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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한국적인 건축미를 자랑하는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敦化門)이다.
돈화문은 창덕궁의 대궐문으로 태종 12년(1412) 처음으로 창건되었다.
이 대문은 5칸으로 임금님만 다니는 어문(御門)이다.
궁의 정문이란 의례 정전(正殿)과 일직선의 남쪽에 위치하는 법이다.
창덕궁의 정전 인정전 서쪽에 치우쳐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 돈화문의 특징이다.
이것은 자연의 산세에 따라 조화롭게 배치된 창덕궁의 조영의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도식적이고 권위적인 여느 궁궐의 배치 와는사뭇 다르게 자연의 흐름을 거스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를 효과적인 공간배치로 이용해 낸 우리나라 궁궐 건축의 특징이
돈화문의 터잡이에는 잘 간직 되어 있다고들 전문가들은 예찬한다.
이 대궐의 정문이 궁궐의 중심에서 한참 벗어난 모서리에 있는 것은 창덕궁의 지리적 특수성 때문이다.
궁궐의 정면에는 북악의 매봉이 연결되어 있고 이 곳에는 조선의 가장 신성한 공간인 종묘가 있어
창덕궁의 정문이 들어설 수 없어 서쪽으로 끌어낸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종로 3가에서 창덕궁으로 걸어가야 창덕궁과 주변 산세를 제대로 살필 수 있다.
삼각산 넘어 보현봉이 창덕궁 뒤에서 굳게 지켜주는 모습이 든든하다.
좀 더 뒤로 물러서면 창덕궁의 주산 매봉이 보현봉과 함께 하나의 축을 이룬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 도성을 축성할 때 서울 도성자리를 잡기위해 올랐던 보현봉이다.
조선시대 창덕궁에 갈때 이 길로 가야만 했다. 그 궁궐을 감싸고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는
매봉 보현봉 삼각산이 연출하는 위엄함과 장엄미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창덕궁은 정문 돈화문부터 여느 궁궐의 정문과는 풍기는 맛이 아주 다르다.
"창경궁의 홍화문이 날렵한 새색시 같다면 돈화문은 기품 있는 중년여인 같은 인상이다."(명지대 홍순민교수)
돈화문 창건 당시에는 2층 문루(門樓에 1만5,000근의 큰 종(大鐘)과 북을 함께 걸었다.
매일 정오와 이경(밤 10시)에 종을 28번 울렸다.이를 인정(人定)이라고 했다.
새벽 4시에 북을 33번 쳐 통행금지가 해제되었슴을 알렸다.이를 파루(破漏)라 했다.
당시 종을 주조하여 돈화문 다락에 걸고 그 종을 울렸던 사실이
예문관 제학 변계량이 지은 <돈화문루 종명>에 다음과 같이 밝혀져 있다.
".... 해당 관청에 명하여 종을 주조하여 궁문에 다니 옛 제도를 그대로 따라 지킴으로써
문무 백관이 조현하기 위하여 모이는 조회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게 하려는 것이다. ..
이렇게 종을 단 것은 관직자들이 그 직책을 다하여 한 치의 허물없이 나라의 운수를
영원히 하늘과 땅과 함께 하고자 함이다." 이처럼 돈화문의 종을 때 맞추어 침으로써 기강을 엄히 하고
나아가 나라의 만년 번영을 기원하던 것이었다. 이 문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선조 40년(1607)에
재건하기 시작하여 광해군 원년(1609)에 완공하였다.이때의 모습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이 문은 창경궁의 정문 홍화문(弘化門)과 더불러 조선중기의 건축양식이 보존되어 있는
궁궐 정문으로 중요시되고 있다. 인조반정 때 창덕궁의 내전들이 모두 불에 탔고
순조때에도 인정전이 화재를 입었으나 돈화문만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현존하는 궁궐의 대문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축이 되었다.
광해군때의 중건 이후 경종 원년(1721)에 한 차례 보수한 기록이 있고 고종때인 1890년대에는
왕실의 자동차가 출입할 수 있도록 문지방을 빼고 끼울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문지방이 없는 상태이다.
돈화문은 높디 높은 기단 위에 건축되어 궁궐 건축의 위엄을 한껏 자랑하였다.
그 정문은 원래 넓은 돌계단이 있는 장대석 기단위에 지어진 것이다.
일제는 창덕궁에서 종묘로 흐르는 지맥선을 끊기 위해 오늘날의 안국로를 만든다.
그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에 거듭된 도로 포장으로 기단부가 아스팔트 밑에 덮여버렸다.
그러나 이 돈화문 석계는 1996년 발굴 복원 작업으로 어색하나마 제 모습을 찾았다.
돈화문의 이름은 중용(中庸)의 '대덕돈화(大德敦化)'에서 취한 것이다.
이는'교화를 도탑게 한다'는 뜻이다. 2층에 걸려있는 돈화문의 현판은 영조의 친필로 알려져 있으나 불확실하다.
조선 궁궐의 정문 이름에는 꼭 화(化)자가 들어가 있다. 화는 될화(化)로 교화(敎化)를 의미한다.
