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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책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신혜은
들어가며
책을 읽을 때 당신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John Duffy 존 더피
유네스코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인구의 문맹률은 50%에 달한다. 이 수치는 어린이가 포함된 것이지만, 15세 이상의 인구로 국한시킨다 하더라도 문맹률은 20%에 달한다.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라 여겨지는 노르웨이도 인구의 30%가 일상적인 텍스트를 읽는데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스웨덴의 경우는 50만 명 이상이 읽기와 쓰기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2백만 명이 신문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Swenson, 2008). 그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신체적인 장애를 지녔거나 읽기장애이거나 부적절한 언어 기술을 가지고 있거나, 사회적 상황이나 여건의 부족, 혹은 단순히 읽기 연습의 부족 등 다양한 요인에 기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19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한 기초 문해 실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체 성인의 24.8%가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의 읽기 쓰기에도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조사대상의 8.4%, 300만명이 ‘완전비문해자’인 것으로 나타났다(이희수, 2002). 여기에 최근에 급증한 다문화 가정의 수를 고려하면 국내에도 읽기에 어려움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상당할 것이다.
유엔의 기회 균등에 관한 표준 규칙(UN's standard rules about equal opportunity, 1993)에 따르면 각국은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평등하게 문화 활동에 참가하도록 하는 강한 윤리적 정치적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 또 유엔에서 제정한 장애인 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CRPD)에 의하면 ‘문학을 포함한 문화에 대한 접근성’은 모든 민주시민의 당연한 권리이다. 이는 다양한 원인으로 인한 읽기 장애나 어려움을 지닌 사람들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을 가질 권리를 지녔음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의 책 읽을 권리’의 측면에서 보자면, 글과 그림의 결합을 통해 만들어지는 그림책의 형식은 비문해자나 다양한 읽기 장애를 지닌 독자를 보다 용이하게 문학과 예술, 문화의 장으로 들어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림책의 역사 측면에서 보더라도 그림책은 글 텍스트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부가적인 의사소통체계인 그림을 제공함으로 시작되었다. 이러한 그림책의 특성은 문자획득 이전의 어린이들에게 심미적 측면에서나 교육적 측면에서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 이는 최초의 그림책이라 여겨지는 Johannes Amos Comenius의 세계도회(Orbis sensualium pictus, 1658)에서 부터 본격적인 포스트모던 그림책의 시작을 알린 David Macaulay의 Black and white(1990)에 이르기 까지 마찬가지로 동일하다.
그런데 최근 우리가 충분히 쉽고 접근가능하고 열려있다고 생각한 그림책의 양식이 특정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장애 환경을 제공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그림책의 장르가 발전하면 할수록, 그림책을 통한 문화와 예술의 향유와 지식의 전수가 더 많아질수록 커지는 현상 이면의 아이러니였다. 2009년 ‘감각으로 통하다’ 워크숍을 개최한 유알 아트의 김지나 소장의 말 속에 그림책 장르의 발전이 가져온 소수 집단 어린이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잘 드러나 있다.
시각장애인 아이들이 ‘강아지 똥’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그 그림책을 너무나 애타게 읽고 싶어 했어요.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 그런데 그 아이들은 강아지 똥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잖아요? 그것이 저희가 ‘강아지 똥’을 감각 그림책으로 만든 계기였어요(김지나, 2009 개인서신)
분명 [강아지 똥]이라는 그림책은 시각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에게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장애문해환경이다. 이는 마치 편리를 위해 건물 현관 앞에 만들어진 계단이 오히려 특정 소수집단의 사람들에게는 건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장벽이 되어 버리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아래의 한국환경장애인협회 소개 글을 보면 장애라는 것이 단지 개인에게 속한 특성이 아니라 ‘만들어진 장애환경’이라는 개념 속에서 다시금 새롭게 바라보고 해석해야 하는 부분임을 엿볼 수 있다.
