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로베일 하우스(Strawbale House)의 역사는 100여 년 전 미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굳이 우리말로 하자면 볏짚으로 집짓기 라 할 수 있습니다.
평원 지대인 미국의 네브라스카 주에는 집을 지을 수 있는 나무나 돌이 부족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주로 잔디를 쌓아 집을 지었습니다. 목축이 주업이던 그곳 사람들에게는 밀짚을 많이 비축하는 방법을 고안해 내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였습니다.
19세기 말, 그들은 드디어 말을 이용해 볏짚을 압축하는 베일러(Baler)를 만들었습니다. 그 기계로 오늘날 우리가 목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각 볏짚을 만들어 냈습니다. 압축된 베일을 저장해서 임시창고를 만들면서 그들은 우연히 스트로베일 하우스를 고안해 내게 되었습니다.
볏짚으로 집짓기 는 전문가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농부들의 손에 의해 탄생됐습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자재로 부담 없이 창고를 만들다가 탄생된 집인 것입니다. 가축을 농업의 보조수단으로만 여긴 우리 선조들이 만일 전문 목축업자가 되었다면 우리나라에서 볏짚으로 집짓기 가 먼저 생겨났을 수도 있었을 터입니다.
콘크리트 주택은 신속하고 저렴한데다 세련되게 지을 수 있다는 장점으로 사람들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콘크리트 주택이 일반화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스스로 살집을 지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콘크리트 건물의 취약한 단열 성능을 높이려고 이 문제를 획기적으로 보완한 하이샤시 창이 개발되면서 그 동안 느끼지 못했던 유해가스가 실내에 존재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질환이 아이들에게 생겨났습니다. 완벽한 단열을 위해 만들어낸 기술이 새로운 부작용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현대 과학이 만들어낸 부작용이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이 조금씩 감지될 1980년 무렵, 이 문제의 심각성을 감지한 미국 여성 에티나 스틴(Athena Steen)은 자신의 집을 스스로 짓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가족들이 어울려 직접 집을 지었던 것을 기억해낸 에티나 스틴은 아버지에게 물어보면서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소재와 방식으로, 그것도 이혼녀 혼자 집을 짓는 것이 당시에는 기이하고 무모한 시도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완전하지 않지만 현대 주택보다 훨씬 건강하고 자연스런 집을 지어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에티나 스틴은 생태 건축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생태 건축 전문가인 빌 스틴(Bill Steen)을 만나 결혼하면서 생태 건축에 대한 연구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들 부부는 한층 향상된 생태건축 전문가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20-30년도 채 되지 않는 사이에 서구에서는 스트로베일 하우스가 생태 건축의 한 분야로 당당하게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각양각색의 비전문가들이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시도하고 다양한 경험을 축적한 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다양함이야말로 진정한 생명의 원칙입니다.
볏짚으로 집짓기 는 몇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재료의 생태성입니다. 온전하게 공업 생산에 의한 재료를 배제 할 수는 없어도 대부분의 재료를 자연소재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목재의 경우 3~40년의 세월이 흘러야 건축재로 사용 할 수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볏짚은 매년 생산되는 것이기에 확보가 용이하고 비용이 저렴합니다.
둘째는 단열성이 뛰어납니다. 볏짚 뭉치를 통째로 쌓기 때문에 단열과 보온성이 좋아 따로 보온재를 쓰지 않아도 집을 아늑하게 유지해 준다는 것이 커다란 장점입니다. 당연히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해서 집을 유지하는데 드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습니다.
셋째는 통기성이 탁월하다는 점입니다. 공기는 안정적이지만 살아 숨 쉬는 벽체 때문에 생활하면서 생기는 각종 냄새를 자연스럽게 배출해줍니다. 겨울 내내 청국장을 끓여도 냄새가 남아 있지 않아 집안 공기가 늘 쾌적하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볏짚으로 집짓기 는 값싸게, 생태적이고 기능이 탁월한 집을 지을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볏짚으로 집짓기 는 거대자본에 의해 대량 생산되는 상품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기획해 만들어 가는 집의 전형이 되기에 충분한 방법입니다. 이웃과 함께 주체적으로 삶을 기획해 볼 일입니다.
