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명리연원론(命理淵源論)
명리학은 음양설(陰陽說)과 오행설(五行說)이 결합한 학문이다.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 말엽까지 음양설과 오행설은 상호 독립적으로 존재해 오다가, 제(齊)나라의 추연(騶衍, BC340~260?)이 둘을 결합시켜 음양오행설(五行相勝說)을 제창하였고, 전한대(前漢代)의 동중서(董仲舒, BC179경~104경)가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의 체계를 확립하였다. 명학(命學)의 일종인 명리(命理)는 이 음양오행설(Yin-Yang and the Five Elements theory)을 바탕으로 탄생된 학술이다.
명리학은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과 천문역법(天文曆法)에 의해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 체계를 갖추게 됨으로써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2-1. 시대별(時代別) 명리서적(命理書籍)
1) 전국시대(戰國時代)
귀곡자(鬼谷子, 기원전 4세기)의 『귀곡자찬(鬼谷子撰, 귀곡자유문鬼谷子遺文: 이허중 命書 內)』이 있다.
낙록자(珞琭子, 행적 불명)의 『소식부(消息賦)』가 있다.
귀곡자는 년월(年月)을 중심으로 명(命)을 논했으며, 낙록자는 삼명학(三命學)의 논법으로 명을 논했다고 한다. 두 사람을 명학(命學)의 시원자(始原者)로 보고 있으나, 두 저서는 위서(僞書)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2) 진대(晉代)
곽박(郭璞, 郭景纯, 276~324)이 『옥조정진경(玉照定眞經)』을 저술하였다. 역시 위서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3) 북주말(北周末)~수초(隋初)
태상(太常) 소길(蕭吉)이 『오행대의(五行大義)』를 저술하였다.
4) 당대(唐代)
천강(天綱) 원수성(袁守成, 590~648)이 『원천강오성삼명지남(袁天綱五星三命指南)』을 저술하였다.
당말(唐末) 송초(宋初)의 상용(常容) 이허중(李虛中, 762~813)은 년주(年柱)의 납음(納音)으로 운명을 판단하는 이론(녹명법)을 세웠다. 저서로는 『명서(命書)』가 있다하나, 저술 시대와 저자가 불확실하다.
5) 송대(宋代)
자평(子平) 서거이(徐居易, 徐子平, ?~?)는 오대(五代) 및 송(宋) 고종(高宗) 때의 사람으로서, 일간(日干) 주본(主本)의 사주학을 개발하여 자평명리학(子平命理學)의 원조(元祖)가 되었고, 『낙록자삼명소식부주(珞琭子三命消息賦註)』, 『옥조신응진경주(玉照神應眞經註)』, 『명통부(明通賦)』를 저술하였다고 한다. 서자평을 송말(松末)의 서대승(徐大升)과 동일인물로 보는 설도 있고, 명대(明代)의 서균(徐均)으로 보는 설도 있으나, 별도의 인물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례백(礼伯) 료중(廖中, ?~?)이 『오행정기(五行精紀)』를 1228년에 출간했다.
동재(東齋) 서대승(徐大升, 1200~1274)은 『자평삼명통변연원(子平三命通變淵源)』을 저술했다. 이 책이 『연원(淵源)』 또는 『연해(淵海)』라는 이름으로 필사(筆寫)되어 유통되었다.
6) 원대(元代)
원(元) 무렵으로 추측되는 인물 경도(京圖)가 지은 『적천수(滴天髓)』가 있다.
7) 명대(明代)
명(明)의 개국공신 유백온(劉伯溫 1311~1375)의 『적천수원주(滴天髓原注)』가 있다. 가탁(假託)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대(元代) 내지 명대(明代)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작자 미상의 『난강망(欄江網)』이 있다.
신봉(神峰) 장남(張楠: 1514~?)의 『신봉통고명리정종(神峰通考命理正宗, 신봉벽류神峰闢謬)』가 있다. 보통 『명리정종』으로 통한다.
육오(育吾) 만민영(萬民英: 1521~1603)의 『삼명통회(三命通會通)』가 있다.
