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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서(醫書)
치종비방(治腫秘方)
조선 명종 때 임언국(任彦國)이 지은 외과전문 의서(醫書). 1559년(명종 14)에 금산(錦山)에서 간행되었다.
전라도관찰사 안위(安瑋)의 서문에 의하면, 종기(腫氣)치료의 명의(名醫) 임언국의 유방(遺方)을 자신이 구득(求得)하여 금산군수에게 위촉하여 간행하게 한 것이라고 한다.
종래와 같은 고식적 침술에 의하여 종양을 절개하는 것이 아니고, 현대의 외과수술을 연상할 수 있는 관혈적 절개요법(觀血的切開療法)을 많이 응용해온 것을 볼 수 있다.
종양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특색있는 외과처방서로, 현재 일본 궁내청서릉부(宮內廳書陵部)에 비장되어 있고, 영인본이 장서각도서에 있다.
≪참고문헌≫ 韓國醫學史(金斗鍾, 探求堂, 1979)
치종비방[ 治腫祕方 ]
조선 명종 때 임언국(任彦國)이 지은 종양 전문치료의 외과처방서.
1559년(명종 14)에 전라도 금산(錦山)에서 간행했다.
전라도관찰사 안위(安瑋)의 서문과 5정(五)의 증상, 치료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저자의 유방(遺方)을 안위(安瑋)가 구하여 금산군수에게 위촉·간행한 것이라 한다.
전문치종의는 임언국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의 유저로는 〈치종비방〉·〈치종지남 治腫指南〉이 있다.
<치종비방〉에는 농양(膿瘍)을 화정(火)·석정(石)·수정(水)·마정(麻)·누정(縷)의 5가지로 나누어 그 증상과 치료법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종래의 고식적인 침술의 여기(餘技)로 쓰이던 요법과는 달리 현대의 외과수법과 같은 관혈적절개요법(觀血的切開療法)을 응용하여 종창을 치료했다.
또 각종 질환에 대한 침자절개법(針刺切開法)을 해설하고 있다.
치료법에는 염탕침인법(鹽湯沈引法)·염탕목욕법(鹽湯沐浴法)이 있는데, 토란고(土卵膏)를 바르고, 천금누로탕(千金漏蘆湯)을 섬회(蟾灰)에 섞어 복용하기도 한다.
이는 소독살균요법과 함께 침으로 수술 치료하는 특이한 방법이다. 특히 치종결렬법은 우리나라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한 것으로 외과적인 면에서 중시해야 할 것이다.
현재 일본 궁내청서릉부(宮內廳書陵部)에 비장되어 있고, 영인본이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급양방[ 救急良方 ]
조선 명종 14년(1559)에 안위(安瑋)가 편찬한 의서(醫書). 1권 1책.
조선 중기에 내의원에서 펴낸 의서(醫書).
이 책은 ≪치종비방 治腫秘方≫ 뒤에 붙여 한 책으로 간행하였다.
권말에 적혀 있는 1559년(명종 14) 안위(安瑋)의 발문에 의하면
좌상(左相)이 내의원제공(內醫院諸公)을 시켜 구급에 필요한 모든 방문들을 수집, 선출한 것이다.
좌상이 호남관찰사로 있을 때 병에 걸려 양의(良醫)를 구하지 못하였던 경험을 살린 것으로 보인다.
이 방서는 병증에 따라 약방(藥方)을 생각하여 약을 조제할 것을 명하였는데
지극히 간요(簡要)하고 신효하여 이 비방을 개인이 소유하기에는 너무 아까워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하기 위하여
≪치종비방≫의 뒤에 붙여 간행한 것이라 하였다.
일본 궁내성도서료(宮內省圖書寮), 교토대학(京都大學) 후지가와문고(富士川文庫), 미키문고(三木榮文庫) 등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韓國醫學史(金斗鍾, 探求堂, 1979)
≪참고문헌≫ 朝鮮醫籍考(三木榮, 中外醫事新報, 1932.11.∼1935.1.)
