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의 소신공양, 본생경 (3) / 석지명
탐욕을 다스리는 길은 보시를 실천하는 길밖에 없다. 한곳에 물이 고여 썩지 않고 계속 흐르게 하는데 있다. <본생경>에는 부처님 인행시의 석가보살이 토끼로 태어나서 자신의 몸을 구워 탁발승에게 보시하려 한다는 내용이 있다. 부처님이 제타바나에 계실 때, 한 장자가 부처님과 스님들을 초청해서 세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맛을 골고루 갖춘 공양을 7일 간이나 올렸다. 공양뿐만 아니라 500명 비구스님들의 생활용품도 보시하였다. 공양을 받은 마지막 날, 부처님은 그 장자의 공양공덕을 찬탄하고 비구들의 청에 의해서 다음과 같은 전생담을 설하셨다.
석가보살이 한때 삼림 속의 토끼로 태어났다. 그 토끼는 수달· 들개· 원숭이 등과 같이 살았다. 토끼는 그 친구들에게 계율과 포살(布薩)과 보시의 공덕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다. 포살은 범어 우포사다를 중국말로 음역한 것이다. 뜻은 재(齎)를 올리는 것, 계(戒)를 설하는 것 등이다. 같은 지역 내의 수행자들이 보름날과 그믐날에 모여서 지난 반달 간의 행위를 반성하고 잘못이 있으면 그것을 고백하고 참회하는 행사이다. 이때 불교교단의 계율조목인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를 외운다. 어느 날, 토끼는 하늘을 바라보고 보름이 다가온 것을 알았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말했다. 내일은 포살하는 날이다. 너희들 세 마리도 계를 받고 포살회에 참가하라. 계를 굳게 지키고 보시를 행하면 좋은 과보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걸식하는 비구스님이 찾아오면 그대들의 음식을 꺼내어 공양 올리도록 하여라. 그 세 마리는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고 각자의 거주지로 돌아갔다. 다음날 새벽, 수달은 먹이를 찾아 강가로 갔다. 어부가 모래 속에 숨겨 둔 물고기를 찾아냈다. 그리고는 "이것의 주인이 있습니까?"하고 세 번을 소리쳤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수달은 물고기를 자기가 사는 곳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식사시간에 먹기 위해서 숲 속에 감추어 두고 자신의 행위가 계에 어긋났는 지를 반성한 다음 잠이 들었다.
들개도 먹이를 찾아서 농가의 마을로 내려갔다. 농부의 오두막에서 고깃덩어리와 우유를 찾아냈다. "이것의 주인이 있습니까?"하고 세 번 외쳐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 들개는 먹을 것을 가지고 자기의 처소로 돌아왔다. 식사시간에 먹기 위해서 먹을 것은 숲 속에 감추어 두고 자신의 행동이 계에 어긋났는지를 반성한 후 잠이 들었다. 원숭이는 망고 먹이로 열매를 주워 가지고 자신의 처소로 돌아 왔다. 식사시간에 먹기 위해서 망고를 숲 속에 감추어 둔 후 계에 대해서 반성하고 잠이 들었다.
한편 석가보살의 화신인 토끼는 식사 때가되면 풀을 뜯어먹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자기 처소에 누워서 다짐했다. '나에게 온 걸식승에게 풀을 대접할 수는 없다. 만일 걸식승이 온다면 내 몸을 내주어야겠다.' 그때, 자재천신(自在天神)이 걸식 탁발승으로 변장하여 네 마리 짐승들의 보시정신을 시험하고자 하였다. 변장한 탁발승은 먼저 수달에게 가서 먹을 것을 부탁했다. 수달은 자신의 식사로 감추어 둔 물고기를 선뜻 내놓으면서 먹으라고 권했다. 자재천신인 탁발승은 다시 들개에게 가서 공양할 음식을 부탁했다. 들개도 선뜻 자신의 식사로 준비해 둔 고기와 우유를 내놓으려고 했다.
탁발승으로 변장한 자재천신은 토끼에게로 갔다. 토끼는 탁발승의 방문을 받고 기뻐했다. 스님, 잘 오셨습니다. 오늘은 제가 지금까지 내놓은 일이 없던 음식을 보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스님은 살생을 하지 않을 것이니 불이 지펴진 후에 제가 불 속으로 뛰어들어 충분히 구워지면 고기를 드시고 출가인의 도를 실천해 주십시오. 탁발승으로 변장한 자재천신은 그 말을 듣고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을 만들었다. 그러자 석가보살인 토끼는 불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불은 자재천신이 토끼의 보살정신을 시험하기 위해서 만 든 것이므로 토끼의 털끝 하나도 태우지 않았다. 자재천신은 토끼의 희생적인 보시정신을 기념하기 위해서 달 속에다가 토끼의 그림을 넣었다. 수달· 들개· 원숭이· 토끼는 서로 의좋게 지내다 가 각자의 업에 따라 전생(轉生)하였다.
