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쥬네
프랑스의 소설가·극작가·시인. 다채분방한 언어와 문체로 악과 성성 등의 가치 전환을 표현했으며 전위작가 중에서도 특이한 세계를 확립하였다. 《꽃의 노트르담》, 《발코니》등을 포함한 문제작, 이색 작품들을 만들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아버지와, 가브리엘 쥬네라고 이름만 알려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공립 산원(産院)에 유기(遺棄)하였기 때문에 일찍부터 빈민 구제시설에서 보육되었다. 7세 때 프랑스 중앙 산악 지대의 북동부 르 모르방 지방 농가의 양자로 입양되었지만, 10세 때 절도죄로 소년원에 수용되었다. 각지의 소년원을 전전하는 사이 탈주하여 외국을 방랑, 독일에서는 남창, 에스파냐에서는 거지,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절도, 네덜란드에서는 마약 밀수를 거드는 등 밑바닥 생활을 하였다.
23세 때부터 여러 번 절도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그때마다 프랑스 국내 여러 형무소에서 복역하면서 시집 《사형수 Le Condamné mort》(1942), 소설 《꽃의 노트르담 Notre-Dame des Fleurs》(1944)을 비밀 출판하였다. 1947년 절도죄로 종신 유형이 선고되자, 사르트르·보부아르·콕토 등이 대통령에게 청원, 형의 집행이 유예되었다.
1942년경에 작가 생활을 시작한 그는 소설 《장미의 기적 Miracle de la Rose》(1945∼1946), 《장례식 Pompes funèbres》(1947) 《브레스트의 논쟁 Querelle de Brest》(1947), 《도둑일기 Journal du voleur》(1949), 희곡 《하녀들 Les Bonnes》(1947), 《사형수 감시 Haute Surveillance》(1949)를 잇달아 발표하였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신의 경험을 주제로 한 그의 대담한 소설은 초기에는 비밀 출판을 통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화려한 이미지와 웅변적인 서정에 넘친 그의 작품은 악을 찬미하고, 악을 미의 근원으로 삼는 절대적 배덕의 세계이다. 사르트르의 평론 《성 쥬네, 배우 겸 순교자 Saint Genet, comédien et martyr》(1952)가 간행되자,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 후에는 《지아코메티의 아틀리에 L’Atelier d’Alberto Giacometti》(1961) 등의 에세이 외에 극작에 전념하고, 《발코니 Le Balcon》(1956) 《검둥이들 Les Nègres》(1958) 《병풍 Les Paravents》(1961) 등 문제작을 발표하였다. 다채분방(多彩奔放)한 언어와 문체로 오욕과 영광, 악과 성성(聖性)의 화려한 가치 전환을 전개하여, 전위작가 중에서도 특이한 세계를 확립하였다.
[출처] 쥬네 [Jean Genet ] | 네이버 백과사전
<하녀들>의 배경
<하녀들>은 두 하녀가 그들이 모시는 마담을 살해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다가 파국을 맞는 내용이다. 실제 1933년 프랑스에서 7년이나 하녀로 일하다가 여주인과 딸을 살해한 ‘빠뺑자매 사건’에서 소재를 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사람을 무척이나 잔인하게 살해 후 시체를 난도질하고 살인자들은 동성애를 즐기고 있었다는 엽기적이고도 충격적인 사건이다. 이사건을 풀기위해 수많은 범죄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동원되었지만 빠뺑 자매는 입을 열지 않았고 시각에 따라 무척이나 다양한 동기를 부여하게 되었다.
노동자들의 계층에서는 주인의 모진 학대로 인한 계급 갈등으로 보았고, 빠뺑 자매는 일종의 희생양처럼 그려지기도 하였고, 또 다른 시각에서는 빠뺑 자매가 그렇게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동성애를 즐겼다는 사실로 미루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 그려 정신병자한테 살해된 모녀를 희생자의 모습으로 그리기도 하였다. 다소 엽기적이고도 충격적인 이 사건은 프랑스인들에게 강하게 각인시켜 누구나 알고 있는 사건이다.
극을 보면 다소 빠뺑자매 사건과는 다른 결말로 보여지지만 프랑스인들은 누구나 빠뺑자매사건과 연관지어 생각하게 되었고, 장주네의 놀라운 능력으로 <하녀들>은 부조리극으로 재 탄생되었다.
놀라운 <하녀들>작품세계
장쥬네란 작가는 많이 배운 작가도 아니고 다소 엉뚱하고도 특이한 이력을 가진 작가이다. 도둑이면서 탈영병이자 남창이면서 마약 밀수를 하기도 한 범죄자의 경력과 신분을 가진 작가로서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관점과 사회에 대한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소외되고 어두운 인생을 갖고 있는 작가지만 <하녀들>에서는 놀라운 그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다.
철저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삼일치의 법칙을 준수하고 있다.
*시간의 일치-극중 사건을 하루(24시간)사이에 끝내야 하는데 이극 또한 밤부터 새벽까지 이어져 하루에 이루어지도록 짜여 있다.
*장소의 일치-모든 사건이 동일 장소에서 일어나야 하는 법칙으로 <하녀들>에서도 마담의 거실에서 장소의 변화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구성(행동의 일치)-모든 사건이 한 가지 이야기를 위해 짜여졌다. 마담을 죽이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하며 결국 마담의 역할을 하는 끌레르가 죽으며 끝이 난다.
