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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숨겨둔 추억!
글 김동석
글쓰기 시작일 2012년 5월 18일
글 마무리 2015년 1월 15일
010-7334-4876
머리말
40년이 지난 후
나는 그 산길을 늦은 밤에 다시 걸었다. 저수지에 가서 낚시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린 시절에 다닌 길이라 어디쯤에 무엇이 있고 또 어디쯤 가면 무엇이 있는지 알아서인지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출발하기 전에는 낚시할 생각뿐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걱정하시는 듯
“무서워서 어떻게 가려고 하냐? 자고 내일 아침에 가지?”
“어렸을 때 다니던 길인데 무섭기는요?”
내 욕심은 오늘 밤에 낚시를 하는 게 목적이라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낚시 가방을 메고 집을 출발했다.
다행히 달빛이 길을 비추니 너무 고마웠다.
그런데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무서운 생각이 들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얼마 못 가 또 다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학교가면서 열심히 부른 노래이다. 하지만 중간부터는 가사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두려움을 떨치며 산을 넘고 있다. 내리막길에 들어서면 수백 년 된 소나무들이 있다. 달빛을 가려 이곳을 내려가는 길은 더 무섭다. 한 순간 잘못하면 바위나 돌에 걸려서 넘어지기도 한다. 커다란 소나무 뒤에 누군가가 숨어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 때가 있다. 다행히 산을 내려오면 달빛에 환한 저수지가 보인다.
저수지가 보이면 고향에 온 기분이 들어선지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싹 가신다. 물론 저수지 둑 옆으로 조상들의 무덤이 있어서 더 마음이 편해지는지 모른다.
저수지 둑에 낚시 가방을 내려놓고 고기 잡을 준비를 하는 데 낚시찌에 꽂을 야광 불빛을 내는 케미가 보이지 않는다. 집에서 출발할 때 분명히 낚시 가방에 넣었는데 없다.
밤에 낚시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케미가 있어야 한다.
“어디서 흘린 건가?”
오는 길에 분명히 흘린 게 틀림없다.
“아! 저 무서운 산길을 또 가야 하나?”
“찾을 수는 있으려나?”
낚싯대를 그대로 놓고 오던 산길을 향해 걸었다. 눈은 온통 땅바닥을 바라보면서 혹시 검정 비닐 봉투가 떨어져 있는 지 확인하면서 무서운 산길을 다시 가야만했다.
갈 때는 올 때보다는 덜 무서웠다. 케미를 찾아야 한다는 목적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땅만 보고 걸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던 길보다는 무섭지 않았다.
그렇게 찾던 케미 봉지는 집 마당에 떨어져 있었다. 어머니는 잠이 들었는지 불이 꺼져있고 나는 다시 케미 봉투를 들고 그 무서운 산길을 또 걷기 시작했다.
가고 오는데 별일 없어서인지 발걸음이 가벼웠다. 하지만 역시 산 중턱에 이르니 무서운 마음은 마찬가지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게 무서운지 몰랐다. 다시 가는 길인데도 역시 무섭다. 그러니 어린 나이에는 이 산을 넘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날 밤, 산을 두 번이나 넘으면서 많은 추억을 생각해 봤다.
흰 눈이 내리는 날, 이 산길을 걸으면 정말 아름답다. 세상에서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산길일 수도 있다. 많은 곳에 올레 길도 생기고 있지만 나는 읍내에서 고향 집에 가는 길이 그렇게 아름다운지 오십이 넘은 나이에 만끽하고 있다.
산길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나무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그리고 이 산길에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다.
2015년 5월 20일
김동석
차례
1. 그림자와 함께 산길을 걷다 ...... 7
2. 오백 원 때문에 청소하다 ...... 13
3.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만든다 ...... 21
4. 중학교에 가야 하는 데 ...... 29
5. 돈을 모으기 시작하다 ...... 36
6. 자전거를 샀다 ...... 45
7. 불갑사로 떠난 여행 ...... 55
8. 참나무 아래서 사투 끝에 잡은 장어 ...... 64
9. 이주가 시작되었다 ...... 86
10. 누구나 편하게 살고 싶다 ...... 102
1. 그림자와 함께 산길을 걷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5월 중순으로 접어드니 짝짓기가 한참 시작될 시기인지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는 소음에 가깝다.
“워워!”
영길이는 가던 길을 멈추고 논을 향해 소리쳐본다. 하지만 개구리들은 잠시 노래를 멈추더니 다시
“개굴개굴!”
노래를 부른다.
밤길을 걷는데 달빛에 비친 그림자가 친구가 되어준다. 앞서 가다가 가로등을 지나치면 뒤따라온다. 그림자가 앞서갈 때는 든든한 친구와 함께 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뒤로 처지면 누군가 따라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무서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영길이는 이제 산을 하나 넘어야 한다. 집에까지는 아직도 멀었다.
이제 겨우 반이나 왔을까? 산길은 가로등도 없다. 다행이 오늘은 달빛이 있다. 달빛을 받으며 영길이는 산으로 접어든다. 산속에는 무서운 맹수도 있고 도깨비불도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큰 맘 먹고 이 산을 넘지 않으면 영길이는 집으로 갈 수 없다.
“무섭다. 어떻게 이 산을 넘어가지.”
영길이는 모든 촉각을 세우고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걷고 있다. 두 눈은 오직 앞만 쳐다본다.
산길은 소나무가 달빛에 멋지게 동양화를 그려 놨다. 가는 길목마다 영길이의 그림자와 소나무 그림자가 그려내는 모습은 너무 아름답다.
영길이는 달빛이 유난히 밝게 비추는 곳에서 멈추고 서서 그림자를 바라본다.
“정말, 멋지군. 내가 그림을 그린다면 이런 모습을 그릴거야.”
달빛이 자연스럽게 물감이 되어 땅위에 그려내는 작품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명작이다. 이제 물무산 중턱에 진입했다. 집도 없는 산길을 넘으려니 걱정이 앞선다. 공동묘지도 지나가야 하고 또 도깨비불이 보인다는 산모퉁이도 돌아가야 한다.
“무섭지 않아. 그리고 아무 것도 없어. 세상에 도깨비가 어디 있어.”
스스로 용기를 주며 손에 든 책가방을 가슴에 안았다. 그리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몇 미터 앞을 바라보며 걷고 있다. 왼쪽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길이 제일 무서운 곳이다. 그곳에는 묘지가 몇 개 있다.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이 도깨비불을 봤다고 하는 장소다.
“노래를 부를까. 아니면 친구들 이름을 부르며 갈까?”
영길이는 가슴에 느껴지는 무서움을 어떻게 이겨낼까 생각하고 있다.
“에취!”
나오지 않는 기침을 일부러 했다. 주변에 누군가 가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일이다. 하지만 영길이 가슴에는 무서운 공포가 가득 밀려온다.
산속으로 들어서니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가끔 곤충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영길이는 무서움을 잊기 위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는다. 어딘가 모르게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다.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심장 소리가 들린다.
“쿵쾅쿵쾅!”
늦게 집에 갈 때는 이곳을 지나면서 꼭 후회 한다. 낮에는 무섭지 않은 산길이 밤이 되면 무섭기 때문이다.
“도깨비가 어디 있어?”
마을 사람들은 보지도 않고 이곳에 도깨비가 산다고 한다. 밤마다 멀리서 보면 도깨비불이 보여서 밤늦게 다니지 않는다고 늘 이야기 한다.
하지만 영길이는 학교가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바람에 밤늦게 이 산길을 가야만 한다. 책가방을 힘주어 안았다. 손도 목도 뻣뻣한 자세로 오직 두 다리만 움직인다.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니 달빛에 나무들의 그림자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다.
“누구야?”
그림자의 움직임이 꼭 검은 옷을 입고 동화 속에 나오는 산적 떼들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이 움직이는 것 같다.
“아이쿠!”
돌부리에 신발이 걸려 미끄러졌다. 등에 땀이 주르륵 흐른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서 더 빠른 속도로 걷기 시작한다.
산을 넘으니 멀리 저수지가 보인다. 길게 숨을 들이 쉬고 더 빠른 걸음으로 산을 내려온다.
“다와 간다.”
큰 소리로 외친다. 저수지 둑 아래로 몇 가구가 살고 있으니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저수지 둑에 와서야 마음이 놓인다. 아직 집까지는 멀었다. 하지만 산길을 걷는 것보다는 저수지를 빙 돌아가면서 논과 밭 사이로 걸어갈 때는 무섭지 않다. 또 집이 가까워지는 이유도 있다.
몇 분을 더 걸어서 집에 도착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안방과 작은 방 불이 켜진 것을 보고 마당에서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어서 와라.”
엄마가 안방 문을 열고 소리친다. 작은 방에서도 누나와 동생들이 문을 열고
“어서 와?”
“응.”
영길이는 안방으로 들어가 늦은 저녁을 먹는다.
“오늘도 힘들었지?”
“아니.”
밥을 먹으면서 영길이는 엄마가 묻는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한다.
2. 오백 원 때문에 청소하다.
영길이가 사는 동네 사람들은 모두 읍내에 나가는 도로에 있는 학실 이발관에 다닌다. 할아버지도 그리고 아버지도 모두 이 학실 이발관을 다녔다. 이곳을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은 머리를 자르려면 모두 이곳을 이용한다고 봐야 한다.
이발을 하기 위해서 이발관에 가면 동네 어른들을 만나는 날도 있다.
오늘 아침에 영길이는 학교 갔다 오면서 이발하고 오라고 준 돈 천 오백 원을 받았다. 수업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학실 이발관에 들려서 머리를 깎고 오면 된다.
그날 오후, 수업을 마치고 영길이는 학교 친구들과 축구시합을 했다. 그냥 축구시합도 아니고 돈내기 시합이었다. 지면 한 사람당 오백 원씩 내야 한다. 이기면 돈을 받아서 분식집에 가서 튀김이랑 라면을 사먹고 올 수 있는데 영길이 팀은 상대팀에게 지고 돈을 줘야했다. 영길이도 할 수 없이 이발해야할 돈 중에서 오백 원을 주었다.
“어떡하지. 이발은?”
영길이는 축구시합을 끝내고 집으로 오는 길에 이발하고 가야하는 데 부족한 돈 때문에 걱정이다. 친구들도 이미 집에 간 상태라 누구에게 빌릴 수도 없다.
영길이는 읍내를 지나서 학실 이발관 앞까지 왔다. 창문으로 이발관 안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아저씨는 나이든 할아버지 머리를 자르고 있었다.
“축구를 하지 말걸.”
한참을 집으로 걸어가던 영길이는 다시 돌아서서 이발관이 있는 읍내 방향으로 걷고 있다. 그리고 이발관 창문을 들여다보고 지나쳐 걸어갔다. 이발관 아저씨는 할아버지 머리를 감겨 드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발관을 지나 좀 더 걸어가면 해룡중고등학교 정문이 있다. 그곳까지 걸어간 영길이는 다시 돌아서서 이발관 앞으로 왔다.
“이발하고 가야 하는 데!”
이발관 앞에서 머뭇거리는 영길이를 창문을 통해 본 이발관 아저씨는 문을 열고 나오더니
“이발하려고?”
하고 묻는다.
“안녕하세요.”
인사도 끝나기 전에 이발관 아저씨는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린다. 영길이가 어디에 사는 누구 아들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몇 번 아버지랑 이발을 하러 온 것도 안다.
“할 거면 얼른 들어와. 아저씨 오늘은 일찍 문 닫을 거니까.”
그리고 문을 닫고 들어가신다.
영길이는 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아저씨, 저 오백 원이 부족한데 이발 좀 해주세요?”
“왜? 돈이 부족하냐?”
“사실은 축구시합해서 지는 바람에 오백 원이 부족해요.”
“돈 내기 했냐?”
“네.”
“내일 돈 더 가지고 와서 이발하면 되잖아?”