이는 조선의 정치이념인 유교에서 유래됐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하늘의 뜻에 따라 백성을 가르키고 풍속을 교화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허균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왕궁 정문 이름은 당시 우리 왕궁에서 추구하는 내용을 상징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우리의 옛 전통건축물들은그 이름을 지을 때는 미래에 닥쳐올지 모를 화(禍)를 피하기 위한 방책으로 음양오행을
따져 지은 것이 많다. 5대 궁궐의 정문은 창경궁 홍화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쪽 방향이다.
남(南)은 음양오행상으로 화(火)로 불에 해당된다.궁궐의 정문 이름에 남쪽을 의미하는 화(火)를 넣어야 한다.
불은 목조건축물에는 상극이다. 뜻은 다르지만 음이 같은 화(化-될화 )를 화(火-불화) 대신으로 대체하였다고 한다.
경복궁은 광화문(光化門) 창덕궁은 돈화문(敦化門) 창경궁은 홍화문(弘化門) 경희궁은 흥화문(興化門)
경운궁은 인화문(仁化門)으로 모두 될 화(化)이다. 화(化)는 "교화하다, 덕화하다"로 해석한다.
그 화(化)는 "무지한 백성을 교화시킨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원래 화(化)는 교화를 뜻한다.
"교육시켜서 순화시킨다."는 일반적인 의미를 지닌 교화이다. 궁궐 정문에 있는 화는 약간 다른 해석을 가능케 한다.
전통시대에서는 만백성을 군주가 다스리면서 스스로를 경계하고 또 백성을 가르친다는 뜻이라고 한다.
군주 자신이 먼저 교화하고 백성을 가르치라는 군주에게 하는 교훈이 강하다는 것이다.
유교정치에서 임금은 온 백성을 교화하는 스승과 같은 존재였다. 왕의 덕목인 인(仁)을 바탕으로 백성들을 교화하고
덕화해야 한다는 교훈이 담겨있다. 그래서 광(光-빛나게) 돈(敦-도탑게) 홍(弘-널리) 흥(興-일어나게)
인(仁-어질게)한다는 뜻이 5대 정문 이름에 들어있다.
돈화문은 중층구조로 되어 있어 1층에 2층으로 올라가는 층계가 마련되어 있다.
곧장 오르는 것이 아니라 한번 꺾어져 오르게 되어 있다. 유사시 수비병이 활동하는 공간으로
평상시에는 종루를 비롯한 여러 공간으로 사용되도록 배려하였다.
영조는 왕궁의 정문을 정치공간으로 자주 활용하였다.
영조는 돈화문 2층 문루에 올라 이인좌의 난을 진압하면서 장수로부터 적장의 머리를
임금에게 바치는 헌괵례를 받았다고 한다. 이 행사를 치르면서 서울에 사는 노인들을 초청하여
이들을 위로하였다고 한다. 영조는 한때 이곳 돈화문 2층 문루에 올라 탄일 하례를 받고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영조는 창경궁의 정문 홍화문 앞에서 균역법이라는 세금 법을 시행하려고 할 때
신하들이 반대하자 여기에 모인 시전상인들에게 직접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가 쌀을 나눠준 곳도 홍화문이라고 한다.
그에게 궁궐의 정문은 그의 위민(爲民) 애민(愛民) 정치 이념을 실현 확인하는 곳이었다.
그에게는 돈화문은 백성들과의 또 하나의 소통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돈화문은 3칸으로 문을 구성한다는 일반적 통념을 깨고 정면 5칸으로 구성되었다.
우리나라 궁궐의 대문 가운데 정면이 5칸에 이르는 문은 돈화문 밖에 없다.
하지만 좌우측 한 칸씩은 벽으로 구성되어 있어 실질적으로 문의 기능을 하는 것은 3칸이다.
육중한 석축을 쌓아 만든 경복궁 광화문과는 달리 석축없이 소박한 목조 2층 건물이다.
위층에서는 가운데 고주(高柱)를 생략하여 공간을 넓게 해 수문 기능에 편리하도록 했다.
전체기둥은 전후측면에 12개의 평주(平柱)를 세웠고 중앙에 4개의 고주가 있으며
상층에 12개의 병렬주와 2개의 고주가 세워졌다. 공포는 상하층이 모두 내3출목, 외2출목이다.
천장은 1층은 우물천장으로 짜고 꽃무늬 단청으로 채색하였고 2층은 연등천장으로 마무리하였다.
상층마루는 청마루로 구성하여 같은 시기의 창경궁 홍화문과는 동일하지만
숭례문의 우물마루와는 다르다. 또한 오르내리는 계단을 끝칸에 마련하였다.
이는 홍화문의 수법과는 다르다.
겹처마지붕으로써 지붕마루는 양성을 하고 용두와 잡상을 배치하였으며 끝에는 취두를 올렸고 사래 끝에는
토수를 끼웠다. 그 용두위에는 일종의 홍살문 기능을 하는 삼지창이 잡상과 함께 궁궐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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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자세한 설명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