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단상
그의 마지막 미소
김순신
아주대명예교수
후암백합교회 원로장로
나는 일평생 단독주택에서만 살다가 약 5년 전부터 아파트 생활을 시작했다. 우리 동에 경비실이 있고 두 경비원이 하루씩 교대 근무한다. 벌써 여러 할아버지들이 지나갔다. 남자들보다 여자 거주민들이 경비원에 대해서 더 왈가왈부하는 것 같았다. “누구는 어떠어떠해서 경비원으로 부적격이다.”는 말이 떠돌아다니면 해고가 되는 불행이 있기 마련이다. 약2년 전에 새로 온 경비원 한분은 매우 인상이 좋고 주민들에게 미소를 잃지 않고 상냥하게 대하는 분이었다. 나와 통성명하고 보니 교회 집사님이어서 나는 장로라고 소개하고 서로 “장로님”, “집사님” 하고 호칭하며 유독 친절하게 지냈다. 가끔 경비실에 앉아있는 그를 보면 성경을 읽고 있었다. 참으로 믿음이 돈독한 집사님으로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하지만 이 직업 때문에 한 달에 두 주일만 교회출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의 근무를 보면 아파트 주변의 화초를 가꾸기도 하고 잡초를 뽑기도 하며, 눈이 오면 눈을 쓸기도 하고 주차장도 지하 3층까지 있어서 늘 순시하는 것이었다. 쓰레기 버리는 날에는 경비실 옆에 큰 수거함을 종류별로 설치하여 주민들이 버리는 일을 일일이 도와주는 것이었다. 아파트 앞 지상 주차장에 빈곳이 생겨서 그 곳에 주차를 하면 꼭 다가와서 안전하게 주차가 되도록 도와주고 미소 띤 얼굴로 거수경례를 해주는 그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너무 황송하기까지 했다.
며칠 전 새벽기도에서 돌아와 지상 주차장에 여유가 있어서 주차를 했는데 내게 와서 만면에 미소를 띠우며 거수경례를 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나는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약 1주일이 지났는데, 새로운 경비원이 새벽에 와 있어서 처음 보는 아저씨라고 말하니 오늘 처음 왔다고 말해서 나는 ‘우리 집사님은 아직 젊으니까 더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퇴직을 하고 새로 오셨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짐작은 정반대였다. 그 이튿날 내가 아는 할아버지 경비원에게 나는 물었다. “선생님과 늘 교대하여 근무하는 경비원은 어디로 가셨나요?” “먼 나라로 갔답니다.” “먼 나라요?” “네, 아주 먼 나라로요...” “아니 얼마나 먼 나라인데 아무 말 없이 이민을 가셨습니까?” “예, 하늘나라로 갔답니다.” “예?” “심장마비로 하늘나라로 가셨답니다.” “그렇게 건강하시고 비만도 아닌데 어찌 그렇게 되셨나요?” “근무 중, 의자에 앉아 조용히 혼자 세상을 하직했답니다. 참, 인생이 살았다 할 것이 못됩니다!”
일주일 전 새벽에 나에게 미소 띤 얼굴로 거수경례를 한 그 집사님, 그게 내게 고한 마지막 인사였구나! 자기도 모르게 나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것이다. 나는 관리사무실에 가서 그의 집 전화번호를 물어서 그 집으로 전화를 했다. “평소에 어디 아프셨습니까?” “네, 당뇨와 심장병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협심증도 있었나요?”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미망인은 남편이 효자로 소문났고, 교회에서도 아주 덕망이 많았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면서 너무 일찍 가셨다고 했다. “그럼 순직으로 처리되었나요?” “아니, 119차가 병원으로 데려갔는데 자연사로 처리가 되었답니다.” 더 이상 물을 말도 없어서 하나님 나라에 가신 것을 다행으로 여기자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권사님이시냐고 물으니 열성을 못 내서 아직도 집사라고 하였다.
나는 학창시절에 Lord Ave Bury의 ‘인생의 선용(人生의 善用) The Use of Life’를 감명 깊게 배운 일이 기억이 났다. 그 책에서 내게 가장 깊은 감명을 준 구절은 “삶은 마치 내일 죽을 것처럼 살고, 일은 영원히 살 것처럼 하라.”는 말이었다. 약 10여 년 전 인생독본들이 많이 번역되고 많이 읽힌 일이 있었다. 예를 들면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라는 체스터필드 경의 책이 많이 애독되었었다. 나는 이 책에 못지않은 The Use of Life를 미국 시카고 대학교 도서관에 가서 첫 간행본을 복사해 와서 번역했는데 아까 가장 감명 깊은 구절을 책 제목으로 썼다. 즉 ‘삶은 내일 죽을 것처럼, 일은 영원히 살 것처럼’. 얼마 전 어떤 사람이 TV에서 자기 집 가훈을 소개하는데 바로 이것을 제시했을 때 나는 참으로 보람을 느꼈다.
나는 우리 집사님의 마지막 미소와 그의 거수경례를 잊지 아니 할 것이다. 그리고 내게 큰 교훈이 되었다. 이제 세상에 오는 것은 순서가 있으나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고 모두 말하고 있다. 우리 집사님의 생활을 나는 본받아 살고 싶다. 먼저 가신 집사님이 천국에서도 미소 지으며 그보다 먼저 가 계신 친지들과 즐겁게 담소하는 광경을 마음에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