“오늘 꼭 하고 가야 해요?”
“왜?”
“엄마가 오늘 밤 할아버지 제사라고 돈 주시며 이발하고 오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돈내기 축구시합을 했냐?”
“죄송해요.”
“나한테 죄송할 건 없다.”
“아저씨, 이발 좀 해주세요. 다음에 오백 원 갚을 게요.”
“언제 갚을 건데?”
“돈 생기면 갚을 게요.”
“그걸 어떻게 믿냐?”
“아저씨, 꼭 갚을 게요.”
이발관 아저씨는 한 참을 생각하더니
“이발 해줄 테니 오늘부터 일주일간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청소하고 가는 거 어때?”
“청소요?”
“그래.”
“네, 하고 가겠습니다.”
“안 오면 학교에 찾아간다.”
“네.”
그렇게 영길이는 이발을 하고 집에 갔다. 다음날부터 학교가 끝나면 학실 이발관으로 가서 청소를 하고 집에 갔다.
첫날은 청소하는 동안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둘째 날은 친구 만식이 아버지가 이발하러 오셨다.
“영길아, 너 여기 취직했냐?”
“아니요.”
“근데, 어째서 여기서 청소하냐?”
“네. 그렇게 됐어요.”
“그렇게 되다니?”
영길이는 만식이 아버지와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서 밖으로 나갔다.
“저놈, 여기서 일하는가?”
“아니요. 제가 청소를 부탁했습니다.”
“그래?”
“네, 지난번에 이발하고 이발관에 대해서 일기를 써야 한다고 해서.”
“일기를?”
“네.”
만식이 아버지는 영길이가 이발소에서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가셨다.
다음날 장에 가던 영길이 아버지는 학실 이발관을 지나는 데 이발관 아저씨가 부르신다.
“영길이 아버님.”
“어이.”
“말씀 드릴 게 있습니다.”
“뭐를?”
장에 가던 영길이 아버지는 잠시 멈추더니 이발관 안으로 들어갔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그래. 한 잔 주소.”
종이컵에 커피를 한 잔 타서 영길이 아버지에게 주고
“사실, 영길이가 여기서 일주일 동안 청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뭐라고?”
“네. 얼마 전에 영길이가 이발을 하러 왔는데 돈이 부족하다면서 이발을 해달라고 하더라구요.” “돈이 모잘라?”
“네, 축구 시합을 했는데 져서 오백 원을 주었나 봅니다.”
“그놈의 자슥이.”
“그래서 이발을 해주고 일주일 동안 집에 가는 길에 청소를 하겠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한다고 해서.”
“허허! 참.”
“만나면 이렇게 말씀 드리려고 했습니다.”
영길이 아빠는 남은 커피를 쭈욱 들이마신다.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니, 잘했네.”
“네, 일 마치면 수고비는 드리겠습니다. 며칠만 모른 척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알았네.”
“죄송합니다.”
“아닐세.”
이발관을 나온 영길이 아빠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모른 척 하기로 했다.
“좋은 경험이 되겠지.”
영길이는 이것도 모르고 오늘도 학교를 마치고 학실 이발관으로 향한다.
“영길아, 축구해야지?”
“아니, 못해.”
“야, 그럼 골키퍼는 누가 하냐?”
“다른 친구 시켜.”
영길이는 학교 교문을 향해 뛰었다.
3.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만든다.
이발관 청소는 별 것 아니다. 자른 머리카락을 빗자루로 쓸고 그리고 물걸레로 청소를 하면 된다. 처음에는 부끄럽고 힘들었지만 삼 일이 지난 지금은 너무 재미난다.
이제 며칠만 청소하면 끝이다. 그래도 이발관 아저씨는 영길이에게 자장면도 두 번이나 시켜 주었다.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다.
“넌, 꿈이 뭐냐?”
“저는 우주조종사가 꿈입니다. 아폴로 11호가 달나라에 가는 것을 보고 저도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어요.”
“그럼,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네.”
“아저씨는 꿈이 부자 되는 거다.”
“지금도 부자잖아요?”
“부자긴, 그냥 밥 먹고 사는 거지.”
“이발사 되는 것도 어려운가요?”
“그럼, 열심히 기술을 배워야지.”
영길이는 이발관에서 청소하면서 이발사가 될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아저씨가 손님이 많은 날은 돈을 많이 벌기 때문이다.
“영길아, 이발사 되어서 아저씨 죽으면 이 이발관 물려받을래?”
“제가요?”
“그래.”
“전, 꿈이 다른 데요?”
“알았다. 공짜로 물려줄까 했는데 다른 사람 찾아야겠다.”
이발관 아저씨는 영길이와 저녁 때 자장면을 먹으며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그리고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과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꼭 하신다.
“앞으로 시간나면 와서 청소해라. 이발은 공짜로 해줄 테니까.”
“정말요?”
“그래.”
“감사합니다. 아저씨.”
오늘은 청소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 즐거웠다. 이제 이발은 공짜로 할 수 있다. 엄마나 아빠가 알아도 용서를 해주실 거다.
오늘은 손님이 많아서 좀 늦게 끝났다. 학실 사거리를 지나 집으로 가는 오솔길에 들어서니 논에서 개구리들 울음소리가 더 크고 시끄럽다.
“저것들은 밤이 되면 왜 울까?”
“개굴개굴! 개굴개굴!”
넘어야할 산길을 고개를 쭈욱 내밀며 쳐다봤다. 오늘은 더 씩씩하게 걸어가자.
하지만 얼마 못가서 그 마음은 어디로 사라지고 두려움만 가득했다. 길가로 공동묘지가 있는 곳을 지날 때는 정말 등골이 오싹했다.
“푸다닥!”
공동묘지 끝자락에서 새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무서웠다. 숨을 죽이고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걷기 시작했다.
“공동묘지, 도깨비불, 호랑이, 마녀, 산적들, 이런 말이 없으면 좋겠다.”
영길이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걷는데 벌써 가슴이 쿵쾅 뛴다. 산에는 나무와 새들, 그리고 야생동물 뿐인데 몇 개 낱말만 생각하면 무서워진다.
“낮에는 공동묘지에서 놀아도 안 무서운데 밤만 되면 무섭다니까.”
영길이는 오늘도 그림자 친구와 함께 산길을 걷는다. 무섭지만 그림자 친구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야, 너 영길이지?”
영길이는 달빛에 비친 그림자를 보면서 말을 걸어 본다.
“너도 나처럼 사람이 되고 싶지?”
“아니. 난 그림자가 좋아.”
“그래?”
“응.
“넌, 욕심이 없구나.”
“사람들은 욕심이 많지만 난 욕심이 없어.”
영길이는 밤에 산길을 걸으면서 처음으로 웃었다. 그리고 몸으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따라하지 마라.”
오른손 왼손으로 권투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림자도 따라서 원 투 권투를 한다.
“따라하지 말라고?”
“…….”
그림자는 대답이 없다.
영길이는 다시 발차기를 한다. 그랬더니 그림자도 역시 발차기를 따라한다.
“허허! 나랑 똑같이 따라하냐?”
“…….”
“넌, 내 흉내를 내며 사는 녀석이군.”
“똑같이 따라하니까 무섭지?”
“아니.”
어제는 산길을 넘어오면서 너무 무서웠는데 오늘은 덜 무섭다.
“그림자야 고맙다. 나랑 항상 같이 다니니까.”
“나도 고마워. 달빛에 함께 걷게 해주어서.”
영길이는 모처럼 편안하게 산을 넘어왔다. 벌써 저 아래 저수지가 보인다. 걷는 속도가 빨라진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영길이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걸어간다.
며칠째 영길이가 늦게 오자 엄마는 걱정스러운지 한 마디 한다.
“오늘도 숙제하고 오냐?”
“네.”
“형, 공차고 왔지?”
동생은 지난번 학교에서 공차는 것을 보고 늦게 오면 항상 이렇게 말한다.
“아니.”
“그럼, 산에서 놀다 왔지. 만식이 형이랑?”
“아니라니까. 죽는다.”
“우에!”
동생은 놀리기까지 한다. 엄마에게 혼나는 형을 보니 자신만만한가 보다.
“느그 선생님은 집에도 안 가냐? 이렇게 늦게까지 널 공부시키게.”
“늦게 가요.”
“언능 밥 먹어.”
차려놓은 밥상으로 가 저녁을 먹은 영길이는 작은방으로 건너가면서 부엌에서 칼을 가시는 아버지와 마주쳤다.
“안녕히 주무세요.”
“오냐.”
아버지는 영길이가 늦게 오는 이유를 안다. 하지만 모른 척 하고 있다.
영길이는
“아버지가 곧 혼내시겠지.”
마음속으로 아버지가 곧 혼내실 것을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죄를 지으니 마음이 불안하다.
영길이는 안방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이발관에서 청소하는 것을 부모님에게 말했다.
“저 염병할 놈이 그러면 그렇지. 학교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
엄마는 아들이 몹시 미웠다. 하지만 더 혼내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다 알고 계신다. 이발관 아저씨가 학교 후배이고 벌써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안 준 게 얼마냐?”
엄마가 큰 소리로 묻는다.
“오백 원.”
“내일 당장 같다 줘?”
그리고 엄마는 지갑에서 오백 원을 주셨다.
“청소할 시간 있으면 공부나 열심히 해.”
“죄송합니다.”
영길이는 고개를 숙이고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아버지는
“가서 얼른 자.”
그리고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작은방으로 건너오는 데 영길이는 가슴이 후련했다.
4. 중학교에 가야 하는 데
6학년이 된 영길이는 학교에서 중학교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과 학부모 면담도 잡히고 어느 중학교에 갈 것인지 친구들도 고민이다.
영광읍에는 남자들이 갈 수 있는 중학교가 두 군데다. 여자중학교는 한 군데라서 선택할 필요가 없다.
“영길아, 너 어느 중학교 쓸 거야?”
만식이가 묻는다.
“모르겠어. 중학교 갈지 안 갈지?”
“왜?”
“돈이 없으니까.”
“그래.”
“난, 영광중학교 쓸 거야. 너도 만약 가게 되면 나랑 같은 학교 써. 금수도 같은 학교 쓰기로 했어.”
“알았어.”
영길이는 원서 마지막 날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집안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서울 가서 취직하면 좋겠다.”
누나도 학교를 진학하지 못하고 2년 전에 서울로 취직하러 올라갔다. 영길이도 누나에게 가면 취직하고 돈도 벌 수 있겠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발관에서 청소를 하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또 돈이 없으면 공부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영길이는 벌써 집안 걱정을 한다.
원서 마지막 날, 영길이는 일단 원서를 써서 내기는 했다. 만식이랑 금수와 다른 중학교를 썼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학교에서 가까운 학실 이발관에서 아르바이트도 할 생각이다.
“원서 썼어?”
만식이가 교실에 와서 물었다.
“응.”
“어디?”
“난, 해룡중학교 썼어.”
집에서 가까운 곳을 썼다. 걸어서 학교도 다녀야 하니까.
만식이와 금수는 집에서 중학교가 멀다고 벌써 자전거를 사주었다. 그리고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너무 부럽다.
“영광중학교가 훨씬 좋아. 학비도 싸고 임마.”
“그래도 난 해룡중학교 갈래.”
“누가 가자고 했어?”
“그냥, 내가 썼어.”
“느그, 아버지도 영광중학교 나왔잖아?”
“그래.”
“그런데 해룡중학교 간다고?”
“응.”
만식이는 중학교가 다른 게 너무 서운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새로 생긴 해룡중학교가 더 잘 가르친다는 이야기에 이 학교를 선택했다. 사립이고 등록금도 비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영광중학교는 걸어가기에 너무 먼 거리다. 그래서 가까운 학교를 선택한 거다.
만식이는 영길이랑 같이 무단결석도 하고 노는 사이니 더 아쉬운 건 사실이다. 영길이는 희수 형과 만식이랑 학교에 안 가고 산에서 몇 번 놀다 집에 온 적이 있다. 그래서 엄마에게 많이 혼났다.