‘장애인이 처해있는 물리적 환경, 사회보건환경, 교육환경, 근로환경, 문화 환경 상의 모든 장벽을 제거하고........(이하 중략)’
위의 문장에 의하면 장애는 결코 전적으로 개인에게만 속한 특성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특성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만들어낸 훌륭한 그림책들이 소수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장벽, 즉 인위적인 장애환경을 제공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한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는 현재 우리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유형과 무형의 그림책의 특성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가능하다면 더 많은, 나아가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그림책의 가치를 향유할 수 있는 그림책 환경, 보편적 접근이 가능한 그림책의 기획과 설계, 디자인을 구현해 가는 노력을 경주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2000년대 초반부터 장애가 있는 아동이나 장애가 없는 아동이나 모든 어린이가 즐길 수 있는 barrier-free 그림책의 시대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2002. 12. 9 Reading for all). 일본의 경우 장애아동의 초창기 교육 중 하나가 니가타(Nigata) 타카다(Takada) 시에서 시작되었는데, 2005년에는 시각장애 아동의 교육을 위해 일본 국내와 해외에서 특별히 만들어진 그림책들을 수집한 [ Barrier-free Picture books of the World] 전시회를 2005년 2월 11일부터 24일에 걸쳐 개최하기도 하였다. 일본의 독자들은 이 전시를 통해 barrier-free 개념에 대한 역사를 배웠고, 또한 그런 생각들이 어떻게 박물관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경험하였다(Barrier-free Picture books of the World).
우리나의 경우 IBBY(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에 가입한지 10여년이 넘었지만 IBBY의 다른 지부에서 여러 차례 순회 전시된 이런 유형의 책 전시회를 한 번도 유치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는 문화적 권리로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책 경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뿐 아니라, 만들어진 장애환경의 심각성에 대한 무지, 나아가 장애 비장애를 넘어서는 ‘모두를 위한 책'(Books for everyone)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낮은 인식과 태도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이는 교육과 복지의 차원을 넘어서, 기본적인 문화적 향유와 권리의 차원에서의 ’모두를 위한 책‘ 경험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과 지원이 정부와 교육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이루어져야할 필요성을 촉구한다.
이에 본고에서는 ‘모두를 위한 책’의 의미를 분석하고, 이의 교육적, 사회문화적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접근이 가능한 책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확보하기 위해 IBBY 지난 28년간 전 세계 출간도서를 토대로 선정한 [IBBY 장애를 지닌 아동청소년들을 위한 좋은 책 목록]을 중심으로 다양한 범주의 ‘모두를 위한 책’ 사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다시 책에 대한 보편적 접근의 철학적 의미, 장애를 보는 관점에서의 변화,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서는 모두를 위한 책의 가치를 생각해 보고자한다.
모두를 위한 책(Books for everyone)이란
문화와 문화적 산물(cultural artifact)로서의 책에 대한 접근성(accessibility)의 논의는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보편적 설계)’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편적 설계는 처음에는 'Barrier free(장벽이 없는, 무장애)'의 개념으로 시작되었다. 예를 들어 오른손잡이용 가위만 있던 상황에서 왼손잡이용 가위를 개발하는 것이 'Barrier free' 개념이라고 본다면, 보편적 설계 개념은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아예 처음부터 오른손잡이든 왼손잡이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그런 가위를 만들고자 하는 접근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를 계획하면 오른손잡이용과 왼손잡이용 가위를 각기 따로 만들 필요가 없어진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1960년대 후반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부상자나 장애자를 위해 생겨난 미국형 유니버설 디자인과 북유럽 사회의 고령화와 추운 기후에서 기인한 북유럽형 유니버설디자인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그리고 1980년대 미국의 건축가이자 산업디자이너인 존 메이스가 무장애(birrier free) 개념을 넘어, 남 녀 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기 쉽도록 환경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주장을 시작으로 그 본격적인 탄생을 알렸다. 지금의 유니버설 디자인은 장애인이나 노인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넘어 다양한 능력과 인간의 전체 생애주기를 수용하는 디자인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은 2006년 12월 13일 뉴욕에서 채택되고, 2008년 12월 2일 국회 본회의와 비준동의를 얻어, 2009년 1월 10일 자로 국내 발효된 유엔 장애인 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CRPD) 안에도 아래와 같이 포함되어 있다.
