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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구정기략(三龜亭記略) 掌令府君於明 弘治乙卯自永川遆歸復居豊山時 大夫人權氏年八十公朝夕視膳衣不帶宅之東有舊亭俯橄長郊平挹洛水景物無比公 장령부군어명 홍치을묘자영천체귀복거풍산시 대부인권씨년팔십공조석시선의불대택지동유구정부감장교평읍낙수경물무비공 一日登望曰是我奉親之所今親老不樂後雖有華屋列鼎徒悔恨無窮也然茅茨不稱又狹小難居以書告伯氏永銓曰是吾志也與其費助之 일일등망왈시아봉친지소금친노불낙후수유화옥열정도회한무궁야연모자불칭우협소난거이서고백씨영전왈시오지야여기비조지 乃大闢營治極華彩閎敞名三龜亭畔有三席如龜而物之壽者莫如龜以寓壽親之義循溪以南多植柳又於閒曠地種栗千餘樹每良辰佳節 내대벽영치극화채굉창명삼구정반유삼석여구이물지수자막여구이우수친지의순계이남다식유우어한광지종율천여수매양진가절 以板輿扶侍大夫人日以游賞爲樂諸伯氏仲氏姉妹耆舊皆從烹羊炰鮮擊鼓鳴琴迭起爲壽鄕黨榮之道路過者皆瞻仰咨嗟叅判金克儉爲 이판여부시대부인일이유상위락제백씨중씨자매기구개종팽양포선격고명금질기위수향당영지도로과자개첨앙자차참판김극검위 府使聞而美之時登亭獻壽畢歌詠其事以頌之虛白堂成俔作記他一代名流題板俱在英宗丙辰道伯閔應洙使佐幕卑謙改葺巢公信謙爲 부사문이미지시등정헌수필가영기사이송지허백당성현작기타일대명유제판구재영종병진도백민응수사좌막비겸개즙소공신겸위 重修記癸未後孫宇淳又修補 중수기계미후손우순우수보 《苟全公13世孫 金 台東 옮겨씀》 |
삼구정기략(三龜亭記略)
장령부군(掌令府君)이 명홍치을묘(明弘治乙卯)에 영천(永川)에서 체귀(遆歸)하여 다시 풍산(豊山)에 살으시니
때에 대부인(大夫人) 권씨(權氏) 연세팔십여세라.
공(公)이 조석으로 문안함에 옷의 띠를 풀지 않으셨다.
집 동쪽에 구정(舊亭)이 있어 장교(長郊)를 부감(俯瞰)하고 낙수(洛水)를 평읍(平挹)하여 경물(景物)이 비할데 없다.
공(公)이 어느날 올라 바라보고 말하기를 이는 내 봉친(奉親)할 곳이라 지금 친노(親老)한데 즐기지 않으면 뒤에 비록
화옥(華屋)과 열정(列鼎)이 있어도 한갓 길이 회한(悔恨)할 것이다.
그러나 초가 집이 맞지 않고 또 좁아 들어 앉기 어렵다 하고 서고(書告)함에 백씨 영전(永銓)말하기를 이는 내
뜻이라 하고 비용을 보내 도우니 이에 크게 터를 닦고 집을 지음에 화려하고 통창하여 이름을 삼구(三龜)라 하니
정자 옆에 세개의 돌이 거북 같고 물건의 수(壽)하는 것이 거북만 같은 것이 없어 수친(壽親)하는 뜻을 붙이다.
남쪽으로 시내를 따라 버들을 많이 심고 또 빈땅에 밤나무 천여주를 심으며 매양 명절에 가마로 대부인을 모시고
유상(遊賞)하는 것으로 낙(樂)을 삼으니 여러 백씨(伯氏)중씨(仲氏)자매(姉妹)기구(耆舊)가 모두 좇아 어육(魚肉)으로
음식을 만들고 북과 거문고를 치며 번갈아 일어나서 헌수(獻壽)하니 향리에서 영광스럽게 여기고 길 지나는 이 모두
우러러 보고 감탄하였다.
참판(叅判)김극검(金克儉)이 부사(府使)일때 소문을 듣고 아름답게 여기어 정자에 올라 헌수하고,
그 일을 가영(歌詠)하여 송축(頌祝)하였다.
허백당(虛白堂)성현(成俔)이 기문(記文)을 짓고 그 밖에 일대의 명류(名流)들의 제판(題板)이 모두 있다.
영조(英祖)병진(丙辰)에 도백(道伯)민응수(閔應洙)가 좌막비겸(佐幕卑謙)으로 하여금 개즙(改葺)케 하고
회소공(檜巢公:신겸(信謙)이 중수기(重修記:二記는 많아 다 적지 못함)를 짓고 계미(癸未)에 후손(後孫)우순(宇淳)이
또 수보(修補)하고 광복후(光復後) 무자(戊子)에 또 중수(重修)하다.
《苟全公13世孫 金 台東 옮겨씀》
삼구정기(三龜亭記) 上舍金世卿氏(掌令公甥姪)以其鄕豊山縣三龜亭之狀求記於余謹按豊山爲安東府屬縣西五里許有村曰金山村東二十步許有峰曰 상사김세경씨(장령공생질)이기향풍산현삼구정지장구기어여근안풍산위안동부속현서오리허유촌왈금산촌동이십보허유봉왈 東吳其高僅六十丈亭跨峰頭西南皆鉅野厥勢敞豁眺望無際南有大川曰曲江卽洛水也有潭曰馬螺潭上絶壁贔屭高可萬丈江上長林 동오기고근육십장정과봉두서남개거야궐세창활조망무제남유대천왈곡강즉낙수야유담왈마라담상절벽비희고가만장강상장림 連亘十里餘亭北又有山曰鶴駕有雙溪出自山間來入于洛其會水處爲屛潭或稱花川其峰又有石壁千餘丈曰屛壁雙溪北有奇岩曰 연긍십리여정북우유산왈학가유쌍계출자산간래입우낙기회수처위병담혹칭화천기봉우유석벽천여장왈병벽쌍계북유기암왈 鵬岩溪兩傍有栗樹千餘株層翠分敷亭下有稻塍麥隴春則綠髮丰茸秋則黃雲䆉稏眞奇勝之地也花山爲金氏本貫金爲朝中巨閥而其 붕암계양방유율수천여주층취분부정하유도승맥롱춘칙록발봉용추칙황운파아진기승지지야화산위김씨본관김위조중거벌이기 外祖權相國齊平公有盛名於朝廷權氏卽其女也年八十有八其子永錘永銖等皆爲近邑守令極其奉養又搆此亭以爲晨夕遊憩之所亭 외조권상국제평공유성명어조정권씨즉기녀야년팔십유팔기자영추영수등개위근읍수령극기봉양우구차정이위신석유게지소정 基有三石形如伏龜故以三龜名之每當良辰吉日扶輿升亭萊衣彩服輝暎前後滿庭蘭玉森森列侍萱闈含飴而豫其爲樂可勝旣哉大抵 기유삼석형여복구고이삼구명지매당양진길일부여승정래의채복휘영전후만정난옥삼삼열시훤위함이이예기위락가승기재대저 世人有其居不得其勝有其勝不得其樂而今則地得其勝人得其賢親又得其壽衆美俱備豈非積善毓慶之所致夫生之壽者莫如龜物之 세인유기거부득기승유기승부득기락이금칙지득기승인득기현친우득기수중미구비개비적선육경지소치부생지수자막여구물지 固者莫如石子之欲親之壽如龜之永如石之固人人之所願者自玆以後至于曾玄自曾玄至于仍雲之遠使各奉其親如今之所爲世世而 고자막여석자지욕친지수여구지영여석지고인인지소원자자자이후지우증현자증현지우잉운지원사각봉기친여금지소위세세이 勿替則鄕爲壽鄕人爲壽民而當留美於靑史矣若余者雖有桑梓微區而縛於名韁無由退老而且靈根已邈具爾多喪雖有五鼎之榮而欲 물체칙향위수향인위수민이당유미어청사의약여자수유상재미구이박어명강무유퇴노이차영근이막구이다상수유오정지영이욕 爲子路之負米終不可得則尤羡夫金氏之諸賢能奉其親而娛樂之也 위자로지부미종불가득칙우이부김씨지제현능봉기친이오락지야 《苟全公13世孫 金 台東 옮겨씀》 |
삼구정기(三龜亭記) 용재 성현
상사(上舍)김세경(金掌令,생질)씨가 그의 고향인 풍산현의 삼구정기를 써 달라고 나에게 부탁 하길래 삼가 살펴 보니
풍산은 안동부에 속한 고을로 서쪽으로 오리 되는 곳에 금산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마을 동편 이십보 되는 곳에
동오봉(東吳峰)이라 하는 봉우리가 있으니 그 높이는 겨우 육십길이다.
정자는 그 봉우리의 정상에 걸터 앉은 듯이 자리잡고 서남쪽은 모두 넓은 들판이라 그 형세가 탁 튀어 시원스럽고 시야는
끝이 없으며 남쪽에는 큰 내가 있어 곡강(曲江)이라 부르니 바로 낙동강이다.
마라라는 소가 있는데 소 위에는 높이가 만 길이나 되는 절벽이 힘차게 솟아 있고 강가에는 큰 나무들이 십여리에 걸쳐
이어져 있다.
정자 북쪽에는 또 학가산이라는 산이 있으며 그 산에서부터 한 쌍의 냇물이 발원하여 낙동강에 흘러 들어가는데
그 물이 만나는 곳이 병담으로 혹 화천이라 부르기도 하며 그 봉우리에 천여길이나 되는 절벽이 있으니 병벽이라 한다.
한쌍의 냇물 북쪽에는 붕암이라 하는 기암이 있고 내 양옆에는 밤나무 천여그루가 있어 푸르름이 겹겹이 펼쳐저 있다.
정자 아래는 논과 밭이 있어 봄이면 푸르름이 무성하고 가을이면 누렇게 익은 벼가 바람에 출렁이니 참으로 경치가
뛰어나게 아름다운 곳이다.
화산(안동의 옛 이름)은 김씨 본관이며 김씨는 이 나라의 큰 문벌로 그 외조 재상 제평 권공은 조정에서 훌륭한
명망이있는 분으로 권씨는 바로 그분의 따님이시다.
춘추 팔십팔세로 아들 영전,영추,영수 등은 모두 가까운 고을의 수령으로 어버이를 받들어 모시기를 지극히 하였으며
또 이 정자를 지어 아침 저녁으로 편히 쉬게 하는 장소로 하였다.
정자 터에 세개의 돌이 있는데 그 형상이 마치 엎드린 거북과 같아 삼구정이라 이름 지었으며 좋은 시절을 맞을 때 마다
가마를 부축하여 정자에 올라 오색의 고운 색동옷이 앞뒤에서 밝게 비추며 많은 자제들이 뜰을 가득 메우고 빽빽히
열지어 모시니 어머님께서는 마음편히 소일하며 기뻐하시니 그 즐거워 하심이 이 보다 더 할 수 있겠는가.
무릇 세인들은 삶에 아름다울수만은 없고 아름다운 삶이라도 즐거울수만은 없으나,
이제 땅은 명승지요 자식들은 어질고 어버이는 또 장수하시어 모든 아름다움을 두루 갖추었으니 어찌 선조들께서
선을 쌓으시어 복을 기르신 때문이 아니겠는가.
생물의 장수함이 거북 만한 것이 없고 사물의 견고함이 돌 만한 것이 없으니 자식들이 어버이의 수가 거북과 같이 길고
돌과 같이 견고케 하고자 함은 사람마다의 소원이다.
이로부터 이후 증,현손까지 증,현손부터 잉,운손의 먼 후손까지 각자로 하여금 그 어버이를 지봉양(之奉養)함이
지금과 같이 행하여 대대로 쇠퇴하지 않는다면 마을은 장수 마을이 될것이요,
사람들은 모두 장수하게 되어 마땅히 청사에 아름다움을 남길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비록 고향은 있으나 미구하여 명예의 고삐에 얽매여 곡절없이 늙어서 관직에서 물러나니 몸은 이미
늙었고 많은 것을 잃었으니 비록 호사스러운 영화는 있었으나 자로와 같이 가난 속에서도 정성껏 어버이를 봉양하는
효는 끝내 얻지 못했으니 김씨 제현이 그 어버이를 봉양하며 즐겁게 지낼 수 있음을 더욱 부러워 하는 바이다.
(註)
*곡강(曲江):낙동강의 옛 이름,이때는 낙동강이 동오봉(東吳峰)앞을 흘렀다.
*삼구정(三龜亭):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동오봉(東吳峰)에 있는 정자.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지낸
김영수(金 永 銖)가 영천군수(永川郡守)에서 물러나 있을 때 어머니 예천권씨(醴泉權氏)를
봉양하기 위하여 백씨 영전(伯氏永 銓)과 협의하여 이 정자를 짓다.
*화산(花山):안동의 옛 지명(고창(古昌),영가(永嘉),복주(福州)등.
*자로지부미(子路之負米):자로는 집이 가난하여 매일 백리의 먼곳에서 쌀을 져 날라주고
그 임금으로 어버이를 봉양한 고사공자가어(孔子家語)
삼구정중수기(三龜亭重修記) 김신겸(金信謙) 三龜亭之爲金氏有殆十世中經補釐而比又益弊外內宗人圖所以重修焉使卑謙董其事而方伯閔公應洙亦爲之助以訖于成榱瓦丹黝 삼구정지위김씨유태십세중경보리이비우익폐외내종인도소이중수언사비겸동기사이방백민공응수역위지조이흘우성최와단유 煥然增新始亭茅茨而卑掌令公兄弟爲崇奉大夫人改以華構寔在於嘉靖丙辰距今爲二百四十年而又値丙辰於是宗人相與俯仰感歎 환연증신시정모자이비장령공형제위숭봉대부인개이화구식재어가정병진거금위이백사십년이우치병진어시종인상여부앙감탄 而未有能以圭紱斑衣淳熬香醴壽親而追先孝則大懼不振爲亭之羞又懼其或廢屬信謙爲記證往而諗後凡物之守力莫如德德莫如孝 이미유능이규불반의순오향례수친이추선효즉대구불진위정지수우구기혹폐속신겸위기증왕이심후범물지수역막여덕덕막여효 孝者德之本也故非傳之之難承之難非承之之難承之以孝之爲尤難或有德不足以傳未有孝而至不能者也周之靈臺漢之長樂唐之九 효자덕지본야고비전지지난승지난비승지지난승지이효지위우난혹유덕부족이전미유효이지불능자야주지영대한지장락당지구 成非德之不純力之不全且盛也不能使其後無失者承之不以孝也况下於此者乎彼潘居庾宅輞水平泉初不以德而傳則宜其不數世失 성비덕지불순력지불전차성야불능사기후무실자승지불이효야황하어차자호피반거유택망수평천초불이덕이전칙의기불수세실 然承之以孝雖至今存可也盖我先德自太師以來培本旣厚又亭之設實由壽親而不徒取山川之美花石之玩則其傳雖固異於昔人而抑 연승지이효수지금존가야개아선덕자태사이래배본기후우정지설실유수친이불도취산천지미화석지완칙기전수고이어석인이억 久而猶新者後承之賢也雖然徒知承之以孝而不講爲孝之道則亦有時而廢可不懼哉夫孝始於修身中於事君終於顯親三者孝之綱也 구이유신자후승지현야수연도지승지이효이불강위효지도칙역유시이폐가불구재부효시어수신중어사군종어현친삼자효지강야 二宰三王之治六經四書之訓岡不以此爲本而必使之明於道則三者皆苟往往自以爲主悖德而違義者不勝其多是故溱漢以降或能於 이재삼왕지치육경사서지훈강불이차위본이필사지명어도칙삼자개구왕왕자이위주패덕이위의자불승기다시고진한이강혹능어 親而不能於君惑能於君而不能於親此皆道不明而偏用氣質之害若王祥之贊易溫嶠之絶裾是也其事雖殊同歸於滅倫而得罪名敎安 친이불능어군혹능어군이불능어친차개도불명이편용기질지해약왕상지찬역온교지절거시야기사수수동귀어멸륜이득죄명교안 在其顯親也若是者雖日用三牲之養歲薦千戶之享非吾所謂孝此君子所以急於求道而不可一日不講也苟能爾修身其於親而盡其 재기현친야약시자수일용삼생지양세천천호지향비오소위효차군자소이급어구도이불가일일불강야구능이도수신기어친이진기 愛敬而獲其樂矣不待夫文繡甘脆而縕袍疏糲亦可以爲養則行禮具鄕黨悅腹而私妻子好醜爭者亦感於善又出而事君則不比於朋淫 애경이획기낙의부대부문수감취이온포소려역가이위양칙행례구향당열복이사처자호추쟁자역감어선우출이사군칙불비어붕음 不屈於勢利竭忠匡翼而澤及生民功光祖宗不幸遇難亦必仗節而殉國名烈耀于日月其爲顯親孰大於此今不以三者之不講爲羞而徒 불굴어세리갈충광익이택급생민공광조종불행우난역필장절이순국명열요우일월기위현친숙대어차금불이삼자지불강위수이도 祖爵祿之養卽非所以承之以孝而無忝於先德也况講於道者益明則行於躬者益篤其化自家而鄕自鄕而州自州而國爵祿其有不至者 조작록지양즉비소이승지이효이무첨어선덕야황강어도자익명칙행어궁자익독기화자가이향자향이주자주이국작록기유불지자 乎夫然後列鼎稱觴以極娛親方可謂善述而一國之合慶百世之取法皆歸於斯亭雖欲廢之得乎凡我同宗君子惟懼本之不立毋懼亭之 호부연후열정칭상이극오친방가위선술이일국지합경백세지취법개귀어사정수욕폐지득호범아동종군자유구본지불립무구정지 不修余言否者請用三龜而質焉 불수여언부자청용삼구이질언 (崇禎紀元後再丙辰 仲冬下澣 八代孫 信謙 謹記) 숭정기원후재병진 중동하한 팔대손 신겸 근기 《苟全公13世孫 金 台東 옮겨씀》 |
삼구정중수기(三龜亭重修記) 김신겸(金信謙)
삼구정이 김씨들을 위해 있은지가 거의 십세나 되어 중도에 보수를 하였으나 근래 더욱 피폐하여 내외 종인이 중수하기로
계획하여 아우 비겸으로 하여금 그 일을 감독케 하고 지방수령 민용수 또한 협조를 해서 공사를 마치니 서까래와 기와는
붉고 검푸르게 칠하여 훌륭한 새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맨처음 정자는 띠로 지붕을 이어 보잘 것 없었기에 장령공 형제께서 대부인을 잘 봉양하시기 위하여 번듯하게 고치시니
이때가 명 가정 병진년(1556년)으로 지금으로부터 이백사십년 전이다.
또 다시 병진년을 맞아 자반과 향기나는 술로서 능히 어버이를 장수하시게 할 수는 없는지라 선조들의 효를 생각하니
크나큰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없구나.
정자의 모습이 부끄럽고 또 혹시나 넘어질까 두렵도다.
마침 나 신겸에게 중수기를 쓰라고 하길래 지난 일들을 증거로 하여 후일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모든 사물의 지킴에 힘은 덕만 못하고 덕은 효만 못하며 효는 덕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전하는게 어려운게 아니라 계승 하는 것이 어렵고 계승하는 것이 어려운게 아니라 효로써 계승하는 것이
더욱더 여렵다.
덕이 부족하면서 전할 수는 혹 있으나 효가 지극하면서 능히 계승하지 못하는자는 있지 않다.
주(周)의 영대 한(漢)의 장락궁 당(唐)의 구성궁 등은 덕이 두텁지 않고 힘이 전성(全盛)하지 않아서도 아닌데
그 후손들로 하여금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은 효로써 계승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하물며 이들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아야?
저 반거유택(潘居庾宅)과 망수평천(輞水平泉)은 처음에 덕으로 전하지 않았으니 몇세가 않되어 없어짐은 당연하다.
그러나 효로써 계승하였다면 오늘날까지 보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나의 덕이 많으신 선조들께서는 태사공 이래로 근본을 기르심이 이미 두터우셨고 또 정자의 세움은 실로 어버이의
장수하심을 그 까닭으로 하였지 산천의 아름다움과 자연을 완상함을 헛되이 취한 것이 아니였으니 그 전함이 옛 사람과
진실로 다르며 오래 되었는데도 오히려 새로워 보이는 것은 후손들의 계승함이 현명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효로써 계승하는 것만을 헛되이 알고 효가 되는 도를 익히지 않으면 때로는 그만두게 될 것이니
두렵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저 효란 자신의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는데서 시작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임금을 섬기며 종국에는 입신양명하여
어버이를 드러나게 하는데 있나니 이 세 가지는 효의 근간이다.
二帝와 三王의 다스림과 六經과 四書의 가르침은 이를 근본으로 삼지 않은 것이 없은니 반듯이 도에 밝아야 할 것이다.
도에 밝지 않으면 세 가지가 모두 진실하다 하드라도 왕왕 자신을 위주로 하여 도리에 어그러지고 법도에 어긋난 자가
많아짐을 막을 수가 없다.
따라서 진(溱)(漢)이후 어버이에게는 잘하나 임금에게는 잘하지 못하고 임금에게는 잘하나 어버이에게는 잘하지 못하는
일이 혹 있었으니 이는 모두가 도가 밝지 못하면서 기질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쓴 병폐인 것이다.
왕상지찬역(王祥之贊易)과 온교지절거(溫嶠之絶裾)같은 것이 이런 예이다.
이 사실들은 비록 서로 다른 일이지만 오륜을 훼손 시킴에는 똑같이 귀착하여 인륜도덕에 관한 가르침에 죄를 짓게되니
어찌 그 어버이를 드러나게 했겠는가.
이런 자라면 날마다 맛난 음식으로 어버이를 봉양하고 해마다 천호나 사는 넓은 땅을 소유한 제후의 누림을 바치드라도
이는 내가 말하는 효가 아니니 이는 군자(君子)가 도를 구함을 급히 하여 하루라도 익히지 않으면 않되는 까닭이다.
