 이 설의 영향을 받아 형국론에 의하거나 裨補(비보)·壓勝(압승)의 의도를 가미하여 지은 땅이름이 많다. 풍수는 藏風得水(장풍득수)란 말을 줄인 것이다. 즉 바람을 막아 주고 몸을 감추고 물을 얻는다는 것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건이다. 이러한 풍수지리설은 山川水流(산천수류)의 모양을 인간의 길흉화복에 연결시켜 설명하는 地相學(지상학) 또는 相地學(상지학)이라 할 수 있다. 현대지리학에서는 땅을 오직 물질적인 것으로 보아 사람의 이용에 따라서 작용하는 수동적인 것으로 다루어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데 대하여, 풍수설에서는 모든 토지를 능동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그 땅이 지니는 지형지세에 따라 강약과 유동의 정도가 달라지는 신비한 힘(氣)이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그것의 厚薄(후박) 여하에 따라 인생의 당대 또는 후대의 榮枯盛衰(영고성쇠)가 좌우된다고 보고 있다. 우리 나라의 풍수설은 주거선정이나 취락입지의 陽宅論(양택론)뿐 아니라 죽은 사람의 永眠(영면)의 장소를 찾는 陰宅論(음택론)까지 포함하고 이다.
일반적으로 地名(지명)에는 대부분 풍수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삼천리 방방곡곡 寺刹(사찰)이든 부귀겸전한 훌륭한 가문의 明堂(명당)을 가보면 모두가 풍수의 吉地(길지)를 얻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답사를 통해 그러한 國班級(국반급)의 명당자리를 보면 山蔭發福(산음발복)하는 풍수의 오묘함을 실감할 수 있다. 예컨대, 제주도 서귀포시에 속한 甫木洞(보목동) 마을 앞에 문필의 기상으로 수려하게 서 있는 ‘섶섬’이 있는데, 이 文筆峰(문필봉)의 정기를 안고 이 마을에 약 80여 년간 학문과 관계된 교수·교사가 근 400여명이 배출되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雙童(쌍동) 마을인 飛下里(비하리: 날아 내리다의 의미)와 飛上里(비상리: 날아 오르다의 의미)에 국제공항이 생겼는데, 이 날 ‘飛(비)’자는 비행기가 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水滿里(수만리: 물이 가득 찬다는 의미)라 부르는 수백년된 마을이 이곳 지역에 댐공사로 인하여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되어 移住(이주)하게 되어 지명대로 水滿里(수만리: 마을이 물로 가득참)가 되었다. 또한 강원도에 있는 穿空(천공: 뚫어서 난 구멍)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에 鐵道(철도)를 위한 터널이 마을 밑으로 지나면서 터널의 공기소통을 위해 뚫어 놓은 구멍이 그 마을로 통하고 있다. 그리고 온천이 나는 지역은 대체로 지명이 ‘溫(온)’자나 ‘釜(부: 가마솟)자와 관련이 있는데, 예컨대, 溫陽溫泉(온양온천), 釜谷溫泉(부곡온천) 등이 그러하고, ‘埋(매: 묻을 매)’자가 있는 지명에는 대체로 공동묘지가 들어서 있다. 예로부터 풍수지리의 심오한 진리는 孝의 사상에서 출발하여 우리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는 지혜로 삼아 왔다. 應驗(응험)에 대해 古書에서는 ‘대저 사람의 부모는 나무의 뿌리와 같은 것이니, 뿌리가 견고하면 가지가 무성하다. 그러므로 부모의 체해가 안녕하면 자손 역시 안녕하고, 부모의 체해가 물, 바람, 뱀, 개미가 침입하면, 자손에게 응하여 마르고 괴로운 질병이 많이 발생한다. 산에는 생기가 있으니, 체백이 윤택하고 맑으면 자손도 역시 응하여 영화를 누린다. 땅에 맥이 이어지지 못하면 체백이 윤택함을 잃으면 자손도 역시 응하여 절패하게 된다. 화복의 응험은 마치 그림자가 따르는 것 같고, 소리가 응하는 것 같으니 가히 삼가지 않을 수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 지명에는 역사와 민속과 고사, 그리고 지형이며 지표며 어떤 자연 현상, 인간 현상까지도 그 이름 속에 숨쉬고 있는데, 역사가 흐르는 동안 무척 들 파괴해 왔으며, 지금도 행정 구역을 합치고 떼고 할 때마다 지명을 별반 죄책감 없이 파괴하고 있다. 특히 제주의 지명 중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표기된 지명들이 많이 산재하고 있다. 오늘에 사는 우리는 이것을 우리 선인들이 새겨놓은 지명을 복원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2) 풍수적 物形(물형)에 관련된 지명들의 예
땅이름에 관하여 한국의 풍토산하 어디를 막론하고 풍수지리설의 영향은 대단히 크다. 지형 자체가 어느 동물이나 물체와 비슷하여 그러한 땅이름이 저절로 생긴 곳도 많지만, 어느 곳 이름은 풍수사상과 연결 지어 짓기도 하고, 어떤 땅이름은 그와 관련하여 고치기도 했다.
예로부터 제주민들에 의해 불려 오던 오름의 이름이 제각기 있다. 그 후 한자표기에 따라 원래의 의미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있고, 일제 강점기에 일제 행정부에 의해 한자로 표기된 것이 있다. 일본에 의해 표기된 한자는 풍수의 의미가 내포된 선대의 지명을 살렸다기 보다는 대개 소리나는 音(음)을 따서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한자표기를 한 부분이 많다고 본다. 그러나 선대의 지관들이나 마을마다 상지술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이 풍수적 형국을 살펴 지명이 유래된 것이 대부분이라 할 것이다. 다음은 풍수에 관련된 오름의 대략적인 지명들이다.
사라봉(沙羅峰), 개월오름(見月岳), 개오름(戊岳峰), 國馬御天地形(국마어천지형)인 어승생악(御乘生岳), 구분동산(狗分童山), 도두봉(道頭峰), 성널오름(城板岳), 물오름, 狗頭山(구두산), 거문악(巨文岳), 서우봉(犀牛峰), 바늘오름(針岳), 꾀꼬리오름(鶯岳), 식은이오름(死地), 서거문악(西巨文岳), 북악(鼓岳), 體岳(체악), 입산봉(立傘峰), 묘산악(猫山岳), 돝오름(猪岳), 높은오름(高岳), 아부오름(亞父岳), 큰돌임이(大石額岳), 비치미(飛雉岳), 민오름(民岳), 성불오름(成佛岳), 가문이오름(加文岳), 샘이오름(泉岳), 거친오름(巨體岳), 밧돌오름(外石岳), 안돌오름(內石岳), 뒤꾸부니(後曲岳), 아진오름(座置岳), 동거문오름(東巨文岳), 쇠머리오름(牛頭岳), 말미오름(斗山峰), 은들오름(隱月峰), 용눈이오름(龍臥峰), 손지오름(孫子峰), 둔지오름(屯地峰), 나실이오름(螺施岳), 모구리오름(母狗岳), 유건애오름(儒巾岳), 통오름(桶岳), 궁대악(弓帶岳), 뒤고부니(後帶峰), 전이미(帝臨岳), 갑선이오름(甲蟬岳), 설오름(鋤乙岳), 따라비(地祖岳), 병곳오름(鳳歸岳), 큰사스미(大鹿山), 족은사스미(小鹿山), 영아리(靈峨岳), 쳇망오름(川望岳), 구두리오름(狗頭岳), 뭇지오름(母地岳), 개오름(蓋岳), 가새오름(加勢峰), 매오름(鷹峰), 달산봉(達山峰), 알오름(卵岳), 이승이오름(狸升岳), 검은오름(黑岳), 물영아리(水靈岳), 웅악(雄岳), 마체악(馬體岳), 거인악(巨人岳), 영천오름(靈川岳), 삼매봉(三梅峰), 시오름(雄岳), 인정오름(伊信岳), 우보름(牛步岳), 모라이악(帽羅伊岳), 돌오름(石岳), 弓山(궁산), 성천봉(星川峰), 영실(靈宮), 월라봉(月羅峰), 굴매오름(軍山·瑞山), 개오름(戊岳), 거린오름, 병악오름( 岳), 용아리오름(龍臥伊岳), 돌오름(石岳), 광챙이오름(廣蟹岳), 신산오름·감산(神山峰·枾山), 도레몰(擧水井), 녹고물오름(水月峰), 새신오름(鳥巢岳), 새오름(楮旨岳), 이게오름(二鷄岳), 구분오름(狗奔岳), 정월이오름(正月岳), 거문오름(今岳), 개꼬리오름(狗尾岳), 누은오름(臥岳), 천아악(天娥岳), 와오름(臥牛峰·郭岳), 바굼지오름(破軍峰), 도노미오름·어도오름(於道峰), 이달봉(猊 峰), 샛별오름(晨星岳), 괴오름(猫岳), 다래오름(多栗岳), 발이오름·바래오름(發伊岳) 등.
