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M02kF6hqdbo
‘당구로 풀어보는 인생’
손병학
요즘 노년 스포츠로 당구가 인기다. 길 거리마다 당구장이 쉽게 눈에 보이니 당구 인구가 많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당구는 BC 400년경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고 16세기 프랑스 왕실 예술가 A.비니가 고안해서 치던 것을 시초로 본다는데, 벨기에의 국기(國技)라고 한다. 중국의 개혁개방을 주도한 지도자 등소평도 당구를 평생 즐겼다고 한다.
당구는 라사 카펫이 깔린 장방형의 큰 테이블에서 긴 막대기인 큐로 3개 또는 4개의 흰 공, 빨간 공을 맞추며 점수를 내는 게임이다. 치면서 계속 주위를 돌며 걷고 멀리 있는 공을 맞추기 위해 몸을 뻗어 조준을 하니 스트레칭 운동 효과도 좀 있을 것 같다. 거기다 비용도 저렴하여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다. 골프는 대체로 나이 들면 힘이 떨어져 거리도 줄어들고 잘 맞지 않아 점점 재미가 없어진다. 무엇보다 시간 소비 및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아 운동할 기회가 줄어들기 마련이다. 더욱이 요즘에는 골프장이 평일에도 젊은 친구들이 몰려 티타임 부킹 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같은 점이라면 상대방이 있는 스포츠지만, 실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 개인 경기라는 점이다. 골프장이나 당구대라는 환경 속에서 공의 위치를 보아 형세를 판단하여 친 결과가 점수로 바로 나타난다. 이것이 실력이고 골프에서는 핸디, 당구에서는 당구 수지가 된다.
몇 년 전부터 친구들 간에 당구 모임이 활성화되더니 이제는 가장 자주 어울리는 모임이 되었다. 요즘 이런저런 정기모임을 만들어 즐기는 친구들도 많고, 만날 때 당구치는 친구라면 그냥 커피숍에서 보기보다는 자연히 당구장에서 보게 된다. 전에는 당구장이라면 뭔가 불량한 이미지가 연상되었는데- 아마 고교 시절 공부 잘 안 하는 학생들이 컴컴한 당구장에서 모여 담배 피우고 짜장면 시켜 먹으며 늦게까지 논다는 이미지가 남아 그런지, 하지만 지금은 180도 달라졌다. 깔끔한 인테리어 환경에 별도 흡연실(사실 요즘은 담배 피우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지만)이 있고, 커피나 녹차, 시원한 음료 등을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는데, 대당 1시간 사용 요금이 만원 미만이다. 60세 이상 시니어들에게는 낮시간에 디스카운트까지 해준다. 그러니 몇시간을 같이 쳐도 나눠내면 1인당 만원이면 해결돼 노년들에게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
우리 고등학교 동기들 당구 모임은 매주 토요일 오후 역삼동 소재 당구장에서 열리는데, 동기들 모임 중 참석율이 가장 높다. 거기는 우리 동기 뿐만 아니라 후배 기수들, 그리고 타교 동문 들도 날짜를 정해 하는 정기모임이 많다. 우리는 토요일 오후 당구부터 저녁 식사까지 같이 하는데, 회비 단돈 이만원에 주말 오후와 저녁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코로나 시대임을 감안하여 철저히 마스크 쓰고 식사할 때도 4명씩 조를 짜서 좀 떨어져 않는다. 오후 1시에 만나 거의 7시까지 당구를 치고 나면, 근처 식당에서 나쁘지 않은 저녁 식사에 막걸리나 소주 한잔까지 책임져 주는 착한 모임이다. 여기서는 과거에 무슨 일을 했든 상관이 없다. 전직 고위공무원, 유수한 기업체의 사장이나 임원을 지낸 친구, 메이저 언론사의 주필, 고매한 인격의 교수, 그동안 사업하고 돈 버는 데만 신경 썼던 개인 사업가와 공인회계사, 그리고 유명한 과학자까지 모두 모인다. 모두 눈 앞에 놓인 공을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며 어떻게 요리할지 머리를 굴릴 뿐이다. 일단 큐 끝을 떠나 가격한 공이 목적구를 향해 굴러가면 목적구를 맞추어 점수가 나든, 옆으로 비껴 빠져나가든 일희일비하고 서로 희희낙락(喜喜樂樂)하는 기쁨을 나눈다.