진실로 도(道)로서 수신(修身)을 잘하여 어버이에게 사랑과 공경을 다 한다면 즐거움을 얻게 되어
무늬가 있는 좋은 옷과 맛있고 연한 고기를 준비하지 않고 빈천한 사람이 입는 거친 옷과 채소와 현미로 지은
거친 밥으로도 능히 봉양할 수 있게 되어 행함이 이루어지고 예가 갖추어져서 온 마을이 기쁜 마음으로 따르게 되며
처자식을 사사로이 여기고 다투기를 좋아하는 자 또한 선하게 감응 될것이다.
또 벼슬길에 나아가 임금을 섬김에 있어서는 떼지어 음탕한 짓을 하는 무리들에 물들지 않고 위세와 이로움에
비굴하지 않으며 충성을 다하여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올바르게 보필해서 은택이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그 공은 조상님을 빛나게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나라의 어려움을 맞아서는 절의로 순국하시니 그 이름의 영예로움이 해와 달보다 더 빛나 어버이를
드러나게 하심이 무엇이 이보다 더 크겠는가.
이제 이 세 가지를 익히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단지 녹봉으로서 어버이를 봉양한다면 효로써 계승하는 것이
아니니 덕이 많으신 조상님들께 욕됨이 없게 하여야 할 것이다.
이에 도를 익힌 것이 더욱 밝아 진다면 몸소 행함이 더욱 돈독해 져서 그 교화가 가정에서 향리로 향리에서 고을로
고을에서 나라로 미치어 벼슬길에 나가지 않은 자 있겠는가.
그런 연후 성찬과 좋은 술로 어버이를 지극히 즐겁게 한다면 선조의 뜻을 잘 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모든 경사스러움과 백세의 본보기가 모두 이 정자로 돌아오게 될 것이니 비록 그만두려 한들 그럴 수 있겠는가.
모든 우리 종인들은 오직 근본이 서지 않을까 두려워할뿐 정자를 수리하지 못함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 말을 부인하는 자는 세 거북에게 물어보기 바란다.
1796년11월하순 팔대손 신겸 삼가쓰다.
중건삼구정기(보)重建三龜亭記(補) 김영한(金甯漢) 豊山之埜有亭焉占高明之位兼泓崢之美寔嶺左之名勝也燕山元年乙卯先祖掌令府君解永川紱而歸時大夫人在堂而春秋八十有七 풍산지야유정언점고명지위겸홍쟁지미식령좌지명승야연산원년을묘선조장령부군해영천불이귀시대부인재당이춘추팔십유칠 府君知年愛日喜與惧幷告于仲氏監察公迺築斯亭爲悅親之所而亭下有石如龜形者三取以名之曰三龜暗合乎晦翁壽母詩願祥龜蓮 부군지년애일희여구병고우중씨감찰공내축사정위열친지소이정하유석여구형자삼취이명지왈삼구암합호회옹수모시원상구연 之意也良辰吉日潔腆治羞子姓咸萃奉板輿登斯亭絲竹迭奏醆斝序行以獻無疆之祝於是播于鄕誌于邑流傳于前輩之記詠矣間嘗重 지의야양진길일결전치수자성함췌봉판여등사정사죽질주잔가서행이헌무강지축어시파우향지우읍유전우전배지기영의간상중 修而歲久將頹今年春後孫相東謨于諸宗幸勤摒擋而重建之以存舊貌俾甯也記其實竊觀家傳文獻府君事親之道盡其天性甘膬輕煖 수이세구장퇴금년춘후손상동모우제종행근병당이중건지이존구모비녕야기기실절관가전문헌부군사친지도진기천성감취경난 以養其體怡愉洞屬以承其志居官任職忠臣勤儉以顯其名無一事不出於孝而已凡爲府君苗裔者盍思所以繼述乎鳴呼孰無父母孰無 이양기체이유동속이승기지거관임직충신근검이현기명무일사불출어효이이범위부군묘예자합사소이계술호명호숙무부모숙무 恒性事父母當孝人皆知之而能知養志之爲先者鮮矣所居者凉臺燠室所供者三牲五鼎而聲色辭氣之間少有所咈焉親心不悅是可謂 항성사부모당효인개지지이능지양지지위선자선의소거자량대욱실소공자삼생오정이성색사기지간소유소불언친심불열시가위 孝乎且貴富賤貧命也人人不侔養口體之節其何以人人相同乎雖蓬茨之是處菽水之是啜能養父母之志悅豫而和平人子之福樂豈有 효호차귀부천빈명야인인불모양구체지절기하이인인상동호수봉자지시처숙수지시철능양부모지지열예이화평인자지복락기유 過於此者歟顧今風氣大變人心不淑問寢視饌歸以疏節出而不告返而不面橫走繩墨之外或掛網羅或觸機檻使厥父母寤寐焦燥者滔 과어차자여고금풍기대변인심불숙문침시찬귀이??절출이불고반이불면횡주승묵지외혹괘망라혹촉기함사궐부모오매초조자도 滔焉噫嘻彼何人斯惟我諸宗値此之時能追慕先祖肯其堂構不墜舊規不亦善夫願諸宗勿以是自多各事其親必盡其職勿失我先祖之 도언희희피하인사유아제종치차지시능추모선조긍기당구불추구규불역선부원제종물이시자다각사기친필진기직물실아선조지 心法方可謂善繼述也然則斯亭也當閱千歲而長存吾將指石龜而爲徵 심법방가위선계술야연칙사정야당열천세이장존오장지석구이위징 (戊子 季冬 十六世孫 甯漢 謹記) 무자 계동 십육세손 영한 근기 《苟全公13世孫 金 台東 옮겨씀》 |
중건삼구정기(보)重建三龜亭記(補) 김영한(金甯漢)
풍산들에 한 정자가 있으니 높고 밝은 곳에 위치하여 깊고 맑은 물과 높고 험한 산의 아름다움을 겸비 하였으니 참으로
영남의 명승지이다.
연산조 원년 을묘년에 선조(先祖)장령부군께서 영천군수직에서 물러나 돌아오시니,
그때 집에 계신 대부인의 춘추 팔십칠세이셨으니 부군께서는 어버이의 연세를 늘 잊지 않으시고 시간이 가는 것을
아까워하며 잠시도 효양을 게을리하지 않으시면서 기쁨과 두려움을 함께 느끼셨다.
중씨 감찰공에게 고하여 비로소 이 정자를 지어 어버이를 기쁘게 해드리는 장소로 삼고 정자 아래에 거북 모양의
돌 세개가 있어 삼구정이라 이름 지으셨으니 주자(朱子)가 그의 어머니의 장수를 바라며 지어 올린 시(詩)의 내용과
우연히 일치하는 것이다.
좋은 시절 길한 날에는 정결한 많은 음식을 차려놓고 자손들이 모두 모여 대부인이 타신 가마를 받들고 이 정자에 올라
거문고와 피리를 번갈아 연주하며 술잔을 차례로 올려 만수무강 하시기를 빌었는데 이 사실이 향리에 널리 퍼지고 읍지에
기록 되었으며 또 선현들의 기문(記文)과 시가(詩歌)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간 중수를 한바 있으나 세월이 오래 흘러 무너지려하니 올봄에 후손 상동이 여러 종인과 의논하여 매우 힘들게
중건하여 옛 모습을 보존하게 되었다.
저 영한이 그 사실을 기록함에 집에 전해 내려오는 문헌을 가만히 살펴보니 부군께서 어버이를 섬기시는 도가 천성을
다하셨으니 맛있고 연한 음식과 가볍고 따뜻한 의복으로 그 육신을 봉양하고 기뻐하며 한없이 공경하는 태도로 그 뜻을
받들었으며 벼슬살이를 함에는 충성을 다하고 신의를 지키며 근검하여 세상에 명성을 드러내셨으니 어느 하나라도
효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이 없을 뿐이니 부군의 모든 후손되는 자들은 조상이 남기신 뜻과 사업을 잇는 것을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 그누가 부모가 없으며 그 누군들 늘 변치않는 천성이 없겠는가.
부모를 섬김에는 마땅히 효성스러워야 함을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나 어버이의 뜻을 받들어 효도를 다함이 먼저인 것을
능히 아는 자는 드물다.
거처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바치는 것은 정성을 다하여 만든 많은 맛난 음식이라도 언어와 태도에
조금이라도 사리에 어긋남이 있으면 어버이의 마음은 기쁘지 않으시니 이를 효라 할 수 있겠는가.
또 부귀와 천빈(賤貧)은 운명으로 사람마다 동일하지 않은 것이니 육신을 봉양하는 범절로 어찌 사람마다 서로 같겠는가.
비록 쑥대로 지붕을 인 이곳에서 콩을 먹고 물을 마시는 가난한 처지에도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참된 효도를 하며
기쁨과 즐거움 속에 화평하니 사람의 복과 즐거움이 어찌 이보다 더할 수 있겠는가.
생각컨데 지금은 풍습이 크게 변하고 인심이 선량하지 못해 조석으로 어버이의 잠자리를 문안 드리고 반찬을 살펴
보기를 소홀히 하고 줄이며 외출할 때나 돌아와서는 부모님께 아뢰지 아니하며 법도를 벗어난 바르지 못한 길로 가서
혹 법망에 걸리기도 하고 혹은 남의 함정에 빠지기도 해서 그 부모로 하여금 자나 깨나 초조한 마음 한없게 하니
아! 어찌 사람이라 하리.오로지 우리 종인들은 이런 때를 만나도 선조를 잘 추모하여 그분들의 유업을 계승 성취하여
옛 훈계를 무너뜨리지 않으니 또한 착하지 아니한가.
원컨데 우리 종인들은 이런 것들이 남보다 낫다고 여기지 말고 각자 그 어버이를 모심에 반드시 직분을 다해서 본심을
잃지 않고 타고난 착한 성품을 기르고 마음의 씀씀이를 성찰하시던 선조의 도를 잃지 말아야 선조의 남기신 뜻과 사업을
잘 이어간다고 이를만한 것이다.
그래야만 이 정자도 마땅히 천년이 지나도록 오래 보존될 것이니 내 거북도 모양의 돌을가리켜 그 증거로 삼으리라.
무자년 십이월 십육세손 영한 삼가 쓰다
제삼구정 (병서) 題三龜亭 (幷書) 김극검(金克儉) 豊山縣西五里許松江之麓繼崖之上有新構華亭其名曰三龜亭何以名三龜亭之基有三石如龜也亭何以作如禮縣監金永銓密陽府使永錘 풍산현서오리허송강지록계애지상유신구화정기명왈삼구정하이명삼구정지기유삼석여구야정하이작여예현감김영전밀양부사영추 永川郡守永銖等三兄弟爲大夫人遊衍之所而作也夫人曰誰卒藝文大提學諡薺平公權孟孫之女漢城判官係權之室也夫人賦性明淑又承 영천군수영수등삼형제위대부인유연지소이작야부인왈수졸예문대제학시제평공권맹손지녀한성판관계권지실야부인부성명숙우승 家庭之訓爰自髫稚仁孝夙著及配判官生五男六女仰事俯敎皆有其法中遭否運早失所天而獨享仁者之壽福祿日增芝蘭玉樹滿於庭除三 가정지훈원자초치인효숙저급배판관생오남육녀앙사부교개유기법중조부운조실소천이독향인자지수복록일증지난옥수만어정제삼 子列爲守宰各奉以一邑之富朝夕饔餼極其滋味以板輿扶侍大夫人陟玆遊賞以悅其心舊有茅茨之亭恨其卑狹無以稱孝子奉親之情乃於 자열위수재각봉이일읍지부조석옹희극기자미이판여부시대부인척자유상이열기심구유모자지정한기비협무이칭효자봉친지정내어 弘治丙辰改以華構亭凡三間而宏敞爽塏高出雲間流水抱其前遠山環其外中有沃野餠餌極目雖滁之醉翁不足過也僕忝爲邑宰數陪三友 홍치병진개이화구정범삼간이굉창상개고출운간유수포기전원산환기외중유옥야병이극목수저지취옹부족과야복첨위읍재수배삼우 登臨此亭上壽慈堂備諳其事故因三友之請序而詩之 등임차정상수자당비암기사고인삼우지청서이시지 (丙辰孟夏上澣 嘉善大夫行安東府使 金 克儉 撰) 병진맹하상한 가선대부행안동부사 김 극검 찬 《苟全公13世孫 金 台東 옮겨씀》 |
삼구정에 시를 지어 걸어두다(서문과 함께) 김극검(金克儉)
풍산현에서 서쪽으로 오리 떨어진 곳에 소나무와 강이 있는 산 기슭에 깍아지른 듯한 낭떠러지 위에 새로 지은 아름다운
정자가 있으니 삼구정이라 한다.
어째서 삼구정이라 이름지었나 하면 정자의 터에 거북 모양의 돌 세 개가 있어서이며 정자를 지은 까닭은
지례현감 김영전,밀양부사 영추,영천군수 영수 등 삼형제가 대부인께서 즐겁게 노시는 장소로 하기 위해서이다.
대부인이 누구시냐 하면 고 예문관 대제학 제평공(시호)권맹손의 따님이시며 한성판관 계권의 아내이시다.
부인께서는 천성이 명결하고 정숙하시며 또 가정의 훈계를 받들어 어릴적부터 어질고 효성스러움이 일찍이 두드러졌다.
판관공의 아내가 되어서는 오남육녀를 낳으셨고 웃어른을 우러러 모시고 아랫 사람은 굽어 가르침에 다 법도가 있으셨다.
중도에 비운을 만나 일찍이 남편을 잃었으나 어진 사람의 수를 홀로 누리셨으며 행복이 날로 증가하고 훌륭한 자제들이
뜰에 가득하였다.
세 아들은 나란히 고을 수령이 되어 각기 그 고을이 잘 살도록 하는데 힘 썼으며 아침 저녁 익힌 것과 날 것 등 맛있는
음식으로 극진히 봉양 하였으며 가마로 대부인을 모시고 이곳에 올라 즐겁게 노시게 하여 그 마음을 기쁘게 해 드렸다.
옛 정자는 띠로 지붕을 이어 비루하고 협소함이 한스럽고 효자의 어버이를 받들어 모시는 정에도 알맞지 않아
홍치 병진년에 화려하게 고치셨다.
그 앞에는 강물이 안은 듯 흐르고 그 바깥에는 먼 산이 빙둘러 있으며 그 가운데는 기름진 평야가 있어 눈앞에 보이는건
다 아름답고 고우니 비록 저주(滁州)의 취옹정도 이보다는 더 낫지 않았을 것이다.
제가 욕 되게도 고을의 수령이 되어 좋은 벗 세 사람을 모시고 이 정자에 몇번 올랐는데 자당의 장수를 비는 술잔을 올린
그 사실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으므로 세 벗의 청에 따라 서문과 시를 짓노라.
병진년시월 상순 가선대부행안동부사 김극겸 짓다.
諸子悅愉色養時 제자열유색양시 여러 자식들이 기쁜 안색으로 봉양하던 때
板輿扶持此娛嬉 판여부지차오희 어버이를 가마에 모시고 이곳에서 즐기셨네.
作亭會役三州守 작정회역삼주수 정자를 짓는데 세 고을 수령 힘을 모았고
負柱誰煩五揔龜 부주수번오총구 기둥을 지는일 오형제 누가 괴로워 하였겠나.
四野秋禾誇潁栗 사야추화과영율 온 들판의 가을 벼 여문 이삭 자랑하는데
一篙春水賞漣漪 일고춘수상연의 봄 강에 뜬 배 한척 잔잔한 물결 즐기네.
長風萬里將新月 장풍만리장신월 만리 밖 먼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초생달빛과 함께
解向樽前一倂吹 해향준전일병취 술잔 앞을 향해 불어 오는구나.
제삼구정 이락정 신용개 題三龜亭 二樂亭 申用漑
삼구정에서 시를 지어 걸어두다 이락정 신용개
當日荊花滿樹詩 당일형화만수시 형제가 많으시던 그 시절
彩衣鳧舃共歡嬉 채의부석공환희 색동옷과 관복 차려입고 다 함께 기뻐하였네
流年隙過悲風木 류년극과비풍목 흐르는 세월 너무나 빨리 지나가 어버이 효양하지 못함 슬프고
舊物神扶有石龜 구물신부유석구 옛 건물에 신의 도움으로 돌 거북 아직도 있네
天卷野光歸莽蒼 천권야광귀망창 하늘은 들빛 거두어 푸른 풀 무성한 근교로 돌아갔고
山分雲影浸淪漪 산분운영침륜의 산은 구름 그림자와 헤어져 잔잔한 물결에 잠기네
好收奇勝供筵席 호수기승공연석 빼어난 경치를 한데 모은 이곳에서 찬치 베풀어
須記塤篪伯仲吹 수기훈지백중취 형제가 우애있게 지내던 일 반드시 기억하리라
右二樂亭文景公申用漑詩後孫益彬使婿柳說更書以揭 오른쪽 글은 이락정 문경공 신 용개의 시를 후손 익빈이
우이락정문경공신용개시후손익빈사서유설경서이게 그 사위 유열로 하여금 다시 써서 걸어 두도다.
(註)
*신용개(申用漑):세조9년~중종14년.호 二樂亭,시호(諡號)문경(文景:신숙주의 손자)
사마시,문과급제,직제학,도승지 좌.우의정 당대 선비들의 중심인물.
*형화(荊花):한(漢)의 전진(田眞)삼형제가 한 그루의 형화를 나누어 갖자 마침내 말라 죽었다는 고사에서 형제는
떨어질 수 없음을 비유하여 분형(分荊)이라함.따라서 형화는 형제를 말함.
*비풍목(悲風木):풍목지비(風木之悲)로 부모님이 이미 돌아가시어 봉양할 길이 없는 자식들의 슬픔.
*훈지(塤篪):훈(塤)과 지(篪)는 피리의 일종,형은 훈을불고 아우는 지를 불어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뜻에서
형제가 서로 우애있음을 말함.
삼구정(三龜亭) 입암 유중영(立岩 柳仲郢)
遙憾當年刱建時 요감당년창건시 정자를 창건하던 아득한 그 당시
五男六女同嬉嬉 오남육녀동희희 오남 육녀가 다 같이 즐거워 하였다네
如今陳述尋無處 여금진술심무처 이제 옛 자취 찾을 곳 없지만
終古奇岩尙似龜 종고기암상사구 언제나 기암은 거북과 같구나
大野陽回生細纈 대야양회생세힐 넓은 들에 볕 다시 드니 아지랑이 아른거리고
長江冰泮漾新漪 장강빙반양신의 긴 강에 얼음 녹으니 물결 새로이 출렁이네
粉粉景物供淸賞 분분경물공청상 어지러이 펼쳐진 수많은 풍경을 맑고 째어나니
不用笙蕭聒耳吹 불용생소괄이취 귀가 따갑도록 시끄럽게 울어대는 퉁소는 쓸모 없더라
(註)
*유중영(柳仲郢):중종10년~선조6년.조선중기의 명신,호는 입암(立岩),본관은 풍산,군수 공작(公綽)의 아들,
중종때 문과에 급제,승지.황해도관찰사.경연관을 지냄.
그의 아들은 운용(雲龍:文敬公),성용(成龍:文忠公)
성용은 퇴계문하로 문과급제 관직을 두루거치고 임진란때 나라를 구한 공신(功臣)임.
삼구정팔경제목풀이(三龜亭八景題目풀이)
天啓(明熹宗)丙寅年(1626)경에 淸陰 金相公이 象村(朝鮮仁祖때領議政 諡號는文貞)
천계(명희종)병인년(1626)경에 청음 김상공이 상촌(조선인조때영의정 시호는문정)
申相公에게 要請해서 三龜亭八景을 詩로 짓게 되었음.
신상공에게 요청해서 삼구정팔경을 시로 짓게 되었음
鶴嶠晴峯 학교청봉 비 갠뒤 학가산의 맑은 봉우리
馬崖峭壁 마애초벽 마애산의 깍아지른듯 한 절벽
縣里烟花 현리연화 마을의 아름다운 봄 경치
驛洞寒松 역동한송 차가운 겨울철의 역동산 푸른 노송(老松)
長郊觀稼 장교관가 넓은 들판의 벼가 누렇게 익은 것을 보다.
曲渚打魚 곡저타어 낙동강가에서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다
三伏避署 삼복피서 무더운 삼복기간 이 정자에서 더위를 피하다
仲秋翫月 중추완월 가을철에 달을 감상하며 즐기다.
삼구정팔경(三龜亭八景) (一) 이인기(李麟奇)
獨鶴冲霄漢 독학충소한 학 한 마리 홀로 창공에 날아 올라
萬里駕長風 만리가장풍 만리 밖 먼곳에서 바람몰고 오누나
層峯如畫出 층봉여화출 수 많은 봉우리 그림 같이 솟아있고
朝日射雲杠 조일사운강 구름 사이로 비치는 아침 햇살 쭉 뻗은 깃대 같더라
학교청봉(鶴嶠晴峯)
崖開鏡面平 애개경면평 절벽은 잔잔한 수면 위에 펼쳐 있고
峽束江聲起 협속강성기 골짜기가 모인 곳엔 강물소리 이는구나
行人與飛鳥 행인여비조 행인은 나르는 새와 벗하니
皆在屛風裏 개재병풍리 이 모든 것이 병풍같이 둘러있는 절벽 속에 있더라
마애초벽(馬崖峭壁)
微茫大野東 미망대야동 아득한 넓은 들판 동쪽에
縹緲豊山縣 표묘풍산현 풍산현이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데
太平知有痕 태평지유흔 태평스러웠던 흔적 있음을 알 수 있고
烟花望中遍 연화망중편 아름다운 봄 경치 눈 앞에 가득하네
현리연화(縣里烟花)
蒼蒼萬株松 창창만주송 무성한 수많은 소나무의
翠色連雲起 취색연운기 푸른 빛은 하늘에 잇닿아 있고
幽人夜未眼 유인야미안 은자가 잠 못드는 밤이면
寒濤聞十里 한도문십리 차가운 바람소리 십리 밖까지 들리더라
역동한송(驛洞寒松)
長郊五六月 장교오육월 오뉴월 넓은 들판
處處農歌聞 처처농가문 곳곳에선 농부들의 노래 소리 들리네
村翁笑相語 촌옹소상어 촌로들 서로 웃으며 얘기도 하고
禾稼如屯雲 화가여둔운 들판의 곡식들은 마치 구름이 모인 것 같구나
장교관가(長郊觀稼)
曲江東南注 곡강동남주 동남쪽에 낙동강이 흐르는데
盤迴如白龍 반회여백룡 빙 도는 물굽이는 마치 흰 용과 같구나
此間漁釣者 차간어조자 이곳에서 낚시하는 사람은
知是渭川翁 지시위천옹 위(渭)수에서 고기 잡던 강태공을 알겠지
곡저타어(曲渚打魚)
淸風四面至 청풍사면지 맑은 바람 사방에서 불어 오니
六月疑霜晨 유월의상신 유월인데도 마치 서리 내린 새벽 같이 시원하구나
亭前冠盖客 정전관개객 수레 타고 정자 앞 지나는 갓쓴 나그네들은
俱是暍暘人 구시갈양인 모두가 창자 속까지 더위먹은 사람들일테지
삼복피서(三伏避署)
八月十五夜 팔월십오야 팔월 보름 밤인데
天淨無埃塵 천정무애진 하늘은 티끌 하나 없이 맑구나
淸光留醉客 청광유취객 맑은 달 빛은 술 취한 나그네 머물게 하고
凉露滿衣巾 량로만의건 서늘한 이슬은 옷과 두건 흠빡 적시네
중추완월(仲秋翫月)
(註)
*이인기(李麟奇):명조4년~인조9년.조선 인조시대 학자.호는松溪居士,본관은 청해(북청)개국공신 芝蘭의 육세손.