3) 風水(풍수)(산도山圖)에 나타난 오름의 陰宅穴(음택혈) 物形(물형)
풍수에서 형국론은 만물에는 형상에 상응한 기상과 기운이 내재하여 사람의 길흉에 영향을 미친다는 관념이다. 다음은 제주도산록에 나타나는 대략적인 물형의 형국이다.
伏龍形(복룡형), 登天鳳尾形(등천봉미형), 文章 筆形(문장희필형), 上山伏虎形(상산복호형), 玉女彈琴形(옥녀탄금형), 伏龍弄雙珠形(복룡농쌍주형), 飛鳳抱卵形(비봉포란형), 金盤形(금반형), 死雉掛壁形(사치괘벽형), 鼠牛望月形(서우망월형), 群仙聚會形(군선취회형), 老僧拜佛形(노승배불형), 龍盤大野形(용반대야형), 仙人擊鼓形(선인격고형), 玄鳥墮卵形(선조타란형), 金 掛壁形(금차괘벽형), 靑龍弄珠形(청룡농주형), 黃龍吐雲形(황룡토운형), 木蘭半開形(목란반개형), 幕裡將軍形(막리장군형), 黃蛇 蛙形(황사은와형), 天女登空形(천녀등공형), 猛虎出林形(맹호출림형), 平地蜈蚣形(평지오공형), 天 將軍形(천술장군형), 黃蛇 蛙雙乳形(황사은와쌍유형), 金 倒水形(금차도수형), 風吹羅帶形(풍취나대형), 金鷄抱卵形(금계포란형), 彎弓形(만궁형), 蛛絲馬跡形(주사마적형), 飛龍御天形(비룡어천형), 遊魚逢水形(유어봉수형), 蓮花倒水形(연화도수형), 三仙回舟形(삼선회주형), 仙人讀書形(선인독서형), 金龜沒泥形(금귀몰니형), 金龜形(금귀형), 雲中半月形(운중반월형), 旌旗形(정기형), 將軍大坐形(장군대좌형), 遊魚擲水形(유어척수형), 六鼠下田形(육서하전형), 飛鳥啄木形(비조탁목형), 丹鳳御書形(단봉어서형), 金 擲地形(금차척지형), 觀舟形(관주형), 兒犢顧母形(아독고모형), 仙人舞袖形(선인무수형), 玉鳳歸巢形(옥봉귀소형), 飛鳳歸巢形(비봉귀소형), 駱駝御寶形(낙타어보형), 仙人棋局形(선인기국형), 黃蛇抱蛙形(황사포와형), 玉帶佩印形(옥대패인형), 英雄大坐形(영웅대좌형), 文章佳筆形(문장가필형), 聯珠形(연주형), 黃蛇向蛤形(황사향합형), 平沙落雁形(평사낙안형), 黃蛇逐鼠形(황사축서형), 浮鵝窺魚形(부아규어형), 臥牛形(와우형), 蓮花浮水形(연화부수형), 文章做筆形(문장주필형), 飛鵝形(비아형), 伏猫形(복묘형), 金鐘伏地形(금종복지형), 小僧拜斗形(소승배두형), 飛龍御天形(비룡어천형), 鳴蟬抱枝形(명선포지형), 雙童講書形(쌍동강서형), 釣魚形(조어형), 月後從星形(월후종성형), 九龍爭珠形(구룡쟁주형), 猛虎出林形(맹호출림형), 金鷄抱卵形(금계포란형), 黃蛇掛梁形(황사괘량형), 黃虹形(황홍형), 黃龍負舟形(황룡부주형), 四海將軍形(사해장군형), 雙龍相鬪形(쌍룡상투형), 仙人採蓮形(선인채연형), 泉下閨女拜斗形(천하규녀배두형), 玉女織金錦形(옥녀직금형), 半月形(반월형), 伏雉形(복치형), 玉燭照天形(옥촉조천형), 玉爐掛壁形(옥노괘벽형), 貫舟形(관주형), 楊柳倒水形(양류도수형), 玉囊掛壁形(옥낭괘벽형), 武公端坐形(무공단좌형), 黃狗月食形(황구월식형), 飛鳳顧巢形(비봉고소형), 奉珠形(봉주형), 小針形(소침형), 閉頭形(폐두형), 猛狸投林形(맹리투림형), 飛龍上天形(비룡상천형), 舞女拜斗形(무녀배두형), 連勝結棠形(연승결당형), 將軍寶劍形(장군보검형), 玉兎望月形(옥토망월형), 玉女散髮形(옥녀산발형), 靑鳥傳信形(청조전신형), 仙人二棋形(선인이기형), 奇龍逢珠形(기룡봉주형), 野鼠逢倉形(야서봉창형), 遊魚逆水形(유어역수형), 玉子形(옥자형), 玄牛顧乳形(현우고유형), 蓮花半開形(연화반개형), 老蛇出林形(노사출림형), 回龍顧祖形(회룡고조형), 雙仙望月形(쌍선망월형) 등 이외에도 수없이 열거할 수 있다.
4) 오름속에 내재하는 제주민들의 풍수관
ⅰ) 오름과 제주민의 地母觀(지모관)
종종‘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라는 말을 한다. ‘ 땅은 만물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인간의 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토속 신앙적 사상이 근간이 된 풍수지리는 토속 신앙인 대지모(大地母)사상과, 易(역) 이론인 중국의 陰陽五行說(음양오행설)이 결합하여 입지(立地)에 관한 체계적인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제주민의‘오름에 나서 오름으로 돌아간다’라는 말은 생장 소멸하는 삶의 이치이며, 제주라는 한정된 공간범위 속에서 결국 영원한 쉼자리를 귀소본능에 의한
ⅱ) 地母觀(지모관)에서 발전한 풍수의 개념
風水(풍수)란 字意的(자의적)으로는 글자 그대로 바람과 물이며, ‘藏風得水장풍득수’즉 " 바람을 감추고 물을 얻는다 " 라는 말의 風(바람)과 水(물)를 따서 붙인 말이다. 바람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서 유행하는 기운을 이동시키는 역할을 하며,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地形(지형)에서 가장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가므로 가장 낮은 공간을 형성하는 지대에서 이루어지는 액체를 말한다. 낮은 곳은 횡으로 바람이 유통하는 길이므로 기운을 경계짓는 곳이 된다.
하늘과 땅은 음양으로 이루어져 하늘은 陽(양), 땅은 陰(음)인데 하늘이란 지표면 바로 위에서부터 天體(천체)의 모든 공간을 의미한다.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이 陰(음)이라고 한다면 공간의 天星(천성)인 태양은 곧 陽(양)인 셈이다. 陽인 태양과 陰인 지구의 중간 공간을 연결하여 주는 흐름이 天氣(천기)이며 이 기운은 陰陽(음양)이 상호 교감되는 기운이며 동시에 바람의 현상을 발생시킨다. 옛 사람들이 " 水는 氣之母 물은 氣의 모체 " 라 했고, " 水는 氣之界 물은 기의 경계 " 라 하였다. " 一尺高則山(일척고즉산) 한 치라도 높으면 산이요, 一尺低則水(일척저즉수) 한 치라도 낮으면 물 " 이라고 하여 풍수학에서 말하는 水의 개념은 낮은 곳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결국 높고 낮음이라 함은 땅을 지칭하는 말이니 땅은 山峰(산봉)과 河川(하천)이 되는 것이다. 산은 높은 곳이 되고 川(천)은 낮은 곳이 되니 풍수학에서 산은 龍(용)이 되고 川은 水라하며 龍은 靜(정)하여 음이 되고 水는 動(동)하여 양이 된다. 음양의 균등한 형세로서 확실하게 이루어진 明穴(명혈)이 훌륭한 局勢(국세)를 만난 곳이 우리가 말하는 明堂(명당)인 곳이다. 즉 산맥인 陰의 龍이 흘러가다가 陽인 물을 만나는 지점이 되면 멈추어 서게 되니 이곳이 地氣(지기)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
그러므로 풍수란 산천의 정기가 땅의 지세을 따라 형성되고 변화되어 움직이는 일체의 기운을 말하며 풍수의 聚氣凝結(취기융결)하는 기운을 연구하여 적립된 학문이 풍수학이다. 또한 풍수학은 음양의 기운을 형세를 따라 살피고 논하는 形氣學(형기학)과 모양의 형태를 음양으로 數値化(수직화)하여 추리하는 것이 理氣學(이기학)이다.