“학교 가기 싫으면 농사나 지어 이놈아.”
영길이 엄마는 언제나 직설적으로 아들에게 말한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는 법이다.
엄마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영길이는 꿋꿋이 학교에 잘 다녔다. 결석해서 선생님에게 혼나기도 하고 남아서 화장실 청소도 하긴 했지만 끝까지 다녔다.
다행히 영길이도 중학교에 입학했다. 누나가 학교를 포기하고 서울로 가는 바람에 여유가 생긴 아버지가 중학교 등록금을 만들어 오셨다.
“오늘 등록금 냈다. 영길아.”
“네. 고맙습니다.”
영길이는 중학교에 가는 게 너무 좋았다.
친구들은 자전거를 사고 교복도 사놓고 벌써 중학교 갈 날을 기다린다. 하지만 영길이는 아직 교복도 없다. 또 자전거는 더욱 살 형편이 안 된다.
“아버지가 사주시겠지.”
영길이는 아버지를 믿는다. 언제나 아들 편을 들고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영길이는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
“영길아, 이 돈 가지고 가서 교복 사라.”
엄마는 장롱 속에서 돈을 꺼내 영길이에게 주었다. 천 원짜리를 세워보니 이만 원이나 되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교복을 사러 갔다. 다행이 몸에 맞는 교복이 있어서 사들고 왔다.
영길이는 눈물이 났다. 엄마가 장날 고구마를 팔아서 한 푼 한 푼 모은 돈이라는 것을 아니까 더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났다.
영길이도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이제 교복을 입고 중학교에 간다. 동네 친구들과 같은 학교는 다니지 않지만 그래도 중학교에 간다니 너무 좋았다.
“누나도 중학교에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누나가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서울로 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추운 겨울날, 누나는 영광터미널에서 사촌 언니와 함께 서울로 갔다. 광주로 가서 거기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간다며 아침 일찍 떠났다.
누나는 벌써 공장에 취직해서 엄마에게 돈을 조금씩 보내주고 있다. 내가 알기로는 누나가 내 학비를 보내준 것으로 생각한다.
“누나가 내 학비를 보내준 거구나.”
영길이는 누나가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학교에 가면 열심히 공부해야지 하는 생각도 했다.
3월 2일,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오늘 중학교 입학식이 있다. 영길이는 오늘 학교에 혼자 간다. 엄마 아빠는 바쁘니까 학교에 올 시간이 없다.
가는 길에 저수지 둑에서 만식이랑 금수를 만났다. 새 자전거 그리고 교복을 입고 가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영길아, 태워줄까?”
“아니, 걸어갈래.”
“그래. 다음에 봐.”
만식이와 금수는 자전거를 타고 쓍 달려간다.
영길이는 가슴 한 구석이 허전했다. 하지만 중학교에 가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누나는 중학교도 가지 못하고 서울에 가서 공장에 취직했는데 영길이는 중학교에 다니니 행복할 수밖에 없다.
5. 돈을 모으기 시작하다.
아침마다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는 게 너무 부러웠다. 영길이도 자전거가 갖고 싶었다.
“어떻게 돈을 모으지.”
중학생이 된 영길이는 돈을 모을 생각을 했다. 이발관에서 청소하면 하루에 오백 원씩 준다고 했는데 엄마가 반대하는 바람에 갈 수 없다.
“저수지에서 고기를 잡아다 팔 수 없을까?”
그렇게 생각한 영길이는 학교에서 오는 길에 물고기를 파는 가게에 들어갔다.
“사장님, 혹시 물고기 잡아 오면 여기서 사주시나요?”
“무슨 물고기 잡아올 건데?”
“잉어, 붕어, 장어, 자라 등요.”
“자라와 장어는 사주지.”
“자라 한 마리 잡아오면 얼마정도 돈을 주나요?”
“천 원 정도.”
“다음에 잡아 올게요. 감사합니다.”
영길이는 학교에서 돌아와 저수지에서 고기를 잡아다 팔 생각을 했다. 상수도 보호구역이라서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는 곳이다. 그런데 동수형은 몰래 들어가 고기를 잡아서 팔기도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고기를 잡아다 팔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영길이는 삽과 물통을 들고 논으로 갔다. 흐르는 도랑을 막고 진흙을 파헤쳤다. 그리고 미꾸라지를 잡기 시작했다. 열 마리 정도 잡아서 집에 온 영길이는 약 2cm 정도 크기로 잘라서 낚시 바늘에 끼워서 저녁이 되자 저수지로 나갔다. 그리고 상류부터 걸어가면서 미꾸라지 한 조각을 낀 낚시 줄을 쭉 꽂아 놓았다.
저수지 한 바퀴를 돈 셈이다. 사십 여개의 낚시 줄을 꽂아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 새벽에 꽂아둔 낚시 줄을 거두러 가면 된다.
그날 저녁 영길이는 잠을 설쳤다.
“고기가 너무 많이 잡히면 어떻게 하지?”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다. 한 마리도 잡히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토요일 새벽, 고기를 잡기 시작한 첫날이다. 영길이는 저수지로 향했다. 왼손에는 비료포대를 하나 들고 신나게 걸었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은 좀 추었다.
상류 쪽부터 낚시 줄을 걷기 시작했다. 첫 번째 낚시 줄에는 미꾸라지 덩어리가 그대로 있다. 통통 불어서 덩어리가 더 커졌다. 손으로 빼서 멀리 던졌다.
“풍덩!”
소리와 함께 작은 파동이 일었다.
“고기가 먹지 않았군.”
몇 개째 꽝이다. 쉽게 잡힐 고기가 아니다. 그래도 영길이는 어젯밤에 꾼 꿈을 포기하지 않고 남은 낚시 줄을 거두기 위해서 열심히 저수지를 돌고 있다.
“사람들이 논에 나오기 전에 얼른 거둬서 집에 가야 한다. 혹시 누가 보고 군청에 신고하면 벌금을 물게 된다.
상수도 보호구역이라서 낚시가 금지된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는 미끼를 먹었다.”
낚시 줄을 당겼더니 낚시 바늘만 덩그러니 따라 온다. 물고기가 미꾸라지 고기를 먹었다.
“그래. 잡을 수 있겠다.”
미끼를 먹은 것을 본 영길이는 얼마든지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초에 이슬이 내려서인지 신발과 바지 끝부분이 촉촉이 젖었다. 하지만 아직도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고기 잡아서 돈 벌겠다는 생각이 우스꽝스럽게 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갈대밭이 무성한 곳에 놓은 낚시 줄을 잡다 당겼다. 그런데 팽팽한 줄에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잡혔다. 뭔가 잡혔다.”
주변에 흙탕물이 이는 것을 보니 분명히 뭔가 잡힌 게 틀림없다.
“뭘까?”
“도대체 뭘까?”
영길이는 다시 줄을 잡아당긴다.
“푸다닥!”
물속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물방울을 온 사방에 튀기면서 물장구를 친다. 순식간에 영길이는 옷이 다 젖었다.
“장어다!”
영길이는 물속에서 튀어 오르는 장어를 봤다. 새까만 꼬리로 물을 이리저리 치면서 도망치려고 한다.
영길이는 힘껏 낚시 줄을 당겼다. 가슴이 쿵쾅 뛴다. 무섭기도 하다.
그렇게 영길이는 처음으로 장어를 한 마리 잡았다.
“와! 크다.”
“잡았다. 장어를 잡았다.”
영길이는 소리쳤다. 그리고 남은 낚시 줄을 거두러 간다.
“너무 좋다.”
정말 기분 좋다. 미끼를 먹고 걸려든 장어를 보니 너무 행복한 기분이 든다.
비닐포대 속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장어가 불쌍하기도 했다.
고기를 잡겠다고 시작한 첫날 장어를 잡았다. 영길이는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다.
저수지를 다 돌고 낚시 줄을 건지고 보니 손바닥만 한 붕어 한 마리와 장어 한 마리를 잡았다.
영길이는 낚시 줄과 고기를 담은 비료포대를 들고 씩씩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장어 한 마리 잡았어.”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엄마가 나오더니
“장어? 어디서?”
“저수지에서.”
“오메, 장어를 잡았네?”
“붕어도 한 마리 잡고.”
“잘했다. 아빠 장어탕 해주자.”
영길이는 시장에 가지고 가서 팔 생각이었는데 엄마가 아버지에게 장어탕을 해준다는 말에 그만 포기했다.
“형, 고기 잡았어?”
어제 미꾸라지를 칼로 자르는 것을 본 막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더니 고기부터 잡았는지 묻는다.
“잡았지. 장어랑 붕어.”
“정말?”
“그래.”
“어디?”
“장독대 앞에 있어.”
방에서 나온 막내는 장독대로 달려간다.
“와! 와! 장어다. 대게 크다.”
막내는 비료포대를 열어보더니 신난 기분이다.
“형, 장어 갔다 팔 거야?”
“아니. 아빠 장어탕 끓여드릴 거야.”
저수지에서 잡은 첫 번째 장어는 그렇게 아빠가 드셨다. 그리고 다음 날 저수지에서 영길이는 잉어 한 마리와 자라 한 마리를 잡았다. 잉어는 엄마가 끓여 먹는다고 하고 자라는 읍내에 가지고 갔다.
학교 가면서 들고 가는 비닐봉지에 담은 자라는 제법 무거웠다.
“아저씨, 자라 한 마리 잡아왔는데 얼마 받을 수 있어요?”
“허허! 정말 잡아왔구나.”
“어디 보자. 좀 작다. 이건 천 원 주마.”
“네.”
영길이는 자라 한 마리를 잡아서 민물고기를 파는 가게에 가지고 와서 천 원을 받았다.
“이렇게 매일 돈을 벌면 되겠다.”
돈을 모으면 친구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를 제일 먼저 사고 싶다. 동생도 태우고 갈 생각이다. 학교까지 걸어가는 게 너무 힘들다. 하지만 자전거를 살 돈을 모으려면 열심히 모아야 한다.
그렇게 저수지에 낚시 줄을 놓고 잡은 자라, 잉어, 장어 등을 팔아서 돈을 차곡차곡 모아갔다.
큰 자라를 두 마리 판 날은 삼천 원을 받기도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영길이는 논으로 미꾸라지를 잡으러 간다. 너무 신나서 힘든 것도 모른다. 막내 동생도 형을 따라서 미꾸라지를 잡으러 간다. 형이 돈이 생기면 아이스크림을 동생들에게 사주기 때문이다.
“형, 오늘도 아이스크림 사줘?”
“알았어.”
저녁때가 되자 영길이는 저수지로 향한다.
어제 영길이는 처음으로 일기장에 저수지에서 낚시 줄로 고기를 잡은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칭찬도 받았다.
“영길이는 벌써 돈을 버는 구나.”
하시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6. 자전거를 샀다.
자라와 장어를 팔아서 오만 원을 모은 영길이는 읍내에 있는 자전거 가게에 갔다.
‘티끌 모아 태산.’
이라는 말처럼 한 푼 두 푼 모아서 오늘 드디어 자전거를 산다. 자전거 가격이 다양한 것을 처음 알았다.
“이 모델은 얼마예요?”
“그건, 신형 자전거인데 육만 원이다.”
“비싸네요?”
“자전거 가격이 조금 올랐다.”
만식이가 타는 자전거와 같은 것을 사고 싶은 데 돈이 조금 모자랐다. 만 원 정도 모자라서 다음에 사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만식이는 오만 원을 주고 샀는데 그동안 자전거 가격이 올랐다고 한다.
“만 원은 더 벌어야 한다.”
영길이는 집에 오는 길에 만식이를 만났다.
“영길아.”
“안녕.”
“학교 수학여행 어디로 가냐?”
“경주로 가.”
“우리는 서울로 가는데.”
