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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산스님 명상 법문
자신에 대한 자비심-불교적 관점에서 성공(무심,자비, 희망, 자신감, 원력의 조화)
생각은 나와 관계없이 잠재된 의식 속에서 드러납니다.
현재 우리의 잠재된 의식을 불교의 이론으로 규명을 하자면 업의 상속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음식뿐 아니라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이 음성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사주팔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음상입니다.
음으로서 그 사람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을 하더라도 찾아냅니다.
그러나 눈이 밝지 못한 사람은 교언영색을 못 찾아내고 속게 되니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이라고 일러주어도 절대 알지 못합니다.
음상보다 더 뛰어난 것이 심상이라 비록 탁하고 추한 얼굴을 하더라도 심상이 맑은 자에게는 다 통해 버립니다. 밝고 온화함이 마음에서부터 나와야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제가 밝고 온화한 것이 없다면 ‘아 저 말로만 그런 스님이다’ 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웃음) 존중하되 믿지 말라는 말입니다.
제가 여기서 하는 모든 말들을 여러분들이 듣는 순간 거기에 설정되면 여러분들의 것은 없어집니다. 이 이야기를 이해를 잘해야 합니다.부처의 말도 믿으면 안 됩니다. 무슨 말인가 하시겠지만 믿는 순간 여러분들은 여러 가지를 자기안에 만들게 되어 고정된 틀이 생깁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소리를 못 듣습니다. 여러분 마음의 원래부처의 소리가 아니라 바깥부처 소리만 들립니다.
여러분들 모습 모두 편안하시고 염불하시는 음성 맑아서 좋습니다. 나날이 내려놓는 마음이 얼굴에 드러나 다 보살같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고요함속에서 삼매를 얻은 자는 통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볼 수있게 되어 한 분야의 대가가 될 수있고 현자 수준까지는 가게 됩니다.
여러분들 우리 신도분들 근 70~80%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현자 수준에 오릅니다. 물론 현자의 수준도 다양하고 여러분들이 지식적으로 어떤 것을 갖춘 석학류의 현자는 아니라 하더라도 어느정도의 지성적 안목과 내 생활의 애착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확하게 인식하지도 못한채 업식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기때문에 이정도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오늘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성공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세속에서든 수행에 있어서든 우리 모두 성공을 추구하며 앞만 보고 달려가겠지만 삶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안목이 없다면 제대로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하는 성공이 아닙니다.
성공을 가늠하는 척도가 세속과는 조금 다르지만 불교적 관점에서 보는 성공의 요소가 빠진다면 언젠가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성공입니다.
불교적 관점에서 성공을 하려면 무심,자비, 희망, 자신감, 원력 이 다섯 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 때 인생 성공에는 육체와 정신이 균등으로 포함 되는 것입니다.
성공은 내 몸에 건강함이 있어야 합니다. 아프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여러분들이 원하는 재물, 사람, 명예, 내 가족 에 대한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이제 다섯 가지의 불교적 관점에서 살펴 보겠습니다.
1,무심
첫번째는 무심하라는 것입니다. 무심은 찾고 무관심은 버려야 합니다. 무관심은 자기만의 방식이 모든 것에 투영되기 때문에 맹맹합니다. 무언가 결과물이 열려 있더라도 열매는 있는데 가지가 말라 떨어지고 있습니다. 결국은 열매를 먹지도 못하고 떨어집니다. 만약 열매를 먹더라도, 가지가 시들어 있으니 열매가 다시 열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무관심입니다.
가족 간의 무관심. 서로 도반끼리의 무관심, 사회의 무관심은 모든 것을 말라 비틀어지게 만들고 결국 자기도 말라버립니다.
이것이 불교의 인연 법칙, 연기 법칙, 인드라 법칙입니다.
무심은 의도를 갖지 않는 것입니다.
의도가 바로 나를 얽매고 있는 옷과 같아서 느낌과 인식의 결과로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면 선업이든 악업이든 업이 발생하여 인연 결과물을 낳게 됩니다.
잘 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탐닉된 사람은 계속 그러하기 때문에 즐기다가 탈출구를 잃어버립니다.
권력을 가진 자가 지금 잘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욕심이 더 올라갑니다.
의도를 갖지 않으면 인간관계에서 때로 자기 기질대로 남들이 이해해줍니다.
그사람의 마음속에 평온심이 있고 자기 욕심 내지 않음은 태양빛을 감출 수 없듯이 자동으로 드러나기때문에 무심은 갖되 무관심은 갖지 마라는 것입니다.
2.자비심
두 번째가 자비심입니다. 불교의 대명사인 자비심, 우리가 쉽게 말하지만 결코 쉽지 않습니다..