풍수지리학은 삶의 공간인 땅의 지세를 중심으로 하여 모든 삼라만상이 발산하는 물체의 氣(기)와 자연환경인 산천의 기운을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몸과 동일시하여 운용하는 생명력 있는 학문으로서 우리 인간에게 천지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순행의 원리와 법칙을 일깨워 주는 심오한 학문이다.
풍수지리의 그 이치는 엄연한 것으로서 물, 바람, 땅 등 자연환경을 중시하고 대자연의 순환하는 법칙과 이치를 공부하고 적용하는 시간과 공간의 환경학문으로서 오늘날 현대 건축(주택)공학의 뿌리이며 생명의 모체인 자연과학의 시발이라 할 수 있다.
풍수라는 말은 앞에서 이야기 한 ‘藏風得水(장풍득수)’를 줄인 말로서 바람과 물의 기운을 삶의 공간 속에 조화로운 理法(이법)에 맞추어 順應(순응)하고 同化(동화)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풍수지리의 원리는 크게 돌아가신 분을 모시는 陰宅(음택)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의 공간을 풍수의 이법에 맞추어 응용하는 陽宅(양택)으로 크게 나누어 적용하고 있으며 특히 오늘날 양택은 건축분야는 물론 가족의 행복과 건강을 이루게 하는 주요 생활공간으로서 주택공학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根幹(근간)이 되고 있다.
음택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동양의 孝(효)의 사상에 근본을 두고 同氣感應(동기감응)의 원리로 돌아가신 조상을 산천정기가 聚合凝氣(취합응기)되는 吉地(길지)에 편안히 모심으로서 돌아가신 부모 또는 조상의 氣가 후손에게 전달되는 과정과 미치는 영향을 자연과학의 이법에 맞추어 길흉을 살피고 연구하는 학문이다. 조상과 자손간의 상호 좋은 기가 交感(교감)된다면 그 작용력은 응당 좋은 영향을 미치게 하여 자손의 번영과 행복은 물론 건강을 추구하고 享受(향수)하는데 있는 것이다. 풍수지리학은 대자연의 순환원리를 이용하는 自然合一(자연합일)의 심오한 자연과학이며 인간으로서 자연의 합당한 순리에 역행하지 않는 지극히 자연사랑의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제주오름과 地母觀(지모관)
1) 설문대할망과 오름에 얽힌 설화
설화적으로 한라산을 창조했다는 전설의 여신인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을 만들기 위해 소가 누워 머리를 든 형국인 臥牛形(와우형)인 우도에서 치마폭에 흙을 싸고 가다가 떨어뜨린 흙이 오름이 되었다고 했다. 설화 속에 설문대할망은 상상하기 어려운 큰 巨女(거녀)였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갈래로 전승된다. ‘한라산을 베개삼고 누우면 다리는 관탈섬에 걸쳐졌다’, ‘한라산을 엉덩이로 깔아 앉으면 한쪽 다리는 관탈섬에 걸쳐졌다’, ‘한라산 엉덩이로 깔아 앉아 한쪽 다리는 관탈섬에 디디고, 한쪽 다리는 서귀포 앞 바다의 地歸島(지귀도)에 디뎌서 우도를 빨래돌로 삼아 빨래를 했다’등이 있는데, 예로부터 제주민들은 옥황상제가 천지를 창조했다고 믿었으며, 모진 시련과 혹독한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絶海孤島(절해고도)인 섬의 숙명을 상상의 〈설문대할망〉이라는 신의 힘에 의지해 꿈을 이루려고 했던 소망이 마음 밖으로 표출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은 그들이 일생동안 살아가고 그 오름의 자락에 영원히 뼈를 묻을 소중한 땅을 인격동일체로 인식하고 그들의 뿌리로 생각한 것이라 본다. 그것은 바로 제주민들의 마음속에 땅과 인간을 분리시키지 않고 하나로 보는 一體觀(일체관)과 땅은 영원한 어머니의 품이라는 地母觀(지모관)이 자리했기 때문이라 본다.
2) 胡宗旦(호종단)의 地壓說(지압설)
호종단의 전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고려 제 16대 睿宗(예종)때 중국 福州사람인 胡宗旦은 壓勝之術을 지니고 高麗王京에 들어와서 각 지방을 순회 답사하다가 본 제주도에 들어와서 지맥을 탐사하고는 무슨 心術인지는 몰라도 자신의 술책으로 山水의 기운을 제압하려 하였으나 어떤 사정으로 인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지니고 있던 術書를 태워 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그가 여행을 끝내고 歸途에 올랐을 때 때마침 폭풍우로 인하여 遮歸島(차귀도) 부근에서 침몰하니 세상에 전하길 탐라의 수호신이 독수리로 化하여 호종단의 횡폭함을 보복한 것이라고 전한다. 그래서 후세 사람이 英烈함을 崇敬하여 遮歸堂(차귀당)을 건립하고 제사를 지내고 호종단이 돌아감을 막다라는 한자어인‘遮歸(차귀) : 돌아감을 막다’를 붙여 차귀도라고 붙였다고 한다.
이상의 전설에서 의미하듯 풍수학적으로 地脈(지맥)을 끊으려 한 호종단의 이야기가 그 당시 풍수지리적인 측면에서 기혈이 순환하는 이치를 중시한 선조들의 자연관을 엿볼 수 있으며, 사람이 사는 고장에 물이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면 生氣(생기)가 맺히지 못하는 땅의 조건을 암시하는 중요한 전설이다.
3) 제주의 12대 명혈(6대 음택지와 6대 양택지)
※ 옛 제주 선인들은 음택지로서의 六大明穴地(육대명혈지)와 양택지로서의 六大明穴地(육대명혈지)를 후인들에게 전했다. 제주도의 음택 명혈지 가운데 4대명당은 해발 1200미터 이상의 높은 지대에 자리하나 수많은 풍수가들이 이곳을 찾으려고 숱하게 다녀갔어도 아직 찾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없으니 우리대에 아니면 후대에 덕있는 이가 찾을 수 있을까? 또한 이밖에도 제주도는 곳곳에 동서남북으로 명혈을 지니고 있는 氣기 생동하는 곳으로써, 오름의 수가 무려 368개 정도이며, 영험한 땅의 기운이 서려 있는 명혈도 약 360여 개가 된다. 어찌 6대명혈과 360여 개의 명혈뿐이랴? 본인이 보기에는 하나의 오름에 2∼3개의 명혈이 있다고 볼 때 약 700여 개의 穴이 大小의 차별을 가지고 있다 할 것이다. 아니 땅의 성정을 따라 삶의 터를 정한다면 어느 땅이든 막론하고 사용하는 자의 지혜에 따라 무한대의 地氣(지기)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 하늘이 숨기고 땅이 숨긴 명혈중의 명혈도 그 지리를 쓰는 사람의 성정과 덕성에 맞아야 生氣發現(생기발현)하는 것이며, 明穴은 시간이 推移(추이)함에 따라 변해 간다. 다시 말하여, 세월이 가면 인심도 변하고, 땅의 성정도 변한다. 길이 뚫리고 건물이 들어서며 물길을 돌려 하천의 지류가 변하면 그에 따라 지기의 흐름도 변한다. 또한 땅은 그대로 있으나 땅속은 계속 요동하며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정치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법도 그렇고 사상도 그러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땅의 기운이 변화하는 성정을 파악하면 그에 합당한 자리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천지의 공덕이 공평하기 때문에 예전엔 외지고 척박한 땅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발복의 땅으로 다가오고, 예전엔 사람들이 모이는 발복의 땅이었으나 세월이 흘러감에 척박한 곳으로도 변화한다. 그 변화한다는 이치는 천지대자연의 법칙과 순환의 진리이다. 그 변화에 따라 生長消滅(생장소멸)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것이 森羅萬象(삼라만상)의 실체이다. 제주의 오름은 그 나름대로 독특한 개성과 생기를 저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지리의 성정에 맞는 그 오름의 성정에 맞는 지리의 법을 이용하여 생활의 지혜로 삼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길지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5. 제주문화 속의 풍수관
1) 裨補(비보)·壓勝(압승)의 풍수관
한 고을이나 부락의 지형·지세가 불길하여 기의 凝集(응집)이 부족하거나 虛(허)한 상태라 해도 이미 주거집단의 생활터전이 형성된 곳은 쉽게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다. 그러므로 풍수설은 길지를 다른 곳에 구해서 옮기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지형의 부족한 요인을 보충하기 위하여 땅힘(地力)을 보충하는 등의 裨補(비보)나 불길한 요인을 보완하기 위하여 풍수상의 흉한 기운을 인위적인 조작으로 눌러 이기는 壓勝(압승)의 방법을 발전시켰다. 압승은 너무 강한 땅의 기를 이완시켜 주는 것이며, 비보의 관념은 풍수학 뿐만 아니라 고대 원시인들이 어떤 靈力(영력)을 지님으로써, 약한 힘을 강하게 하고자 한 借力信仰(차력신앙)이나 呪符(주부)신앙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비보의 방법으로 탑을 세운다든가 절을 짓기도 하였는데, 대표적인 예로 신라 황룡사 9층목탑은 국가의 안전과 삼국통일을 위하여 세웠고, 충주의 중앙탑은 중앙의 땅을 진호하기 위하여, 또는 국토의 중앙인 그곳에 왕기가 충천한다고 여겨 이를 억압하려고 세웠다 한다. 특히 제주도의 비보 풍수관은 방사탑과 돌담 등의 생활문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2) 방사탑과 돌담
마을에서 보아 그 虛(허)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마치 용의 형태로 높고 낮게 쌓은 돌담이 해안을 따라 이어져 있으며, 동시에 防邪塔(방사탑)을 2∼3미터의 높이로 虛한 곳으로 침입하는 殺風(살풍)을 막아 주고 있다. 특히 해안을 중심으로 외부에 다른 섬이나 가까이 조산과 안산이 없는 곳이면 대체로 방사탑을 위시하여 돌담을 겹겹으로 쌓아 둔 곳이 많다. 돌담을 이중삼중으로 겹겹이 친 것은 바람막이가 없는 허한 해안으로부터 불어닥치는 강한 해풍으로부터 살풍을 걸러주는 역할로써 풍수의 지혜를 선인들이 발휘한 것으로 본다.
