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동선>2013.3~4월호에 실린 글
강정마을에서 이루고 싶은 공동선
오래 동안 형제처럼 지내온 가톨릭 신부와 여행 중에 나눈 대화다.
“제가 무척 편협하고 편향적인 시각을 가졌는데 함께 지낼 때 불편하지 않나요?”
“아니.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네. 25년 전에 처음 만나 대화하면서 그런 성향에 대해 알아차렸지. 그러나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자네가 스스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대부분 자신의 성향에 대해 잘 모르고 있거나, 말해줘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지. 성향이나 결함 때문에 관계에 어려움이 온다기보다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해.”
상담심리학을 공부하신 분이어서 설득력 있게 잘 표현해 주었다. 나보다는 온화한 성품을 지녔고 늘 타인을 잘 수용하는 덕을 지녔기에 그럴 수 있었겠지만, 함께 살았던 몇 년 동안 우리는 별 어려움 없이 잘 지냈었다.
여행 중에 심심찮게 듣는 칭찬이 또 있다.
“독특한 음식취향이나 투철한 생활습관, 예민한 성품이나 날카로운 안목 등 여러모로 참 까다로운 사람인 것은 분명한데, 함께 지내보면 큰 어려움이 없고 오히려 무척 편안하게 느껴져. 온유한 사람들조차 여행 중에는 부딪치기 일쑤고, 그로 인하여 사이가 나빠지거나 결별을 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로제와는 평생 그럴 일이 없을 거 같다니까.”
이런 점이 두루 인정되어 이웃 친지들로부터 ‘함께 여행하고 싶은 사람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니 자축할 일이다. 평소 ‘게으른 귀차니스트’라거나 ‘늘 삐뚤어진 사고만 하는 청개구리’라고 핀잔을 주는 친구들도 그 점에 있어서는 선뜻 동의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믿어지거나 말거나 사실이 그렇다. 덤도 있다. 여행을 하다보면 주도권 때문에 말썽이 나기 쉬운데, 나는 어떤 경우라도 주도하는 것에 관심을 두기보다 하자는 대로 따라 하는 편이다. 지닌 성향과 변용되는 성향이 이토록 다른 것에 대해 스스로도 놀랄 때가 많지만, 늘 우등생이었던 학창시절 내내 단 한 번도 직책을 맡지 않았던 점이 그것을 대변해준다. 그러나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바로 나서서 최선을 다해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해 낸다. 또한 특별히 그럴 수 없는 상황만 아니라면(애석하게도 희귀난치에 의한 통증에 자주 시달리는 편) 여행 내내 유쾌한 재담으로 동행인들을 끝없이 기쁘고 행복하게 해 준다. 재능이란 그럴 때를 위해 잘 갈무리해 두는 것이라 생각한다.
‘좌경’이나 ‘좌익’이 惡(악)일 수만은 없다. 자유민주주의는 바로 ‘좌경’ ‘좌익’을 완전히 배제하는 국가야말로 극우독재정권이었음을 동서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또한 ‘좌경’속에서 자유민주체제를 보완하는 데 긍정적 기능을 기대할 수 있는 요소들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160p)
민주주의는 결코 社會主義(사회주의) 또는 共産主義(공산주의)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며 오히려 이들 이념을 받아들여 그 사회 속에 하나의 가치체계로서 보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서구의 여러 선진적 민주주의 사회에서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178p)
(박원순 著 ‘국가보안법 3’에서 부분 발췌)
내게 사회성향을 물을 때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극진보 좌편향’이라고. 객관성 여부에 개의치 않고 스스로를 그렇게 판단한다. 그것이 좋고 나쁘든지 혹은 옳거나 그르더라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생겨났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나 그런 나의 성향 때문에 사람과 관계가 어려웠던 적은 거의 없었다. 성향이란 서로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것’과 맞서 싸울 만큼 치열하지도 않지만 ‘틀린 것’과 맞서 싸우기에도 힘이 부치기 때문이다. 내가 진보성향이라고 해서 보수성향인 사람을 덮어놓고 싫어하지 않는다. 상대의 진정성을 헤아릴 줄 모르고 막무가내로 우겨대는 무식한 사람이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정의(正義)라고 생각할 정도로 틀려먹지만 않았다면 어떤 성향이든 괜찮다. 그래서 실제로 내 주변에는 진보좌익보다 보수우익 성향의 지인들이 더 많은 편이다. 친구들도 물론 그렇다. 자, 이제 그런 정도의 시각으로 2013년 입춘을 전후하여 바라본 강정마을 이야기를 하고 싶다.
