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신재(康信哉 1924∼2001)
1 여류 소설가. 수필가. 희곡 작가. 서울 출생. 1949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문예(文藝)>에 단편(短篇) '얼굴'이 발표되면서 등단하였다.
작품 경향은 다양한 인물 선정과 주제를 표면에 드러내는 일이 없다. 아주 사소한 습관이나 차림새 같은 데서 인물의 특징을 포착하여 하나의 발랄한 생명체를 구성시키는 특이한 인물 묘사 기법을 구사, 세련된 감각으로 그만의 조화있는 특이한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남녀의 애정 문제를 주로 소설화하였으며, 특유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필치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비교적 다양한 인물을 그리는 작가이며, 특이한 인물의 묘사, 세련된 기법을 통하여 조화 있는 세계를 구축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작품으로는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임진강(壬辰江)의 민들레', '파도(波濤)' 등과 '희화', '여정',' 신설', '절벽', '이 찬란한 슬픔을' 등이 있다.
2 1924년 5월 8일 서울 남대문로에서 출생하였다. 1943년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전 가사과에서 2년간 수학하였다. 1959년 단편 <절벽>으로 한국문협상을 수상하였고, 1967년에는 <이 찬란한 슬픔을>로 제3회 여류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49년 단편소설 <얼굴>, <정순이>가 김동리(金東里)의 추천으로 <<문예>>에 발표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초기의 문학세계는 <안개>, <눈물>, <동화>, <팬터마임>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주로 남녀 관계의 애정 모럴을 감각적인 수법으로 리얼하게 그렸다. 이 시기에 발표된 그녀의 대표작품 가운데 하나인 <젊은 느티나무>는 의붓 오누이 사이의 사랑을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형상화하여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1962년에는 전쟁으로 인한 젊은이의 비극적인 애정을 그린 전작 장편 <임진강의 민들레>를 발표하였으며, 그 후 장편소설의 창작에 주력하여 <파도>, <그대의 찬 손>, <신설> 등을 발표하였다. <임진강의 민들레>는 이화 일가의 한국전쟁 경험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 작품에 나타난 작가의 사회의식은 <파도>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장편화 경향은 사회현실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그리려는 작가의식의 발로로 보인다. 강신재는 문학적 소재가 다양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어떤 제재를 취하더라도 그 주제의 방향을 독특하게 나타낼 수 있는 문학적 역량을 갖춘 작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주로 여성들의 운명적 불행과 비극적 삶을 형상화하였는데, 다양한 형태의 비극을 역설적인 아름다움과 연결시키고 있다. 현대인의 애정 모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재치 있고 발랄한 문체, 세련된 감각과 인물 묘사의 기교 등을 특징으로 하는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설집으로 <<희화>>, <<여정>>, <<청춘의 불문율>>, <<이 찬란한 슬픔을>>, <<젊은 느티나무>> 등이 있다. 1974년 삼익출판사에서 <<강신재 대표작 전집>>을 간행하였다.
<대표 작품> 젊은 느티나무 1960년 1월 <<사상계>>에 발표된 강신재의 단편소설. 이 작품은 혈육상으로는 남남이면서도 법률적으로는 남매 사이인 젊은 남녀의 청순한 사랑을 통해서 젊은이들의 섬세한 감수성과 산뜻한 감각 등을 두드러지게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서구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집안 분위기, 등장인물들의 자유로운 사고방식, S촌이라는 이국풍의 주택가 풍경, 풍요로운 생활 등 매우 이색적인 분위기와 소재를 다루었다. 숙희는 아직도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와 함께 시골 외할아버지 댁에서 살고 있다. 어머니가 서울 모 대학 교수와 재혼하자 숙희도 따라서 서울로 올라가고, 그곳에서 물리학 전공의 대학생 현규를 만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숙희는 차차 오뉘 아닌 오뉘의 관계 속에서 현규를 오빠 아닌 타인으로 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수려한 용모와 신사도를 갖춘 뛰어난 수재인 현규에게 숙희는 마음을 잃어가며 고뇌에 빠진다. 그러나 무너진 둑과 같은 둘 사이의 관례를 수습하기엔 두 사람은 너무 젊었다. 현규와 숙희는 행복감과 고뇌를 안고 오뉘 관계에서 연인 관계로 돌아간다. 서로가 서로의 정을 지닌 채 서로들 더 사랑해도 괜찮은 방법을 찾으면서 이성적으로 각자 현재의 길을 걷자고 맹세하는 것이다. 젊은 느티나무는 두 연인의 기쁨을 품은 슬픈 맹세를 듣는 증인이 된다. 이 작품은 사회적 금기와 청춘남녀의 사랑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이 사건 전개의 주된 흐름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흥미를 끄는 것은 이같은 신파적인 구성에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18세의 소녀가 금기된 사랑을 겪고 있다는 사실 자체이다. 다시말해 경이로운 눈으로 인생을 경험하기 시작하는 18세 소녀가 겪는 영혼의 시험이라는 것이다. 소설적 갈등을 보편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순진무구한 영혼을 지닌 소녀가 이러한 정신적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이 작품의 초점이 놓여 있는 것이다. '그에게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는 서두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숙희의 민감한 감수성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다. 현규가 발산하는 이 비누냄새는 실제로 맡을 수 있는 것임과 아울러 숙희의 가슴 속에서 느껴지는 비누냄새이기도 하다. 이 비누냄새로부터 비롯하는 숙희의 사랑은 사실 상대방과 결합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사랑이라기보다는 실체없는 사랑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이처럼 순진무구한 18세의 소녀인 것처럼, <젊은 느티나무>가 빚어내는 감흥은 반산문적(反散文的) 시적 감흥인 것이다.