3) 오름은 마을의 鎭山(진산)
이중환의 《택리지》에 ‘ 무릇 살 곳을 정하는데는 첫째 지리를 으뜸으로 삼고, 그 다음 生利(땅에서 생산되는 이익)가 좋아야 하며, 다음으로 인심이요, 다음으로 수려한 산과 물이 있어야 한다. 이 네 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모자라면 좋은 땅이 아니다. 지리가 비록 좋아도 生利(생리)가 결핍되면 오래살 수 없고, 생리가 비록 좋으나 지리가 나쁘면 역시 오래 살수가 없으며, 지리와 생리가 모두 좋아도 인심이 나쁘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있게 되고, 가까운 곳에 즐길 만한 산수가 없으면 성정을 화창하게 흐르게 하지 못한다’라고 되어 있다.
예로부터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리는 마음에서 풍수적으로 虛(허)한 부분을 막아 주는 역할로서의 기능도 함께 했다고 본다. 풍수의 고전으로 꼽는 《장경葬經》에 ‘ 기가 바람을 타면 흩어진다’고 되어 있다. 마을을 휘감고 있는 生氣(생기)가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는데 그렇게 되면 마을이 쇠퇴한다고 보는 선인들의 지혜이기도 하다. ‘人傑(인걸)은 地靈(지령)’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뛰어난 인물은 하늘의 정기를 품은 신령한 땅의 기운을 타고난다’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지리의 조건은 참으로 중요하다.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 ‘ 먼저 수구를 보고, 그 다음에 들(野)의 형세를 보고, 다음으로 산의 형세를 살피고, 다음으로 흙의 빛깔을 보고, 다음은 조산( 앞의 안산 뒤에 멀리 있는 높은 산)과 조수를 본다. 무릇 수구가 엉성하고 넓기만 한 곳은 비록 좋은 밭 일만 이랑과 넓고 큰 집이 천 칸이 있다 하더라도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자연히 흩어져 사라진다. 그러므로 집터를 찾으려면 반드시 수구가 꼭 잠긴 듯하고 그 안에 들이 펼쳐진 곳을 착안안 후 구해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제주도는 長軸(장축)이 북쪽을 기준 하여 동쪽으로 약 70도 정도 기울어진(N70E) 달걀 모양의 타원형을 이루고 있는 제주도는 附屬島嶼(부속도서)로 有人島(유인도) 8개, 無人島(무인도) 54개로 모두 62개 섬을 거느리고 있는 섬이다. 等高線(등고선)으로 보면 1950미터인 한라산을 중심으로 同心圓(동심원)의 모양을 하고 있으므로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거대한 산을 연상케 한다. 또한 제주도는 예로부터 바람이 많은 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주거지가 해안선을 따라 바다에 가까이 인접해 있으므로 바람에 노출이 많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서남쪽 모슬포 지역이 바람이 가장 강하다. 바람은 혹독하나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지리적으로 태풍의 진로선상에 있기 때문에 잦은 태풍의 피해를 입고 있다. 이러한 기후조건 때문에 제주민들은 허한 곳은 바람의 침입이 용이한 허한 곳을 풍수적으로 보완하는 藏風(장풍)의 생활문화가 싹텄다. 그러한 영향은 생활의 주거지인 양택,돌담, 묘지 등에 적용되어 나타난다. 충암 金淨(김정)의 ≪제주풍토록≫에 ‘기후는 겨울이 혹 따뜻하고, 여름이 혹 서늘하나 일기 변화가 많아 바람과 공기는 따뜻한 것 같으나, 사람에게는 매우 몸서리날만큼 날카롭고 사람의 衣食(의식)에 알맞게 조절하기 어렵기 때문에 병이 나기 쉽고, 더욱이 雲霧(운무)가 항상 음침하게 가리우고, 하늘이 맑게 개인 날이 적으므로 거기에 대하여 질풍과 괴이한 비가 솟구쳐 일어나지 않을 때가 없어서 찌는 듯이 덥고 축축함으로 숨이 막힐 듯이 답답하다. 또 땅에는 벌레들이 많음에 더욱이 파리와 모기가 심하고, 무릇 지내와 개미와 지렁이 따위의 여러 가지 우글거리는 벌레들이 겨울이 모두 지남에도 죽지 아니하여 매우 견디기 어렵다.’라고 했다. 이처럼 척박했던 땅에 사계절의 기후마저 불규칙하였고 잦은 태풍과 더불어 겨울의 서북풍과 매서운 바람은 건축의 양식과 주거의 문화에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으며, 오름은 氣(기)의 흩어짐과 바람을 막는 藏風(장풍)의 역할과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갖다 주고 지켜 주는 鎭山(진산)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4) 오름의 설화에 나타나는 인격화
제주의 오름은 풍수와 관련된 설촌의 유래를 시작으로 대체로 지명을 위주로 설화와 전설을 담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든다면 특히 제주 오름의 생성에 관한 설문대할망의 설화, 호종단의 전설, 瑞山(서산 : 지금의 單山)의 폭발전설, 燈臺峰(등대봉)의 전설, 물영아리 오름(남원읍 소재), 물장오리 오름(제주시 소재), 웬당(원당)오름(제주시 소재), 붉은오름(애월읍 소재), 고산 수월봉의 ‘녹고남매’의 슬픈전설, 산반산과 백록담, 영실 오백장군 이야기, 바우오름(식산봉)의 ‘玉女散髮形(옥녀산발형)전설’, 본지오름(본지낭·노박덩굴)의 유래에 관한 전설, 나시리 오름의 명지관 이야기, 족은대비오름의 선녀이야기 등 대부분의 오름들이 設村(설촌)과 연계하여 지명유래에 관한 전설을 안고 있다. 이처럼 오름을 인격화한 裏面(이면)에는 오름이 갖는 중요성을 제주선민들은 이미 간파하였던 것으로 본다. 오름에서 나와 오름으로 돌아가는 제주민들의 삶은 그 오름이 의미하는 소중함만큼이나 오름의 자락을 일구며 농업의 기반을 구축하였고, 오름에 방목한 牛馬(우마)를 식용으로도 이용하며, 그들이 배설한 분비물은 거름이 되어 제주민들의 생활의 젖줄이 되었고, 하늘에서 내린 비는 오름이 받아 저장하고 마을마다 생명수를 제공하였으며, 나무와 풀과 약초들을 생산하여 제주민들의 삶을 이어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찍이 제주민들은 자연생태의 소중함을 인식하여 오름을 신성시하였으며, 오름에 대한 생명관이 특이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자연환경에 대한 선견과 소중함을 알았던 지혜의 발단이기도 하며, 오름을 동일한 인격체로 보는 자연관이 앞섰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날 그들의 후손인 우리는 오름의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5) 제주의 산담(墓墻)에 드러나는 ‘生死一如觀(생사일여관)’-
육지의 묘와 달리 제주도는 묘 주위에 담을 친다. 산담의 형태는 사각형과 원형이 있는데 대부분 사다리꼴로 된 사각형의 산담이다. 산담은 제주 상례절차의 하나이며, 장례 당일날 행하기도 하고 장례를 치르고 난 후 다른 날 길일을 택일하여 행하기도 한다. 산담의 목적은 묘지의 영역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묘역의 넓이와 산담의 크기로 집안의 勢(세)를 나타내기도 했으며, 벌초시에는 산담 안과 산담 밖의 1미터 정도의 외곽도 함께 벌초한다. 산담의 한 모퉁이에 절개된 곳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神門(신문)’이라 하여, 亡者(망자)가 산담 밖으로 외출을 하는 것을 고려한 것으로 이를테면 , 묘는 망자의 집이요, 신문은 망자가 출입하는 문이요, 산담은 망자가 머무는 집의 울타리에 비교되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제주민들이 조상에 대한 孝(효)의 사상에서 기인했다고 보며, 산자(生者)와 죽은 자(亡者)를 동일한 인격체로 생각한 것으로 본다. 결국 이것은 산 것과 죽은 것을 분리하지 않는 개념일 수 있다. 살고 죽는 일은 우주순환의 일정한 반복이며 순리이다. 살아 땅 위에서 생활하는 것과 죽어 땅 아래서 휴식하는 일은 별개의 일이 아니라는 하나의 통일된 과정으로 생각한 ‘생사일여관’을 제주민들의 의식 속에 뿌리했음을 생각 해 볼 수 있다.