초청에 의한 강의와 공연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내게 1~2월은 연중 가장 일정이 뜸한 때이다. 고향의 이웃집 누나가 비구니 승려이신데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사찰에 머물고 계신다. 일정이 없을 때 조용한 절집에 와서 쉬라고 초대했는데, 내게 더 간절할 것은 강정마을을 지키는 분들과의 동반과 연대였다. 현지 주민들 외에는 대부분 환경보전이나 인권회복 등의 사회운동을 오랜 동안 함께 해온 동지들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강정마을은 사찰에서 멀지 않기에 절집에서 편안하게 숙식과 교통편을 제공받으면서 며칠을 연대할 수 있었다. 또한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졸업하자마자 강정으로 내려가 지킴이로 살고 있는 조카도 있다. 주소지마저 옮겨 주민신분으로 공사 진행을 반대하고 저지하다가, 경찰에게는 업무방해(3건)와 일반교통방해(1건)로 기소되어 4건의 소송에 대응중이다. 잠시나마 함께 하는 동안 격려와 지지가 되어주고 싶었다.
강정마을과 나의 인연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5년 1월, 정부는 제주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추진하기로 했던 제주평화대공원 조성은 부지 확보 문제로 현재까지 진전이 없는 상태인 반면, 2007년부터 7년 계획으로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으로 세 군데나 지정되어 있는 평화의 섬에 군사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가톨릭교회(제주교구)가 반대하고 나섰다. 2007년 5월 21일, 강우일 주교를 중심으로 사제 40여명과 신자 1,000여명이 중앙성당에 모여 ‘평화의 섬 제주’를 염원하는 시국미사를 드렸고, 이어지는 ‘평화노래마당’에 초대되어 진행과 노래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제주시에 새로 생긴 동광천주교회 성전봉헌 기념음악회를 하러 갔다가 긴급제의를 받고 이루어진 행사였기에, 준비도 미흡했지만 내 안의 염원도 구체적이지 못했다. 그 후로 6년 가까운 기간 동안 직접 연대하지는 못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 늘 강정이 있었다. 동료 활성가들이(사회운동가를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렇게 칭한다) 희망버스나 평화비행기로 여러 현장을 오가는 동안 나는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 좋게 말하자면 생업에 충실하며 일상이라는 현장에서 내 방식의 사회운동을 해왔던 것이고, 좋지 않게 말하자면 자신의 삶 안에 갇혀 대중사회운동에 직접 연대하지 못했던 것이다. ‘가치 있고 좋은 일이라 해도 기쁘지 않으면 멈추어 섰다가, 기쁘게 할 수 있을 때 다시 한다’라는 내 소신에 따른 것이기에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았다. 그러나 현장사수로 삶과 시간을 태우는 동료 활성가들과, 동참으로 역동성을 유지시켜온 젊은이들의 순결함에는 머리를 숙여 존경을 표하고 싶다.
군대점령 사례의 선배격인 하와이나 오키나와 섬의 전례 속에서 주민과의 대화부재와 불신의 문제를 짚어내는 것과, 생태와 환경파괴 문제에 대한 다양한 통찰과 숙고, 군사기지 건설이 국제사회의 군사적 긴장을 증가시키고 특히 핵전쟁의 위협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높아진다거나, 평택-군산-파주-제주로 이어지는 미군기지 확장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고, 미국령으로 간주해온 태평양 지역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임이 분명하기에, ‘필연적으로 전쟁을 불러올 것’이라는 견해에 대한 고찰 등은 관심만 있다면 정보의 바다 속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나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평생 동안 노래 만들고 부르는 일을 해온 노래쟁이의 가슴에는 강정의 이야기가 어쩔 수 없이 노래로 새겨졌기 때문이다. 이틀간 맡았던 미사 음악진행과 이어지는 즉석 콘서트도 절절했지만, 지킴이들과 섞여 화순이(강정을 지키는 개)와 놀다가 가끔씩 마주치는『고착』이 내게는 아프게 각인되었다.『고착』이란 차량들의 공사장 출입을 막아 공사를 지연시키려는 지킴이들을 억압하는 방식에 대한 경찰들의 상용어이다. 이를테면 ‘일정한 장소에 가두어 놓는 것’이라는 뜻인데 경찰들로 인간 띠(우리)를 만들어 그 안에 지킴이들을 가두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가슴 아픈 『고착』은 경찰용어에도 없는 말로써 사실은 감금이나 다름없다. 아니 ‘일시적 감금’이라고 해야 한다. (활성가 한경아 님이 재판 중에 물었을 때, ‘사실상 경찰용어에도 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함)
거대한 권력과 자본을 무기 삼아 건설되는 군사기지를 젊은이들의 순결한 희생으로 막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 1초라도 공사를 지연시키는 것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돈과 무력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기지건설을 강행하고 있는 강정포구의 주인은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주민들과 말 못하는 각종 생물들이다. 그들 중 기지건설을 반대하는 주민이 있고, 그것을 지지하는 국민 또한 적지 않다. 이 엄연한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그들에게 거듭 거듭 말해 줘야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널리 알려야 하는데 공사를 지연시키는 일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것은 ‘존중받아야 할 공존의 대상’일뿐 결코 죄도 악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죄나 악으로 간주하고 처벌하는 한심한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고착』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것이 ‘두 가지 젊음’이라는 상징이었다. 먹고사는 일 때문에 자신의 판단과 의지는 뒤로한 채 지시대로 살 수 밖에 없는 젊음과, 아무런 제약도 없이 자신의 판단과 의지대로 살고 행동하며, 그러기 위해 어떠한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삶을 온전히 바치고 있는 젊음이 그것이다. 잘 조련되어 명령대로만 움직이는 힘 좋은 경찰들과, 완전한 자유의지로 강정수호를 자처하고 나선 지킴이는 우리 한민족이 안고 가야할 어쩔 수 없는 두 가지 상징일 수 있다. 급료라는 대가를 받는 대신 다른 생각을 지닌 채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이웃을 죄인이나 악인으로 몰아세워야 하는 상징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대가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렵게 모은 돈을 벌금으로 뜯기면서도 기쁘게(결코 즐겁지 않을지라도) 연대하는 상징도 있다. 민초들의 삶이 모질기로 말하자면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없는 아픈 이 시대에, 기댈 곳 없는 젊은이들이 돈 버는 일은 또 얼마나 혹독한가?