이러한 또 하나의 재미있는 점은 연극놀이를 매개로 하고 있다. 이전 작품에서 나타난 연극속의 연극은 독자나 관객들이 모두 다 알 수 있고 극의 중간지점 쯤에서 발생하지만 이극은 초반부터 연극놀이가 시작되어 자명종이 울려야 관객들과 독자가 지금까지의 것은 연극놀이구나하고 깨닫게 되는 놀라운 구성을 가지고 있다. 이전까지는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로 깜짝 놀라게 되고 신선하게 작품을 받아들이게 된다.
다양한 철학사상이 내포되어 있는데 실존주의 철학사상을 담고 있다. 다른 하녀들과 달리 아니 마담과 다르게 쏠랑주와 끌레르는 자아형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쏠랑주와 끌레르가 신문을 보고 글을 읽으면서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이면서 다른 하인들과는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음에서 나타난다. 막연한 마담의 세계를 동경한 것만은 아니라 오히려 마담을 조종하고 정복하려고 하였던 두 하녀들의 모반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연극놀이를 통해 대리만족과 더불어 자아형성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작가가 여성에 대한 편협된 생각을 품고 있다. 작가는 남창이면서 이름도 모르는 사생아의 아들로 태어난것으로 미루어 여성에 대한 일반적인 사고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여성들만이 등장하는 <하녀들>을 집필하고 또 일반적인 여성상으로 각기 대변되는 세명의 여성을 통해 남자들의 시각 아닌 작가의 시각에서 바라본 여성성을 볼수 있다. 사랑을 추구하고, 허영심과 신분상승을 늘 꿈꾸지만 결국은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인형놀이가 아닌 연극놀이를 통해 대리만족하는 세명의 여성들을 보며 우리네 여성들이 아닌 장주네의 여성관을 엿볼수 있다.
<하녀들>에 나타난 인물들
마담
사랑밖에 난몰라 형 인물로 부유한 가정의 미망인으로 무슈에 대한 사랑을 불태우고 있다. 극중극에서 끌레르와 쏠랑주의 눈에는 부의 과시욕이 크고 하녀들을 경멸하고 있다. 전형적인 부르주아 형 인물로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이며 자아도취의 성격이 강한 전형적인 여성적인 인물이다. 자신은 너무나 불행하고 끌레르와 쏠랑주에게 배려를 많이 하고 있고 하녀들이 자신을 무척이나 존경하고 살아한다고 착각에 빠져 있다. 절대 바뀔 수 없는 실질적인 권력자이지만 끌레르와 쏠랑주에겐 동경의 대상이자 애증의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쏠랑주
똑똑하고 이성적 인물이다. 신문과 책을 탐독하고 마담을 대신해서 장부를 정리하는 마담이 믿는 심복이지만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꿈꾸고 감히 마담의 애인인 무슈를 동경하기도 한다. 무척이나 동생인 끌레르를 사랑하여 마담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끌레르를 해방시켜주고 싶어하는 다소 어긋난 동생에 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끌레르
마담을 사랑해야 한다고 존경해야 한다고 소심한 태도를 갖고 있지만 이는 마담에게 강요된듯하다. 마담을 선망의 대상으로 생각하지만 동시에 두려워 하고 있다. 하지만 무척이나 결정력과 행동력을 갖고 있어 무슈를 고발하는 익명의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받는 등 모든 행위의 주체이면서 소외계층의 희생자이기도 하여 나중에 자기파괴적인 죽음을 맞게 된다.
<하녀들>이 주는 의미
책을 읽으면서 결코 재미있게 읽을수는 없는 작품이지만 극으로 올리게 되면 다양한 이야기를 창출할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소 엽기적이지만 배우 3명만으로도 충분히 무대를 채울수 있는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연출력을 무한히 발휘할수도 있을 것이라 기대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번 작품을 올리기도 하였고 모두 3명의 여배우가 나오기도 하고 남성이 연극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남성이 마담의 역할을 한 경우도 있었다.
각기 다른 연출기법을 사용할수도 있지만, 각기 다른 주제를 표현할수도 있다. 마담과 하녀간의 계급간의 투쟁이나 아니면 끌레르의 죽음을 중심으로 한 심리극이나 연극놀이에 집중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거나, 하녀에서 바라본 마담의 투영된 왜곡 이미지를 코믹화 하는등 상상력을 무한히 발휘되어 작품으로 올려졌었다. 3명의 배우만으로 채우는 작은 무대로 극을 이끌어가야 함에 많은 실험적인 무대가 시도되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러한 작품이 올려지게 된것은 장주네의 작가적 힘이라 생각되어 새삼 고개를 숙이게 된다. 하지만 과연 마담의 역할을 하는 끌레르는 마지막에 죽음을 맞게 되는데 마담으로써 죽은걸까 아니면 끌레르 자신이 죽게 되는걸까? 하는 의문부터 어디까지가 연극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누가 희생된것이고 누가 승리한것인지 끝까지 알수 없지만 무척이나 흥미로운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과연 우리나라에 장주네란 작가가 나타날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든다. 매일매일의 주입식 교육과 논술조차 사교육을 하고 있는 엄청난 사교육의 현실속에서 창의력 교육은 사실상 불가능할것이다. 또한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현실에서는 용납되지 않고 있다. 학연, 지연을 통해야만 문화계를 비롯해 사회 각분야에서 인정받을수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사르트르·보부아르·콕토 같은 위인이 장주네의 능력을 인정해주고 뒷받침해주었던 프랑스의 문화적힘이 부럽기만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뛰어난 창의력을 갖고 있는데 부모조차 모르는데다 범죄자의 작가를 누가 인정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