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 3:14~18 웅크리지 말고 일어나라
임진왜란은 임진년(1592년)에 왜놈들이 쳐들어와 난을 일으켰다는 뜻입니다. 도요토미히데요시가 1591년에 먼저 조선에 서신을 보냈습니다. 명을 침략할 테니 조선이 앞장서서 도우라 돕지 않으면 너희를 치겠다는 식의 내용이었습니다. 왜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리라고 믿었기에 전쟁 준비도 하지 않고 거절하자 전쟁이 시작되었고 6년 7개월 동안 치열한 전쟁을 했습니다. 긴 전쟁 동안 많은 전투가 있었습니다. 옥포해전, 당포해전, 한산대첩, 부산포해전, 명량대첩, 노량해전 등 이 중에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으로 불리는 한산대첩, 명량대첩, 노량해전이 있습니다.
파죽지세, 승승장구한 왜군의 전황을 바뀌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전투가 한산도 대첩입니다. 이 전쟁의 패배로 왜군은 추가 보급 및 병력 지원을 받지 못하여 평양성에 눌러앉게 되었습니다.
적이 흘린 잘못된 정보를 믿고 선조가 명령을 내리자 이순신 장군은 복종할 수 없어 항명했습니다. 엄청난 고문과 함께 모든 관직을 잃고 백의종군하는 사이에 원균이 칠천량 전투에서 완패하게 됩니다. 그래서 12척과 수군 120명만 남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잘 아는 이순신 장군의 명언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으리라.” 가 나왔습니다.
수소문 끝에 한 척을 찾아 수리해서 13척으로 왜군 수군 최소 133척과 울돌목에서 맞붙었습니다. 물살이 빠르고 소리가 요란하여 물 우는 소리가 20리 밖까지 들린다하여 울돌목이라 합니다. 울돌목이란 우리 말을 한자로 표기해서 鳴(울 명) 자에, 梁(들보 량:좁은 수로) 자를 써서 명량(鳴梁)이라 한 것입니다. 고작 13척으로 기적과 같은 승리를 얻었습니다. 이순신 장군도 하늘이 도왔다고 기록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히데요시가 항년 62세에 죽자 철군을 명했습니다. 전쟁 끝내고 우리 갈 테니 퇴로를 열어주라고 뇌물까지 명나라 장수 ‘진린’에게 썼지만, 이순신 장군은 한 명도, 한 척도 살려 보내지 말라며 마지막 전쟁을 치릅니다. 이게 노량해전입니다. 노량해전은 쉽지 않은 전투였습니다. 야간에 싸워야 했고 가까이 붙어서 싸우는 백병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접전 끝에 결국 조명 연합군은 승리하고 이순신 장군은 새벽에 전사하셨습니다. 항년 54세였습니다. 6년 7개월 무려 7년 만에 전쟁이 끝이 났습니다.
우리의 영웅이 쓴 난중일기에 자주 등장한 단어가 있습니다. 縮(웅크릴 축) 자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들이 죽었을 때, 칠천량 전투에서 많은 수군을 잃었을 때 장군은 애통하고 웅크렸습니다.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영웅으로서 그 무게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겉으로는 차마 보여줄 수 없어 강한 모습이었지만 혼자 있을 때면 웅크릴 수밖에 없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묻습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시간 묻습니다.
“힘들다고, 무겁다고 웅크리고 있을 것이냐, 일어나 맞서 이겨 영웅이 될 것이냐?”
난생의 영웅은 어떤 특별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차이가 있습니다. 못 느끼고 덜 힘들고 덜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웅크리고만 있지 않고 일어났다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웅 엘리야 선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약 5:17, 18)
성질과 마음씨가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특별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간절히 기도했다는 차이입니다. 간절한 기도가 간구(懇求)입니다. 간절할 간 자에 구할 구 자입니다. 이 간절한 기도가 차이를 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간구의 중요성을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약 5:16)
①예수님도 간절히 기도하셨고 기도하십니다.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눅 22:41-44)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 5:7)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히 7:25)
②성령님도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6)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롬 8:27)
간절한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 했으니 이왕에 하는 기도라면 예수님처럼, 성령님처럼, 엘리야처럼 간절히 기도합시다. 그 차이가 놀라운 응답을 받고 기적을 체험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본문 말씀입니다.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습 3:16)
사람이 무기력하고, 위축되어 있고, 기가 죽어 있거나 낙심하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손을 늘어뜨렸다고 표현합니다. 기죽지 말고, 힘을 내고 당당하라고 말할 때는 어깨를 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손을 늘어뜨리고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인 예루살렘 성전 안에는 태양신과 바알 신으로 채워졌고 우상숭배와 매춘행위가 성행하였습니다. 국민은 한결같이 가난과 사회적 혼란으로 저마다 낙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도탄 속에 겨우 여덟 살 된 요시아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이 어두운 시기에 스바냐와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려질 심판을 예언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나라 꼴은 엉망이고 사람들은 심각한 부도덕에 빠져 있고 거기에 하나님의 심판이 멀지 않았다 하니 백성들이 깊은 절망과 비탄 속에 빠져 손을 늘어뜨리고 몸과 마음까지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주신 메시지입니다. 다시 읽겠습니다.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습 3:16)
“두려워하지 말라.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기운을 내라. 힘을 내라. 어깨 펴라. 기죽지 말라. 웅크려 있지 말고 일어나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아침 나에게 주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멘으로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일어나 걸으라
스바냐 선지자는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가, 천국 백성이 ‘손을 늘어뜨리지 말아야 할 몇 가지 이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용서 때문입니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습 3:15)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코가 쑥 빠져 있습니다. 기가 죽고 맥이 빠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죄로 말미암아 손을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너의 형벌을 제거하였으니, 죄를 용서했으니 일어나라. 힘을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에게서 죄가 발견되거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다 용서해 주십니다. 기록된 말씀 확인하면서 회개한 모든 죄 용서받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 26:28)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엡 1:7)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사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저희 죄와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치 아니하리라” (히 10:17)
회개하여 죄 용서의 확신 가지시고 손 늘어뜨리지 마시고 어깨 펴고 힘을 내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서 계시니” (습 3:17)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이 예배 가운데 함께 계십니다. 내 안에 오셔서 나와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 14:16, 17)
성령 하나님께서는 내 안에 들어오셔서 항상 함께하여 내 편이 되어 주시고 나를 도와주십니다. 주님이 함께하심으로 행복한 사람 다윗의 고백시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셔서 함께하심으로 누리는 행복합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편 23편)
전능하신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셔서 인도하시고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며, 나를 도와주고 계시니 놀라지도, 두려워하지도 마시고 웅크린 자리에서 일어나시고 손을 늘어뜨리지 마시고 어깨 펴고 힘을 내시고 당당하게 예수 이름으로, 기도와 말씀으로, 믿음과 은혜로 맞서 이기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이겨나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