6) 오름의 품에 돌아가려는 歸巢觀(귀소관)
풍수는 인간과 대자연과의 조화를 꾀하는 학문이다. 자연의 이법에 맞추어 삶을 지향하는 음양의 순리론이다. 인간을 비롯하여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천지대자연의 품 속에서 생장 소멸한다. 죽은 땅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다. 땅은 순환하는 인체의 氣血(기혈)처럼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큰 생명체이다. 그 생명체 속에는 수만 수천의 穴이 간직되어 있으며, 수많은 땀구멍과 천갈래 만갈래 실핏줄이 엉겨 있으며 엄연한 질서 속에서 생명의 기운을 잉태해 낸다. 태고로부터 현재까지 우리는 대자연이며 地母(지모)인 그 품안에서 역사를 거듭하며 현재에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땅과 바람과 물의 순환 속에서 萬象(만상)이 살아 숨쉬고 꿈틀거린다. 기후는 인간의 체온과의 관계이며, 산천은 몸과 기혈의 관계이다. 山河(산하)의 순환이 제 자리를 찾아 돌아 흐를 때 그 땅에 사는 사람들도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순환하며 흘러가야 할 산천강하가 그 어디에선가 인위적인 작용에 의해 끊기거나 차단되거나 역류되거나 잘라지거나 하면 그 불균형에서 초래되는 부작용은 엄청난 災害(재해)로 인간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자연의 질서와 생태적 균형이 깨어지면 그 禍(화)는 결국 인간에게 미치게 된다. 오늘날 천재지변이나 엄청난 자연의 재해는 따지고 보면 원인은 인간의 무지와 욕심에서 근간이 된 것이다. 해마다 水災(수재), 風災(풍재)가 잇따르고 있는 것을 볼 때 거의가 개발이란 명분아래 무분별한 난 개발의 파괴로 인하여 治山治水(치산치수)를 무시한 순환과 배설을 원리를 무시하여 홍수가 범람하여 삶의 터를 한 순간에 잃어버리는 결과도 우리는 보았을 것이다.
제주민들의 풍수관은 결코 富貴發福(부귀발복)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보는 사상이다. 물론 개인의 허욕을 위해 穴을 찾으려면 찾기도 힘든 것이다. 古書(고서)에 말하길‘ 대개 참된 혈은 하늘에서 감추고, 땅이 비밀히 하여 덕이 있는 사람을 기다린다’라고 했다. 오름이 몸살을 앓으면 제주민도 더불어 몸살이 나는 것이다. 제주민은 오름을 동일한 인격체로 보았으며 大地母(대지모) 사상을 위주로 하여 한라산은 우리를 낳아 준 어머니로 보며 그 품안인 오름의 사이에 살고 있는 인간을 자식으로 간주하여 애지중지 한 것이다. 제주민은 오름에서 태어나 결국 오름으로 돌아간다. 오름의 따스한 어머니의 품을 잃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곧 오름이 파괴될 때 우리도 함께 絶滅(절멸)한다는 이치와 통하는 것이다.
7) 體(인체)의 개념으로 본 오름의 生命觀(생명관)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하나의 자연생명체이다. 자연을 생명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 풍수이다. 죽어 있는 산하에 생명체가 살 수 없다는 것은 바로 우리 인간도 존재할 수없는 이치와 같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땅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죽은 땅에 초목이 살 수 없듯이 황폐한 자연환경에서 생명체의 활동력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풍수의 목적은 천지 대자연의 시간과 공간의 영향권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자연법칙인 생태계의 山川地力(산천지력)에 의해 인생의 번영과 행복을 추구하는데 있는데, 삶의 공간인 주택을 生氣(생기)가 聚氣(취기)되고 잘 흐르는 길지에 정해 건강과 행운의 福力(복력)을 구하고 孝의 사상에 근본한 祖上崇拜(조상숭배), 報本反始(보본반시)에 입각하여 조상의 先塋(선영)을 길지에 모셔 자손의 번영과 창달을 도모하는데 있다. 특히 풍수설은 모든 우주 만물을 받아들이고 滋養(자양)해내는 역할로서의 땅을 만물을 양육하는 인간의 生母(생모)로 간주한 地母(지모)의 관념에서 태동된 사상이라 볼 수 있으며 住居(주거)에 형태와 위치에 따라 미치게 되는 氣의 영향을 말하고 있다. 자연계의 모든 존재하는 삼라만상은 한 순간도 자연의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 인걸人傑은 지령地靈 " 이란 말이 있다. 이것은 산천의 수려한 기상과 산천의 둔탁한 기상에 의해 잘나고 못난 사람이 나온다는 말이다. 인간에게 百骸九空(백해구공)이 있듯이 땅에도 천갈래 만갈래 각기 수많은 형태를 지닌 萬水千山(만수천산)이 있다. 이는 서로 얽히고 섥혀 상호 대립과 통일을 이루면서 연관작용을 하고 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에 자연히 산과 물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하늘에는 365일이 있고 사람 또한 365개의 골절이 있으며, 365여 개의 경혈이 있다. 하늘에 12시가 있으니 사람에게도 12경락이 있다. 하늘에 5운6기의 변화가 있으니 사람에게도 5장6부가 있으며, 하늘에 해와 달이 있으니 사람에겐 눈과 귀가 있다. 하늘에 24절후가 있으니 사람에게도 24초焦(초)가 있고, 四時(사시)의 계절이 있으니 사람에겐 四肢(사지)가 있다. 땅에 초목과 흙과 돌이 있으니 사람에겐 털과 힘줄과 뼈마디가 있다. 사람의 상반신을 天氣(천기)라 하고 사람의 하반신을 地氣(지기)라 하고 사람은 천지간의 정기를 지니고 있으므로 小天地(소천지)라 한다.
이렇게 인간은 천지자연의 일부로서 한 순간도 분리될 수 없으며 온갖 천지대자연의 이치를 모두 품수하고 있는 것이다. 태어남도 자연으로부터 왔고 생명이 다 함도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고 죽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순환과정으로서 영원한 우주의 대진리속에 기가 흩어졌다 모여졌다 하는 원리라 하겠다. 모든 사물에 영성이 들어 있는 이치이다. 돌 하나 풀하나 그 어디에도 기의 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신체를 지탱하고 보호하는 모든 뼈에 뼈마디가 있고 구멍이 있는데 어떤 것은 보이고 어떤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땅에도 만갈래 천갈래의 물과 산이 있는데 어떤 것은 서로 얽히고 어떤 것은 안으로 뭉쳐 있으며 또 어떤 것은 나타나 있는 형상이다.
인위적인 물질문명과 첨단과학이 최고조에 이른 현대에 이르러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기준은 혼돈에 빠져 있으며 그칠줄 모르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은 극에 달하여 개발이라는 명분 하에 무분별한 자연파괴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하게 자행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자연 생태계는 조화와 균형이 깨지고 하나뿐인 지구가 오염과 공해로 지구온난화현상이 가증되고 있으며 하나뿐인 지구는 최악의 상태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가 물질만능에 의해 떨어지고 있으며 지구 곳곳이 환경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오늘 이 순간에도 생태환경을 중시하지 않는 인간의 욕심은 무차별한 환경파괴로 스스로의 무덤을 자초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자연의 황폐화는 인류의 존망 문제로까지 확산되어 엄청난 자연의 보복과 재해가 인간을 기다리고 있다. 오름은 제주다운 최후의 모습이며, 제주를 지켜 주는 최후의 생명체이다. 다시말해 한라산은 體(체)요, 오름은 用(용)이다. 사람의 몸에 365穴이 있고 제주도의 오름도 368개다. 한라산은 몸체요, 오름은 인체의 穴(혈)이다. 산줄기는 뼈대요, 사방으로 뻗어 내려간 하천은 핏줄이다. 백록담은 두뇌요, 산록은 허리부분이요, 성판악은 심장이며, 어승생은 위장이요 영실은 기운을 다스리는 폐장이다. 아흔아옵골은 척추이고 윗세오름은 어깨이며, 중산간은 복부와 허벅지이고, 해안선은 손과 발이다. 지금 이순간 손과 발인 해안 구조선이 本形(본형)을 잃어 가고 있으며, 허리가 사방으로 잘려나가고 있으며, 복부와 허벅지가 파헤쳐지고 있다. 잘리고 망가진 몸은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전의 기능만큼 돌아오진 않는다. 제주의 선민들은 오름을 제주의 생명체로 여겼다. 이제 오름을 지키는 일은 우리가 존재하는 공동의 생명활동과 연관하여 그 가치를 인식해야 할 것이다.