글쓴이 이웅희님은 한국스트로베일연구회를 이끌며 스트로베일하우스를 비롯한 생태주택을 짓고 그 노하우를 알리고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cafe.naver.com/strawbalehouse.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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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나고 땅으로 돌아가는 인생을 닮은 집.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되는 물건들이다. 우리가 사는 집도 예외는 아니다. 주택의 대부분은 공업적으로 생산된 규격품을 조립해서 만드는 대체 가능한 개체로서의 집이다. 일본의 경우는 연간 약 10만 호의 주택이 해체되고, 이 가운데 재료의 60퍼센트가 쓰레기로 폐기되는데, 이러한 주택 폐기물은 전체 산업 폐기물의 37퍼센트에 해당한다. 이를 보더라도 일본의 주택이 얼마나 환경 파괴적인 '패스트 하우스'fast house 인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슬로 하우스'란 대체 어떤 것일까? 그것을 생각하는 데 좋은 힌트가 되는 것은 '스트로베일 하우스'straw-bale house다 이 집은 짚으로 만든 블록을 쌓아서 짓는다.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최근 몇 년 사이 북미나 호주 등지에서 궁극의 핀환경 주택으로 불리며 크게 각광받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발군의 단열성이다. 일반적인 고단열 주택에 비해 두 배에서 세 배 이상의 단열성을 자랑한다. 내가 머물렀던 멜버른 근처의 스트로베일 하우스의 경우, 한겨울 바깥 기온이 5도일 때 실내 온도는 40도였다. 반대로 40도에 이르는 한여름 날씨에도 실내는 냉방이나 블라인드 없이도 24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단열성과 함께 방습성, 방음성도 뛰어나서,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고도 쾌적한 생활이 가능해진다.
건설 단가 역시 상대적으로 싼 편이다. 주요 소재인 짚은 생산하는 데 오랜 세월이 소요되는 나무와 달리, 매년 식량 생산의 부산물로 얻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논이나 밭이 있는 곳이라면 현지에서 소재를 조달할 수도 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최근까지 수확 후의 볏짚을 소각 처리해 왔으나 대기 오염 방지법으로 인해 난관에 부딪치게 되자, 이를 계기로 스트로베일 하우스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내구성, 내진성, 방충성도 북미와 호주에서 검증을 거쳤으며, 이미 일부 주에서는 법적으로도 허가되었다. 화염 방사기에 의한 연소 실험에서도 난연성을 검증받은 바 있다.
또한 건축 방법이 비교적 단순해서 전문가가 아니어도 쉽게 설계나 건설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스트로베일 하우스의 미덕이다. 내가 캘리포니아 주에서 보았던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대부분 주인이 직접 설계와 시공의 중심 역할을 맡았으며,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짓고 있었다. 건설 중인 2층짜리 아치형 주택은 고에너지 소재인 시멘트를 피하고 대신 돌을 쌓아 토대를 만들었으며, 나무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쪽으로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 집의 경우에도 주인이 주말을 이용해 직접 짓고 있었으며, 우기에는 건설을 중단했다가 건기가 되면 다시 재개하는 식으로 유유자적한 집 짓기를 하고 있었다.
지난 날의 가옥이라는 것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모든 동물들의 보금자리가 그런 것처럼,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그 지역의 땅에서 난 자연 소재로 만들어지고 언젠가는 다시 그 땅으로 돌아간다.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금 깨우쳐 주고 있다.