“좋겠다. 서울도 가고.”
“경주도 좋다고 하던데.”
하지만 영길이는 경주에 가지 않는다. 수학여행 경비를 엄마가 내주지 않아서다. 자라와 장어를 판 돈이 있어서 그 돈으로 낼까 고민도 했지만 영길이는 자전거를 사기로 맘먹고 이번 수학여행은 가지 않기로 했다.
“영길아, 경주 가면 기념품 사와?”
“난, 안 가는데.”
“왜?”
“그냥 가기 싫어서.”
“그렇구나. 내가 서울 가서 기념품 사다 줄게.”
“고마워.”
“뒤에 타.”
“아니, 걸어갈래.”
“타 임마?”
“아니, 그냥 걷는 게 좋아.”
“알았어. 간다.”
“응.”
만식이와 헤어지고 영길이는 집을 향해 걸었다. 읍내를 벗어나 산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다음 달에는 나도 자전거를 살 수 있을 거야.”
영길이는 혼자서 모은 돈과 앞으로 벌 돈을 계산하면서 다음 달에는 꼭 자전거를 사고 싶었다.
집에 돌아온 영길이는 미꾸라지를 잡으러 논으러 나갔다. 동생도 숙제를 하다 말고 따라 나섰다.
“형, 얼마 모았어?”
“비밀이야.”
“나한테만 알려줘?”
“싫어.”
“형, 돈 모아서 정말 자전거 살 거야?”
“응.”
영길이 동생 영만이는 형이 돈 버는 게 너무 부럽다. 또 자기도 크면 형처럼 돈을 벌 생각도 한다.
논두렁을 지나 도랑에 도착한 영길이와 동생은 도랑을 막고 물을 푸기 시작한다.
“형, 내가 물이 내려오지 않게 위를 막을게.”
“알았어.”
도랑에 들어간 두 형제는 벌써 미꾸라지 잡을 생각에 즐거운 표정이다. 햇살이 지는 시간이지만 아직도 날씨가 무덥다.
물을 다 퍼낸 후 삽질을 하기 시작한다. 영길이가 한 삽 파서 도랑둑에 올리면 영만이는 손으로 진흙을 주물럭거리면서 미꾸라지를 찾는다.
“잡았다.”
영만이가 한 마리 손으로 잡더니 소리친다.
“형, 크다.”
“진짜 크다.”
영길이는 열심히 삽질을 해서 도랑의 진흙을 도랑사이에 올려놓는다.
“형, 아홉 마리야.”
“그래.”
“오늘 것은 진짜 크다.”
“두 마리만 더 잡고 집에 가자.”
“알았어.”
영길이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으로 닦으면서 동생을 쳐다본다.
“형이 내일 아이스크림 사줄 게.”
“응.”
영만이는 형이 아이스크림을 사주면 제일 좋아한다. 특히 쭈쭈바를 제일 좋아한다. 하나 사주면 오래오래 빨아먹을 수 있어서 좋다. 읍내에서 하나 사주면 집에까지 거의 빨아먹으면서 올 수 있다.
오월이 다 가고,
영길이는 모은 돈을 가지고 다시 자전거 가게에 갔다.
“아저씨, 이건 얼마예요?”
“그건, 신형인데.”
디자인이 꽤 멋지다. 역시 신형이라서인지 영길이는 맘에 들었다.
“얼만데요?”
“칠만 오천 원.”
영길이가 생각한 가격보다 오천 원이 더 비싸다.
“칠만 원에는 안 돼요?”
“칠만 삼천 원 내라.”
“칠만 원 밖에 없는데요.”
“그래.”
“할 수 없지. 칠만 원 내.”
“감사합니다.”
영길이는 만수가 타는 자전거보다 더 신형 자전거를 샀다.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생각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주인아저씨는 자전거 자물쇠를 서비스로 주었다.
“잘 타거라.”
“고맙습니다. 고장 나면 올게요.”
“그래.”
자전거를 타고 집에 오는 길이 너무 즐거웠다. 영길이는 속력을 올려 집으로 가지 않고 광주 방향으로 페달을 열심히 밟았다.
바람이 영길이 얼굴을 부딪치면서 뒤로 사라졌다.
“야호!”
“기분 좋다.”
영길이가 자전거를 얼마나 갖고 싶었던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뜨거운 태양 아래서 미꾸라지를 잡아서 밤에 저수지에 낚시를 놓고 새벽이면 그것을 거두러 다닌 것도 6개월이 넘었다.
친구들은 모두 부모가 자전거를 사줬는데 영길이는 자신이 돈을 벌어서 이렇게 자전거를 샀다. 그것도 친구들보다 더 신형 자전거를 사서 타니 가슴 뿌듯하다.
“가자. 집으로.”
영길이는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 영만이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형, 정말 산거야?”
“그래.”
“정말, 형 거지?”
“그렇다니까.”
“와!”
동생들은 새로 산 자전거 앞에서 페달을 돌려보기도 하고 안장에 올라가 앉아보기도 한다.
“형, 한 번 태워줘?”
“알았어.”
영길이는 영만이를 태우고 학교 가던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들판에 있는 엄마 아빠를 향해 영만이는 소리쳤다.
“엄마, 형 자전거 샀어.”
“아빠, 형이 자전거 샀다니까.”
논에서 한 참 바쁜 영길이 엄마 아빠는 동생이 소리지르는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일만 하신다.
“와! 좋다.”
“내일부터 형이 태우고 학교에 갈게.”
“정말이지?”
“그럼.”
“앞으로 열심히 미꾸라지 잡을게.”
“그래. 돈 많이 벌어서 영만이도 자전거 사줄게”
“진짜지?”
“응.”
영길이는 저수지 둑까지 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여동생을 태우고 집을 나섰다. 자전거를 처음 타는 영순이는 무서운 지 오빠 허리를 꽉 붙잡았다.
“오빠, 무서워.”
“뭐가 무서워.”
“오빠, 천천히 가.”
“알았어.”
영순이는 너무 좋았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가는 게 정말 시원하고 좋았다.
그날 저녁,
영길이는 아빠에게 자전거 산 이야기를 했다.
“돈을 모아서 자전거 산 것 잘했다. 하지만 공부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영길이 아빠는 한 마디 하시고 밖으로 나가셨다.
“타고 다닐 때 차 조심해.”
“알았어요.”
“그리고 동생들도 태우고 다니고.”
“네.”
고기 잡으러 다니는 동안 엄마가 잔소리 하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엄마는 영길이가 고기를 잡지 못한 날 시무룩하면 용기를 심어 주었다.
“날마다 고기를 잡으면 부자 되겠다 이놈아. 못 잡는 날도 있는 법이야. 어서 학교나 가.”
엄마는 기운 빠진 아들에게 용기를 주고 더 많은 밥을 먹게 듬뿍 그릇에 담아 주셨다.
영길이는 잠이 안 오자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달빛에 반짝 빛나는 자전거를 한 번 쳐다봤다. 마루에서 내려다보는 자전거는 너무 멋져 보였다.
“저건 내 자전거야. 내가 돈 벌어서 산거야.”
영길이는 너무 행복했다.
7. 불갑사로 떠난 여행
학교 가는 길에 영길이는 만식이랑 금수를 만났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니까 같이 학교에 가는 날이 많았다.
“영길아, 일요일에 불갑사 갈까?”
“불갑사?”
“응. 자전거 타고. 도시락도 싸고.”
“너무 멀지 않아?”
“얼마 안 걸려. 금수랑 우리 셋이 가자.”
“글쎄!”
“내일까지 알려 줘. 금수는 학교에서 내가 물어 볼게.”
“알았어.”
자전거를 사니까 친구들이 멀리까지 놀러 가자고 한다. 영길이는 너무 좋았다. 걷는 것도 재미있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다니니까 또 멀리 갈 수 있어서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일요일에 만식이랑 금수랑 불갑사 놀러가도 되요?”
“불갑사까지?”
“네.”
“도시락 싸서 놀러가자고 하는데 가고 싶어요.”
“그래라.”
“형, 나도 같이 갈래.”
영만이가 이야기를 듣다가 형을 따라 간다고 한다.
“다음에 데리고 갈게.”
“나도 데려가줘?”
“형들끼리만 가는 거니까 다음에 가자.”
영만이와 영순이 얼굴에 화가 잔뜩 난 것 같다.
“일요일 날, 비나 와버려라.”
“비와도 갈 거야.”
“천둥 번개도 치고 비도 와라.”
“그래도 간다니까.”
“엄마, 천둥번개 치면 못 가게 해.”
“우리 영만이가 화난 게로군.”
“치!”
영만이는 엄마에게 허락을 받고 일요일 친구들과 불갑사에 자전거 하이킹을 떠났다.
“영길이 자전거가 제일 새 거다.”
“고마워.”
“오늘 한 턱 내?”
“한 턱?”
“그래. 자전거 새로 샀으니까 한 턱 내야지.”
“돈 없는 데.”
“그럼, 나중에 내.”
“알았어.”
영길이는 자전거를 사고 한 턱 내라는 친구들이 좋았다. 그리고 새 자전거를 타는 기분이 좋았다. 친구들 자전거를 보니까 벌써 찌그러지고 바퀴도 달아서 쭈굴쭈굴 하다.
불갑사에 도착한 영길이랑 친구들은 자전거를 한 곳에 두고 도시락을 들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불갑산 입구에는 벌써 솜사탕 파는 아저씨가 자리를 잡고 있다. 어린 꼬마가 솜사탕을 사서 먹고 있는 모습을 본 영길이는 솜사탕이 먹고 싶었다.
“내 동생들도 솜사탕 좋아하는데. 다음에는 동생들을 태우고 와서 솜사탕을 사줘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산을 올랐다.
“천천히 가자. 힘들어.”
불갑사 대웅전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는데 만식이는 어제 달리기를 해서 다리가 아프다면서 천천히 산을 올라가자고 한다.
“알았어.”
영길이와 금수는 가던 길에 멈춰 서서 만식이를 기다린다.
“너, 벌써 늙었냐?”
“그래. 너도 내 나이 돼봐.”
“자슥, 곧 죽겠구나.”
“죽다니.”
금수는 만식이에게 말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늙으면 죽는다.”
“난, 혼자 죽지 않는다. 금수 너는 꼭 데리고 간다.”
“너 죽는 날, 난 이름 바꾼다.”
“그래도 널 꼭 찾아낸다. 혼자 죽지 않아.”
같은 학교에 다니는 만식이와 금수는 늘 이렇게 말장난을 치면서 다닌다. 어떤 말은 야해서 듣기도 거북스러울 때도 있다.
“조심해. 오늘 산길에서 널 데려갈 수도 있어.”
“아무튼, 혼자는 안 간다니까. 너희 둘 다 데리고 간다.”
영길이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야, 나는 왜 데려 가려고?”
“놀아도 우리 셋이 놀아야 재밌으니까.”
“난, 아직 할 일이 많다. 그러니 둘이만 가라. 제발!”
“웃기지마.”
만식이는 학교에서도 장난꾸러기로 유명하다. 쉬는 시간만 되면 금수네 반에 가서 금수를 놀리고 오는 날도 있다. 만식이보다 키가 훨씬 큰 금수는 만식이를 손으로 들었다 놨다 하면서 가만 두지 않는다.
“이걸, 확 던져버린다.”
“좋아. 던져 봐. 내가 죽으면 너도 데려갈 테니까.”
만식이는 이렇게 금수를 놀린다. 죽을 때는 꼭 금수를 데려갈 모양이다.
농담을 하면서 걷다 보니 불갑사 대웅전 앞이다.
“부처님께 잘 기도해라. 아니면 오늘 보내버린다.”
만식이는 금수를 보면서 한 마디 한다.
“알았다. 오늘 널 데려가라고 기도해주마.”
금수도 한 마디 한다.