6. 오름과 牧畜(목축)
제주는 한라산 등성이에 넓게 펼쳐진 초지에 온갖 풀들이 풍부하고 또한 사나운 짐승이 없어서 소와 말을 방목하기게 알맞은 곳이다. 三姓(삼성) 신화에 망아지와 송아지 등의 이야기가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제주에서 목축의 시작은 아주 오래 전의 일로써, 특히 고려 문종 때 좋은 말을 바친 기록이 보이며, 원나라에서 제주를 지배하면서부터 말의 양육이 본격화 되었다. 그후 고려가 멸망하면서 조선에 인계되었고, 말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면서 비로소 馬政(마정)의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원나라 지배시 처음 목장지대는 해안의 평야 지였으므로 크고 작은 농작물의 피해가 속출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이 두드러지면서 1429년(세종 11년)에 高得宗(고득종)이 해안지대에 산포한 목장들을 한라산 등성이로 옮겨서 담장을 쌓도록 건의하자 받아들여져서 말들을 20所(소) 60屯(둔)으로 설치하였다. 그 후 1702년(숙종 28년) 李衡祥(이형상)의 南宦博物(남환박물)에 의하면, 당시 목장이 63개소가 있었는데 관리와 운영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하자, 1704년(숙종 30년) 송정규 목사가 상태가 좋지않은 목장은 버리고 작은 목장들은 큰 목장으로 합쳐서 모두 10所場(소장)으로 나누었다. 제주 목사는 목장관리의 총책임자가 되고, 제주 판관, 정의 현감, 대정 현감은 감독관의 직책을 겸임하였으며, 그 밑에 목장을 관리하는 책임자로 馬監(마감)과 牛監(우감)이 있으며, 다시 그 밑에 群頭(군두)와 群副(군부)가 있었으며, 맨 마지막에 소와 말을 사육을 담당하는 牧子(목자)들이 있었다. 특히 牧子(목자) 중에서 성적이 우수한 자는 群頭로 임명했는데, 50필을 屯馬(둔마) 단위로 하여 2명의 목자가 사육을 책임졌으며, 둔마의 구별은 千字文(천자문)의 글자를 烙印(낙인)으로 하여 사용하였다.
ⅰ) 所(소)로 나뉜 목장구역내의 명혈들
- 所場(소장)별로 명혈지를 대략적으로 논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소장이 3∼4곳이요, 이소장이 2∼3곳이요, 삼소장이 2∼3곳이요, 사소장이 37∼38곳이요, 오소장이 27∼28곳이요, 육소장이 23∼24곳이요, 칠소장이 4∼5곳이요, 팔소장이 3∼4곳이다. 所場별로 볼 때 제주목에 속한 사소장이 가장 많이 명혈지가 나타나고, 그 다음으로 오소장, 다음으로 육소장 등으로 명혈지가 많다. 목장구역내에 명혈이 많은 것은 한라산을 정점으로 했을 때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한라산 자락이 이어진 등성이와 주변 오름들의 지맥을 받아 기운이 응집되어 이루어진 대부분의 혈처들이며, 그 사이로 주변 하천들이 돌고 휘감으며 地氣(지기)의 경계를 분명히 하면서 내려가기 때문이다.
1792년 삼읍(濟州牧(제주목)·旌義縣(정의현), 大靜縣(대정현))의 목장 현황은 다음과 같다.
7. 오름과 문학
제주도는 한라산 그 자체이고 한라산은 제주도 그 자체다. 오름과 한라산은 하나의 體(체)이기 때문에 오름을 이야기할 때 한라산을 빼어놓을 수 없고, 한라산을 이야기할 때 오름을 빼어 놓을 수 없다. 다만 이용의 선택 면에서 體用(체용)의 관계라고 본다. 오름은 곧 한라산이고 한라산은 곧 오름이다. 제주만의 고유한 향기를 품은 전통문학 속에는 아름다운 한라산을 위시한 시와 산문, 노래는 수없이 많다. 그 속에는 한라산을 예찬한 다양한 詩(시) 문학이 숨쉬고 있으며, 제주만의 形勝(형승)과 山川(산천), 민속, 마을의 전통, 민요, 풍습 등이 다양하게 그려져 있으며, 특히 오름에 관련된 설화문학이 잔잔히 배어 있다.
8. 오름의 형상화 - 제주의 草家(초가)와 돌 문화
제주특유의 돌담으로 울타리를 두르고 지붕은 띠풀(제주에서는 "새" 라고 함)로 덮은 다음 띠풀을 꼬아서 만든 밧줄로 바둑판처럼 단단히 동여매면 제주의 전형적인 초가집이 된다. 특히 바람 많은 제주 섬에서 바람과 싸워 온 제주 조상들의 생활의 지혜가 담겨져 있는 제주 초가집은 오름을 기대고 살아온 제주민들의 삶이 잘 나타나 있다. 오행의 體(체)를 모두 갖추고 있는 제주오름은 특히 둥그런 원형의 곡선미가 지배적이다. 또한 제주의 오름들은 포근하게 다가오는 半月形(반월형)의 오름들이 많이 있는데 제주초가집의 원형은 오름의 형상에서 기인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집의 울타리는 물론 해안이나 밭 등에 높고 낮게 高低起伏(고저기복)의 형상으로 구불구불 이어져 있는 돌담은 풍수학적인 산의 능선, 즉 龍勢(용세)를 형상화했거나 오름의 등성이가 고저를 이루며 출렁이는 듯한 형상의 곡선미의 영향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9. 제언 -오름의 보전과 관리
1) 무엇보다 자연환경에 대한 도민의 의식이 앞서야 -
일반적으로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은 건강한 삶을 통한 가치의 추구와 보람 있는 삶의 유형을 실현하는 것으로부터 얻어지는 행복일 것이다. 그러한 기조에서 출발할 때 행복이란 단어는 복잡한 현대문명으로 전환하면서 그 근원적인 물음에 언뜻 말하기 곤란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첨단의 과학문명으로 인하여 인간은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최대의 물질적 혜택과 문명적 利器(이기)의 편의를 제공받고 있지만 행복이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하여는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은 무슨 이치인가. 그것은 인간이 아무리 달나라를 가고 고도성장속에서 번영과 풍족을 향유할지라도 정신적인 면은 오히려 소외되고 공허해 지는 것은 진정한 가치와 행복이라는 척도가 결코 물질과 조건에 있지 않고 자연과 정신이 어우러지는 쾌적한 공간의 편안함 속에서 앞서 말한 물질과 경제적인 부분이 조화를 이루어 내는데서 그 근원적인 문제의 해결이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양보일 것이다. 그보다도 먼저 자연의 주체를 앞세우고 그 속에서 인간이 지향하는 방법을 자연과의 절충에서 부속적으로 얻어내야 할 것이다.
「老子」제3장에 "不見可欲(불견가욕)"이란 말이 있다. 즉 이 뜻은 "욕심낼 만한 것을 보여주지 말라"라는 의미인데 결국 이 말은 욕심낼 것만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악순환은 자본의 파괴와 인간의 파괴 나아가서는 자연의 파괴를 불러일으킨다. 그러한 인간의 욕심들은 결국 자연이 본래 지니고 있는 自淨(자정)능력을 잃게 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지역의 매년 홍수의 예를 보더라도 개발로 인한 자연의 自淨능력을 빼앗았기 때문이 아닌가. 때만 되면 매스컴들이 한강의 오염을 의례형식으로 보도한다. 한강상수원이 왜 오염되는가. 너무도 당연하고 뻔한 이치이다. 행정부가 상수원 지역에 자연보호를 하고 개발을 억제하면 될 것이 아닌가. 국민의 생명원인 食水(식수)가 일부 그린벨트 권에 묶인 소수의 이해당사자들보다도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근본과 원인은 외면하고 지엽적인 부분만으로 한강을 깨끗이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한강상류 주변에 온갖 여관, 호텔, 콘도, 산장, 음식점, 러브호텔, 체육수련장, 공공업소들이 판치고 들어서게 하고서 어떻게 상수원을 보호할 수 있는지 정말로 한심스럽다. 그 곳에서 나오는 온갖 오염물질과 음식물 쓰레기, 똥, 오줌이 확실한 오염의 주범인데 때만 되면 한강상류 오염이니 어쩌니 하는 짓들이 정말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문제해결은 소신 있는 정부관계자들이 정말로 국가를 생각하고 국민을 생각하는 청렴하고 곳곳한 생각과 정책에서 나오는 것인데 위정자들이 자연환경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얼마나 되는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노자의 "虛(沖)"를 생각해야 한다. 자연환경의 보호는 노자가 말한 저 "虛"에서 출발해야 "而用之或不盈(이용지혹불영)"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퍼내어 써도 고갈되지 않는 늘 여지를 남기며 살아갈 수 있는 그러한 마음의 소지자들이 되어야 한다.