[북데일리] 호모사피엔스는 오랜 수렵채집시기를 거쳐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영구적으로 거주할 집을 짓기 시작했다. 수렵채집시기에는 이동생활을 했기에 짓고 해체하기 쉬운 집을 짓고 살았다. 그러나 농경을 하게 되면서 인류는 한 장소에서 오랜 기간 거주하게 되었다. 아마도 인간은 이때부터 장기간의 거주에 적합하고 편리하고 안락하게 지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인류는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자연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집을 지었다. 나무나 볏짚, 흙 또는 돌들을 이용해 집을 짓고 거주했다. 이 시대 집의 의미는 오직 ‘거주’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이후 도시화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좁은 공간에서 밀집해서 살기 시작하게 되었다. 또한 건축 재료에 있어서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970년대 이후 좁은 도시에서는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거주하게 되었다. 아파트 거주는 생활하기에 매우 편리(convenience)했다. 그러나 결코 안락(comfort)하지는 않았다. 자연의 재료에서부터 떠나있는 우리 몸은 결코 인공적인 재료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피부질환이나 호흡기질환이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에게 나타났다.
특히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실내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 때문에 시각이외의 감각이 퇴행하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촉각이나 청각 등은 우리가 자연 속에서 생활할 때에는 생존에 아주 필수적이고 중요한 감각이었으나, 실내 생활로 인해 더 이상 이런 감각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작금의 현실에서 볼 때 집이란 가족이 단란하게 거주하는 Home이란 개념이 없어지고,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House로 변해있다. 집은 더 이상 가족만이 행복함으로 즐기는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집 주인의 사회적 권력과 재산을 대변하고 있다. 집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의미는 퇴색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다시 안락한 홈을 가지지 못하는가?
자신과 가족에게 안락함으로 주면서 동시에 자연과 함께하는 집을 짓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이러한 움직임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이라고 한다. 인류는 더 이상 산업화로 인한 폐해 속에서 허덕일 만큼 멍청한 존재는 아니다. 이 순간에도 인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가고 있다.
이에 참고 할 책 한권을 소개 한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 스트로베일 하우스>(시골생활. 2007)이다. 책은 안락한 집을 스스로 짓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스트로베일이란 단어는 ‘볏짚’을 뜻한다. 볏짚을 압축한 재료로 집을 짓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중부지방 네브라스카 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네브라스카 주는 황량한 지역이니 만큼 집을 지을 재료가 많지 않은 곳이다. 이런 곳에서 가장 자연과 가까운 재료로 집을 지을 수 있는 재료는 바로 스트로베일이었다.
스트로베일하우스의 장점은 우선 재료가 생태성을 가지고 있고, 단열성이 뛰어나고 또한 통기성이 탁월하다고 한다. 흔히 우리가 볏짚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인 ‘습기에 약하다’거나 ‘강도가 약해 쉽게 무너지리라’는 생각은 이 책을 읽어보면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많은 도시민의 꿈은 은퇴해서는 조용한 전원에서 주택을 짓고, 텃밭을 가꾸며 살고 싶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 책을 보니 은퇴할 때까지 기다릴 것 없이 바로 실행할 수 있을 정도로 집짓는 방법을 세세한 부분까지 알려주고 있다.
스트로베일하우스 짓기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2004년부터이다. 강원도 영월의 동강에서 시작해 전국의 많은 지역에서 이러한 생태적 집짓기가 활성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책을 읽고 빨리 스트로베일하우스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와 내 가족의 힘으로 만든 집에서, 진정한 생태적인 삶 속에서 안락함(comfort)을 느끼고 싶다.
[이동환 시민기자 eehwan@naver.com]
“대안 생활문화를 만들어가요”
경남 산청의 대안학교 간디학교에선 마을을 세 곳이나 새로 만들었다. 안솔기마을, 둔철마을, 그리고 지금 한창 만들고 있는 갈전마을.
모두 ‘교육’과 ‘생태’를 화두로 계획되고 조성돼 이른바 ‘교육생태마을’이라 불리는 기획마을이다. 아이들의 교육과 생태적인 삶을 누리기 위해 마을로 모여든 도시민들은 이제 농촌에서 농민들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상생의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다.
갈전교육생태마을 전경
“유정란을 직거래로 내다 팔아요. 70~80평의 계사에 닭 1천수 기준으로 1천만원 쯤 투자하면 6개월 후에는 월 150만원 수입이 되니까요. 입주가구 중 3가구가 동업을 하는 셈이죠. 2가구는 생산과 관리를 맡고 1가구는 판매와 유통을 책임지고 있어요. 여기 오기 전 도시에 살 때 주로 했던 일들이라 잘 하고 있죠.”
