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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ㆍ일반부 - 장원>
편 지
윤 효 정(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3학년)
치마폭의 햇살 둥글게 말아 올리며
아득한 기다림에 옹이진 문을 두드리면
가슴에 외길 한 줄기 깊숙이 등불을 켠다
어둑한 길 위에 뒹구는 낙엽소리
어깨 미는 밤 별들 따라가다 보면
새벽을 어루만지는 가을안개가 더디다
그 잠든 일상에 얼굴 하나 떠 오른다
비워낸 질그릇의 쪽빛하늘 닮은 물기
이제사 숨겨진 사랑 고백하고 싶어진걸까
들녘을 건너온 풀잎들의 고른 숨결이
이마에 걸려있는 산그림에 와 춤을 추고
잘 익은 편지글 향기 칸나보다 붉게 입술을 적신다.
<대학ㆍ일반부 - 차상>
단 풍
김 수 정(울산시 남구 신정1동)
“아이고, 억울해서 우예 가노. 우예.”
늙은 어미의 피를 토하는 통곡은 악마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는 불 앞에서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한치의 양보도 허락하지 않는 죽음의 신은 사촌 오빠의 마흔아홉 서러운 삶을 몇 줌의 재로 돌려주며, 제 할일을 마쳤다는 말 한마디없이 차갑게 멀어져 갔다. 정말 꿈이 아니었을까? 몇 번이나 볼을 꼬집고 손등을 때려 보았지만 분명한 사실이었고, 오빠는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야속하게 저승으로 향하는 배를 혼자 타고 말았다.
바닥에 쓰러져 자식을 가슴에 묻는 고모를 차마 볼 수가 없어 밖으로 나왔다. 언니가 망자의 옷과 소지품을 태우며 서럽게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옷에서 나오는 냄새에 짙은 슬픔이 묻어 있었는지 코끝이 아려오며 눈이 흐려졌다. 이렇게 살고 갈 것을 왜 그리 아등바등 독하다 소리를 듣고, 짠돌이라 손가락질을 받았는지……
늦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며 작고 새까만 피부의 여자와 함께 인사를 왔던 날 오빠의 얼굴은 봄 햇살처럼 따스하고 환했다. 마흔의 결혼이라 친척들도 덩달아 신이 나 행복하라며 진심으로 축하했던 결혼식 날은 동네잔치로, 어깨춤이 신명났던 즐거움으로 기억이 난다. 배움이 부족하고 가난한 살림에 가정을 꾸리면 고생만 시킬 것이라며, 어떻게든 기반 잡아서 여자를 데려온다던 다짐을 지켜낸 얼굴에는, 자랑스러움이 더해져 얼마나 늠름하고 씩씩했었는지 모른다. 그 후에 첫아들을 1년만에 얻고는 행복에 겨워 돌잔치를 하던 모습에는 여름 플라타너스 나무보다 더 싱그럽고 푸른 희망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이제 사는 맛이 난다며 열심히 한 보람이 있다며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던 오빠. 우리는 살아가는 일들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를 함께 나누며 좋아했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 들려온 소식은 아내가 노름에 손을 댔다는 이야기와 밥도 먹기 어려워졌다는 안타까운 전갈이었다. 자취가 사라진 바람처럼 연락이 끊어진 그를 나는 죽음의 들판에서 다시 만났다. 왜 연락이 없었냐고 물어볼까 겁이 났던 걸까! 오빠는 사진 속에서 아무 말도 묻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살던 노숙자가 죽어도 이리 허허롭고 황량하지는 않으리라. 쓸쓸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영안실을 지키는 사람은, 자신에게 세상을 보여준 어미 단 한 사람 뿐이었다. 사랑하던 아내도 목숨이라던 자식도 먼지가 되어 날아갔는지 흔적조차 없었다. 인간의 삶이 이리도 아프고 처절하게 고통일 수 있음을 나는 핏줄로 맺어진 사촌 오빠의 영정사진에서 보았다. 너무 말라서 쥐면 바스락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릴 듯한 낙엽처럼, 물기없이 변해버린 모습이었다. 핏빛으로 물들어 가을을 심장으로 품었을 당신이 왜 늙은 박동이 멈춘 낙엽으로 세상에서 잊혀져야만 하는 것인지… 억울하고 분했다. 살아 숨쉬는 모든 것들에게 괜히 분노를 퍼부으며 심술을 부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삶의 처연한 진리의 대답이었다.