영길이는 자전거 타고 나온 여행이 너무 즐겁다. 또 친구들과 이렇게 재미있게 농담도 하고 산길을 걸으니 너무 행복했다.
대웅전 앞에서 셋은 나란히 앉아 쉬면서 들어오는 관광객들을 쳐다봤다.
“사람들이 많이 온다.”
“영광서는 여기가 최고 관광명소지.”
“그런가? 백수해안도로도 있자나?”
“거기는 차가 있어야 가니까. 또 버스가 잘 다니지 않아.”
“그래.”
“이번 여름 방학에 백수해안도로 갈래?”
“자전거 타고?”
“난, 이번 방학 때 자전거 타고 백수해안도로 갈 계획이야.”
“좋겠다.”
만식이는 이번 방학에는 백수해안도로를 여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금수 갈 거지?”
“그래.”
“영길이 너는?”
“난, 아직 모르겠다.”
“우성이도 간다고 했어. 그러니까 영길이 너도 가자.”
“한 번 생각해볼게.”
“방학하면 바로 가는 거다.”
“1박 2일로 갈까?”
“자고 오는 것은 아마 힘들걸.”
“옷 두껍게 입고 가서 바위 위에서 자고 오면 되지.”
“그래도.”
영길이는 만식이랑 금수가 부럽기도 했다. 같은 학교를 다니니까 이렇게 마음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여행도 같이 다니는 것을 보니까 정말 부러웠다.
“나도 학교에 친한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영길이는 자전거 하나가 생기면서 생활이 바뀐 것을 보고 너무 놀라웠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 다니는 것 말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여행을 하고 있으니 너무 행복했다.
“영길아, 너도 가는 거야?”
“알았어. 노력해 볼게.”
여름방학에 백수해안도로에 가는 것이 기대된다. 영길이는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게 걱정이다. 아마도 엄마는 허락해 주실 거다.
영길이는 불갑사 대웅전을 구경하고 나와서 그늘진 계곡에서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즐거웠다.”
“그래. 우리 다음 주 일요일에도 가자.”
“알았어.”
영길이는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향했다.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탔는데도 힘들지 않다.
“정말, 좋다니까. 빨리 가서 미꾸라지 잡아야지.”
영길이는 자전거 페달을 더 힘차게 밟았다.
8. 참나무 아래서 사투 끝에 잡은 장어
6월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오후에 영길이는 감나무 밑에서 쉬고 있었다. 좀 더 해가 지면 논에 가서 미꾸라지를 잡을 생각을 하고 있다.
밭에서 따온 수박을 동생들과 함께 먹던 영길이는 농사만 짓고 살아야하는 농부의 삶에 대해서 고민했다.
“나도 커서 농부가 돼야 하나?”
영길이는 아버지처럼 농사짓고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도시에 나가서 돈도 많이 벌고 출세하고 싶다. 시골에서도 이렇게 돈을 버는데 도시에 가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돈 버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있는 영길이는 도시로 나갈 생각을 한다.
“어떻게 도시로 갈까? 중학교를 졸업하고 누나가 취직한 서울로 가야 한다.”
어차피 고등학교는 진학하기 힘들 것을 아는 영길이는 중학교 졸업을 하면 도시로 갈 생각을 한다.
남의 논을 빌려서 농사짓는 일도 힘든 것 같다. 아버지는 매년 남는 게 없다고 하는 것을 보면 농사짓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로 가야지.”
영길이는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돈을 더 많이 모아야 한다. 그래서 더 열심히 자라와 장어를 잡아 팔아야 한다.
동생과 함께 논으로 향했다. 오늘은 집에서 좀 멀리 떨어진 재현이네 논으로 갔다.
“형, 여기서 잡아도 괜찮아?”
“그럼. 도랑에서 잡으니까 괜찮아.”
아버지가 빌려 농사짓는 주변 도랑에서만 미꾸라지를 잡았다. 하지만 이제는 잡을 곳이 없다. 이곳저곳을 다 파헤치고 다녔으니 미꾸라지가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오늘은 재현이네 논으로 왔다.
재현이네는 이 동네에서 가장 부자다. 논과 밭이 가장 많은 집이다. 동네 어른들이 재현이네 집이 가장 부자라고 인정하니 영길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재현이네는 소도 네 마리나 키운다. 소를 팔면 논을 또 살 수 있으니 정말 부자인 것 같다.
돈에 대해서 정확한 가치를 모르는 영길이는 시골에서 부자의 기준을 논과 밭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 가와 집에서 키우는 소가 몇 마리인가를 가지고 따진다. 소 한 마리가 몇 십만 원 하니까 정확한 계산이 나온 듯하다.
도랑을 막고 물을 푸기 시작했다. 영만이는 위에서 흐르는 물을 잘도 막는다. 이제는 영길이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한다. 호흡이 제대로 맞는 것 같다.
“형, 미꾸라지 있을까?”
“있겠지.”
영길이는 물을 다 푸고 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도랑의 진흙을 퍼 올려서 도랑둑에 올리면 영만이는 손으로 휘저으면서 진흙 속에 숨은 미꾸라지를 잡는다.
“없어.”
삽질 한 번에 미꾸라지가 나올 리 없다. 그런데도 기대를 한 모양이다. 영만이는 삽질 한 번에 한 마리는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몇 번을 삽질 해 올린 진흙 속에는 미꾸라지가 없다.
“형, 한 마리도 없어.”
“그러게.”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영길이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미꾸라지를 잡지 못하는 것 아닐까?”
열심히 삽질을 했지만 미꾸라지 구경도 못했다.
“형, 없다. 다시 우리 논으로 가자.”
“조금만 더 파 보고.”
아래 논으로 내려가더니 물이 고인 도랑을 또 막기 시작한다. 그리고 물을 퍼내기 시작한다.
“형, 여기도 없으면 어떡하지?”
“오늘은 저수지에 낚시를 놓을 수 없지.”
“꼭 잡아야 하는데.”
물을 다 퍼낸 영길이는 삽질을 하기 시작한다.
“제발! 한 마리라도 나와라.”
영만이는 기도하는 듯 형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한다. 영길이 마음도 마찬가지다.
몇 번을 했을까? 미꾸라지 새끼 한 마리가 나왔다.
“미꾸라지 새끼야.”
“그래. 그럼 여기도 미꾸라지는 있다는 거군.”
손에 힘을 주고 더 열심히 삽질을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미꾸라지 세 마리를 잡았다. 새끼까지 치면 네 마리 잡은 셈이다. 하지만 영길이는 새끼는 잡지 않는다. 더 크면 잡을 생각이다.
“오늘은 더 이상 미꾸라지를 잡고 싶지 않다.”
영길이는 동생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형, 오늘 낚시 안 놀 거야?”
“아니, 세 마리만 잘라서 놓을 거야.”
한 마리에 다섯 토막 정도 나오니 열다섯 개 정도는 놀 수 있다.
“다음에는 많이 잡으면 항아리에 모아야겠다.”
그동안 많이 잡아오는 날은 엄마가 맷돌에 갈아서 추어탕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맛있게 먹었는데 오늘처럼 미꾸라지를 잡지 못하는 날은 그때의 미꾸라지가 생각난다.
장독대 부근에서 미꾸라지를 잘라 낚시 바늘에 한 덩어리씩 끼우면서 오늘 밤에도 많은 고기가 잡히길 바랬다.
“형, 나도 따라갈게.”
“위험하니까 더 크면 데려갈게.”
저수지 안으로 들어가려면 철조망 사이를 뚫고 들어가야 한다. 또 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걸어가는 둑길도 위험하다.
낚시 줄을 챙기고 저수지로 향했다. 그리고 상류 쪽에서부터 낚시 줄을 꽂아가기 시작했다. 열다섯 개 밖에 안 되니 오늘은 일찍 끝날 것 같다.
“내일 아침에도 자라가 잡히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벌써 어두컴컴해지고 있다. 저녁때는 혼자가도 무섭지 않은데 새벽에는 사실 무섭다. 그래서 가끔 영만이를 데리고 가고 싶은 날도 많았다. 하지만 쿨쿨 자는 영만이를 깨워서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새벽에 저수지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많은 친구들이 있다. 길가에 핀 꽃들도 있고 많은 잡초들이 영길이를 반긴다. 새벽부터 이슬을 먹기 시작하는 곤충들이 영길이가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산기슭에서 시작한 물줄기는 모두 이곳 저수지에 모인다. 정말 깨끗한 물이다. 동네에서 키우는 소도 열 마리도 안 된다. 집집마다 돼지는 키우는 데 삼십 마리 정도 된다. 짐승들의 오물이 하천을 통해서 흘러내리는 것은 별로 없다. 모두 논이나 밭에 거름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저수지 상류 쪽에 모두 열세 가구가 살고 있다. 내년부터는 이곳에서 살 수 없고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해야 한다. 저수지 물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란다. 그래서 요즘 아버지는 새로 지을 집터를 찾아다니고 있다. 동네 전체가 이주해야 하기 때문에 넓은 곳이 필요한 모양이다.
“아버지, 어디로 이사 갈 거예요?”
“글쎄다.”
“읍내로 가요?”
영만이는 학교가 가까운 읍내로 가고 싶은 모양이다. 영길이도 마찬가지다. 학교가 가까운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수지에서 멀리 이사 가면 어떡하지?”
고기를 잡아서 읍내에 갔다 팔아야 하는 영길이는 걱정이다. 만약 멀리 이사를 간다면 이제 고기를 잡아서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형, 읍내로 이사 가도 고기 잡으러 올 거야?”
눈치 빠른 영만이는 벌써 형이 돈을 벌 수 있는지가 궁금한 모양이다.
“몰라.”
“형, 나랑 같이 잡으러 오자.”
영만이 답다. 형이 돈을 벌어야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과자도 사준다는 것을 안다. 아직 자기가 형처럼 고기를 잡을 용기는 없는 가 싶다.
다음 날 새벽, 영길이는 집을 나섰다.
둑을 지나 나무가 무성하고 갈대가 무성한 곳부터 낚시를 걷기 시작했다. 다섯 개를 넘어서면서 한 마리도 못 잡은 영길이는
“오늘은 꽝이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아직 남은 낚싯줄은 열 개 정도인데 고기가 잡히지 않을 것 같은 실망이 밀려왔다.
새벽이 끝나가는 하늘에서 빛나는 흐릿한 북두칠성을 한 번 바라보았다.
“아! 저렇게 영길이의 오늘 희망이 사라지는가?”
하는 아쉬움이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래도 내가 가야할 길이다. 또 해야 할 일이다. 오늘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내일도 모래도 그리고 미래도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가지 않으면 누가 내 대신 내 길을 가주겠는가?”
텅빈 비료포대를 바라보면서 어깨 너머로 기운이 쏵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영길이는 다음 낚시 줄을 향해 걸어갔다.
참나무 아래다. 이곳에서는 장어도 자라도 벌써 몇 마리나 잡았다. 명당이라고 할 만큼 가장 많이 잡은 자리라서인지 항상 기대를 하고 온다.
눈에 보여야할 낚시 줄이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분명이 어제 놨는데.”
한 참을 찾았다. 그리고 풀 사이로 팽팽한 낚시 줄을 봤다.
낚싯줄이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다. 느끼는 감정이 아무래도 뭔가 잡혀있는 것처럼 낚싯줄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심장이 벌써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놈이 잡혔을까? 자라 일까? 아니면 장어일까? 잉어일까 아니면 조그만 피라미드 새끼일까?”
주변을 살펴보았다. 주변이 심상치 않게 어질러졌고, 흙탕물이 일고 있었다.
“틀림없이 큰 놈이 잡혔다.”
이렇게 가슴속으로 외치고 나는 서서히 낚싯줄을 잡아보았다.
“팽팽한데, 이렇게 팽팽한 기분 처음이야.”
꼼짝도 하지 않는다.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고 손이 떨려왔다. 속으로 고민했다.
“이놈을 어떻게 잡아야할까?”
