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42:5 하나님께 소망을 둡시다
병원을 개업한 의사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병원 입구에 이렇게 간판을 달았습니다. "단돈 100만 원으로 모든 병을 고쳐드립니다. 실패할 경우 1,000만 원으로 돌려 드립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1000만 원을 쉽게 벌 수 있겠다는 생각에 병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의사: “어떻게 오셨을까요?”
환자: "미각을 잃어 맛을 못 느낍니다."
의사: "간호사! 22번 약을 가져와서 이 환자분의 혀에 3방울 떨어뜨리세요."
간호사는 의사의 처방대로 했습니다.
환자: "웨~엑" 휘발유잖아요!"
의사: "축하드립니다! 미각이 돌아왔네요! 백만 원 내세요.
화가 났지만 백만 원을 내고 갔습니다.
며칠 후 그는 변장하고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환자: "기억력을 잃어버렸어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의사: "간호사, 22번 약을 가져와서 혀에 3방울 떨어뜨리세요."
환자: "22번? 그거 휘발유잖아요!"
의사: "축하합니다! 기억력이 되돌아왔네요! 치료비 백만 원입니다."
이를 악물고 돈을 냈습니다. 며칠 후 그는 다시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환자: "시력이 너무 약해져서 윤곽밖에 보이질 않아요.”
의사: "안타깝게도 적합한 약이 없네요. 못 고칩니다. 1,000만 원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 의사는 천 원짜리 지폐 한 장 내밀었습니다.
환자: "잠시만요! 이건 천 원짜리잖아요!"
의사: "축하합니다! 시력이 돌아왔네요! 치료비 백만 원 되겠습니다.”
1951년 압록강 강변까지 진격했던 유엔군에 속한 해병대의 군인들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하여 부득이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군인이 희생되었고 포위당하는 가운데서 쫓기고 있다가 바위틈에 은신하고 피곤하게 지친 군인들이 잠깐 쉬고 있었습니다. 이 비참한 모습을 본 한 종군기자가 물었습니다. "내가 당신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해병대의 미군은 대답했습니다.
"내일을 주십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필요한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닙니다. 내일입니다. 내일! 즉 미래의 문제요 소망의 문제입니다.
프랭클 박사가 쓴 「의미를 찾는 인간의 탐색(Man's search for meaning)」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것은 나치 치하의 유대인 포로수용소에 대한 것을 자세하게 관찰하여 기록한 책입니다. 당시 6백만에 이르는 많은 유대인이 포로수용소에서 죽어갔습니다. 끔찍한 생체 실험과 갖은 고문을 다 당하고, 가스실로 옮겨져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나치 독일의 죄악상과 유대인들이 그 핍박과 고통을 어떻게 견뎌냈는가를 고발하고 연구하면서 프랭클 박사는 그의 저서를 이렇게 끝맺습니다.
'마음으로 포기한 사람은 몸도 쇠약해졌다. 그러나 끝까지 소망을 잃지 않은 사람은 살아남았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절망 속에 있는 동료들에게도 소망을 가지도록 격려하던 사람은 모진 고문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에 있었다.' 똑같이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서도 소망을 지킨 사람은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소망의 중요성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두 가지 환경에 처할 때 흔들리게 됩니다. 하나는 너무너무 잘될 때 교만해지고 또 하나는 너무 어렵고 안 될 때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힘들어 낙심이 나를 찾아올 때는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외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 42:5)
성도는 낙심하지 말고 도우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답도 보이지 않는 환경과 사람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만 낙심이라는 깊은 함정에 빠져들게 됩니다.
1642년 영국 동부지역 울스소프에서 유복자로 태어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겨우 말을 배우려고 할 때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재혼을 했습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사과나무 아래 혼자 앉아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 후 아이는 천신만고 끝에 열망하던 대학에 들어가 학업을 마쳤습니다. 그의 꿈은 박사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박사학위 과정에 들어가려고 할 때 흑사병이 창궐하여 그 지역의 모든 대학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낙심한 채 고향에 내려가 사과나무 아래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 자리는 꿈을 잃어버린 자리였습니다. 그때 사과 한 개가 '툭' 떨어졌습니다. 그 떨어지는 사과를 보면서 그는 그 사과가 마치 자기 처지와도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러자 그는 더욱 긴 한숨이 나왔고, 더욱 낙심에 사로잡혀 속으로 말했습니다. "사과야, 너는 왜 떨어져야만 하느냐? 너는 도대체 무슨 낙심이 있기에 제대로 버티지 못하고 땅에 떨어져야 하느냐?”