찰방,형조좌랑,영덕현감,가평군수,사후 의정부좌찬성.靑陵君으로 추증됨.
*위천옹(渭川翁):위수(渭水)에서 낚시질 하던 태공망 여상(太公望 呂尙)을 말함.
삼구정팔경(三龜亭八景) (二) 유 근(柳 根)
三龜石上刱危亭 삼구석상창위정 세 개의 돌 거북 곁에 높은 정자 지었고
鶴駕晴峯眼爲靑 학가청봉안위청 맑게 개인 학가산 봉우리에 눈빛마저 푸르게 되는구나
閱盡龍蛇猶獨立 열진용사유독립 현자의 은둔생활 모두 지켜보며 홀로 서 있어
從今餘慶幾千齡 종금여경기천령 지금부터 수천년을 자손들에게 경사 있으리라
학교청봉(鶴嶠晴峯)
暎湖樓下幾澄潭 영호루하기징담 영호루 아래 맑은 소 몇 개나 되며
到此芙蓉鏡裏涵 도차부용경이함 이곳에 이르러 부용은 거울 같은 물속에 잠겼구나
錦葉紅霞俱爛熳 금엽홍하구난만 아름다운 단풍과 붉은 노을 장관을 이루고
層崖絶壁峙東南 층애절벽치동남 깍아지른 바위언덕 동남쪽에 우뚝 솟았네
마애초벽(馬崖峭壁)
樓臺掩暎柳垂絲 누대엄영유수사 정자를 덮어 가린 버들은 실처럼 늘어졌고
三月烟花冠四時 삼월연화관사시 삼월의 봄 경치는 사철 중 으뜸일세
却問行窩何處在 각문행와하처재 길가다 묵을 움막 어디에 있는지 물으시던
易東先正是吾師 역동선정시오사 역동(우탁) 선현은 나의 스승님이시라오
현리연화(縣里烟花)
雪裏寒松不改靑 설이한송불개청 눈속의 겨울철 소나무 푸르름 변치 않고
佳城相望若思亭 가성상망약사정 지척에 있는 무덤 주인 정자를 늘 생각하는 것 같네
天邊長送笙簧韻 천변장송생황운 멀리 하늘가로 생황(관악기의 일종) 소리 울려 보내고
地底應留鳥獸形 지저응유조수형 지상에는 응당 짐승들 머물러 있으리
역동한송(驛洞寒松)
亂後猶能見太平 난후유능견태평 어지러운 세월 후라야 태평세월 잘 보이고
耘歌四起節歡聲 운가사기절환성 사방에서 김매는 노래는 곧바로 수확의 환성으로 들리리라
莫言緣畝終年苦 막언연무종년고 농사 때문에 일년 내내 고생한다 말하지 말라
却喜登場萬寶成 각희등장만보성 온갖 보물 마당에 거두어 들이면 도리어 기뻐하리라
장교관가(長郊觀稼)
雨後輕風拂釣絲 우후경풍불조사 비 온 뒤 산들 바람은 낚시줄에 스치고
鏡中跳擲日斜時 경중도척일사시 해질녘 거울같이 맑은 물에 고기들 뛰어 오르네
莊生已說濠梁樂 장생이설호양락 장자는 호(濠)강의 다리에서 고기의 즐거움에 대해 이미 논하였으나
我與游魚兩不知 아여유어양불지 나와 물고기 둘 다 모를 일이로다
곡저타어(曲渚打魚)
病暑雄辭最堀奇 병서웅사최굴기 빼어난 문장은 모두가 훌륭한데 이 몸 더위에 지쳤으니
東南西北去何之 동남서북거하지 동서남북 어디로 가야하나
高亭一片淸凉界 고정일편청량계 높은 정자는 좁다란 청량계(淸凉界)의 한 곳이라서
不識人間六月時 불식인간육월시 때가 유월임을 인간들은 깨닫지 못하네
삼복피서(三伏避署)
琪樹黃雲野色分 기수황운야색분 아름다운 나무와 바람에 넘실거리는 누런 벼로 들판의 경치 구분되고
秋空寥廓絶埃氛 추공요곽절애분 넓은 가을 하늘은 먼지 하나 없구나
宵來霽月如淸畫 소래제월여청화 밤이면 비 개인 하늘의 달이 맑은 낮과 같으니
天柱峯遊不乞云 천주봉유불걸운 천주봉에서 놀기를 청하지는 않겠네
중추완월(仲秋翫月)
(註)
*류근(柳根):명종4년~인조5년,조선중기의 문인,호는 서경(西坰),시호는 문정(文靖),본관은 진주,괴과(魁科)에급제,
임란때 오도병마부체찰사(五道兵馬副逮察使),운량검찰사(運糧檢察使),예조참의,대제학,좌찬성,진원부원군.
*역동(易東):고려말기의 학자.자는 천장(天章),시호는 문희(文僖),본관은 단양,정자(程 子)의 학을 가르친 우리나라
이학(理學)의 시초.성균제주(成均祭酒).
*호양락(濠梁樂):장자(莊子와 혜자(惠子)가 호(濠=강이름)가에서 고기가 즐거움을 아는지 모르는지에 대하여 논의한 것.
삼구정팔경(三龜亭八景) (三) 신 흠(申 欽) 金氏之有三龜亭舊矣經始之迹登覽之美戱綵板輿之榮親悉具虛白成公記中而太史氏載之輿地以備國乘之一後百年金氏之裔淸陰公 김씨지유삼구정구의경시지적등람지미희채판여지영친실구허백성공기중이태사씨재지여지이비국승지일후백년김씨지예청음공 以亭之八景要余詩之余驚曰金氏有玆亭久矣亭之不失金氏亦久矣哉昆明栢梁國亡則與亡綠野平泉人去則與去世百年而能守其舊業 이정지팔경요여시지여경왈김씨유자정구의정지불실김씨역구의재곤명백양국망즉여망록야평천인거즉여거세백년이능수기구업 者一何其尠也當時之玄壁紅板劚崇臨濬者幾易姓易主公乃獨全之於世故兵火千燒萬戰之餘其曷故也無亦來之以德物莫之奪者耶苟 자일하기선야당시지현벽홍판촉숭임준자기역성역주공내독전지어세고병화천소만전지여기갈고야무역래지이덕물막지탈자야구 然則金氏之有玆亭不知又當幾百年哉 연칙김씨지유자정불지우당기백년재 천계병인서(天啓丙寅書) 《苟全公13世孫 金 台東 옮겨씀》 |
삼구정팔경(三龜亭八景) (三) 신 흠(申 欽)
김씨들이 삼구정을 소유한지가 오래 되었는데 정자를 짓기 시작한 까닭,정자에 올라 바라보는 아름다움,
가마에 어버이를 모시고 정자에 올라 그 마음을 즐겁게 하고 영화롭게 모신 일들은 허백당 성현공의 삼구정기에
다 적혀 있는데 사관(史官)이 여지승람(輿地勝覽)에 기재하여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책의 한 부분으로 갖추어져 있다.
그후 백년이 지나 김씨의 후예인 청음공이 정자의 팔경으로 시를 써 줄 것을 나에게 요청해와 내 놀래어 이르기를
김씨들이 이 정자를 소유한지가 오래 되었는데도 정자가 없어지지 않았으니 김씨들 또한 장구를 할 것이다.
저 곤명지의 백량대는 나라가 망하니 함께 없어졌고 푸른 들판의 샘도 사람이 떠나가면 없어지게 마련인데
백년세월에 옛것 중 그 하나라도 능히 지킬 수 있음은 어찌 적은 일이겠는가.
당시의 검붉은 벽과 현판에 깍아 채운 심오한 글들을 왕조와 군주가 몇번이나 바뀌었음에도
공이 세상의 속된 일이나 많은 병화의 여파에도 오직 온전하게 할 수 있었음은 무슨 까닭이냐 하면
덕으로 전래하여 사물이 없어지지 않게 한 때문이다.
천계(明 희종(熹宗 연호) 병인년(1626년) 씀.
何年鬼斧鐫 하년귀부전 어느해에 귀신의 도끼로 새겼길래
石骨天然秀 석골천연수 돌 모양새는 자연 그대로이네
要看眞面目 요간진면목 참모습 보기를 원한다면
正是新晴後 정시신청후 틀림없이 비 개인 후의 산뜻함이리라
학교청봉(鶴嶠晴峯)
可憐馬螺潭 가련마라담 마라소는 사람 할만 하고
層崖高萬丈 층애고만장 겹겹의 바위언덕 그 높이 만 길이나 된며
春花與秋葉 춘화여추엽 봄이면 꽃 피고 가을이면 단풍잎 지니
絶勝王家輞 절승왕가망 왕유의 별장이 있던 망천과 같은 절경이구나
마애초벽(馬崖峭壁)
江陵千樹橘 강릉천수귤 강릉의 천 그루 귤 나무와
渭川千畝竹 위천천무죽 위천의 넓은 대나무 숲이
爭如一縣花 쟁여일현화 뜰 앞에서 나를 향해 향기 풍기는
向我庭前馥 향아정전복 마을의 꽃만 하겠는가
현리연화(縣里烟花)
蒼蒼萬株松 창창만주송 무성한 수 많은 소나무는
獨也殊凡卉 독야수범훼 홀로 모든 풀과는 다르고
松乎爾可敬 송호이가경 소나무여 너는 공경할만 하구나
天地有正氣 천지유정기 하늘과 땅의 정기를 지녔으니
역동한송(驛洞寒松)
䆉稏千頃稻 파아천경도 넓은 들판의 벼는 바람에 넘실거리고
塍壟如繡錯 승롱여수착 밭 두둑은 아름다운 무늬 수 놓은 것 같구나
但願化日長 단원화일장 다만 원하는건 나라를 교화하는 날 장구하고
永享昇平樂 영향승평락 태평세월의 즐거움 영원히 누리는 것일세
장교관가(長郊觀稼)
天魚曲江渚 천어곡강저 낙동강 모래섬 물고기(天魚)가 있어
施罛何濊濊 시고하활활 그믈을 던지니 그믈치는 소리만 첨벙하고
却笑陽喬魚 각소양교어 낚시줄 당기니 물고기(陽喬魚)는 다투듯 헤엄치며
級綸爭鱍鱍 급륜쟁발발 도리어 비웃는구나
곡저타어(曲渚打魚)
人間三伏日 인간삼복일 인간 세상 삼복날에
大地焦如火 대지초여화 대지는 불 타듯 매마른데
玆亭夫如何 자정부여하 이 정자는 어떠한가 했더니
靈籟來襲座 영뢰래습좌 아름다운 바람소리 앉은 자리 엄습하네
삼복피서(三伏避署)
一年仲秋節 일년중추절 한 해의 가을철
仲秋此夜月 중추차야월 오늘밤 추석달은
冷然淸心肝 냉연청심간 서늘하여 내 참마음 맑게 해 주고
使我探月窟 사아탐월굴 내가 달 속의 바윗굴 찾도록 해 주는구나
중추완월(仲秋翫月)
(註)
*신흠(申欽):명종21년~인조6년.조선 인조때 예판,좌,우의정,영의정,호는 상촌(象村),시호는 문정(文貞),본관은 평산(平山)
문과에 급제,월사(月沙),계곡(谿谷),택당(澤堂),과 더불어 조선 사대문장가,서예가.
*천계(天啓):明 희종(熹宗)의 연호,1626년
*청음공(淸陰公):김상헌(金尙憲)선생의 호,시호는 문정(文貞),효종때 좌의정.
*곤명백량(昆明柏梁):전한(前漢)의 무제(武帝)가 장안 서북쪽 곤명지(昆明池)에 지은 누대로
향백(香柏)을 들보로 쓴데서 생긴이름.
*왕가망(王家輞):장안 동남쪽 종남산(終南山)에 있던 왕유(王維)의 별장인 망천장(輞川莊)을 말함.명승20경이 있다.
삼구정팔경(三龜亭八景) (四) 홍서봉(洪瑞鳳)
玄鶴何年去不停 현학하년거불정 학은 어느 해에 가 버렸는지 지금은 머물러 있지 않는데
舊栖山骨玉亭亭 구서산골옥정정 옛 보금자리인 산 모양은 옥같이 아름답구나
長風早捲煙嵐盡 장풍조권연람진 바람은 푸른빛 남기 새벽에 다 걷어 갔지만
開戶依然佛頂靑 개호의연불정청 문을 여니 불정산은 여전히 푸르구나
학교청봉(鶴嶠晴峯)
誰將如馬戒行舟 수장여마계행주 그누가 말을 절벽에 몰고와 배는 조심해서 가야하며
可愛平舖此水流 가애평포차수류 잔잔하게 펼쳐진 이 물결 사랑할만 하구나
雲過莫須誇錦繡 운과막수과금수 구름 걷히면 수 놓은 비단같이 곱다 자랑하지 마라
火宜春日葉宜秋 화의춘일엽의추 꽃은 봄날이 나뭇잎은 가을이래야 제철이란다.
마애초벽(馬崖峭壁)
如海如堆摠不分 여해여퇴총불분 바다같고 언덕 같으니 모두 다 분별할 수 없고
一時香雪襯紅雲 일시향설친홍운 때로는 향기로운 흰 꽃이 만발한 자태 드러 내는구나
奢華天地同元氣 사화천지동원기 사치스럽고 화려한 이 세상은 같은 원기인데
樓閣笙歌處處聞 누각생가처처문 누각의 생황과 노래소리 곳곳에 들리네
현리연화(縣里烟花)
年多老幹長孫枝 년다노간장손지 수령이 오래 된 고목 줄기엔 곁가지 길게 자랐고
蒼翠重陰十里垂 창취중음십리수 푸르름 짙은 그림자 십리에 걸쳐 드리웠네
一木亦堪支厦用 일목역감지하용 한 그루의 나무는 큰 집의 지주로 쓸만한데
路人猶識後凋姿 로인유식후조자 행인들은 굳은 절개 지키는 자태 알고 있으리라
역동한송(驛洞寒松)
乘秋呈色任靑黃 승추정색임청황 가을이 되니 청황의 빛깔 제 색을 드러내고
刈了終看粒粒香 예료종간립립향 벼 베기 마치고 살펴보니 벼알 하나 하나가 향기롭구나
拾穗村童應見許 십수촌동응견허 시골 아이 응당 허락받고 이삭을 줍겠지만
何時白屋有餘粮 하시백옥유여량 언제쯤이나 가난한 집에도 양식 넉넉 할려나
장교관가(長郊觀稼)
秋雨纔生一尺鱗 추우재생일척린 가을비 내리니 비로소 월척의 물고기 나타나고
東南名擅季鷹珍 동남명천계응진 동남쪽에서 가장 이름난 어린매는 보배로다
不須更憶長鯨鱠 불수경억장경회 큰 고래회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겠나
盤面銀絲味自新 반면은사미자신 소반위 은빛 회맛이 신선한데
곡저타어(曲渚打魚)
沈沈人却此間須 심심인각차간수 초록이 무성한 이곳에서 사람들 휴식하나
三伏炎蒸定識無 삼복염증정식무 찌는듯한 더위 멈추게 할 지혜는 없더라
褦襶便能思擁褐 내대편능사옹갈 밀집모자로 잠시 견디어 보나 삼베옷 걸치고 싶고
茦功寧足水氷壺 책공영족수빙호 공훈을 세우는 것보단 차라리 몇 개의 얼음 항아리에 더 만족하리라
삼복피서(三伏避署)
今宵賞觀右堪徵 금소상관우감징 오늘밤 아름다운 경관 즐기니 앞에 적은 것들 능히 증명되고
夜景秋光分外澄 야경추광분외징 가을철 밤 경치 유난히도 맑구나
怳惚軒窓移異境 황홀헌창이리경 정자를 별천지로 옮겼는지 너무도 황홀한데
更須天柱費攀登 경수천주비반등 천주(하늘을 받치는 기둥)를 붙잡고 헛되이 달나라에 다시 올라갈 필요있겠나
중추완월(仲秋翫月)
(註)
*홍서봉(洪瑞鳳):선조5년~인조23년,호는 학곡(鶴谷),시호는 무정(文 靖),본관은 남양,문과급제,영사공신(寧社 功臣)에 책록,
익녕군(益 寧 君)에 피봉,병조,이조.예조판서를 거쳐 좌의정,영의정을 역임,시(詩),문장(文章)에 능함.
삼구정팔경(三龜亭八景) (五) 박동열(朴東說)
鶴駕朝元去不逢 학가조원거불봉 학은 수레타고 아침에 떠나 만날 수 없고
白雲蒼壁秋仙蹤 백운창벽추선종 구름 낀 푸른 절벽엔 신선의 자취 숨어있네
長風吹卷前山雨 장풍취권전산우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 앞산에 비 걷어가니
畫出層霄玉幾峯 화출층소옥기봉 높은 하늘에 솟아오른 봉우리 그림같이 아름답구나
학교청봉(鶴嶠晴峯)
懸厓倒影碧琉璃 현애도영벽유리 깍아지른 낭떠러지는 유리같이 푸른물에 그림자 져 있고
葉赤花明各一奇 엽적화명각일기 붉은 단풍잎과 선명한 꽃은 각각 진기하구나
誰似輞川名此池 수사망천명차지 그 누가 이곳을 망천과 같다고 지칭했나
待君神助畫中詩 대군신조화중시 신이 만든 그림같이 아름다운 이속에서 그대 모시고 시나 읊어 보리라
마애초벽(馬崖峭壁)
烟花粧點縣中春 연화장점현중춘 마을엔 온통 아름다운 경치로 단장한 봄날인데
樓閣重重縹緲濱 누각중중표묘빈 누각은 겹쳐있고 멀리 희미하게 물가 보이네
却恐落英隨水出 각공낙영수수출 떨어진 꽃잎 물따라 흘러갈까 두려운데
孤舟山外有漁人 고주산외유어인 먼 산아래 외로운 배 위에는 어부 보이네
현리연화(縣里烟花)
聳壑昻霄幾雪霜 용학앙소기설상 하늘을 찌를 듯 골짜기에 높이솟아 눈서리는 얼마나 맞았으며
古來材大爲明堂 고래재대위명당 예부터 좋은 집짓는데는 큰 배목이라야 했지만
良工莫道無梁棟 양공막도무양동 훌륭한 목수는 동량감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오
一任炎塵蔭路傍 일임염진음노방 너의 임무는 찌는듯한 속세의 길옆을 그늘지게 하는 일이구나
역동한송(驛洞寒松)
塞鴻無數帶秋霜 새홍무수대추상 북녘 기러기 수 많은 가을 서리 몰아오고
斫盡南郊一半黃 작진남교일반황 추수 킅난 남쪽 들판 한 부분은 누렇구나
樂歲又聞官稅薄 낙세우문관세박 즐거운 세월에다 또 세금도 적다는 말 들으니
家家酒熟蟹盈筐 가가주숙해영광 집집마다 술은 익고 안주할 게는 광주리에 가득하네
장교관가(長郊觀稼)
六月群鱗白勝銀 유월군린백승은 유월의 물고기때 은빛보다 더 희고
隔江相喚打魚人 격강상환타어인 강을 사이에 두고 고기잡는 사람들 서로 소리쳐 부르네
年年太廟金盤薦 년년태묘금반천 해마다 종묘에 좋은 그릇에 담가 제수로 올리고
然後鄕隣始食新 연후향린시식신 그런 뒤에 마을에선 시식 하였다네
곡저타어(曲渚打魚)
喬木千章自一村 교목천장자일촌 높이 솟은 수 많은 나무들로 한 마을 이루었고
太師遺澤至今存 태사유택지금존 태사공이 남기신 은택 지금까지 남아있어
人間不識三庚熱 인간불식삼경열 사람들은 삼복 더위도 느끼지 않으니
神護名亭爲子孫 신호명정위자손 신이 자손들 위해 이름난 이 정자 보호해 주는구나
삼복피서(三伏避署)
江從太白山中出 강종태백산중출 강은 태백산에서 발원 하였고
月到今宵分外多 월도금소분외다 달이 뜨니 오늘밤 유난히도 밝구나
桂花香裏樹姮娥 계화향이수항아 계수나무 꽃 향기 속에 항아가 살고있는
只願一輪終不缺 지원일윤종불결 저 달이 영영 이지러지질 않기를 바랄 뿐이네
중추완월(仲秋翫月)
(註)
*박동열(朴東說):명종19년~광해군14년,호는 남곽(南郭),문과급제,
목사(牧使),대사성(大司成),어려운 학정(學政)에 유풍(儒風)을크게 일으킴.
*망천(輞川):중국 장안 동남쪽 종남산에 있던 왕유(王維)의 별장인 망천장(輞川莊).명승(名勝)이십경이 있다.
