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보광사를 지나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달리자 산기슭에 슬레이트와 합판으로 지은 창고 같은 건물이 보였다. 나무를 땐 연기와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둑어둑한 건물(70㎡·21평)은 사람 한 명이 겨우 다닐 수 있는 통로를 빼고는 각종 공구와 목재로 가득 찬 공방(工房)이었다. 30~50대 남자 6명이 둥근 톱으로 폭 21㎝ 크기의 소나무 원목을 켜고 전기드릴로 지름 2.5㎝짜리 구멍을 뚫었다.
"그렇게 거칠게 켜면 예쁜 박새가 다치겠어." "구멍 속으로 청솔모도 들락거리겠네요."
이들은 8년째 새집을 만들고 있는 장애인 목공(木工)들이다. 2003년 LG상록재단의 후원으로 새집 900개를 처음 만든 이래 7년 동안 만든 새집이 6000여개다.
이날은 1년에 한 번 이곳에 새집을 만드는 재료가 들어오는 날이다. 제재소에서 들여온 소나무 원목 800여개가 창고에 사람 키만큼 쌓였다. 이때가 되면 서울·인천·부천·파주에 살고 있는 장애인 목공들이 모여 한 달 동안 합숙 작업을 시작한다. 숙소는 창고 옆에 마련된 30㎡(약 9평) 크기의 중고 컨테이너 박스다.
6명 모두 하반신을 쓸 수 없는 지체 장애 1급이지만 실력만큼은 일반인 못지않다. 리더인 서정우(43)씨는 2002년 전국기능경기대회 목공예 부문에서 일반인들과 겨뤄 금상을 탄 실력자다. 2005년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서 금상을 탄 김노석(48)씨는 요즘 바이올린 제작에 도전하고 있다.
새집을 디자인하고 설치하는 것은 '새집 달아주기'운동을 펼쳐온 LG상록재단과 서울대 산림과학부 연구팀의 몫이다. 산림청의 추천을 받아 새집이 필요한 곳을 먼저 답사한 뒤 그곳에 서식하는 새들을 위한 맞춤 새집을 연구한다. 새의 종류에 따라 구멍의 지름도 2.5~4㎝로 다양하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서울 관악산과 인왕산,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대전 한밭수목원 등 전국의 산과 공원 50여곳에 새집을 달았다.
새집은 집 지을 곳 없는 산새뿐만 아니라 장애인 목공들에게도 희망이 되고 있다. 김노석씨는 "그동안 기능대회에서 금상을 타도 일할 기회가 없었어요. 하지만 새집을 만들면서 희망을 찾았어요"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다 1996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서정우씨는 "목공에 매달리지 않았다면 자살했을지도 몰라요. 병원에서 처음 배운 목공 덕분에 제2의 인생을 살게 됐어요"라며 "새집이 새들뿐만 아니라 사람도 살리는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