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탉이야기(2)
이 년전, 어느 봄날 딸이 어떤 녀석하고 마당에 들어섰다.
순간 척 보니 "이놈이 사위가 되겠네!" 라는 예감이 들었다.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식사를 물리고 난 후 “아빠 우리 결혼하려구요!”
“그래, 네가 선택한 사람이면 아빠도 믿는다.”
담소를 나누고 방에 들어왔다.
이혼한 후 10여년을 혼자지내면서 자식들이 애비라고 찾아 올 때 마다 뭔지 모를 미안한 마음에 괜한 헛기침만하고,
술 한잔에 취했다는 핑계를 대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뜬눈으로 뒤척거리던 시간들이 아련하다.
딸이 결혼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이제 식구가 늘어 장인노릇,
그리고 곧 할아버지 까지 해야 할 처지가 되니.... 참 인생 점점 더 복잡해지네!
아침에 일어나 닭 모이를 주려고 닭장에 갔더니,
두 암탉을 거느린 수탉이 날개 짓하면서 "꼬끼오, 꼬끼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과거의 상처는 아예 잊은 듯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참! 마누라 둘이나 거느린 너는 행복도 허것다.”
어젯밤 딸이 “아빠 우리 결혼하려구요!”라는 말에 내심 충격 받은 모양이다.
온통 머리 속이 그 생각 뿐이다.
이른아침 수탉을 바라보며 이 순간에 내 인생에 일어나고 있는 낯설은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뭔가를 하기는 해야겠는데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사위가 처가에 오면 씨암탉 잡아 먹인다는데..!” 처갓집이 되게 생겼으니 닭이나 더 키워볼까?
마침 장날이어서 새벽 장에 나가 병아리15마리(토종닭 10마리 오골계 5마리)를 사왔다.
트럭에 병아리를 실고 들어오면서 엉뚱하게 병아리 사오는 일로 장인노릇 시작한 내 모습에 실없이 웃었다.
그 이른아침의 햇살이 유난히 따스하게 느껴졌다.
닭장에 병아리 15마리를 풀어 놓으니 순식간에 닭장이 가득 찬 것 같았다.
어느새 가을이 되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수탉은 이제 15마리의 암탉을 거느리는 족장이 되었다.
병아리 중에 수탉이 두 마리가 있었는데 하나는 토종닭 수탉이고, 하나는 오골계 수탉이었다.
이 둘은 어느새 멋진 청년 수탉이 되어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언제나 무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외톨이로 지내야 했다.
왜냐하면 족장이 된 수탉이 이 두 놈에 대한 경계가 심해서 암탉들 주변만 맴돌 뿐이었다.
이제 족장된 수탉은 15마리의 암탉을 거느리고 왕좌의 자리에 군림하고 있었다.
뽑혔던 날개와 꼬리도 다시 생기고 윤기가 번지르르 한 것이 제법 위용을 부릴만도 했다.
닭 모이를 주면 제일 먼저 먹고, 자기가 좋아하는 암탉 순서대로 모이통으로 오도록 했다.
“아하 이놈 세도가 대단허구나. 완전 카리스마 짱이야!”
그렇게 세도를 부리면서 수탉은 살이 쪄 건장해졌고,
청년 수탉들도 건장해 가던 어느 날 부터 인가 닭장 안에 분위기가 어수선해 지고 있었다.
청년 수탉들이 서서히 암탉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족장 수탉이 대노해서 쫓아가면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가기 일수였지만
도전을 시작했다는 것이 이 닭장 안에 이변으로 세대교체를 예감할 수 있었다.
세월이 갈수록 세도 높은 수탉은 살이 쪄갔다.
그 사이 젊은 오골계 수탉은 점점 당당해져 틈틈이 도전을 하면서 암탉들의 관심을 끌었다.
어느날 1박2일 출장을 다녀왔는데 닭장에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곡을 하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려 닭장으로 달려갔다.
의외의 상황이 벌어져 있는 것이었다.
세도 높은 수탉이 무리에서 벗어나 애곡하듯이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골계 수탉이 모든 상황을 장악하고 있었다. 모든 암탉은 오골계 수탉의 주변에 모여 있었다.