구급양방(救急良方)
조선시대(명종조)때 안위가 펴낸 식체(食滯), 상풍(傷風), 상한(傷寒), 곽란(霍亂), 변비(便秘) 등에 관한 처방을 기록하고 있는 의방서.
모두 4매로 되어 있는 간단한 책이다. 이 책은 안위가 전라도 관찰사로 발령이 나자 당시 좌의정이 안위를 위하여 내의원(內醫院)의 의사(醫師)들로 하여금 여러 처방 중에서 뽑아 모으게 하였는데, 이것을 1559년 안위가 『치종비방(治腫秘方)』을 간행할 때 뒤에 합본한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식체(食滯), 상풍(傷風), 상한(傷寒), 곽란(霍亂), 변비(便秘) 등에 관한 처방이다. 안위가 적은 발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좌상(左相)이 내의원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처방을 강구케 하여 선별하여 고른 것들이다. 내가 호남관찰사가 되어 질병을 얻으매 좋은 의사를 얻지 못한 것을 슬퍼한다. 증상을 바탕으로 하여 처방을 고찰하고 처방을 바탕으로 하여 약을 명한다. 본 방서는 지극히 간요하고 신효하여 감히 사사로이 비밀스럽게 감추지 못하겠기에 『치종비방』과 합해서 간행한다.”
이 책은 증상을 쓰고 그 뒤에 치료법을 기술하고 있다. 기록된 내용은 상풍한삼일이전(傷風寒三日以前), 심복협통지제(心腹脇痛之劑), 산기상충지제(疝氣上衝之劑), 요슬산통지제(腰膝酸痛之劑), 천수지제(喘嗽之劑), 복창지제(腹脹之劑), 노열곤권지제(勞熱困倦之劑), 식체불하지제(食滯不下之劑), 곽란토하지제(霍亂吐下之劑), 낙상지제(落傷之劑), 대변비삽지제(大便秘澁之劑), 소변불통지제(小便不通之劑), 정종(疔腫), 육종(肉腫), 이질지제(痢疾之劑), 중서지제(中暑之劑) 등이다. 각 제목마다 처방을 한두개 간결하게 써붙여 놓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데, 이것은 이 책의 제목처럼 이 책이 구급에 쓸 수 있는 좋은 처방을 한두개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 구급치료가 필요한 증상을 어떤 것으로 보고 있는가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인용하고 있는 처방들이 단순한 단방약이 아니고 복합처방이고 가감법이 복잡한 내용도 많이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조선의 약제 수급상황이나 의료 수급상황이 상당히 전문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자료이기도 하다.
[고의서산책245]
치종비방 治腫秘方
조선 자생 외과수술법의 흔적
일반적으로 한의학에는 아예 외과수술법이 없었거나 이미 오래 전에 소멸되어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비록 주류는 아니었지만 조선 의학에도 외과술에 능한 한 무리의 의인들이 계파를 이루어 전수되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대표적인 실례 중에 하나로 任彦國과 『치종비방』을 들 수 있는데,
이 책은 1559년(명종 14) 전라도관찰사였던 안위安瑋(1491~1563)가 錦山郡守 李億祥으로 하여금 간행케 한 것으로 아마도 조선의 외과 전문서로는 가장 빠른 시기의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듯 주변에 남아 있는 저술이 적고 그 술법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워낙이 남겨진 것이 많지 않은 까닭이지만 그 보다도 침을 놓거나 칼을 사용하는 행위 자체가 유교적 사회풍토에서 천박한 일로 간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조선 500년 역사를 통틀어도 이 책의 원저자인 임언국과 훨씬 후대의 白光炫을 비롯한 소수만이 외과치법을 사용하여 이름이 드러났을 뿐, 대부분 민간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기록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간 이 자리를 통해서 소개한 책들이 꽤 많이 늘어나게 되었지만 외과전문서로는 이미 오래전에 게재한 『醫腫金鑑』이 유일하다. (13회 사라진 조선의 外科術 - 1999. 10. 4일자)