인간이 편리해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자연을 담보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자연을 이용하는데는 원칙과 조화가 앞서야 할 것이다. 자연환경은 우리의 인체와 분리시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자연환경 어느 부분이 오염되거나 부조화 현상이 나면 바로 그것은 우리인간에게 불리한 작용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만큼 자연환경을 이용하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개발한다면 그 개발에 소요되는 모든 자연적 지리환경과 그에 미치는 영향 등을 국가 百年大計的(백년대계적) 관점으로 점검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즉 친환경적 개발을 위하여 사전에 제반 관련된 문제들을 환경학적인 측면에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제주도의 가장 큰 명제는 오름의 보호와 이미 개발로 파괴된 원초적인 오름의 생명력을 복원하는 일이다. 산업화의 물결과 함께 인간은 어느 때부터인가 자연으로부터 멀어졌다. 지금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의 보복인 것이다. 그동안 인간들은 무모하게 자연을 정복하며 인간의 편익을 위해서 오만하게 자연을 경시해 왔다.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대기오염과 공해로 인한 지구의 온난화 현상과 자연의 원심력과 조화력이 깨어진 상태에서 빚어지는 기상변화, 자연재해, 수자원의 고갈과 오염,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 등이다. 그 부작용은 엄청난 속도로 우리 모두의 생명과 존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의 큰 문제는 그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인간들이 물질의 풍요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연으로부터 품수되어지는 어진 본성이 점차 빛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이다. 본성이 흐려진다는 것은 인간의 가치기준이 도식화고 정신적인 측면보다는 물질적인 측면으로 기울어 가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영원 대대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우리 한 세대가 살기 위해서 부여된 자연이 아닌 것이다. 작금의 실태는 어쩌면 이 한시대만을 위한 삶처럼 오로지 미래를 생각지 않는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아름다운 호수와 하천도 하루가 멀게 파헤쳐 그곳에다 경제적인 논리로 자신들의 이해타산을 앞세우며 개발이란 미명으로 마구 훼손한다.
21세기는 환경을 중시하는 정책들이 선진국에서는 날이 갈수록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는데 반하여 우리 한국은 오히려 정책 입안자들이 이해타산을 앞세워 자연환경을 대가로 한 무모한 개발을 부축이고 있는 것이다. 타당한 개발은 나름대로 이해가 가지만 생태학적으로 도저히 개발이 불가능한 지역도 이들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 가까운 예로 지금 서해안의 갯벌이 얼마나 죽어 가고 있는가를 가슴아프게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시화호는 어떠하며 세계에서도 생태학적으로 귀히 여기는 동강을 무모하게 개발하려는 어리석은 행정 입안자들을 생각할 때 과연 그들은 후손과 미래도 없다는 말인가. 그들의 눈에는 오로지 자연을 미끼로 한 경제적 이득과 그들 나름대로의 이해득실만을 생각해서인가. 정말로 통탄할 일이다.
요즈음은 습지와 산림이 우거진 곳이면 무조건 집이 들어선다. 별장 아니면 러브호텔, 콘도미니엄 등등이다. 녹지만 있으면 무조건 파헤치고 본다. 땅값이 행여 오르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국토엔 자연의 포근한 안식의 자리인 푸른 숲이 모두 살아질 것이다. 거기에다 어떠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세계에서도 놀랐던 녹림사업과 그나마 그린벨트라는 제도로 우리의 자연환경이 보존되어 왔는데 작금의 현실은 정책 하는 사람들이 정략적 이해득실을 고려한 나머지 무조건 풀어 헤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소수의 그린벨트로 인한 불이익을 받는 국민이 있다면 당연히 국가가 보상차원에서 해결의 물 고를 터야 할 것이다. 또한 부적당한 그린벨트 지역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한 문제해결을 지적하는 것 또한 옳다고 본다. 하지만 그러한 명분으로 오히려 땅투기를 부추기며 그 부작용으로 인한 우리 국토의 오염화는 심각한 문제로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이제 제주는 예로부터 자랑하던 생태보고의 섬이 아니다. 어머니 품처럼 정겨운 그러한 제주의 풍경이 아니다. 농촌 어디에도 산업화의 영향이 미치지 아니한 곳이 없다. 물고기들이 뛰어 놀던 맑은 시냇물은 더러운 오수 천으로 변했고 아지랑이 아물거리던 진달래 언덕엔 공장과 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온 제주 어디에도 산허리가 잘린 곳하며 골프장이다 주택단지다 하며 산등성이까지 포크레인으로 할퀴고 간 자리는 황황하기만 하다. 이제는 파괴할 곳이 없어 국립공원 중턱까지 건물이 올라가는 형상이니 영원한 저 산줄기도 얼마 안가 사라질 양상이다. 오로지 인공화 되고 삭막한 시멘트 건물만이 남고 그 자연의 파괴는 결국 인간의 그리움마저 파괴할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영원한 안식처요 고향이다.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간다. 억겁년 지구의 역사 속에서 자연은 늘 어머니와도 같은 모습으로 그 품안으로 인간을 영위시키고 자양시켜 왔다. 자연의 혜택 속에서 인간은 생명을 유지하며 부여된 삶을 존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모든 지구상의 생태계를 유지시키며 끊임없이 살아 있는 생명체를 관장하며 생장소멸의 변화를 대자연의 순리와 순환의 법칙으로 쉬임없이 운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시도 떠날 수없는 자연의 소중함이 산업화의 물결과 더불어 개발이란 미명아래 마구 파괴되고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자연환경과의 조화를 꾀하여 얼마간의 인간의 생활영역에 편리와 이로움을 위하여 도움이 되는 친환경적인 개발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작금의 행태는 어떤가? 개발이란 단어는 이제는 파괴와도 같다. 물 맑고 수려한 풍광이 이제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맑게 흐르던 계곡 물은 이제는 더러운 악취가 나는 하수 천으로 변해 가고 있고 산새들이 노래하던 맑고 청아한 숲과 산림들은 마구 파헤쳐져 하루가 모르게 아파트촌 아니면 별장, 러브호텔들이 들어서고 있지 않은가?
이제 우리는 자연환경을 소중히 할 때다. 풀 한 포기, 돌 하나 모두가 소중한 우리의 일부분으로 생각하자.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생태환경이 멍들어 가는 현실에서 우리는 정신과 몸이 병들어 가고 있다.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 아름다움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때 가능하다.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땅에서 마음껏 호흡하며 자연의 마음을 배울 때 소박하고 아름다운 인심은 살아나는 것이다.