임진강의 민들레 강신재(康信哉)의 장편 소설. 1962년 11월 5일 을유문화사에서 발간되었다. 이 작품은 한국 전쟁의 시작부터 서울 수복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이화 일가가 겪은 이야기가 중심 스토리를 이룬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화와 지운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전쟁의 발발과 함께 지운은 곤경에 처한다. 이화의 집은 징발되어 북한군의 숙소로 이용되고 식구들은 어쩔 수없이 부역에 참가하며 생을 이어간다. 이화는 북한군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반감을 표시하고 그녀의 아버지는 골방에 숨어 지낸다. 이화의 두 남동생 중 하나는 방공호에 숨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다른 하나는 의용군에 징발된 후 국군에 자원 입대하였다가 전사한다. 숨어 지내던 지운은 간신히 탈출에 성공하여 도망을 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이화는 괴뢰군 병원에 들어가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전세가 불리해지면서 그녀를 포함한 모든 의료원이 납북되며 이 와중에 이화는 달리는 기차에서 탈출에 성공한다. 가까이 임진강이 보이고 이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돌아오는 듯이 보였지만 그녀는 임진강 기슭에서 미군의 기총 소사에 죽고 만다. 이 소설은 6?25라는 민족적 비극 속에서 한 가족이 겪는 갖가지 피해와 비극상을 다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비록 6?25를 이념의 흑백논리로 재단한 아쉬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화가 기총 사격을 받고 죽기 직전 잠시 정신을 차린 사이 노란 금속 훈장을 '민들레'로 알고 만져본다는 결말은 순수정신을 추구하는 작가의 섬세한 시각을 보여준다. 전쟁에 의해 파괴되는 한 인간과 그를 둘러싼 주변 상황을 통해 전쟁의 비인간적 면모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황량한 날의 동화 1962년 11월 <<사상계>>에 발표된 강신재의 단편소설.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명순은 자그마한 약국을 경영하는 약사이고 그의 남편 한수는 마약 중독자이다. 그들은 약대 동창이다.
한때 한수는 대학에서 최고 성적을 내던, 아울러 다양한 교양과 예민한 감수성, 수려한 용모를 갖춘 지적인 학생이었다.
그는 중도에서 학업을 포기하게 되고, 명순은 그러한 한수의 어두운 매력에 끌려 결혼하게 된다. 그들은 한수의 부모가 유산으로 남긴 약국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마약 중독자인 한수는 명순의 눈을 피해 모르핀 병을 훔쳐 내곤 한다. 한수는 몇번이고 마약을 끊겠다고 다짐하지만 이내 유혹에 지고 만다. 명순이 약장에 자물쇠를 채우고 시장에 다녀온 사이 한수는 잠긴 유리 진열장을 깨뜨리고 약을 꺼낸다. 시장에서 돌아온 명순에게 한수는 도둑이 든 탓이라고 뻔한 거짓말을 한다.
화가 난 명순은 인적이 드문 바닷가로 나와 수영을 하며 모든 사념을 잊는다. 명순이 다시 옷을 벗어놓은 바닷가로 나왔을 때 그 가까이에 앉아 있는 한 남자, 대학 동창인 세연을 발견한다. 그는 명순에게 한수의 사정을, 그리고 지금 행복한지를 묻는다. 부질없다고 생각하면서 명순은 세연을 보낸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명순은 문득 공상에 잠긴다. 자신을 사랑하고 있노라는 유서와 함께 한수가 죽어 있는 장면을 상상하며, "사랑, 그것은 얼마간 우스운 말이기는 하였지만 나쁜 말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집에 돌아온 명순은 죽어 있는 한수를 발견한다. 이 작품은 퇴영적인 젊은 남자와 그를 사랑하고 지켜보는 여자의 이야기가 매우 감각적인, 때로는 감상적이라 해도 좋을 문체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한 문체에 의해 조성되는 퇴영적이고 신비적인, 때로는 육감적인 분위기가 소설 전체를 감싸고 있다. 한수가 한때 플루트를 연주했다는 사실을 넌지시 언급하고 있는 것, 마약 중독자이지만 이지적인 한수의 용모와 옷차림에 대한 포착, 바닷물에 몸을 맡긴 젊은 명순의 육체적 욕구에 대한 묘사 등에서 분위기 형성에 대한 작가의 배려를 읽을 수 있다. 이에 비해 왜 한수가 학업을 중단하고 마약 중독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의 보다 본질적인 부분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한수의 일탈적인 삶을 감싸고 있는 신비적인 분위기에 대한 배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분위기에 비하면 구체적인 줄거리는 그야말로 부차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한수의 돌연한 죽음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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