대구의 한 대학교 앞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던 마을주민 대표 장창훈씨는 산골마을에서 ‘어떻게 먹고 살지’경제적 자립문제를 걱정하자 걱정하지 말라는듯 앞날의 의욕을 내비칩니다.
“마을 입주민들은 다양하지요. 꼭 간디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가구만 있는 것도 아니에요. 간디학교 선생님, 은행 지점장으로 은퇴하신 분, 수도권에서 공무원을 하다 전출을 자원해 내려오신 분, 생태체험학교를 운영해 보시겠다는 분, 가까운 진주시로 출퇴근 일을 하시는 분, 본격적으로 마을에서 농사를 짓겠다는 분…”
경남 산청군 신안면 갈전리 ‘갈전 교육생태마을’ 간디학교에서 세 번째로 기획하고 조성중인 이 마을에는 총 42가구가 모여 살 계획이다. 가구당 2~3백평씩, 평당 15만원 정도에 필지를 분양받았다. 현재 16세대가 집을 지어 입주를 완료했고 6세대는 한창 집을 짓고 있다. 총 1만5천평의 부지에 가족 가구 30여세대, 독신자 가구 20여세대가 2007년말까지 입주를 완료할 예정이다.
집은 이른바 생태주택이다. 만만치 않은 건축비용 때문에 교과서적인 생태주택을 짓지는 못하지만, 북미식 경략 목구조에 생태도장을 하고 천연펄프 생태바닥재로 마감하는 등 집합생태주택의 본보기가 될만한 사례를 구현하고 있다. 따로 품과 공을 더 들여 황토흙집이나 스트로베일하우스(흙과 볏짚으로 짓는 생태주택)를 짓는 세대도 있다. 내년에 안봉리 둔철마을에 있는 중학교 과정의 간디마을학교가 새로 교사를 지어 마을 안으로 옮겨오면 마을은 본격적인 무게중심을 잡게 된다.
집단 생태주택
“우리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염려한 부분 중 하나가 ‘생태’의 상품화였습니다. 이미 환경이 상품화된 오늘날의 세태인지라, 생태마을 자체가 일종의 트렌드로 변질되면 이제 사람들이 자본으로부터 뛰쳐나와 기댈 수 있는 그 어떤 곳도 없어진다는 우려 때문이 있습니다.” 간디학교에서 마을만들기 사업을 내내 맡아 하고 있는 생태사업본부의 강철형씨는 마을만들기, 그것도 생태적인 마을 만들기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한다.
‘생태’의 상품화 가장 우려스러워
“얼핏 마을 내의 건축들도 겉모양만 보고 ‘돈 좀 들고 도시를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전원주택’으로 세상에 비칠까봐 조심스러웠어요. 우리 마을의 집은 생태를 정확하게 해석하려고 애쓰면서 지은 집들이에요. 무조건 생태적인 것을 주장하다보면 집짓는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고, 그 비용조달이 오히려 비생태적일 수 있어요. 가급적 싸게 지으면서도 현재의 수준에서 쉽게 구할 수 잇는 재료와 자재들을 쓰고 집의 건축적 본질과 의미에 충실한 집을 만들려 나름대로 노력한 것이죠. 예를 들어, 난방은 태양열이나 심야전기는 청정에너지이긴 합니다만 획득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집의 에너지 손실을 줄이고 에너지 보존력은 높인 후 현재 상황으로는 가장 획득비용이 저렴한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 식이죠.“
간디학교가 마을을 만드는 이유
마을만들기의 주체이자 중심인 간디학교는 1996년 간디농장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산청 간디학교 2곳을 비롯해 충북 제천간디학교, 충남 금산간디학교등 4개의 학교로 확장되었다. 호주, 중국, 필리핀에 이동학습을 위한 간디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이 학교는 한마디로 사랑과 자발성의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탁월성을 추구하는 대안학교를 추구하고 있다.