정신을 집중하고 줄을 잡았다. 대단한 놈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낚싯줄에 살짝 칼을 대면 끊어져버릴 것만 같은 팽팽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낚싯줄은 약 3m정도 된다. 흙탕물이 인 잠잠한 물속의 모습이 갑자기 보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밤새 얼마나 탈출하려고 요동을 쳤으면 이렇게 주위가 온통 흙탕물일까 싶었다.
물속에는 띄엄띄엄 갈대가 무성하다. 그렇지만 갈대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범위이다.
다시 살짝 줄을 잡아당겨 보았다. 역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아니 내 힘이 전달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손바닥에 침을 바르고 다시 낚싯줄을 잡았다. 그리고 길게 심호흡을 하고 두 손에 힘을 모았다. 조금 힘을 주어 잡아당겼더니 물결이 일었다. 큰 원을 그리면서 움직였다. 물결이 출렁거리면서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손바닥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 잡혔다. 큰 놈이 잡힌 거야!”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면서 낚싯줄에 온 힘을 기울여 당기기 시작했다. 당기면 당길수록 저수지의 물살이 심하게 출렁인다.
“오늘은 과연 어떤 놈일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온 힘을 다해서 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물속에 있는 그 놈이 반항을 하기 시작한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줄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줄을 위협하는 것을 보니 보통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뭘까?”
아무리 잡아당겨도 내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놈은 반드시 잉어나 메기 또는 장어나 자라 일 것이다.
“하나 둘 셋.”
다시 줄에 온 힘을 다해 당기기 시작했다.
“푸타타다닥.”
물방울이 여기저기에서 분수를 이룬다.
“와! 환상적인 모습이다.”
이것도 잠시 나는 다시 줄과 실랑이를 벌었다. 줄에서 느껴져 오는 힘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침착, 침착해야 한다.”
다시 줄을 늘려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옷은 이미 다 젖었다.
“이러다 저번처럼 놓칠 수도 있다. 그러니 침착해야 한다.”
허리를 펴고 멀리 저수지 건너편을 쳐다봤다. 만수 아버님이 논두렁에 물을 보러 오신 것 같다. 만수 아버지를 부를까 생각을 했다.
“아니야. 내가 지금까지 잘 해왔는데 뭐!”
영길이는 가끔 저수지에는 용이 되려는 이무기가 산다고 생각했다. 또 물속에는 괴물이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이렇게 낚싯줄이 팽팽한 것을 보면 무섭기까지 하다.
“이번에는 정말 잘 해서 저놈을 잡는 거야.”
주머니에서 신문지를 꺼냈다. 그리고 아픈 손바닥을 위해 줄에 감았다. 영길이는 주머니에 신문지를 가지고 다닌다. 가끔 저수지에 오면 똥이 마려울 때가 있다. 그래서 그때 사용할 목적으로 주머니에 항상 신문지 조각을 가지고 다닌다.
그 신문지로 낚싯줄을 감고 있다.
“지쳐 있는 거야.”
나처럼 조용히 있는 것을 보니 지쳐있는 게 틀림없다.
영길이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이번에는 저놈을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
생각했다.
늘려주었던 낚싯줄을 다시 잡아당겼다. 온 몸의 힘을 다해서 당기자 물속에서도 이리저리 움직였다.
“푸타타다닥~!”
“오! 저놈은. 정말 크다. 와와와와!”
순간 가슴이 멎는 줄 알았다. 정말 큰 놈이다.
줄을 잡은 손바닥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저놈 때문에 난 온 몸에 물 세레를 받고 있다.
옷이며 얼굴이며 모두 젖었다. 얼마나 힘차게 물장구를 치는 지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만들었다.
다시 낚싯줄을 더 힘껏 잠아 당겼다. 그러나 그놈 역시도 꼼짝도 하진 않는다. 흙탕물만 일뿐이다.
실랑이를 벌인 시간이 벌써 1시간이나 지난 것처럼 느껴진다.
거무산은 벌써 환하게 아침을 알려주고 있다.
저수지 주변에 물안개가 자욱하게 오르던 것도 서서히 멈춰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이 트면서 저수지 건너편을 바라보니 경운이 아버지도 논에 물고를 트고 계신다.
만수와 경운이 아버지의 도움을 받을까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혼자서 잡고 싶었다.
“이놈은 정말 내 손으로 잡는다.”
이번에는 온 힘을 다해 이놈과의 싸움을 마무리 해야겠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면서 서서히 낚싯줄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다시 긴장감이 맴돌고,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냐 해보자.”
이를 악물고 줄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꼼짝을 하지 않는다. 주변에 흙탕물만 일고 파동을 이루면서 서서히 멀어져만 간다. 잡아당긴 낚싯줄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
“아! 힘들다. 역시 지난번처럼 또 잡지 못하는 건가?
신문지가 조각조각 찢어져 떨어졌다. 주변에 풀잎을 뜯어서 신문지 사이에 넣고 다시 온 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푸다다다닥! 푸다닥! 푸다다다닥!”
갑자기 그 놈의 몸이 물 위로 올라왔다.
“와! 정말 크다.”
가슴이 더 빠르게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정말, 큰 놈이다.”
드디어 물위로 떠올랐다. 지쳤다는 표시이다.
“조금만 더 힘내면 잡을 수 있다.”
손바닥이 쓰려왔다. 오랫동안 잡아당긴 낚싯줄 때문에 아팠다. 그래도 저놈만 잡는다면 이 아픔도 사라진다.
이런 마음을 뒤로 하고 영길이는 다시 낚싯줄을 잡았다.
“이번에는 반드시 물 밖으로 꺼내고 말테다.”
두 발로 지렛대 역할을 하려고 힘을 주어 땅을 좀 팠다. 그리고 단단히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푸다다다닥! 푸다닥! 푸다다다닥!”
역시 아직도 힘이 남은 건지 물속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더 이상 줄을 풀어주면 안 돼.”
온 힘을 다해서 줄을 잡아당겼다. 서서히 끌려 나온다. 하지만 영길이가 그동안 잡은 자라와 잉어 또는 장어보다도 힘이 센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뭘까?”
줄을 잡아당기면서 영길이 머릿속에는 뭐가 잡힐지 궁금했다.
오랜 시간 사투 끝에 잡은 것은 대왕 장어였다.
“정말 크다.”
장어는 1미터가 훨씬 넘었다. 물 밖으로 나온 장어는 풀숲 사이를 이리저리 미끄러지듯 다니면서 탈출을 시도했다.
영길이는 물에서 더 멀리 장어를 끌고 갔다. 혹시나 물속으로 달아나 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비료포대에 넣지?”
혼자서는 도저히 들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 영길이는 비료포대에 넣을 것도 걱정이다.
영길이는 장어가 도망가지 못하게 낚싯줄을 땅에 꽂아 놓고 참나무 가지를 꺾으러 갔다. 긴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 장어를 밀쳐서 비료포대에 넣을 생각이다.
작은 나뭇가지로 비료포대 입구를 열고 긴 나뭇가지로는 장어를 들어봤다.
“아이쿠! 무거워.”
들리지 않는다. 아니 꼼짝도 않는다. 무거운 장어를 손으로 들어서 비료포대에 넣을 용기가 나질 않았다. 또 너무 무서웠다.
길게 숨을 쉬고 영길이는 다시 용기를 냈다. 빨리 넣어서 가지고 가야한다. 그래야 밥을 먹고 학교에 갈 수 있다. 젖은 몸도 씻어야 하고 옷도 갈아입어야 한다.
영길이는 비료포대 입구를 장어 얼굴 가까이 대고 나뭇가지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큰일이다. 어떡하면 좋지?”
영길이는 한참을 생각했다.
“좋아. 손으로 하자. 이미 힘이 다 빠진 녀석이니까.”
영길이는 주변에 떨어진 신문지 조각을 하나하나 모았다. 그리고 장어 곁으로 가서 머리 부분을 잡았다. 그러자 장어는 뒤 꼬랑지로 영길이 손을 꼬아버렸다.
“아! 힘을 쓸 수가 없어.”
아무리 영길이가 손을 빼려고 해도 장어 힘을 이길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영길이는 장어를 잡은 두 손을 놨다. 그때서야 장어도 영길이 손목을 풀어주었다.
“아! 센 놈이군.”
영길이는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발로 장어 꼬리를 밟고 손으로 머리 부분을 잡았다. 그리고 장어 머리 부분을 비료포대에 넣고 나서 나뭇가지로 몸통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드디어 장어를 비료포대에 넣었다. 그리고 고무줄로 입구를 꽁꽁 묶었다.
장어가 요동친다. 비료포대에 들어간 장어는 이리저리 탈출 구멍을 찾는 모양인지 꼬리를 치면서 꿈틀거린다.
“이제 집에 가자.”
영길이는 저수지 철조망을 넘는 데 힘들었다. 장어가 어찌나 무거운지 조금 들고 가다가 땅에 내려놓고 다시 들고 가야 했다.
마루에서 아침을 먹던 가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왜 이렇게 늦었어. 빨리 와서 밥 먹어.”
“형, 고기 잡았어.”
“응.”
“몇 마리?”
“한 마리.”
“뭐야?”
“장어.”
동생은 밥 먹다 말고 마당으로 뛰어 내려온다. 그리고 형이 들고 오는 비료포대를 받으려고 한다.
“무거워.”
“와! 대게 크다.”
“엄마, 아빠 장어가 대게 커.”
영길이는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오늘처럼 큰 장어를 잡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루 앞에 장어를 내려 놨다. 엄마 아빠는 밥 먹다 말고 비료포대를 쳐다보더니
“아따, 정말 큰 것 잡았다.”
“수고했다. 얼른 씻고 와서 밥 먹고 학교가라.”
“이건 팔지 말고 아빠 약해주자.”
엄마는 장어만 잡으면 아빠 약을 해준다고 한다. 이유는 모르지만 아빠 몸에는 장어가 좋다고 하신다.
“엄마가 천 원 줄게. 아빠 약 해주자. 영길아.”
“네. 어머니.”
새벽에 사투 끝에 잡은 대왕 장어는 결국 아빠 약을 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영길이는 엄마에게 천 원을 받았다.
“형, 이거 시장에 가져가면 더 많이 받지?”
“당연하지.”
“엄마는 장어만 잡으면 못 팔게 한다니까.”
“형, 다음에는 장어 잡으면 저수지에 숨겨 놓고 와.”
“자슥.”
“학교 갈 때 가지고 가면 되잖아.”
영만이는 머리가 참 좋다. 동생이지만 공부는 형보다 잘한다. 역시 형에게서 배우는 게 많은 지 머리 돌아가는 게 보통이 아니다. 아마도 형처럼 나이가 먹고 고기를 잡으면 장사도 잘 할 것 같다.
영길이는 아침을 먹고 자전거에 동생들을 태우고 학교에 간다.
아침마다 두 동생은 자전거 뒤에 타려고 서로 다투기도 한다. 앞에 타면 엉덩이가 더 많이 아프기 때문이다.
9. 이주가 시작되었다.
저수지에서 고기를 잡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저수지 상류에 있는 마을이 모두 이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광군 사람들이 먹는 물이기 때문에 오염되면 안 된다는 이유다.
영길이는 이사를 가도 저수지에 와서 고기를 잡을 생각을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저수지에서 고기를 잡거나 들어가면 벌금을 물린다는 표지판을 저수지 둑 앞에 세웠기 때문이다.
“고기 잡는 것도 끝인가?”
무더운 날씨 탓인지 고기도 잘 잡히지 않는데 걱정이다. 고기를 잡지 못하면 영길이는 다시 용돈도 받지 못하는 옛날로 돌아간다.
저수지를 넘어 산을 넘고 읍내가 바라보이는 곳으로 온 마을이 이주하기로 정했다. 그리고 어른들은 그곳에 집을 지을 땅을 사고 터를 닦기 시작했다.