『난강망』이 증보(增補)된 『조화현약(造化玄鑰)』이 있었는데, 역시 작자 미상이며, 『오행정기』와 『삼명통회』의 내용을 인용한 부분이 많으므로 『삼명통회』 출간 이후에 저술된 듯하다.
장남(張楠)이 연해자평대전(淵海子平大全)을 펴냈고, 양종(楊淙, 1534~1635)이 흠천감(欽天監) 이흠(李欽)과 함께 『연원(淵源)』과 『연해(淵海)』를 합본 편집해서 1600년에 『각경대증보연해자평대전(刻京臺增補淵海子平大典)』을 간행했으나 산실(散失)되었고, 출판업자 당금지(唐錦池, 1580~1650)가 새로 발견된 여러 시결(詩結)들과 『연원(淵源)』 및 『연해(淵海)』를 다시 편집하여 1634년에 중간본(重刊本) 『연해자평淵海子平)』5권을 펴냈다. 연해자평은 판본이 다양하다.
8) 청대(淸代)
소암(素菴) 진지린(陳之遴)이 『적천수집요(滴天隨輯要)』와 『명리약언(命理約言)』을 저술하였다.
『조화현약(造化玄鑰)』이 일관(日官)인 영숙(永叔) 경진부(經陳溥)의 손에 들어가 『조화원약(造化元鑰)』으로 개명(改名)되어 소장(所藏)되었고, 이『조화원약』이 초남(楚南) 여춘태(余春台)에 의해 『궁통보감난강망(窮通寶鑑欄江網)』으로 교정(矯正)되었다. 이는 『궁통보감(窮通寶鑑)』으로 통하며 『조화원약』과 내용이 거의 같다.
청(淸) 중엽의 효첨(孝瞻) 심택번(沈澤燔)이 『자평수록삼십구편(子平手錄三十九篇)』을 저술했는데(이는 명말明末 저술로 추정되는 경촌집耕寸集을 필사한 것이다), 이것을 청말(淸末) 1776년에 공보(空甫) 호곤탁(胡熴倬)과 장군안(章君安)이 『자평진전(子平眞詮)』으로 이름을 바꾸어 출간하였다.
고월(古越) 임철초(任鐵樵)가 1846년에 『적천수천미(滴天髓闡微)』를 지었다.
9) 중화민국(中華民國)
원수산(袁樹珊)은 『명리탐원(命理探原)』, 『명보(命普)』 등을 저술하였고, 1933년에 『적천수천미(滴天髓闡微)』를 재찬집(再撰輯)하여 발행했다.
동해(東海) 서락오(徐樂吾)는 『적천수징의(滴天髓徵義)』, 『적천수보주(滴天髓補註)』, 『조화원약평주(造化元鑰評註)』, 『궁통보감평주(窮通寶鑑評註)』, 『자평진전평주(子平眞詮評註)』, 『자평수언(子平粹言)』 등을 발행했다.
위천리(韋千里)의 『명학강의(命學講義)』, 『팔자제요(八字提要)』, 『천리명고(千里命稿)』, 『팔자제요(八字提要)』 등
약평(若萍) 오준민(吳俊民)의 『명리신론(命理新論)』
화제관주(花堤館主)의 『명학신의(命學新義)』
하건충(何建忠)의 『팔자심리추명학(八字心理推命學)』 등이 있다.
10) 우리나라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명리서가 전해지지 않고 있는데, 근대에는 도계(陶溪) 박재완(朴在玩)의 『명리요강(命理要綱)』, 신육천(申六泉)의 『사주감정법비결집(四柱鑑定法秘訣集): 千古秘傳』, 자강(自彊) 이석영(李錫暎)의 『사주첩경(四柱捷徑)』, 제산(霽山) 박재현(朴宰顯, 저서 없음), 백영관(白靈觀) 최영철(崔英哲)의 『사주정설(四柱精說)』 등이 있다. 이 중 『명리요강』은 위천리의 『명학강의』를 모사(模寫)한 책이고, 『천고비전』과 『사주정설』도 아베타이잔의 전집을 요약하여 만든 책이다.