“보편적 디자인”이란 개조 또는 특별한 디자인을 할 필요 없이 최대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 환경, 프로그램 및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필요한 경우, “보편적인 디자인”은 특정 장애인 집단을 위한 보조 기구를 배제하지 아니한다.
보편적 설계의 핵심은 특별한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모든 이를 위한 디자인 이라는 데에 있다. 다양한 사용자의 요구를 만족시킴으로써 인간을 평등하게 포용하는 환경을 창조하는 것으로 그 대상은 나이. 성별, 장애의 여부, 신체크기, 신체능력 뿐 아니라 경제적 계층, 인종 등이 모든 범위를 포함함으로써 디자인을 통한 사회평등의 실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유니버설 디자인은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21세기의 창조적 패러다임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보편적 설계,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은 모든 가능한 삶의 환경 전반에 적용되어야 하고, 그렇다면 이는 당연히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책의 보편적 설계, 유니버설 디자인은 어떻게 이루어 질수 있을까? 이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뿐 아니라 책을 교육적 문화적 치유적 통로로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일 것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기 위해 먼저 우리는 ‘모두를 위한 책’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와 역사를 따라가보자.
권리
먼저 권리의 측면은 그림책이 처음에 왜 만들어 졌느냐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세계최초의 그림책이라 간주되는 세계도회는 글을 모르는 어린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을 사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그림책은 한 가지 이상의 소통 채널을 지닌 다중 의사소통 채널 매체임에 틀림없다. 이는 그림책이 문자세계와 비 문자세계 간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아래는 1989년 11월 20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유엔아동권리 협약(CRC: 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의 일부이다. 제 17조와 30조에 따르면 유엔 당사국은 유엔 헌장에 선언된 원칙에 따라 소수집단 혹은 소수민족 아동 혹은 토착민 아동이 언어상 겪는 곤란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장려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다양한 집단의 아동들이 함께 문화를 누리는 것이 당연한 권리임을 보여준다.
이 협약의 당사국은 유엔 헌장에 선언된 원칙에 따라, 인류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고유한 존엄성 및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및 평화의 기초가 됨을 고려하고.......(중략)
제 17 조
당사국은 대중매체가 수행하는 중요한 기능을 인정하며, 아동이 국내외의 다양한 소식통으로부터 정보와 자료, 특히 아동의 사회적 정신적 윤리적 복지와 신체적 정신적 건강의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정보와 자료를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하여 당사국은,
가. 대중매체가 아동에게 사회적, 문화적으로 유익하고 제29조의 정신에 부합되는 정보와 자료를 보급하도록 장려하여야 한다.
나. 다양한 문화와 국내외의 소식통에 의한 정보와 자료의 제작, 교환 및 보급을 위한 국제 협력을 장려하여야 한다.
다. 아동도서의 보급과 제작을 장려하여야 한다.
라. 대중매체로 하여금 소수집단의 아동 혹은 원주민 아동이 언어상 겪는 곤란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도록 장려하여야 한다.
제 30 조
인종적, 종교적 또는 언어적 소수집단 혹은 원주민이 존재하는 국가에서 이러한 소수 민족의 아동 혹은 원주민 아동은 자기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고유문화를 향유하고 고유의 종교를 신앙하고 실천하며 고유의 언어를 사용할 권리를 거부당하지 아니한다.