깨치지 않으면 절대 안 됩니다.
그러나 안 되더라도 이런 것이 있음을 정확히 알고 불법의 거울에 반사라도 해야 됩니다.
그 것 못 갖추더라도 반사라도 해서 자꾸 받아내야 합니다.
자비는 그 누구라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남을 인정하고 용서하기 참으로 어렵습니다.
나자신에 대한 확실한 자긍심이 있는 사람만이 남을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가 잘하든 못하든, 인정해주면 그 사람이 내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이해와 용서입니다.
그래서 자비를 가진 자는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자신에 대한 자비심을 갖춘 자는 가족을 위해서 또 가치있는 무언가를 위해서 내몸을 희생할 때조차 뚜렷한 방향과 자긍심이 있기때문에 진정한 의미를 분명히 알아 허망한 인생이 되지 않습니다.
허무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허망한 인생임을 모르고 목표없이 살다 원인도 모르고 떠나면 또 똑같은 다음 생에 이릅니다. 알고 떠나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어디론가 길을 떠날 때 안 좋고 무서운 길임을 알고 떠나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겠습니까?. 눈 가리고 좀 걸어보십시오. 그래서 자비는 두려움과 후환을 없애는 겁니다.
두려움이 있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하고 싶은 일은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가면 어느 날 그 분야의 대가가 됩니다.
문학하고 싶은 사람이 문학으로서 큰 성취를 하게되면 그 때 내가 사회적 성공의 기준인 의사, 사업가,정치가가 아니라고 해서 성공이 아니겠습니까? 내 분야의 좋아하는 일을 하면 성공을 이룹니다. 제가 가만히 살펴보니까 자기의 적성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이 꽉 찼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적성입니다. 그러면 그 분야의 대가가 될 수 있습니다.
저도 적성에 맞는 것도 하고 싶은 일도 참 많았습니다. 어떤 어려운 철학서를 읽어도 재미가 있었지만 인기많은 세상의 잡서나 다른 것은 다 재미가 없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아무리 힘들어도 재미가 있었습니다. 돌아올 돈이 없어서 설사 돌아오지 못할 지라도, 입에 안맞아서 물에 떡밥을 말아 먹어도 수행자답게 견딜만 했습니다.
수행자의 마음
김치 하나를 먹어도 한국음식 얼마나 맛있습니까?
미얀마에서는 김치도 없이 물렁물렁한 떡밥을 먹으며 수행자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한 끼만 먹고 김치만 먹고 살았던 나의 삶도 자랑거리가 아님을 보게 되어 수행자의 입맛이 한국음식에 길들어져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말한 자기 스스로의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면 그 어떤 장애도 장애가 아닌 것이 됩니다.
시험 치는 것도 제가 말씀 드린 대로 하면 아이들 고시도 합격하게 하고 유명 대학도 들어가고 공무원도 다 되게 됩니다. 자기 적성하고 맞지 않는 것을 아버지 길 따라가겠다고 행시를 준비하다 실패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지금은 학문의 길로 갔습니다.
자기에 맞는 목표를 정해 기쁜 마음으로 나아가면 반드시 원하는대로 됩니다.
3.희망
세 번째가 희망입니다.
불법은 희망을 주기 위한 것이고 여러분 희망이 바로 불법입니다.
부처님 아무 소용없습니다. 희망을 갖기 위해서 부처님을 만나고 부처님 법을 만나는 것입니다.
스스로 희망이 있으면 무조건 일어설 수 있어 미래와 성공이 같이 있는 것입니다.
희망이 없는 자는 미래가 없으니 미래가 없는 자와 누가 가까이 하겠습니까.?
미래가 있는 자는 천하의 모든 것을 얻습니다.
쥐를 캄캄한 물통 속에 빠뜨렸을 때, 희미한 빛조차 없던 물통에 빠진 쥐는 3분 만에 익사하는 반면 희미한 작은 빛이 있는 캄캄한 물통에 쥐를 빠뜨렸을 때는 36시간을 버티더랍니다.
700배를 연장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여러분들도 희망이 없으면 스스로 죽는 것이니 어떠한 경우에도 희망을 가지면 여러분들은 다 이겨낼 수 있고 성공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4.자신감
네 번째가 자신감입니다.
자신감은 끈기, 패기, 용기, 인기를 동시에 얻게 합니다.
자신감의 반대말은 두려움, 불안, 우울증입니다.
자신감없는 사람을 보면 육체적 밸런스가 무너져 맥이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자신감이 없으면 하는 일 마다 안 됩니다.
언제나 어떤 경우에도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자신감이 있는 사람옆에는 사람이 모이고 그 모아진 에너지로 일은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5.원력
마지막이 원력입니다.