당구는 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미묘한 게임이다. 당구대 안에서 자기 공과 목적구의 위치와 모양에 따라 조준하는 방향과 두께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고, 때리는 힘과 위치(당점), 회전을 어떻게 먹이는가에 따라 반사각이 크게 달라진다. 거기에 따라 점수가 나기도 하고 안 나기도 한다. 공략하는 방법도 사람마다 여러가지 전략이 있을 수 있어 난이도와 본인의 실력에 따라 달리 시도한다. 통상 당구는 4구 경기와 흔히 케롬, 쓰리쿠션이라 부르는 3구, 그리고 공을 쳐서 구멍으로 빠뜨리는 포켓볼이 있지만, 요즘 대세는 쓰리쿠션이다.
당구 인구가 많아지고 인기 스포츠 종목이 되자 남녀 프로당구협회(Pro Billiards Association; PBA, LPBA)가 결성되어 거의 매주 경기가 열리고 있고, 당구 전문 TV채널도 생겨 24시간 당구경기를 방영한다. 우리나라에서 당구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높아지고 프로 당구가 활성화되자, 원래 당구가 국기인 벨기에 등 유럽이 당구의 종주국이었는데, 이제는 한국이 세계 당구계의 메카가 되어버렸다. 현재 국내에 6개의 프로 팀이 설립되어 리그를 벌이고 있는데, 다국적 선수들이 소속으로 뛰고 있다. 프로야구를 방불케 한다. 유럽의 유명 당구선수들, 일본과 베트남 등 아시아의 일류선수들이 모두 한국으로 와서 프로팀에 들어가 있고, 선수권 대회의 규모도 매년 커지고 스폰서도 많아졌다
남자 당구계는 세계랭킹 1위인 쿠드롱, 레펜스, 마르티네즈, 사파타 등 유럽 선수들과, 베트남의 응우옌, 마민캄 등 아시아 선수들, 그리고 이에 맞서는 한국의 강동궁, 조재호, 서현민 선수 등이 상위권에거 각축하고 있고, 여자 당구계에는 미녀 선수들이 많이 나와 팬덤을 많이 만들고 있다. 포켓볼에서 인기를 끌다가 쓰리쿠션으로 전향한 김가영, 차유람 외에도 강지은, 임정숙, 김보미, 그리고 이미래 선수 등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선수들이 많다. 또 한국인과 결혼하여 한국으로 와 남편에게 배운 당구로 LPBA챔피언이 된 캄보디아 출신의 스롱 피아비 역시 상당한 지지 팬 층을 가지고 있다. 비쥬얼 시대라 역시 미모를 자랑하는 선수들이 인기가 많다. 그동안 LPGA 여성 골프 게임을 즐겨보았는데, 이제는 LPBA 당구 게임이 있으면 자주 보게 되었다.