오빠의 여자는 돈과 도박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어디론가 사라졌고, 오빠의 아들은 그 엄마가 데려는 갔는데 어디에 맡긴건지 아직 행방이 묘연하다. 얼마나 가슴 졸이고 속이 내려 앉았으면 담배도 안 피우는 사람이 입원 일주일만에 폐암으로 생의 고단함을 접었을까! 무섭다. 사람과의 인연이 때로는 인생의 종착역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옷을 태우고 있는 언니 옆에 털썩 주저 앉았다. 한사람이 그래도 오십년 가까운 생의 자취를 남겼는데 남은 것이 라면박스 두개가 전부라니 기가 막혀서 미치겠다. 타닥타닥 옷이 타들어 가고 연기가 하늘로 올랐다. 우습다. 붉은 불꽃이 타는데 흰 연기가 날아 오르니. 아마도 삶은 붉음으로 타올라 흰색의 연기로 사라지는 이치임을 우리만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가만히 살펴보니 어디서 소식을 듣고 문상을 왔는지 빨간 단풍잎 몇 개가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 있었다. 옷 속에 숨어 있다 불길에 함께 타고 있는 단풍잎이 마지막 여행의 동반자가 되었으니 그리 섭섭하지는 않으리라.
나는 주변에 떨어져 있는 단풍잎을 주워 와 오빠의 옷 위에다 얹었다. 오빠의 가을은 심장위에 단풍을 얹은 곱고도 아주 서러운 기억으로 나에게 각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해마다 단풍이 물드는 계절이 오면 죽음보다 더 아팠던 꺼져가는 심장도 겨울이 다가오면 평온해 진다는 사실을 먼저 기억하리라. 우리가 흔히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그 속에는 단지 죽음을 가장 한 채 기다리는 수많은 생명이 다시 생명의 봄을 소망하고 있음이 생명의 순환이기 때문이다. 단지 휴식의 계절이지 죽음의 계절은 결코 아니다. 오빠의 죽음 역시도 이승에서의 삶이 겨울이었을 뿐 저승에서는 아마도 지금은 새로운 봄을 이제 막 시작한 솜털이 뽀송뽀송난 새싹이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슬픔보다는 삶의 연장선을 출발하는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다.
언니의 어깨에 기대 단풍잎을 코에 대어 보았다. 뭉클하고 심장을 부여잡는 오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정아,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지금 이만큼으로도 너무나 충분히!”
그렇다. 내가 가진 딱 이만큼의 행복. 손에 든 단풍만큼의 행복.
나는 꺼져가는 불씨를 뚫고 하늘로 승천하는 흰 연기를 보며 가을 단풍보다 붉고 뜨거웠던 오빠의 사랑과 행복을 생각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일반인 - 차상>
단 풍
서 원 호(충북 청주시 흥덕구)
찬바람에 전해지는 그의 향기
그리움에 멍든 가슴을 움켜지고
붉은 울음을 토해 내었다
인연타래 머리칼을 눈물로 녹여내고
손 흔들며 속세를 떠나라던 당신
거부할 수 없었던 운명이었기에
내 가슴에는 핏물이 고인다
뒹구는 슬픔 모두 거두어
마음 그릇에 눌러 담으니
주체할 수 없는 서러움에
온 몸은 붉게 물이 든다.
<일반인 - 차하>
편 지
이 강 홍(충북 청원군 내수읍 도원리)
시월의 끝자락에서 남하하는 단풍을 따라 나선 여행길은 그리운 벗들에게 우편엽서 몇 장 보내는 걸로 묵은 때를 씻으며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비치는 가을 풍경을 바라보노라니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벌써 십년 넘게 잊혀졌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 있었던가 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범죄와의 전쟁으로 교도소가 초만원 이었던 90년도 서울 구치소에서였다. 수갑을 차고 온몸이 묶인 그는 가슴에 붉은 수번을 단 사형수였다. 소위 최고수라 불리는 사형수와 좁은 방에서 지내는 일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죽을 놈이 무슨 짓인들 못하겠냐는 생각에 교도관들조차 피하는 그에게 난 담배를 권했다. 교도소에서의 담배는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 이었으니까 말이다. 말없이 담배를 나눠 피우며 우린 서로에게 의미심장한 웃음으로 휴전을 인정 했다.