원력과 욕심은 다른 겁니다. 여러분들은 욕망, 야망, 목표, 꿈 이런 것이 욕심인줄 압니다.
불교의 야망, 불교의 목표 이것은 욕심 보다 더한 욕심입니다.
모든 인생의 완전한 행복은 명예 재물 안 가진 것이 없이 가졌지만 그 어떤 것에도 종속되지 않는 것입니다.
목표, 야망, 젊은 사람의 청운의 꿈 다 가져야 합니다.
다만 비도덕적이지 않고 나와 남을 함께 생각하는 원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10억 벌 사람인데 억지로 편법을 써서 1조 벌겠다고 하면 이게 욕심입니다.
경전 어디에도 돈 벌지 마라 하는 말은 없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정당하게 얻은 재물을 남을 위해 거룩한 마음으로 보시를 했다면 그 재물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 재물을 베풀 때 더 벌고 더 번영하게되며 안 베풀고 자기욕심껏 쓰다보면 줄어들거나 안좋은 일에 다 쏟아붓게 됩니다.
가진 것을 베풀어 이 정신을 높이고 결국 육신의 존재를 벗어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원력은 야망이요 목표요 인간성취입니다.
야망, 목표를 가지되 욕심은 내려놓을 수 있다면 고통이 없습니다.
다만 할 뿐, 주어지는 대로 갈 뿐입니다.
저는 큰스님 되려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거꾸로 자꾸 큰스님 반열에 올라가는 상황이 되어서 큰스님 한 번 되어볼까 합니다. (웃음)
제 목표는 일단 미약하게 일단 제 고통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부처님이 좋아서 그냥 기도도 하고 그 다음에 불교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것을 해소시키기 위해서 공부하고 맞는 것을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정말 깨친 것이 무엇인지 내가 확인하고 싶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정도 되면 '깨친 것이 보고 싶다,무엇이 되고 싶다'는 욕심 중에 욕심이고 이루지 못할 욕심입니다. 그러나 이걸 찾기 위해서 갔습니다.
다만 할 뿐입니다. 삼생을 목표로 그냥 가고 또 갈뿐
힘들면 내 수행 잘 안되니 나만의 손해입니다. 그래서 내려놓습니다.
항공모함 움직여도 표가 나지않지만 어느 날 대서양을 횡단한다고 합니다.
삼세번 이해하고 욕심을 내려놓으니까 여러분 운명을 바꿀 수 있고 삶을 개척할 수 있는 희망을 제시하고 또 불교가 무엇인지, 종교가 무엇인지, 그 무엇이든 여러분들에게 자신있게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냥 저한테만 오게 되면 할 수 있게끔, 억지로 떠밀어서 하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 할 수 있게끔 만드니 그렇게 다 됩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이 가져야 될 성공에 대한 불교의 다섯 가지 관점입니다. 다섯 가지를 다 해야 되는가 생각하면 복잡해서 다 못합니다. 금방 외워도 나가면 생각이 안 납니다. 저도 그러니까 (웃음)
내가 누구인가 의심을 하면 됩니다.
맨 처음에 무심이다,자비다, 희망이다,자신감이다(자존심은 가져봐야 고통만 있습니다) 원력이다. 이렇게 하나에 다 들어갑니다. 불법만 하게 되면 다섯 가지보다 더 한 팔만 대장경의 이치가 저절로 익혀지게 됩니다.
올바른 불법을 만나서 여러분 집에서 이제 기도를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기도를 안 해도 될 사람은 참선하십시오. 그리고 경전 읽기 열심히 하십시오. 올바른 경전 하나 만난 다면 다 이루어집니다. 불법 한마디에 인생의 법칙, 성공의 법칙, 너무 놀라운 내 자유의 법칙이 다 들어 있습니다. 불법을 항상 잘하시고 그 어디든 법회에 가십시오.
여러분이 어디를 가더라도 법이 있다고 판단되는 곳을 선정했으면 거기에 맞추어서 합리적인 이야기로 가야 그 법이 증강됩니다.
그런데 만약 법이 아니라면 떠나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법을 어떻게 펼칠 것인가를 도모해야 합니다. 개개인이 서로의 완전하지 않음만을 이야기 한다면 어디에서도 결과는 똑같습니다.
아내가 어떻고 남편이 어떻고 아들이 어떻고를 말하지 말고 지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현재의 현상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법이 아닙니다.
불법의 논점은 내가 없고 나의 관점, 나의 기준이 없어서 상대에게 나를 내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부처님의 말씀을 진짜라고 믿지 않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철저히 여러분 자신으로 돌아가 보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