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열려라. 참깨’
옛날 페르시아 궁전에서
회자(膾炙) 대던 천일야화(千一夜話)가 있었다.
깨소금같이 맛깔스러워 동지(冬至)와
섣달의 긴긴 통한의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게 했던 설화들,
이제 알리바바의 양탄자를 타고
멀리 21세기 우주의 허공을 가로질러
온 세계를 넘나들게 되었으니,
때는 바야흐로 과학과 문명이 한창 꽃을 피우던
찬란한 21c 중반을 지나 후반을 내딛던 시절이었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의 동굴 앞에서
외우던 주문이었던 ‘열려라. 참깨’의 신화는
이제 누구나 다 가슴 속 흘러간 옛날 옛적의 동화가 되고 말았으니,
그게 다 신통방통한 기물(奇物)이 출현하고부터이다.
컴퓨터(computer)라고 이름 부르는 이 이상한 물건들은
무슨 저가 꿀단지인 양
무수한 사람들의 이목구비를 홀딱 끌어당기고 말았으니,
날만 새면 이 물건 앞에 앉아 노닥거리는 사람
혹은 절거덕거리는 사람이 부지기수이고 보면,
이것을 떠나서는 사람들이 영 재미가 없다고들
이구동성으로 말들을 하더라.
껍데기(하드웨어)는 그렇다 치더라도
속에 든 내용(소프트웨어)은 무궁무진한 것으로
나날이 업데이트되니 사람들이
그만 그 신기한 마법 같은 요술에 홀라당 꼴딱 넘어가고 말더라.
남녀와 노유, 빈부와 귀천을 한대 아우르며 넓은 가슴으로 껴안으니
사람들이 무슨 도깨비에라도 홀린 듯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입을 헤 벌린 채 해롱거리더라.
PC방과 오락실, 사무실과 집마다 넘쳐나는 이 물건으로 인해
정말 재미나는 인간 풍속도가
광범위하게 질펀하게 퍼질 대로 퍼져나가고 있었으니,
이제 정보와 지식은 옛날 말로 말하면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요,
모든 인생의 공통된 재미요,
오락거리가 되었으니, 시절이 좋아져도 참 좋아진 것이다.
단지 흠이라면 거기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고,
옛날 같으면 ‘신선놀음에 도낏자루가 썩는 줄도 모른다.’라는 속담이
신판으로 바뀌었으니
‘절 꺼덕거리는 재미에 아랫도리 오금팽이 쥐 나는 줄도 모른다.’로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아, 참으로 장하다. 21C의 건아(健兒)들이여!
시간과 틈만 났다 하면 달라붙어 핑핑, 탁탁, 절 꺼덕거려 대니
여기서는 ‘섯다요.’, 저기서는 ‘갔다니’, 무료함이라던가, ‘심심하다’라는
말이 이제 차츰 사라지고 있었다.
게다가 조금 나은 부류는 눈을 돌려 아름다운 산천,
자연 경계를 즐기며 참살(we ll-being)이라고 너도나도 몸에 좋다는 것,
보신(補身)과 보약(補藥)이라며 껄떡거려대니
삼천리 금수강산 화려 찬란 삐끼 빤짝하는 곳들마다 펜션이니,
모텔이니 여기저기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니 사람들마다
아랫도리가 뻐근해질 때까지 일락을 찾아 동분서주하더라.
육체의 정욕을 찾아 부나비처럼 날아다니는 사람들로 인해
‘놀토-토요휴무일’ 혹은 ‘쉴토-토요휴무일’라는 말이 새로 생겼고,
공휴일과 연휴마다 넘쳐나는 차량의 행렬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잇달아 이어졌으니,
바로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것을 찾아 길을 떠나는
이 서방과 김 서방의 행렬들이었더라.
보통 사람들의 보통 심사는 과연 무엇인가?
열려라, 참깨이니, 곧 ‘알리바바와 40인의 동굴’에 나오는
그 보물덩어리 혹은 궤짝을 찾아
나서는 21c 사람들의 신풍속도이다.
거리 곳곳마다 넘쳐나는 현수막들 곧 플래카드이니 개업과 합격,
혹은 선전하는 광고 문구들이라.
다 바람에 날리는 이생(生)의 자랑들이고 보면,
존재 이유를 과시하려는 듯한 태도이거나,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항거 또는 몸부림이고 볼 때,
일말의 연민이나 가벼운 동정심이 생기는 것은 어찌 된 연고일까?
아, 초개(草芥)와 같은 인생의 체질,
그 연한과 수한, 한계효용의 법칙을 조금만 이해했더라도,
그렇게 좌불안석하며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아, 곳곳에 널려 있는 더부룩한 심정들로 인해,
퍼렇게 속으로 멍드는 장삼이사들의 행렬은
오늘도 절 꺼덕거리는 약간의 소음(騷音)과
‘흥흥’거리는 가벼운 비음(鼻音)에 섞여서
회색의 변방 지대에서 내일의 파라다이스(paradise)를 꿈꾼다.
알리바바가 타고 놀던 양탄자는 어디에 있을까? GAEG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