당구가 하나의 놀이에 불과하지만 나름대로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하게 되는 행동과 결과 하나 하나에 의미가 있고 시사하는 바가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인생에 비유해보면,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경기를 직접 하거나 보면서, 무엇보다 압권은 제대로 쳐서 득점 포지션으로 잘 들어오고 있는 공이 중간에 튀어나온 다른 공과 충돌하거나, 맞은 공이 다른 목적구를 때려 점수가 나지 못하게 되는 경우다. 그럴 때면 모두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전에는 일본어로 쫑이라 했고 지금은 키스(Kiss)라 부르는데, 좁은 공간 안에서 제1적구(목적구)를 맞추는데 급급하다 보면, 맞은 제1적구가 돌아오며 제2적구를 때려 위치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적구를 조준할 때 각도나, 회전, 그리고 치는 힘이 키스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데, 마치 인생사를 보는 듯하다. 살아가는 동안 잘되어 가고 있던 일이 갑자기 예기치 못한 일로 틀어져 망쳤던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잘 되다가 당구처럼 키스가 나서 망친 일을 생각하면 예전의 씁쓸함이 다시 목구멍으로 올라온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맞은 제1적구가 움직이는 방향과 궤적을 예상할 수 있고, 연쇄적으로 제2적구의 움직임, 쿠션까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잘 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키스가 나지 않도록 적구를 때리는 각도와 힘, 그리고 적절한 회전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고수다. 인생 살이에서도 이와 같이 행동하기 전에 자신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생길 파급효과를 예상하여 조치할 수 있다면 큰 낭패는 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럴러면 그만한 내공이 있어야 한다.
두번째는 당구 경기를 보거나 직접 치다 보면, 때로는 전혀 점수가 날 수 없는 구도로 두개의 목적구가 놓인 경우가 있다. 일견해서는 도저히 점수를 낼 수 없어 보이고, 또는 본인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안된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럴 때도 곰곰이 최선을 다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다 보면 의외로 창의적인 방법이 나올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상당한 실력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때때로 예상 외로 제대로 잘 맞아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때 친구들은 후루꾸(fluke)라고 놀려대지만. 한 고수 친구의 말에 의하면, 못 치는 당구는 없다고 한다. 실력이 없어 제대로 못 맞출 뿐이다. 여기서 핵심은 정상적인 공략방법은 안 통하니 과감한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완전 쓰리쿠션으로 맞추는 뱅크 샷이든 구멍 넣어 치기든 관계없다. 생각한 대로 과감하게 치는 것이다. 인생 살이에도 여러가지 어려움에 봉착하는 경우가 많지만 불가능은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차분히 주위와 자신을 돌아보며 최선의 해법을 찾는다면 의외로 좋은 방안이 나와 문제가 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적극적인 자세로 살아가며 어려운 상황에 대비 꾸준히 실력을 기르며 노력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기본의 중요성이다. 모든 운동이나 일하는 데 다 마찬가지지만 기본이 제대로 되어있어야 발전이 가능하고 고점자가 될 수 있다. 당구에서의 기본은 큐를 잡고 공을 치는 자세와 칠 때 왼손(오른손 잡이의 경우)의 단단한 손가락 브릿지로 큐대를 고정시키는 것, 그리고 힘을 빼고 부드럽게 치는 스트로크다. 골프를 배울 때 연습장에서 기본 샷을 제대로 익히지 않아 스윙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필드에 나가 얼마나 많은 좌절을 겪었던가..마찬가지로 인생에 있어서도 기본 자세가 되지 않고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고 하는 일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은 수십년 살아오면서 보고 느낀 인생의 교훈이다. 당구 한 번을 치더라도 거기서 인생의 교훈을 느끼고 생각하는 친구는 훌륭한 친구이자 평생을 같이 걸어가는 좋은 반려가 될 수 있다.
요즘 친구들은 공부도 많이 한다. 당구 교본 읽는 것은 기본이고 늘 유튜브 당구 레슨을 보며 사는 친구가 적지 않다. 어떤 친구는 현재 자기의 관심은 당구 밖에 없다고 한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는 친구인데, 일이 없는 날은 대부분 당구장으로 와서 연습을 하고 있다. 그만큼 재미를 느끼고 당구에 집중한다는 이야기다. 나도 실력을 좀 더 올려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기 위해서는 쓰리쿠션 뱅크 샷 시스템 공부도 더 하고, 유튜브도 많이 봐야지 하면서도 이것저것 손 대고 있는 것이 많아 잘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당구의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도 공부와 연습을 통한 실력 향상이 필수다. 노년에 좋은 친구들과 부담없이 같이 어울리며 당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의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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