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가서 인물 자랑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이말을 알고 있다면, “여수가서 돈 자랑하지 말고, 벌교가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한 묶음으로 관용구처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순천은 인물이 특산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인물이 좋다는 것은 다만 외모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인물은 생김새나 됨됨이를 포함하여 평가가 뛰어난 경우를 모두 이르는 말이다.
이런 순천의 “인물 자랑”에 일조를 한 고등학교가 있으니 순천고 등학교이다. 순천고는 이른바 명문고등학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순천고 출신들이 “얼평”의 대상에 될만큼 잘생기거나 했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을 것이 라고 짐작할 수 있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명문고의 기준은 S대를몇 명 입학시켰느냐로 수렴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 기준으로도 남녘 지방의 중소도시 순천에서, 한때는 전국 최고로 많이 S대를 비롯한 명문대학을 진학을 시켰던 적도 있다. 또, 양궁으로 전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고, 최근에는 국내에서 법조계에 가장 많은 인재들이 포진해 있는 고등학교로도 알려졌다.
아무튼 인물이라 함은 잘생긴 사람, 잘난 사람, 잘 된 사람을 모두 지칭한다는 점에서 순고생들이 모두 잘생겼을리는 만무하지만 잘나고 잘된 사람은 꽤 있는 듯하다. 순고출신 학자들도 많고 기업인이나 관료들도 많다. 정치적으로 성공한 유명인물도 많이 있고, 한국 현대단편문학의 최고봉이라고 하는 김승옥 선생과 같이 문학적 성취를 이룬 분들도 있다. 흔히 든사람 난사람들로 그런 인물들은 ‘구 름’처럼 많긴하다.
그런데 어떤 걸출한 인물이 나오면, 배경을 환경에서 따지기도 한다. 출생지가 명당자리가 아닌지? ‘순천중고등학교 50년사’에는 필자의 고교시절 역사 교사로 은사였던 양한택 선생님이 쓰신 글이 나온다. 많은 지관들이 순천고 자리의 풍수형국을 ‘인물이 구름처럼 나올 지세’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작과 현무를 양날개로 하는 부채꼴의 선상지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니, 인물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해석하였다.
그런데 나는 아직 ‘인물’이 못되었을까? 돌이켜보면, 나도 젊어서는 나름대로 생겼다는 점에서 잘생긴 ‘인물’축에는 들어가지 않았을까? 또 사회적으로 발군의 역할을 한 것 없지만, 그래도 10여 명의 숲해설가들이 국가자격의 수만 명의 숲해설가로 되는 탄생과 성장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산림문화의 발전에 기여했고, 그 공로로 국민포장도 받고 대통령 표창을 받고 한 것을 보면, 순천인물에 마이너스가 된 것은 아니지는 않을까 위안도 해본다.
순천고를 생각하면 내 청춘의 성장통이 배어나오는 곳이다. 진학을 향해 전투적으로 학업을 이어가면서도, 꿈과 우정의 치열한 쟁투를 벌여야 했던 사연들이 숨어 있다. 교문 양쪽으로 도열해 있는 소나무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지각생을 잡기 위해 몽둥이(?)를 들고 서있는 체육 선생님이나 선도부 선배들의 모습이 한 장면으로 떠오 른다. 널따란 학교 운동장 서쪽으로는 포플러나무들이 서있고 운동장 연단 뒤의 계단식 뜰에 심어져 있는 벚나무, 교사 사이로 전나무가 우뚝 솟아 있었다. 여기저기 흐드러진 백목련들이 있었고, 웅장한 낙엽송들이 배경처럼 서 있었다. 특히, 연단 주변의 벚꽃나무가 꽃잎을 흩날리면 넋이 나가 책장이 안 넘어갈 만큼 장관을 이루었다. 유난히 감수성이 뛰어났던 한 친구가 수업을 땡땡이치고 벚꽃나무 아래서 어린 철학자처럼 상념에 빠져 있었던 장면이 떠오른다.
순천고의 교목은 “은목서銀木犀”이다. 사실, 학교 다닐 때는 ‘교목’ 이란 게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때는 교목이 전나무였을 것이라고 기억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학교에서 가장 크고 상징적인 거목은 전나무들이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전나무는 넘어져 사라지고 없어졌다.
