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
단군왕검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을 (남한에 단군과 관련된 유적은 두군데-참성단,삼랑성) 간직한 삼랑성(삼랑성 이름은 발이 세개 달린 솥을 엎어 놓은 모습 = 세아들이 한봉우리씩 성을 쌓아서 다른 이름으로는 정족산성이라고도 함)내에 있는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72)때에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진종사라 함. 그 후 고려 충렬왕비 정화공주(원나라 세조의 공주)는 정략결혼으로 이국땅에서 지내며 이 절에 귀한 옥등을 시주했다해서 전할전, 등불등자를 써서 전등사로 개명한 절.
법화경 목판104매가 보전되어 있고,
조선 왕실의 실록을 보관했던 정족산 사고터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처음 강화에는 마니산에 사고를 설치하였다가 1660년 이곳 전등사 경내로 옮겨 1678년이래 서적을 보관하였고 그후 전등사는 사고를 지키는 사찰로서 왕실의 보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보물 제393호 범종은 중국종으로 고려 숙종2년에 주조된 것으로 우리나라 종과는 달리 종머리에 음관이 없고 용머리 주위에는 아름다운 16개의 연잎이 둘려 있는것을 볼수 있으며 견대와 요대사이에는 8괘등 형태상 특이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866년 병인양요때는 승군 50명이 전투에 참가 하기도 한 호국 불교의 사찰로 당시 조선수비대장이던 양헌수 장군 승전비가 전등사 동문 입구에 세워져 있습니다.
전등사는 건축방식도 다양하지만 이 곳에서 많이 듣는 나부상 이야기도 있음. 절 지을때에 도편수가 주막집 여인과 미래를 약속했는데 여인의 야반도주에 복수를 하기 위해 무거운 추녀를 세세토록 떠받들고 있도록 저주를 내렸다는 전설로 내려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그 전설의 나부상은 사실 나찰이라고 하는 귀신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나찰은 본래 하늘을 날아다니며 살아있는 사람을 잡아먹는 악귀였지만 부처님의 설법으로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고 함.
전등사는 고려의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로 옮겼을 때에 나라의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