*항아(姮娥):달에 산다는 미인의 이름.
삼구정팔경(三龜亭八景) (六) 김 유(金 瑬)
鶴駕仙人歸紫氛 학가선인귀자분 학가산 신선은 자주빛 구름 속으로 사라져
空留山色與天君 공유산색여천군 산색만 하늘의 신과 함께 공영히 머물러 있네
軒窓眺望宜晴日 헌창조망의청일 높은 창가에서의 전망은 맑게 개인 날이래야 좋고
可愛靑雲是白雲 가애청운시백운 푸른 하늘에서 사랑할만한 것은 흰 구름이더라
학교청봉(鶴嶠晴峯)
馬崖如馬在亭東 마애여마재정동 말을 닮은 마애는 정자 동쪽에 있는데
崖西淸潭淸若空 애서청담청약공 벼랑 아래 맑은 소 하늘과 같이 맑구나
直自春芳到秋艶 직자춘방도추염 향기로운 봄 꽃이 곧바로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으로 변하니
不分葉赤與花紅 불분엽적여화홍 붉은 단풍잎과 붉은 꽃을 분간할 수 없구나
마애초벽(馬崖峭壁)
縣中繁艶萬家莊 현중번염만가장 마을은 집집마다 수 많은 꽃으로 단장 하였고
花滿樓臺浮日光 화만누대부일광 꽃이 가득한 정자는 햇빛 넘쳐 흐르네
一抹晴煙淡濃裏 일말청연담농리 비 갠후 짙고 연하게 낀 안개 속에
依然風景似河陽 의연풍경사하양 수목이 무성한 풍경은 하양과 같이 아름답더라
현리연화(縣里烟花)
驛廢塋開問幾年 역폐영개문기년 역참을 없애고 산소를 쓴지가 몇 년이던가
隴頭松柏鬱蒼然 롱두송백울창연 언덕위 송백나무 울창한데
仙人栽植子孫敬 선인재식자손경 조상들은 옮겨 심고 자손들은 잘 보살피니
直幹如今能到天 직간여금능도천 곧은 줄기 지금은 능히 하늘에 닿을 듯 하구나
역동한송(驛洞寒松)
平郊如繡錯膏腴 평교여수착고유 들판은 수를 놓은 듯 아름답고 기름진데데
南畝耕耘動萬夫 남무경운동만부 남쪽 이랑에선 많은 농부들 밭 갈고 씨 뿌리는구나
力作終年不言苦 역작종년불언고 일년 내내 힘들게 일 하는게 고생스럽다 말하지 말라
秋來誇得幾如珠 추래과득기여주 가을이면 진주처럼 값진 많은 수확 자랑하게 될 테니
장교관가(長郊觀稼)
曲江江水爭涵虛 곡강강수쟁함허 낙동강 강물이 허공이 잠겨 있고
碧藻游鱗元自如 벽조유린원자여 푸른 말풀에서 노는 고기 평화롭구나
歡娛蕭瑟亦何意 환오소슬역하의 기쁨과 즐거움 쓸쓸함이 무엇인지도
魚好相忘還打魚 어호상망환타어 고기는 알아 차리지 못하는데 도리어 잡고 있구나
곡저타어(曲渚打魚)
羲輪當午萬珠融 희륜당오만주융 한낮의 태양은 수 많은 구슬도 녹일 듯 하고
六月烘爐天地中 유월홍로천지중 유월의 천지간은 온통 화로불 같은데
自是高居藉疎豁 자시고거자소활 탁 트인 이곳에 자리깔고 속세를 떠나 조용히 살아가며
八窓獨引大王風 팔창독인대왕풍 팔방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 홀로 벗하누나
삼복피서(三伏避署)
淸夜亭亭風露寒 청야정정풍로한 맑은 밤은 아름답고 바람과 이슬은 차가운데
秋空如水月如盤 추공여수월여반 가을 하늘 물과 같고 달은 쟁반 같구나
要令一物無遺照 요령일물무유조 한 물체(달)로 하여금 남김없이 비추려하니
可但磔蟆兎亦殘 가단책마토역잔 부질없이 두꺼비에게 책형의 벌을 가하고 토끼 또한 헤치게 될뿐이네
중추완월(仲秋翫月)
(註)
*김유(金瑬):선조4년~인조26년,호는 북저(北渚),시호는 문충(文忠),본관은 순천,문과급제.
인조1년(1623)이괄(李适),최명길(崔鳴吉),이귀(李貴)등과 함께 능양군(綾陽君)종(倧)을 왕으로 추대하다.
인조반정(仁祖反正)일등공신,정사공신의 호를 받고 승평부원군(昇 平 府院君)에 피봉.
병조,이조판서,대제학,우찬성,우의정,영의정을 역임,인조묘정(仁祖廟庭)에 배향(配享).
문장에 능하고 명필로 이름났다.父는 목사(牧使)로 임진왜란 때 충주에서 순직.
삼구정팔경(三龜亭八景) (七) 윤 훤(尹 暄)
仙鶴荒唐不記年 선학황당불기년 학은 황당하게도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고
高峰達枿翠浮天 고봉달얼취부천 높은 봉우리는 푸른 움이 돋아난 듯 하늘에 떠 있네
烟消霧罷呈眞面 연소무파정진면 안개 사라지고 참 모습 드러내니
盡日看山拄笏眠 진일간산주홀면 하루종일 홀을 괴고 누워 산만 바라보누나
학교청봉(鶴嶠晴峯)
萬古方精隕自空 만고방정운자공 태고의 정기가 허공에서 떨어져
化爲山骨立穹窿 화위산골입궁륭 산 모습으로 변하여 하늘에 솟아있네
年年水底鋪雲錦 년년수저포운금 해마다 물밑에는 아침놀 펼쳐있고
秋葉春花倒影紅 추엽춘화도영홍 붉은 가을 단풍잎과 봄꽃이 꺼꾸로 비치더라
마애초벽(馬崖峭壁)
南方三月競繁華 남방삼월경번화 삼월의 남녘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있고
處處藏春富貴家 처처장춘부귀가 부귀한 집 곳곳에 봄은 깊구나
蜀錦越羅金栗尺 촉금월라금율척 촉,월의 고운 비단을 계수나무 자로 재단하여
栽成縣里萬重花 재성현리만중화 마을을의 수 많은 꽃들을 만들었나 보다
현리연화(縣里烟花)
大厦傾須此木支 대하경수차목지 큰 집이 기울면 모름지기 이 나무로 버티어야 하고
道邊空老棟梁姿 도변공노동량자 길옆에서 부질없이 늙어 기둥감으로 쓸만한데
靑山一種蒼然色 청산일종창연색 청산 속의 푸른빛을 띤 일종인 소나무는
尙記秦皇遊雨時 상기진황유우시 아직도 진시황이 비를 피하던 때를 기억하리라
역동한송(驛洞寒松)
沃野漫漫鄭白源 옥야만만정백원 기름진 평야 아득히 펼쳐진 넓은 가을 들판
秋風粳稻動黃雲 추풍갱도동황운 누렇게 익은 벼는 가을 바람에 넘실거리네
田家歲熟篝車滿 전가세숙구거만 농가에는 잘 익은 곡식 대 그릇과 수레에 가득하고
朋酒村村有醉群 붕주촌촌유취군 마을마다 벗들이 술자리 함께하여 취한 무리 있더라
장교관가(長郊觀稼)
菰蒲獵獵荇田田 고포엽렵행전전 줄풀과 부들은 바람에 나부끼고 마름은 물위에 떠있는데
曲渚纔深不用船 곡저재심불용선 낙동강은 그다지 깊지 않으니 배는 이용하지 않는구나
漁子不知濠上樂 어자부지호상락 어부는 호상락의 고사를 알지 못하고
一心惟典魚筌 일심유재득어전 마음은 오로지 통발로 고기를 잡는데 있네
곡저타어(曲渚打魚)
蒼蒼夏木鬱千章 창창하목울천장 울창한 수 많은 큰 나무들은
六月行人懼雪霜 유월행인구설상 유월의 행인이 눈서리보다 더 두려워 하는구나
安得淸陰分四海 안득청음분사해 어찌하면 맑은 그늘을 온 세상에 나누어 주어
炎天病署遍生凉 염천병서편생량 찌는듯한 날씨에 더위에 지친 이들에게 서늘함 고루일게 할 수 있을는지
삼복피서(三伏避署)
秋天如水本澄淸 추천여수본징청 가을 하늘 물과 같아 본래 맑디맑고
海月初生萬國明 해월초생만국명 바다에 달 떠 오르니 온 세상 밝아 오는데
玉位不知凉夜永 옥위부지량야영 귀하신 몸 서늘한 밤이 긴걸 알지 못하고
滿衣風露步三更 만의풍로보삼경 바람과 이슬에 옷 흠뻑 젖은채 한밤중 걷고있네
중추완월(仲秋翫月)
(註)
*윤훤(尹暄):해평인.호는 백사(白沙)조선 선조시대(1597년)정시문과급제.사관,호조좌랑,동래부사,황해도.평안도관찰사,
인조2년(1624)주청사로 명나라에 다녀옴.
*호상락(濠上樂):장자(莊子)와 혜자(惠子)가 호(濠:안휘성에 있는 강)가에서 고기가 즐거움을 아는지 모르는지에
대해 논쟁을 한 고사가 있음.
삼구정팔경(三龜亭八景) (八) 장 유(張維)
王子何年鶴駕遊 왕자하년학가유 왕자는 어느 해에 신선의 수레타고 여행을 떠났으며
福庭千載舊名留 복정천재구명유 복이 많은 집안엔 천년의 옛 명성 남아있네
晴天秀出芙蓉色 청천수출부용색 맑게 개인 하늘에 높이 솟은 봉우리 연꽃 모습인데
騷客攀援柱樹秋 소객반원주수추 시인은 계수나무 붙잡고 가을 산 오르는구나
학교청봉(鶴嶠晴峯)
蒼崖矗矗壓澄灣 창애촉촉압징만 푸른 절벽 높이 솟아 맑은 물가 차지하여
積鐵千尋不可攀 적철천심불가반 천발(두팔을 벌린 길이)이나 되는 철벽은 오를 수 없더라
霜葉露花工點綴 상엽로화공점철 서리맞은 잎과 이슬에 젖은 꽃이 연이어 펼쳐짐은 장인의 솜씨인데
絶憐凉影落波間 절련량영락파간 더없이 사랑스런 서늘한 그림자 물결에 잠겨있네
마애초벽(馬崖峭壁)
豊山古縣枕江濱 풍산고현침강빈 풍산 옛 고을은 강가에 면해 있고
亂後樓臺也自新 난후누대야자신 전란후의 정자 모습 새로워졌구나
歲歲烟花開爛漫 세세연화개난만 해마다 화려하고 고운 꽃들 만발하니
風光渾似武陵春 풍광혼사무릉춘 그 경치 마치 무릉도원의 봄과 같더라
현리연화(縣里烟花)
百年培植萬株新 백년배식만주신 백년을 북돋아 심은 많은 나무들 새롭고
表裡丘原翠色勻 표리구원취색균 언덕의 안팎은 푸른 빛 일색이네
當日幾防奔鹿觸 당일기방분록촉 그 옛날 뛰노는 사슴뿔의 브딛침 몇번이나 방어하고
只今皆作老龍鱗 지금개작노용린 지금은 모두 노송이 되었는고
역동한송(驛洞寒松)
耘謳饁唱自相催 운구엽창자상최 노래하며 김매고 들밥을 이고 가면서 서로 재촉하는데
千頃溝塍望裡開 천경구승망리개 천경이나 되는 논밭이 눈앞에 펼쳐 있구나
多少田間耦耕者 다소전간우경자 밭에는 둘이서 나란히 밭갈이 하는 이 더러 있고
不知誰復問津來 부지수복문진래 누가 다시 학문에 입문하는 길 물으러 올지 알지 못하겠네
장교관가(長郊觀稼)
曲江春水打魚時 곡강춘수타어시 봄날 낙동강에서 고기 잡을 때
三尺銀鱗入網遲 삼척은린입망지 석자나 되는 물고기 그물에 걸리길 바라네
吳會可無張翰興 오회가무장한흥 오나라 모임에 장한의 흥취 없어도 되지만
東津自有杜陵詩 동진자유두릉시 동쪽 나루터엔 두보의 시가 있더라
곡저타어(曲渚打魚)
密陰凉籟滿空虛 밀음량뢰만공허 짙은 그늘에다 서늘한 바람소리 하늘에 가득하고
千里冷風坐可呼 천리냉풍좌가호 천리 밖 미풍을 앉아서 불게할 수 있어
堪笑浣花消渴客 감소완화소갈객 완화(溪名)의 목마른 나그네 웃을만 하고
一生唯羡冷秋菰 일생유이냉추고 일생에 오직 부러워할건 가을 줄풀에 이는 서늘함이더라
삼복피서(三伏避署)
獨憑危檻揖金波 독빙위함읍금파 높은 난간에 홀로 기대어 달빛을 손으로 뜨니
無限淸光此地多 무한청광차지다 한없는 맑은 달빛 이곳에 많기도 하여라
天柱峰頭今夜望 천주봉두금야망 오늘밤 천주봉 꼭대기 바라본다면
屋漏瓊闕定如何 옥루경궐정여하 아름다운 월궁은 어떻게 지어 졌을꼬
중추완월(仲秋翫月)
(註)
*장유(張維):선조20년~인조16년,조선중기의 명신,호는 계곡(溪谷),시호는 문충(文忠),본관은 덕수(德水).
문과급제,인조반정으로 정사공신(靖社功臣),신풍군(新豊君)에 피봉,
이판,대제학,우의정,을 역임.그의 딸이 효종비(孝宗妃)가 됨.
*오회장한(吳會張翰):장한은 제(齊)나라 수도 낙양에서 관리생활을 하였는데 가을이 되자 망향의 정이 간절하였다.
지금쯤 고향(吳나라)에는 순채국과 농어화가 맛 있을 계절인데 이깟짓 명예와 작위 따위가
다 무엇이냐 나도 좀 멋있게 살이야겠다 면서 고향으로 내려간 고사.
*동진두릉(東津杜陵):장안 동문밖 근처를 두릉(杜陵)이라 불렀으며 두보(杜甫)의 옛집이 있던 곳이다.
삼구정팔경(三龜亭八景) (九) 신익성(申翊聖)
浮嵐乍展眉 부람사전미 해질녘 흐릿한 먼 산기운에 잠시 근심은 사라지고
攢翠全露背 찬취전로배 푸르름 짙게 쌓인 산등성이 완전히 드러내는구나
俱在有無中 구재유무중 그 모습 있는듯 없는듯 하더니
忽呈濃淡態 홀정농담태 갑자기 짙고 연한 모습 나타내더라
학교청봉(鶴嶠晴峯)
馬峭峙爲嶂 마초치위장 말이 가파르게 우뚝 솟가 높은 산 되었고
屹然開蒼壁 흘연개창벽 높이 솟은 그 모습 푸른 절벽 이루었네
勢絶不可階 세절불가계 산세는 극에 달해 올라갈 수 없으니
還疑鬼斧劈 환의귀부벽 의심컨데 귀신의 도끼로 다듬었나 보다
마애초벽(馬崖峭壁)
春事入村墟 춘사입촌허 봄의 흥취가 마을 언덕에 찾아드니
千花發後先 천화발후선 수 많은 꽃들이 앞다퉈 피는구나
望之若綵霞 망지약채하 멀리서 바라보니 아름다운 노을과 같은데
何似河陽縣 하사하양현 마을의 풍경 어찌 하양과 같지 않으리
현리연화(縣里烟花)
凡卉旣凜殘 범훼기름잔 모든 초목 시드는걸 두려워 하는데
亭亭擁蓋翠 정정옹개취 높이 솟은 푸른 솔은 정자를 두르고 가리웠네
高音自蕭騷 고음자소소 고상한 바람 소리 쓸쓸하여
半夜笙籟是 반야생뢰시 한밤에 들리는 생황(관악기의 일종)소리 이더라
역동한송(驛洞寒松)
大家千頃稻 대가천경도 부자집에는 천경의 넓은 벼논이 있지만
下戶數畝黍 하호수무서 가난한 백성은 몇 이랑 기장밭이 고작일세
秋風一色黃 추풍일색황 가을 바람에 온 들판이 누런 벼 일색이니
不知分境處 부지분경처 그경계가 어딘지 알 수 없더라
장교관가(長郊觀稼)
長流成曲折 장유성곡절 긴 강물 물굽이 이루니
湛湛深潭影 담담심담영 깊은 소엔 물이 맑고 깨끗하구나
潑刺如有神 발자여유신 힘차게 뛰노는 물고기 생기 발랄하니
漁翁莫浪打 어옹막랑타 늙은 어부여 함부로 잡지마오
곡저타어(曲渚打魚)
莫誇氷漿飮 막과빙장음 얼음 음료 마신다고 자랑하지 말라
爭道寒水玉 쟁도한수옥 모두가 다투어 말하는건 차디찬 맑은 샘물일세
淸風北窓下 청풍북창하 맑은 바람 불어오는 북창 아래서
白日睡味足 백일수미족 한낮의 잠자는 기분 흡족하여라
삼복피서(三伏避署)
一年此夜㝡 일년차야최 일년중엔 오늘밤이 으뜸이고
一村此堂逈 일촌차당형 마을에선 이 정자가 가장 빛나는데
超然坐夜遙 초연좌야요 깊은 밤 초연히 앉아 있노라니
頓覺詩脾醒 돈각시비성 수 많은 시상(詩想) 갑자기 떠오르는구나
중추완월(仲秋翫月)
(註)
*신익성(申翊聖):선조21년~인조22년,선조의 딸 정숙옹주(貞淑翁主)의 남편(東陽尉),호는 낙전당(樂全堂),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평산,영의정 흠(欽)의 아들,인조반정의 공신 병자호란 때 김상헌(金尙憲),최명길(崔明吉),함께
심양 으로 잡혀가서 옥고를 치렀다.
*하양현(河陽縣):지명. 중국 하남성 맹현(孟縣)의 서쪽 한대(漢代)에 설치됨.
사우설제명도시 이수 병서 (四友稧題名圖詩) 二首 幷序
興海郡守李 壽朋 父,全州府尹 堰, 外祖 雲峯監務 李 粹之
흥해군수 이 수붕 부,전주부윤 언, 외조 운봉감무 이 수지
永川郡守金 良琬 父,文化縣令 孝敏, 外祖 高城郡守 朴 仲游
영천군수 김 양완 부,문화현령 효민, 외조 고성군수 박 중유
慶山縣令琴 徽 本奉化父,恩津縣監 准, 外祖 知平州事 宋 導
경산현령 금 휘 본봉화 부,은진현감 준, 외조 지평주사 송 도
慶州判官金 永銖 本安東 父,漢城府判官 係權, 外祖 藝文大提學 權 孟孫
경주판관 김 영수 본안동 부,한성부판관 계권, 외조 예문대제학 권 맹손
天倫有五朋友居一情苟相同無間胡越况吾四人幸生一國登名聖朝出宰南服適會永陽維暮之春芳罇旨酒美景良辰忘形痛飮露出天眞 천륜유오붕우거일정구상동무간호월황오사인행생일국등명성조출재남복적회영양유모지춘방준지주미경양진망형통음노출천진 雲翻雨覆鑑玆世人臭蘭斷金相吉先民歃血相盟神會心同在家爲孝許國盡忠分灾恤患慶吉弔凶益勵此心有始有終奚及子孫永失無窮 운번우복감자세인취난단김상길선민삽혈상맹신회심동재가위효허국진충분재휼환경길조흉익려차심유시유종해급자손영실무궁 或渝斯盟有如天翁 혹투사맹유여천옹 成化九年癸巳孟夏 성화구년계사맹하 (先世文獻無可徵者,惟此契帖圖,爲奉化琴氏所藏,有四公小眞而綃久漫漶,不可省識,又有五七絶酬唱,而只錄府君詩,庸寓感慕之意, (선세문헌무가징자,유차계첩도,위봉화금씨소장,유사공소진이초구만환,불가성식,우유오칠절수창,이지록부군시,용우감모지의, 四言序未敢知某公作,而世傳府君手書云) 사언서미감지모공작,이세전부군수서운) 虛了從前三十春至今茅塞喪天眞縱然山木猶萌孼培養何方得一新(公時年二十八) 허료종전삼십춘지금모새상천진종연산목유맹얼배양하방득일신(공시년이십팔) 四友翩皂盖到處四友州海波連天濶落葉點澗流 사우편조개도처사우주해파연천활낙엽점간유 《苟全公13世孫 金 台東 옮겨씀》 |
장령부군 사우계 제명도 병서시
흥해군수 이수붕 본흥양(아버지는 광주부윤 운언 외조부는 운봉감무 이수지)
영천군수 김양완 본상주(아버지는 문화현령 효민 외조부 고령군수 박중유)
경산현령 금 휘 본봉화(아버지는 은진현감 준 외조부는 지평주사 송 도)
경주판관 김영수 본안동(아버지는 한성부판관 계권 외조부는 예문관대제학 권맹손)
천륜(天倫)이 다섯인데 붕우(朋友)가 그 하나이도다.
정(情)이 같을진데 호월(晧越)이 없는도다.
하물며 우리 넷이 한 나라에 태어나서 좋은 때 이름 내어 남쪽 고을의 원이 되도다.
마침 영양(永陽) 땅에 늦은 봄이 되었으니 좋은 술 안주 갖춰 길일(吉日)을 즐기도다.
양껏 마시면서 본심을 들어내어 비 구름 변하듯한 세인(世人)들아 이를 보라 난초(蘭草)와 금석(金石)같아 옛사람 짝을 짓다.
피 뽑아 맹서하고 심신(心神)을 모았도다.
집에서 효심(孝心) 피고 나라위해 충성(忠誠)하다 재환(灾患)에 서로 돕고 경조(慶弔)에 상문(相問)하다.
이 마음 더욱 굳쳐 끝까지 가질건가 아들 손자 미치도록 변함없이 맹서하다.
이 언약 어길건가 천옹(天翁)이 보시도다.