그는 지은 죄야 어떻든 고운 심성의 소유자였다. 남들이 꺼려하는 설거지나 빨래를 도맡아 하기도 하고 동료들의 항소 이유서를 대신 써주는 자상함도 보였다. 나보다 한살 아래인 그와 급격히 가까워 졌다. 서로의 집안 얘기를 하며 가족에게서 온 편지를 매일 바꿔 읽기도 했다. 그의 부인에게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는 무덤에라도 따라가겠다는 애절한 사연은 모든 이의 콧날을 시큰하게 했다. 사형수에게는 내일이 없다. 옷이나 담요나 그들은 내일을 준비하지 않는다. 그냥 오늘의 삶이 있을 뿐이다. 언젠간 불려 나가서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면회를 갔다 온 그가 침울해 한다. 오늘 세명의 사형이 집행되었다며 울먹이는 그의 어깨 뒤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넥타이공장 이라고 불리는 사형장에서 유품을 태우는 연기였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말로 위로를 해줄 수 있을까. 그 어떤 언어도 그 앞에서는 유치한 변명일 뿐이었다. 그에게 슬픔이 찾아왔다. 무덤에까지 따라 가겠다던 그의 부인은 살랑 이혼 통지서만 남긴 채 떠나갔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하루도 빠짐없이 면회 오는 노모와 나의 격려로 차츰 잊었던 말도 하게 되고 음식도 입에 넣었다. 김치 한 조각이라도 더 먹이려고 했던 나의 마음은 우정이었을까 동료애였을까
얼마 후 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출소하게 되었다. 출소하는 기쁨 대신 그와 헤어지는 게 아쉽기도 하고 또 미안했다. 절대 찾아오지 말라는 그의 부탁을 무시하고 난 진천에서 꽤나 먼 서울구치소에 면회를 다녔다. 훨씬 밝아진 표정에 마음이 놓였다. 이틀이 멀다하고 그는 내게 편지를 보냈다. 불교에 심취해있다고 했다. 그의 편지를 읽다보면 순진한 동자승처럼 맑은 그의 눈매가 떠올랐다. 그러던 중 문민정부가 탄생했다. 때마침 불어닥친 사형폐지제의 거선 여론으로 전국의 사형수 가족들은 희망에 들떠 있었다. 감형되어 사형되지 않을거란 기대감으로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방송도 끊이지 않았다.
화창한 봄날 이었다. 면회 신청을 하고 기다리는데 안내 방송이 나온다. 2073 번은 이감 가서 면회가 안된다는 내용이었다. 다음에 이감 간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교도소 문을 나서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활짝 핀 연산홍은 어쩌자고 저렇게 만발한 걸까.
이튿날 조간신문에서 새 정부 출범 후 사형 집행된 16명의 명단에서 어렵지 않게 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기증이 몰려왔다. 아침 먹은걸 죄다 토했지만 눈물로 나오지 않았다. 그랬구나. 어제 그렇게 화창 하더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는 날씨로는 더없이 좋은 날씨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원하는 대로 이름모를 산자락에 꽃으로 피어났는지도 모른다. 어제 그처럼 화사했던 연산홍이 그의 넋인지도 모른다.
난 가끔씩 그가 보낸 백여통의 편지를 꺼내어 읽어본다. 빛바랜 봉합 엽서를. 우편번호 437-120 경기도 의왕시 포일동 산18번지 서울구치소내 김OO보냄.
“오늘도 이형 생각을 많이 했답니다. 꼭 행복 하셔야 해요.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나 많잖아요. 제 몫 까지 살아 주셔야 돼요”
봉합 엽서를 손에 쥐고 난 바보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고 있었다.
<일반부 - 차하>
편 지
노 경 숙(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마흔 해의 삶을
축성해 놓은 분신 하나가
상자 속에서 살고 있다
사진보다 더 선명한
청춘의 흔적
바람과 꽃잎과
끓는 피가 살았던
내 그림자 속의 대지는
평온하다
일렁이는 삶 사이로
희미한 여린 고백
아린 가슴에 새겨졌을
지문 같은 추억 한 페이지
숨쉬고 있다
빛바랜 편지가
세월을 물들여
뜨락을 비추고 있다
해바라기 원판을 따라
둥글게 마음 빚으며
오늘도 나에게
평화를 배달한다.