산청 간디학교
“1999년 안솔기마을을 처음 만들었지요.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더불어 생태적인 행복한 삶을 꿈꿉니다. 그 꿈을 실현하는데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녀교육문제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경제적인 자립 문제입니다. 간디교육생태마을은 바로 이 꿈을 함께 이루어 가는 작업입니다. 마을과 학교가 함께 어우러져 교육문제 해결하고 마을주민들이 함께 공부하며 자립 문제를 풀어나가자는 것입니다.“
자꾸 이렇게 마을을 만드는 이유를 묻자 강씨는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설명한다. 도시민들이 터를 잡고 사는 어느 농촌마을에서나 그렇듯 이 마을에서도 역시 경제적 자립 문제가 우선 과제이다. 갈전마을에서는 마을 안에 먹거리 생산이 가능한 토지를 확보하고 있다. 또 마을에 터를 잡게되는 간디마을학교의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생활수단을 확보할 준비도 하고 있다.
주민들이 함께 자녀교육과 자립문제를 풀어나가
이를테면 특용작물재배, 허브차 생산, 방문자센터, 빵, 쨈, 과자 등의 식품가공공장, 학교기숙사를 활용한 홈스테이, 마을 까페와 매점을 겸한 식당 등 다양한 경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녹색사업으로 생태건축회사, 대안에너지 기술회사, 간식공장, 비누공장, 유정란사업도 계획 중이다.
무엇보다 갈전교육생태마을이 자리잡은 갈전리는 대안기술과 교육 등을 고민하는 민들레공동체와 민들레학교, 양계와 원예사업을 대규모로 꾸리며 지역축제를 열어 지역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는 장미농원, 그리고 60여호에 이르는 전통 산촌마을이 한 골짜기에 잇닿아 어우러져 있어 도농 상생을 프로그램을 모색하기에 적합한 터전으로 보인다.
세계를 구하는 마을의 성공적 전범이 되길
모름지기 생태마을의 궁극적 존재의의란 “에너지와 물, 식량이 단위 마을에서 내부적인 자급자족이 가능함과 동시에 이 방법론이 주변으로 확산되는 일종의 대안적인 생활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또 “이러한 생태적 개념의 정립과 실천은 군락을 이루는 마을단위가 시행주체로 될 수 밖에 없고 이는 자연스럽게 마을단위의 공동체 형성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이제 간디 갈전교육생태마을은 '교육‘ 과 ’생태‘를 화두로 도농 상생의 희망찬 꿈을 막 꾸기 했다. 도로, 전기, 통신 등 기반 시설과 행정편의를 지원해 준 산청군과 지역주민들의 기대는 물론 정부를 비롯한 공공과 민간 할 것 없이 안팎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마을을 넘어 지역의 농촌마을과 농민과 교류하고 상생함은 물론, 마침내 지역과 국경까지 뛰어넘었으면 한다. 마하트마 간디의 신념처럼 ‘세계를 구하는 마을’의 성공적 전범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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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의 가는 나무 틀 속에 짚더미를 넣고 미장을 한다고 한다. (네바 스트로베일하우스에서 퍼옴)
도시에 살며 탈도시를 꿈꾸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집이 있을까. 흙과 나무로 지어 건강에 좋고 자연과도 조화를 이루는 집이 아닐까. 여기, 마음속에 그리기만 하던 이런 집을 실제로 짓기 위해 첫발을 내디딘 사람들이 있다. 한국 스트로베일 건축연구회 8기 워크숍 참가자들은 자기 집 짓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는지 서로의 집을 지어주겠다고 다짐하며 짚단을 나르고 황토를 바르고 있었다. 글 손수정 기자 사진 최수연 기자
귀농이나 전원의 삶을 꿈꾸는 이들 중 ‘내 손으로 지은 그림 같은 집’을 머릿속에 그려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전원생활’의 주택 관련 기사가 많은 독자의 관심을 모으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런데 그 관심이 예전에는 다분히 목가적인 동경이었다면, 근래에 들어서는 생태적인 삶을 위한 선택으로 나아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생태 건축에 눈을 돌렸고, 일부는 이를 자신의 삶에 접목시키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인 것이다.