삼십년 헛 보내고 지금껏 앎이 없어 비록 나무에 싹이 트나 어떻게 길러내리(장령공의 그때 나이 이십팔세)
넷 친구 벼슬살아 네 고을 맡았으니 바닷 물결 하늘 닿고 시내에 잎 지거라.
성화구년(成化九年) 계사(癸巳) 맹하(孟夏)
# 선세(先世)의 문헌(文獻)에 징빙(徵憑)할 것이 없고 오직 이 계첩도(契帖圖)를 봉화금씨(奉化琴氏)가 보관하고
사공(四公)의 소진(小眞)이 있는데 오래되어 만환하여 알아 볼 수 없으며 또 오십칠색 창수(唱酬)한 것이 있으나
다만 부군(府君)의 시(詩)만 적어 감모(感慕)하는 뜻을 붙이고 서(序)는 누구의 지음인지 모르나 부군 의 글씨라 전한다.
(註)
*김영수(金永銖):조선 세종조(世宗朝)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영천군수(永川郡守),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을 지낸 계권(係權)의 아들.
그 의 장자 영(瑛)은 문과급제,승지(承旨),이조참판(吏曹參判),관찰사(觀察使).
차자(次子) 번(璠)은 평양서윤(平壤庶尹),
셋째 순(珣)은 진사(進士),형조좌랑(刑曹佐郞),경상도사(慶尙都使)를 역임.
*이 시(詩)의 제판(題板)은 영천시내 조양각(朝陽閣)에 걸려있다.
三龜亭四時詞 김 영(金瑛)
(春)
挾春萬象樂芳時 협춘만상락방시 봄을 맞은 만물은 즐겁고 향기로운데
人倚江亭與物嬉 인의강정여물희 강가 정자에 오른 사람도 자연과 함께 기뻐하는구나
花霧輕薰籠鳥雀 화무경훈농조작 꽃 아지랑이 옅은 향기는 새들을 사로잡고
菰蒲玉長蔭魚龜 고포옥장음어구 길에 자란 줄풀과 부들은 고기를 가려주네
煙開遠浦靑浮木 연개원포청부목 안개 걷히자 먼 포구의 나무는 푸르름 넘치고
雨滿前溪綠漲漪 우만전계록창의 빗물이 가득찬 앞 개울엔 푸른 물결 출렁이네
無賴游絲隨落絮 무뢰유사수락서 아롱거리는 아지랑이 따라 떨어진 버들개지는
不禁輕颺晩風吹 불금경양만풍취 그칠줄 모르고 저녁 바람에 가벼이 흩날리누나
(夏)
槐樹陰陰疊影時 괴수음음첩영시 홰나무 우거진 그늘 겹겹이 짙을 때
孤鵑啼怨亂鶯嬉 고견제원난앵희 외로운 두견새 원한에 울고 꾀꼬리 어지러이 날며 즐거워 하는구나
綠浮岸柳深藏翼 록부안유심장익 초록빛 짙은 언덕위 버들에는 새들이 깊이 숨어있고
葉大汀荷穩上龜 엽대정하온상구 물가의 큰 연잎에는 거북이 편안히 올라가 있구나
江閣晩煙披墨畫 강각만연피묵화 저녁 연기속 강가의 정자는 마치 묵화를 펴 놓은 것 같고
麥郊輕浪作風漪 맥교경랑작풍의 가벼이 출렁이는 보리밭은 바람에 이는 물결이로고
酒樽最好消長夏 주준최호소장하 긴긴 여름날 보내기에는 술잔이 최고인데
無限微凉滿意吹 무한미량만의취 한없이 서늘한 미풍이 흡족하게 부는구나
(秋)
百蟲迎暮各因時 백충영모각인시 온갖 벌레들 저녁이 되면 제철을 만난 듯
萬語千聲自得嬉 만어천성자득희 오만가지 울음 울며 기뻐하는구나
明月一天飛玉鏡 명월일천비옥경 밝은 달은 하늘을 나는 옥거울인데
謫仙何處換金龜 적선하처환금구 이태백은 어디에서 금구를 주고 술을 사느뇨
江風裊裊搖華髮 강풍뇨뇨요화발 한들거리는 강 바람에 백발은 휘날리고
木葉蕭蕭落淺漪 목엽소소낙천의 나뭇잎은 쓸쓸히 얕은 여울물에 떨어지네
坐久夜闌披鶴氅 좌구야란피학창 밤 늦도록 학창의(웃옷의 일종)를 걸치고 난간에 앉았노라니
倚歌誰和洞蕭吹 의가수화동소취 누군가가 노래 맞춰 퉁소로 화답 하는구나
(冬)
雪意漫漫吹歲時 설의만만취세시 눈이 펄펄 내리는 세모인데
剡溪寒夜興堪嬉 섬계한야흥감희 염계의 차가운 밤일지라도 흥만은 즐거웁구나
千山冷漾倚天劒 천산냉양의천검 싸늘한 온갖 산 모습은 하늘에 기댄 칼 같고
萬戶無聲縮殼龜 만호무성축각구 죽은 듯 소리 없는 모든 집들은 등을 움추린 거북같네
隴看風高生氣勢 롱간풍고생기세 언덕 위 세찬 바람 위세도 당당하고
磯頭水落凍灣漪 기두수낙동만의 물이 준 낚시터는 얼어 붙었네
短籬爲訪梅消息 단리위방매소식 매화 소식 들으려고 울 밑을 찾았더니
玉笛何人月下吹 옥적하인월하취 누군가 달 아래서 옥피리 부는구나
亭乃吾曾王考掌令公奉大夫人遊衍之所也夫人年八十而終王父承旨公亦奉大夫人繼遊于此夫人年七十而終當時愛日之情戱彩之樂 정내오증왕고장령공봉대부인유연지소야부인년팔십이종왕부승지공역봉대부인계유우차부인년칠십이종당시애일지정희채지락 當如何哉而不肖無狀蚤罹風樹之痛先世緖業墜於吾身可勝歎哉頃於家藏文籍中得王父所製長律四首手澤宛然常以未及弄璋於膝下 당여하재이불초무장조리풍수지통선세서업추어오신가승탄재경어가장문적중득왕부소제장율사수수택완연상이미급롱장어슬하 爲悲詠其詩想儀形尤不勝悲愴遂書上板掛諸楣間以寓無窮之意云 위비영기시상의형우불승비창수서상판괘제미간이우무궁지의운 (隆慶壬申孟春上浣 孫箕報 謹識) 융경임신맹춘상완 손기보 근식 《苟全公13世孫 金 台東 옮겨씀》 |
정자는 나의 증조부 장령공께서 대부인을 모시고 즐겁게 노시던 곳으로 대부인께서 팔십세에 돌아가시니
할아버지 승지공께서도 역시 대부인을 모시고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셨다.
대부인께서 칠십세에 돌아 가셨는데 당시 시간을 아끼어 잠시도 효양을 게을리하지 않는 정과 오색 색동옷을 입고
어린애처럼 행동하여 어버이를 즐겁게 하였으니 어떠 했겠는가.
못난 나는 이런 선조들을 닮지 못하고 일찍이 어버이를 여이는 고통을 당하여 선대께서 시작하신 일들이 나한테서
끊어지게 되니 안타까움 견딜 수 없도다.
근래 집에 소장중인 문적 중에서 할아버님께서 지으신 장율시 네수를 발견하였는데 할아버님의 손때가 완연히 묻어 있었다.
항상 슬하에 아들을 보지 못함을 비통해 하였는데 그 시를 읊으며 위의 있으셨던 모습을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상하고
슬퍼짐을 감당할 수 없어 현판에 적어서 문미에 걸어두어 무궁한 뜻을 덧붙이 도다.
西紀 1972年 正月 初旬 기보 삼가 쓰다.
(註)
*김영(金瑛):조선 중종조.호는 삼당(三塘),司馬試 문과급제.사인(舍人),승지(承旨),이참(吏參),강원도관찰사(江原道觀察使),
향(享) 역양서원(嶧陽書院),사헌부장령을 지낸 영수의 아들. 소신무오제현원(䟽伸戊午諸賢寃).
*김기보(金箕報):삼당(三塘) 영(瑛)의 손자.퇴계(退溪).성청송(成聽松) 문하.회인현감(懷仁縣監),향(享) 역양서원(嶧陽書院),
효절공(孝節公) 이현보(李賢輔)의 손서(孫婿)
삼구정팔영(三龜亭八詠) 김상용(金尙容)
芙蓉一朶聳晴空 부용일타용청공 연꽃 한 떨기가 맑게 갠 하늘에 우뚝 솟아
縹緲雲烟望眼中 표묘운연망안중 구름과 안개 속에 아득하구나
安得御風凌絶頂 안득어풍능절정 어찌하면 바람타고 산꼭대기 올라가서
俯看紅日上天東 부간홍일상천동 동천에 떠 오르는 아침 해를 내려다 볼 수 있을는지
학교청봉(鶴嶠晴峯)
削立巉巉石骨靑 삭립참참석골청 깍아지른 험한 산 돌 모양새 푸르르고
天工活畵妙難形 천공활화묘난형 그림 같은 자연의 오묘함 형상키 어렵네
朝朝對臥看眞面 조조대와간진면 아침마다 누워서 그 모습 바라보면
絶勝元暉水墨屛 절승원휘수묵병 아침 햇살 속의 절경은 수묵화 병풍이더라
마애초벽(馬崖峭壁)
淸明花柳暗前村 청명화류암전촌 맑고 맑은 꽃과 버들 앞 마을에 그윽하고
滿眼韶光正斷魂 만안소광정단혼 무르익은 봄 풍광에 내 마음 설레이네
靑旆誰家誇酒美 청패수가과주미 뉘 집에서 푸른 기 걸어두고 술맛 좋다 자랑하나
欲乘新月夜敲門 욕승신월야고문 초생달 뜨는 밤이 오면 그대 집 찾으리라
현리연화(縣里烟花)
蒼髥鬱鬱遶山罔 창염울울요산망 울창한 소나무 산 언덕에 둘러있고
爽籟遙聞夏亦凉 상뢰요문하역량 멀리서 들려오는 상쾌한 바람소리 여름에도 시원하네
勁節本來凌虐雪 경절본래능학설 굳센 절개는 본래 모진 눈도 이겨내니
肯隨桃雲眼底平 긍수도운안저평 봄볕에만 곱게 꽃 피는 도리(桃李)를 따르려 하겠는가
역동한송(驛洞寒松)
霜落江鄕萬穀成 상락강향만곡성 강변 마을에 서리 내리니 오갖 곡식 여물고
村村蕭鼓賽神聲 촌촌소고새신성 마을마다 풍악 울리며 신에게 제사 올리네
扶笻縱眺斜陽外 부공종조사양외 지팡이 의지하여 석양넘어 멀리 바라보니
十里黃雲眼底平 십리황운안저평 눈아래 십리에 걸친 들판에는 누런벼가 바람에 출렁이더라
장교관가(長郊觀稼)
桃花晴浪鱖魚肥 도화청랑궐어비 복사꽃 떠 내려가는 비개인 강물에 쏘가리는 살이 쩠고
小艇撑來疾若飛 소정탱래질약비 작은 배 저어가니 날으는듯 빠르구나
日暮沙頭爭擧網 일모사두쟁거망 해 저무는 모래톱에서 다투어 그물쳐서
滿筐收得雪鱗歸 만광수득설린귀 광주리 가득 물고기 잡아 돌아오는 발길이네
곡저타어(曲渚打魚)
赤日當中草木焦 적일당중초목초 붉은 해가 한낮이 되니 초목들은 시들고
塵寰無處脫煩歊 진환무처탈번효 이 세상엔 찜통더위 벗어날 곳 없더라
憑欄斗覺風生腋 빙난두각풍생액 난간에 기대서니 갑자기 주위에 바람 불어와
快若乘雲上玉霄 쾌약승운상옥소 구름타고 하늘에 오르는 듯 상쾌하구나
삼복피서(三伏避署)
碧落烟消桂影斜 벽낙연소계영사 푸른 하늘에 운무 걷히니 달 그림자 기울고
星河收彩露凝華 성하수채로응화 은하수는 아름답고 꽃송이엔 이슬이 엉기네
人間一樣今宵月 인간일양금소월 오늘밤 달이 인간에겐 여느 때와 같으련만
箇裏淸光分外多 개리청광분외다 저 달속의 맑은 빛 유난히도 밝구나
중추완월(仲秋翫月)
(註)
*김상용(金尙容):명종16년~인조15년. 문신(文臣),호는 선원(仙源),시호는 문충(文忠),본관은 안동,
평양서윤(平壤庶尹),번(璠)의 종손,도승지(都承旨),대사헌(大司憲),형,예조,이조판서,우의정을 역임.
병자호란(丙子胡亂)때 묘사(廟舍)를 모시고 강화도(江華島)에 갔으나 강화성이 함락되자 화약에
불을 질러 손자와 자결했다. 좌의정(左議政)을 지낸 상헌(尙 憲)은동생.장유(張維)는 사위다.
등삼구정감회부시(登三龜亭感懷賦詩) 김상헌(金尙憲)
奉簡族子 金子醇 (希孟) 昆李兼示里中諸戚侍 (二首)
봉간족자 김자순 (희맹) 곤이겸시리중제척시 (이수)
삼구정에 올라 지난 감회에 젖어 시를 짓다.
아울러 친족 김자순(희맹)형제의 서찰을 가지고 와 마을의 여러 친척들을 모시고 보여 드리다.
先人遺搆此亭存 선인유구차정존 선조들이 이 정자 지어 물려 주셨고
扶護相傳有子孫 부호상전유자손 자손들은 서로 도우며 살아가네
三面江山環遠近 삼면강산환원근 삼면원근(三面遠近)엔 강과 산이 둘러있고
四時鄕黨酌卑尊 사시향당작비존 사철 마을에선 존비(尊卑)간에 주연 베푸네
流風可繼今爲美 유풍가계금위미 선조들이 남기신 좋은 풍습 이을 수 있어 지금도 아름다운지고
厚誼寧忘古所敦 후의영망고소돈 옛날의 돈독했던 정의를 어찌 잊을소냐
千里獨來增感慨 천리독래증감개 천리 길 홀로 와 감개 무량하고
白頭登望一傷魂 백두등망일상혼 늙은 몸 정자에 올라 바라보니 가슴 저미는구나
百年喬木老風霜 백년교목노풍상 백년된 높은 나무 풍상에 늙었고
十畝淸陰擁一堂 십무청음옹일당 넓다란 맑은 그늘 정자를 빙 둘렀네
從古地靈生此國 종고지영생차국 예부터 이 나라는 지형이 수려한데
至今形勝擅吾鄕 지금형승천오향 지금까지 내 고향 절경이 으뜸일세
平泉花石猶堪惜 평천화석유감석 산수의 경치는 애석한 이 마음 견딜 수 있게하고
防墓松楸可忍傷 방묘송추가인상 묘지에 두른나무는 상한 마음 참을만 하게 하네
鶴嶠未平江未陸 학교미평강미륙 학가산과 낙동강은 의구(依舊)한데
共看龜算與俱長 공간구산여구장 어버이의 거북과 같은 장수 하심과 이 강과 산의 장구(長久)함을 함께 보게 될 것이다.
(註)
선묘금초지사공점해이경연급지(先墓禁樵之事恐漸解弛頸聯及之)
선조들의 묘역에서 나무 하는 것을 금한 일이 점점 해이해 지는 것이 두려워 경련(五.六구)에서 언급하다.
안동부백치작휴기도삼구정취음이귀(安東府伯治酌携伎到三龜亭醉飮而歸)
안동부사가 광대를 데리고 와서 주연을 베풀어 취하도록 마시고 돌아가다.
哀絲白日動華堂 애사백일동화당 석양에 슬픈 가락의 거문고 소리 마루에 진동하고
颯颯淸秋爽氣凉 삽삽청추상기량 바람부는 맑은 가을 상쾌하고 시원하네
蕭散野人陶隱逸 소산야인도은일 조용하고 한가한 야인은 숨어 살기를 즐기고
風流太守漢循良 풍류태수한순양 풍유객 태수는 고을을 어질게 다스리는 사나이로세
樽前一笑羈懷破 준전일소기회파 술잔 앞 웃음은 나그네 회포 풀어주고
醉後高談故態狂 취후고담고태광 취한 뒤 떠드는 소리 짐짓 미친척 함이로다
千里逢迎眞邂逅 천리봉영진해후 천리 길손 영접하여 참으로 즐거워하니
映湖官路莫愁長 영호관로막수장 안동의 벼슬길 오래 시름하지 말라
(註)
*김상헌(金尙憲):선조3년~효종3년.조선중기의 학자,자는 숙도(叔度),호는 청음(淸陰),본관은 안동,시호는 문정(文正),
윤근수(尹根壽)의 문하로서 문과 중시(重試)급제,대사간(大司諫),대사헌(大司憲),대제학(大提學),
예조판서(禮曹判書),좌의정(左議政),병자호란(丙子胡亂)때 비변사당상(備邊司堂上)을지냈고
청(淸)과 화의가 성립된후 삼년 동안 만주 심양(瀋陽)에 잡혀가 모진 심문을 받아도 그 뜻을 굽히지 않아
청인 들도 그의 충절(忠節)에 감동하였음.효종묘정(孝宗廟庭)에 배향(配享)되었음.
전국 열 곳의 묘(廟),사(祠),서원(書院)에 배제향(配祭享)되다.
*김자순(金子醇):자순은 희맹(希孟)의 자(字),조선 인조시대 봉선전(奉宣殿) 참봉(參奉),
*영호(映湖):안동을 지칭하는 또 다른 이름.지금 안동시내 영호루(映湖樓)가 있다.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다.
역동성묘증종인 (이수)驛洞省墓贈宗人 (二首) 김창흡(金昌翕)
역동산소 성묘를 마치고 종인에게 두 수를 드린다.
雨露松湫下 우로송추하 우로는 송추에 내리고
春風花樹前 춘풍화수전 춘풍은 화수에 불도다
居然昭穆列 거연소목열 조상의 묘소가 나란히 열지어 모셨는데
懿此籩豆圓 의차변두원 제수 차림이 훌륭하구나
行葦章堪斷 행위장감단 짦은 글 짓는 일은 그만 둘 수 있지만
思亭戒敢損 사정계감손 정자를 사모하는 마음 버릴까 조심되며
倠歸慚我薄 휴귀참아박 서둘러 돌아온 나의 경박함 부끄러워
惆悵向南阡 추창향남천 쓸쓸히 천리길 남쪽 하늘 바라본다
一人行路易 일인행로역 한 사람이 길 가기는 쉬운 것이나
千里識顔難 천리식안난 천리 밖의 사람 알기는 어렵도다
卽異須求合 즉이수구합 타향의 늙은이가 모이기를 청하니
相逢且罄懽 상봉차경환 서로 만나 다들 기뻐하는구나
瞻岡懷蔭汪 첨강회음왕 산마루 바라보며 넓고 깊은 조상음덕 생각하고
促席問飢寒 촉석문기한 가까이 다가앉아 안부를 묻기도 한다
立馬龜亭下 입마구정하 삼구정 아래 말을 세우니
含情是鶴巒 함정시학만 학가산 풍정(風情)이 아름답구나
星環先壟幾家留 성환선농기가유 선영을 별처럼 둘러싼 집들은 몇호나 되며
力護松楸各自謨 역호송추각자모 산소 수호에 각자가 힘을 쓰는구나
慚愧洛中諸後裔 참괴낙중제후예 고향의 모든 후손들은
安眠不作火樵愁 안면불작화초수 송추(松楸)를 땔감으로 쓰일까 걱정하지 않고 편히 잠자는 걸 부끄러워하라
老樹交花鳥對鳴 노수교화조대명 노목에 꽃 피고 새 울 때
鶴山迢遞綠蕪平 학산초체록무평 푸르름 짙은 학가산은 아득하구나
三龜亭上風吹袂 삼구정상풍취몌 삼구정에 오르니 소매에 바람은 불고
不盡宗人惜別情 불진종인석별정 일가 종인들은 석별의 정을 다하지 못한다
此吾曾王考三淵先生詩也壬子春安東宗人養根瞻示之敬讀數四惜其原本無傳謹寫以揭 曾孫 履鏞
차오증왕고삼연선생시야임자춘안동종인양근첨시지경독수사석기원본무전근사이게 증손 이용
이글은 나의 증조부님 삼연선생(三淵先生)의 시(詩)인데 임자년 봄에 안동의 일가 양근씨가 베껴보여 주기에
여러 번 읽고 그 원본이 전하지 않음을 애석히 여기며 삼가 베껴 걸어 두도다.
(註)
*삼연선생(三淵先生):김창흡(金昌翕)의 호.1653년(효종4).학자.시호는 문강(文康),영의정(領議政),수항(壽恒)의 아들.
창집(昌集)의 아우.이단상(李端相)의 門人.
성리학(性理學)에 능하여 兄 농암(農巖)과 더불어 덕업과 명성이 높았음.
*김양근(金養根):호는 동야(東埜).영조39년(1763)사마시(司馬試),증광문과급제(增廣文科及第,병조랑관(兵曹郞官),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현풍현감(玄風縣監),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형조참의(刑曹參議)를 지냄.
*김이용(金履鏞):조선 영조(英祖),문과(文科),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
여제종회작삼구정(與諸宗會酌三龜亭) 김성후(金盛後)
여러 종인들과 삼구정에 모여 주연을 베풀다.
俱是同根出 구시동근출 모두가 한 뿌리에서 태어 났으나
如今識面新 여금식면신 지금 초면 이구려
良辰開曲宴 양신개곡연 좋은 때를 맞아 조촐한 잔치 벌려
樂事叙天倫 낙사서천륜 천륜의 정 나누어 즐거운 일이로다
序坐行年較 서좌행년교 차례대로 앉아 나이를 따져 보기도 하고
論懷世德陳 논회세덕진 대대로 이어온 지난날의 덕화를 담론도 해보니
義均踈與戚 의균소여척 그 뜻은 다 같으나 친척들간 소원하니
相率勗敦仁 상솔욱돈인 서로 본받아 정이 도탑고 인자한 사람이 되길 힘쓰자
(註)
*양신(良辰):좋은 때.좋은 날.또는 봄의 계절.