<일반부 - 차하>
단 풍
윤 상 희(인천시 남동구 간석 3동)
엄마의 머리 위로 단풍이 내려앉았다. 엄마는 아침마당을 보며 한 쪽에 밀어놓았던 옷가지를 찬찬히 만지기 시작한다. 바늘 구멍 사이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 주변이 바르르하고 흔들렸다. 실을 몇 번이고 침으로 가다듬더니 이내 그 작은 구멍에 넣어버린다. 평생 집안 일만 하고 사셨던 분인데 어째 요즘에는 신통치가 않았다. 행동이 워낙 부지런 하시는지라 엄마는 집을 제 자식마냥 평생을 가꾸셨다. 집안 살림 하나하나에도 이 집의 혼이 깃든 것이라며 절대로 하찮게 여기지 않으셨다. 집안 곳곳 그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나붙었고 나는 그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며 지금껏 살아왔다.
그랬던 그녀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딸 자식이라면 꿈뻑 죽었던 분이셨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짜증만 토해내는 노인이 되고 계셨다. 온화한 미소로 이 집을 따뜻하게 보듬던 그 손길이 사라지자 이 집도 그리고 내 마음 속에도 쓸쓸함 만이 자리 잡았다.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집에는 먼지와 그녀의 머리카락이 어울려 굴러다니고 있었으며 쾌쾌한 냄새가 깊숙이 스며들었다. 변해버린 엄마의 냄새였다.
그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마치 저 뒷산에 단풍이라도 드는 모양으로 서서히 물들기 시작했다. 엄마의 다풀어져버린 파마 머리에 허연 줄기들이 피어났고 산불처럼 번지었다. 엄마의 머리 위로 붉은 황혼의 노을 빛이 손을 뻗치고 있었음을. 소리없이 다가온 그 세월의 손길 앞에서 그녀도 나도 옴짝달싹 하지 못한 채, 그 시간들만 원망하며 먹먹한 가슴 한 켠을 부여잡았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봄이, 여름이 되고 또 가을이 되어 겨울로 달려가는 것이라 인생도 그러하였다. 그 화살같이 달려오는 녀석을 막을 도리는 없는 것이기에 단풍이 되어버린 엄마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단풍은 참으로 사람을 미치게 했다. 그 푸르름이 숨바꼭질 하듯 숨어버리고 손끝, 발끝부터 불긋한 변화가 따라붙는다. 다 무겁고 귀찮은 일들 뿐이라며 단풍은 해를 피해 고개를 떨구지만 이미 빛깔은 제 몸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버린 터이다. 떨쳐버리고 싶지만 누구나 그렇듯 시간 앞에서 변해가는 자신을 답답하게 지켜봐야 하는 것이니, 이 단풍같은 인생이 한없이 서러워져 온다.
낙엽이 되어 떨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생을 돌아보며 단풍은 찬란한 불빛을 켜 올린다. 푸르름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황혼의 모습이 그대로 그 아이 손바닥만한 것에 녹아버리니 참으로 슬프다.
엄마는 우울하다는 말을 제 습관이라도 되는지 중얼거렸다. 머릿속에 엉켜버린 회로만이 가득했고 깜박깜빡 제 것을 잊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의 전화번호며 주소며 심지어 이름까지. 그놈의 붉은 기운이 내 엄마의 머리 위로 나앉아서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애써 벌건 눈두덩이를 손으로 훔치며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그녀의 생을 지켜보았다.
쓸쓸한 거리에 저물어진 낙엽들이 나뒹굴고 그를 치우는 미화원들의 손길이 재빨라지기 시작했을 무렵, 내 어머니의 단풍도 바스락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바싹 마른 그녀의 몸처럼 툭 건들기만 하여도 부서질 것 같은 바싹 타버린 단풍이었다.
평생동안 푸르름은 안고 내 곁에 든든한 나무로 서 계실줄만 알았던 내 어머니. 마지막 가시기 전, 흰 수건에 토하여 가신 피가 마치 흐드러지게 핀 단풍을 보는 것 같아 한동안 그 피묻은 수건을 놓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만 보내드려야 할때가 온 것 같다.
환경미화원의 쓰레기받이 속으로 쓸려 들어가는 단풍의 마지막 모습을 나는 지켜보며 엄마의 시신을 태우러 화장터로 가는 중이다. 창 밖 너머로 아직 채 저물지 않은 단풍이 중간중간 희미한 빛을 켜 올리고 있었으나 나는 아직 생의 마지막 끄트머리를 부여잡은 그것들을 보며 한없이 서러워져왔다.
엄마의 시신을 실은 영구차는 그렇게 낙엽진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핏기없이 늙어버린 단풍잎들이 쓸쓸하게 영구차 뒤로 나붙었으나 이내 청소부 손에 이끌려 쓰레기 더미 속에 정처없이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