또한 장애인 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CRPD)에 따르면 ‘문학을 포함한 문화에 대한 접근성’은 민주시민의 권리이며, 이는 읽기 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그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을 가질 권리를 지녔음은 명백하다. 게다가 이러한 권리는 단지 문자세계와 비문자 세계 간에만 건너가야 할 것이 아니라 비문자 세계 내의 다양한 감각들 사이에도 연결되어져야 할 부분이 존재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제30조
문화생활, 레크리에이션, 여가생활 및 체육활동에 대한 참여
1. 당사국은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문화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장애인의 권리를 인정하며, 장애인에게 다음의 사항을 보장하기 위하여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
(가) 접근 가능한 형태로 된 문화자료에 대한 접근을 향유한다.......(중략)
3. 당사국은 국제법에 따라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는 법이 문화자료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에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장벽을 구성하지 아니하도록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
4. 장애인은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수화와 청각장애인의 문화를 포함하여 그들의 특정한 문화적ㆍ언어적 정체성을 인정받고 지원받을 자격이 있다........
장애인에게 교육받을 권리, 일할 권리, 주거의 권리 넘어 ..그 이상을 주고 싶다
Tordis Ørjasæter
역사
모두를 위한 책의 역사는 언제부터 본격 시작했을까? 물론 그림책도 모두를 위한 책의 역사의 중요한 한 지점일 것이다. 하지만 Barrier-free picturebook(장벽 없는 그림책)이라는 개념으로 본격 논의 된 것은 노르웨이의 작가이자 문학교수이자 장애아의 모친이었던 Tordis Ørjasæter로 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장애와는 관계없이 책과 만날 기회를 주고 싶다. 그들의 삶에 대한 책을 통해 건강한 아이들에게 장애를 가진 아이를 알게 하고 싶다’라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고,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당시 IBBY President(1978-1982)였던 Knud Eigil Hauberg Tychsen 에게 전화와 편지를 보냈고, 노르웨이 오슬로의 특수교육연구소의 Edvard Befring의 참여와 함께 IBBY가 후원하는 국제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981년 4월 볼로냐 국제도서전에서 장애아도서[Books and disabled children] 전시를 열고 카달로그를 제작 배포한다.
이후 UNESCO 주관 세미나를 개최하고 [The role of children's books in integrating handicapped children into everyday life](장애를 가진 어린이와 함께하기 위한 어린 책의 역할)라는 논문을 UNESCO study NO 1. Book & reading 시리즈로 불어 스페인어로 출간을 한다. 이 논문은 후에 핀란드 이탈리아 일어로도 번역되어 널리 읽히게 된다. 이후 장애아동도서 전시는 Leena Maissen IBBY 사무국장에 의해 비엔나, 브라티스라바를 비롯하여 프라하, 멕시코, 호주, 핀란드, 스웨덴 등으로 순회전시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1985년 4월 IBBY와 노르웨이 특수교육연구소의 두 번째 프로젝트인 장애아를 위한 그림책 [Books for language retarded children 언어지체아를 위한 책](No. 20 UNESCO study) 전시가 볼로냐에서 열리고, 이 전시는 이후 파리, 바르셀로나, 더블린의 IRA conference,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지에서 순회 전시되었다.
그 과정에서 자료센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들이 모여, 1985년 10월 IBBY 산하에 ‘장애아도서 자료센터(IBBY Documantation Centre of Books for Disabled Young People)’가 설립된다. IBBY 장애아도서 자료 센터의 초대 책임자이자 Nina Askyvig Reidarson은 도서관 책임 사서로 여러 언어권에 능통했을 뿐 아니라 특수교육을 전공한 교사였다. 그녀는 당시 IBBY 사무국장이었던 Leena Maissen과의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서 30개국 42개 이상의 언어권의 책을 대상으로 장애아를 위한 도서를 수집, 검토하고 목록을 작성하고 책을 소개하고 이용을 촉진시켰다. 장애아와 가족 뿐 아니라 교사와 학생, 연구자, 사서, 출판사,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정부 매스컴을 대상으로 관련 정보와 상담 자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녀의 이러한 노력은 1991년 볼로냐 국제 도서전에서 장애아동을 위한 책 [Books for disabled young people]을 전시하게 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이러한 전시는 이후 1997년, 1999년, 2001년, 그리고 2002년 Basel IBBY 50주년 기념 Jubillee 전시까지 지속되었다. 2003년 Nina Askyvig이 은퇴하면서 책들은 장애아동을 위한 하우그 학교 자료센터[Haug school & resources centre]로 이관되었다. Heidi Cortner Boiesen이 센터 책임자가 되었으며, 그녀는 일반사로로 20년 재직 후 11년째 하우그 학교 도서관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당시 하우그 학교는 자폐, 중복장애, 학습장애등 110명의 아이들이 다시는 장애아 시립학교였다. 센터에 장서는 그림책 소설 논픽션을 합해 10000종이었다.