족장 수탉으로서의 권력을 잃고 애곡하는 수탉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독재자의 최후를 보는 듯했다.
내 부친은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기독교장로회 목사로 농촌교회에서 목회하셨는데 70년대 유신헌법재정한 정권을 반대하셨다. 3개 종단지도자들을 모아(천주교,기독교,불교) 민주회복투쟁위원회를 조직하여 대정부투쟁을 하셨다.
그로인해 투옥되고, 사찰을 받고, 요시찰 대상자가 되어 끊임없이 목회지를 옮기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따라서 우리5남매는 가난에 허덕이는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때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 것임으로 국민의 복지를 위해 쓰여져야 한다. 권력남용은 비극을 불러온다!”고 하셨다.
오늘 이 닭장에서 울부짖는 수탉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70년대 이후 민주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눈물을 흘렸던 권력자들이 떠올랐다.
이 닭장의 수탉이 싸움에서 진 원인은 금새 발견되었다.
너무 비대해서 싸움에서 높이 떠오를 수 없었고, 날렵한 오골계 수탉에게 제압을 당한 것이었다. 오골계 수탉은 태어나면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고 짓밟혔던 세월의 한을 풀게 된 것이다.
수탉은 재기를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초년에 개에게 물려 죽을 위기에서 구사일생 살아나 한동안 호사를 누리더니,
그 호사가 자신을 비대하게 하여 젊은 수탉의 도전에 무릎꿇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수탉이 서럽게 울어대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그냥 권좌를 뺏긴 것이 억울했을까? 아니면 어리석게 살아온 날들을 후회하였을까?
어느날 수탉은 재성질, 재설움 못 이겨 제풀에 죽어갔다.
마침 아들, 딸들이 모처럼 모이던 날이어서 가마솥에 삶은 수탉백숙이 상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식사를 하면서 이 수탉의 일생을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첫댓글 수탉의 일생이 시사하는 바가 크네요...
수탉의 이야기를 통해 이장님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삶도 알 수 있었네요. 따끈따끈한 글을 읽으며 마음 한 쪽이
저려옵니다.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세요. *^^*
저는 이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만고의 진리인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인데..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도 있지요. 시간 지나면 아프던 것 낫게 되기도 하지만 시간 지나면
아름답던 꽃도 시들어 떨어지게 돼 있죠. 그게 生인 거죠.자리에서 밀려난 수탉이 서럽겠지만
오랫동안 잘 살아왔잖아요. 그리 서러울 것도 없을 듯.. 세대교체 되어 밀려난 것일뿐...
수탉이 말을 알아 들었으면 이장님의 공감에 위로가 많이 되었을텐데...ㅠㅠ
웃음으로 읽다가 가슴이 아파와 내 마음을 봅니다.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 것임으로 국민의 복지를 위해 쓰여져야 한다.
는 말씀이 깊게 스며 듭니다. .
수탉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가 많은 교훈으로 다가오네요^^
내가수탉이 된거 같아요 가족과 지인들에게 수탉노롯을 하다가 권자에서 내러오니 마음 편한걸 가족과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한마음 가득하네요
우와~ 한편의 소설이네요~ 우리학교 선생님들도 투쟁을 하시는 분들이라서 더 기억에 남네요~
ㅎㅎ 수탉이야기보다 제목이 "수탉백숙"이나 다른 게 좋을 것 같어요.
이 이야기도 두 갈래로 나누어 다시 써야할듯요.
대비효과가 있긴 하지만 주제가 큰 덩어리의 이야기가 같이 가는 건 부담이 되고 읽기에 너무 벅차요.
꼭 벅차서라기보다 아깝죠.
"수탉백숙"은 홀로 딸을 키운 아버지의 애뜻한 심정을 더 넣어서,
한편으론 빼앗기는 것 같다고도 하던데,,용
또 한 편은 아버지 이야기를 바탕으로,두 수탉의 권력투쟁을 잘버무려서요
(가족의희생을알면서도그런고난의길을스스로선택하여평생어려우셨다는건누구나쉽게할수있는일이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