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은 가슴에서 내린다
김정헌 시집
인사말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작이 반 이다 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결에 따라 살게 되나 봅니다.
뒤돌아보니
아쉬움 가득한 길이요
땀이 밴 길이요
숙명처럼 적응해온 길이며
가슴 뭉클한 기쁨의 길이며
아직도 설레는 길입니다
고희 古稀
삶을 펼치기보다는
다독이는 시간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 시집은,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내 이야기입니다
죽음도 준비해 가야 한다면
이 또한 그런 일에 다름 아닙니다
산을 좋아하고
자연 속에서 소통하고 호흡하는 게
가장 재미있습니다
산 길을 걷다 보면 만나는 모든 대상이 친구입니다
암석도 만져보고 깨뜨려도 보고 무슨 암석이지?
나무도 안아보고
야생화며 풀들이며 이름도 불러보고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따져도 보고
물어도 보고 찾아도 보고
그리고 왁자지껄 사람들하고 술도 한 잔 치고
그렇게 세월이 가겠지요!
첫눈은 가슴으로 내린다 차례
1부. 구름처럼 살다 만났으니
가거도可居島에 가거든 ㆍ 4
고향 연서 ㆍ 5
광주천변 ㆍ 6
구술붕이 ㆍ 7
금남로 ㆍ 8
그때 받은 주먹밥 하나 ㆍ 9
등짐을 비운 보부상들의 발걸음처럼 ㆍ 10
무등산은 산만이 아니다 ㆍ 11
북봉 秋情 ㆍ 13
산사나무 열매 따다 ㆍ 14
新 삼다도 ㆍ 15
용진산 진달래 ㆍ 16
지혜를 구하는 자네에게 ㆍ 17
초암산 철쭉꽃을 보러 갔더니 ㆍ 18
막대 사탕 ㆍ 19
팔영산 ㆍ 20
윤회만 있을 뿐 ㆍ 21
아름다운 추억아 ㆍ 22
일림산 고운 철쭉 ㆍ 23
바람이 불면 ㆍ 24
산은 어머니의 품이다 ㆍ 25
神이 시샘할까 봐 ㆍ 26
2부. 햇살같이 웃으시라
상구네 집 ㆍ28
코로나는 왜 앞세우고 ㆍ29
혼이 빠진 자리에는 풍경이 없다 ㆍ30
거미줄 ㆍ31
억겁의 스침 ㆍ32.33
임을 위한 행진곡 ㆍ34
고희 ㆍ36
국화꽃 향기 따라 ㆍ37
김치찌개 ㆍ38
마른 솔잎 타듯 그 향기 아직 남았는데 ㆍ39
달팽이 철학 ㆍ40
문재학 군을 그리며 ㆍ41
빨갛게 물드는 이야기 ㆍ42
사랑하는 아내에게 ㆍ43
손자, 선제가 태어난 날 ㆍ44
내 가을을 팔겠소 ㆍ45
용아 선생님을 보내며 ㆍ46.47
첫눈 ㆍ48
아지랑이 풋사랑 ㆍ49
기도 ㆍ50
선 채로 잠시 ㆍ51
3부. 아! 을 판엔 사랑보다 더 좋은 놈
심장의 고동으로 살아 오를 ㆍ53
소주 예찬 ㆍ54.55.56
큰 나무 같은 ㆍ 57
그댈 만나 ㆍ58
술이란 게 말이지 ㆍ59
광장 ㆍ60
구절초 ㆍ61
짝 ㆍ62
내 동댕이 치고 ㆍ63
그대는 섬이다 ㆍ64
길목 산악회 ㆍ65
꽃필 때까지 ㆍ66
도토리 거위벌레 ㆍ67
하나되어 춤을 ㆍ68
인생은 흐르는 강 ㆍ69
그날 정 선생의 울음 ㆍ70
세상의 반을 나눌 수 있다 ㆍ71
진달래 ㆍ72
바람재에서 ㆍ73
별이야기 1 ㆍ74
별이야기 2 ㆍ75
별이야기 3 ㆍ76
별이야기 4 ㆍ77
갈대는 생각보다 빨리 ㆍ78
남해 여행 ㆍ79
망월동 민주 묘지에서ㆍ80
4부. 그대 뜻이 있었으니
사랑, 그게 니 뭔 줄 아나? ㆍ82.83
만남도 사람의 일이라서 ㆍ84
푸른 조국 ㆍ85.86.87
미루나무ㆍ88
비에 젖어 ㆍ89
꽃들이 교향곡 ㆍ90.91
초저녁 초승달에 ㆍ92
말은 가자고 말굽을 치는데 ㆍ93
인연 ㆍ94.95