책이 아이들에게 좋다고 한다면 장애아동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Tordis Ørjasæter
2005년부터는 세계 각국에서 출간된 책을 중심으로 [Outstanding books for young people with disabilities](장애를 가진 아동청소년을 위한 좋은 책 목록)을 제작 배포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도서 선정의 기준은 특수교육의 도구로서의 잠재적 유용성 뿐 아니라, 어린이를 위한 즐거움, 그리고 문화의 측면까지 중요하게 고려하게 된다. 전 세계 각국으로 부터 선정된 대략 150여권의 책 중에서 50여 권 정도가 2년에 한 번씩 선정되어 부모와 교육자, 출판사, 새로운 책을 만드는 사람들과 번역하는 사람들에게 제공된다.
감각의 확장, 소통과 참여
책을 읽고 경험하는 독자의 개별적 고유성은 나이. 성별, 장애의 여부, 신체크기, 신체능력 뿐 아니라 경제적 계층, 인종 등 매우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유성은 우리가 지닌 감각채널의 종류에 따라 대략적 분류가 가능하다. 시각과 청각, 촉각과 미각, 후각, 운동감각이 그것이다. 모두를 위한 책은 이러한 일반적인 책이나 그림책에 비해 다중 채널적 소통, 다감각적 접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책이다.
‘IBBY(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장애를 지닌 아동청소년을 위한 좋은 책 목록’ 범주를 토대로 하면, ‘모두를 위한 책’은 우선 일반적인 문자와 이미지 외에 수화(sign language)나 BLISS, 픽토그램, PCS(picture communication symbol)과 같은 비언어적 소통체계(Non-verbal communication system)를 포함하고 있다. 이들 비언어적 의사소통체계는 시각적 표상과 기호로 표현된 문자이전의 인류가 사용한 방식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픽토그램은 picto와 telegram의 합성어로 북아메리카 인디어이 널리 사용하던 의사소통방식이며 전 세계 각지 선사시대 유물에서 발견되고 있다. PCS의 경우 아주 쉬워서 아이들에게 문자 없이 내용 전달이 되어, 지적장애아나 아이들, 언어능력이 낮은 이민자나, 제2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매우 효과적이다. 5000개의 각국 고유의 그림 상징에 12000개의 공용 그림상징이 있다. 40개국 언어로 번역가능하고 자신만의 PCS도 만들수 있다. Bliss는 오스트리아의 기호학자인 Charles Bliss에 의해 창안된 국제공용 시각적 상징체계로 처음에는 서로 다른 국가 사람들 간에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국제어였는데, 지금은 읽기에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꾸준히 변화하여 현재 4000개의 상징 목록이 있다.
두 번째는 촉각이나 점자, 헝겊 그림책과 같이 다감각을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주축어(pivot language) 표현처럼, 일반적인 텍스트보다 짧고 명확한 표현, 구체적이고 시간적 순서를 따르는 표현, 수동보다는 능동의 표현으로 텍스트가 구성된 plain language, 읽기 쉬운 책(easy to read book)이다. 물론 이것은 텍스트 뿐 아니라 그림에도 해당된다. 디자인, 타이포, 심지어 플롯에 이르기까지 모두 해당된다. 서체의 크기나 굵기 또한 충분한 가독성이 보장된(readable) 책이다.