이 책은 그 뒤 한 동안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가 그의 제자들에 의해 펴낸 것으로 보이는 『治腫指南』이 일본에 전해졌다. 이것의 원본은 국내에 남아 있지 않고 임진왜란 때 약탈당한 것을 江戶幕府의 고증의학자 丹波元簡이 필사한 사본이 일본의 京都大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종~중종 재위 초년부터 治腫廳이 설치되어 있었고 임언국의 치료법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채록되어 훗날 현종 때 治腫敎授를 지낸 백광현에게 이어져 그가 미천한 신분에서 일약 鍼醫로 발탁된 것으로 보아 그 기법이 민간에서 면면히 전해지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治腫의 명의로 이름난 任彦國은 전라도 井邑사람으로 나이 드신 어머니의 종기를 치료하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하다가 靈隱寺 老僧에게 침술의 묘법을 배워 많은 사람을 살렸다고 전한다. 그런데 원래 이 책에는 內醫院에서 펴낸 『救急良方』이 함께 합본되어 있었고 板式도 흡사하여 함께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 두 책의 상관관계와 간행을 주도한 안위(安瑋), 안현(安玹) 형제의 역할에 대해서는 진즉 이 자리를 통해 소개한 바 있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177회 兄弟同榜한 전라감사의 民生處方 / 2003. 10. 27일자)
내용을 살펴보면 정腫을 크게 火정, 石정, 水정, 麻정, 縷정 5가지로 분류하고 증상과 치료법을 실어놓았다. 그가 남긴 치료법의 대체는 ‘用針而決出惡血, 治藥而消去毒氣’로 요약할 수 있다. 즉, 針으로 종기를 破刺하여 惡血을 제거하고 약으로 腫毒을 해소한다는 것으로 오늘날 觀血的 手術法에 대비해 볼 수 있다. 또한 외과적 처치법에 병용하여 소금물을 끓여 환부를 담그거나 바닷물(東海水)로 종기를 씻어내는 鹽湯沈引法을 사용하였다. 아울러 토란[土芋]을 생으로 갈아 환처에 붙여 열기를 가라앉힌다고 했다. 저자 자신도 風腫을 얻어 6년이나 고생했는데, 이 방법을 쓴 후 다시 재발하지 않고 깨끗이 낫게 되었다는 후일담도 적혀 있다.
이외에도 千金漏蘆湯과 蟾灰, 蛇매草와 蒼耳를 넣고 끓인 鹽湯沐浴法 등을 수록하였다.
이 같은 종기치료법은 앞서 『救急良方』 丁腫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사방에서 十字로 침구멍(針道)을 뚫어 惡血을 빼내고 蒼耳鹽湯으로 씻은 후 쇠비름[馬齒현, 마치현]을 찧어 붙인다고 하였다.
縷丁의 경우, 이전에는 예가 없던 것으로 辛卯年(1531년, 중종26) 이후 수만 명을 치료했으나 1, 2 케이스만 보았을 뿐이라며 스스로 새로운 병명을 붙여놓은 저자의 임상경험의안까지 들어있다. 우리 의학사에서 사라진 전통방식 외과처치법의 흔적이 그려져 있어 애틋한 감회를 느낄 수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 상 우
[고의서산책177]
구급양방 救急良方
[고의서산책177] 救急良方
兄弟同榜한 전라감사의 民生處方
이 책은 본문 4장에 발문 1장으로 이루어진 소책자로 모두 합해야 5장 밖에 되지 않지만 그 의미는 매우 크다.