벗도 술도 놓을 수 없어 ㆍ96
정 선생님을 보내며 ㆍ97
그대로 두소서 ㆍ98.99.100
그대 뜻이 있었으니 우리 다시 모여 ㆍ101.102
니, 그거 당해 봤나? ㆍ103
들불처럼 번져라 ㆍ104
그대 어디 가는가? ㆍ105.106
내가 사랑했던 마음의 벗이여 ㆍ107.108
영일만 친구를 보내고 ㆍ109
하느님, 기도를 들어 주소서 ㆍ110.111
친일과 항일 ㆍ112.113
콩 심은 데 콩 난다 ㆍ114.115
지휘봉을 보아라 ㆍ116
청춘 ㆍ117
소슬바람 친구삼아 ㆍ118
헬로우가 폴리스에게 ㆍ119
가거도可居島에 가거든
그대, 살아가는 동안
가거도에 가거든
적선을 많이 했던 조상님 은덕이라 여기시게
멀고 아름다운 섬 가거도
웅크린 황소가
언제라도 일어날 듯 갈기 선
독실산 정상은
전설인 듯 늘 안개가 휘돌고
옥빛 바다
이슬 먹은 바람
능선 타고 내려오는 구름
섬 등 반도에서 만나 파도와 친구 되고
원추리, 섬나리꽃 지천이요
망부석, 돛 바위, 촛대 바위
수십 개의 작은 폭포들
뛰어내리고 싶은 몽돌 해수욕장
감히 접근을 불허하는 가파른 해안선
편안한 녹색의 나무들
후박, 동백, 굴거리나무
나무를 타고 오밀조밀 콩란, 고란초
섬 누리 민박에선
누구라도 친구처럼 말 건네며
소주잔 오고 가고
바람 같은 인생, 구름처럼 살다 만났으니
여기 모인 인연 구름을 위하여!
그대도 한 잔, 나도 한 잔
주인네 인정 넘쳐
이 술 저 술 퍼내 온다
고향 연서
살구꽃 활짝 핀 텃밭 안에서
할머니 수건 벗고 반겨 나오며 누런 콧물 닦아주던 어린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워
추석 달 보며 할머니 품속으로
뛰어듭니다
춥지? 귀 만져 주며 시린 손 엉덩이에 깔아 주시고
화롯불에 찬 쑥떡 구워 주시면
누런 떡니 드러내며 방긋 웃던 나
그 정 그리워
눈물이 납니다
부뚜막 장작불 옆에 쪼그려 앉아
어머니 손끝 따라 눈길 돌리며
조잘조잘 캐묻던 어린 사연들
지금은 어디 갔나?
어머니 따라
고향에 찾아와도
이젠 아무도 없습니다
아버지 손잡고서 산소 가던 길
찔레꽃 향기는 오늘도 그대로인데
높았던 언덕길은 낮아진 채로
아버님 성묫 길에 아들과 함께
그리움을 나눕니다
높다란 가을 하늘은 그대로인데
날아가는 기러기도 예전 모양 같은데
추억은 낡아서
서리 맞은 기억처럼 피어난
형님 두 분, 혼 되어
들국화로
웃고 있습니다
광주천변
물이 흐르면
바람도 따라 흐르고
길 따라 걷는 내 마음도 흐른다
경쾌한 발걸음
흔들리는 *새들
붉은 하늘을 가로질러 흐르는 천은
멀리 지평선 위에 초승달을 부르고
그 위에 금성, 반짝이는 별들로 이어진다
천변을 걷는
행복을 그대여 아는가?
광주에 오면, 천변 길을
선물하고 싶다
*새 --억새, 들묵새, 오리새 등 볏과 식물의 총칭
구슬붕이
그리움을 잉태하듯
세월은 그리움도 지워갑니다
살면서 정을 나누자 했지만
시간 여행을 하는지
옛정은 찾을 수 없고
자연 속에서 의기를 키우자던 맹세도
새의 날갯짓처럼 우아함을 키우자던 소박한 다짐도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바위가 흙이 되듯 허물어져 갑니다
야생화의 흔적을 쫓던 그 미소
나무를 안아도 보고 껍질을 관찰하며
열매와 잎을 따 먹어도 보던
그때, 그 모습
버려둘 수 없어
‘구슬붕이’ 이름으로 그대를 초청합니다!
무등산 중봉에 억새가 손짓하며 부르거든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바람재로 오시어요
밀린 이야기도,
맑은 공기도 마시며
과메기 안주로 매실주 한잔 나눕시다
그날처럼 웃어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