그렇게 몇 년간 벌어 모은 돈을 통째로(벌금으로) 날리는 대가로 얻은 것이 ‘단 몇 분간의 공사 지연’일 수도 있다. 그것을 후회 없는 가치로 여긴다면 어리석은 젊음일까? 그리고 매번『고착』을 감행할 수밖에 없는 경찰들은 어떤가? 서로에게 아픔을 주는『고착』이 지나가고 나면, 임무에 따라 그 독한 일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그저 평범한 보통 젊은이들일 뿐, 그들은 또 무슨 죄란 말인가?
지난 해, 화약고 앞에서 인간 띠를 이은 것에 대한 업무방해와 마을 코사마트 사거리에서 경찰버스 앞에 선 것에 대한 일반교통방해로 며칠 전에 400만 벌금 선고를 받았고, 공사장 정문 앞에서 인간 띠를 이은 것에 대한 업무방해로 또 400만 벌금 선고를 받았어요. 이 세 건은 모두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예요. 그리고 대선 직후인 7월에 사업단 앞에 서있었다는 것에 대한 업무방해로 기소장이 날아왔어요. 지금까지 경찰조사는 21건을 받았어요. 주로 업무방해고 경찰을 때렸다는 공무집행방해와 구럼비를 보러 들어갔을 때 주거침입까지 다양해요. 경찰조사를 받고 그 다음 기소되는 것이 순서인데, 7월 이후로 12월까지 조사받았던 것에 대한 기소가 앞으로 진행될 거예요. (* 조카딸이 보내온 메일 내용 중 부분 발췌)
매일 수차례 진행되는 부역 같은『고착』중에 갇힌 젊은이가 가둔 젊은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았다. 공사를 못하게 막거나 단 1초라도 지연시키고 싶은 ‘나’와, 그런 나를 저지하는 또 다른 ‘너’가 한 나라 한 민족이라는 사실이다. 지금은 갈라져 있는 너와 내가 마침내 하나가 되어야 하고 하나가 될 수밖에 없으며, 그 길만이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는 상생의 길이라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강대국들의 이익에 의해 남북으로 찢기어졌고, 정치권의 탐욕에 의해 동서(영호남)로 갈라졌으며, 자본의 80% 이상이 몰린 서울에서 그 자본에 의해 다시 강남 강북으로 구분된 우리가, 마침내 하나 되어 함께 걸어가는 상생의 길, 평화의 그 길을 반도의 끝 강정에서 시작해 함께 가보자는 간절한 염원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필연적으로 합일을 이루어야할 이 두 상징은 서로 다름을 수용하고 극복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고, 그런 통합을 이루어내는 일이 정치가 할 일이다. 그러나 ‘평화의 섬에 건설 중인 군사기지’라는 모순은, 칼 융의 이론이 아니라 그 무엇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통합이라는 것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 이것이 안타까운 우리의 정치현실이다.
작년 10월, 제67주년 경찰의 날을 맞아 그동안의 '노고와 공로'를 인정받아 ‘근정포장’을 받은 서귀포경찰서 구슬환 경비과장에게, 계속되는 소송과 벌금고지서에 시달리고 있으며, 법 집행이라는 억압에 묶여 이제는『고착』이든 감금이든 당해줄 능력도 없는 내 조카가 하고 싶었음직한 얘기를 노래에 담아보았다.
남북으로 찢기어진 슬픔 안고
동서로 갈라지는 아픔 안고
평화의 섬 작은 마을 강정에서
서럽게 마주섰구나.
힘든 세상 살고 있는 너와 내가
어이해 시린 가슴 안지 못하고
누굴 위해 무얼 따라 살고 있기에
두 손 마주 잡지 못하나?
강정아 말해다오 너는 아는지?
구럼비야 너는 아는지?
그래도 다시 피울 평화의 꿈을
강정에서 피우고 싶어.
강정아 말해다오 너는 아는지?
구럼비야 너는 아는지?
뜨거운 가슴 안고 평화의 길을
강정에서 함께 가보자.
(김정식 사/곡「강정아 말해다오(구슬환에게 보내는 편지)」가사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