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 휴대폰에서 텍스트로 올리고
나중에 필요하면 컴퓨터에서 파일로 다시 올리겠습니다.
(구례문학 제 33호 원고)
전기적 일상
여름날 나는 선풍기를 튼 채
어싱 매트 위에다 발을 대고
충전하면서 휴대폰을 보다가
더러는 에어컨을 꿈꾸기도 한다
거리에 늘어진 전선은
사진 찍을 때마다 하늘에 까만 줄 긋고
집안에 들어온 전깃줄은
내 몸 주위를 감싸고 있다
전기 없는 세상을 사는
자연인의 삶도 있을 수 있으나
일상은 나도 모르게
전기적 세상이 되어 버렸다
밤중에도 가로등이 있고
아름다운 야경이 있으며
아궁이 불이 아니어도
따뜻한 겨울이 있다
난로에 주전자를 올려놓지 않아도
커피 포터에서 물이 끓어오르고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아도
전기밥솥에서 저녁이 익어간다
요람과 무덤 사이
"요람과 무덤 사이에는
고통이 있었다"*가 아니라
다만 기억이 있었을 뿐이다
고통의 기억일 수는 있겠지만
밀물처럼 다가왔다
썰물처럼 사라지는 고통
남는 것은 고통의 파도가 아니라
파도가 가라앉은 기억의 바다일 뿐이다
만약에 기억이 없다면
그까짓 고통이 무슨 대수랴
주삿바늘 들어갈 때의
따끔함과 다를 게 무엇이랴
살면서 기억나는 게
고통뿐인 사람은 불안한 밤이며
기쁨인 사람이라면
그는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이다
지난 뒤에 돌아보면
고통도 사랑이 되며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처럼
기쁨으로 물드는 황혼이 되자
깊게 익어가는 노을빛이 되고
웃음으로 빛나는 저녁이 되며
평안을 담아내는 어둠이 되어
아름다움을 꿈꾸는 밤이 되자
* 독일의 작가이자 시인 '에리히 케스트너'의 시 「숙명」 전문 인용
11월
달력이 두 장 남은
깊어진 가을의 풍경
남들이
눈여겨 보아주지 않아도
거인의 다리가 되어 서 있는
긴 바지에 막대풍선을 접는
아이에게 줄 선물을 든 광대처럼
단풍으로 분장한 채 먼 산 바라보다
저마다 빈 마음 사이로
11월의 바람이 저녁놀에 스친다
쎔쎔 (또는 쌤쌤)
결국 "서로 같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으며, 영어 same same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이 '쎔쎔'이라는 단어가 요즈음 나에게 정신적인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살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감사한 일도 더러 생각나지만, 그보다는 불편했던 일, 괘씸한 일 등이 머릿속에 더 자주 떠오른다. 그때마다 상대방의 모습이 연이어 떠오르며, 그에 대한 기분 나빴던 생각 또는 괘씸한 마음이 더 깊어지곤 한다.
그러나 이는 결국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일일 뿐이다. 해서 나는 60 중반이 넘은 나이가 되어 이제서야 마음속으로 쎔쎔을 외치게 되었다. 그가 내게 잘못한 일이 있다면 다른 때에는 그가 내게 잘한 일도 있을 것이니 쎔쎔이며, 또는 그만이 내게 잘못한 경우가 있는 게 아니라, 나도 그에게 잘못한 일이 있을 터이니 쎔쎔이다. 설령 내가 그에게는 잘못한 일이 없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잘못한 일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이 역시 쎔쎔이다.
오래전 일이 문득 떠오르면서 자녀의 행동이 괘씸한 경우가 있고 형제간에도 그런 생각이 가끔씩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제는 불편했던 일, 괘씸했던 일들이 떠오르면, 그 모든 게 다 '쎔쎔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생각할 때 자연적으로 상대방에 대해서나 나 자신 안에서나 기분 나쁜 감정에서 벗어나 가벼운 마음 상태가 된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오늘도 스스로 '쎔쎔'을 외쳐본다.
약력
· 2005년 월간 문학바탕, 시 등단
· 제2회 청정영광 디카시 공모전 장려상
· 제2회 전국 김삼의당 시·서·화 공모대전, 시 입선
· 2016년 서울지하철 게시 공모 시, '향기' 당선
· 공저 - 시의 사색 산문의 여유
· 춘향 문학회, 구례문인협회 회원
첫댓글 선생님 여전히 모범생 이십니다.시. 수필. 좋아요~~~
이제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