11) 일본(日本)에는 아베타이잔(阿部泰山)의 『사주추명학전집(四柱推命學全集)』, 사토료쿠류(佐藤六龍)의 『사주추명십간비해(四柱推命十干秘解)』, 다카기죠(高木乘)의 『사주추명학(四柱推命學)』 등이 있다.
* 중국에는 후대(後代)에 와서 전대(前代)의 유명인사(有名人士)의 이름을 빌어 책을 짓는 가탁저술(假託著述)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위의 오래된 서책들 중 상당수는 저자명(著者名)과 출판시기(出版時期) 등이 실상(實狀)과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시대별로 명리서(命理書)를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戰國時代-晉代 | 소식부, 옥조정진경 |
隋代 | 오행대의 |
唐代 | 원천강오성삼명지남, 명서 |
宋代 | 명통부, 오행정기, 자평삼명통변연원 |
元代 | 적천수 |
明代 | 난강망, 신봉통고, 삼명통회, 연해자평, (경촌집) |
淸代 | 명리약언, 궁통보감, 자평진전, 적천수천미 |
中國 | 자평수언, 명리탐원, 팔자제요, 팔자심리추명학 |
* 국립중앙도서관에 『원천강』, 『자평연원』이 있으며 인터넷으로 원문보기가 가능하다. 책 이름들은 원명(原名)을 줄여서 적은 것들이며 내용은 원서(原書)와 동일하다.
2-2. 명리학(命理學)의 역사적(歷史的) 인물(人物)
1)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숙복(叔服), 귀곡자(鬼谷子), 낙록자(珞琭子) 등
2) 한대(漢代)
사마계주(司馬季主), 동중서(董仲舒), 동방삭(東方朔), 엄군평(嚴君平) 등
3) 삼국시대(三國時代)
제갈공명(諸葛孔明), 관로(管輅) 등
4) 진대(晉代)
갈홍(葛洪), 곽박(郭璞) 등
5)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위령(魏寧), 도홍경(陶弘景), 소길(蕭吉)등
6) 당대(唐代)
원천강(袁天綱), 이순풍(李淳風), 일행(一行), 이필(李泌), 이허중(李虛中) 등
7) 송대(宋代)
진희이(陳希夷), 서자평(徐子平), 서대승(徐大升), 소강절(卲康節) 등
8) 명대(明代)
유백온(劉伯溫), 만육오(萬育吾), 장남(張楠) 등
9) 청대(淸代)
진소암(陳素菴), 심효첨(沈孝瞻), 임철초(任鐵樵) 등
10) 근대(近代)
중국(中國): 서락오(徐樂吾), 원수산(袁樹珊), 위천리(韋千里), 오준민(吳俊民), 양상윤(梁湘潤), 화제관주(花堤館主), 하건충(何建忠), 종의명(鐘義明), 이철필(李鐵筆) 등
한국(韓國): 도계(陶溪) 박재완(朴在琓, 1903~1992), 신육천(申六泉(1910~1991), 자강(自彊) 이석영(李錫暎, 1920~1983), 변만리(邊萬里) 최병주(崔炳柱, 1923~2000), 제산(霽山) 박재현(朴宰顯, 1935~2000), 박일우(朴一宇, 1940~) 등
일본(日本): 아베타이잔(阿部泰山), 다카기죠(高木乗), 사토료쿠류(佐藤六龍) 등
2-3. 우리나라의 명리학(命理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기록 중에, 태종(太宗)의 모친인 신의왕후(神懿王后: 1337~1391) 한씨(韓氏)가 아들인 태종의 장래 운명에 대해 물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高麗) 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명리가 명맥(命脈)을 이어 왔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조선(朝鮮) 시대의 과거(科擧)에서 중인(中人)들이 응시하던 잡과(雜科) 안에 음양과(陰陽科)가 있었고, 음양과에는 천문학(天文學), 지리학(地理學), 명과학(命課學)의 세 분야가 있었는데, 이 중 명과학(命課學)이 바로 명리 전문가를 뽑던 과거 과목이었다.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때 명리의 명맥이 거의 끊어졌다가 근세(近世)에 와서 비로소 서서히 되살아나 빛을 보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