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성공회 사회복지선교의 약사
유낙준 신부 (대전 성남동 나눔의집 원장)
1. 1890. 9. 26 ∼ 1945. 사회복지사업
(1) 의료사회복지사업
한반도에 영국성공회에서 파견한 존코프주교가 인천에 도착한 후 1890년 10월 10일에 입원실과 진찰실을 갖춘 인천 최초의 서양식 병원(랜디스박사)을 개설했다.
인천낙선시병원(성누가병원, 1891), 인천 고아원(1892), 성베드로병원(1892, 장림성당), 산부인과와 소아과의 전문병원인 성마태병원(1895), 병원(1897, 강화), 약국(1898, 온수리), 애인병원(1909, 진천), 성 안나병원(1924, 여주), 병원(백천),
(2) 학교사회복지사업
영어학교(1892,인천), 성모마리아여학교(1898, 강화), 전도자학교(1905, 장림), 진명학교(1908, 수원), 진명학교(1908, 진천), 진명학교(1908, 온수리), 아내학교(1908, 목천), 신명학교(1908, 천안 병천), 노동야학교(1908, 진천 송현리), 공세리 여학교(1909, 용인), 북일학교(1921, 천안 부대리), 경성니콜라관(기숙사, 장림성당), 경성성모관(여성기숙사), 기숙사(강화, 진천, 연백, 인천), 서당(묵방리 외 18기관), 유치원(1922, 강화), 신명학원(광장리교회),
⊙ 학교설립의 3원칙;
1) 공립학교로부터 거리가 먼 지역에 있는 교회를 중심으로 초등교육을 실시한다. 2) 주임사제가 거주하고 전도구의 중앙교회가 있는 도시에서는 공립보통학교에 재학중인 시골에서 다니
는 남녀학생들을 위하여 기숙사를 마련할 것. 3) 서울에서는 고등보통학교나 법과전문대학이나 의학전문대학 입학자를 위한 기숙사를 주임사제의 지
도 아래 운영한다.
(3) 고아원
인천고아원(1892), 성베드로고아원(1895, 장림성당), 성피득보육원(1909, 수원),
(4) 여성사회복지사업
양덕원(1914, 서울 : 과부나 이혼한 여성들의 삶의 기반을 마련하는 공동체의 집, 이사벨 수녀)
2. 1960년대 사회복지사업
(1) 기아해방운동(빈민, 난민, 가난한 농민)
안중과 수원고아원 출신자들의 정착사업으로 세계적으로 펼치고 있던 기아해방운동을 지역사회개발사업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서해안간척사업으로 농지의 확보로 자활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다.
50가구의 피난민 가구들도 합세하였다(맥부인의 지원).
부산 반송동 달동네의 빈민가족지원사업으로 18가정이 마을회관을 지어 자립과 협동의 구조를 형성해갔다(맥부인의 지원).
계단식 농지 개간 등으로 난민정착사업으로 성공하였고 성공회 빈민선교의 효시가 되었다.
광혜원지역의 가난한 농민들에게 교회가 제공하는 미개간지를 개간함으로써 생활의 터전도 확보하며, 동시에 공동작업을 통해 공동체의 유대와 도덕성을 살리자는 성베드로 농장사업이다.
이와 유사한 사업으로 성어거스틴 농장(이천장령리지방)사업과 10가정의 정착사업으로 가나안마을운동(서울) 등이 있었다.
이처럼 기아해방운동은 빈민의 정착과 지역사회개발이라는 뚜렷한 목표 아래 외국의 지원아래 활발히 전개되었던 것이다.
60년대 초반의 이 사업은 교회의 사회참여의 영역을 확장시켰으며 단순한 구제사업에서 적극적인 참여로의 전환을 의미하였다.
(2) 노동자 사회복지사업
태백의 광산노동자복지사업(1961)은 산업화에 따라 인구의 집중이 일어나고 그 결과 비인간화 되거나, 비도덕화 되어가는 상황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광부들과 청소년들에게 상호 연대관계를 강화하고 자신을 지켜 나가도록 돕자는 것이다.
이 사업은 4개 지역에서 4-H구락부를 조직하여 ,정착사업을 추진하였다.
어린이보건진료와 광부의 자녀들이 공부하게 고등학교까지 설립하였다.