그러나 학교 본관 앞 중심에 서 있으면서 사계절 늘 푸르름을 지켜주고 때가 되면 은은한 향기를 주었던 ‘은목서’가 있었다. 그런데 순천고에서 누가, 언제, 이 은목서를 교목으로 지정했는지는 정확 하지 않다. 심지어 내 동창이 모교의 교장이고, 동창들이 카톡방에 수백 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내력을 아는 이는 없었다. 그렇지 만, 이 ‘은목서’의 존재와 그 존재감은 일찍이 일제강점기의 개교 당시부터 있었다. ‘은목서’가 이 지방의 명물로서 특별히 언급되어 있고 본관 앞과 교장관사에 식재를 했다는 것은 그만큼 소중한 정원 수였다는 것은 틀림없다.
순천고는 1938년 우석 김종익 선생의 지원으로 설립되었다. 김종익 선생은 승주군 월등면 대평리에서 나셨다. 나의 고향 마을에서 77년 앞서서 태어나셨다. 선생은 일제강점기 현재 고려대 의대의 전신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현 순천대의 전신인 순천농업학교, 순천고, 순천여고 등을 설립한 교육선구자이다.
고려대 의대가 몇 년 전에야 흉상을 세우고 기릴 정도로 선생의 업적은 은목서의 향처럼 은은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역할을 했던 뛰어난 ‘순천의 인물’이다.
순고 출신 중에서 ‘잘된사람’으로서의 사회적 역할로 인물의 됨됨 이를 보여주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김종익 선생의 교육적 유지를 잇는 측면으로 보면 순천중고등학교 총동문회장을 역임한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 정도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중근 회장은 교육장학사업으로 널리 알려진 분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이중근 회장의 생가 마당에도 큰 은목서가 정원수로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은목서의 사연을 확인하진 못했다.
순천고 설립 초창기는, 어느 신설학교나 그렇듯이 운동장 돌고르 기, 나무심기 등 이른바 환경정화활동을 많이 하게 마련이다. 이때 에도 학생들이 벚나무, 소나무, 전나무, 편백나무, 아왜나무, 향나 무, 왕대나무를 위시하여 수천 주의 식수를 하였는데, 이것이 지금의 노거수가 된 것이다. 본관의 은목서, 교장 사택의 금목서 등도 이때 심겨진 것들이라고 추측된다. 그만큼 은목서는 순고 역사에서 뜻깊은 나무라고 하겠다. 본관 앞 은목서는 3미터 정도로 자라는 보통의 은목서와 달리 거의 7미터에 이르는 높이의 거대한 나무이다.
은목서는 그 자체로 생태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향기, 절기, 기억, 정서, 동아시아 문화권의 상징성 등을 지닌 귀한 정원수이다. 일본 에서는 가을에 향기로운 흰색과 연노란 색의 꽃을 피우고 그 향기가 강해서 “가을의 전령”으로 여긴다. 중국은 고대부터 ‘군자君子의향기’, 신선仙人의 꽃으로 여겼다. 특히 折桂절계, ‘계화를 꺾다’는 말은 과거 시험에 급제하다는 의미로 여긴다. 때문에 은목서 역시 상징적으로 학문과 성공의 기호로 쓰인다.
이제 은목서가 순고의 교목인 이유를 알 것 같다. 교목校木으로서의 상징적 가치와 교육적 의미가 잘 어울린다. 순고의 교훈은 ‘심오한 사고, 정확한 판단, 과감한 실천’이다. 이 교훈의 메시지를 가장잘 소화할 수 있는 나무도 ‘은목서’인 것이다. 깊고 은은한 향기는 심오한 사고의 상징이다. 그리고 가을의 전령처럼 정확하게 판단하여 꽃을 피운다. 그리고 겨울에 맞서는 인내로 상록의 늘 푸르름을 유지한다.
학교에 심어진 교목校木은 단순한 조경 수목을 넘어, 학교 공동체의 정체성과 교육 철학을 드러내는 상징기호로 기능한다. 학생과 교사, 졸업생의 세대 기억이 축적되는 장소로, 학교의 역사와 정체 성을 표지하는 공간적 상징물이다. 또 교목은 배움과 성장, 결실을 은유하며, 교육의 철학적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교목은 교육 공간 속에서 다층적인 상징기호로 작동하며, 배움과 존재, 공동체와 미래를 아우르는 살아 있는 교육적 기호라 할 수 있다.
나의 모교 순천고의 교목, ‘은목서’의 장수를 기원한다.
유영초
2022 《산림문학》 시 등단. 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 (사)산림문화콘텐츠연구소 대표. (사)한국 산림문학회 회원.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작 『두어 번 날갯짓에 명왕성을 난다』, 에세이 『숲에서 길을 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