*세덕(世德):대대로 쌓아 내려오는 아름다운 덕.
*김성후(金盛後):조선 효종시대.감찰(監察)을 지냄.휴암공후(休庵公后).
근차삼구정판상운(謹次三龜亭板上韻) 김면행(金勉行)
삼구정 현판의 운(韻)자를 써서 삼가 짓다.
萱圍榮奉艶當時 훤위영봉염당시 어머님을 영화롭게 모시던 그때가 아름답고
比邑聯符日讌嬉 비읍연부일연희 이웃 고을 잇달아 상서로운 일로 날마다 즐거운 잔치로세
華搆一亭飛彩翬 화구일정비채휘 화려하게 지은 정자는 아름다운 궁전 같고
物形三石峙靈龜 물형삼석치령구 신령스러운 거북 모양의 돌 세 개가 우뚝 서 있네
雲孫十世拚徽躅 운손십세변휘촉 먼 후손들은 아름다운 선조들의 행적을 손뼉치며 기뻐하고
淇水千年漾舊漪 기수천년양구의 기수(淇水)는 천년 세월에도 옛처럼 훌렁이네
淸白傳家詩語在 청백전가시어재 청백리 정신을 대대로 물려준다는 말은 시구에 있고
遺風不盡古今吹 유풍불진고금취 후세에 남기신 훌륭한 교화의 바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불고있네
(註)
*김면행(金勉行):호는 강재(强齋),문과급제(文科及第),한성좌윤(漢城左尹),참판(參判).
*기수(淇 水):중국 하남성 임현(林縣)에서 발원하는 황하의 지류(강 이름).
삼구정지감(三龜亭志感) 삼구정 감회를 적다. 김영행(金令行)
三龜亭廢幾春秋 삼구정폐기춘추 삼구정이 황폐한지가 몇해나 되었던가
曾是先生杖屨遊 증시선생장구유 일찍이 선조께서 노시던 곳이라네
蕭瑟荒原無與語 소슬황원무여어 쓸쓸한 황야엔 말동무 하나 없고
夕陽啼鳥向人悲 석양제조향인비 석양에 새들은 사람 향해 슬피우네
(註)
*김영행(金令行):조선 현종시대 사람.호는 필운옹(弼雲翁),임천군수(林川郡守) 역임.
근차삼구정운(謹次三龜亭韻) 삼구정의 원운(原韻)을 써서 삼가 짓다. 김 이건(金 履健)
翼然新搆落成時 익연신구낙성시 날아갈 듯한 정자를 새로 지어서
每奉板輿極宴嬉 매봉판여극연희 매양 가마로 모시고 극진한 잔치 벌려 즐기셨네
檻外山如馳五馬 함외산여치오마 난간 밖 산 모습은 말 다섯 마리가 달리는 것 같고
亭前石類伏三龜 정전석유복삼구 정자 앞 돌은 세 마리의 거북이 엎드린 듯 하구나
四郊秋穫黃雲遍 사교추확황운편 가을걷이 하는 온 들판엔 누런벼 바람에 넘실거리고
一帶春江綠水漪 일대춘강록수의 한줄기 봄강엔 푸른 물결 출렁이더라
勝日登臨頻慰悅 승일등임빈위열 길일(吉日)에는 정자에 자주 올라 위로하고 기뻐하며
塤篪伯仲互相吹 훈지백중호상취 형제가 우애있게 피리를 불도다
(註)
*김이건(金履健):조선 숙종시대 사람.생원(生員) 이선치승통정(以善治陞通政),청주목사(淸州牧使), 영행(令行)의 아들.
*오마(五馬):태수(太守)의 수레는 다섯 필의 말이 끈다.
근차문충공선조팔영운(謹次文忠公先祖八詠韻) 선조 문충공의 팔경 운자를 서서 삼가 짓다.
鶴駕山高揷碧空 학가산고삽벽공 푸른 하늘 높이 솟은 학가산
螺鬟隱隱霽雲中 라환은은제운중 비 개인 구름 속 산 모습 희미하다
崢嶸一面看奇絶 쟁영일면간기절 가파른 그 모습 빼어난 절경이고
鎭壓茫茫大野東 진압망망대야동 망망한 광야 동쪽에 첩첩히 둘러있네
학교청봉(鶴嶠晴峯)
高崖絶壁一拳靑 고애절벽일권청 높은 벼랑과 절벽은 한 줄기 푸르름이고
隱映雲根似物形 은영운근사물형 은은하게 비친 산 봉우리는 사물의 형상일세
造化於焉多費力 조화어언다비력 자연의 조화에 어찌 많은 경비와 노력이 들었겠나
故敎蒼翠繞爲屛 고교창취요위병 원래 짙은 푸르름이 병풍처럼 둘러 있는 것일세
마애초벽(馬崖峭壁)
烟鎖春花何處村 연쇄춘화하처촌 봄 꽃에 안개 자욱하니 어드메가 마을인고
去來遊客喑銷魂 거래유객음소혼 오가는 나그네들 남몰래 넋을 잃네
一鄕風物繁華地 일향풍물번화지 온 마을은 경치가 번화한 곳
認是豊山故縣門 인시풍산고현문 알고보니 풍산의 고향 마을일세
현리연화(縣里烟花)
亭閣平臨驛洞崗 정각평임역동강 정자는 역동 언덕에 평화롭게 임해 있고
孤松翠色幾炎凉 고송취색기염량 외로운 푸른 솔은 얼마나 많은 세월을 겪었을까
後凋勁節凌霜雪 후조경절능상설 유속(流俗)에 따르지 않는 굳은 절개는 눈서리도 이겨내는데
不與春花競向陽 불여춘화경향양 그까짓 태양을 향하려고 꽃과 서로 다투지는 않는다네
역동한송(驛洞寒松)
洗鋤歌曲告西成 세서가곡고서성 노래하며 호미 씻어 오곡백과가 익었음을 알리나
處處田間擊壤聲 처처전간격양성 들녘 곳곳에선 격앙가 소리 들리는구나
暇日登亭觀稼好 가일등정관가호 한가한 날이면 정자에 올라 잘익은 벼 바라보면 아름다 정운지고
黃雲滿野一望平 황운만야일망평 눈 앞 들판에는 누런 벼 바람에 넘실 거리더라
장교관가(長郊觀稼)
洛東江曲鱖魚肥 낙동강곡궐어비 낙동강 강굽이에 쏘가리는 살이 쩠고
秋晩蘋洲葉正飛 추만빈주엽정비 늦가을 모래톱의 마름풀 잎새는 지금 막 떨어지네
野老爭携漁網去 야노쟁휴어망거 촌노들은 서로 다투듯 어망을 가지고 가더니만
腥鱗盈笱夕陽歸 성린영구석양귀 통발 가득히 고기 잡아 석양에 돌아오누나
곡저타어(曲渚打魚)
大火乾坤草木枯 대화건곤초목고 찌는듯한 더위에 이 세상 모든 초목은 시들고
蓬盧人似在紅爐 봉로인사재홍로 가난한 집 사람들은 불이 벌건 화로가에 있는 듯 하네
野中別有淸凉界 야중별유청량계 들 가운데 유별나게 맑고도 시원한 곳이 있어
高臥層欄暍病蘇 고와층난갈병소 높은 정자에 누웠으니 더위 먹은 병이 절로 낫는구나
삼복피서(三伏避署)
中秋河漢亘天斜 중추하한긍천사 한가위 은하수는 하늘에 비스듬히 걸쳐 있고
可愛亭前逗月華 가애정전두월화 정자 앞에 머무른 달빛 사랑할만 하네
四節豈無三五翫 사절기무삼오완 사계절 어느땐들 보름달이 없을까만은
今宵淸影一年多 금소청영일년다 오늘밤 맑은 달빛이 연중 가장 밝구나
중추완월(仲秋翫月)
(註)
*삼오완(三五翫):음력 보름 밤 달을 구경함.(삼오는 음력 보름날을 말함.)
*격양가(擊壤歌):풍년이 들어 농부가 태평한 세월을 즐기는 노래.
중국 당.요(唐.堯)때 태평한 생활을 즐거워 하여 불렀다고 함.
삼구정지감(三龜亭志感) 進退格 김달순(金達淳)
省楸有餘慕 성추유여모 성묘를 마치고 사모하는 마음 남아
斜日此亭盃 사일차정배 석양에 이곳이 머물러 술잔 가우리도다
林憶歌常棣 임억가상체 나무들은 형제들의 노래 소리 기억하고
石留度板輿 석유도판여 돌은 어버이를 모시던 가마를 생각하며 머물러 있네
江山自相護 강산자상호 강과 산이 정자를 보호해 주니
風雨不能頹 풍우불능퇴 비 바람도 무너뜨릴 수 없으리
遊子易生感 유자역생감 나그네란 돋잘 감회 이는데
登臨况歲除 등임황세제 하물며 세모에 찾았음이랴
(註)
*김달순(金達淳):호는 일청(一靑),시호는 익헌(翼憲),본관은 안동.정조14년(1790)증광문과(增廣文科)급제
이.병조판서,우의정(右議政),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초계문신(抄啓文臣)에 뽑혔으며,
1799년 진하부사(進賀副使)로 청(淸)나라에 다녀 왔음.
歷拜先塋日會話諸宗于三龜亭謹次板上韻 (二首)
역배선영일회화제종우삼구정근차판상운 (二首) 김학순(金學淳)
선영을 두루 참배 하던 날 삼구정에서 여러 종인들과 이야기 하며 현판의 운자를 써서 삼가 시를 짓다.
故家詩禮典型存 고가시예전형존 고향에는 자식이 어버이에게서 받는 교훈의 본보기가 남아있고
山下衣冠幾子孫 산하의관기자손 산 아래 귀인의 집안에는 자손이 몇이던가
雨露松楸增感慕 우로송추증감모 산소 주위의 비와 이슬에 젖은 나무들은 사모의 정 더 느끼게하고
春風花樹序卑尊 춘풍화수서비존 봄 바람 속에 일가들 높고 낮은 차례데로 앉아있네
生涯且問鄕居樂 생애차문향거락 늙으막에 다시 찾아온 고향 생활 즐거웁고
情話先修族誼敦 정화선수족의돈 정다운 얘기 속에 친족간 정분 두터워 지네
歸洛也應思此會 귀낙야응사차회 귀경하면 응당 이 모임 생각 나겠지
臨分回首暗銷魂 임분회수암소혼 이별에 즈음하여 고개돌려 넋 잃은채 슬픔에 젖는구나
우차청음선조운(右次淸陰先祖韻)우는 청음선조의 운자를 써서 짓다.
憶昔斯亭孝養時 억석사정효양시 이 정자에서 효성으로 어버이를 봉양하시던 옛날을 생각하니
春秋暇日供遊嬉 춘추가일공유희 봄 가을 한가한 날이면 즐거운 잔치 벌렸다네
三更舞月山如鶴 삼경무월산여학 한밤중 달빛 비치는 산은 학이 춤추는 듯 하고
千歲樓蓮石作龜 천세누연석작구 천년 세월을 돌은 거북이 되어 연잎에 깃들어 있네
皂蓋聯翩儀鼎列 조개연편의정열 수레 위 검은 일산 잇달아 펄럭이니 삼공의 거동이요
板輿伊軋渡彎漪 판여이알도만의 가마는 삐걱거리며 물굽이 건너 간다
小孫今奉南州檄 소손금봉남주격 소손은 지금 남쪽 고을에 부임하여
願續塤篪伯仲吹 원속훈지백중취 형제간 두터운 우애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네
우차김공극검원운(右次金公克儉原韻)우는 김공 극검의 운자를 써서 짓다.
(註)
*김학순(金學淳):호는 화서(華棲),시호는 문간(文簡),본관은 안동.증광문과(增廣文科)급제,
이조판서(吏曹判書),제학(提學),안동부사(安東府使),입기사(入耆社),숭정(崇政).
*김극검(金克儉):세종22년~연산군5년.본관은 김해.문과급제,대사헌(大司憲),안동부사(安東府使),청백리(淸白吏).
경화삼구정판상운(敬和三龜亭板上韻) 김양순(金陽淳)
삼구정 현판에 운자를 써서 삼가 화답하다.
一丘一壑宛前時 일구일학완전시 언덕과 구릉에는 지난 날이 완연한데
我祖何年此戱嬉 아조하년차희희 우리 선조 어느 해에 이곳에서 즐겁게 노셨을까
野濶晴巒來遠鶴 야활청만래원학 넓은 들 맑게 개인 산봉우리는 멀리서 학이 날아오는 것 같고
庭虛老石出靈龜 정허노석출영구 텅빈 뜰 오래된 돌은 신령스러운 거북이 나타났나 보다
詩如蟾月澄生魄 시여섬월징생백 시는 내 마음을 맑게 해주는 달과 같고
酒似春江綠漾漪 주사춘강록양의 술은 푸른 물결이 출렁이는 봄날의 강물과 같더라
車駟入閭猶有戒 거사입여유유계 화려한 수레타고 마을에 들어서니 오히려 조심스러운데
莫敎官角晩風吹 막교관각만풍취 대평소 불지마라 저녁 바람 불어 오나니
(註)
*김양순(金陽淳):조선 순조시대 사람.호는 건옹(健翁),사마시(司馬試).별시문과급제(別試文科及第),
대사성(大司成),대사헌(大司憲),이조참판(吏曹參判),수찬(修撰)을 역임.
구정팔경효금계집승정무산일단운체(龜亭八景效錦溪集勝亭巫山一段雲軆) 김양근(金養根)
삼구정 팔경을 금계 집승정 무산 일단운체를 모방해서 짓다
一朶芙蓉秀 일타부용수 한송이 연꽃이 높이 솟아
千堆琥珀空 천퇴호박공 호박같이 아름다운 하늘에 수 많은 봉우리 이루었네
霽天眞面曉嵐中 제천진면효람중 맑게 개인 날의 너의 참모습은 새벽 남기 속에 있고
仙鶴幾年風 선학기년풍 학은 얼마나 많은 세월을 바람을 맞았을까
濃淡雲猶濕 농담운유습 짙고 연한 산색은 구름이 젖은 것 같고
微茫月欲籠 미망월욕롱 흐릿한 모습은 마치 달 마저 같힐 것 같네
松杉洗出錦屛紅 송삼세출금병홍 비단 병풍을 두른 듯 나무들 붉게 물들어 새 모습인데
初日國師東 초일국사동 국사봉 동쪽에 아침 해 뜨는구나
학교청봉(鶴嶠晴峯)
鬼斧向年劚 귀부향년촉 먼 옛날 귀신의 도끼로 깍은 듯한 교묘한 세공인데
雲根百尺巍 운근백척외 산 봉우리 높이는 백척이나 되는구나
驚鸞出洞倒徘徊 경란출동도배회 놀란 난새는 골짜기에서 나와 거꾸로 재회하고
寶鑑碧天開 보감벽천개 아침 해는 푸른 하늘에 떠오르네
花爛春如畵 화란춘여화 꽃이 만발하면 봄경치 그림같고
楓丹晩更堆 풍단만경퇴 붉은 단풍잎이 해 질녘엔 산덤미처럼 쌓이기도 하네
房精化處翠屛恢 방정화처취병회 방성(房星별이름)의 정령이 변하여 다시 태어난 곳엔 푸른바위 넓적하고
點綴化翁才 점철화옹재 신선의 솜씨 여기저기 연이어 있구나
마애초벽(馬崖峭壁)
一氣氤氲處 일기인온처 대기는 화창하고
萬刑動蕩時 만형동탕시 만물이 약동하는 때
和飆先向縣門吹 화표선향현문취 부드러운 바람이 앞서서 마을을 향해 불면
花柳是佳期 화류시가기 꽃 피고 버들잎 돋아 때는 좋을시고
雨洗尖新葉 우세첨신엽 비는 뽀족한 새 잎을 씻어주고
鳥歌歷亂枝 조가역난지 새는 이 가지 저 가지 어지러이 오가며 지저귀네
太平遺迹未全衰 태평유적미전쇠 태평스러웟던 옛 자취 완전히 쇠하지는 안았고
烟月畫中奇 연월화중기 안개 낀 은은한 달빛은 빼어난 한폭의 그림이더라
현리연화(縣里烟花)
十丈龍髥鬱 십장용염울 열 길이나 되는 소나무는 울창한데
千年鶴骨癯 천년학골구 천년을 사는 학의 모습은 여위었구나
後凋精魄本來殊 후조정백본래수 굳은 절개 지키는 혼은 본래 남다르다
天籟自笙竽 천뢰자생우 바람 소리는 마치 피리 소리 같더라
流艶春笑逐 유염춘소축 지나치게 요염한 봄날은 비웃으며 물리치고
熇炎夏不虞 효염하불우 폭염의 여름도 걱정하지 않는다
連雲翠色若相須 연운취색약상수 구름에 맞닿은 푸른 빛은 재상의 얼굴 수염 같은데
留與棟樑需 유여동량수 남아 있는건 대들보로도 쓸만한네
역동한송(驛洞寒松)
霜落西郊逈 상낙서교형 멀리 서쪽 들녘엔 서리 내리고
鴻歸八月深 홍귀팔월심 기러기 돌아오니 팔월도 다 가는구나
田家作茫滿車金 전가작망만거금 농사 지은 농가의 수레엔 돈이 가득하고
伊軋響松陰 이알향송음 삐걱거리는 수레 소리는 솔 그늘에 울리네
婦戴靑簑笑 부대청사소 푸른 도롱이 두른 아낙네들 웃은 짓고
僧爭白酒斟 승쟁백주짐 스님은 막걸리를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따르는구나
村村蕭鼓賽神心 촌촌소고새신심 마을마다 퉁소 불고 북치며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인데
鼎小是何禽 정소시하금 솥이 적으니 무엇을 사로잡을꼬
장교관가(長郊觀稼)
藻弱眠晴渚 조약면청저 비 개인 물가에는 어린 마름풀 떠 있고
鷗閒戱暖沙 구한희난사 따뜻한 모래사장의 갈매기 한가롭구나
微風獵獵漾金波 미풍렵렵양금파 솔솔부는 미풍에 아름다운 물결 이는데
何事樂鱨鯊 하사낙상사 무슨 일로 물고기들 즐거워 하는고
笛散蘆間霧 적산로간무 안개 낀 갈대숲 속 피리소리 흩어지고
蓑披岸上楂 사피안상사 강 기슭 뗏목에서는 도롱이 걸치고 있구나
長竿在荷綠陰斜 장간재하록음사 어깨에 멘 낚싯대 녹음에 비껴 있으니
蕭洒此生涯 소세차생애 이 생애 실로 산뜻하고 깨끗하도다
곡저타어(曲渚打魚)
不有紅爐熱 불유홍로열 붉게 타는 화롯불이 없어
誰知月殿寒 수지월전한 월궁이 춥다는걸 누가 알리
碧筩閒倒倚虛欄 벽통한도의허난 낚시기구 잠시 제쳐두고 빈 난간에 기대서니
徑罷祝融官 경파축융관 여름의 신은 곧바로 물러가네
槐影秋猶遠 괴영추유원 홰나무 그늘에는 가을이 아직 멀었는데
蟬聲夏已殘 선성하이잔 매미 우는 여름은 이미 쇠잔하구나
風襟散盡日輪丹 풍금산진일륜단 옷깃을 스치는 바람에 붉은 햇빛도 다 흩어지니
睡味爽入肝 수미상입간 상쾌한 이 잠맛 간까지 스며 드는구나
삼복피서(三伏避署)
烟豁長天夜 연활장천야 탁 트인 골짜기에 안개 끼었고 하늘은 높은 밤
霜寒老雁秋 상한노안추 찬서리 내리고 늙은 기러기 날아오는 가을 이구나
婆娑桂影斗牛頭 파사계영두우두 잎이 무성한 계수나무 그림자는 북두성과 견우성 근처에 있고
淸暉散不收 청휘산불수 맑은 달빛 흩어져도 거두질 않는구나
萬頃靑銀海 만경청은해 넓고 넓은 은하는 푸르르고
千層白玉樓 천층백옥루 높디 높은 옥루는 희기도 하여라
嫦娥半笑上雲鉤 항아반소상운구 상아는 생긋이 웃으며 구름 사닥다리 타고 올라가
分外是吾逑 분외시오구 과분하게도 내 짝이 되었구나
중추완월(仲秋翫月)
(註)
*김양근(金養根):사람.호는 동야(東埜),본관은 안동.영조39년(1763)사마시(司馬試),증광문과(增廣文科)급제,
병조낭관(兵曹郎官),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현풍현감(玄風縣監),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형조참의(刑曹參議)를 지냈고 영남팔대문장가(嶺南八代文章家)로 명성이 높음.
*국사동(國師東):학가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를 국사봉이라 하고 국사봉 동쪽을 가리킴.
*파사(婆娑):춤추는 모양.옷자락이 날리는 모양.낫잎이 무성한 모양.
*효남중(曉嵐中):효(曉)는 세벽 동틀 무렵 남기(嵐氣)는 해질 무렵 멀리 보이는 푸르슴하고 흐릿한 기운.
*무산(巫山):중국 사천성 무산현(巫山縣) 동남 파산산맥의 수봉.산동성 파성현의 서북.
*상아(嫦娥):달에 산다는 미인 원래 예(羿)의 아내였는데 예가 서왕모에게서 얻은 불사약을 몰래먹고 신선이 되어
달로 달아나 달의 정(精)이 되었다 함.
원래는 항아였은자 한(漢) 문제(文帝)의 이름이 항(恒)이였음으로 상아로 고쳐 부름.