(3) 음성나환자의 정착촌건설사업
소록도에서 나온 30명의 음성나환자들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고 생활을 지원하면서 시작되었다(1954). 산과 12동의 주택을 건축한 성생원은 25세대 80명에게 자립의 기반을 갖춘 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교회는 농지를 구매하고 주택 등을 건축한 다음 이 재산을 주민위원회 공동으로 소유토록 하면서 자립의 기반을 마련하도록 지지한 것이다.
그래서 농업과 축산업으로 자립마을이 되었다.
성생원은 나자로마을과는 달리 주민자치공동체를 이루는 기본정신 아래 독립적인 운영을 주민 스스로가 이어온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3. 1970년대부터 사회복지사업
(1) 노동자, 청소년사업
⊙ 성베다관(1960, 서울)은 진보적인 대학생들의 집회장소와 청소년을 위한 야학교가 활발히 운영되었다. ⊙ 영등포산업복리센터(1967)는 근로자를 위한 잡지 "새싹"을 발간함과 동시에 근로자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행하였다. 특히 1973년도에는 근로여성을 위한 야간학교의 설립 등 노동자교육과정을 강화하였다. ⊙ 상록재건학교(1972, 대구 평리동)는 불우한 청소년들을 위한 야간학교였다. ⊙ 성노의집(1976, 마산)은 근로여성들의 합숙시설로 노동자 복지와 그리스도적인 삶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 선원선교원(1977, 부산)은 선원들의 복지사업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을 수행 한다. ⊙ 성모병원(1970)은 병천교회에서 지역주민복리사업의 일환으로 극빈자 무료진료 사업을 한화그룹의 지원과 미국의 지원으로 8년간 운영되었다
(2) 장애인 사회복지사업
성베드로학교(1973, 서울, 정신지체아), 성 안나의 집(1976, 인천, 양로원), 강화 안나의 집(1981, 온수리), 성공회리코텍( 1987, 서울, 정신지체 장난감도서관), 보나의집(1990, 청주, 정신지체아), 장애인공동체 우리마을(1999, 강화)
4. 사회복지관
정부의 지원하에 빈민층 집중지역에 세워진 사회복지관은 종합적인 사회복지형이다.
현재 7개의 일반적인 5개의 사회복지관과 1개의 장애인복지관과 1개의 노인복지관을 운영하고 있다.
5. 교회·사회복지
⊙ 샬롬의 집(1993. 남양주)은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피난처로 필리핀 사제가 직접 상주하여 외국인과 관계를 수행하고 있다. ⊙ 드보라의 집(1997, 광혜원)은 가정폭력 피해자 숙소로 단기보호와 상담사업을 벌이고 있다. ⊙ 구미 선교요한센터(1994, 구미)는 호스피스사업을 수행하며 공동체인 정호의 집을 운영중이다. ⊙ 온양 사랑의 선교회(온양)는 결식아동 및 소년·소녀가장의 결연사업과 실직 노숙자 사업을 운영중이다.
6. 나눔의 집
1986년 10월에 상계동 나눔의 집을 시작으로 삼양동 나눔의 집(1988, 서울), 봉천동 나눔의 집, 인천의 송림동 나눔의 집과 수원 나눔의 집이 서울교구에 있으며,
천안 성정동 나눔의 집(1990)과 천안 나눔의 집, 성남동 나눔의 집(1996, 대전), 전주사랑의 집, 원주 나눔의 집은 대전교구에 있고,
반송동 나눔의 집이 부산에 있다.
나눔의 집은 달동네에 있는 가난한 이들의 집이다.
이 운동은 주로 해외원조에 의지하여 발전했던 개신교 도시빈민선교 운동과는 달리 처음부터 마을의 공동체와 교회가 하나의 연대감을 가지고 일으킨 상호 나눔과 함께 사는 삶의 실천이라는 접근방법을 적용시켰다.
하느님 나라운동과 주민운동과 사회복지운동이 결합되어진 것이 나눔운동이다.
달동네공부방, 주민자치위원회, 생산자협동조합, 좋은마을만들기운동, 건강무료진료소, 야학, 자활지원센터, 가출청소년쉼터, 노숙자 쉼터(남성, 가족), 자활공동체, 장애인재활직원센터, 실업자사업단, 고용안정센터, 청소년취업센터, 가족치료상담실, 위기 가정결연사업, 생산자협동조합협의회, 장기수의 집, 북한아동돕기운동, 고령자협동조합, 주민금고 등 소공동체로 지역주민과의 결합력을 강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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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대한성공회 사회복지 100년의 역사를 정리한 논문을 참고하세요. 1891년의 랜디스 박사의 '곰새끼의집(고아원) 부터, 마들복지관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