생태적인 집 짓기, 기왕이면 내 손으로 충남 논산의 한 스트로베일 하우스 시공 현장. 3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성인 남녀 여남은 명이 집 짓는 일에 매달려 있었다. 황토에 짚을 넣고 이기느라 안간힘을 쓰는 사람, 단단한 짚단으로 벽체를 쌓는 사람, 벽에 찹쌀풀을 바르는 사람, 비계에 걸터앉아 지붕을 이는 사람…. “40대에 접어들면서 예전부터 꿈꿔오던 탈脫도시의 구체적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히 생태 건축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요. 지난해부터 여러 건축 형태를 본격적으로 조사하다가 스트로베일 하우스가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손승형 씨(44)는 내년쯤 자신의 손으로 집을 짓기 위해 서울의 본업도 잠시 제쳐두고 5주째 집 짓기를 배우고 있었다. ‘한국 스트로베일 건축연구회’의 8기 워크숍에 참여, 자신을 포함한 20명의 동기와 함께 전국의 건축 현장을 누비고 있는 것이다. 신두철(43)·권태옥(43) 씨 부부는 손씨보다 앞서 7기 과정을 수료했다. 집이 이곳 논산이라 보충 수업 삼아 수시로 현장을 드나들며 일을 거들고 있단다. “원래 건강과 참살이에 관심이 많았다”는 아내 권씨는 “2∼3년 내에 우리 부부만의 힘으로 천천히, 저렴하게 우리가 살 집을 짓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이처럼 요즘 생태 건축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이 가장 주목하는 집이다. 국내에 소개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동호인이 8000명에 이른다. 스트로베일 하우스의 어떤 점이 이들을 이렇게 매혹하며, 평범한 주부조차 ‘내 손으로 지을 수 있겠다’고 자신하게 만드는 것일까. 스트로베일 건축연구회 대표일꾼 이웅희 씨(45)에게 물었다. “스트로베일(straw bale)은 가축의 사료로 쓰기 위해 볏짚이나 밀짚을 정육면체 같은 일정한 형태로 압축해 묶어놓은 것을 말합니다. 집의 뼈대를 세운 뒤 벽돌이나 콘크리트 대신 이 압축볏단으로 벽체를 쌓고 흙으로 마감한 것이 스트로베일 하우스이고요. 전통 흙집의 장점이 살아 있으면서 집의 모양이 요즘 사람들 감각에도 맞아 날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씨가 지인들과 스트로베일 건축연구회를 결성한 것은 2005년. 귀농을 꿈꾸던 그는 그해 4월 오스트레일리아로 날아가 2주 과정의 워크숍에 참여해 스트로베일 건축 기술을 배워왔고, 그 길로 강원도 영월에서 동강 지키기 운동을 하던 한국내셔널트러스트 활동가 홍순천 씨(47)와 함께 영월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 스트로베일 하우스 1호 ‘동강사랑’(본지 2006년 5월호 ‘자연을 담은 집’에 소개됨)이다. 지난해부터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 과정을 개설해 현재 8기에 이르고 있다. 일주일 남짓 실시되던 7기까지와 달리 이번 8기는 6주 기간의 전문가 과정이다. 8기 워크숍 참가자 중에는 흙집 건축가 주세상 씨(49)처럼 새로운 건축 기술을 기존에 접목시키려는 ‘진짜’ 전문가도 있지만, 대부분은 빠르면 올해, 늦어도 몇 년 안에 귀농 또는 귀촌하겠다는 결심 하에 집 짓기를 제대로 배워보려는 일반인이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지난 5주간의 교육 기간 동안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짚단 쌓아 벽체 만드니 집 짓기가 쉬워진다 이들이 꼽는 스트로베일 하우스의 가장 큰 장점은 생태적이란 점이다. 짚과 흙, 나무 같은 순환 가능한 재료를 이용하기에 그렇다. 둘째, 벽체가 공기층을 함유한 짚단으로 되어 있어 단열 효과가 높고 환기와 습도 조절도 잘된다. ‘살아 숨쉬는 옹기 같은 집’이라는 것이다. 8기 참가자 중 가장 젊은 축인 김연진 씨(31)는 “담배 냄새도 잘 빠지고 보온도 잘되는 등 여러 모로 건강한 집”이라며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장점은 자재 구하기나 집 짓기가 쉽고 비용 또한 저렴하다는 것이다. 