부록(附錄)
선고사헌부장령공부군행장(先考司憲府掌令公府君行狀) 公姓金諱永銖字積翁世爲安東大姓新羅苗裔也其先曰金宣平在高麗初有大功於太祖德加于民府人思之世世祀之不絶公卽其後也 공성김휘영수자적옹세위안동대성신라묘예야기선왈김선평재고려초유대공어태조덕가우민부인사지세세사지불절공즉기후야 高祖諱得雨中顯大夫典農正曾祖諱革修義校尉虎勇巡衛司右領卽將兼閤門奉禮郞祖諱三近宣敎郞比安縣監考朝散大夫漢城判官 고조휘득우중현대부전농정증조휘혁수의교위호용순위사우령즉장겸합문봉례랑조휘삼근선교랑비안현감고조산대부한성판관 諱係權娶崇政大夫藝文館大提學諡齊平公權孟孫女以正統十一年丙寅八月十九日生公于漢陽第公幼而魁偉寡言簡重人多奇之年 휘계권취숭정대부예문관대제학시제평공권맹손녀이정통십일년병인팔월십구일생공우한양제공유이괴위과언간중인다기지년 十三判官公捐舘公早孤隨慈氏就養于安東豊山里舍旣冠業武一擧不中蔭補軍職尋除義禁莩事時宣城君盧思愼爲判事益城君洪 십삼판관공연관공조고수자씨취양우안동풍산리사기관업무일거부중음보군직심제의금부도사시선성군노사신위판사익성군홍 應爲知事公性精敏練達吏事凡獄詞供牒裁之如流嘗具案以進于堂上則二公必曰此莫是金都事供牒乎不復加省卽上聞其信重如此 응위지사공성정민연달리사범옥사공첩재지여유상구안이진우당상칙이공필왈차막시김도사공첩호불복가성즉상문기신중여차 常以公事謁于益城迎入臥內公事畢留與之飮歡甚無厭公之甥曰花川君權瑊會于朝二公詣花川譽之甚自喜其下官之得人也由是名 상이공사알우익성영입와내공사필유여지음환심무염공지생왈화천군권감회우조이공예화천예지심자희기하관지득인야유시명 著于朝擢爲司憲府監察居數月以親老乞外調尙州判官尙卽慶尙一道之衝也使華賓客之來踰嶺以南咸道于是而之他州地大人衆公 저우조탁위사헌부감찰거수월이친노걸외조상주판관상즉경상일도지충야사화빈객지래유영이남함도우시이지타주지대인중공 務甚夥公應待賓客裁決公事咸善處之無怠益虔又日一朝于慈堂間起居具甘旨以養志焉治三年民順而容頌屬軍籍中有一字舛誤朝 무심과공응대빈객재결공사함선처지무태익건우일일조우자당간기거구감지이양지언치삼년민순이용송속군적중유일자천오조 廷擧法貶官時廣陵君李克培爲觀察使餞證考使達城君徐居正于州宴酣貶其自京至二公咸罷席曰失一賢守也歎惜無巳公卽辭于二 정거법폄관시광릉군이극배위관찰사전증고사달성군서거정우주연감폄기자경지이공함파석왈실일현수야탄석무사공즉사우이 公將還鄕里二公留之飮一日明日又留之公單騎馳來二公不得强一州皆涕爭願留焉公就壟畝奉養大夫人力耕而食年三十有二矣居 공장환향리이공유지음일일명일우유지공단기치래이공부득강일주개체쟁원유언공취롱무봉양대부인역경이식년삼십유이의거 二年歸京師時天使鄭通來公主餉具周旋措置有善譽復除義禁府經歷俄遷都摠莩事又中樞莩事復乞外出爲盈德縣令盈之爲邑 이년귀경사시천사정통래공주향구주선조치유선예복제의금부경력아천도총부도사우중추부도사복걸외출위영덕현령영지위읍 岸大海地僻民嚚吏又驕悍難治觀察使之按行歲一至焉以故縣令布政嚴則吏民伺過訴于觀察使觀察使莫知令之賢否考當殿由是令 안대해지벽민은리우교한난치관찰사지안행세일지언이고현령포정엄칙리민사과소우관찰사관찰사막지영지현부고당전유시령 之嚴明者無全庸愚者畏懦因循不治者幾四十餘年公始至吏雁鶩行進退俯伏不中禮慢不加敬令出民不奉行公廉以持身信以示民賦 지엄명자무전용우자외나인순불치자기사십여년공시지이안목행진퇴부복불중예만불가경영출민불봉행공염이지신신이시민부 斂均平威惠幷著吏民莫敢動得吏民之尤無良不聽令者罪之大修鄕校又設黨庠聚童蒙敎訓之吏民始而怪之中而化之終而翕然大和 렴균평위혜병저리민막감동득리민지우무량불청령자죄지대수향교우설당상취동몽교훈지리민시이괴지중이화지종이흡연대화 時値乙巳凶斂餓殍相望至有人相食公不遑暇食巡行部內道遇餓人以糜粥飮之若父母之保護赤子一色全活莫有餓死者賑恤使八境 시치을사흉렴아표상망지유인상식공불황가식순행부내도우아인이미죽음지약부모지보호적자일색전활막유아사자진휼사팔경 按之以聞於朝廷朝廷陞階褒之及期滿超遷內瞻寺僉正將還吏民父老皆垂涕至今稱頌不置來京師一年朝廷將修鍾樓衆議擧公敏於 안지이문어조정조정승계포지급기만초천내첨시첨정장환리민부로개수체지금칭송불치래경사일년조정장수종루중의거공민어 事移拜繕工監僉正俄陞司憲府掌令又轉爲司饔院僉正尙衣院僉正尋移通禮院奉禮又求外補拜永川郡守莅政廉公吏民稱平治未究 사이배선공감첨정아승사헌부장령우전위사옹원첨정상의원첨정심이통례원봉례우구외보배영천군수리정염공리민칭평치미구 以罪罷官復居豊山日侍大夫人以相娛樂時大夫人年八十餘矣公朝夕侍膳衣不解帶先是宅之東有茅茨架亭下瞰洛水景物無比公一 이죄파관복거풍산일시대부인이상오락시대부인년팔십여의공조석시선의불해대선시택지동유모자가정하감낙수경물무비공일 日登陟回望愀然曰是我奉親之所今親老不樂後雖有華屋列鼎無與爲娛徒悔恨無窮也然茅茨不稱又狹小難居卽以書告于伯兄伯兄 일등척회망초연왈시아봉친지소금친노불락후수유화옥열정무여위오도회한무궁야연모자불칭우협소난거즉이서고우백형백형 曰是吾志也多與錢助之乃大闢營治五彩以華極閎敞名三龜其下循溪以南植柳數十株又於閒曠地種栗以侈之每佳節以板輿扶侍大 왈시오지야다여전조지내대벽영치오채이화극굉창명삼구기하순계이남식유수십주우어한광지종율이치지매가절이판여부시대 夫人日遊於此諸伯氏仲氏姉妹耆舊皆從烹羔炰鮮擊鼓鳴琴迭起爲壽鄕黨榮之道路過者瞻仰咨嗟時叅判金克儉爲府使聞而美之時 부인일유어차제백씨중씨자매기구개종팽고포선격고명금질기위수향당영지도로과자첨앙자차시참판김극검위부사문이미지시 登玆亭爲壽畢歌詠其事以頌之歲丙辰冬大夫人捐館舍公哀毁過禮居廬三年計供喪事外未嘗一至于家旣服闋二年朝廷以西方置傳 등자정위수필가영기사이송지세병진동대부인연관사공애훼과례거려삼년계공상사외미상일지우가기복결이년조정이서방치전 殘弊爲憂僉曰撫存蘇服非公莫可復起公秩正三品爲察訪金郊道公曰西方地卑濕瘴癘侵加人壽不長南人莫宜居然吾廢棄多年 잔폐위우첨왈무존소복비공막가복기공질정삼품위찰방김교도공왈서방지비습장려침가인수불장남인막의거연오폐기다년 主上幸擢爲高秩以寵榮之今若辭焉是忝辱 君命也况事不辭難臣之職也敢不蚤夜匪懈以勉乃事卽馳赴旣至按驛之故凡弊於事者 주상행탁위고질이총영지금약사언시첨욕 군명야황사불사난신지직야감불조야비해이면내사즉치부기지안역지고범폐어사자 盡革去之先是西方戌徼武將歲一相代凡往來所過諸驛具芻糧食飮之國之故也由是武將年少豪悍不畏法亂擊驛吏豊其供具以威劫 진혁거지선시서방술요무장세일상대범왕래소과제역구추양식음지국지고야유시무장년소호한불외법난격역리풍기공구이위겁 脅之吏卒困若逃遁流亡所過騷然察訪不能禁又赴京使臣一歲中正朝 聖節千秋凡三度往過焉其子弟軍官多持貨寶依憑國之貢獻 협지이졸곤약도둔유망소과소연찰방불능금우부경사신일세중정조 성절천추범삼도왕과언기자제군관다지화보의빙국지공헌 濫發驛馬竊載無數雖臺官從以撿劾不能止公下令諸驛曰凡所過賓客有不如法濫暴驛吏者卽報于我我將上聞衆訴然諾之得犯法者 람발역마절재무수수대관종이검핵불능지공하령제역왈범소과빈객유불여법람폭역리자즉보우아아장상문중소연낙지득범법자 數人聞于朝罪之過賓恐懼加敬莫敢犯驛路按堵流亡稍復又黃海一道地瀕海山多獸居民鮮少原陸川澤之間草木叢蔚麋鹿豹羆熊麕 수인문우조죄지과빈공구가경막감범역로안도유망초복우황해일도지빈해산다수거민선소원륙천택지간초목총울미록표비웅균 獐狐兎之屬千百爲群兟兟林野是故前此爲察訪者樂於獵獸之娛廢棄公事駈驛卒騁逸騎馳騖山阪擊逐禽獸由是馬極人弊公始至聞 장호토지속천백위군신신림야시고전차위찰방자락어렵수지오폐기공사구역졸빙일기치무산판격축금수유시마극인폐공시지문 之卽罷之吏卒懷樂馬肥且大賓客騰頌是年秋大水饑公啓于朝日年饑賓客供用不足驛人將不堪奈何 上乃下其啓戶曹其賜豆三百 지즉파지이졸회락마비차대빈객등송시년추대수기공계우조일년기빈객공용부족역인장불감내하 상내하기계호조기사두삼백 石又鹽百石又 啓于朝日大同道三戶出馬一匹一舘馬凡五十匹是故馬多而人力紓臣所管之道一戶出馬一匹一站馬凡二十五匹是 석우염백석우 계우조일대동도삼호출마일필일관마범오십필시고마다이인력서신소관지도일호출마일필일참마범이십오필시 故馬少而人力困加以頻年凶荒癘疫相尋流亡殆盡請如大同道館軍例 詔曰可以故宗簿寺正李世傑承 命而往括民丁以實之又報 고마소이인력곤가이빈년흉황려역상심유망태진청여대동도관군예 조왈가이고종부시정이세걸승 명이왕괄민정이실지우보 于觀察使曰館舍僻陋無以待賓客明年王臣來其何以館接乃伐材陶瓦將治之未幾觀察使公撿沿海鹽竃公並海以西中瘴毒以壬戌七 우관찰사왈관사벽누무이대빈객명년왕신래기하이관접내벌재도와장치지미기관찰사공검연해염조공병해이서중장독이임술칠 月二十日來于金郊站年五十七四隣聞之哭之慟弔其孤賻贈有加諸孤奉柩達于京師所過郡縣皆於路祭之朝廷贈米豆十石紙二十卷 월이십일래우김교참년오십칠사인문지곡지통조기고부증유가제고봉구달우경사소과군현개어노제지조정증미두십석지이십권 又使禮官祭之八月賃船將發京師京師之大夫士多來祭之乃沂于漢泊忠州南踰鳥嶺還豊山故里權厝於驛洞先塋之側明年三月三日 우사예관제지팔월임선장발경사경사지대부사다래제지내기우한박충주남유조령환풍산고리권조어역동선영지측명년삼월삼일 庚午葬于祖墓白虎東向之原公爲人性寬裕且毅美鬚髥善儀容身長八尺與人言笑侃侃不厭仁於親戚信於朋友處大事決大疑勇以敏 경오장우조묘백호동향지원공위인성관유차의미수염선의용신장팔척여인언소간간불염인어친척신어붕우처대사결대의용이민 莅職謹昧爽盥濯早衙親事日入乃罷又善射御圍棊音律以至烹飪工匠之事靡不精諸書畵亦有楷法嘗得晉帖法而書之數千餘度少時 리직근매상관탁조아친사일입내파우선사어위기음율이지팽임공장지사미불정제서화역유해법상득진첩법이서지수천여도소시 雖不讀書筮仕以來耳聞目見輒得不忘記聞甚愽凡簡牘吏文衆咸不及以故其所交遊盡文人長者公之自永貶歸也伯兄曰爾無患人不 수불독서서사이래이문목견첩득불망기문심박범간독리문중함불급이고기소교유진문인장자공지자영폄귀야백형왈이무환인불 我用當大吾所修利其器而竣其時爾學不廣此天詘爾以大其所受乎爾可讀吏未久而有用爾者矣公聞敎卽得綱目通鑑閱之無數公之 아용당대오소수이기기이준기시이학불광차천굴이이대기소수호이가독이미구이유용이자의공문교즉득강목통감열지무수공지 兄弟五人姉妹六人公居未焉伯兄出家爲 世廟師名振一世名學祖仲叔皆有名於世家有大事諸兄咸屬公處之嘗誡諸子曰吾蚤孤豢 형제오인자매육인공거미언백형출가위 세묘사명진일세명학조중숙개유명어세가유대사제형함속공처지상계제자왈오조고환 養未能讀書習文不達於政以至於老爾曺無若乃翁然日加訓飭皆就法度又嘗語諸子曰吾仕宦三十年未嘗有愆德俯仰無怍吾子孫必 양미능독서습문불달어정이지어노이조무약내옹연일가훈칙개취법도우상어제자왈오사환삼십년미상유건덕부앙무작오자손필 有建門戶者治家嚴且雍每雞鳴整襟而坐終日無怠色堂室衎衎婢僕欣欣子弟敦詩書女婦務織紝力農奉祭祝享賓客斥其餘以與隣里 유건문호자치가엄차옹매계명정금이좌종일무태색당실간간비복흔흔자제돈시서녀부무직임역농봉제축향빈객척기여이여린리 貧乏者雖愚賤之人未嘗慢易之鄕黨推以爲長以糾正風俗爲長數年一鄕大治每於春秋令節大會不老于鄕射堂以講信如古之鄕射禮 빈핍자수우천지인미상만역지향당추이위장이규정풍속위장수년일향대치매어춘추영절대회부노우향사당이강신여고지향사예 焉衆以爲美談公年二十五娶中直大夫綾城縣令金愽之女生四男四女男長曰瑛中乙卯進士娶金光礪女生二男幼次曰璠中戊午進士 언중이위미담공년이십오취중직대부능성현령김박지녀생사남사녀남장왈영중을묘진사취김광여녀생이남유차왈번중무오진사 娶判官洪傑女生一女幼次曰璦曰瑒璦未娶瑒年十三能通詩書善書法先公一歲而死女長適金磁子延孫生三男一女皆幼次適縣監金 취판관홍걸녀생일녀유차왈애왈창애미취창년십삼능통시서선서법선공일세이사녀장적김자자연손생삼남일녀개유차적현감김 禮生子胤宗生一女幼次適縣監琴啓子元壽餘幼 예생자윤종생일녀유차적현감금계자원수여유 (弘治十六年癸亥三月 日 孤子 瑛. 璠 撰) 홍치십육년계해삼월 일 고자 영. 번 찬 《苟全公13世孫 金 台東 옮겨씀》 |
선고 사헌부 장령부군 행장(先考司憲府掌令公府君行狀)
공(公)의 성은 김씨(金氏)이고 휘(諱)는 영수(永銖)요 자는 적옹(積翁)이시니 대대로 안동(安東)의 대성(大姓)으로
신라(新羅)의 후손이시다.
선조는 김선평(金宣平)이시니 고려(高麗) 초에 있어서 태조(太祖)에게 큰 공(功)을 세웠고 백성들에게 덕을 베풀어서
마을 사람들이 사모하여 대대로 끊이지 않고 제사 지내었다.
공은 곧 그의 후손이시다.
고조(高祖)의 휘(諱)는 득우(得雨)이시니 중현대부(中顯大夫) 전농정(典農正)이고
증조(曾祖)의 휘(諱)는 혁(革)이신 수의교위(修義校尉)호용순위사(虎勇巡衛司)우영낭장(右領郎將)겸
합문봉예랑(閤門奉禮郞)이다.
할아버지의 휘(諱)는 삼근(三近)이시니 선교랑(宣敎郞) 권맹손(權孟孫)의 따님에게 장가 가시어
정통(正統) 십일년 병인(丙寅) 팔월 십구일에 서울 집에서 공을 낳으시다.
공은 어려서부터 출중하시고 말이 적었으며 간결 중후하시어 사람들이 거의 기특하게 여겼다.
십삼세에 판관공(判官公)이 돌아가시어 어머니를 따라 안동 풍산리 집에서 자랐다.
성인이 되어 무과(武科)를 익혔으나 한번의 과거에 합격이 되지 않아서 음덕(蔭德)으로 군직(軍職)에 보충(補充)되셨다가
곧 의금부(義禁府)도사(都事)를 받았다.
그때 선성군(宣城君)노사신(盧思愼)이 판사(判事)가 되었고 익성군(益城君)홍응(洪應)이 지사(知事)가 되어 있었다.
공의 천성이 정밀하고 민첩하여 관리(官吏)의 일에 통달하시어 모든 재판 서류에는 물 흐르듯 척척 결재하였다.
일찍이 안건을 갖추어서 당상(堂上)으로 올리면 두공(二公)은 반드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김도사(金都事)가 올린 안건이 아니냐』하고는 더 살피지도 않고 위에 보고하였으니
그 두터운 신임(信任)이 이와 같았다
일찍이 공사(公事)로 익성군을 뵈러 가니 내실(內室)로 맞아드리어 일이 끝나매 머물게 하여 술을 마시며 매우 즐거워하여
싫은 빛이 없었다.
공의 생질(甥姪)이『화천군(花川君)권감(權瑊)이 조회에 모여 있습니다』함에 두 분이 화천군에게 나아가니 하관(下官)으로
쓸만한 사람 얻은 것을 기뻐하여 매우 칭찬 하였다.
이로부터 이름이 조정에 드날려 사헌부(司憲府)감찰(監察)로 발탁되었다.
몇 달이 지나 어버이의 늙으심으로 해서 외직(外職)을 원하여 상주판관(尙州判官)이 되셨으니,
경상(慶尙)한 도(道)의 요충지(要衝地)이었다.
사신(使臣)이나 빈객(賓客)들이 새재(조령(鳥嶺)을 넘어서 남쪽으로 가게 되면 모두가 여기를 지나서 딴 고을로 가야하기
때문에 땅이 크고 사람이 많아서 공무(公務)가 매우 많은 곳이다.
공은 손님의 대접이나 공사(公事)의 결재에 있어서 모두 잘 처리하여 게으름 없이 더욱 경건하게 하였다.
또 하루에 한 번씩 꼭 어머니를 뵙고 거처의 편안함이나 음식의 맛을 물어 뜻으로 봉양하셨다.
군(郡)을 다스리기 삼년에 백성이 순종하고 빈객들은 칭송하였다.
그런데 군적(軍籍)에 계실 때에 한 자(字)의 잘못된 것이 있어서 조정에서는 법에 따라 관직을 물러나도록 하였다.
그때 광릉군(廣陵君)이극배(李克培)가 관찰사(觀察使)가 되어 있었고 달성군(達城郡)서거정(徐居正)은 증고사(證考使)로 와서
서거정을 전별(餞別)하려고 상주(尙州)에서 전별연을 베풀고 있었다.
술이 한참 무르익었을 때 면직(免職)의 소식이 서울에서 왔었다.
두공(二公)은 함께 자리를 물리고『현철(賢哲)한 군수 하나 잃었다』하면서 애석해 마지 않았다.
공이 곧 사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니 두 분이 만류하여 하루를 더 마시고 다음날 또 만류하니
공이 단기(單騎)로 달려 가셨다.
두 분이 억지로 말릴 수가 없었고 한 고을이 모두 울면서 다투어 더 머물러 달라 하였다.
공이 전원(田園)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봉양하며 힘써 농사하여 생활하니 나이 삼십이세 였다.
이년이 지나 서울로 돌아오니 그때 중국의 사신 정통(鄭通)이 왔다.
공에게 식사나 모든 주선을 조치하심이 잘되었다는 칭찬을 하였다.
그래서 다시 의금부(義禁府)경력(經歷)을 받으셨고 얼마 되지 않아 도총부(都摠府)도사(都事)로 옮기셨다.
다시 중추부(中樞府)도사로 전직되셨다가 외직을 원하여 영덕현령(盈德縣令)이 되셨다.
영덕은 큰 바다에 접해 있고 땅이 궁벽하여 백성은 어리석고 아전(衙前)들은 교만하여 다스리기 매우 어려웠다.
관찰사의 순찰(巡察)은 한 해 한 번 정도였으니 현령(縣令)의 통치가 엄하면 아전이나 백성들이 잘못을 캐내어 관찰사에게
고소하고 관찰사는 현령의 현부(賢否)는 알지도 못하면서 추궁하니 이래서 현명한 현령은 온전히 견디지 못하고 용열하고
어리석은 이는 두려워 인순(仁循)해서 다스려지지 않은지가 사십여년이 되었다.
공이 처음 오니 아전들의 태도나 질서가 제도와 예법에 맞지않고 오만하여 공손한 데가 없으며 명령이 내려도
백성들이 받들어 시행하려 하지 않았다.
공이 청렴된 몸가짐을 하며 신의로 백성을 대하고 수세(水稅)를 균등하게 하여 권위와 혜택이 고루 드러나게 하니
아전이나 백성이 감히 움직이지 못하였다.
이민(吏民) 중에서도 아주 불량(不良)스러워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는 죄를 주었다.
향교(鄕校)를 크게 수리하고 또 학교를 개설하여 어린이들을 모아서 가르쳤다.
아전이나 백성들이 처음에는 괴상히 여기더니 다음에는 감화되고 끝내는 흐뭇하게 어울렸다.
때마침 을사(乙巳)년의 흉년을 만나서 굶주려 죽는 자가 계속되어 심하면 사람이 서로 잡아먹는 수도 있었다.
공은 자신이 식사할 사이도 없이 부내(府內)를 순행(巡行)하다가 길에서 굶주린 사람을 만나면 죽이라도 먹이기를
부모가 어린 아기 보호하듯 하였다.