그동안 제주도가 개발주도형 정책으로 달려왔다면 앞으로는 자연환경을 최대한 보존하고 가꾸어 쾌적한 환경으로 그야말로 살맛 나는 생태의 섬으로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다시는 자연을 볼모로 한 무모한 시행착오는 국가의 미래와 후대를 위해서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영원한 제주는 더 이상 자연을 볼모로 한 이해타산의 잣대가 아닌 것이다. 또한 그와 더불어 우리 도민도 자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자연환경보호 의식을 고취하여야 할 것이다. 제주도는 태고의 신비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청정한 생태환경의 최고의 寶庫(보고)이며 한라산을 중심으로 원시의 천연림과 최적의 기후를 자랑하며 마지막 남은 오염되지 않은 낙원으로서 푸른 바다와 맑고 상쾌한 공기는 도시에 찌든 현대인들의 마음을 태고의 원시숨결에 포근하게 감싸 앉길 수 있는 이상의 섬이다. 그러한 제주도가 요즈음 공해와 오염으로 점차적으로 몸살을 앓아가고 있다. 이국적인 정취의 아열대 식물과 각양각색의 식물들의 보고인 숲지나 숲이 마구 파헤쳐지고 있다. 제주도 전 지역이 공사 안 하는 곳이 없을 만큼 이쪽 저쪽으로 길이 뚫려지고 있으며 길이 나기가 바쁘게 주변에 음식점과 업소들이 들어서고 집들도 이곳 저곳 할 것 없이 마구 들어선다. 전망이 좋은 곳이면 너·나 할 것 없이 고급 별장과 호텔, 공공건물, 수련장 등이 대책 없이 들어서고 있다. 중산간은 제주환경의 중심점이며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 중산간이 마구 파괴되고 있다. 그 물 맑은 제주의 오염되지 않은 물이 이제는 오염의 정도가 심하다. 물의 근원지인 중산간이 무분별하게 개발되며 유락업소들이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땅의 넓이가 한정된 섬인데 왜 그렇게 도로가 많은지 이해가 안 된다. 온통 도로 투성이다. 도로가 인간에게 교통의 편리는 주지만 보존해야 할 지역도 여지없이 허리가 관통되는가 하면 그 주변이 아파트지역 아니면 새로운 상업단지로 둔갑하고 있는 현실이다. 제주도의 매력이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아름다운 자연과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땅이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요즈음 하는 말이 있다. 제주도다운 멋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이다. 제주도나 육지나 이제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육지에 있는 고층건물이 제주도에도 있고 현대인들이 싫증난 도시문명이 제주도 좁은 땅덩어리에 확산되고 있으니 말이다. 하기 좋은 말로 무슨 주택단지니 택지개발지구니 하면서 한라산 줄기가 즐기차게 파헤쳐지고 있으며 천혜의 자연환경이 날이 갈수록 그 모습을 잃어 가고 있다. 언젠가는 한라산 백록담만 남고 그 나머지는 집들이 들어설까 심히 우려된다. 사실상 그것이 현실처럼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벌써 제1횡단도로주변에 서서히 한라산 쪽으로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고 제2횡단도로 주변도 서서히 건물들이 주변에 들어서고 있으며 서부관광도로와 동부관광도로 주변은 걷잡을 수 없으리만큼 천혜의 자연이 파괴되고 각종 유락단지들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큰 일이다. 제주도는 이제 더 이상 청정지역이 아닌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제주섬 모두가 도시화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일주도로변은 완전히 실패작이다. 바다와 어우러진 분위기보다는 무분별하게 들어선 집들과 빌딩들이 조화롭지 못하게 공업화·산업화되면서 이제는 삭막하게만 보인다. 그 어디나 청정한 제주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제주도가 제주도다운 멋을 잃을 때 제주의 관광산업도 끝장이다. 더 이상 제주도는 무조건적 개발로 가서는 안 된다. 자연환경에 적합한 관광지를 조성해야 한다. 행정부가 주도적으로 중산간의 이용을 허가하고 개발하면서 물이 오염된다고 하는 것 등이 어불성설이다. 그 물의 근원지에 오염원을 공식적으로 제공하면서 수자원을 보호하자는 식의 "눈 가리고 아옹 식"은 이제는 그만 두어야 할 것이다.
제주도의 바다는 어떠한가. 무슨 백화현상이니 적조현상이니 매스컴마다 떠들어댄다. 지금 제주도 바다가 온전한 곳이 있는가. 해안 동네마다 무분별하게 방파제를 만들어 해류의 작용을 막고 물의 순환을 억제하는 부작용과 함께 토지의 이용극대화를 꾀한다고 하는 미명 하에 바다의 생태계를 파괴하면서까지 바다를 메워 해안생태계를 얼마나 파괴하고 있는가. 갈매기 날고 수평선 바라다 보이는 낭만적인 해안의 모습이 점차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환경보호운동도 지엽적인 차원에서 할 것이 아니라 환경을 오염시키는 근원적인 문제에 입각해서 연구하고 방지책을 내 놓아야 할 것이다. 근원은 뒷전으로 미루어 놓고 발생학적인 측면에서만 궁리하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아쉽다.
우리 제주가 살길은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함께 더불어 자라 온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가꾸는 일일 것이다. 문제는 자연을 더 이상 개발의 잣대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풀고 제도 개선해야 할 시점에서 앞으로 우리 환경인들의 책임은 더욱 무거운 자리 매김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2) 가장 제주다운 것이 최고의 관광상품이다 -
제주도는 생태 관광자원의 보고이다. 지금껏 알려진 관광지는 20년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타 지방에서 온 관광객이나 관광객이 아닌 사람도 제주도에 익히 알려진 대표적인 관광지는 대체로 알고 있는 편이다. 예를 들어, 한라산 백록담, 용두암, 성산일출봉, 산방굴사, 정방폭포, 천지연폭포, 천제연폭포, 성읍민속마을, 한림공원, 중문관광단지 등이다. 그러나 약 368개나 되는 제주의 천연자원 오름에 대해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또한 오름의 실체나 오름에 얽힌 설화나 전설, 오름에 저장되어 있는 생태의 보고, 오름 그 자체가 제주섬 자체의 생명력이라는 것에 대해 제대로 아는 이가 없는 것이다. 또한 한라산을 중심으로 주요 오름들이 동서로 구심점을 이루며 사방으로 핏줄처럼 氣血(기혈)을 이루고 있는 사실과 오름에서 바라보는 그 어느 것에도 비교할 데 없는 신비하고 영험한 또 하나의 아름다운 장관을 알고 있는 관광객과 제주인 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땅을 경제적인 가치로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결과만 안겨 줄 것이다. 제주의 가치인 그 특유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지닌 오름을 관광상품화 하여 홍보한다면 제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모든 이에게 다가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오름들에게 의미를 주어야 또 하나의 생명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오름의 실체를 모를때는 그저 오름은 오름일 뿐이다. 그러나 그 오름의 실체를 알 때에는 그 오름은 최고의 생명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10. 맺음말
오름은 제주문화 속에서 제주민들의 삶의 상징이었다. 생활의 근거지였고, 항쟁의 터전이었으며 얼룩졌던 역사의 질곡 속에서 아픔과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 또한 돌아가 쉴 그들의 뼈를 묻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었으며, 마소를 풀어 방목했던 테우리들의 생활 근거지였다. 시간의 역사 속에서 오름은 그들의 젖줄이었으며, 희망을 담고 의지했던 정신적인 요람이었다. 제주문화 속에서 오름은 제주민들의 삶 그 자체이면서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할 것이다.
오름의 형상에서 문화적 양식이 싹 트였고, 오름을 기대어 살아가는 그들은 오름을 중히 여기는 자연관이 깊게 배어 있었다. 오름과 관련한 지배적인 低流(저류)는 자연의 이치에 역류하지 않고 순응하는 ‘自然風水觀(자연풍수관)’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름에 나서 오름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땅을 모태로 삼는 地母觀(지모관)을 엿볼 수 있으며, 地名(지명)에는 풍수에 관한 설화나 전설이 배경이 되어 있다. 《제주도산록》에 나오는 풍수적 物形(물형)의 형국에서 볼 수 있듯이 오름을 배경으로 풍수지리의 이법에 따라 明穴地(명혈지)를 찾아 선영의 묘를 쓰고자 했던 점을 들어 대개 마을의 공동묘역이 藏風得水地(장풍득수지)에 위치해 있다. 마을에 얽힌 설촌유래나 오름의 지명에서 자주 나타나듯 제주문화 속의 오름은 땅을 모체로 한 자연풍수관이 제주민들의 생활 속에 농축되어 있음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 자연풍수관은 제주만의 독특한 기후·지형과 맞물려 생활문화 곳곳에 파고 들었으며, 특히 裨補(비보)·壓勝(압승)의 풍수관이 지배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흔적들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이 비근한 예로 防邪塔(방사탑)과 돌담, 대개의 마을들이 오름을 坐(좌)로 하여 設村(설촌) 된 점이다. 그 오름의 문화에서 胚胎(배태)된 제주민들의 생활풍수관을 찾아 볼 수 있다.
설화에 나타나는 오름의 인격화, 산담(墓墻)에 나타나는 ‘生死一如觀(생사일여관)’, 오름의 품에 돌아가려는 ‘歸巢觀(귀소관)’, 오름을 사람의 인체로 생각한 ‘자연생명관’그 밖에 오름의 형상미의 영향과 관련한 제주의 초가집과 돌 문화에서 나타나는 생활건축 문화와 사고방식, 한라산과 오름을 모체로 하여 핀 문학관을 선대의 詩歌(시가)나 수필 등에서 엿볼 수 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오름 속에서 피어낸 삶의 문화는 오름을 자연의 인격체로 중시했던 제주민들의 자연환경 의식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자연을 敬畏(경외)하고 중시하는 제주민들의 문화 속에는 무엇보다도 오름을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는 그들의 정신이 깊게 자리하고 있으며, 그 오름의 裏面(이면)에는 제주민의 自然風水觀(자연풍수관)이 자리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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