여러분, 이 의문이 바로 인류 과학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아이작 뉴턴의 위대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기회가 된 것입니다. '만유인력'이란 세기의 법칙은 바로 뉴턴이 모든 꿈을 잃어버렸다고 실망하고 탄식할 때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즉 낙심의 현장이 도리어 진리를 발견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을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환경만 바라보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 어려운 환경을 통하여 여러분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기적을 볼 수 있으며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요셉이 좋은 환경에서 국무총리가 되었습니까? 노예로, 죄수로 모진 고난 중에 하나님이 주신 기회가 왔습니다. 포도주가 바닥이 났을 때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을 때 두 배 잡는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사방이 앞이 막혔을 때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났고 질병에 걸려 고통 중에 치유의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어려운 환경을 꼭 나쁘게, 은혜 안되게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새길을 만드신 하나님을 만날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시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하다가 응답이 너무 늦게 온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했는데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다가온 것인가 낙심하지 마십시오. 선을 행하는 여러분!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어두운 인생의 밤을 통과하는 성도 여러분! 캄캄함 속에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반드시 밝은 아침이 오기 마련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인내하고 기도하시며 때를 기다리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찬송가 523장
우리는 가끔 의문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거친 비바람을 허락하실까? 왜 빨리 응답하지 않으실까? 지치고 힘들 때면 누구나 한 번쯤 품을 수 있는 질문입니다. 말씀에서 그 답을 찾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시 107:25-27)
우리 인생을 바다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바다는 고요하고 잔잔할 때도 있지만 무서울 정도의 큰 파도도 있습니다. 그 큰 파도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니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요하고 잔잔함만 주시지 왜 큰 파도를 허락하시냐는 것입니다.
1. 기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다 풍랑을 만났습니다. 대부분 어부 출신인지라 처음에는 ‘이것쯤이야.’ 하고 노를 저어 봤는데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목숨까지 위태로워졌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 속에서 어떻게 했을까요?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막 4:38)
예수님을 찾습니다. 큰 광풍을 만난 자들도 하나님을 찾습니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시 107:29)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의지하고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기 위함입니다. 고통이 올수록, 클수록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부르짖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고 만날 때입니다. 기적을 경험할 기회입니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깨달음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고후 1:8~9)
살 소망까지 끊어질 정도의 심한 고생이었습니다.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 정도로 큰 환난이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밑바닥에서 깨달은 은혜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의뢰하지 말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기적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절실할 때, 간절할 때 하나님을 찾으면 만나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붙잡을 말씀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 50:15)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하나님께 기도하면,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시 107:29~30)
기도하니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시고, 물결도 잔잔하게 해 주십니다. 한마디로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30)
바라는 항구, 소원의 항구, 소망하는 항구로 인도해 주십니다. 기도하면 끝이 좋고 아름답습니다. 말씀 믿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2. 낮추시기 위함입니다.
믿음 좋다고 하나님께 칭찬받고 인정받은 욥이 고난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마음 저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리였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무지한 자입니다.”
사람이 풍랑을 만나면 제일 먼저 심령이 깨집니다. 높은 마음이 깨집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때야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보게 되고 알게 됩니다.
최연소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에서 가장 큰 복음주의 단체의 총재 겸 이사장이 된 로잔 총재 마이클 오 목사님이라는 분이 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는 책 마지막 뒷부분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일 뿐입니다. 나는 수줍음이 많고, 자신감도 없으며, 무척 내향적인 사람인데, 어쩌다 보니 큰 무대에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나는 ‘깨지기 쉬운 그릇’입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냥 ‘작은 선교사’일 뿐이지만 ‘크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하늘비전 가족 여러분!
크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합시다. ♪부르짖으라