일반적으로 발달의 측면에서 다감각책은 영유아기의 아기들이 보는 그림책이 라는 인식이 짙을 것이다. 그리고 점자나 수화 책은 시각이나 청각 장애로 인한 손실에 대한 감각적 보상(compensation)이라는 인식이 전반적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그것뿐일까? 아니다. 다양한 물성은 우리의 다른 지점들을 불러일으킨다. 점자책도 그냥 책일 뿐. 우리 모두를 위한 책. 즐겁기 위한, 특별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그 다양한 물성과 나와의 소통은 회로를 여는, 길을 여는 소통이다. 그 대상이든 자기든, 타인이든. 그래서 ‘모두를 위한 책’은 결국 나 자신을 온전히 위한 책으로 다시 돌아온다.
‘모두를 위한 책’은 다양한 의사소통에 대한 이해이며, 단순한 언어의 의미를 넘어서 이루어지는 소통과 참여의 운동이다. 책이 언어발달을 도울 수 있고, 사회참여를 도울 수 있고,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고, 예술적 체험, 문화적 체험, 기쁨을 줄 수 있다면...비록 읽을 수 없고 말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도 책을 통해 삶을 즐길 권리가 당연하다는 ‘앎’이고 ‘함이다.
나가며
pOint oF viEW
이제 읽기 장애(Reading disability)라는 개념은 단순한 시각 장애 뿐 아니라 어떠한 이유로든 통상적 읽기에 어려움을 갖는 모든 경우를 일컫는다. 청각장애, 정신장애, 언어장애, 정신지체, 주의력 장애, 신체장애, 자폐, 치매 등등 그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교통사고로 휠체어를 탄 어느 소녀의 표현을 빌자면 ‘정상인은 일시적으로 잘 기능하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장애를 보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장애는 신체적인 능력의 부족함만이 아니라 상황이나 연령에 따라 모든 사람이 가지는 특정한 부분의 어려움 모두이다. 자유롭지 못한 특수한 상황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누구나 가지는 개별적 특성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런 장애를 보는 관점의 변화는 ‘보편적 접근과 설계의 중요성’을 더 욱 부각시킨다.
틀을 넘어서
지금까지의 장애와 비장애간의 차별과 분리는 어쩌면 다양한 환경, 특히 문화적 환경의 공유경험의 부족에 기인할지 모른다. 동일한 의사소통 채널과 체계를 공유한다는 것은 그 어떤 인공물보다 도 강력한 환경을 공유하는 것이다. 만약 그림책이 어린이들에게 좋은 환경이라면, 그건 다양한 여건의 어려움을 지닌 다른 어린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만들어낸 인위적 환경으로 인해 그들 사이에 차별과 분리가 행해진다면, 그건 우리가 진정 원하는 그런 삶의 환경, 교육적 환경은 아닐 것이다.
모든 유형의 인공물에는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태도와 가치, 의식이 담겨진다. 곧 철학을 드러내는 것이다. 통합교육이 단지 장애아를 위한 특정한 접근법이 아닌 것처럼, ‘보편적 접근과 디자인(universal access & design)’ 개념은 단순한 디자인의 원리가 아니다. 그 안에는 인간과 환경을 함께 바라보는 역동적 관점(dynamic perspective)이 내포되어 있다. 인간과 환경에 대한, 그리고 교육에 대한 고유한 철학적 관점이 들어있다. 연령과 성별, 장애와 비장애, 인종과 민족을 초월한 보편적 접근이 가능한 환경 - 그림책을 포함한 다양한 유형과 무형의 인공물 - 의 창조를 요구하고 있다. 보편적 설계로 만들어진 책은 서로 분리된 환경 - 서로 다른 의사소통 채널과 체계를 사용해야 하는 - 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고, 자연스럽게 상대방 쪽으로 건너가게 하는 다리의 역할을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본다-안다-한다
만진다-안다-한다
듣는다-안다-한다
냄새맡는다-안다-한다
맛본다-안다-한다
감지한다-안다-한다
무릇 ‘함’이 곧 ‘앎’이며, ‘앎’이 곧 함이다. ‘삶’이 곧 앎이다.
마투라나 & 바렐라,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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