이 법문을 듣고 7일 동안 스님들께 공양 올린 장자는 크게 기뻐하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부처님은 "그때의 수달은 지금의 아난이요, 들개는 지금의 목련이요, 원숭이는 지금의 사리불이며 토끼는 지금의 나다."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 중에서 수달과 들개가 계를 지키고 계를 반성하는 행위가 흥미롭다. 수달은 어부가 감추어 둔 물고기를 찾아냈고 들개는 농부의 집에 가서 고깃덩어리와 우유를 찾아냈다. 훔치러 간 형편에 "이것의 주인이 있습니까?" 하고 세 번 소리친 다음에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찾아낸 물건을 자기 처소로 가져온다. 그리고 잠이 들기 전에 자기가 계를 잘 지켰는지 잘못 지켰는지 반성하고 나서 잠든다. 이 이야기의 줄거리로 보아서 수달과 들개는 "이것의 주인이 있습니까?"하고 세 번 물었으므로 훔쳤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고 또 이 이야기를 전하는 부처님도 그 점에 대해서 전혀 이상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리 인간들이 양심을 지키고 정의를 찾는 행위도 저 수달과 들개가 "이것의 주인이 있습니까?"하고 세 번 외친 후, 남의 것을 훔쳤으면서도 떳떳하게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점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인간들의 전쟁을 본다. 전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옳고 그름이 없다. 오직 힘의 우월만으로 옳고 그름을 뒷받침한다. 전쟁에 이기면 옳고, 지면 그르다. 이긴 자는 전혀 낯을 붉히지도 않고 의기양양하게 정의를 주장한다. 신문과 방송은 이긴 자를 찬양한다. 지난번,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중심으로 하여 벌어진 전쟁은 석유라는 자원을 확보하려는 서방국가들의 공공연한 침략행위라는 것을 알아보는 데 어렵지 않다. 국가 간의 전쟁뿐만 아니라 이 사회 내에서의 생존경쟁에서도 마찬가지다. 후진국에서 한때는 군인들이 총칼로 정권을 잡고 국민들을 윽박지르면서 국민의식이 썩었다고 호령했다. 부패로 가득 차 있다고 나무랐다. 많은 사람에게 핀잔을 주고 많은 사람을 가두었다. 그 군인들이 나라를 훔치고 정의를 주장하는 행위가 "이것의 주인이 없습니까?"하고 세 번 외치는 저 수달이나 들개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어떤 사람이 다른 이들로부터 경제적인 후원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잘못된 곳을 찔러 보았다. 잘못된 곳에서는 돈이 관련되어 있기 마련인데 그 돈 줄기를 계속 따라가 보았더니 그 돈이 바로 명함을 내놓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에게 흘러가는 것이었다.
수달이나 들개의 계율 지키는 방식의 삶은 어리석은 우리 마음, 우리의 생활 곳곳에도 스며있을 것이다. 수달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글의 주제인 토끼보살의 보시이야기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왔다. 자재천신이 탁발하는 스님으로 변장을 하고 숲 속의 네 짐승들을 찾았다. 수달·들개· 원숭이가 한결 같이 자신들의 식사 몫을 탁발하는 스님에게 드리겠다고 제의했으나 석가보살의 화신인 토끼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에게는 풀만 있으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스님의 공양으로 풀을 내놓을 수는 없어 토끼는 자기의 몸을 불에 구워 대접하려고 했다. 보통의 신심으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보시정신이다.
보시가 좋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공덕을 말하지 않고도 여러 가지 교리적인 이유가 있다. 현실의 집착과 미혹과 고통의 원인은 탐욕에 있다. 그 탐욕을 다스리는 길은 탐욕과 반대인 보시를 실천하는 길밖에 없다. 또 불교의 근본은 정신적인 깨달음이든지, 물질적인 것이든지 무엇이든 베푸는데 있다. 한곳에 물이 고여서 썩지 않도록 계속 흐르게 하는 데 있다. 해탈의 최대 장애물인 탐심을 제거하는 이유로 보나, 베푸는 원칙을 실천하는 것으로 보나, 보시는 불도를 구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모든 세상 사람의 믿음을 얻으려면 저 토끼처럼 남을 위해서 자기의 몸을 버릴 수 있는 사람 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믿음을 받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만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라 무량겁 을 거치면서 자신의 몸을 던져 보시하는 수행을 지침 없이 계속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