그럼으로써 한 읍이 온전히 살아남아 굶어 죽은 자가 없었다.
진휼사(賑恤使)가 경내에 들어와 살펴보고 조정에 알리니 조정에서는 승급으로 초상하였다.
임기가 끝나 내첨시(內瞻寺)첨정(僉正)으로 불러들이매 돌아가려 하니 이민의 부노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고
지금까지 칭송해 마지 않는다.
서울로 온지 일년만에 조정에서 장차 종루(鍾樓)를 수리하려 하는데 중의(衆議)가 공이 일 처리에 민첩하다 하여 천거함에
선공감(繕工監) 첨정으로 옮겼다가 곧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으로 승진하였다.
다시 사옹원(司饔院)첨정,상의원(尙衣院)첨정으로 전직되었다가 곧 통례원(通禮院)봉례(奉禮)로 옮기셨다.
다시 외직을 원하여 영천군수(永川郡守)에 보직되었다.
정사(政事)에 임하는 것이 청렴공직(淸廉公直)하니 이민(吏民)이 태평스러운 정치를 칭송하였다.
얼마 안되어서 죄로 파직(罷職)됨에 다시 풍산(豊山)에 돌아와서 거처하였다.
날마다 어머니를 모시고 서로 즐거워하시니 그때 어머니 나이는 팔십여세이셨다.
공이 아침 저녁으로 모셔 음식이나 의복을 손수 살피어 게을리 함이 없었다.
이보다 먼저 집 동쪽에 띠로 지은 정자가 하나 있어 아래로는 낙동강(洛東江)을 굽어 볼 수가 있으니 경물(景物)이
더 이상 비할 데가 없었다.
하루는 이 정자에 올라 바라보고 쓸쓸히 여겨『여기가 바로 내가 어버이를 모시던 곳인데 이제는 어버이가 늙으시어
즐기지 못하니 비록 화려하고 큰 집이 있다 하더라도 즐길것이 없으니 한갖 한스럽기 그지없다.
그런데 띠로 이음이 잘 되어 있지 못하고 또한 협소하여 거처하기가 어렵다.』하고는 곧 맏형님에게 편지로 알렸다.
맏형님도 이것이 바로 내 뜻이었다 하여 많은 돈을 주어 도왔다.
이에 넓혀짓고 오색(五色)으로 단청하니 호화스러운 큰 집이 되었다.
삼구정(三龜亭)이라 이름하고 그 밑 시내에 따라 남쪽으로 버드나무 수십 그루를 심고,
또 빈 땅에다 밤나무를 심어 사치를 피웠다.
계절이 좋은 때에는 가마로 어머니를 모시고 날마다 여기를 노니셨다.
백씨(伯氏).중씨(仲氏).자매(姉妹)뿐만 아니라 노인들이 모두 참여하여 고기를 삶고 풍류를 알리며 서로 헌수(獻壽)하니
온 마을이 영화로이 여겼다.
길을 지나가던 이들도 우러러 보고 부러워 하였다.
당시에 참판(叅判)김극검(金克儉)이 부사(府使)로 와 있으면서 소문을 듣고 찬미하여 가끔 이 정자에 올라 수(壽)를 빌며
이 사실을 노래하여 칭송하였다.
병진(丙辰)년 겨울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공의 슬퍼하심이 예(禮)에 지나칠 정도로 여묘(廬墓)에 계시며 삼년을 지내되
상사(喪事)이외의 일로는 한 번도 집에 가신 일이 없었다.
삼년상(三年喪)을 마친 뒤 이년 후에 조정에서 서방(西方)에 잔폐(殘廢)가 있음을 염려하여 모두 말씀하시기를
『산 사람을 매만져 주고 다시 소생하게 하려면 공이 아니고는 아무도 할 수 없다.』하여 다시 공을 기용하고
정삼품(正三品)의 품계를 주어 금교찰방(金郊察訪)으로 삼았다.
공이 이르되『서방은 땅이 비습(卑濕)하고 유행병이 많아서 사람의 수명이 길지 못하여 남쪽지방 사람으로는 살기가
마땅하지 않지만은 내가 버려졌던 지가 여러 해이었는데 주상(主上)께서 높은 품계로 발탁하시니 은총과 영화가 크도다.
만약 이제 사양하면 이는 임금님의 명령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더구나 사리가 신하노릇 하기 어려운 직책은 사양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감히 밤낮으로 힘써 일을 처리하지 않아서 되겠는가?』하고 곧 달려가서 임소에 이르러 역(驛)의 옛 폐단을 살피어
잘못된 일은 모두 개혁해 없앴다.
이보다 앞서 서방의 수자리로 가는 무장(武將)들이 일년에 한 번씩 교대하니 오고 가며 역마다 말 먹이나 음식을 갖추어
내라면서 이것은 국가의 일이라 하여 나이 어린 무장들이 거세어 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역리(驛吏)를 마구 다잡아서
행장의 장비를 풍족하게 하니 위협을 느낀 이졸(吏卒)들은 괴로워 도망가 숨어 버린다.
지나는 곳마다 이렇듯 시끄러워도 찰방(察訪)은 금하지를 못하고 또 중국으로 왕래하는 사신들이 한 해에도
정조(正祖).성절(聖節).천추절(千秋節)등 무릇 세 번을 왕래하니 그 자제(子弟)나 군관(軍官)들이 재보(財寶)를 소지하고서
국가의 공물(貢物)이라 빙자하면서 역마(驛馬)를 남발하여 무수히 훔쳐 싣고 하였다.
비록 대관(臺官)이 따라 가기는 하나 검색(檢索)하여 막지 못하였다.
공이 모든 역에 영(令)을 내려『지나는 손님이 법대로 하지 않고 역리(驛吏)에게 난폭하게 하는 자는 곧 나에게 알리라.
내 임금님께 알리리라』하니 대중(大衆)들은 좋아 하였다.
그리고 법을 범한 자 및 그런 사실을 조정에 알려 죄를 주니 지나는 빈객이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감히 범하지 못하였다.
역로(驛路)가에 있던 유망민(流亡民)도 점차 되돌아 왔었다.
또 황해도(黃海道)는 땅이 바다에 접하고 산에 짐승이 많아 거주민(居住民)이 적었다.
산과 들 강이나 못 사이에 초목이 울창하여 사슴,호랑이,표범,곰,노루,토끼,여우등 수천 수백의 짐승들이 떼지어 숲을누볐다.
전에 찰방이 된 사람은 짐승 사냥만 좋아하여 공사는 돌보지도 않고 폐하다 싶이 하니 역졸(驛卒)들은 산으로 말을 몰아
짐승만을 쫓고 있었다.
이래서 말도 지치고 사람도 시달리게 되었다.
공이 오자마자 이 소문을 듣고 곧 폐지시키니 이졸(吏卒)들은 좋아했고 말이 살찌게 되어
지나가는 나그네들도 칭송하게 되었다.
이해 가을 홍수(洪水)로 흉년이 듬에 공이 조정에 알려
『흉년이 들어 빈객의 대접이 부족하여 역에서 감당할 수가 없을 것이니 어찌하리까?』하였더니
임금께서 그 상계문(上啓文)을 호조(戶曹)에 내려 보내어 콩 삼백섬과 소금 백섬을 내리게 하였다.
또 조정에 아뢰되『대동도(大同道)는 세 집에 말 한 필씩을 내어 한 관(館)이 모두 오십필이라,
그러므로 말이 많아 사람의 힘이 넉넉하나 신(臣)이 관할하는 한 집에 한 필이요,
한 참(站)에는 이십오필이니 그래서 말은 적고 사람의 힘이 고달픔니다.
게다가 자주 흉년이 들고 돌림병이 찾아 들어 유망민이 거의 다 되어가니
청컨데 대동도(大同道)관군(館軍)의 예에 따르겠습니다.』하였다
임금께서『좋다』하시고
종부시정(宗簿寺正)이세걸(李世傑)로 하여금 왕명(王命)을 받들어 가서 민정(民丁)을 살펴서 채우도록 하였다.
또 관찰사에게 알려서 이르되『관사(館舍)가 누추하여 빈객을 접대할 수가 없으니 명년(明年)에 사신이 오게되면
어떻게 대접해야 하겠는가』하고 이에 재목을 베고 기와를 구어 장차 수리하려 하는데 얼마 안되어 관찰사가 공에게
『바다를 따라 염전(鹽田)을 살려 보라』하니 공은 바다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가 바다 풍토의 독기에 걸려
임술(壬戌)년 칠월 십이일 금교참(金郊站)에서 돌아가시니 나이 오십칠세이셨다.
사방에서 이 비보를 듣고 통곡하며 상제들을 조위하여 부의(賻儀)를 많이들 하였다.
여러 자제들이 운구(運柩)하여 서울로 오니 지나는 군현(郡縣)마다 모두 노제(路祭)를 지내 주었으며,
조정에서 쌀과 콩 열섬,종이 스무권을 내리시고 또 예관(禮官)을 보내어 조위하였다.
팔월에 배를 세내어 서울을 떠나려 하니 서울의 사대부(士大夫)들이 많이 와서 조위하였다.
이에 한강(漢江)을 따라 충주(忠州)에 닿아서 남쪽으로 새재(조령(鳥嶺)를 넘어 풍산(豊山)땅 고향으로 내려와
역동(驛洞)선영(先塋)곁에 임시로 모셨다가 다음 해 삼월 초하루 경오(庚午)에 할아버지 묘소 오른쪽 능선 동향(東向)의
언덕에 장례하였다.
공은 성품이 너그러우시고 강인하시며 보기 좋은 수염에 용의(容儀)가 근엄 하시었다.
팔척의 키에 사람들과의 대화에는 정성껏 하시어 실증을 느끼게 하지 않으셨다.
친척들에게는 인자하시고 친구에게는 믿음이 있으셨다.
큰 일을 처리하고 큰 의혹사(疑惑事)를 판결함에 있어 용기가 있으시면서 민첩하셨다.
직책에 있어서는 근엄하셔서 새벽에 세수를 마치시고 일찍이 관아(官衙)에 나와 사무를 보시며 해가 져야 끝내셨다.
또한 활쏘기,말타기,바둑,음율(音律) 심지어 제물이나 공장(工匠)이의 일까지도 정통하게 알지 못함이 없었다.
서화(書畵)에도 정확한 법도가 있어 일찍이 왕희지(王羲之)의 법첩(法帖)을 얻어 수천번을 쓰셨다.
어려서 비록 책을 읽지 않았으나 벼슬에 나간 뒤로 듣고 본 것은 곧 잊지 않으니 견문이 대단히 넓으셨다.
모든 편지나 공문서(公文書)같은 것은 누구도 따르지 못하였다.
그래서 교유(交遊)한 사람이 모두 문장(文章)에 뛰어난 분이었다.
공이 영천(永川)에서 면직되어 돌아오매 맏형님이 이르시되
『너는 남이 나를 써 주지 않는다는 걱정을 하지말고 모름지기 네가 닦아야 할 것을 키우고 그릇을 갈아서 때를 기다려라.
네 학문이 넓지 못한 것은 하늘이 너를 굽히게한 것이다.
네가 태인 것을 키우기 위해서는 역사를 읽어라.오래지 않아서 너를 쓰게 될 것이다.』하니 공은 가르침을 받고 곧
강목통감(綱目通鑑)을 무수히 읽으셨다.
공은 형제(兄弟)가 다섯이고 자매(姉妹)가 여섯인데 공은 막내이시다.
맏형은 출가(出家)하시어 세조(世祖)의 스승이 되어 명성(名聲)이 한 세대에 드날려 이름난 자이시고,
둘째,셋째도 모두 유명하였다.
집에 큰일이 있므면 형들이 공에게 부탁하여 처리하게 하였다.
일찍이 모든 아들들에게 훈계하되,
『나는 일찍이 부모의 부양을 잃어 공부를 하지 못하여 정사에 통달하지 못하고 늙음에 이르렀다.
너희는 이 늙은이처럼 되지 말아라』하고 날로 훈계를 가하여 모두 법도에 맞게 하셨다.
또 일찌기 아들들에게 말씀 하시되,
『내가 벼슬살이 삼십년에 일찌기 덕을 편 것은 없지만 하늘과 땅에 부끄럽게 하지는 않았다.
내 자손에는 반듯이 문호(門戶)를 세울 자가 있을 것이다.』하시고 집 다스림이 엄하고도 화하시어 닭이 울면
의관을 정제하고 앉으셔서 종일토록 게으른 빛이 없으시니 집안이 단란하고 종들도 화합하였다.
자제들은 시서(詩書)에 힘쓰고 여자들은 길쌈에 힘썼다.
농사에 힘써 제사 받들고 손님 접대하고 남은 것은 가난한 이웃에게 쾌척하시며 비록 어리석고 천한 사람에게라도
없신여기지 않으시니 마을에서는 큰 어른으로 추대하였다.
그것은 풍속(風俗)을 바로 잡는 사람이라야 어른 노릇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해만에 한 마을이 크게 다스려져 항상 봄 가을의 명절에는 향사당(鄕射堂)에 나이 많은 어른들을 모시고 옛날의
향사예(鄕射禮)와 같이 하니 모든 사람들이 미담(美談)으로 여겼다
공의 나이 이십오세에 중직대부(中直大夫)능성현령(綾城懸鈴)김박(金愽)의 따님에게 장가드셔서 사남 사녀를 두셨다.
맏이는 영(瑛)이니 을묘(乙卯)년 진사(進士)에 합격하였고,
김광려(金光礪)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이남을 낳았는데 아직 어리다.
다음은 번(璠)이니 무오(戊午)년 진사에 합격하였다.
판관(判官)홍걸(洪傑)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일녀를 두니 아직 어리다.
다음은 애(璦)와 역(㻛)인데 애는 아직 미혼(未婚)이고,
역은 나이 열세살에 시서(詩書)에 능통하고 글씨를 잘 썼는데 공보다 일년 앞서 갔다.
딸 맏이는 김자(金磁)의 아드님 연손(延孫)에게 출가하여 삼남 일녀를 두었는데 모두 어리다.
다음은 현감(縣監)김예생(金禮生)의 아드님 윤종(胤宗)에게 출가하여 딸 하나를 두었는데 아직 어리다.
다음은 현감(縣監)금계(琴啓)의 아들 원수(元壽)에게 출가했고.
다음은 아직 어리다.
홍치(弘治)십육년 계해(癸亥) 삼월 일 고자(孤子) 영(瑛)과 번(璠)은 짓다.
숙인강릉김씨행장(淑人江陵金氏行狀) 金氏新羅宗姓遠祖周元太宗王之孫護國不嗣退居溟州因封溟州郡王子孫以爲貫郡今之江陵其後曰宗基曰貞茹曰陽曰仁孝德業文章 김씨신라종성원조주원태종왕지손호국불사퇴거명주인봉명주군왕자손이위관군금지강릉기후왈종기왈정여왈양왈인효덕업문장 史不絶書高祖諱光乙高麗侍中封溟原府院君曾祖諱錘工曹判書祖諱從南抱川監務考諱愽綾城縣令娶縣監柳瑱女以景泰壬申生夫人 사불절서고조휘광을고려시중봉명원부원군증조휘추공조판서조휘종남포천감무고휘박능성현령취현감유전녀이경태임신생부인 少而敬順綾城愛之嘗曰福哉此兒旣笄配掌令性純淑容儀端正喜慍不形於色解文曉理事姑奉祭克盡誠孝治家有法訓子有方侍婢御以 소이경순능성애지상왈복재차아기계배장령성순숙용의단정희온불형어색해문효리사고봉제극진성효치가유법훈자유방시비어이 禮宗族咸稱其仁長子瑛登丙寅科爲藝文奉敎司諫院正言吏曹正郞司憲府掌令弘文館應敎政府舍人出爲密陽金堤邑宰仲子璠登癸酉 예종족함칭기인장자영등병인과위예문봉교사간원정언이조정랑사헌부장령홍문관응교정부사인출위밀양김제읍재중자번등계유 甲科爲兵曹佐郞京畿都事承文判敎工曹正郞出爲安陰宰夫人自失所天從二子享其養者十有五年歲庚辰六月十七日終于安陰衙年六 갑과위병조좌랑경기도사승문판교공조정랑출위안음재부인자실소천종이자향기양자십유오년세경진육월십칠일종우안음아년육 十九其年九月七日祔葬掌令公塋後瑛生二男一女曰生洛生漢女幼璠一男一女曰生海女適進士金義貞珣生二男曰生河生溟長女婿金 십구기년구월칠일부장장령공영후영생이남일녀왈생낙생한녀유번일남일녀왈생해녀적진사김의정순생이남왈생하생명장녀서김 延孫進士次金儒癸酉武科與璠同榜一時遊街鄕里榮之今宣傳官次琴元壽次金胤宗別坐安恁李水南 연손진사차김유계유무과여번동방일시유가향리영지금선전관차금원수차김윤종별좌안임이수남 (中宗辛巳竪碑夫人行狀幷刻石) 중종신사수비부인행장병각석 《苟全公13世孫 金 台東 옮겨씀》 |
숙인강릉김씨행장(淑人江陵金氏行狀)
김씨(金氏)는 신라(新羅)의 종성(宗姓)이며 원조(遠祖)주원(周元)은 태종왕(太宗王)의 손자로서 나라를 사양하고
명주(溟州)에 떨어져 살았다.
따라서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해져 자손(子孫)이 관향(貫鄕)으로 삼았으니 지금의 강릉(江陵)이다.
그 뒤 종기(宗基),정여(貞茹),양(陽),인효(仁孝)로 덕업(德業)과 문장(文章)이 끊기지 않았다.
고조(高祖)휘(諱)광을(光乙)은 고려의 시중(侍中)으로 명원부원군(溟原府院君)을 봉했고
증조(曾祖)휘(諱)추(錘)는 공조판서(工曹判書)이시고 할아버지 휘(諱)종남(從南)은 포천감무(抱川監務)이시며
아버지 휘(諱)박(愽)은 능성현령(綾城縣令)이시니 현감(縣監)류진(柳瑱)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경태(景泰)임신(壬申년(明 代宗 三年:조선 문종(文宗二年1452)에 부인(夫人)을 낳으시다.
부인은 어려서부터 공순하셔서 능성공(綾城公)께서 사랑하시며 말하기를『복 스럽다.이 아이여!』하시더니
성례(成禮)하여 장령공(掌令公)에게 배필이 되시다.
성품이 순숙(純淑)하시고 용의(容儀)단정하시며 기쁘거나 노여웁거나 그 빛이 얼굴에 들어나지 않으셨다.
문장(文章)을 이해하고 이치를 터득하셨으며 시어머님을 섬기거나 제사를 받드는데 있어서 효성을 다하셨다.
법도(法度)로 가정을 다스리고 자녀의 교육에도 방편(方便)이 있었으며 예의로 시비(侍婢)들을 다스리니 종족(宗族)이 모두
그의 인자(仁慈)하심을 칭찬하였다.
맏아들 영(瑛)이 병인(丙寅)년의 과거(科擧)에 올라 예문관봉교(藝文館奉敎).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이조정랑(吏曹正郞)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정부사인(政府舍人)이 되었다가 외직(外職)으로 나아가
밀양(密陽).김제(金堤)의 읍재(邑宰)가 되었다.
둘째 아들 번(璠)은 계유(癸酉)년의 갑과(甲科)에 올라 병조좌랑(兵曹佐郞)이 되고 경기도사(京畿都事).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
공조좌랑(工曹佐郞)이 되었다가 외직으로 안음군수(安陰郡守)가 되었다.
부인께서 부군(夫君)을 여윈 뒤로 두 아들을 따라 여생을 사시다가 십오년만인 경진(庚辰)년 유월 십칠일에
안음(安陰)의 관사(館舍)에서 돌아가셨으니 나이 예순아홉이셨다.
그 해 구월 칠일에 장령공의 묘소 뒤에 부장(祔葬)하였다.
영(瑛)은 이남 일녀를 두니 생락(生洛),생한( 漢)이요 딸은 아직 어리다.
번(璠)이 일남 일녀를 두니 생해(生海)요 딸은 진사(進士)김의정(金義貞)에게 출가 하였다.
순(珣)이 이남을 두니 생하(生河),생명(生溟)이다.
큰 사위는 진사(進士)김연손(金延孫)이고
작은 사위는 김유(金儒)이니 계유(癸酉)년에 무과(武科)하여 번(璠)과 동방(同榜)으로 합격하여 함께 유가(遊街)하니
모두 영광스러워 했는데 지금은 선전관(宣傳官)이다
다음은 금원수(琴元壽)이고 그 다음은 김윤종(金胤宗)이고 또 다음은 별좌(別坐)안임(安恁)과 이수남(李水南)이다.
중종(中宗)신사년(辛巳年)에 비를 세우고 부인의 행장도 함께 새겼다. 아들 영(瑛) 지음.
《苟全公13世孫 金 台東 옮겨씀》
첫댓글 태동 어르신께 말씀 올립니다.
혹시 옮기실 때 한 구 절을 빼어 놓지 않으셨는지 한 번 확인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양순 선조님의 글에서車駟入閭猶有戒와 해석인<대평소 불지마라 저녁 바람 불어 오나니> 가 맞지 않습니다. 이 해석은 그 다음에 나올 한자를 해석한 내용입니다.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네 죄송합니다.옮길때 착오가 있었습니다.지적진심으로 감사드림니다.
지난 번에는 복사기능이 있는 듯했는데 이 번에는 복사가 되지 않아 깊이 안타깝습니다.
네알겠습니다.
우러러 고맙습니다. 청음- 문곡- 육창 어르신의 후손 창현입니다. 앞으로 자주 들리겠습니다.
임연태 라는 시인이 이 원본의 자료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를 질문해 오셨는데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태동 어르신께서 꼭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삼구정에 대한 글을 쓰신다고 하십니다.
제가 지금가자고있는 번역본이 있습니다만
구할수는 없군요 어쩌죠?
혹시 천호동쪽에 살고 계시지 않으시는지요. 저는 고덕동에 삽니다. 제가 어르신을 찾아 뵙고 그 책을 구 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의 메일 주소입니다. 연락을 주셨으면 합니다.chk824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