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교리는 기독교 신자의
구원지옥[8] [9] [10]천국기독교 교리에서 죄의 용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죄의 대가는 사후의 영원한 지옥벌이다.
[11][12][13] 하느님은 이러한 기쁜 사실인
복음을 예수의 행적과 삶, 그리고 이를 계승한 교회,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온 세상에 전파되도록 하였다.
믿고 따른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한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는 것을 고백하고, 이 믿음을 통해서 죄악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회개의 삶을 실천해야만 한다. 하느님이 우리를 구원하심을 믿고, 하느님이 성경과 교리를 통해 명령한 계명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면 그 하느님의 은총(=예수님의 도움, 성령의 작용)에 힘입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새 삶을 살아갈 은총의 원동력을 얻게 되며, 이를 통해 현세에서는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늘의 기쁨을 누리고, 사후에는 지옥행을 면하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14]또한, 단순히 믿음 이후의 삶 뿐만 아니라, 인간이 기독교의 믿음을 가지게 되는 시작, 즉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하는 과정 역시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이다.
[15]이어서, 하느님이 성경과 교리를 통해 명령한 계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서로 사랑하라"이다. 이는 물론 절대 에로스적 사랑이 아니라, 정신적, 온정적인 박애정신인
아가페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16]단, 여기서 정말 조심해야 할 점이 있는데 기독교적 사랑이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위치에 있던지, 어떤 행동을 하던지간에 무작정, 무제한적인 관용을 베푸는 식의 사랑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죄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나 죄를 짓고 다니면서도 양심이 무뎌져버려 그것이 죄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고 하자. 이 경우에 '사랑'이나 기독교 외적인 세속적 가치관을 내세워 이들의 죄의 상태를 침묵하거나 죄인들의 죄짓는 행위를 묵인/옹호하는 것은 절대로 사랑이 아니라는 뜻이다. 진정 기독교적 사랑을 실천하는 신자라면, 그것이 죄라는 것을 보편적 교리에 입각하여 지적하고, 또한 죄인들을 죄에서 벗어나게끔 기도하고, 실제적으로도 도와주는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또, 선행과 사랑의 강조는 인간의 노력을 통한 사랑의 실천만으로 온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인류는 여전히 원죄를 갖고 태어나며, 스스로 온전히 의롭고 선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과 도움 없이 인간의 노력(선행이라거나, 이웃사랑이라거나)
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다. 죄있는 인간은 하느님앞에 한없이 겸손해야 하며, 스스로 약하고 모자람을 인정하고, 믿음과 교리를 반드시 받아들여 하느님 뜻에 맞는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상술했듯이 믿음과 교리를 따르는 삶, 그리고 사랑의 가르침 자체가 하느님의 자비, 은총이자 도움이다.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이 기독교의 가르침이라면서, 믿음과 구원을 등한시하는 그리스도인은 역시 예수와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이다.
한 편, 기독교는 2000년이나 되는 긴 역사 동안 무수한 분파들이 갈라져 나옴에 따라 현재는 2만 개(...)나 되는 흠좀무한 수의 교파들
[17]이 주요 교리는 이를 총 12개의 신조로 요약한
사도신경, 그리고 그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이 교리들을
믿을 교리(신덕 도리)라고 해서, 구원을 위하여 필수적으로 믿고 고백하여야 하는 요소로 본다. 대다수 주류 개신교단도 마찬가지. 다만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방식이나,
사도전승 문제
[19]반면
개신교에서는 이러한 교도권 중심의 성경 해석이 성경적으로 매우 잘못된 것이며
마태오 복음서이단또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서로 사랑하라는
아가페적)계명 역시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 교리상으로는
십계명[20]또한
성경보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