목조 주택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숙련된 기술과 규격화된 자재를 필요로 하지만,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전문가의 도움으로 뼈대만 세우고 나면 스스로 짚과 흙을 이용해 벽체를 올릴 수 있다. 자재비 또한 저렴하다. 50㎡(15평) 집 짓는 데 5톤 트럭 1대 분량의 짚이 사용되는데, 그 값이 80만 원선(운임 포함)으로 다른 자재의 3분의 1 수준이라고. 3.3㎡(1평)당 건축비 역시 스스로 지으면 100만~150만 원대까지 낮출 수 있다. “흙집은 보통 자재비보다 인건비가 더 들어요.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점은 품앗이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짓기와 더불어 짓기를 통해 비용 절감은 물론이고 새로운 집 짓기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이씨의 말마따나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이처럼 아는 이들이 품앗이해가며 지었다. 집이란 어떠해야 하느냐에 대해, 더 나아가 앞으로의 삶은 어떠해야 하느냐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집을 함께 지은 것이다. 8기 참가자 대다수도 서로 도와가며 집을 지을 것이다. 진주에서 온 김성림 씨(30)는 “품앗이로 집 지으면서 공동체의 즐거움을 맛보았다”며 웃었고, 대구에서 온 최준석 씨(37)는 “내년에 아는 선배 집 짓는 것부터 도운 다음 내 집을 지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역시 8기 참가자로, 익산에서 농사짓다가 흙집 짓기에 푹 빠져 아예 스트로베일 건축연구회에 눌러앉기로 했다는 박경남 씨(35)는 “우리처럼 품앗이로 집 짓는 사람이 많아지면 왜곡된 집 짓기 문화가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했다. “예전에 우리 조상들은 서로 도와가면서 집을 지었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건축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이런 품앗이 문화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돈이 메웠어요. 이제 집 짓기를 배웠으니 적어도 집 짓는 일에서만큼은 품앗이 문화가 다시 자리 잡게 해야지요.”
스스로 짓고 더불어 짓는 즐거움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고 스트로베일을 실으러 갑시다.” 이씨의 지시가 내려지자 8기 참가자들이 하나 둘 작업을 마무리하고 몇 대의 트럭에 나눠 올랐다. 구입한 스트로베일을 들판에서 실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함께 차에 오르며 돌아본 집은 아까보다 조금 더 제 모양을 갖추었다. 뻥 뚫려 있던 한쪽 벽은 짚단으로 거의 채워졌고, 지붕도 어느새 말쑥해졌다. 나이도, 하는 일도, 사는 곳도 제각기 다른 8기 참가자들. 이들이 애초 배우려 한 것은 ‘스스로 집 짓기’일 뿐이었지만, 지난 5주 동안 함께 어울려 집을 지으면서 ‘더불어 집 짓기’의 지혜를 온몸으로 터득했다. 돌이켜보면 애초 이들이 꿈꾼 탈도시란 그저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하는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며, 이들이 마음속에 그린 집도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주거 공간과 주택 문화에 대한 반성, 더 나아가 도시의 반생태적 삶에 대한 반성이 이들로 하여금 같은 꿈을 꾸고 같은 집을 짓게 만든 것이다. 박경남 씨가 집 짓기의 매력에 푹 빠진 것도 이 ‘더불어 짓는’ 즐거움 때문이리라. “여기서는 동기끼리 집도 같이 짓고 참도 같이 먹으니 집 짓는 즐거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요. 말 그대로 즐거운 노동, 웃음꽃 피는 노동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