영길이네 집은 읍내에서 산길로 접어드는 입구의 밭을 샀다. 지대가 높아서 광주에서 오는 차들이 다 보이고 도로 건너편의 산들도 다 보여서 전망 좋은 집터가 될 듯하다.
산 끝자락에 자리한 영길이네 집터는 사백 평이나 되는 넓은 밭이다. 봄에는 당근을 심고 여름에는 메밀을 심어서 예쁜 꽃이 피기도 한다. 가을이 되면 배추나 무를 심는 곳이다. 주인 몰래 들어가 당근이나 무를 뽑아 먹기도 했다. 겨울에 학교에 갈 때는 산길을 내려와 이곳을 지날 때면 찬바람이 불어서 몹시 추웠다. 산길이야 산과 나무들이 바람을 막아주니까 추운 줄 몰랐다. 하지만 산길이 끝나는 이곳부터는 넓은 들판과 읍내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귀가 시려 두 손으로 귀를 막고 걸어야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눈사람을 만들기도 한 곳이다. 동네 이장을 하는 영길이 아버지는 이곳에 집을 짓기로 하고 땅을 매입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는 산길을 걷지 않으니 새로 지을 집터를 볼 수 없다.
“형, 우리 집은 어디다 짓는 거야?”
“산을 넘으면 넓은 밭이 있는 곳에.”
“형이랑 눈사람 만들고 놀던 곳.”
“그래.”
“우리 집, 대게 크겠다.”
“엄청 크지.”
“학교랑 많이 가까워져서 좋다.”
“그래.”
영만이는 학교가 가까워지는 게 좋은 가 싶다. 하지만 영길이는 이사보다도 저수지에서 고기를 잡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더 많다.
“내일부터는 낚시를 더 많이 놔야겠다.”
이사를 가기 전에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영길이는 자라와 장어를 더 많이 잡을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낚시를 놔야한다.
영길이네 집은 포크레인이 터를 다듬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서양식으로 방은 네 개나 된다. 지금 사는 집보다도 두 배는 더 커 보인다.
“영만아, 내일은 걸어서 학교 간다.”
“왜?”
“우리 집 짓는 것 구경하고 가자.”
“알았어.”
동생들은 학교에서 오는 길에 새로 짓는 집을 구경하고 오지만 영길이는 자전거를 타고 오기 때문에 산길이 아닌 비포장도로를 이용해서 집에 온다. 그래서 새로 지은 집이 어떻게 짓고 있는 지 잘 모른다.
학교에서 돌아온 영길이는 미꾸라지를 잡으러 간다. 영만이도 삽을 한 자루 들고 형을 따라간다.
“형, 오늘은 어디로 갈 거야?”
“우성이 형네 논으로 가자.”
“거긴 처음이지?”
“응.”
우성이네 논은 영길이네 집에서 조금 멀다. 하지만 그곳에는 사람들이 미꾸라지를 잡으러 가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영만이랑 둘이서 먼 곳까지 갈 생각이다.
날씨가 더워서 더 깊은 진흙 속으로 들어가 버렸는지 요즘 미꾸라지 잡기가 힘들다.
“형, 이사 가도 고기 잡으러 올 거야?”
“모르겠다.”
“형이 잡으러 오면 나도 따라올게.”
“알았어.”
우성이네 논에 도착한 영길이와 영만이는 도랑을 막고 물을 푸기 시작한다. 다른 도랑보다 물이 많다. 산에서 바로 내려오는 물이라서 차갑기도 하다. 너무 맑아서 고기가 있을까?
“형, 고기 있을까?”
영만이도 이제 척 안다. 어떤 곳에 미꾸라지가 많이 사는 지 주변을 보고는 알아맞춘다.
“형, 이곳은 미꾸라지가 없을 거 같아.”
“그래. 일단 막았으니 찾아보자.”
물을 다 푼 후에 영길이는 삽질을 하기 시작한다. 도랑둑에 진흙을 퍼 올리면 영만이는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진흙 속에 들어있는 미꾸라지를 찾는다.
“없어.”
“조금만 더 파보자.”
“여기도 없어.”
실망하는 영만이 목소리가 더 커진다. 역시 영만이 생각이 맞을 지도 모른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많지 않다. 사람들이 고기가 보이면 잡아갈테니 당연한 것이다.
“아래로 가자.”
영길이는 도랑을 막았던 흙을 퍼내면서 허리를 편다. 그리고 삽을 들고 논두렁을 걸어 다음 논으로 내려갔다.
“형, 여기도 없을 것 같아.”
“그래. 그럼 더 아래로 내려갈까?”
영만이가 예지력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동생이 없다고 하는 곳에는 정말 미꾸라지가 없다. 다 그렇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영만이가 없다는 곳에서는 미꾸라지가 없었다.
“여기는 어떨까?”
“여기도 없어. 더 내려가 형.”
“그래?”
그렇게 한참을 내려왔다. 우성이네 논에서 미꾸라지를 잡겠다는 마음은 이미 사라졌다. 벌써 동수형네 논까지 내려왔으니 영길이 머릿속에 불길한 예감이 든다.
“미꾸라지 못 잡으면 어떡하지?”
영길이가 그동안 너무 많이 미꾸라지를 잡았는가 싶다. 동수형네 논에서도 도랑을 막고 미꾸라지를 잡아보려고 했지만 한 마리도 없었다.
“가자.”
영길이는 미꾸라지 잡는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갈 참이다. 영만이는 삽을 끌면서 졸졸 따라오더니
“형, 봉수네 논으로 가자. 지난달에 미꾸라지 새끼들 살려줬으니까 지금은 컸을 거야.”
“정말 머리가 좋다.”
지난달에 살려준 미꾸라지 새끼를 기억하는 것도 재작년에 밭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놀던 것을 다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니 동생이지만 참 똑똑하고 영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봉수네 논에 도착한 영만이는 그때 미꾸라지 새끼를 살려준 도랑을 가리키며 막으라고 한다.
“형, 여기를 막아.”
“알았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열심히 물을 퍼냈다. 그리고 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여기서는 잡을 거야.”
영만이는 형이 들으라고 하는 듯 큰 소리로 외친다.
물을 다 퍼내고 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힘들지만 마지막 힘을 내가면서 영길이는 진흙을 퍼 올리기 시작했다.
“간다. 잘 찾아봐.”
“알았어.”
몇 번을 퍼서 올렸을까.
“잡았다. 형.”
“그래.”
드디어 미꾸라지 한 마리를 잡았다. 중간 크기 정도의 미꾸라지다.
“그때, 새끼가 이렇게 컸을까?”
“글쎄!”
다시 삽질을 하는 영길이는 미꾸라지 한 마리에 크게 웃는 영만이가 너무 보기 좋았다. 계속되는 삽질 끝에 일곱 마리를 잡았다. 한 군데서 중간 크기의 미꾸라지를 다섯 마리나 잡았으니 큰 수확이다. 이정도면 서른 개 정도의 낚시 미끼를 만들 수 있다.
“이제 가자.”
“더 안 잡고?”
“그래. 오늘은 그만 잡자.”
영길이는 미꾸라지 잡는 것보다 이사를 가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그게 더 걱정이다.
또 날씨가 더우면 고기들이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 버리니까 요즘 고기잡이도 큰 수확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영길이는 돈을 벌지 않으면 고등학교도 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누나도 학교를 가지 못하고 서울로 취직하러 간 것을 보면 영길이도 중학교를 졸업하면 서울로 취직하러 가야 할 것이 분명하다.
영길이네 집은 멋지게 완성되어 간다. 벌써 지붕을 올리고 있으니 다음 달에는 이사를 간다고 한다. 집을 다 지은 곳은 벌써 이주를 시작했다.
새로 지은 집은 산길을 앞에 두고 마당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우리 집 위로 울령이 가족이 이사를 오고 아래로는 인수 형 가족이 이사를 온다.
엄마는 저녁마다 이사 갈 준비를 한다. 살림이야 별로 없지만 그래도 버릴 것은 버리고 챙겨야 할 것은 챙겨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열심히 이사 준비를 한다.
좁은 집에서 살면서 큰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게 좋으신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땅 한 평 없으니 먹고 살게 걱정이라고 하신다.
“이사 가면 뭐 먹고 살지 걱정이다.”
영길이는 이 말을 들으면 가슴이 콱 막히는 기분이다. 돈도 없고 땅도 없으니 농사지을 수도 없다. 남의 논을 빌려서 매년 농사를 짓지만 얻는 식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 가뭄이 들거나 태풍이 몰아치면 그 해는 정말 밑지는 장사를 하게 된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영길이는 새로 짓는 집에 갔다. 신발을 싣고 집안 곳곳을 구경했다. 안방과 윗방은 너무 컸다. 하지만 영길이가 살 방은 좀 작았다. 그래도 지금 사는 방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 방이다.
“좋다. 이렇게 좋은 집에서 이제 사는구나.”
이사할 집을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영길이는
“돈 벌면 책상 사야지.”
그동안 책상도 없이 밥상에서 공부한 동생들을 생각하면서 돈을 모으면 책상을 사고 싶었다.
“꼭 책상을 사줘야지.”
영길이는 집에 돌아와 다시 미꾸라지를 잡으러 갈 준비를 하는데 엄마가 부른다.
“오늘하고 내일까지는 엄마 도와줘야겠다. 부엌에 그릇도 싸야 하고, 장독대에 있는 빈 항아리도 씻어야 하니까.”
“네.”
영길이는 엄마가 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이번 주 일요일에 이사를 갈 수 있다.
“빈 항아리 닦을 때는 조심해. 깨질 수도 있으니까.”
“알았어요.”
영만이가 물을 떠오고 영길이는 항아리 속을 닦기 시작했다. 장을 담그는 항아리인지 장 냄새가 고소하게 났다.
“이렇게 큰 항아리는 어떻게 만들까?”
항아리 만드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영길이는 정말 궁금했다. 학교에 가는 길에 항아리 파는 가게를 지날 때마다 누가 만들고 어떻게 만드는 지 너무 궁금했다.
항아리를 다 닦고 나서 영길이는 동생에게 항아리 속에 들어가라고 했다.
“왜?”
“물 채워주면 목욕해.”
“정말?”
“응.”
영만이가 반바지를 입고 들어가자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앗! 차가워.”
“항아리 속에서 앉았다 일어섰다 하면서 영만이는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마. 항아리 깨지니까.”
“알았어.”
그렇게 몇 분을 놀던 영만이는 항아리에서 나왔다.
“형, 이사 가면 이 항아리는 우리 목욕탕 하자?”
“엄마가 허락하실까?”
“내가 엄마에게 말할 게.”
“알았어.”
드디어 이삿날이다.
큰 트럭이 한 대 왔다. 그리고 동수 형이 경운기를 가기고 왔다.
트럭에 집을 다 실고 몇 개의 항아리는 동수 형이 가져온 경운기에 실었다.
정든 집을 떠나는 것이 아쉬운지 엄마는 자꾸만 눈물을 흘리신다. 이집에 시집와서 사십년을 살았으니 눈물이 날만도 하다.
“이 지긋지긋한 산골도 오늘로 끝이구나.”
트럭에 올라탄 엄마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그동안 살아온 이곳과 이별을 하시는 듯하다.
거무산 자락에서 이십 리나 되는 불갑사까지 초파일이면 딸기를 머리에 이고 팔러 가기도 하고 장날이면 읍내에 찐 고구마를 팔러 다니기도 하셨다. 먼 길이지만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서 걷고 또 걷고 그렇게 살아오셨다.
이사를 온 집은 시멘트 냄새가 진동한다. 아직 마르지 않은 벽지에서는 밥풀 냄새도 난다.
“형, 우리 집 진짜 좋지?”
“그래.”
이 집으로 이사 오는 데는 작은아버지와 누나의 도움이 컸다. 특히 작은아버지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시면서 형님이 집을 새로 짓고 이사를 한다고 많은 돈을 보내주셨다. 그리고 누나도 모은 돈을 모두 엄마에게 보냈다.