지은이가 따로 명시되어 있지 않고 다만 안위(安瑋)의 발문에 의하면 “좌의정이 내의원(內院)의 의원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처방을 찾아내어 짓게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어 그는 자신이 “전라관찰사(按湖南)로 나가면서 이 책을 지니고 내려가 처방을 뽑아 써보니 간편하면서도 신속한 효과를 보았으므로 혼자만 감춰두고 보기 아까워서 治腫方의 뒤에 붙여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눠보고자 간행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위의 발문에 의하면 사실상 발행을 주도한 안위(安瑋)가 治腫方을 간행할 때 이것을 뒤에 붙여 함께 찍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치종방’이란 「治腫指南」이 아니라 당시 井邑에 살면서 腫氣醫로 명성을 떨치던 任彦國의 「治腫秘方」을 말하는 것으로 이 책과 版式이 동일하며 전라도 錦山 땅에서 판각하여 간행한 사실이 서문(安瑋序)에 전하고 있다.
안위(安瑋)(1491~1563)는 문신으로 의원은 아니지만 1542년 충주목사로 있으면서 근검절약하여 기근으로 어려워진 농촌을 안정시키고자 救荒에 힘써 뛰어난 실적을 거둔 바 있으며, 1554년 淸洪道관찰사, 1558년에는 전라도관찰사로서 민정을 주관하였다.
그는 또 형조참판을 거쳐 1560년에는 병조판서에 올라 이후 오랫동안 국방을 주관하면서 兵學에 재능을 보인 인물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그가 지방직에 있다가 중앙의 요직에 오르기 전의 중간시기에 펴낸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그의 동생 안현(安玹)은 의약에 조예가 깊은 인물로 일찍이 중종 말년에 임금이 숙환으로 고생할 때 承旨로서 시종하였으며 內外醫局을 통솔하였다.
그는 三司의 要職을 두루 거쳐 전라도관찰사를 지냈으며, 한성부 판윤과 이조, 병조의 판서직 등 내외직을 두루 거쳐 淸白吏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이미 1541년 慶州府에서 「구仙活人心法」을 간행하였는데, 이때에 이미 朴英과 자신의 경험방을 뒤에 붙여 펴낸 바 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현직에 있던 좌의정(今左相)이 내의원 의원에게 펴내게 한 책이라 했는데, 안현은 1558년에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했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활인심법」에 덧붙여 놓은 경험방 ‘香유散’이 이 책에서 아주 요긴한 처방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뒤 사연이 이렇다면 안위는 동생이 펴낸 醫方을 가지고 道伯으로 내려가 민정에 활용했던 것이고 이듬해에 다시 자신이 발굴한 임언국의 「치종비방」을 인쇄하면서 그 때의 경험을 되살려 요긴한 내용을 덧붙여 펴낸 것이다.
이들 형제는 1521년 別試文科에 함께 급제함으로써 일찌감치 文名을 드높였고 서로 우의가 돈독하여 형을 마치 아버지처럼 공경하였다고 하니 대단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본문의 내용은 구급성 질환의 대표적 증상에다가 간단한 변증을 거쳐 잘 알려진 처방과 가미법을 요령있게 제시해 高名한 의원을 찾지 않더라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다.
그런데 다음의 수록내용을 보면 응급을 요하는 병증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민간에서 흔히 발생하는 상습성 질환에 속하는 것을 알 수 있다.
傷風寒三日以前, 心腹脇痛之劑, 疝氣上衝之劑, 腰膝酸痛之劑, 喘嗽之劑, 腹脹之劑, 勞熱困倦之劑, 食滯不下之劑, 유亂吐下之劑, 落傷之劑, 大便秘澁之劑, 小便不通之劑, 丁腫, 肉毒, 痢疾之劑, 中暑之劑.
이 중 香유散은 유亂吐下와 痢疾, 中暑症의 良劑로 소개되어 있다.
두 사람은 모두 良相이자 良醫를 지향했으며, 형제간의 우애가 어우러진 이 책은 民草의 病苦를 덜고자 펴낸 民生救濟方이라 하겠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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