“어른이 되면 이 은혜를 꼭 갚아야지.”
영길이는 이사 온 첫날 잠자리에 들면서 창문으로 보이는 달을 쳐다보며 가슴 깊이 새겼다.
며칠 째, 저수지에 고기를 잡으러 가지 못했다.
이사를 오고 집안 정리를 해야 했다. 어린 동생들은 노는데 바쁘지만 그래도 힘을 좀 쓸 수 있는 영길이는 엄마가 해달라는 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
“영길아, 항아리는 모두 이곳에 다 갔다 놔라.”
“네.”
마당에 내려놓은 항아리를 하나씩 뒤뜰로 옮기기 시작했다. 힘들었지만 엄마가 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일이다. 아버지는 다른 집에 일을 가셔서 엄마를 도울 시간이 없다.
저녁이 되면 마당에 전깃불도 켜 놓았다. 방마다 불을 다 켜고 있으니 환하고 너무 좋았다. 이사 오기 전에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호롱불을 켜고 살았다. 전기가 집에 들어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새로 이사 온 집에 저녁마다 전깃불을 훤하게 켜 놓으니 정말 좋았다.
이사 온 지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저수지에서 고기를 잡던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시간도 없었다.
작은 방에서 영만이와 함께 누워서 잠을 청하려고 하는 데 문득 저수지 생각이 났다.
“이제 끝인가?”
산길을 넘어가야 하는데 좀처럼 넘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람은 길들여지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편하다. 학교까지도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곳으로 이사를 오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이제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된다.
주머니에 돈도 없고 또 이사를 하다 보니 엄마도 돈이 없다고 하니 저수지에 가야 한다는 간절함이 가슴에 가득했다.
“내일은 미꾸라지를 잡으러 가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잠이 들었다.
10. 누구나 편하게 살고 싶다.
산 너머로 이사를 간 지 십여 일 만에 영길이는 혼자 다시 산길을 넘었다. 동생은 동네 친구들과 놀러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 무서운 산길을 이제는 넘어가야 하는 구나.”
학교에 가기 위해서 넘던 길이지만 이제는 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산길을 넘어 와야 한다. 그래야만 고기를 잡고 돈을 벌 수 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영길이는 매일매일 이 산길을 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넘어 저수지 둑에 도착하자. 가슴이 확 트였다. 고향의 향수 같은 맑은 공기가 반긴다.
“좋다. 참 아름답고 좋은 곳이야. 크면 이곳에 다시 별장을 짓고 살아야지.”
영길이는 그렇게 생각하고 둑을 지나 미꾸라지 잡을 곳으로 걸어갔다.
저수지 둑 끝자락에 오자 몇 몇 사람들이 철조망을 내려다보고 있다.
“저 사람들은 누구지? 고기 잡으러 왔나?”
길가에 새워진 지프가 한 대 있다. 자세히 보니 앞 문에 영광군청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니 군청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다.
“고기를 잡으면 벌금을 문다고 했는데. 이제 고기 잡는 것도 포기해야 하는구나.”
영길이는 어깨에 올려놓았던 삽자루를 내려 땅바닥에 끌면서 터벅터벅 며칠 전까지 살던 집으로 향했다.
살던 집에 도착한 영길이는 미꾸라지는 잡을 생각은 하지도 않고 마루에 턱 누웠다.
“여기서 내가 태어나고 십사 년을 살던 집이군.”
머리를 마루바닥으로 향하게 하고 멀리 보이는 밤나무를 쳐다보았다.
“저 밤나무에서 내가 떨어져 기절했지.”
영길이는 그때 죽을 뻔 했다. 밤나무에 올라가서 익은 밤을 따려고 하다가 그만 밤나무 가지가 찢어지면서 떨어졌다. 하지만 다행히 이렇게 살아있는 게 신기할 뿐이다. 한낮에 밤나무에서 떨어졌는데 정신이 들었을 때는 어두운 밤이었다.
겁도 없이 밤나무에 오른 것도 문제지만 바지만 달랑 입고 밤나무에 올라가서 떨어졌으니 온 몸에 밤송이 가시가 박혀서 더 아팠다. 엄마가 꼬박 일주일동안 등에 박힌 가시를 빼주셨다.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만 나올 뿐이다.
“만약 그때 죽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불교에서는 죽으면 다른 생명으로 태어난다고 했으니 영길이는 가끔 자신이 어떤 생명체로 태어났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그냥 가야겠다. 이제 저수지에서 고기잡이도 그만 두고. 군청 직원들에게 걸려서 벌금 물면 큰 일이니까.”
영길이는 저수지에서 그동안 많은 돈을 벌었다. 그리고 읍내에 사는 친구들보다도 더 돈을 잘 쓰고 다녔다.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들이 고무신 신고 다닐 때 영길이는 운동화를 사 신고 다녔다. 집에 올 때마다 아이스크림도 또 라면도 사서 생 라면에 스프를 쳐가면서 맛있게 먹으면서 왔다. 동생들에게 선물도 사주었고 학용품도 사주었다. 생각해 보면 자신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 잡는 것은 이제 그만 두자.”
다시 다짐을 하고 영길이는 다시 집을 향해 출발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산길을 넘고 싶다. 무서운 산길도 이제는 안 다녀도 된다. 하지만 지갑이 텅 비어갈 것이란 것을 안다.
“그동안 고생했다. 그래도 멋지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너는 했으니까. 어린 나이에 고기를 잡을 생각을 다 하고 또 돈 벌 생각을 다 하다니 참으로 기특하다.”
산길을 넘으면서 영길이는 그동안 고생한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나무들아 고마워. 앞으로 자주 보지 못할 것 같다. 너희들을 무서운 존재로 생각한 것도 미안하다.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어. 다음에 다시 산길을 거닐 때는 너희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꼭 하며 걸어갈게.”
오늘 이 산길을 넘으면 언제 다시 이 산길을 넘을 지 모른다. 추석이나 되어야 오지 않을까 싶다. 조상님들 산소가 저수지 둑 옆 산에 있으니 그때는 오겠지 싶은 마음이 든다.
며칠 뒤, 저수지에서 몰래 낚시하던 사람이 군청직원에게 잡혀서 벌금을 물었다는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들었다.
“이제 저수지에는 그만 가.”
엄마가 옆에서 걱정스러운지 한 마디 하신다.
“네. 이제 안 갈 거예요.”
“공부나 열심히 해.”
“네.”
모처럼 아버지는 영길이에게 한 마디 하신다. 할아버지가 머리 좋다고 하시면서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닌 것을 생각하면 분명히 영길이도 언젠가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아버지다.
“할아버지가 넌, 천재라고 했다. 그러니 공부 열심히 해 봐.”
“네.”
“아빠, 형이 천재야?”
옆에 앉아 있던 영만이가 아빠에게 묻는다.
“그래. 할아버지가 형은 천재라고 했다.”
“와! 그래서 고기도 잡는 구나.”
영만이는 놀라운 표정을 지으면서 형을 쳐다본다.
이사를 오고 난 뒤 영길이는 학교가 너무 가까워서 재미가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도 삼십 분 이상을 가야 했던 길이 이제는 걸어서도 십 분도 걸리지 않는다. 집에서 학교 쪽을 내려다보면 건물 꼭대기 층이 보인다.
“어떻게 공부를 잘 하지? 학교 성적은 중간 정도 하는데.”
학원 하나 다니지 않는 영길이가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머리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학교 공부만 가지고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또 집에 오면 하는 일이 많은데 성적이 좋아질 일도 아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을 할지 아니면 그만두고 서울로 공장에 취직하기 위해서 가야할지도 모르는 상태다. 지금 영길이네 집 사정을 보면 고등학교 진학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
영길이는 돈 버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갈 수 있다. 부모님이 버는 돈으로는 가족이 먹고 살기에도 부족하다. 이미 아버지는 돈을 빌려서 살고 있는 것을 안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빚을 갚기 위해서 이리저리 돈을 융통하려고 하는 것을 몇 번이나 봐온 터라 영길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공부만 잘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게 공부다. 공부를 잘 하면 돈도 많이 벌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학교나 집에 오는 길에 생각한다. 또 집에 와서도 늘 이 고민에 빠져있다.
“영길이는 천재일까? 천재는 다 공부 잘할까?”
책상에 앉아서 멍청하게 보낸 시간이 벌써 몇 시간째이다. 엄마가 뒤뜰에서 부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영길아, 뭐 하냐?”
“네. 어머니.”
“된장 항아리 좀 옮겨라.”
“알았어요.”
무거운 된장 항아리를 옮기고 집 뒷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 공기 좋다. 이렇게 소나무가 좋은 공기를 제공하는 군.”
깊은 산속에서 살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읍내에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오고 산에 들어가 소나무 향기를 맡으면 너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무들을 너무 무서워했어. 이렇게 내게 좋은 향기를 선물하는데 말이야.”
기지개를 펴고 하늘을 쳐다봤다. 소나무 가지에 하늘이 잘 보이지 않았다.
“행복이 여기 있었군.”
영길이는 자연이 아름다운 것도 또 자연 속에서 사는 것도 늘 고마워한다. 시골에서 자라서 비록 가난하지만 자연을 친구 삼아서 살아가는 게 너무 좋다.
“내일은 산길을 넘어 저수지에 가 봐야겠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영길이는 일기장을 폈다. 그리고 그동안 저수지에서 일어난 일들을 하나하나 써 볼 생각이다.
“글을 쓰자. 내가 겪은 일들. 저수지에서 잡은 고기들 이야기. 그리고 새벽에 물안개가 오르고 고요 속에서 자연이 말해주던 이야기들을 적어보자.”
모처럼 영길이 가슴에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다.
내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난 자연을 무서워했다. 낮에 걷는 산길이 그렇게 아름다운데 밤에는 두렵고 무서워서 걷는 것조차 싫어했다. 나는 아마도 이중인격자인지도 모른다. 낮에는 좋아하고 밤에는 무서워하는 그런 인간이다. 자연은 낮이나 밤이나 변함없이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주는데도 나는 그렇지 못하다. 자연과 같은 변함없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 마음을 줄 수 있어야 하고 또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하자.
이렇게 아름다운 고향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고 살아가자. 그리고 어른이 되면 가슴속에 가득한 고향의 추억을 꺼내서 들여다보면서 살아가자.
너무 행복한 내 어린 추억을 잊지 말자.
저수지에서 잡은 고기를 팔아서 운동화도 사고 과자도 사먹고 아이스크림도 라면도 사먹은 것을 오래오래 기억하자. 내 동생 영만이가 미꾸라지를 잡으려고 따라다닌 것도 잊지 말자. 땀을 뻘뻘 흘리며 도랑을 막고 물을 푸던 그 순간의 행복을 늘 가슴에 담고 살자. 미꾸라지를 잡아서 칼로 죽이고 잘라야했던 미안한 마음도 가슴 깊이 새겨두자. 저녁때 저수지에 미끼를 꽂은 낚싯줄을 내릴 때의 간절한 마음도 오래오래 기억하자.
새벽에 저수지에 피어오르는 물안개 꽃의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기고 살아가자. 세상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아직 보지 못했으니까. 빳빳한 낚싯줄의 감동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살아가는 삶도 낚싯줄을 걷어 올릴 때의 그 간절함이니까.
한 푼 한 푼 모아서 산 자전거는 나의 첫 번째 재산이다. 먼 길을 편하게 갈 수 있게 해준 자전거에게 늘 고마움을 전하고 살아가자. 가난하지만 늘 용기를 심어주신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감사하며 살아가자.
착하고 착한 동생들에게 더 멋진 형과 오빠가 되어주자. 그리고 더 큰 꿈을 꾸고 살아가면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영길이 일기장에는 모처럼 가득한 글씨로 활짝 꽃을 피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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